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
황승택 지음 / 민음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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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의 결말이 '완치'라는 단어가 나오면서 끝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황승택 기자는 2015년 갑작스러운 백혈병 진단으로 투병 생활에 들어간다. 한 달 동안 근육통과 피로 누적을 겪고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혈액암인 백혈병 진단이 내려졌다. 병원에 입원해 무균실에서 항암치료를 받았다. 2만 분의 1의 확률이라는 조혈 모세포 기증을 받았다. 퇴원 후 복직 한 달 전에 다시 재발. 응급실에서 3일을 기다린 끝에 재입원. 4만 분의 1의 확률이라는 타인의 조혈 모세포 기증을 다시 받았다. 다시 재발. 두 번의 재발을 겪고 그는 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 3차 치료를 하고 있다며 『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는 끝난다.


이 책은 실체 없는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몸이 아파 검사하러 간 병원에서 병의 확인을 받고 치료를 받는 병원기가 담담하게 실려 있다. 문장으로 읽었을 때야 담담하지 병의 고통을 잊기 위해 써 내려간 당사자의 마음을 차마 짐작할 수가 없다. 신의 존재를 믿는다면 왜 이런 고통을 나에게 주셨을까 원망도 했을 법하다. 평소에 건강 관리를 잘 하고 나름 몸에 신경을 썼다고 한다. 삼십 대 후반이면 회사, 가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할 나이이다. 황승택 기자는 어린 두 딸과 아내, 부모님을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글을 쓰는 것이다. 기자가 아닌 환자로서 겪은 병원의 일상을 SNS에 올린다. 공감이 된 부분은 면회에 대한 단상이다. 주말이면 환자의 가족들이 병원으로 몰려온다. 그러기 보다 문자나 카카오톡으로 마음을 전해달라고 한다. 바로 답변을 해야 할 것 같은 의문문보다는 평서체의 문장으로. 병원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이야기이다. 환자와 간병인이 편히 쉬어야 할 공간에 가족들이 몰려와 소란스럽게 하는 어느 장면에 나도 끼여 있었다. 무례하게도 면회객은 나의 환자를 구경하듯 쳐다보고 있었다. 환자는 그 눈빛을 보고 모멸감을 느꼈다. 병이 죄인 것 마냥.


『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의 글은 수기로써 가치를 가진다. 병원의 시스템과 우리나라가 백혈병 환자를 대하는 시선을 바꾸어 나갈 것을 조심스럽게 말한다. 전공의가 아닌 수련의가 환자의 치료를 할 때 환자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부터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 병원 생활에서 만난 사람들의 기록까지 『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는 기자의 글답게 생생함을 자랑한다. 말기암을 진단받은 노인과 주고받은 대화. 국가의 정책으로 세계 각지에서 특실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외국인의 간병인과 나눈 이야기.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몰랐을 주변의 사소한 풍경들이 주는 의미를 되새긴다.


3차 재발로 투병 중이라는 결말은 우리를 암담하게 하지만 삶은 결코 녹록하지 않음을 다시 한 번 배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부제를 이 책에 붙여 주고 싶다. 병에 걸린 것은 고통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닌 삶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는 전한다. 아프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 고통이 없다면 죽은 것이다. 그가 '완치'라는 단어를 쓰는 순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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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지 않겠다 창비청소년문학 15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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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이라 두 달 동안 끊었던 치킨을 먹기로 했다. 전화를 걸어서 또박또박 사는 곳을 말해주었다. 예전에 한 번 내 발음이 이상했는지 메뉴가 잘못 온 뒤로는 더욱더 발음에 신경을 쓴다. 냉장고 야채실에 있는 양배추를 꺼냈다. 양배추 전용 채칼에 대고 양배추를 문질렀다. 쓱싹쓱싹. 잘 벼려진 칼날에 양배추는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다 아무 느낌도 없었는데 나의 엄지손가락의 살점도 잘려나갔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쓰악싹. 악!! 피가 멈추질 않았고 나는 휴지를 뭉쳐 엄지손가락을 잡고 그대로 따봉의 자세로 멈춰 있었다. 버퍼링이 심해 재생이 멈춘 영상처럼 일시정지된 상태로.


