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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게 나를 죽여라 - 이덕일의 시대에 도전한 사람들
이덕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과거가 아닌 현재를 보게하는 힘]
이덕일 이라는 사람의 이름 석자를 알게 된지 얼마 안되는 풋내기 독자로써 그의 책을 챙겨보기 시작한데는 이유가 있다. 역사라고 한다면 늘 통사개념의 연대기식 사건의 나열 정도로만 알아도 대단한 걸로 착각했었기에 나 역시 우리 나라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사건 발생 사실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역사를 받아들이고 바라보는데 역사적 사실만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수박겉핥기식의 역사 인식인지 차츰 깨닫게 되었다. 역사가 역사로써 제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역사적 시각이라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역사적 시각이라 함을 어떤 관점에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가 하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알아왔던 대부분의 역사는 승자의 입장에서 기술된 역사평가였고 부끄럽지만 중고등 역사 교과서 범주에서 가르쳤던 그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이덕일 님의 작품을 읽고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그것은 역사의 다른 면을 부각시키는 저자의 강점때문이다. 일반적인 평가에서 벗어나 다른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힘을 길러주기 때문에 내가 이덕일 님의 작품에 매료되는 것 같다.
이 작품 역시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시원하게 나를 죽이라고 말할 용기를 가진 자, 과연 어떤 상황에 있는가?부터 파악하는 것이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과 취지를 제대로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김일경..내게는 너무도 생소한 사람이다. 저자는 김일경의 후손이라는 사람을 만나면서 김일경에 대한 이야기를 서문에서 소개한다. 한국사의 위대한 임금 중의 하나로 꼽히는 영조. 영조의 즉위 과정에서 경종의 독살설은 그동안 제기되어왔던 문제이다. 경종이 독살되었다고 철썩같이 믿는 김일경은 영조를 향해서 왕권을 부정하면서 시원하게 나를 죽이라고 말했다 한다. 경종이 부각되는 것도 그의 독살설에 대해서 심각하게 기술되는 것도 역시 영조라는 거대한 왕권앞에서는 한낱 패자의 몸부림처럼 되어버리는 역사. 저자는 이 책에서 강자가 아닌 약자의 편에서 혹은 역사에서 외면당한 사람들의 신념에 대해서 기술하고자 한다. 그러니 대세에 대해서 강한 신념을 담은 그들의 외침은 충분히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로 대변되고도 남는 것 같다.
소개되는 인물 가운데 상당수 내가 알지 못하는 인물도 있었고 기존에 알았지만 새로운 면모를 보게되는 인물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책을 읽는 것이 단지 지식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에서 끝난다면 아직도 설익은 독서관이 될 것 같다. 특히 역사라는 부분은 더더욱 그렇다. 현실과 동떨어진 역사가 아닌 과거와 현재의 연장선상에 있는 역사를 탐닉하기에 현실과의 연관성과 비교를 해보지 않을 수 없다. 역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현실적인 것보다 사상과 이념의 공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대부들의 중화 사상과 성리학의 무조건적인 숭배와 긴 시간 유지된 변치않는 기득권의 틀이라 하겠다. 정승의 자리에 있으면서 기득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을 위한 대동법 실시를 주장했던 윤후나 주자학이 학문이 아닌 국가 이념으로 변질되는 과정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 학자들 역시 가볍게 넘어가지지 않는다.
누가 무엇을 주장했다. 누가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도 중요하지만,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삶에서 과연 어떤 인물이 제대로 된 신념과 역사관을 가지고 나랏일을 하는지, 소수의 가진자들의 삶을 더 배불리 하는게 아니라 다수의 민중을 위한 일을 하는지 그것을 더 관심가지고 살피게 하는 것 같다. 몇 백 년 뒤에 지금의 이 시대를 말할 때 과연 어떤 사람이 시대의 인물로 평가될지 자뭇 궁금해진다. 오늘도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사는 대부분의 민중을 촉각을 곤두세우고 제대로된 정치를 하는 사람을 살피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