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외출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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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엄마가 떠나고 남은 일은 많았다. 그중에 가장 힘들었던 건 집을 치우는 일이었다. 냉장고 문을 먼저 열었다. 그 안에는 초코빵, 김치, 고춧가루, 각종 장류, 어묵, 생선들이 그득그득했다. 겨울이 오면 김장을 하려고 방앗간에 가서 고춧가루를 한가득 빻아와서 냉장고에 넣어놨다. 그해 겨울 엄마는 김장을 하지 못했다. 한 번 떠나면 올 수 없는 먼 곳으로 가버렸다. 상한 음식은 버리고 먹을 수 있는 건 챙겨왔다. 그중에는 미숫가루도 있었다. 몸에 좋은 건 전부 넣었다며 추석 때 나에게 주고도 남은 것이었다. 엄마와 같이 산 동생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엄마가 바로 해주었다고 한다. 더운 여름 호박죽이 먹고 싶다고 했더니 엄마는 늙은 호박을 사서 자르고 끓여 주었다고 한다. 질투가 나고 서러웠다. 호박죽. 좋아하지도 않은 음식인데도 샘이 났다. 이제는 먹을 수 없는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는데, 어른들 말은 틀린 것이 없는데도 여전히 마음 한 쪽이 아리고 시리다. 엄마를 떠올리면. 울지 않으려고 한다. 우는 건 쉬운 일이므로. 대신 엄마 생각이 날 때마다 오랫동안 기억이나 추억을 붙들고 있으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잊혔던 그리움과 기쁨이 생각 나면서 서글픈 마음은 사라진다. 엄마는 찹쌀떡을 좋아하고 이가 튼튼해 마른 오징어를 즐겨 먹었다. 돈이 생기면 옷 사러 가는 걸 신나했고 쓰지도 않을 거면서 살림살이를 사서 모았다. 주말이 되면 전화를 걸어와 잘 있느냐고 물었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마음껏 좋아해 주었을 것이다. 엄마가 원하는 사람이 되지는 못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내가 즐거운 얼굴로 지내고 있으니까.


마스다 미리의 『영원한 외출』은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난 뒤를 기록한 책이다. 자식이 없는 삼촌이 호스피스 병동에서 떠났고 암 진단을 받은 그녀의 아버지가 별들의 나라로 갔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지만 내일의 일은 모른다. 마스다 미리는 차분한 그녀의 언어로 죽음이 남긴 허무를 어루만진다. 가족 중 누군가가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처음엔 당황스럽고 슬퍼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럼에도 배는 고프고 아름다운 풍경에 눈을 빼앗긴다. 삶의 곁에는 죽음. 죽음 곁에는 삶. 두 세계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함께 한다. 한 작가의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는 것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인데도 슬픔에는 눈물을 흘리고 기쁨에는 기꺼이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것이구나를 깨닫게 한다. 마스다 미리의 책을 전부 읽은 나에게 있어서는.


마스다 미리를 좋아해서 그녀의 책이 나오면 바로 산다. 『영원한 외출』이 나온 지는 알고 있었다. 선뜻 사지 못했던 건 책의 소개를 미리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에세이와 만화에 등장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무뚝뚝하지만 딸들을 위해 만들기를 해주고 성질이 불같아서 외식이라고 할라치면 맘에 들지 않는다고 그대로 돌아와 버리는 아버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한 번도 만나지 않았지만 한국의 독자인 나는 국경을 넘어 일본 가정의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영원한 외출을 했다니. 책을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럼에도 마스다 미리가 받아들인 슬픔의 무게를 함께 이기고 싶었다.


책을 받아들고 소중한 마음으로 읽어 나갔다. 스무 편의 이야기에서 나는 감동과 기쁨과 슬픔을 느꼈다. 공감까지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은 일은 돈 얘기를 해야 한다는 부분에서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돈과 서류 이야기. 절차와 기다림. 슬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들. 눈물을 흘리고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건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난 뒤의 일이다. 모든 절차와 서류 작업이 끝나고 빈 벽에 기대어 잠이 들 때 한없이 밀려온다, 서글픔의 시간은. 엄마는 두 대의 냉장고를 가지고 있었다. 냉장고에는 음식들이 가득했고 밥통도 열 개나 되었다. 전기 프라이팬은 왜 그리 좋아했는지. 식구도 우리 셋뿐이었는데.


