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과 공자 - 패자의 등장과 철학자의 탄생 제자백가의 귀환 2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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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권에서 강신주는 1권을 읽은 독자에게 기대 그 이상의, 보다 훨씬 더 많은 제자백가의 그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래도 저자가 단단히 마음먹은 것 같아 읽는 내내 즐거웠다. 그래, 관중과 공자에 관하여 이 정도의 것은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저자는 이 저서에서 관중과 공자에 관하여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들을 토해낸다. 어쩌면 많은 인내의 시간을 필요로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저자가 이러한 생각을 글로 출판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왜냐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공자 이전에 민중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제나라를 패국으로 만든 관자의 통찰력을 높이 평가할 것이고 상대적으로 공자의 수고스러움이 안쓰럽게 느껴지며 때로는 시대가 소망하지 않는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관직에 오르기를 바라면서 천하를 주유하는 초라한 공자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벌거벗은 임금님

공자가 누구던가...조선을 500여 년간 지배해온 이념의 창시자가 아니던가. 조선의 중심 이념에는 공자라는 인물이 존재하고 조선은 공자를 모신 사당에 문묘 18현을 배향하기까지 그 얼마나 피비린내 나는 정치적 싸움을 해왔던가... 공자 없는 조선은 상상 할 수 없으며 공자가 곧 조선을 지탱해온 힘이었다는 것을 과연 어느 누가 부정할 것인가. 공자의 힘은 조선의 국왕보다도 더 컸다.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사극에 등장하는 왕들이 신하들에게 쩔쩔매는 장면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닌 것은 우리 역사가 바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공자는 관자 앞에서 너무나 초췌한 모습 그 자체 일 수밖에 없으니 저자는 그 얼마나 고민스러웠으랴. 저자는 이 저술을 통하여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해오던 공자에 대한 환상을 완전히 깨버린다. 이처럼 공자가 대중 앞에 벌거벗은 몸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그동안 수많은 공자 관련 서적들은 공자를 보기 좋은 포장지로 감싸기에 급급했다는 것을 드디어 들켜버린 셈이다. 공자의 위상에 큰 손상일 입힌 저자 강신주에게 돌팔매질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 분명하다. 공자는 그들에게 왕이나 다름없는 인물이었기에...


저자는 그렇게 강보에 꽁꽁 싸맸던 공자의 껍질들을 하나 씩 벗겨내어 마침내 그 본 모습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포장하지 않은 공자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어쩌면 골수 유학자들에게는 심히 불쾌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조선이었다면 저자가 그 목숨을 부지할 가능성은 제로 퍼센트인 것이다. 독자들에게 공자를 관자보다 훨씬 못 미치는 인물로 각인시킬 수도 있는 저술에 분노했을 것이며 더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그들이 감추고 싶었던 유학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노출 시켰기 때문이다. 이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사안이다. 자신들의 지배 이념을 그토록 통렬하게 드러내다니…….



관중과 공자가 선택한 키워드의 차이점


관중과 공자는 시대적인 차이는 있지만 공통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관중은 자신의 힘으로 그 어떤 나라이든 패국으로 만들고 싶어 했고 공자는 주례를 바탕으로 나라를 바로 세워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관중은 환공이 이끄는 제나라를 패국으로 만들기 위해 전례 없는 생각을 해낸다. 바로 민중의 중요성 인식이 그것이다. 반면 공자는 관자보다 독자들에게 훨씬 더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관중과는 전혀 다른 길을 택한다. 주(周)나라의 예(禮)를 회복하여 정국을 안정시키겠다는 일념, 즉 지극히 보수적인 경향을 보여준 것이다. 정치에 관한한 대 선배인 관자의 엄청난 성공 사례를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관중을 벤치마킹하지 않고 정 반대의 길을 택한 셈이다.

  

사실 관중과 공자의 가장 큰 차이점은 패국을 완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핵심을 어느 곳에 두느냐이다. 관중은 패국의 열쇠를 민(民)에게서 발견한 반면 공자는 흔히 인(人)이자 백성(百姓)에게서 찾으려 했다는 점이다. 2권을 읽기 전에 1권을 읽는 것이 바른 순서임에 틀림이 없는 것은 인민(人民)이라는 용어에 대한 올바른 개념의 이해 때문이다. 



춘추전국시대의 인민(人民), 백성(百姓), 군자君子, 소인小人 의 용어 인식

 

요즘이야 인민, 백성이 모두 같은 일반인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주나라 시절에는 그것이 아니었다. 주나라의 인(人)은 경대부등 지배세력을 가리키는 말로 공자가 말하는 군자에 해당한다. 백성(百姓)이라는 용어 역시 당시에 성을 가진 경대부등의 지배세력을 뜻하는 용어였다. 人의 상대적 용어인 민(民)은 전쟁에 져 주나라에 끌려온 노예로서 한 쪽 눈을 찔러 보이지 않도록 했고 노동력에 동원되거나 필요에 따라 제사의 희생물이었던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군자(君子)의 상대적 용어인 소인(小人)은 피 지배세력을 뜻하는 말이다.

 人과 民이라는 말을 사용하다보니 중국을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이라고 하던데 혹시나 춘주 전국시대의 인민이 가지는 의미를 행여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덜컥 인다.

 

위의 용어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면 관중은 피지배 세력인民을 패국으로 가는 키워드라고 생각했고 공자는 정치적 안정을 위해 民을 다스리는 지배세력인 人을 키워드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신념에 따라 관중은 민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성의를 보여준다. 물론 꿍꿍이는 제나라를 패국으로 이끌기 위한 사전 포석이지만 말이다. 백성들이 풍족하게 살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들을 마련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관중은 현대의 복지정책으로 민중들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한 셈이다. 민중이 국가에 대한 신뢰를 가져야만 국가에 충성하는 존재라는 점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백제의 민중이냐 신라의 민중이냐가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가족과 더불어 굶주리지 않고 인생을 노력 한 대로 살아갈 수 있고 필요하다면 국가가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상황에서 민중의 나라가 신라인가 백제인가는 중요하지 않은 일이지 않은가. 관중이 민중을 그토록 보살피는 전략을 사용한 것이 춘추 전국시대, 즉 피지배 세력은 인명으로서의 가치가 존중되지 않던 시대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관중은 이러한 민중의 심리를 잘 파악했고 민중들이 배고프지 않도록 힘썼으며 결국 패국을 이루었다.


관중이 당대의 정치력으로 저 거칠고도 사납기만 하던 춘추 진국시대에 제나라를 최초로 패국으로 이끈 그의 생각보다 사실 내게 더 관심이 가는 인물이 공자인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저자가 공자를 포장한 껍데기들을 홀홀히 털어내어서가 아니다. 정이 정호 형제와 송대의 주희를 거쳐 조선에 그토록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 공자는 과연 당대에 어떤 사유로 인생을 보냈는가가 궁금했던 것이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정리한 중용을 읽고 논어와 맹자를 읽으면서 느꼈던 지고한 정신세계는 과연 어떤 근원에서 발원하였기에 조선의 민중들을 그토록 힘들게 만들었는가...나는 이것이 가장 궁금했던 것이다.

