소피의 세계 (합본)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장영은 옮김 / 현암사 / 199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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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은 관심이 많은 경우가 아니면 접근하기가 쉬운 분야는 아닌 듯 하다. 물론 인문계열의 독자라면 고등학교 윤리 수업시간에 오로지 점수와 관련하여 익히는 정도일 것이고, 자연계열의 독자라면 그나마 고등학교에서도 배우지 않는 과목인데다가, 대학에 가서도 학과 공부에 전념하다보면  접할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을 것만 같다..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윤리과목 시간에도 동양 사상, 한국 사상, 서양 사상으로 분류하여 배우고 있다. 동양 사상가들과 한국 사상가들의 이름과 내용은 조금씩이나마 문화적인 기반 덕분에 낮설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도, 서양 사상가들의 이름은 들어는 봤을지라도 그 내용을 거의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공부하는데 애로 사항이 많은 실정이다.  어디 그뿐인가. 한 권의 교과서 안에 그 많은 사상가들과 그들의 사상을 마구 퍼부어 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내용을 압축하여 정리해 놓은 터라 공부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물론 많이 할애되지 않은 교과 일정의 한계가 있고, 조금이라도 많은 내용을 가르치고 싶어하는 교과부의 심중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더욱 서양사상을 접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은 바로 시험이다. 수많은 사상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교과서의 특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오직 시험을 준비하는 목적에서만 공부를 하고는 시험이 끝나고 나면 언제 공부했냐 싶을 정도로 까맣게 잊어버리기 일쑤이며,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아예 알려고 들지도 않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철학 수업이란 공부하고 토론하며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최고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와는 거리가 너무나 멀기만하다. 얼마든지 수업시간에도 재미있는 진행을 할수도 있겠지만 진도의 부담과 입시의 압박속에서는 역시 딴나라 이야기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요즘 들어서는 입시제도에서 논술이라는 과목이생겨 고등학생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은지 꽤 되어간다.  입시 제도를 통해 바쁜 입시생들에게 억지로 읽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읽히고 싶은 기성 세대의 마음은 어쩌면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읽어서 좋은 줄은 알고는 있지만 선뜻 관심을 가지고 읽기란 그 여건이 쉬운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와중에 소피의 세계는 대화체를 이용하여 그리스 철학의 시발점인 소피스트부터 소피스트들의 생각은 반박하며 떠오르는 소크라테스, 어쩌면 소크라테스와 같은 스승에게서 이런 제자가 나왔을까 싶은  플라톤, 더욱 놀랍게도, 저런 플라톤에게서 어찌 이런 제자가 나왔을까 의아스러운  아리스토틀등의 생각을 자연스러운 대화속으로 안내하고 있다. 물론 서양의 고대 철학자들의 우주관과 물질관등도 자세히 언급해두고 있다. 

   알고보면 서양 철학은 이성이다. 칸트의 이성은 어쩌면 기계문명을 발생시킨 원동력이 아니었나 싶을 만큼 철저히 합리적이다. 그 합리주의에서 서구 기계문명이 출발하였다고 믿는 나에게는 동양의 1+1=2, 혹은 3 어쩌면 1 일 수도 있는,  매우 비 합리적인 사고를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물론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양의 사상을 더 좋아하지만 말이다.  

이 책은 서양의 주요 사상을 읽기 쉽도록 이야기로 풀어가고 있다. 그동안 생각해오던 철학의 공부법을 이 책은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나면 아마도 왜 서구에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먼저 발견했으며, 만유인력의 법칙은 왜 또 서구이며,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질량 보존의 법칙과 지동설등, 온갖 법칙들은 왜 서구의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사고력을 기를 수 있게 해줄 것이라 믿는다.    

 물론 이 책을 읽는다고 서양의 사상을 죄다 아는 것은 아니다. 서양인들의 생각과 판단은 철저히 성경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불문법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성경이라는 판단 근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판단 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힐 때 그들은 성경을 뒤진다. 성경에서는 무어라 적고 있는가를 살펴 판단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이들의 사상을 아주 부더러운 촉감을 느낄 수 있도록 편안하게 써내려간 소피의 세계는 청소년에게는 커다란 자양분이요, 미처 서양 사상을 공부할 기회가 없었던 성인들에게는 새롭게 세상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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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 역사인물 다시 읽기
한명기 지음 / 역사비평사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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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없었던 광해군의 폐위에 부끄러움을 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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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 역사인물 다시 읽기
한명기 지음 / 역사비평사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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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역사는 실로 파란 만장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의 나라도 그점이야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한번도의 역사는 강자였던 때보다는 약자였을 때가 더 많았기에 더욱 그러했다.  