나는 그의 작품전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언제였던가, 소중한 사람을 잃은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해준 얘기를 떠올렸다.

그 사람은 혼자 공원을 걷고 있었다. 그때, 흰나비 한 마리가 계속 뒤를 따라왔다고 한다. "이별 인사를 하러 와주었네." 생각했단다. 멋진 얘기구나, 가슴이 뜨거워졌다. 나까지 팔랑팔랑 춤추는 봄 나비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야기가 사람을 강하게 한다.

(마스다 미리, 『영원한 외출』中에서)


『영원한 외출』을 읽는 동안 슬프지 않았다.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엄마를 떠올리고 추억할 수 있었다. 잘 움직이지 않고 누워서 책만 읽는 걸 한심해 하지 않았다. 어렸을 땐 돈도 없었을 텐데 할부로 백과사전을 사주기도 했다. 슬픔은 나중의 일이다. 죽음이 슬프지 않은 건 누군가 자주 그 사람을 떠올려 주는 일로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미숫가루를 타 먹으며 찌개에 고춧가루를 넣으며 엄마가 외출에서 돌아온 뒤 잘했어라고 말해줄 시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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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짧은 소설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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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이웃』에 실린 소설들은 1970년대에 쓰였다. 1981년에 『이민 가는 맷돌』로 책이 나왔고 절판되었다가 『나의 아름다운 이웃』이라는 다정한 이름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그 사이 소설가 박완서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글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책은 새 옷을 입고 두툼한 책으로 독자들 곁으로 찾아왔다. 새삼 나의 곁을 떠난 이를 추억하는 힘은 그가 남긴 글을 읽는 것으로 대신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한 시절을 같이 살았으나 내 곁에 없는 이를 그리움 대신 애틋함으로 보듬을 수 있는 힘은 그가 남긴 문장을 읽고 또 읽어 보는 것으로. 문학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세상에 없는 나를 누군가는 문장으로 기억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 아닐는지.


나이 마흔이 되어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한 소설가 박완서의 삶을 한 번 더 추억해 본다. 아이들을 키우고 시어머니를 봉양하며 하루를 끝낸 선생은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저녁 불빛 아래 한 글자 한 글자를 써 내려갔을 시간을 상상한다. 어머니가 간절히 바랐던 신여성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해 서울대에 들어간 그해 6·25 전쟁이 터졌다. 학교에 가지 못하고 기울어진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미군 부대에 있는 PX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초상화를 그리던 화가 박수근을 만났다. 생활에서 오는 피로감과 예술에 대한 열정 사이에서 갈등했을 그 사람을 잊지 않고 소설로 써 내려갔다. '여성동아' 장편 공모에 당선이 된 『나목』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선생의 딸 호원숙 작가가 쓴 서문에서는 소설가 어머니의 일상이 담겨 있다. 알라딘 난로의 불이 아깝다고 그 위에 카스텔라를 구워 주시던 저녁에 쓰인 『나의 아름다운 이웃』에 실린 소설들. 짧은 소설은 화장품 사보에 실려 적지 않은 원고료를 소설가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 돈을 아끼지 않고 가족에게 쓴 어머니를 기억하는 딸의 글을 읽는다. 선생이 직접 밝히는 『나의 아름다운 이웃』을 쓰게 된 계기와 더 이상 짧은 소설을 쓰지 않게 된 저간의 사정이 연이어 이어진다. 딸과 어머니의 글에서 가족이 누리던 따스함을 상상한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에 실린 짧은 소설은 가족, 결혼, 이웃, 집이라는 단어로 묶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놀랍도록 빛난다. 소설을 읽는 쾌감을 선사하고 70년대의 풍경이지만 지금의 시간과도 연결이 되어 공감과 탄성을 자아낸다. 한 편 한 편 모든 이야기가 그곳과 여기를 연결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사람들은 같은 불안을 가지고 현재를 살아간다. 결혼 생활의 고단함, 집을 구하는 어려움, 각박해진 현실을 그리는 작가의 애틋한 마음을 읽어가는 시간. 선생은 떠났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물기 어린 시선이 담긴 소설을 읽으며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름 모를 이웃에게 인사를 해 보는 것이다.