 조선 선비의 자제들이 태어나 5세에 천자문을 깨우치고 나면 흔히 동양의 고전이라 이름하는 동몽선습, 사자소학, 명심보감을 달달 암송한 후,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거쳐 역경 시경 서경을 기본으로 익혔는데 이를 4서 3경이라 했다. 조선 선비의 자제는 4서 3경 외에 다양한 경전들을 읽고 암송했으며 시서화(詩書畵)에 능해야 했다. 그래서 각 고을마다 성독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던 것이다.


물론 과거를 보아야 했으며 과거 시험은 동양의 고전에서 출제했다. 하여 과거를 치루는 선비의 자제들은 주희가 해독한 주석까지도 달달 암기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주희는 공자를 능가하는 교주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입식 교육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렇듯 조선의 정치적 이념의 발원지인 공자는 그동안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人과 民이라는 용어의 개념정리가 안된 탓에 상당히 오해를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어떤 오해야 하면 공자가 말하는 애인(愛人)이란 사실인 즉 민중을 제외한 경대부(사대부)를 뜻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공자의 애인(愛人)을 마치 요즘의 민중을 뜻한다 생각하고 공자가 참 일반인들을 무던히도 사랑했구나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자가 말하는 仁의 대상은 일반인인 대중을 제외한, 조선으로 치면 농공상(農工商)을 제외한 사(士)들 만을 칭하는 매우 제한적인 용어이며 지극히 정치적인 용어인 것이다. 현대로 말하면 정치인들과 관료들 그리고 많은 재력을 가진 기업인들인 것이다. 민중 곧 대중은 공자의 愛와 仁에서 열외자였던 것이다. 공자는 더욱이 민중이 문자를 알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말이 아닌가? 그렇다. 바로 조선의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려하자 이를 극렬히 반대하던 조선의 선비들이 그러했다. 공자의 그러한 생각은 중국의 정이 정호형제와 주희를 통해 조선에 고스란히 전해졌던 것이다.


그러한 공자의 이론은 사실상 강력한 패국을 꿈꾸는 군주들에게 어필하지 못했다. 왜냐면 공자가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배세력들은 실상 군주들에게는 언제든 위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폭발력을 가진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틈만 보이면 스스로 군주가 되겠다고 덤비며 하룻밤 사이에 아군이 적군으로 돌변하던 춘추 전국시대의 혼란기였으니 복례를 외쳐대는 공자의 말이 먹혀들 수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14년이라는 기나긴 시간동안 정치를 해보겠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아다녔던 것이다.


결국 공자가 자신의 신념이 세상에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고 노나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을 때는 그동안 자신을 믿어주던 제자들마저 상당히 떠나가버리는 이탈 현상이 생긴 후였다. 그러나 공자는 자신의 신념을 굳게 지켜냈다. 이탈 현상을 막기위해 유학의 본질을 교조적으로 탈바꿈하는데 공자는 극적으로 성공을 한 것이다. 이 시점에서 공자의 유학은 종교적인 차원에 다다르게 되어 조선에까지 상륙한다.


공자의 생각은 춘추전국시대의 패국을 꿈꾸는 군주들에게 어필하지는 못했지만 공자는 현재까지 유학의 발원지로 인정받고 있으며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조선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은 공자의 의도를 정확히 읽어낸 사람의 주장임이 강신주라는 걸출한 사람의 분석으로 명확하게 드러난 셈이다.

 

 


현대의 정치이념에 드리워진 관중과 공자의 생각


현대의 정치사에도 관중과 공자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정치인들의 이전투구 양상은 사실상 대중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들이 강하다. 그나마 관중의 생각은 현대의 정치 시스템에도 잘 들어맞는다. 곤궁한 대중들을 위해 관중이 노력했던 것처럼 정부도 국민을 위해 노력한다. 이는 대중의 지지를 얻어 패국을 이루려 했던 관중의 뜻과 일맥상통한다.

 공자 역시 자신의 생각으로 새로운 정치 질서를 창출하고자 했고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들의 사유도 정치적인 성격이 강했다. 공자에게 모여든 수많은 제자들도 공자라는 인물을 통해 출사하여 명성을 얻고 귀족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정치적인 판단과 목적을 가지고 공자의 문하로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공자의 사유는 그의 시대가 요구하는 사유방식이 아니었고 현대의 정치 시스템에도 잘 들어맞지 않는다. 지배자와 피지배가가 명확하게 구별되는 사유 방식의 정치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분모를 가지는 부분이다.



발견, 아나키스트 강신주님


이 책을 읽으며 매우 인상 깊었던 요인은 꼭 관중과 공자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저자 강신주의 사유가 빛나는 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책을 저술하기위해서 그가 연구해온 뜨거운 정렬과 그 성과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빛나는 대목은 이 책을 통하여 저자 강신주님은 자신의 신념인 무정부주의를 피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아주 절절하게 말이다. 이는 놀라운 발견이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러하다. 그동안 몇 권 되지 않는 책을 읽어온 독자로서 이처럼 무정부주의임을 피력한 저술가가 몇이나 되던가...아마도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지 싶다. 번역서는 물론 논외로 해야 할 것이다.


 관중이 제나라를 패국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강신주는 자신의 무정부주의를 피력하고 있다. 관중의 정치력이 빛나는 것은 민중을 패자로 가는 키워드로 사유했다는 점이고 민중을 위한 정치를 피력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저자 강신주는 관중의 정치력을 날카롭게 꿰뚫어본다. 이 책이 그야말로 빛을 발하는 대목은 관중의 정치력이나 공자의 진정한 모습을 독자들에게 드러내는 대목이 아니다. 바로 관중의 정치력을 통해 투사시킨 자신의 신념, 바로 그것이다.


국가란 패자로 나서기 위해 국민의 협조가 필요하다. 말이 협조이지 자발적인 복종의 성격을 띠지 않을 수 없다. 강제력보다는 물론 대단히 좋은 방법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 자발적 복종에서 발견해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국가라는 강력한 시스템이 내미는 손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자발적 복종은 강제된 복종보다 더 치명적이라는 통찰력을 독자에게 제시하고 있다. 강자가 보내는 러브콜은 약자가 스스로 강자가 되려는 노력을 망각하게 한다. 이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강자가 약자에게 훨씬 더 많은 것을 빼앗아 가기위해서 시행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게 해서는 안 된다. 민중에게는 그들이 처해진 삶의 조건에 필요한 것을 적절하게 제공하여 자발적 참여와 복종을 유도해내는 것이다.

국가의 군주는 땅에서 자라는 풀로 소나 양을 키우는 목동과도 같은 존재이다. 군주는 충분한 먹이를 제공한다. 이럴 경우 소나 양은 주인을 잘 따르면 먹을 것을 충분히 얻는다는 신뢰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가축의 주인은 필요에 따라 그 가축을 자신들의 먹을거리로 삼거나 거래의 도구로 미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이처럼 국가가 민중을 가장 효율적으로 지배하는 방식은 민중들이 자신이 지배당하고나 그러한 방식으로 억압받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할 때 가능한 일이다. 목동처럼 말이다. 관중의 정치 철학이 현대의 모든 국가, 특히 복지 정책을 통하여 체제의 안정을 영속화하는 작동의 원리인 국가주의 이념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통찰한 강신주의 사유가 빛나는 대목이다.


