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 인간의 맛
도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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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TV에서 방송하고 있는 도올의 강의는 시청자인 나의 감탄을 자아낸다. 그의 강의가 이토록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저자의 공부가 매우 깊으면서도 넓은 덕분 아닌가 생각한다.   

서구에서는 흔히 제너럴리스트(Generalist)와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라는 용어로 지식의 모양새를 평가한다. 제너럴리스트는 광범위한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모르는 것이 없는 정도의 사람을 일컫는 것이고 스페셜리스트는 한 전문 분야에서 매우 깊이 있는 학문의 성취를 이룬 사람을 말한다. 물론 심신 수양을 하여 매우 높은 무공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나 우리가 TV프로그램에서 만날 수 있는 '달인'들도 스페셜리스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도올은 이 양자 모두에 해당하는 듯 하다. 그것이 동양 철학이 되었든 서양 철학이 되었든, 아니면 종교가 되었든 의학이 되었든...인문학적인고 철학, 의학적인 모든 분야에서 매우 심도있는 성취를 이룬 사람이라 여겨진다. 

이렇다보니 강의에 막힘이 없다. 경계에서 머물지 않고 그 경계를 넘나들며 모든 것을 통섭한 인물이 바로 도올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다른 닉네임을 주고 싶은데 바로 '석학'이라는 칭호다. 

석학이라는 칭호를 얻기란 결코 쉬운 일이아니다. 그의 강의 내용일 빌자면 수신과 능구가 필요하고 또한 우환의 정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만 제한된 고뇌가 아니라 나아가 백성과 민족을 뛰어넘어 인류에게 가르침을 주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그런 사람이 석학이라는 칭호에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그 밑바탕에는 공부가 절대적이다.  

여하튼 도올의 강의는 흥미를 훨씬 뒤어넘어 하나의 사상을 형성하고 있다. 도올사상이라고 하면 맞을 것 같다. 그의 강의를 다수가 듣고 공감하며 마음깊이 새기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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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풍수: 아무래도 쉽게 접해보기 어려운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예술과 풍수의 조합은 왠지 영 어울리지 않는 커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풍수라는 말은 낮선 용어는 아니다. 학교 때 배운 지리에서도 기후가 인간의 삶에 끼치는 영향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고 한국의 촌락은 대부분 배산임수라는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형태를 띄게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는 우리 역사와 공존해온 풍수의 이론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모르는 이도 거의 없다.  

이 외에도 풍수는 조상을 길지에 매장하는 것이 일종의 효라고 여겼던 우리 조상들의 생각과 부합하여 매장 문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흔히 어느 대통령 후보는 왕이 나올 자리에 조상을 모신 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식의 풍문이 떠도는 데는 그런 연유가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경우와 풍수라는 용어는 지극히 부합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 풍수' 라는 이름을 가진 이 책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위의 책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예술과 풍수의 상관관계를 조명한 책으로 그 조합자체가 흥미로울 뿐 아니라 정말로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흔히 풍수는 바람을 다스리고 물을 얻는다는 뜻으로 '장풍득수'가 핵심이라고 한다. 또 감여학이라고도 하는데 감여는 '만물을 포용하여 싣고 있는 물건' 이라는 뜻으로 하늘과 땅을 뜻한다고 한다. 곧 바람, 물, 땅의 이치에 관한 학문이된다. 

풍수는 자연 현상과 형상을 이해하고 그 근간은 주역과 음양 오행에 있다. 즉, 계절의 변화와 음과 양의 조화를 도모하는 것이 바로 풍수인 것이다. 우주의 모든 것에는 그 나름대로의 기운이 있다고 한다. 어떤 것은 양이요, 또 어떤 것은 음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음과 양의 조화는 계절과 어울려 늘 변화하게되는데 이러한 이치는 풍수 뿐 아니라 명리학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치의 풍수와 예술이 과연 어떤 관계가 있단 말인가?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만물이 그러하듯이 예술도 그 자체에 기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작품은 양의 기운을, 어떤 작품은 음의 기운을 가진다. 그렇다면 예술이 어떻게 기운을 갖게되는 것일까?  

각각의 작품 안에 내재되어 있는 그림의 형상과 방위와 시간등의 조합에 따라 얘술품은 각기 다른 기운을 갖게되는 것이다. 물론 예술을 구성하는 질료의 성질도 예외는 아니다. 즉,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들의 결합은 예술로하여금 미적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풍수의 요소를 가진 기운을 가지게 한다. 