예전에도 한 번 커터 칼에 손을 베인 적이 있었다. 응급실에 가서 일곱 바늘 꿰맸다. 피만 보면 헛구역질이 나오고 어지럽다. 집 앞에 있는 병원으로 갔다. 오래 기다려 의사를 만났다. 의사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살점이 잘려 나간 것일 뿐이니 일주일 뒤면 낫는다고 했다. 능숙하게 소독을 하고 거즈를 붙여 주었다. 약국에 가서 거즈와 빨간약, 반창고를 사고 진통제를 받아왔다. 집안일도 해야 하니 손가락에 끼는 골무를 꼭 사라고 의사가 말해서 그것도 샀다. 집에는 시켜 놓은 치킨이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식어도 치킨은 치킨이다. 따봉을 하면서 먹으니 더 맛있었다. 그리고 기다리던 전화가 왔다. 약국을 나서고 집으로 오는데 전화를 받았다. 일이 잘 해결되었다는 전화였다. 이상하게도 엄지손가락의 살점과 전화를 맞바꾼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살점을 내어 주고 전화를 받았다는 2018년의 마지막 하루의 이야기.


2019년 1월 1일이 되자마자 고른 책은 그런 의미에서 공선옥의 『나는 죽지 않겠다』로 정해서 읽었다. 살점이 뜯어져 나가도 자다가 가려워 얼굴을 긁어 붉은 인간이 되어도 나는 죽지 않겠다는 뜻으로. 청소년 소설이지만 『나는 죽지 않겠다』는 우리 사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반장이 학급비를 걷어 '나'에게 맡겨 놓았다. 그 돈의 일부를 요구르트 배달하는 엄마의 가방에 몰래 넣어 엄마를 웃게 하고 싶어 한 '나'의 이야기를 다룬 「나는 죽지 않겠다」를 시작으로 타인의 외로움에 기대어 울 때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이야기 「일가」로 넘어가는 동안 공선옥의 아이들은 어린 시절의 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구마 이천 원어치를 사서 돌아가 엄마와 오빠의 허기를 배를 채워 주려는 아이. 좋아하는 아이에게 고백하고 싶어 아버지의 말을 듣고 편지를 쓰는 아이.


헤어지고 싶지 않아 편의점 알바를 해서 여자친구의 생일날 코트를 사주고 싶어 하는 아이. 학생의 신분으로 사회에 나와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직접 체험해 보고서야 부모님을 이해하는 아이. 엄마 시러라고 엄마 화장대에 적어 놨지만 결국 사랑하는 이는 엄마였음을 깨닫는 아이. 다정한 가족의 품이 그립고 세상에는 아리송한 것들에게는 의문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을 이른 나이에 깨닫는 아이. 『나는 죽지 않겠다』의 뒤에 실린 작가의 말대로 우리는 어린 시절을 통과해 오는 동안 그때의 감성으로 세상을 살아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공부만 열심히 하지 않았다. 공부만 하기에는 나를 이루는 주변이 복잡했다. 공부도 하면서 책도 읽고 공상도 많이 했다. 내가 가진 외로움의 크기를 재어보는 시간을 거쳐 다른 사람의 슬픔의 무게까지도 생각하려는 어른으로 자랐다.