"아범아, 그리고 어멈도 듣거라. 여기처럼 좋은 학군은 다시없을 게다. 전번 학교도, 그 전번 학교도 너희들은 부잣집 아이만 반장 시킨다고 얼마나 불평이 많았니? 그게 너희들의 오해든 아니든 듣기 싫었었는데 이 학교는 얼마나 좋으냐? 조오기 들판에 무허가 오두막에 사는 아이가, 글쎄 길수 반 반장이라지 뭐냐? 길수는 그 아이를 깊이 좋아하고 있단다. 나도 그 아이가 좋다. 길수를 그 아이와 오래 사귀게 하고 싶고 그 좋은 학교에서 졸업시키고 싶다. 난 이사에 반대다."

할머니가 그때처럼 권위 있어 보인 적도 없습니다. 아빠, 엄마가 감히 반대할 엄두도 못 낼 만큼 권위 있어 보이는 할머니가 내 편이라는 건 너무도 든든한 일이었습니다.

(박완서, 『나의 아름다운 이웃』, 「할머니는 우리 편」中에서)


알라딘 난로 곁에서 쓰인 소설은 시대를 건너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화장품을 사고 받았을 책자에서 만난 소설들은 누군가에게는 위로로 용기로 다가왔을 것이다. 우리 이웃의 기쁨과 슬픔이 담겨 있는 소설을 읽으며 다음 호를 기다렸을 그이들의 얼굴은 작은 환호로 더욱 빛났을 것이다.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과 문학이 가진 힘의 위대함을 겨울의 시간이 흐르고 해가 지는 풍경을 건너다보며 느낀다. 한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단순한 기쁨은 박완서라는 작가가 남긴 문학을 읽을 수 있는 특별함으로 바뀐다. 탄생을 축복하고 소멸을 추억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문학으로만 가능하다. 이웃의 안부와 건강을 염려하는 선생의 소설 속 인물이 있어 겨울 하늘에 노을이 붉게 물드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선생님, 그해 봄과 겨울의 시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삶이 주는 아득함 때문에 더 이상 글을 읽을 수 없다고 생각이 들 때면 그때를 떠올립니다. 정직한 시간 앞에서 망각보다는 그리움의 힘으로 선생님이 남기신 글을 읽어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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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 해피엔딩
강화길 외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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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하다. 안타깝게 뉘우쳐져 마음이 조금 언짢고 아프다,라는 뜻으로 국어사전에 실려 있다. 요즘 그렇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차마 위로할 수 없는 내 마음이 속상할 그이들의 사정이 짠하다. 서로가 서로를 짠하게 여기는 마음만 있어도 된다고 넘겨보지만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노래 가사가 의미심장하게 와닿는다. 내가 웃으면 누군가는 울면서 잠들 수도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오롯이 나의 행복만을 바랄 때가 있었다. 나만 잘 살면 되는 거지 하면서 살아가는 날이. 여전히 키는 작지만 다른 이의 슬픔을 넘겨다볼 정도의 눈높이를 가지게 될 수 있는 건 소설 때문이다.


소설을 읽으며 살아가는 시간이 있어서 누군가의 슬픔에 귀를 기울이고 좋은 일에는 함께 웃어줄 수도 있게 되었다. 생전에 그이를 두 번 뵈었다. 봄과 겨울. 소녀처럼 가녀린 음성에 맑게 웃으시던 박완서 선생을 만난 스무 살을 기억하고 있다. 꽃이 피었다가 지고 날이 추웠다가 따뜻해지는 몇 번의 계절을 건너 어느덧 선생이 아름다운 별들의 나라로 가신지 8년이 되었다. 선생의 빈자리를 추억하는 소설집 『멜랑콜리 해피엔딩』을 읽으며 내가 가진 꿈의 크기를 재어 보았다. 꿈은 넓어지기도 하고 좁아지기도 하면서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다행히 나는 꿈을 잃지 않았고 『멜랑콜리 해피엔딩』에 소설을 실은 작가들 역시 꿈을 간직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안도할 수 있었다.


