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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문학에 취하다 - 문학작품으로 본 옛 그림 감상법
고연희 지음 / 아트북스 / 2011년 1월
평점 :
고전 시화의 퍼즐 맞추기에 취하다
문학작품을 읽고 그림의 '안'으로 들어가 보면, 문학이 그림으로 들어온 다양한 양상을 알게 된다. 그 다양함의 범주는 우리의 예측을 넘어서는 게임의 세계와 같다...... 시각예술인 문학을 어떻게 공간예술인 그림에 옮길 수 있는가 혹은 두 장르가 서로 상통할 수 있는 예술인가에 대한 근현대기의 예술철학적, 언어철학적, 비교문학적 논의가 끌어내고 있는 심각한 실망이나 고무적 용기를 무시하는 듯 조롱하는 듯, 우리 옛 그림들은 문학을 그림으로 옮겨내는 데 있어서 다양한 법칙을 만들어 감상자를 즐겁게 긴장시킨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충만한 책이다. 우리 조상들의 생활상과 사상을 그림과 문학을 통해 발견해 내고 그걸 뒷받침하기 위한 자료가 충실하게 실려 있는 알찬 책이다. 이렇게 충만하게 마음을 기쁘게 만들어 주었던 것은 유홍준의 <한국미술사강의> 이후 오랜만이었다. 먼저 우리 고전의 많은 그림들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쁜 일이었다. 특히,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들과 유명한 화원들의 덜 유명한 작품들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도 선비들의 풍류와 멋을 아우르던 중국 고전의 뿌리를 찾아볼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고연희 자신이 그림과 그와 관련된 문학을 소개하면서 사견을 적고 있는데, 그런 부분들이 책의 진정성을 더 높이도록 만들어 주었다. 중국 고전의 내용들이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져 향유되고 변주되었는지에 대한 연구만 얘기했다면 이 책은 다소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친숙하지 않은 한자들만 봐도 어렵다고 머리를 절래 절래 흔들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 자체의 문체 성향은 어떨 때는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여 따뜻하기도 하고 또 어쩔 때는 그 당시를 상상하며 그러한 분위기에 푹 젖어들기도 해서 딱딱 할수도 있는 고전을 한층 가깝게 다가설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한국미술사강의>보다는 더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남성과 여성의 문체상의 차이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책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하나의 내용이 끝날 때마다 마지막에 참고 문헌에 실려 있다. 그걸 볼 때마다 그 자세하고 세밀함에 혀를 내둘렀다. 책 속에서 한 두 마디 내뱉고 넘어간 것도 세세하게 인용 자료를 첨부해 놓은 것이다. 그리고 내용에서 더 참고할 만한 내용은 따로 백과사전 내용처럼 다루고 있는데, 꼼꼼하고 성실한 작가의 정신이 느껴졌다. 처음에 그림이 전체적으로 나오고 설명이 진행됨에 따라 그림 속 세부도가 따로 나와 있어서 설명의 이해를 돕고 있었다. 그리고 내용과 관련된 다른 그림들이 함께 실려 있어서 그 당시 하나의 주제로 반복되고 변주된 하나의 문화 현상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는 고려나 조선의 문인들이 중국 문인들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고 그러한 문학 작품들을 즐겁게 향유했음을 알고 있다. 그 배경 지식을 알고 있어야지만 어엿한 문인으로서 인정받고 그걸 더 많이 알고 자유자재로 써 먹을수록 대단한 문장가로 인정받았다. 오늘날의 '모방'이나 '패러디'와는 다른 것으로, '모방'은 아무런 정신적인 변용 없이 똑같이 따라하는 것이고 '패러디'는 전체 틀은 바꾸지 않고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어떤 부분을 바꾼 거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이 했던 것은 그 둘에 포함되지 않으면서도 포함되기도 한다. 그것은 흔히 개그맨들이 만들어낸 유행어를 일상생활에서 써 먹으며 그 순간을 즐긴 거라고 볼 수도 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그 유행어를 알아야지만 그 묘미를 발견하여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지 그걸 모른다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유행어처럼 한 시대를 풍미하고 점차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문인들의 반복과 변주는 시대가 지나갈수록 새로운 생명력을 얻으며 다양하게 변용되어 되살아난다. 그것은 하나의 '재미'와 '멋', '풍류'였다.
책을 읽으면서 고전이라는 퍼즐 조각을 가지고 전체적인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정신을 쏙 빼앗는 재미에 '취'해 즐겁게 읽고 흥겨운 마음이 일어났던 고마운 책이었다. 이러한 책들이 더 많이 나오고 이걸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읽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