반면 인문주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원초적 불평등을 인식하고 있다. 강신주가 그러하다. 목축은 동물을 학대하는 가장 잔혹한 방법이라 말한다. 인간에 의해 길러지는 동물은 근본적인 자유를 박탈당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뜻에 따라 언제든지 살육당할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목축은 좋은 때를 기다려 살육을 잠지 뒤로 미루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동물은 이를 착각한다. 당장 죽이지도 않고 풍부한 먹을거리를 제공하지 있지 않은가…….때가 되면 자신을 사육하는 인간이 자신을 죽일 수밖에 없는 엄연한 사실을 부정할 수 있을 때 가축은 인간에게 은혜로운 존재로 둔갑하는 것이다.


진정한 불행이 시작된 것이다. 가축의 야성은 사라지고 인간의 집요한 목축행위로 인하여 가축은 예정된 파괴의 길을 갈 수 밖에는 없다. 이것이 목민의 발상인 것이다. 피지배층은 그렇게 길들여져 필요할 때마다 약탈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축은 목동이 자신을 돌보아주며 보호해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민중은 사실상 그러한 가축에 감정 이입을 하지 못하고 있다. 훈육에 길들여지지 않으려 거부하는 자는 제거의 대상이다. 결국 길들여지는 자 만이 살아남는 법이다. 민중의 삶도 그러한 것은 아닐까 회의하는 강신 주는 이 저술을 통하여 아나키스트의 면모를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국가 지배 체제로 편입하려는 의지와 노력은 공자의 제자들에게서도 발견되는 현상들이다. 목축의 대상이 아니라 목동으로서의 역할을 하고자하는 지배욕을 공자와 그 제자들은 은밀하게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신분 상승의 욕구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그들의 학문 속에서는 이를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왜나면 허락된 자유는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철회될 수 있음을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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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2-04-04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신주의 자발적 복종은 더 잔인하다는 말이 왠지 더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제주 강정 마을에 기지가 들어서는 것을 국책사업, 국가 안보를 위한 일이니 당연히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 속에서 자발적 복종의 단면을 보게 됩니다.

차트랑 2012-04-05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int님의 리뷰 덕분에
저도 이 책을 읽게되었습니다.
이점 깊이 감사드립니다.

국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좋은 계기가
되어줄 수 있는 매우 뜻 깊은 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의 서제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세인트님

2012-04-05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2-04-09 0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신주 님은 이쪽으로 좀 독특하신 것 같아요.
좀 좋아하기 힘든, 알튀세르 이론을 좋아하셔서 메일 아이디를 알튀세르@로 사용하신다는 분이기도 하죠.
제자백가에서도, 관중에게 자신을 투사하시는~^^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차트랑 2012-04-09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철학의 탈주를 우선 읽어보아야 할 듯 합니다 ㅠ.ㅠ
푸코, 들뢰즈, 라캉, 데리다 그리고 알튀세르...
이런~ ㅠ.ㅠ
특히, 비철학적 철학을 요주의해야 할 것 만 같다는...
정말 마음에 안드는 프로이트와
마음에 쏙~드는 맑스를 통과하는 골치아픈 동굴탐험^^도 병행.
역시 마음에 안드는 헤겔선수도 끼워드려야...
스노볼이 따로 없군요 ㅠ.ㅠ

서양철학은 정말 머리를 지근거리게 한단 말씀이에요ㅋ
그러나 흥미를 결코 잃지않게 한다는 강점도 있습죠 ㅠ.ㅠ

그나저나 투사능력이 탁월한 강신주님~^^
이분 역시 요주의 인물이시라는...

양철나무꾼님께서 방문해주신 결과 이거 이거...
읽을거리 엄청 던져주시는걸요^^
고미숙선수가 들뢰즈를 언급할때면
멀쩡하던 머리가 갑자기 빙빙@@~

한동안 아짤아찔한 현기증을 경험하게 되나봅니다..
이런걸 두고 베리굿~ 현상이라고요^^
고맙습니다 양철나무꾼님~^^

마녀고양이 2012-04-09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리뷰였습니다.....
한줄마다 생각에 잠기게 하고, 강신주님을 만날 생각이 없던 저에게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자발적으로(!) 들게하시는 리뷰였답니다. 실은 중간 부분에 백제 민중이나 신라 민중이나~에서부터 아, 그렇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마음대로 해석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나키스트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감사합니다.

차트랑 2012-04-10 00:28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께서 좋은 리뷰라고 칭찬을 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ㅠ.ㅠ

저도 강신주덕분에 아나키스트 관련 서적을 뒤지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 뒤질 것도 없이 강신주께서 열거해준 저자를 찾으면 되는 일입니다만^^
제게 강신주께서 새로운 관심 분야를 알려준 것 같아서
매우 만족스러운 저술가라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앞으로 강신주라는 사람의 책을 더 읽어볼 생각입니다.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님~
 

 여하튼 그렇게 하여 송시열은 역사의 소인배로 낙인찍힌 최명길 덕분에 장원의 영예를 안고 조정에 출사하게 된다. 그러나 송시열은 정묘∙병자호란의 치욕을 고스란히 지켜본 인물이다. 치욕의 현장을 낱낱이 목격한 그는 실의에 차 낙향을 결심하고 10수년간 학문에 몰두한다. 송시열은 율곡 이이의 학문을 이어받은 사계 김장생의 문인으로 율곡 학문의 적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효종은 복수설치(復讐雪恥)로 가슴에 불을 지피고...

 

 

효종은 왕에 오르자 그 치욕을 씻고자하는 불타는 가슴을 대의명분으로 내세운다. 이름 하여 복수설치(復讐雪恥)이다. 이는 청나라에 당한 치욕을 회복하고 설욕한다는 뜻이다. 이 때 효종은 자신의 스승이었던 송시열을 정계로 불러낸다.  이에 부응이라도 하듯 송시열은 출사하면서 효종에게 기축봉사를 올리는데 이 장문의 기축봉사에서 그는 자신의 정치적 소신과 존대주의에 의거하여 청나라를 명나라와 구분, 복수설치를 역설한다. 효종은 북벌이라는 자신의 대의명분을 함께 이룩해 갈 인물로 이러한 생각을 가진 송시열을 지목하고 그 기대에 부응해주기를 소망한다. 송시열 역시 그동안 치욕을 가슴 깊이 묻고 삶을 살아 왔던 것이다. 송시열은 이를 증명해주는 글씨를 하나 남긴다. 바로 치(恥)이다. 필체에는 글을 쓴 사람의 마음과 정신자세가 드러난다고 한다.