그렇다면 좋은 기운을 가진 그림의 의미는 무엇인가. 좋은 양택과 음택이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나 그 후손들에게 좋은 기운을 주는 것처럼 풍수에 잘 맞는 그림은 그 그림을 소유한 사람에게 풍수의 작용을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요체이다. 예술 작품이 지니는 기국과 구조, 유동성, 정서, 형식, 공간, 질서, 배열등은 마치 우주의 섭리대로 작용하게된다.  그리하여 작품은 길흉을 지니게 되는게 이것이 사람에게도 그에 해당하는 영향을 끼치게된다.

 

예술 풍수는 예술과 풍수의 조합이 아니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결국 예술은 본디 기운를 가질 수 밖에 없으며 그렇다면 예술과 풍수는 작품이 왼성되는 순간 예술과 풍수가 만난다 라기 보다는  하나가되어 예술풍수가 되는 것이다. 예술과 풍수는 둘이 아닌 것이다. 하여 그림을 소장하는 목적이나 위치들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풍수는 우주의 기운을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하기위해서 시간과 공간을 적절하게 얻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제 아무리 좋은 공간이라 해도 시기를 잘못 선택한다면 올바른 작용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이 풍수이고보면 그림을 시작하고 완성하는 시기와 그림을 그리는 장소, 그리고 예술품을 장치하는 시간과 장소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하겠다.

그리하여 하나의 예술이 탄생하는 순간 그 예술은 동양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목화토금수의 상생과 금목토수화의 상극이 음과 양을 준거하여 활성화되게 된다. 즉, 음양과 오행의 원리에 의하여 살아있는 기운으로 작옹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기운을 작용하는 예술품은 인간의 기체에 영향을 끼치게된다. 인간의 기체란 무엇인가. 바로 우리 몸이요 정신이자 기운이다. 이것이 예술풍수의 이치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그림을 어떤 사람이 소장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덕목일 수 밖에 없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자신에게 필요한 음양 오행의 원리와 상극하는 기운을 가진) 그림을 소장한다면 그 그림이 아무리 좋은 그림이라 해도 자신에게 이로울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결국 예술이 탄생하는 순간 그 주인은 따로 정해진다고 보아야  한다. 그림이 돌고 돌아 주인을 찾아가는 경우의 에피소드는 흔한 이야기 중이 하나이니 말이다.  

음악을 예로 생각해본다면 이해가 좀더 쉬워질 수 있다. 최근 모 대학에는 음악을 이용한 치료학과가 개설된지 꽤되어간다고 한다. 음악의 기운을 이용해 환자에게 치료의 효과를 기대하며 연구하는 학문이다. 흔히 뮤직 테라피라고 한다. 꼭 학문까지 더듬어 가지 않는대해도 들으면 기분좋은 음악이 있지 않던가. 땐스 음악을 틀으면 몸이 저절로 리듬에 맞추려고 움직이는 현상이 바로 같은 이치려니. 반대로 우울한 음악은 듣는 청자를 더더욱 우을하게 하기도 한다.  

이치는 이와 같아서 그림도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주체라고 이해한다면, 그 안에 숨겨진 윈리가 음과 양에 의한 오행의 변화라고 이해한다면 예술풍수의 의미를 감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구의 미술적 배경 사상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동양적인 사상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막상 동양인인 우리들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예술풍수라는 말은 여전히 낮설기만하다. 지금껏 보아온 책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책인지라 매우 관심이 가는 연유로 이렇게 글을 적어보지만 믿거나 말거나 하는 심정을 가진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참으로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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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예술과의 거리감은 다를 것이다. 평소 관심이 없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예술은 우리들의 일상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물론 스스로 관찰하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예술을 감상하는 것과 동일하게 간주되어도 좋다.  

또한 예술과 공감하고 예술과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면 이 또한 일상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예술에 접근하는 방법은 다양한 요구사항들이 있을 수 있다. 전시회 등을 자주 관람하면서 예술품과 가까이 지내는 방법도 좋고 직접 예술을 시작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또한 서적을 통해 예술에 대한 내적 접근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들은 예술에 관한 학습을 전제로 한다.  

서적을 통한 방법은 좀더 면밀하고도 체계적이며 이론적인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점이 있다. 그것이 미술이든 영화이든간에, 예술이라 칭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범주에 포함 시킬 수가 있다. 미술이든 영화이든 그 주체가 가지는 본질 것 중 하나가 상징이다. 작품이 전달하는 다양한 상징들을 읽어내는 것은 예술을 이해하는 기초가 되어주기도 한다. 다음은 그 상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요용한 도서들이다. 

