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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릴 풀스 데이 - 상 - 데이먼 코트니는 만우절에 떠났다
브라이스 코트니 지음, 안정희.이정혜 옮김 / 섬돌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만우절에 내가 죽는다고 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믿을까? 그냥 한 번 쯤 하는 거짓말로 웃어 넘기겠지!
자신의 죽음을 주위의 친구나 가족들이 너무 힘겹게 슬퍼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를 원했던 데이먼..데이먼의 이야기는 한 편의 바람과 같은 짧은 생을 살았지만 누구보다 생을 사랑하고 능동적으로 살았던 아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 아들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가 들려주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 책을 읽기 전부터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오는 묵직함을 안게 되었다.
가족의 축복 속에서 태어난 데이먼은 다른 아이들과 평범하게 그렇게 건강한 아이로 보였다. 유대인의 할례의식을 치루기 전까지는 말이다. 할례를 하고도 멈추지 않는 피때문에 그들은 처음으로 데이먼이 안고 가야할 무거운 삶의 짐을 맞닿게 된다. 데이먼은 혈우병 환자였던 것이다. 생물시간에 배웠던 혈소판이 모자라서 피가 응고되지 않는 병이 혈우병이다. 라고 정의 내리기에는 삶에서 갖는 그 고통의 흔적은 너무도 크다. 외관상의 상처에 의해 혈액이 응고되지 않는 것 뿐 아니라 우리가 흔히 멍이 드는 내부적인 혈액의 누출에 대한 위험성이 더 크다는 것도 데이먼의 이야기 속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혈액을 수혈받으면서 살아야 하는 힘든 시간을 데이먼은 밝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감당하고 살아간다. 적어도 에이즈 환자의 피를 수혈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쩌면 이미 데이먼에게 예견된 위험이었는지 모른다. 현대 의학으로는 풀 수 없다는 에이즈는 급속도로 번지로 그들의 수혈도 언제 어떻게 만날 지 모르는 위험이 있었기에 말이다. 혈우병 환자 라는 사실만으로도 생이 벅찼던 데이먼이 수혈로 인해 에이즈 환자로 되었을 때, 말할 수 없는 절망감이 그를 덮쳤다. 혈우병과 달리 에이즈는 예견된 죽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맡는 수많은 사건 속에서 우리는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절반이 든 음료수를 보고 "와! 이만큼이나 남았네"라고 하는 긍정적인 인격의 소유자를 만나거나 혹은 "겨우 이거야"하는 부정적인 인격의 소유자..세상은 그대로이지만 이 것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생은 빛이 날 수도 암흑같을 수도 있다.
분명 데이먼에게 죽음이 예언된 생은 암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본 데이먼은 그런 죽음 앞에서도 자신에게 남겨진 생의 시간에 감사하고 그 시간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었다. 데이먼의 그런 모습은 그 자신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데이먼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의 노력임을 왜 모르겠는가? 이 책을 쓴 데이먼의 아버지와 그의 가족들이 데이먼이 가질 수 있는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기쁨을 마음 속에 담을 수 있도록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까?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은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가고 싶다고 말한 데이먼은 자신의 죽음이 슬픔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의 바램처럼 데이먼은 만우절에 떠나고 그의 가족은 그의 죽음을 너무도 무거운 슬픔이 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면서 만우절에 떠난 데이먼을 진실이 아닌 거짓처럼 그러면서도 그가 보여준 생에 대한 사랑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데이먼을 만나고 떠나보내면서 내 주변의 가족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고 내게 주어진 생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차곡히 쌓아두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