소설을 좋아하지만 문학을 사랑하지만 힘에 부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 소설가 박완서의 글을 읽으면 삶의 순간이 명징 해진다. 도덕과 부도덕을 시원하게 넘나들고 욕심과 욕망의 줄타기를 능수능란하게 하는 선생의 글을 읽으며 나만 치사한 건 아니구나 안심하게 되는 것이다. 『멜랑콜리 해피엔딩』에 실린 스물아홉 편의 소설은 그런 선생의 문학의 자리를 추억한다. 시대가 달라졌어도 소설가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이란 같은 지점을 선회한다. 한유주의 소설 <집의 조건>에서 만난 존대와 하대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중개인의 모습에서 얼마 전에 겪은 나의 경험이 떠오르고 술김에 충동적으로 산 아들의 레고 장난감을 환불하러 가는 이기호의 <다시 봄>에서 짠하고 짠한 부자의 봄길을 상상한다.


떠올림과 상상의 힘으로 『멜랑콜리 해피엔딩』을 읽어나간다. 그이를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어도 괜찮다. 선생을 뒷모습만을 만난 추억을 쓴 정세랑의 <아라의 소설>에서 진실한 이야기의 힘을 만난다. 소설이지만 나는 정세랑의 힘 있는 다짐을 그 안에서 읽어낸다.


그래도 고개를 들어 멀리 보면, 박완서 선생님이 계시는 듯했다. 세상을 뜨고 나서도 그렇게 생생한, 계속 읽히는 작가가 있다는 게 좋은 가늠이 되었다. 사실 아라가 생전에 작가를 뵌 건 아주 잠깐, 아주 멀리서였고 그것도 뒷모습이었다. 그때 아라는 대작가의 뒷모습을 보며 머리카락을 가지도 싶다고 기이한 생각을 했다……. 한 올만 뽑으면 안 될까 하고 록스타에게 손을 뻗는 팬처럼 침을 꿀꺽했지만 물론 그런 망나니짓은 하지 않았다. 용기 내 앞에서 인사라도 할걸, 뒤늦은 후회를 하다가 따라 걷는 자에겐 뒷모습이 상징적일 수도 있겠다고 여기게 된 건 요즘의 일이었다.

(정세랑, <아라의 소설>中에서)


장르 문학이라고 규정되어 버린 자신이 쓰는 소설을 대놓고 무시하는 선배의 말에 기분이 상한 아라는 생전에 SF 작가에게 빛나는 평가를 내린 박완서 선생님을 그리워한다. 이 마음은 서술자 아라를 넘어 소설가 정세랑의 것이리라 감히 추측해본다. 소설가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다정하고 환한 글이 남아 후배 작가들의 등을 토닥여준다. 소설가 박완서의 글은 토닥임으로 작가들을 책상으로 인도해 준다. 그이가 남긴 소설의 어떤 시간들을 불러와 자신만의 이야기로 그리움을 적어간 소설집 『멜랑콜리 해피엔딩』은 사랑이다.


아직, 이곳에, 사랑이 남아 있다고 말하는 책이다. 윤이형의 <여성의 신비>에서 만난 지혜와 슬기는 나의 미래이거나 현재이며 <언제나 해피엔딩>에서 백수린은 우리 삶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라고 넌지시 말함으로써 별도 없는 한 밤을 살아가는 우리를 달래준다. 짠하고 고독한데 우습고 분주하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우리를 짠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오늘을 버틴다. 다시 겨울이고 이내 봄이 올 것이다. 선생이 떠난 자리에 풀이 돋고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낸 『멜랑콜리 해피엔딩』을 놓아둔다. 책장을 덮고 나면 기억에서 사라질 이야기를 쓰는 우리가 있음에 선생은 흐뭇한 얼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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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 2018 제6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김의경 지음 / 광화문글방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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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에 끝나 집으로 와서 이것저것 정리하다 보니 다섯 시. 새벽에 읽다만 책을 잠깐 읽다가 초저녁잠이 들었다. 일곱 시에 일어나 걸어서 칼국숫집에 갔다. 늦은 저녁을 해결하는 사람들이 두런두런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뉴스가 흘러나오고 피곤해 보이는 주인은 따뜻한 차를 가져다주었다. 반찬은 셀프. 다른 이가 반찬을 가져다 먹는 걸 보고 나도 가서 몇 가지 찬을 가져왔다. 어묵볶음과 겉절이 김치 그리고 콩나물. 간을 거의 하지 않은 듯 심심한 맛이었다. 그 때문에 먹을 생각도 없던 밥을 먹었다. 칼국수와 함께 나온 밥은 윤기가 흐르는 찰밥이었다. 칼국수와 메밀 전병. 12000원.