 

 

   

 

 

 

서구의 예술은 성서와 밀접한 관련성을 같는다. '세계 명화의 비밀 2' 는 바로 성서의 상징을 가지고 있는 예술품들을 다루고 있다. 비록 성서와 전혀 관렴이 없는 비 종교인이라 할지라도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매우 요긴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종교와 관계가 깊은 사람들이라면 성서상징 50, 그리스도교 성서상징을 탐독한다면 기독교적인 이해도를 더욱 높일 수 있으며 예술에 대한 감상력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징들은 비단 미술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다. 종교관련 영화를 볼때도 상징은 영화의 이해도를 한층 더 높여줄 것이다. 

 

  

 

 

 

 

   

위의 왼쪽 책은 성서의 상징과 표지 구도가 비슷해보이지만 '신화의 상징'을 다룬 책이다. 신화는 유럽을 이해하는 중요한 코드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도 서구의 그림을 이해하는 중요한 상징을 배울수가 있는데 이러한 코드읽기의 방식은 동양화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 명화 숨은 그림 읽기'  는 미술에 관심이 별로 없는 독자라도 읽어봄직 하다. 부모로서 이러한 책을 자녀에게 읽도록 권유하지 않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녀의 손을 잡고 유명한 작가의 작품전시회에 관람을 가는 것은 자신이 관심이 있어이기도 하지만 자녀에게 훌륭한 예술품을 경험하도록 해주고 싶은 경우도 상당히 많을 것이다. 그런 분이라면 세계 명화 숨은 그림 읽기는 유명 전시회에 수십번을 데려가는 것 보다 훨씬 값진 일이 될 것이다. 독서를 먼저하고 전시회에 한 번 만 가도 독서를 하지 않고 수십번 데려가는 것보다 백 배는 더 좋다고 확신한다. 자녀들을 위해 구입하고는 부모님 자신들이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책이 있다면 바로 위의 두 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서적들이 예술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코드을 일려주는 것은 작품들이 지니고 있는 상징 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상징이란 수백마디 말 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그 안에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몇권의 책에 해당하는 분량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어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므로 상징을 이해하는 것은 예술과 역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코드이다.  

 

 

 

 

 

 

  

 

 

 

 

 

위의 책들은 상징에 관한 거의 모든 정보를 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징의 전부는 아니지만 상싱에 관한한 대단한 정보력을 보유할 수 있다. 이 상징의 정보력을 이해하게 된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독자의 눈은 절대로 예전의 눈이 아닐 것이다. 상징에 대한 이해력이 가지는 확장력 또한 절대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본다. 

  

상징에 관해서라면 우리의 문화적 상징에 대해서도 지나칠 수는 없을 듯 싶다. 다음은 우리 문화, 즉 우리의 상징을 잘 드러내준 책들이다. 

 

 

 

 

 

 

 사실 우리 문화의 모든 것에는 우리만의 문화적 상징을 담고있다. 이는 예술의 이해와도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전통 문화의 상징이 서서히 잊혀져가는 것이 현실이다. 서구의 사상이 비판적 여과기를 거치지 않고 흡수된 현대의 우리 문화는 어쩌면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더욱 우리 문화의 이해를 필요로한다. 우리의 것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는 근간이기 때문이다. 

 

 

 

 

 

 

 위의 도서는 청소년과 어린이 용으로 매우 유익하다.

  

예술 뿐 아니라 모든 방면의 상징에 관해서라면 색체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미술에서는 물론 영화에서 색체가 가지는 의미는 생각 이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 '색체의 이해를' 읽은 후, 영화 '빌리 엘리어트' 를 감상해본다면 색체가 가지는 영화에서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영화에서 색체가 이토록 중요한 이해의 요인중 하나였다니...하는 감탄사를 연발할 지도 모른다. 색체는 감독의 의도를 투영시킨 것이지만 영화의 내용과 부합할 때 메인 캐릭터를 이해하는 핵심 코드이기도하다. 이를 이해할 때 영화를 한 층 더 심도있게 이해할 수 있고 예술의 경지에 도달 하는 영화 감상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영화를 통한 하나의 예에 불과하지만 나아가 주변에서 발견하는 색체의 모든 것들에 대한 의미를 파악 할 수 있다는 점은 덤일 것이다. 