광해군 역시 조선의 그 파란 만장했던 시대의 절정기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진왜란의 중앙점에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발발할 당시의 조선은 기축옥사로 인하여 피의 학살이 이루어진 직후였다. 시기적으로 당파의 치열한 파벌싸움으로 중앙 정부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시기였던 탓에 1592년 왜적이 침입하고 겨우 보름여만에 선조는 몽진을 결정하게 되는데, 이는 신립장군이 어리섞게도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을 호구로 보고 들판인 탄금대에서 결전하기로 하고 덤벼들다가 전멸한 바로 그 시점이다.  

이후, 중앙정부는 선조와 광해군 분조로 나뉘어 국토 수호에 나서게 된다. 이 때 광해군은 수많은 나날들은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백성들과 함께 밖에서 새우 잠을자며 동고동락을 하게 되는데, 이는 아마도 백성들과 밤이슬을 맞으며 차디찬 곳에서 새우잠을 청한 유일한 세자가 아니었을까 한다. 

임진 왜란 당시 눈부신 활약으로 구국운동에 참여했던 광해군은 백성들과 함께 했던 경험을 토대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펴려고 노렸했으나, 당파의 권력에 중독되었던 서인들의 인조반정으로 안타까운 폐위를 당하게 되는 과정을 이 책은 상세히 조명하고 있다. 더욱이 신상의 위험을 늘 느끼며 작아져 가는 광해군의 모습은 너무나 독자를 슬프게 한다... 

역사를 공부한 분이라면 어느 정도 파악을 하고 계시겠지만, 절대로 성공해서는 안될 쿠데타가 성공한 뭣같은 경우가 바로 인조 반정이다. 어리숙하고 리더쉽이라고는 꽝이었던 인조는 임금이 된 뒤,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못하여 정묘호란을 불러왔고, 한 번 당했으면 교훈으로 삼을만도 한데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하고 어리버리하다가 다시 병자호란을 불러와 죽어나가는 이는 백성이요, 수탈당하는 이는 또 백성이니 나라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만약이라는 것은 역사에서 부질 없는 짖이기는 하겠지만, 만약 인조 반정이 없었거나 실패하여 광해군의 통치가 지속되었다면, 조선의 국력이 그토록 약해빠지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아쉬워 해본다. 광해군은 적어도 청과 명나라에서 돌아가는 국제 정세를 제대로 파악한 군주였고, 임진 왜란을 통해 국방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낀 군주였던 것이다. 

또한, 정확한 국제정세를 파악하고 있었던 광해군의 외교력이 그 얼마나 배울 점이 많은지 현재의 입장에서도 간과 해서는 안될 솜씨라고 여기는 바이다. 이 책은 그러한 광해군을 집중 조명한, 광해군에 관한한 찾아보기 드문 서책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은 기회를 몇번 가지고 있었으나, 번번히 강국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으니, 이 인조가 또한 번 커다란 실수를 하여 바로 소현세자를 독살시킨 것이 한 번의 좋은 기회를 또다시 잃게되는 것이다. 여기서도 만약이라는 단서를 붙인면, 아마도 조선은 청국을 통하여 자극을 받아 약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을 것이다. 청국은 당시 광해군에게 무지무지 호의적인 외교를 나누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놓친 기회는 바로 정조의 개혁이었는데, 정조 사후, 정순왕후가 섭정을 하면서 영정조가 그토록 애써 해놓은 모든 것들을 도루묵으로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조선이 기사회생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고 만다... 하여튼 조선사를 공부하다보면 내내 울화통이 터지려 한다. 사림이라고 하는 걷으로는 안그런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권력에 눈이 어두워 당파싸움의 핵심에서 회오리를 일으키며 내정을 어지럽혔고, 고통 받는 이는 백성이었다. 동서남북인들은 오로지 권력을 장악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백성의 살림살이는 내몰라라 하는 무정한 정치를 대부분 펼쳤으며 정작 발전에 필요로 하는 인재들에게서는 서얼이니, 천인이니하여 기회를 박탈했을 뿐이다... 