집 앞에 수제 초콜릿 가게가 있는 걸 유심히 봤다. 통통한 몸을 가진 이유는 단 것을 좋아하고 끊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붉은 조명이 환하게 켜진 가게의 문을 열었다. 통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초콜릿 가게에서는 콘서트를 연다고 했다. 캐러멜 초콜릿과 로즈 송이 초콜릿, 막대 초콜릿을 샀다. 11000원. 아, 이 돈이면 한 끼 밥값인데 하는 구질구질한 생각을 하고야 말았다. 겨울 저녁에 먹는 칼국수와 수제 초콜릿은 허름한 시절을 밝혀주는 온기 같은 것이라 여기기로 했다. 내 가난한 시절에는 마트에서 파는 양 많고 싼 초콜릿을 사서 이불 속에서 까먹곤 했었다.


그때보다 좋아진 것이리라. 나는 변화했고 따뜻한 칼국수 국물을 달달한 초콜릿을 먹을 수 있는 시절로 건너온 것이다. 김의경의 장편 소설 『콜센터』의 다섯 청춘들에게 오늘 나의 하루를 선물해 주고 싶다. 그럼에도 우리는 칼국수와 심심한 반찬을 먹고 환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곳이라면 들어가서 망설이지 않고 초콜릿을 골라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소설은 프랜차이즈 피자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다섯 청춘들의 각기 다른 시점으로 진행된다. 그들의 공통점이란 콜센터에서 근무하고 스물다섯이라는 것이다. 휴학을 하거나 졸업을 했지만 정규직으로 취직이 안되어서 그러니까 콜센터는 잠깐 지나가는 정류장이다.


취직이 될 때까지 혹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학비를 벌 때까지만 이었다. 석 달만 일해야지 했는데 육 개월이 되고 어느새 일 년이 넘게 콜센터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비가 오는 날, 크리스마스이브, 각종 연휴에 밀려드는 콜을 받느라 그들은 화장실 한 번 제대로 가지 못한다. 블랙 컨슈머라고 쉽게 말하면 진상들은 하루에 몇 시간씩 전화를 걸어와 다양한 이유를 들어 상담사의 혼과 눈물을 빼놓는다. 죄송하다고 말해도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나왔으니 새 피자를 줘야 한다, 자신을 대학교수나 기업체 사장이라고 말하며 반말을 하고 평생 콜센터에서 일하라고 악담을 퍼붓기도 하는 슈퍼 진상들을 상대하느라 청춘들의 하루는 눈물로 얼룩진다.


제6회 수림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콜센터』는 소설가 김의경의 경험이 녹아들어 가 있다. 실제 작가는 피자 주문을 받는 콜센터에서 일하기도 했다. 대학생이거나 휴학생들 사이에서 외로운 처지로 일을 해야 했다. 살아남는 게 꿈이라던 작가의 사수는 친절하게 업무를 알려주기도 했다. 그 사수에게 바치는 소설 『콜센터』를 읽으며 이제는 꿈을 꾸는 것보다 아직 꿈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나의 어제와 오늘을 떠올렸다. 김의경은 『청춘 파산』과 『쇼룸』에서 가난한 현실의 장벽에 가로막힌 청춘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모두 작가의 체험에서 기반된 소설이었다. 빚을 져 봉고차에 실려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집을 구하지 못해 이케아의 쇼룸에서 집의 환상을 그려야 했던 작가의 경험이 소설이 되었다.