 

 아래의 사진으로는 송시열이 쓴 치(恥)자가 어떻게 보일런지는 모르겠지만 액자 속의 치자를 바로 앞에서 바라보면 당시 송시열이 어떤 심정으로 이 글을 썼는지 공감이 갈만도 하다. 그야말로 국가적으로 치욕스러웠던 당시의 심정이 그의 붓끝에서 올올이 느껴진다. 그만큼 치욕스러웠다는 뜻이되겠다. 글씨의 크기도 매우 큰데다가 좌에서 두툼한 머리로 시작하여 우로 보다 가늘게 뻗어 올린 솜씨는 묵직하지면 강렬하다. 또한 날카롭게 삐쳐 올린 두 획은, 마치 목표를 정확하게 겨누고 매서운 장검을 휘두르는 듯 천천히 내리 치다가는 마지막 순간에 빠르게 치켜 올린다. 확실하게 끝맺음을 하려는 듯한 무인의 기질을 느낄 수 있는 삐침이다. 이 순간의 송시열은 강하지만 매우 날카로운 장검을 사용하는 용맹한 장수와도 같은 모습이다.  


 

 

 

 

효종은 뜻을 함께 이루어줄 신하인 친명배금의 송시열은 효종에게 백만 대군과 같은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인물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효종의 설레는 가슴은 그렇게 부풀어만 갔다. 힘을 얻는 효종은 이완을 훈련대장으로 임명하고 은밀한 군사훈련을 지시했다. 양송(송시열과 송준길)에게는 군비를 확충하라고 명하였다. 효종은 자신의 꿈을 이룰 날 만을 고대하며 살아갔다. 효종은 여색을 탐하지 않은 보기 드문 왕이었다. 북벌이라는 대의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힘을 여색에 낭비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효종은 인선왕후 장씨 이외에 단 한명의 부인인 안빈 이씨를 두었을 뿐이다. 효종의 북벌의지는 절대로 정치적인 쇼가 아니었다. 그가 청나라에 끌려가면서 감내해야 했던 고초와 그 치욕을 씻고자 하는 마음은 조선의 그 누구보다 더 크고 간절한 것이었다.

 

 

 

 

 

 

 

 

 

 

 

 

 

 

 

 

동상이몽(同床異夢)


효종의 부분 꿈을 아는지 모르는지 송시열은 효종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당대의 정치적으로도 경제적 상황으로도 조선의 국내 정세는 북벌을 감행 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치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전 국토를 유린당한 임진왜란의 상처를 치유하기도 전에 정묘 병자호란이라는 강한 펀치를 맞은 조선은 거의 쓰러질 지경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 후유증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서 전형적인 농업국가의 형태였던 조선의 농(農) 체제가 거의 붕괴되다 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도 효종은 북벌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던 것이다.

 

 

 


 송시열은 북벌에 대한 의지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쉽게 말로는 북벌을 외치고는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북벌 불가지론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효종이 이러한 송시열을 불러 북벌을 재촉하자 송시열은 수신을 강조하면서 북벌을 반대하고 나섰다. 이에 답답해진 효종은 송시열에게 북벌을 하자는 뜻으로 초구를 하사한다. 기온이 몹시 차가우므로 하사한 초구를 입고 나서자는 강렬한 뜻이 담긴 하사품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북벌의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효종은 그 뜻을 따라주지 않는 신하들을 바라보며 혼자 고민고민하며 허송세월을 보내다가는 그만 뜻밖의 죽음을 맞는다. 자신의 숙원인 북벌을 가슴에 뭍고 세상을 하직한 것이다.

효종이 죽고 현종이 등극하지만 무려 1년도 채 되지 않아 현종마저 사망하고 숙종에게 그 임무가 넘어간다. 숙종은 그 술수가 빼어난 인물이었다. 당론을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데 적절히 활용한 인물이었고 그만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숙종도 표면적으로 북벌을 내세우고는 있었다. 그러나 효종은 현실을 직시하는 인물이었고 북벌의 의지는 할아버지만 한 것이 못되었다. 그렇게 시대적 흐름은 불벌 불가지론이 대세를 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청나라의 국가 정세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흔히 삼번의 난이라 불리는 사건으로 오삼계의 난이 발생했던 것이다. 오삼계는 한인으로 명망한 명나라의 재건을 명목으로 청나라에 반기를 든 사건이었다. 나름대로 자치세력으로 독립된 형태를 띄고 있던 번을 강희제가 그 자치체제를 무너뜨리려 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강희제는 번의 독립성을 불안해 했던 모양이다.


하여 청은 정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한바탕 전쟁에 돌입할 위기의 상황을 맞는다. 이러한 청나라의 상황을 조선의 윤휴는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매우 불안한 청나라에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그동안 연구해온 신무기등을 도입해 북벌을 단행하자고 나선 것이다. 윤휴의 북벌의지는 효종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다. 북벌을 위해 군사, 무기등을 연구하는 등 병법에 밝은 사람이 또한 윤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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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4-04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페이퍼는 무식한 저를 꺠우시네요.^^
여행과 책의 결합
참 멋지면서도 전 쉽게 안되기도 해요.

차트랑 2012-04-05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그 무슨 말씀을요 ㅠ.ㅠ

하루도 기운 내시고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하늘 바람님~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고전음악과 대중가요는 각각 그 나름의 장르로 분류되는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대중음악과 고전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은 두 장르를 거의 넘나들기 어려운 처지로 만들고 말았다. 때로 고전음악에 심취한 애호가들은 대중음악을 경시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고전음악에 대한 일종의 우월의식반영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거 세종문화에서 공연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대중가수와 그렇게는 못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여준 세종문화 회관의 관계자가 힘을 겨루던 모습은 이를 반증하는 분명한 예라 하겠다. 마치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 혹은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하는 대중가수는 그렇지 못한 대중가수들과의 차별 의식 혹은 우월의식을 가질 수 있는 의식이 깔려있는 것도 무관한 일은 아니다. 또 그 자체를 자신의 자존심과 연결지으려는 심리를 잘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고점음악과 대중음악의 경계를 짖는 또 다른 측면은 고전음악가들의 태도이다. 그들 역시 대중음악을 경시하는 분위기속에서 성장해왔고 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때로 고전음악가와 대중가수의 협연에 감동하는 경우를 흔히 목도한다. 그러나 이러한 협연을 꺼려하는 고전음악가가 훨씬 압도적임도 사실이다. 이것이 한국 음악의 분위기인 것이다. 연주가는 연주가대로, 대중들은 대중대로 두 장르의 간극을 서로 멀어지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아래의 영상물은 매우 철학적인 장면들을 연출하고 있다. 회전목마는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고,  바다 속의 썰물안에서 태어나는 장면과 인어가 바다위 잠든 장면은 생명의 탄생을 상징한다. 벌거벗은 어린아이는 바다로를 향해 달려가며 손짖한다. 마치 연어가 회귀하는 모습과 유비가 통하는 상징성을 부여한 장면이라 하겠다. 

