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몸과 고백들
이서수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1월
평점 :
옷을 갈아입다 보면 발견되는 몸의 상처들. 멍이 들어 있기도 하고 생채기가 나 있기도 하다. 허둥지둥 몸을 움직여야 했을 때 몸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면서 생긴 상처이겠거니 한다. 언제 어느 장소에서 얻어 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멍과 생채기는 천천히 사라진다. 복사물을 가지러 가거나 도장을 찍어주러 갈 때 차분하지 못한 성격으로 급하게 뛰어가면서 매일의 상처를 얻어온다.
겨울이라 옷 안에 있는 몸은 건조해서 자주 가렵다는 신호를 보낸다. 로션을 낭비 없이 쓰기 위해 거의 다 쓴 로션 병을 거꾸로 해놓고 손가락을 집어넣어 몸에 발라준다. 조금만 더 버텨줘.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단다. 2024년의 12월 둘째 주는 정신없이 지나갔다.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개인적인 일마저 더해져서 어떻게 해결했는지 모를정도의 정신없음으로. 그래도 그럭저럭 어찌어찌 무사히 지나갔음에 안심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도무지 모르겠다. 선의를 바라는 것도 아니었는데 악의 먼저 내밀다니. 그 악의에 악의로 대응하기보다는 선의도 아닌 인간의 마음으로 맞섰다. 남기고 갈 게 없다는 사실에 도리어 마음이 차분해진다. 어제는 탄핵이 아슬아슬하게 가결되었고 종일 뉴스를 틀어 놓은 채(음소거로 해 놓은 채) 이서수의 소설집 『몸과 고백들』을 읽었다.
토요일 오후의 햇빛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찬란했고 작은 사이즈의 전기장판을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내내 누워서 『몸과 고백들』을 읽어 갔다. 질서 있게 모여서 다만세를 부르고 핫팩을 나눠 가지고 선결제를 인증하며 추운 날씨에 굶지 말고 싸우라는 그 마음을 옆에 두고서 말이다. 우리는 위기에 강한 민족이라는 것을 먹을 것에 진심이라는 것에 뿌듯해하며.
나는 내 몸이 어떤 일에도 쓰이지 않길 바란다는 최초의 고백들로 『몸과 고백들』에는 다섯 개의 이채로운 고백이 있다. 나의 몸. 먹으면 먹는 대로 살이 찌는 몸. 다리와 팔이 짧아 옷 핏이 살지 않는 몸. 조금만 무리해도 아프다고 징징대는 몸. 이제는 나이가 먹을 대로 먹어 생명을 쉽게 기대할 수 없는 몸. 미래 따위는 개나 줘버려 하는 몸. 이서수는 '집'에 이어서 '몸'에 관한 뜨거운 고백들로 나의 우둔한 정신을 깨운다.
태어났을 때부터 너는 여성 혹은 남성이라고 정해진 몸으로 살아간다. 여자아이는 분홍색. 남자아이는 파란색.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도 정해준다. 여자아이가 로봇을 가지고 놀면 그건 아니야 하면서 공주 인형을 손에 쥐여 준다. 그렇게 성별 정체성을 확립한 채 살아간다. 단 한 번의 의문도 없이 여성으로 남성으로 말이다. 그러다 불시에 깨달을 수도 있다. 내가 여성인가, 남성인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성인가.
『몸과 고백들』은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정체성과 아무 성에도 들고 싶지 않은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고백이 있다. 여성도 남성도 아닌 성으로 살아가면 안 되나. 그런 몸으로 사랑을 하고 돈을 벌고 아이를 가지면 안 되나. 고백으로써 혼란함을 표출한다. 여성이기에 당위로 수행해야 하는 역할을 버리고자 한다. 여성이기에 말해서는 안 되는 금기를 고백하면서 발랄함을 가장한다.
나의 몸을 사회에 맡기라고 한다. 나의 몸을 남자에게 맡기라고 한다. 그렇게 쉽고 당연하게 나의 몸을 쉽게 주고 의탁할 수 없다. 할머니가 되는 게 소원이 되었지만 그전에 병에 걸리든 사고로든 죽을 수 있는 알 수 없는 미래만이 확실하기에 고백을 가장한 선언을 하고자 한다. 『몸과 고백들』에 나오는 여성들은. 나의 성별은 내가 정할 수 있고 나의 몸은 도구로 쓰이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나인 채로 살아가려 한다.
처음엔 부끄러워 속삭이다가 나중에는 열렬하게 나를 말하는 사람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의 몸은 우리의 몸이 될 수 없다. 나로서 살아가기 위한 고백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여기 이 간절하게 말해지는 고백에서 내일이 아닌 오늘의 희망을 본다. 낙관하며 노력하는 쉬운 일보다 비관하며 노력하는 어려운 일로 오늘의 불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