슈퍼 진상을 처리하기 위해 다섯 청춘들은 헤드셋을 던져 버리고 부산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그들은 전화선 너머로만 존재하는 슈퍼 진상의 진짜 얼굴을 만날 수 있을까. 사방이 막힌 벽에서 진상들의 감정 배설 창구로 살아가야 하는 청춘들에게 김의경은 바다를 보여준다. 겨울이란 칼국수와 초콜릿, 바다로 기억된다. 나의 하루를 따뜻함과 달달함으로 마무리해준 칼국수와 초콜릿에게. 주리, 용희, 시현, 형조, 동민의 각박한 삶에 푸른빛을 선사한 바다에게. 고맙고 고맙다고 말해본다. 아프지만 잘 먹고 좋은 것만 생각하려 애써보는 시간으로 청춘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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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딩, 턴
서유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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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서유미의 장편 소설 『홀딩, 턴』은 작가의 말에서 밝힌 것처럼 사랑 이야기로 끝이 난다. 스윙 댄스 동호회에서 만나 사랑을 시작한 진과 랄라는 결혼이라는 결말로 향해 갔다. 결말이 결혼이라고 썼지만 소설은 끝이라는 곳에 결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랑의 끝은 결혼도 이혼도 아닌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고 『홀딩, 턴』은 이야기한다. 그들은 서로를 닉네임인 진과 랄라로 부르는 가벼운 만남에서 현실의 이름을 들려주고 무람없이 영진과 지원이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진지한 사이로 발전한다. 이별이란 전조도 느낄 수 없는 부분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사랑 역시 그러함을 보여준다. 처음부터 서로에게 마음이 가닿지도 않았다. 약속이 어긋나고 나와야 할 사람이 나오지 않아 둘만의 시간을 갖는다.


밥을 먹다가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술을 마시고 문 닫아야 할 시간이라 술집에서 나온다. 버스는 끊기고 거리를 걷다가 어느 지점에서 감정이 충돌한다. 지원과 영진은 스윙 댄스 동호회에서 만났지만 춤에는 소질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지원은 연애 세포를 깨우기 위해. 영진은 파혼한 친구를 달래주기 위해. 춤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즐거움으로 변했다. 영진은 9급 공무원으로 스윙 댄스 이외에도 수화를 취미로 배우고 있었다. 그가 공연을 하기로 한 날 어쩌다 보니 지원만 그 자리에 가게 되었다. 이렇듯 사랑은 별 볼 일 없는 것으로 시작한다.


당연한 수순까지는 아니지만 영진의 열렬한 구애로 그들은 결혼을 한다. 어렸을 때 읽은 동화의 결말처럼 그리하여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가 아닌 그리하여 그들은 싸움을 시작하고 각자의 방에 머물고 별거 끝에 이혼을 결심했습니다라는 동화의 판타지를 깨면서 소설은 출발한다. 발을 씻지 않는 것 때문이었다. 연애는 상대방의 맨발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결혼이란 상대의 맨발을 바라보는 것이다,라고 『홀딩, 턴』은 말한다. 영진은 정리를 잘하는 스타일이지만 위생 관념은 떨어지는 사람이었다. 외출해서 손과 발을 바로 씻지 않고 자기 직전에 씻었다. 지원은 그런 점을 참을 수 없어했다. 문을 열지 않고 발냄새를 풍기며 축구를 보고 있는 영진. 식탁에는 배달 음식 그릇이 놓여 있는 그날 지원은 눌러 두었던 화를 낸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던 어른들의 옛말은 틀리지 않았다. 깨진 그릇은 붙여 쓸 수 없어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결혼을 했다고 해서 상대방의 단점을 고쳐야 한다고 이런 점은 네가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보기도 하지만 실패한다. 각자의 모습으로 함께 살아가야 한다. 상대의 기분에 그때그때 맞춰줄 순 있겠지만 한계 상황이 찾아온다. 타인의 시선에 사로잡혀 지금의 불행을 행복으로 위장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홀딩, 턴』을 추천해주고 싶다. 지원은 스윙 댄스 동호회의 카페 메인에 걸려 있던 문구를 떠올린다. '즐겁지 않으면 스윙이 아니다.' 이 말을 단어를 바꿔 지원과 영진에게 돌려준다. '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도 못 살지도 모르는 인생. 우리는 우리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


-나는 이혼해도 너희랑 호칭부터가 다르다. 싱글맘,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니?

-그래, 너는 많이 무겁다. 승천 보류.

취객들의 대화에 지원은 소리 내어 웃었다. 흩어지고 사라질 웃음이지만 위로가 되었다. 마음이 무너질 때 사람을 끝까지 지탱하고 보듬어주는 게 있다면 유머와 애정일 것 같았다.

(서유미, 『홀딩, 턴』中에서)


지금의 불행을 잠깐 홀딩 해 두고 새로운 인생을 향하여 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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