 

 이젠 시간을 거꾸로 돌린다. 아이들은 그동안 걸어온 길을 거꾸로 돌아간다. 교각 아래의 처자는 멀어지지만 트럭은 반대로 달려간다. 과거로 회귀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과정에서 회전목마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방향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는 방향으로 설정했다는 점이 유일하게 아쉬움을 주는 장면이다. 탄생과 과거로의 회귀는 단순한 보수적 태도를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태고의 순수함으로 되돌아가고 싶어하는 제작자의 의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감독의 의도와 노랫말의 동질성 그리고 삶을 투영하는 노랫말과 영상의 이질감은 서로 상충하며 갈등하는 대목이 특이하다. 그러나 이러한 양면성의 충돌은 결코 낮선 모습이 아니다. 우리 인생의 바로 그러한 모습이다. 대단히 흥미로우면서도 의도는 파격적이지만 신선하다. 그런 연유로 매우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대중성을 지닌 노래와 철학적 사고의 만남이라니...정말 멋지지 아니한가...    

 

 

 

위의 노래는 패닉의 노래이다. 사실 패닉이 이 노래를 부른지는 10여년도 훨씬 넘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 나는 패닉을 알지 못했다. 대중음악에 민감하지 않은 탓이다. 물론 여전히 대중음악에 민감한 편은 아니다. 이 노래를 최근 가수 박정현이 새로운 버전으로 모 프로그램에서 부른 적이 있어 관심있게 들었다. 새로 편곡한 버전이라는 것을 알게되었고 패닉이 원곡을 부른 사람들이라는 것도 이 때 알게된 것이다.

 

박정현의 이 노래를 듣고 참 곡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노래도 아주 잘 불러주었다. 하여 서로 비교해보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 영상물과 함께 패닉이 부르는 그 원곡을 찾아냈다. 위의 영상물이 바로 원곡자들의 노래이다. 

 원곡과 편곡버전 모두 대단히 멋진 음악이다. 원곡의 산뜻함은 청자에게 정갈하고도 음악의 투명성을 보여주는 듯 하다. 마치 깊은 바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 처럼 맑은 그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흑백의 영상물인지라... 여하튼 이 가수들 참 멋진데...라고 생각했다.  

 

 

박정현 선수가 뮬란의 주제곡 중 하나를 부를 때 부터 알아본 분들이 계실 것이다. 박정현은 흑속의 진주와도 같은 가수이다. 노래를 부르는 솜씨로 본다면 최고의 사랑을 받아도 되었건만...과거 박정현 선수는 그 실력에 걸맞는 영광을 채 누리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자신의 진가를 잘 어필한 가수 중 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프로그램 출연 후 바로 광고도 따내던 걸...

 

 

 

 

 

 

대중음악의 폐쇠성과 그 권태로움

 

대중음악과 고전음악의 극명한 차이점은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대중가수의 의식, 혹은 대중과 고전음악가의 편견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사항들은 사실상 표면적인 이유들에 불과하다. 이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단 하나, 버전의 다양성이 있다. 즉 단조로운 버전의 특성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대중 음악의 특성이 그것이다.

 

대중음악은 작곡가가 있고 이를 노래로 부르는 가수가 있다. 그리하여 특정 곡을 한 사람 만이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 리메이크 버전으로 다른 가수가 부르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의 비율은 지극히 미미하며 일반적인 현상은 절대로 아니다. 이러한 대중음악계의 특성은 대중음악을  지극히 폐쇠적인 장르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대중음악이 폐쇠적이라니...이건 말도 안된다 싶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폐쇠성이라는 말은 버전의 다양화를 구현할 수 없는 대중음악의 한계성을 지적하는 용어이다.

 

오직 한 사람의 가수만이 특정 곡을 부를수 있다는 점은 이를 부르는 가수의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이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폐쇠성이 주는 치명적인 약점을 또한 동시에 지닐 수 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지고 만다. 그 치명적인 약점은 바로 익숙함에서 오는 지루함, 바로 그것이다. 익숙함, 혹은 친숙함이라는 말은 때로는 친교를 위해서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때로는 권태로움이라는 양면성의 성질을 가진 말이기도 하다. 어떤 이가 달에 지구의 우주선이 착륙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한탄하며 했다는 말이 떠오른다...'이제 달을 쳐다보며 상상하던 달 나라의 토끼와 절구방아의 전설은 사라지고 말겠구나...'  익숙함의 반복은 상대방으로하여금 때로 무관심, 나아가 권태로움을 유발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주기도 한다.

 

어느 한곡이 히트를 친다. 거리를 지나다보면 똑같은 노래를 수없이 들 을 수 있다. TV 방송마다 같은 곡 투성이이다. 많지도 않은 TV의 채널은 돌리는 곳 마다 같은 노래를 들려 준다. 라디오의 채널들은 그 곡을 집중 조명한다. 이러한 일이 몇 달간 벌어지는 것이 대중음악의 현실이다. 그러니 아니 권태로움을 느끼랴....하여 청자는 딴 곡으로 갈아타게 된다. 또 다른 신선한 곡이 사회를 강타하게되면 바로 매체는 미련없이 갈아 탄다. 대중들도 역시 미련없이 다른 곳으로 떠나버린다. 이 것이 대중음악의 치명적 약점이랄 수 있다. 아마도 곡에 대한 저작권 때문은 아닌지... 뭐 그런 생각을 해봤다.

 

물론 세월이 수십년 흘러도 '명곡'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곡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좋은 곡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잊혀지고 그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아쉬움이 더 크다는 것이다. 위의 '내 낡은 서랍속의 바다'는 두 버전의 노래이고 분명히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고전음악, 그 버전의 다양성과 매력

 

대중음악의 폐쇠성과는 달리 같은 곡에 대한 버전은 무려 100개 이상 되는 곡이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베토벤의 곡들이다. 베토벤의 교향곡은 그 다양한 버전이 100개를 훨씬 넘어선다. 연주가로서 입문하여 명성을 얻는 가장 기초적 과정이 베토벤 교향곡의 사이클링이다. 그 사이클링 없이 세계적인 지휘자라는 명함을 기대 할 수 없다. 또한 애호가들은 그 각각의 버전을 구매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이는 고전음악의 가지는 특징이다. 애호가들은 엄청난 중복 투자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왜 그들은 경제적 비효율성의 극치를 달리는 중복투자를 하고 있는 것일까...다름 아닌 다양성 때문이다. 각각의 연주자마다 그 특징이 다르고 그 차별화된 연주는 감상의 또 다른 맛을 준다. 이것이 애호가들이 중복투자를 하는 유일한 이유이다. 심지어 교향곡을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하여 연주하는 경우도 허다하지 않던가...

 

이러한 고전음악의 다양성은 어느 한 개인에게는 일생을 함께하는 음악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 연주의 수명에는 끝이 없다. 오직 애호가만이 늙어갈 뿐이다.

 

 아래의 두 영상물은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이다. 지휘자도 연주자도 노래하는 사람도 다르다. 같은 지휘자가 같은 곡을 두 번 연주해도 두번 다 같지 않다. 다가오는 감동은 서로 다르며 감상의 포인트도 서로 달라진다. 물론 호불호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모두 그 나름의 특징을 가진 연주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것이 다양성의 확보이다. 생물의 다양성 만큼이나 음악의 다양성도 중요한 것이라 하겠다.  