그때 학교 가기 싫어 계속 나가지 않았더라면 책을 읽는 재미를 알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되어 있었을까. 오랜만에 먹는 치킨 생각으로 오두방정을 떨며 양배추 칼에 손가락을 밀어 넣고 말았지만 허둥지둥 대고 엄살을 떨며 병원을 가고 우울한 심정이 되어 식은 치킨을 먹었지만 『나는 죽지 않겠다』를 읽으며 어린 시절의 나 같은 아이들을 만나며 짠해하는 나는 이제 어른이고 싶다. 공선옥은 가난을 그리는 작가다. 그는 과장하고 꾸미는 가난에 대해서는 쓰지 않는다. 직접 경험하고 느껴본 가난의 모습은 나를 유년의 물기 어린 시간으로 데리고 간다. 명색이 데이트인데 라면집에 가서 라면 먹고 공원에 가서 캔커피를 마시면서도 멋있다고 말해주는 공선옥의 아이들이 있어 나는 죽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 더. 이 세상의 만병통치약은 빨간약이다. 한 병에 천 원인 그 약은 상처에 바르면 너무 빨개서 피인지 약인지 분간이 안되어 피가 멎었구나 안심할 수 있게 한다. 피가 계속 흘러도 약이구나 생각하고 낫겠구나 위로가 된다. 죽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빨간약을 사 놓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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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룸
김의경 지음 / 민음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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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고 울고 싶은데 뺨 때리던 시기가 있었다. 아프다고 소리치는데 그게 다 젊어서 그래, 청춘인데 무슨 엄살이 심해라며. 아프다고 하는데 병원에 데리고 가고 약을 사다 주지는 못할망정. 아프면 청춘이 아닌 환자다. 보살피고 걱정해 주어야 한다. 김의경의 소설집 『쇼룸』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한다. 전작 『청춘 파산』에서 빚 갚느라 봉고차에 실려 전단지 돌리고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던 청춘을 담았던 김의경은 『쇼룸』에서 더 팍팍해진 청춘의 얼굴을 보여준다. 작가의 경험담을 살린 소설들은 현장감과 깊이가 더해져 읽을수록 짠하고 서글프다. 『쇼룸』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들은 우리가 가질 수 없어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화려한 '쇼룸'의 세계로 데려간다.


가구 공룡 이케아. 광명시에 생기고 고양시에도 생겼다는 이케아에 가본 적은 없다. 김의경은 소설을 쓰기 위해 여러 번 그곳에 다녀왔다. 화려하게 전시되어 있는 가구들을 보면서 소설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처음부터 비싼 가구를 살 수 있는 여력이 없는 이들이 2년에 한 번 꼴로 바꿀 생각으로 이케아에 간다. 조립도 해야 하고 물건도 직접 날라야 하는 불편을 돈으로 주고 사면서도 그들은 가구가 방안으로 들어올 생각을 하며 행복해한다. 이케아에 가는 이들은 적어도 방이 하나씩은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데 우리는 너무 작은 것들에게서 미세해서 현미경으로 들여다 봐야 할 정도로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낀다. 아니 느껴야만 한다. 그래서 슬프다. 『쇼룸』에 실린 첫 번째 소설 「물건들」에서 '나'는 없는 게 없는 가장 비싼 물건값이 5000원인 다이소에 가는 것을 즐긴다. 1층부터 5층까지 물건으로 빽빽한 그곳에서 필요한 걸 산다. 필요하지 않아도 천 원, 이천 원인 물건들을 가책 없이 고른다. 많이 사도 이만 원이 넘지 않는다. 머그컵과 식기, 청소 도구, 애완용품을 고르며 월급날에 탕진잼을 만끽한다. 그곳에서 '나'는 애인도 만든다. 작지만을 빼고 다시 쓴다. 확실한 행복. 확실한 행복 앞에 붙은 '작지만' 때문에 우리의 세계는 더 작아진다.


「물건들」의 '나'는 다이소에서 사온 물건을 들여놓을 집이라도 있다. 「2층 여자들」의 여자들은 집이 없어 고시원보다 조금 나은 곳에서 의심과 불만을 숨기고 살아간다. 가난은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기본적인 예의도 잊게 만든다. 공용 부엌에 놓인 냉장고에서 누군가는 우유를 몰래 먹고 익명으로 게시판에 불만을 늘어놓는 등 소통의 창구마저도 닫아 놓고 살게 한다. 『쇼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단편은 「쇼케이스」이다. 부부 작가인 그들은 생활에 치여 남편은 정육점에서 일하고 아내는 집에서 소설을 쓴다. 남편이 일하는 것을 모니터로 보면서 그가 가진 꿈의 크기가 오래되어 갈변한 고기의 빛깔처럼 변하지 않을까 아내는 걱정한다.


물론 이런 멋진 방에서 함께 글을 쓰는 것은 현실에선 요원한 일이었다. 설사 이런 방이 주어진다고 해도 집을 살 때까지 글을 쓰지 않겠다는 태환의 말이 사실이라면 희영의 상상 속 방은 희영의 소설에서나 등장할 법했다. 멋진 방에서 글을 쓴다고 멋진 글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화려한 신혼집에서 행복한 신혼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희영은 머릿속에 환상적인 장면을 그려 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개연성이 없는 결말이라고 합평 시간에 혹독히 까일 것을 각오하고서라도 원하는 대로 마지막 장면을 쓰곤 했던 습작 시절의 습관처럼.