예술에서의 상징성을 언급한 내용의 마이페이퍼이지만 상징의 이해는 예술을 뛰어넘는 그 어느 것에 닿아있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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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풍속사 1 - 조선 사람들, 단원의 그림이 되다 푸른역사 조선 풍속사 1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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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은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이자 우리 선조의 모습을 고스란히 그림으로 전해준 화가이기도하다.  한국화는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역사를 더해가면서 한국적인 그림을 완성해간다. 이제는 한국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조선 특유의 미술세계를 확립한다. 

우리의 옛 그림을 아는 것은 우리의 뿌리를 아는 정체성과 관련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단원은  제자인 혜원과 더불어 다른 화가들이 해내지 않은 풍속화를 남겼다. 풍속화는 조선 백성들의 일상을 대상으로 한폭의 그림에 담아 당시의 시대적 문화적 유산을 간접적으로 전해준다.  

풍속을 담은 그림은 주로 민화를 중심으로 그려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선의 화원으로 활약했던 단원과 혜원의 풍속을 화폭이 담아내는 일은 결코 사사로운 일은 아닐 것이다. 조선의 그림의 중심이 사군자와 산수를 중심으로 내려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조선 후기라고는 하지만 가히 파격적인 시도라 할 수 있다. 

편견과 선입관을 벗어버리기 전에 일국의 화원이 시도하기에는 시대적 사상으로보아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풍속을 화폭에 담아낸 단원은 우리의 소중한 서민 문화를 전하겠다는 신념을 가진 화가라 볼 수 있다. 

이 책을 통하여 또한 배울 수 있는 것은 그림을 이해하는 감식안이다. 저자의 해설과 더불어 단원의 그림에 의도한 메시지를 읽어내는 일은 매우 흥미진잔하다. 그림을 읽어내는 눈이 왜 필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책이기도 한 것이다.  그 즐거움을 느낄 준비가 되어있는 독자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여러가지 면에서 저자는 단원의 그림을 통해 그 누군가는 해야할 일을 하고 있다.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고 서구의 영향을 여과없이 흡수하게된 한반도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고유의 문화에 대한 재신식이 필요할 정도로 일그러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창과 같기에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중 하나가 역사의 이해이며 우리 문화의 이해이다. 단원은 그러므로 우리에게 자신의 결정과 그림으로 말하고 있다. 우리의 뿌리를 아는 것이 우리가 할 일 중 하나라는 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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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 (반양장)
E.H.곰브리치 지음, 백승길 외 옮김 / 예경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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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는 막상 책의 두께가 독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짖누른다. 많은 독자들에게 곰브리치의 힘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는 책이다. 그러나 서양 미술에 정녕 관심을 가진 독자에게라면 필독서요 그 가치를 논하기 힘들만큼 훌륭한 책이라 정평이 나있는 양질의 도서이기도 하다. 

교양 철학 시간의 어느 교수님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라고. 수강생들의 대답은 각기 다를 뿐 아니라 흥미로운 답변들이 쏟아졌다. 교수님은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넥타이를 맨다거나 술을 마신다거나 결정적으로 인간은 철학을 한다는 것이 차이점이라 생각하신다고 했다. 

이는 분명히 일리가 있는 구별법이다. 인간은 철학을 하므로 동물과 구별된다. 그러나 이 외에도 추가할 수 있는 항목이 있다면 인간은 예술을 한다는 점을 보태고 싶다. 

인간은 예술을 한다는 점에서 동물과 구별된다. 맞는 말이다. 이 명제를 다르게 표현해본다면 '예술을 하지 않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다'라고 앞서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명제를 역으로 할 때 반드시 정답을 낼 수 있어야 한다'는 명제는 동양인인 나에게는 true가 아니다. 꼭 철학을 해야만, 예술을 해야만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학문적인 차원의 견해 일 뿐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늘 철학을 하고 있다는 것 또한 타당한 명제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매사에 결정을 해야하는 순간이 오고 그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자신만의 철학, 혹은 가치관임을 부인할 수 없다.. 결국 학문적인 사유와 철학을 하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생 철학이 자신의 판단에 준거가 되어준다는 것은 지당한 말씀. 그렇다면 예술은 어떠한가.  

예술은 일생을 두고 알지 못해도 좋다. 예슬과 접하지 않는다고해서 인간이 아닌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나 예술은 인간적인 삶을 한층 더 풍요롭게 한다는 것 또한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풍요로운 인생은 재산이 많다고 일궈 낼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요 배만 부른 인생을 풍요롭다고 말할 수는 결코 없는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소크라테스는 왜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인간이기를 소망했던가. 