 애호가들이 지루해하지 않으며 권태로움을 느끼지 않고 평생 한 곡을 또 듣고 들을 수 있는 이유는 비로 다양성에 있는 것이다. 그럴리가 없다며 내게는 영원한 명반이 있다며 큰소리를 칠 수있는 애호가가 있다면 스스로 자문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비교 감상할 수 있는 기타의 음반들이 없다면 과연 명반이 존재할 수 있을까..라고...가사가 있는 대중음악이 주는 감동과 가사가 없는 고전음악이 주는 감동은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지속적인 생명력을 가지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다.

 

대중음악과 고전음악은 음악이라는 점에서 같다. 그러나 서로 다른 특징이 같은 음악이면서도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도록 한다. 대중음악에도 이러한 다양성의 시대가 올 수 있기를 소망하는 것은 대중음악의 이권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인가....시대는 변하여 요즘은 음반의 시대라기보다는 음악 파일의 시대이다. 좋아하는 곡을 하나 씩 다운로드하여 플레이어로 듣는 시대인 것이다. 다양한 대중 음악의 버전들은 원곡이 같지만 또다시 다운로드하는 중복성을 띌 수 있지 않을까.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소스는 비록 같지만 다른 버전을 서로 비교감상할 수 있는 대중음악의 시대가 올 수는 없는 것인가... 여하튼 대중음악의 다양한 버전에 대한 아쉬움에 쓸데없는 소리 한 것 같다 ㅠ.ㅠ  

 

 

카랴얀은 히틀러 못지 않은 지휘자이다. 토스카니니가 그러했던 것 처럼 독선 그 자체였다. 오죽했으면 베토벤 9번을 영상물로 제작한 디비디 중 하나는 연주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카라얀만 비추고 있을까....카라얀에게 연주는 오직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일 뿐이다. 베토벤을 드러내려 했던 토스카니니와의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주는 치열하고 뜨거우며 차갑다. 이러한 모순은 연주를 더욱 화려하게 빛낸다. 조화란 애초에 갈등이라는 배우자를 전제로 하는 것인가...콤팩트 디스트의 크기를 결정할 정도로 카리스마가 넘쳤던 카라얀, 그를 최고의 지휘자 중 한사람이라고 칭하는 이유는 자신의 독선을 유려하고 빛나는 음악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연주는 아마도 영원할 것이다.

 

 

 

 

 

 

 

카라얀과는 반대로 마주어선생님은 독선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흑인 가수에게도 거리낌없이 연주를 초빙하는 자휘자이다. 아마도 가장 많은 유색인종과의 협연을 이끌어낸 분이 마주어 일 것이다. 정열은 카라얀에 뒤질 분이 아니다. 다만 연주는 대중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을 자신의 지휘로 드러낼 뿐이다. 카라얀이 아니라 마주어선생님을 존경하는 이유일 것이다. 흑인 연주자 제시 노먼은 마주어의 단골 초빙 손님이다. 흑인 연주자 제임스 바그너와의 협연은 가장 감동적인 베토벤 9번의 연주였다. 그토록 노래를 잘 부르는 제임스 바그너를 다른 그 어떤 영상물에서도 다시는 만나본 적이 없다. 지휘자들은 제임스 바그너가 흑인 연주자라서 초청을 하지 않는 것인가...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마주어가 초청하여 연주한 제임스 바그너의 영상을 찾을 수 없는 것이 그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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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12-04-04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중음악을 옹호하는 쪽의 댓글을 쓸 생각입니다...^^ 먼저 대중음악과 고전음악을 일련의 패턴화된 경향으로, 그 창작과 수용 그리고 효과를 이해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해볼까 합니다. 전 이것이 음표와 화음 또는 음악적이라 불리는 일련의 장치들을 이용해서 작동하고 동일한 감각기관과 동일한 대상에게 측정되지만 다른 범주의 미학적 경험을 불러온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즉 음악이라는 이름의 동일성으로만 묶일 수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사이의 연계를 위한 크로스오버니 퓨전,하이브리드같은 것 역시 하나의 시장으로 존재하겠지요. 대중음악의 폐쇄성이란 것은 대중음악의 반복단순성이라는 측면에서 오래전에 비판이 있었습니다.아도르노식의 문제제기였는데, 아도르노식의 반복성 문제를 지적하려면 그 변별성이 쇤베르크나 빈악파정도의 조성파괴까지 수용되는 틀 안에서 받아들여져야 그나마 유용성을 갖을 듯 합니다. 거기에 아도르노식의 대중음악관이 대중음악의 생성적 가능성에 대해, 그리고 대중음악의 지역적,역사적 다양성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될 수도 있습니다.이 글에서 논거의 문제는 대중음악과 고전음악이라는 프레임속에 정확히 지목되고 있는 것이 '한국가요'와 '(서양의) 고전음악'입니다. 대중음악은...생각보다 매우 지역적 역사적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물론 서구 중심의 팝음악이 시장지배적이어서 문화적 동일성이 이루어져가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보면 각 민족음악적 공동체 내부의 영향력이 작동합니다. 예를 들어 터키나 남미 쪽의 대중가요를 듣는다면 비슷한 팝성격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뉘앙스를 느낄 수 있게 됩니다. 클래식 음악의 다양성을 연행과정의 일회성,해석의 다양성에서 찾고 계시는데요...저 역시 클래식적 차이를 향유할 수있는 정도는 되기때문에 -그리고 그것에 매력이 있다는 것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때문에...이것은 다른 말로하자면, 연주 되는 곡들의 협소함의 반증일 수도 있습니다. 그 예를 보자면, 국내 연주되는 클래식 곡들을 보면 대개 베토벤-말러 중심의 고전낭만주의 곡들입니다. 레퍼토리의 수가 대단히 제한적입니다. 클래식을 음반으로 듣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런 상황에 문제를 느껴서 숨은 작곡가들을 찾지요. 국내에서는 페르난도 리스나 라프같은 이들이 꽤나 반응을 얻었던 걸로 압니다. 클래식 음반사들도 최소한 협화음시대에 살던-그 시대라야만 소비될 수 있기때문에- 숨은 작곡가의 곡들을 음반화하는데 신경을 씁니다. 메이저레이블들이 세계적 연주가들을 데리고 2차대전 이후 녹음해 놓았던 방대한 아카이브에 경쟁하려는 마이너 레이블들이 누구보다 앞장 서겠지요. 연주에서의 차이를 말씀하시는데...대중음악에서는 그 점을 그다지 강조하지 않는 수용자인식의 차이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대중음악/고전음악의 수용자 태도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대중음악을 수용하는 측에서는 참여적 측면이 강합니다. 즉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되기때문에 멜로디 중심적이 됩니다. 그리고 작은 차이보다는 음악적 경험에 동참하는 것을 우선시 하게됩니다. 클래식의 현대적 수용방식은 이것과 좀 다르지요. 원초적으로 연주자와 수용자가 이질적 존재로 설정됩니다. 연주하는 행위와 감상하는 행위가 분리된 상태에서 음악적 경험에 참여하게 됩니다. 창작이나 참여과정이 원초적으로 배제된 수용적 차원에서 결국 인간의 감각은 귀에 집중될 도리 밖에 없습니다. 모든 감각이 청각을 중심으로 차이를 구별하기 시작합니다...대중음악은 그보다 넓은감각 사용을 전제합니다. 요즘은 비주얼이 너무 강하긴합니다만. 연주 과정에서의 차이를 말씀하시는데...모든 음악은 시간적 일회성을 특징으로 갖기때문에 공연이라는 연행과정에서는 모두 일회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그건 클래식이던 대중음악이던 상관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공연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에릭 클립튼의 서울공연과 에릭 클립튼의 뉴욕공연이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이지요.대중음악을 전문적으로 듣는 분들은 그런 차이를 클래식 수용자층과 똑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입니다.같은 라이브 음원이어도 어디 어디 공연라이브가 최고다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일단 저는 클래식을 주로 듣는 사람이긴 합니다만...출생이 락과 오만장르라서...클래식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대중음악에 대한 애정도 많기때문에 대중음악을 옹호하는 차원에서 긴글을 올렸습니다. 참고로 대중 음악 전공하는 사람아닙니다.ㅎㅎ 그냥 오만가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일뿐입니다.