(김의경, 「쇼케이스」中에서)


「쇼케이스」의 희영은 침대를 사러 이케아에 남편과 간다. 남편은 겨우 시간을 냈고 이케아는 너무 넓다. 너무 물건이 많다. 희영은 옷장에 숨어 있다가 하루만 지내 보자고 한다. 멋지고 근사한 '쇼룸'에서. 남편은 말린다. 희영이 침대 대신 사서 들고 온 건 조명이었다. 환해진 집을 좋아할 줄 알았는데 남편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자신이 일하는 정육점처럼 밝아서. 남편의 말을 듣고 보니 조명은 집 안의 때를 더 잘 보여줄 뿐이었다. 곰팡이와 거미줄, 잡동사니들을 환하게 비추었다. 다음날 희영은 조명을 중고 장터에 올린다.


내게는 가구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 책장이 있었는데 처리했다. 책상 하나와 서랍장 하나가 남았다. 가구를 사지 않고 짐을 늘리지 않은 이유는 이곳이 정류장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버스를 기다린다. 이곳은 잠시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곳. 그러니 더 이상의 짐은 안 된다는 생각. 『쇼룸』의 인물들은 집이 없거나 있거나 상관없이 이케아에 가서 쇼룸을 구경하고 예산에 맞춰 가구를 들여온다. 가구가 안되면 소품이라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도 그들에게는 필요하다. 천 원짜리 곰팡이 제거제를 사서 뿌리고 꽃과 잎사귀가 그려진 머그컵에 커피를 마신다. 쇼룸 전체를 사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며 조명을 사고 배송비를 아끼기 위해 헤어진 전남친에게 배송을 부탁한다.


작은 것에 만족하라며 무소유가 곧 소유라는 프레임으로 청춘들의 희망을 파산 시키는 사회에서 소설가 김의경은 말한다. 우리의 인생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반짝일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어야 하는 『쇼룸』이 아니라고. 알지 않는가. 『쇼룸』에는 가구들만 있을 뿐 사람은 살 수 없다는 것을. 최종 목표는 서랍장 하나를 없애는 것이다. 책상은. 책상은 필요하다. 허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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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 욥기 43장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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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면은 목양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백승호의 말대로 주변에는 노래방, PC방도 없고 목양교회 담임목사 사모 권미정의 하소연대로 아이스 카페라테 한 잔 사 마실 곳도 없는 적막한 곳이다. 주변에는 딸기 비닐하우스에 포도 농장이 있고 하루 종일 사람 보다 닭을 더 많이 만나는 곳이다. 유흥을 즐기려면 시간도 제대로 맞춰서 오지 않는 버스를 타기 위해 20분이고 30분이고 목양 슈퍼 앞에서 기다려야 한다. 농공단지가 세워지긴 했지만 산이나 깎고 공기나 더 나빠졌다. 폐비닐 재활용 공장에 다니는 백승호의 아버지는 아들이 고등학교 졸업하면 자기의 후임으로 쓸 작정이다.


그런 곳이다. 목양면은. 이름대로 양을 치거나 해야 할 것 같은 곳. 하지만 양보다 닭이 더 많은 곳. 그런 농사짓기를 물려 주기 보다 일찍이 공장에 취업해서 돈을 벌라고 부모가 아들에게 말하는 곳. 그곳에도 그곳은 있다. 교회. 중학교 영어 선생을 하던 최근직은 한 날 한 시에 아내와 사랑하는 자식을 잃었다. 유조차가 그들이 탄 열차를 들이 받아 그만 겨우 살아남았다. 죽을 작정으로 산에 올랐다가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계시를 받고 그는 신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으로 살았다. 그가 지은 목양교회는 목양면의 중심이 되었다. 재혼해서 낳은 아들 최요한이 담임 목사가 되었다. 최요한이 있던 교회 지하에서 불이 났다. 이기호의 소설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욥기 43장』의 간략한 내용이다.