  물론 백성을 위하는 위정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그 흐름은 위와 다름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하튼 임진 왜란 당시의 눈부셨던 광해군의 활약상과 그의 정치적 신조 및 대외 정세를 파악하고 그를 바탕으로 한 외교력을 명쾌하게 느낄 수 있는 좋은 책임에 공감한다... 

 오로지 권력의 획득이라는 정치적인 목적이 뭣같으며 명분없었던 폐위로부터 지금이라도 君에서 복권하여 광해군을 왕으로 복권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해본다... 그러나 현재의 주류 사학자들의 대부분이 서인의 후예들이고보니 그런 날이 오기는 하려나....갑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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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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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여쪽 벌핀치 판을 읽고도 또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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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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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기역의 두툼한 벌핀치 판의 신화를 읽고나서 바로 책장을 뒤져 이 책을 꺼내 읽었다. 벌핀치 판만 읽어도 사실 그리스 로마의 신화를 거의 모조리 읽게되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이미 읽은 이윤기의 과거 판을 또 읽게하는 힘이 저자에게는 있다.  언제 읽어도 이윤기의 신화는 흥미롭기만 하다. 이윤기의 신화가 특별히 매력적인 것은 그의 독특한 해석에 있다. 그 어떤 신화관련 도서를 읽는 것보다 이윤기의 신화는 옳거니 하며 맞짱구를 치게 만드는 솜씨가 있으니 말이다.  

 벌핀치 판을 역서로 한 아주 두툼한(800 여쪽에 달한다) 그리스 로마신화를 읽고도 또 이 책을 뒤져 읽는 것은 이러한 저자의 매력적인 추억이 되살아 나기 때문이다.  이윤기의 신화는 새록새록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판도라의 상자안에 신들이 넣어준 선물에 대한 저자의 견해는 물론,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 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여기서는 여러가지 풍요의 뿔을 소개하고 있다.  

대부분의 도서는  풍요의 뿔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 정도와 그렇게 해서 그 뿔이 생겨났다는 정도에서 그치고 있지만, 이윤기의 풍요의 뿔은 아켈로오스가 아테나이로 돌아가는 테세우스를 붙잡고 마치 고백을 하듯이 이야기를 꾸려나가고 있다. 더불어 헤라클레스가 강의 신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황소로 변한 강의 신을 목조르고 그 뿔을 하나 뽑아, 뚝 분지르는 장면을 소개한다.  어디에나 있는 장면이지만 이윤기는 여기에 그의 해석을 하나 덧 붙인다.  

헤라클레스의 승리는 치수사업의 성공을 뜻하고 있는 것이니, 범람하는 강을 다스려 놓으면 인근 퇴적지는 옥토가되고, 그 옥토에 씨앗을 뭍어두면 저절로 자라 열매를 맺어 사람들에게 풍요로운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니, 그것이야말로 풍요의 뿔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또 어찌보면 강의 삼각주야말로 풍요의 뿔을 닮고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장면을 이야기로 전개하면서 단순한 이야기 수준을 넘어, 독자에게 그렇구나  하는 더욱 깊이 이해할 만한 해석을 곁들이고 있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다. 물론 화보를 알맞게 곁들이고 있으며, 관련 명화를 요소요소에 배치하여 그림을 함께 보며 읽도록 했다는 점이 또 한 좋은 점이기도 하다. 

또한, 오르페우스의 사랑을 이 책보다 더 흥미롭고 아름답고 슬프게 표현한 신화는 아마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아무리 설명을 한다해도 읽느니만 못한 것이겠지만, 오르페우스의 간절하고도 슬픈 노래는 오죽했으면 탄탈로스는 물을 마시려고 하지 않았고, 익시온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으며, 뱃사공 카론은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을까...  오죽 아름답고 슬펐으면 케르베로스는 꼬리를 다리사이로 말아 넣었으며, 시지프스의 바윗 덩어리는 가던 길을 멈추어 시지프스로 하여금 걸터앉아 쉬게 하였을까....  

이윤기의 신화는 나에게 읽었어도 또 읽게 만드는 힘을 가진 정녕 신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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