차트랑 2012-04-05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드팀전님,
별 대단치 않은 글인데 댓글을 다시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글이 대중음악을 옹호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결국 대중음악을 향한 사랑의 메시지가 담겨있는 글이라는 점도
잊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중용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고 합니다.
其次致曲, 曲能有誠, 誠則形, 形則著, 著則明, 明則動, 動則變, 變則化.
唯天下至誠爲能化.

기차치곡 곡능유성 성즉형 형즉저
저즉명 명즉동 동즉변 변즉화.
유천하지성위능화.

학습은 물론 좋은 발전의 단계를 의미하는 글이라더군요.
음악에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드팀전님~
 

클릭 전 권유사항:

 

아래의 영상물을 클릭 하시기 전에 아래의 권유 사항을 먼저 읽어보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다음의 심리적 현상에 계신 분이시라면 영상물을 보시거나 듣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1. 그 어떤 이유로든 일시적으로 불안 하신 분

2. 현재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으 신 분

3. 조금이라도 우울한 느낌을 가지고 계신 분

4. 영화를 안 보신 분(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ㅠ.ㅠ.)

 

5. 그동안 사귄 애인과 슬픔의 이별을 하신 분 

6. 오래 전에 헤어졌지만 그 혹은 그녀를 잊지 못하고 계신 분

7. 받을 돈을 6개월 이상 받지 못해 마음이 상 하신 분

8. 직장 상사에게 꾸중을 들으 신 분

9.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을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참고 계신 분

 

10. 막 부부싸움을 하고 화해를 아직 하지 않은 분 ㅠ.ㅠ

11, 좋은 기분 망치고 싶지 않은 분 ㅠ.ㅠ

12. 왠지 가슴 팍 한 구멍으로 바람이 시리게 불어오는 분

 

등등...어쨋거나 여러가지 상황으로 보아 기분이 별로이신 분은

1번 밥딜런의 버전과 3번 타루 버전은 스킵을 권해드립니다 ㅠ.ㅠ

 

 

노래를 들으셔도 좋은 분

1. 기분이 지금 좋은 편이라 잠시 망가져도 그쯤이야~

2. 오늘 어디 한 번 쿨하게 고독해보자~

3. 이정도 쯤이야 약발도 안선다~

4. 우울이란 내 사전엔 없다~

5. 데낄라 한병정도 쯤이야~

6. 누굴 뭘루보구...

7. 돌아서면 끝~

 

이런 분들은 들어보셔도 좋습니다.사실 노래는 꽤 좋거든요 ㅠ.ㅠ

타루버전은 묵직하게 끌어내리는 현악기를 뒤에 배치하는 바람에 ... 

마음까지 쭉...밑으로 끌려 내려가는 그.... 

 

 

1. Bob Dylan 버전

 

 

 

 

  2.  Avril Lavigne 버전

 

 

 

 

 

  3.Taru 버전

 

 

 

 

 

 

 

 

 

 

 

 

 

 

 

 

 

 

Mama take this badge from me
I can't use it anymore
It's getting dark too dark to see
Feels like I'm knockin' on heaven's door

Kn-kn-knockin' on heaven's door
Kn-knockin' on heaven's door
Kn-knockin' on heaven's door
Kn-knockin' on heaven's door

Mama put my guns in the ground
I can't shoot them anymore
That cold black cloud is comin' down
Feels like I'm knockin' on heaven's door

Kn-kn-knockin' on heaven's door
Kn-knockin' on heaven's door
Kn-knockin' on heaven's door
Kn-knockin' on heaven's do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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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3-31 0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은 괜찮은데 나가봐야 할 일이 있어 마음이 바빠~~~ 다녀와서 들어보겠습니다!^^

2012-03-31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2-04-03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낙킹온더헤븐즈 도어의 엔딩이군요.
저 영화를 얼마나 좋아하고, 얼마나 울었는지... 음악도 정말 좋지요.
저는 DVD도 가지고 있습니다... 예전에 더 좋은 영화를 많이 봤던거 같아요.
요즘은 헐리우드 물만 주구장창.... ㅠㅠ.

오랜만에 볼륨 한껏 올리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차트랑 2012-04-03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사는 매우 퇴폐적이고...
선율도 그렇습니다만 뭐...
그래서
노래만 들으면 꽤 우울하다는...
그러나 영화는 참...
좋다는 ㅠ.ㅠ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님
 

 최근 강신주의 춘추시대와 제자백가 시리즈를 읽고 있는 중이다. 1권은 이미 읽은 상태이고 2권을 절반 읽었는데 갑자기 제갈공명이 생각났다. 2권은 관중와 공자를 집중 조명한 책이다. 그런데 왠지 제갈량이라는 인물이 자꾸만 떠오른다. 아마도 중국 최초로 패국을 이루는데 혁혁한 공로를 가진 이가 관중이기 때문인 듯도 하다.

 

 한 때 제갈공명이라는 인물에 빠져 공명과 관련한 서적들을 찾아 읽은 기억이 있다. 중고 서적들을 뒤지면서 찹아낸 책들이라 지금껏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데 그 당시 읽었던 공명과 관련한 책 중에는 다음과 같은 양보음과 관련한 스

토리가 들어있다. 중국 5패를 이룬 제나라와 관련한 비하인드 스토리인지라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당시 양보음이라는 한 편의 시를 공명이 즐겨 읊었다고 되어있는데 그것이 사실인지를 잘 몰르 겠다. 다만 그 책에 그렇게 소개되어 있을 뿐이다. 양보음 이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양보음 


                        제나라 성문을 걸어나오니

                        아득히 탕음 마을이 바라다보이네.