소설을 설명하자면 목양면이 어떤 곳인지부터 밝혀야 할 것 같아서 길게 소개했다. 목양면은 좁고 커피 한 잔 사 마실 데 없는 아이들은 광역시에 나가 놀아야 하는 시골인 것이다. 이기호는 목양 교회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을 밝히기 위해 사건 관련자들을 한자리에 모은다. 소설의 형식은 신앙의 간증처럼 증언의 형태를 띠고 있다. 증언이라는 게 듣는 사람만 앞에 있으면 못 할 이야기가 없다. 소설에서 증언하는 사람들도 사건 관련 이야기를 하다가도 엉뚱한 곳으로 빠진다. 담임 목사 최요한이 죽고 건물에 살고 있던 몇 사람이 병원 신세를 진, 목양면이 생긴 이래 최대의 사건을 파헤쳐 가는 소설은 건조하고 이상하게 웃기고 서글프다.


사건을 파헤쳐 갈 의지가 있나 싶은 청자를 앞에 두고 떠들어 대는 증언자들의 이야기 한마당에는 그들이 숨겨 놓고도 말하지 않는 비밀이 있다. 목양 교회에서 일어난 사건은 화재 사건이 아닌 제목대로 방화 사건이다. 누군가 불을 놓았다. 도대체 왜? 교회와 교회를 둘러싼 주변 권력관계가 있었나. 아니면 교회를 증오하는 원한 범죄 때문이었나. 사건의 전말을 밝히기 위해 만 45세 소설가 이기호는 나이 모름에 직업은 무직인 하나님까지도 증언자로 불러온다. 영화 <밀양>에서 아이를 납치해 죽인 범인이 교도소 안에서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는 말에 신애는 가슴을 치고 울부짖는다. 하늘을 향해 여기를 보고 있냐고 소리친다. 신이 있다고 믿던 그들에게 신은 어디에도 없으며 너희들이 간절히 불러도 나는 너무 바쁘다는 사실만 알게 된다. <밀양>에서나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욥기 43장』에서나.


죄가 있고 벌이 있다. 용서는 어디에 있나.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욥기 43장』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세속적인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최근직의 진실은 무엇인가. 차분하고 맑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목양교회 담임 목사 최요한의 이면에 감춰진 비밀은 무엇인가.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행동에서 우리는 누구에게 용서를 구하고 벌을 받아야 하는가. 이기호는 그 답을 모욕으로 들려준다. 신도 신의 대리자도 아닌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최대치의 형벌은 모욕이라는 말을 소설로 말해준다.


영화 <밀양>은 이청준 소설의 「벌레 이야기가」가 원작이다. 소설의 결말이 더 참혹하다.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욥기 43장』은 인간이 처할 수 있는 불행의 서사를 껄렁한 웃음을 흘리며 말하는 소설이다. 만 45세 소설가 이기호는 모욕의 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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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매기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8
김금희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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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큰 결정을 내렸다. 결정하기까지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결정을 하고 나서는 긴 시간 동안 후회와 불안, 두려움을 안고 지내야 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그때보다 마음이 많이 안정되었다. 그러니까 김금희의 소설 『나의 사랑, 매기』를 읽고 나서는 만성적인 불안과 걱정을 조금은 떨쳐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유방암을 앓는 엄마를 돌보는 매기가 재훈에게 하는 이런 말 때문에.


"어머니 병세는 좀 어떠셔?"

내가 매기의 말을 기다리다가 안 되겠어서 먼저 물었다. 매기는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냥 재훈아, 먹고 싶은 것 먹고, 보고 싶은 사람 보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라고만 했다. 들어보면 환자를 돌보는 사람의 특별할 것 없는 대답이었는데 나는 아주 확실히 절망했다. 매기의 대답에는 말의 진기랄까, 온도랄까, 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금희, 『나의 사랑, 매기』中에서)