 비록 배는 고플지언정 정신적 풍요로움의 가치를 인생의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예술 역시 그와 다를 바가 없다. 설사 부유한 인생은 아닐지라도 자신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예술과 거리를 가까이 두는 것이 풍요로운 인생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음악도 예외는 아니다. 

어느 한 대학생은 학교에서 서양 미술사를 수강해야 하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서양 미술사는 그 학생에게는 매우 비호감 과목에 해당한다고 한다.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 학생은 서양 미술사 강의를 통하여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도서관에서 만날 수도 있다. 싫어하는 과목의 학점을 위해서 곰브리치를 만나 그의 저술을 따라 읽어간다면 아마도 그 학생의 인생은 달라질지도 모른다. 우연은 때로 생각지도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대학생 시절은 분야를 구별하지 않고 접해도 좋은 시기이다. 입맞에 맞는 편식을 할 시기는 절대로 아니다. 다양하고 많은 분야를 접하고 그 가치를 알며 조금 더 깊이 나아간다면 인생은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동양의 것이든 서양의 것이든 미술을 알고 지내다보면 그 이름도 유명한 예술가들의 전시회에 가는 것이 그 얼마나 부질없는 짖인지 깨닫게된다. 작품 하나만으로도 몇 권의 책으로 저술 될 수 있는 가치를 가진 예술품들을 단지 몇 분만에 휙~ 돌아보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물론 사전에 철저한 연구와 공부가 전제된 관람의 경우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자신이 그토록 감동하며 읽고 그 의미를 부여한 그림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감상한다면 말로는 다 못할 감동을 선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수십만이 다녀갔다는 전시회에서 과연 이러한 감상이 그 얼마나 있었을 것인가. 대부분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저 그 유명하다는 작가의 작품을 한 번 구경했다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일반적인 관람 문화인 것이 현실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어느 분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다면 작품을 잘 알지는 못하더라도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는 것도 의미가 없냐고 물으신다. 큐레이터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은 물론 유익한 일이다. 모르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한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큐레이터의 요약 설명이 가지는 문제는 마치 장편 소설의 요약본을 앍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직접 읽지 않은 소설의 요약은 물론 모르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다. 그러나 그 작품이 주는 감동과 가치를 깨닫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작품의 요약본으로 작품을 이해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에 대한 줄거리와 감상을 이미 읽은 누군가에게 전해들었다고 하자. 파리대왕은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의 배가 좌초되어 무인도에 상륙하면서 발생하는 인간의 본성과 추악함을  적나나하게 보여주는 책이라는 설명을 들어서 알게되겠지만 그 소설이 가지는 구성과 작품성을 감지하기는 이미 어려움이 있다. 작가의 문체가 주는 질감도 느끼지 못할 것이고 각 주인공들의 갈등과 해법에서 오는 그들만의 인간성과 가치관을 발경하기란 요원하기만 하다. 작품을 읽지 않은 것은 읽지 않은 것이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작가가 소설을 통해서 전달하려고 하는 핵심을 놓치기 쉽다.  

극한의 상황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추악함과 야수적인 본성을 가진 젊은이들은 어른들이 구원을 해줄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을 전달하는 소설이라는 점을 알게되었다고 하자. 그러나 작가의 작품을 직접 읽어본 사람은 저자의 심오한 목소리에 한 발 더 깊이 나아 갈 수가 있다. 윌리엄 골딩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러하다. 어린 청소년들의 탈선과 비행 그리고 그들의 위험한  상황을 어른들이 구원해줄 수 있지만 과연 실제로 이러한 본능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의 기성새대를 과연 누가 구원할 수 있단 말인가? 라는 궁극의 의문을 던지고 있고 그에 대한 인류의 자성을 촉구하는 강력한 미시지를 담고 있은 소설이 바로 파리대왕이라는 것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있지 않을까. 이러한 현상이 바로 작품을 연구하고 공부하며 감상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확연한 차이점이다.     

예술은 그 작품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감동을 받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작품에 관한 가능한 많은 것을 알면 더 좋다. 작품 관련 역사를 아는 것도 당연히 이에 해당한다. 작품을 읽지 않은 상태로는 자신의 정신적 풍요로움을 기르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비록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기는 하지만.... 

곰브리치는 서양의 미술에 관심을 가진 독자에게 만족을 주는 책이다. 물론 이에 버금가는 또 다른 저자의 책이 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서양 미술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 가장 선호하며 그치를 인정받고 있는 책임에는 분명하다는 것이 글의 취지일 뿐이다.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는 독자들의 인생을 더더욱 풍요롭게하는데 크게 공헌해 줄 필독서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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