                        마을에 무덤 셋이 있는데

                        이것이 저것 같고, 저것이 이것 같구나.

                        묻노니 이것이 누구의 무덤인가.

                        전강과 고야자의 무덤이로다.

                        힘은 능히 남산을 밀어낼 만하고

                        또한 땅마저 끊어버릴 수 있었도다.

                        그런데도 하루아침에 참언을 당해

                        복숭아 두 개로 세 용사가 죽임을 당했네.

                         누가 그런 꾀를 내었는가,

                         제나라 재상 안자(晏子)이어라..........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제갈공명은 어린 시절 양보음을 곧잘 부르곤 했다고 한다. 제갈량이 양보음을 곧잘 불렀다는 것은 아마도 주인공 안자(晏子)를 흠모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다.

  양보음에 서린 전설은 제나라 경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제나라의 경공 때 공손접, 전개강, 고야자는 각각 매우 뛰어난 장수였다. 위의 詩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들의 무예는 흔히 일기당천의 하늘을 찌를듯한 실력이었던 것 같다. 이들은 자신들의 무예 때문인지 그 자부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도가 지나치면 화를 부른다고 이들의 높디높은 자긍심은 결국 제나라의 경공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품절....ㅠ.ㅠ 사실 이 책은 그 전에 나온 '공명의 선택'과 같은 내용으로 제목만 살짝 바꾼 버전이다.

 

당시 제나라의 재상은 위의 시에 등장하는 안자(晏子), 즉 안영이었다. 그는 불안해 하는 경공에게 해결책을 제시하기에 이르 른다. 저 세 장수들의 오만이 하늘 높은 줄을 모르옵니다. 만일 저들이 결탁한다면 경공께서는 위태로워지실 것입니다. 시절이 이상하니 저들을 제거하심이 옳을 줄로 압니다.

 이에 경공은 그래, 내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저토록 강한 셋을 어떻게 제거한단 말이냐...라고 말하자 안영이 대답했다. 제게 좋은 방도가 있습니다. 공께서는 아주 탐스런 복숭아 두 개만 준비해주십시오...했다.

 

경공은 잘 익은 복숭아 두 개를 준비해놓고 공손접, 전개강, 고야자 세 장수를 부르게 했다. 대령한 세 장수에게 경공은, 여기 아주 잘 익은 복숭아가 둘이 있소. 나는 이 복숭아를 그대들에게 줄 것이오. 다만, 그대들 중 가장 무예가 좋고 국가에 기여한 공로가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줄 것이오 라고 말한다.


그들 세 장수는 서로 제나라의 가장 훌륭한 장수이며 공신으로서 나라를 위해 기여한 공로가 가장 크다고 주장했다. 실상 그들의 무예와 공로로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의 출중한 무예와 공로를 서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두 훌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숭아는 두 개 뿐, 우열을 가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공손접이 먼저 나섰다. 일찍이 나는 커다란 멧돼지와 호랑이를 한꺼번에 때려잡은 적이 있다. 고금을 막론하고 이러한 용맹을 보인 자는 없었다, 누가 나를 천하 제일이라고 말하지 않을 쏘냐~고 말하며 복숭아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전개강이 나서며, 나는 국운이 달려있는 큰 싸움에서 두 번이나 복병을 내어 승리를 거두었고, 크고 작은 전쟁에 나아감에 패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내가 어찌 다른 장수에 뒤질수 있겠는가 라고 호통을 치며 남은 복숭아 한 개를 집어 들었다.


복숭아가 상징하는 의미를 잘 알고 있던 고야자는 두 사람의 행동에 몹시 불쾌했다. 두 사람이 가소롭고 괘씸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를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되면 이는 참을 수 없는 치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던 고야자는 두 사람을 향해 쏘아 붙였다. 일찍이 주공이 황하를 건너실 때, 커다란 거북이 나타나 주공의 말을 물고 물속으로 끌어간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헤엄을 칠 줄을 몰랐지만 강물에 뛰어들어 거북과 싸우며 물길을 거슬로 올라간 것이 1백보요, 물길을 따라 내려간 것이 9리 였다. 그리고 그 거북을 잡아 죽이고 주공의 말을 빼앗아 왔다. 그러자 사람들이 나를 일러 하백(河伯)이라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내가 어찌 그대들보다 힘이나 용맹에서 뒤진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그대들은 그 복숭아를 내 놓으라!!! 고 일갈했다.

 

 

이 책이 바로 절판된 책으로 후에 '제갈공명'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그 원판이고 '양보음'이라는 詩가 실려있는 그 책이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양보음 관련 정보는 이 책에서 따온 것이라 보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고야자의 모습은 너무도 당당했고 그 위풍이야말로 천하 명장의 그것이었다. 그러자 공손접과 전개강은 고야자의 용맹과 당당함에 자신들이 차마 미치지 못한다고 여기며 부끄러워 했다. 두 사람은 스스로 가져갔던 복숭아를 고야자에게 내 놓으면서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우리들의 용맹이 고야자에게 미치지 못하면서도 탐욕을 부렸도다...아아, 부끄럽고 부끄럽구나..이제 세상 사람들을 어찌 대한단 말인가...라고 말하며 각기 스스로의 목을 칼로 찔러 자결하고 말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이 모습에 고야자는 그만 정신이 퍼뜩 들었다. 내가 무슨짖을 한 것이란 말인가...자신이 그들을 부끄럽게하여 죽음에 이르르게 했다는 자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고야자 역시 그 자리에서 자결을 하며 말한다...아아, 부끄럽고 또 부끄럽도다...남을 부끄럽게하여 나의 이름을 드높이려 했던 것도 불의일진대, 두 용사마저 죽게했으니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은 또한 불의이노라...


바로 이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양보'인 것이다. 공명이 살던 당시에는 양보라고 불렸지만 제나라 당시에는 탕음이라고 부르는 작은 마을 이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본문에서는 탕음마을 이라고 되어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설을 가진 노래가 양보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공명이 이 노래를 즐겨 불렀다면 세 용사가 의가 무엇인지 깨닫게하는 고결한 죽음을 찬미했다기 보다는 안자라는 인물의 지모를 흠모했던 것 같다.


시대는 춘추전국시대로 춘추 5패가 각기 패업을 이루려던 시기였고 전국시대의 상황에 제갈량이 앞으로 나서게 될 촉한은 유교의 이념이 지배적인 시대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충효와 인의가 핵심이었던 때이다. 양보음은 세 용사가 보여준 仁과 義의 아름다운 죽음에 詩의 주제를 두었을 것이지만(이는 반대로 안자의 잔머리를 의식하고자 하는 뜻도 포함되어 있음을 의미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제갈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듯하다. 제갈량이 촉한의 사실상의 권력을 모두 장악한 상태에서 행한 정치의 양상은 유교적 개념의 仁과 禮를 행함과 동시에 엄격한 상벌기준을 가진 兵家의 정치를 수용한 혼합형 정치시스템 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갈량은 세 장수의 고결함보다는 이 셋을 지혜로 자결하게 만든 晏子에 그 초점을 두었을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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