결혼한 매기와 어쩌다가 인연이 다시 닿아 만나는 재훈은 매기의 힘과 온도가 없는 말 때문에 절망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매기의 열기라고는 1도 느껴지지 않는 저 말에서 나는 하루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네 자리의 숫자 중 끝자리가 바뀌는 것으로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내년이라는 시간 앞에서 조금은 당당해져도 될 것 같은 기분이 순식간에 든 것이다. 1월 1일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묻는 자리에서 나는 염세적인 성격을 숨기지도 않고 그 해가 그 해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라고 했다가 새해 일출을 보러 갈 것이라는 야심찬 계획을 하는 사람의 기를 죽이고 말았다. 그런 말을 잘도 내뱉고서 나는 다가오는 새해에는 희망이 가득 들어차고 소원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질 것이라는 낙관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금희의 소설 『나의 사랑, 매기』를 읽고서 말이다. 대학 때 어떤 신념에 휩싸여 플라토닉한 러브로만 일관한 재훈의 연애는 그가 입대하고 나서야 끝이 나고 말았다. 매기의 백 한번 째 편지의 이런 구절로 말이다. "잘 지내, 미래는 현재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단지 긴 현재일 뿐이야." 재훈은 이게 이별의 말인지 미래를 함께 계획하자는 말인지 헛갈린다. 결국 전서구를 자청한 윤 병장이 가져다준 포스터에 매기가 쓴 문장으로 그 말은 단호한 이별의 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재훈은 오랜 밤을 의문과 불안으로 뒤척였다.



매기는 재연 드라마의 배우로 제주도에서 남편과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부주의한 성격의 친구를 둔 탓에 매기와 재회한 후 이상한 연애를 재훈은 하고 있다. 얼굴이 알려진 특성상 그리고 매기가 유부녀라는 사회적 제도의 특성상 그들은 레이디 치킨을 1층에 둔 집에서 만나거나 멀찌감치 떨어진 채 걷는 것이 데이트의 전부인 연애를 하고 있다. 과거로부터 온 현재든 현재로 이어진 미래든 그들에게는 현재라는 실감이 없는 상태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밤을 함께 보내고 맞이한 이른 아침의 끼니를 위해 찾아든 순대국밥집에서 유일하게 그들을 예쁘게 보아준 아줌마가 부르는 노래에서 그녀의 애칭을 따 매기라고 지은 시점에서 연애는 애초에도 그랬지만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잘못된 길로 가는데도 그저 그렇게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다.


김금희가 그리는 연애는 인물들의 대화나 행동에서 느껴지듯 열정이나 열기, 온기, 따뜻함 같은 발화점 이상의 온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낯설고 이상한 세계다. 그럼에도 그들의 아슬아슬한 과거와 현재 혹은 미래는 없는 현재를 들여다보고 있는 나는 기이한 길의 삶의 방향을 지시받고 있다. 걱정은 단단히 붙들어 메고 파이팅 하자는 명랑만화의 주인공도 안 할 것 같은 대사를 나 스스로에게 하고 있다. 먹고 싶은 것 먹고 하고 싶은 것 있으면 하고 보고 싶은 사람 있으면 보라는 『좋은 생각』의 글 속 마지막 문장의 말 같은 말에도 힘이 불끈 나는 괴이한 경험.


재훈의 목적 없고 미래는 전혀 보이지 않는 연애의 결말에서 삶의 무게란 야채를 고르고 그걸 들고 갈 수 있냐 없냐의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선택한 야채니까 들고 가서 먹으면 된다. 누가 골라서 가방에 넣어준 것이 아니다. 무거워서 애초에 들고 가지 못할 것 같았으면 고르지 않아야 한다. 선택해서 넣었으니 들고 가야 한다. 재훈도 그렇고 매기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누가 선택해 준 것이 아닌 스스로 결정한 일이다. 불안도 걱정도 두려움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고른 것이다.


나에게든 타인에게든 거절의 의사를 보이고 싶어 손목에 X자 문신을 하는 사람이 있다. 세상은 그렇게 거부의 의사를 명확히 밝혀야 진정되는 일이 있는 것이다. 새해라고 별거 있겠냐라고 무신경하게 말해서 미안하다. 떠오르는 새해를 보고 이제는 달라지자 하는 마음의 정리 의식이 필요해서 그 일을 하겠다고 한 것일 텐데. 뻔뻔하게도 『나의 사랑, 매기』를 읽고 나는 내년에는 좀 더 좋은 사람이 되어 걱정도 불안도 불만도 덜 한 사람으로 살 것이라고 다짐했다. 나는 책을 읽는 사람이니 책에서 배우고 느끼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결국에는. '그의 사랑, 매기'는 잘 지낼 것이다. 마찬가지로 재훈도. 피해망상 쩌는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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