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 오랜만에 여행을 가다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균 연령 60세 가족 사와무라 씨 댁의 딸 히토미는 슈퍼에 가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문득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음을 느낍니다. 좁은 세계에 살고 있다는 허무함이 듭니다. 늘 보던 거리 풍경, 변하지 않는 나의 현재에서 느닷없이 찾아오는 불안감과 마주합니다. 그러다 다시 생각합니다. 세상의 넓이를 느끼는 것은 '이동'이 아닌 자신이 가진 '내 안의 힘'이라고 말이지요. 히토미 씨는 올해 40세입니다. 마스다 미리의 사와무라 씨 댁 연작 세 번째 이야기 『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 오랜만에 여행을 가다』를 펼치면 그들 가족의 나이와 좋아하는 것들이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아버지 사와무라 시로 씨는 70세로 정년퇴직 이후 취미와 체력 만들기에 힘쓰고 있습니다. 어머니 노리에 씨는 밝고 사교적이며 친구들이 많습니다. 딸 히토미는 직장 생활 18년 차 베테랑 회사원입니다. 마음에 맞는 다른 두 명의 친구와 어울리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풉니다. 평범해 보이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가족의 모습입니다. 히토미 씨는 40세가 되었지만 결혼은 하지 않고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삽니다. 결혼이라. 결혼을 하지 않았어도 부모님은 그녀를 애틋하게 보거나 빨리 시집가라고 닦달하지 않습니다. 히토미와 함께 하는 일상을 고마워하고 행복해합니다. 


  연애를 꿈꾸는 히토미 씨는 자신에게도 격정적인 사랑이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친구들과 수다 자리에서도 상상 연애의 꿈을 마음껏 펼칩니다. 우리는 무겁고 답답한 고정관념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지요. 남녀가 일정한 나이가 되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돈을 모아 집을 얻어 가기를 바라지요. 나도 그랬으니 남들도 그래야 한다는 틀로 재단을 하지요. 그래야 나의 삶이 보통하고 평범한 것으로 보일 것이라 생각하면서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세계에서 살아가면 됩니다. 시로 씨는 정년퇴직을 했지만 우울해하지 않습니다. 도서관에 앉아 자서전을 쓰기도 하고 아내 노리에 씨의 기분을 맞춰 주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합니다. 노리에 씨는 동네에서 이웃을 만나면 먼저 인사를 하지요. 이웃은 귀여운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데 항상 보면 그 강아지는 노리에 씨를 반가워합니다. 무릎을 타고 올라와 안아달라고 하지요. 이런 사소한 디테일을 그릴 줄 아는 마스다 미리의 만화를 사랑합니다. 


  히토미 씨는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납니다. 그곳에서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좁은 세계에서 살아가지만 자신의 마음만은 한없이 넓다는 것을요. 넓은 곳에 살면서 좁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만나왔는지요. 하나의 공간이 있습니다. 이 안에서 나는 먹고 자고 읽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문을 열고 나가 세상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나는 성장하고 넓은 세계로의 나아감을 원합니다. 사와무라 씨의 가족은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애정의 눈으로 보아줍니다. 셋이었던 그들이 언젠가는 이별을 맞을 날도 있겠지요. 두렵지 않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건 내일을 버틸 힘이 남아있다는 것이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금희 지음, 곽명주 그림 / 마음산책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야기로 바로 시작하는 소설을 좋아한다. 그런 점에서 김금희의 소설은 나의 취향과 부합한다. 짧은 소설 열아홉 편을 모아 놓은 소설집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의 첫 시작은 대부분 이렇다. '윤경은 눈을 뜨자마자 산술이라는 단어를 생각했다.'(「원피스를 돌려줘」) '희영과 소영 그리고 한영은 대학 동아리에서부터 '영 자매'라고 불렸다.'(「규카쓰를 먹을래」) '신촌의 회사에 들어간 뒤 선미는 1000번 광역버스를 타고 다니며 주로 차 안에서 아침을 해결했다.' (그의 에그머핀 2분의 1) '미란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건 마지막 전철을 막 탔을 때였다.'(「야간행」)


  생활이 그래서 그런지 글도 구질구질한 걸 싫어한다. 성격이 그래서 그런지 글도 단도직입적인 걸 좋아한다. 문장을 끝내지도 못하고 뭐, 저, 그게, 그러니까라는 말을 하는 순간을 참을 수 없어 하는데 글은 그렇지 않으니까, 나 대신 마침표까지 찍어서 할 말 안 할 말 다 해주는 인물이 나오니까 이야기가 있는 소설을 좋아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산술'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는 김금희의 소설 「원피스를 돌려줘」의 윤경처럼 헤어진 연인에게 문자 해 원피스를 돌려달라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작가가 부러 만들어 놓은 그 상황 자체를 즐기는 건 좋아한다. 


  두 명만 모여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버벅대는데 이름의 끝자리가 같다고 세 명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건 상상도 못하는 일이라 「규카쓰를 먹을래」의 '영자매'의 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괜찮다고 여긴다. 그것은 소설이고 소설은 이야기가 있고 김금희는 내가 느껴본 상황을 소설 안에서 길고 길어서 대체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 모를 문체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으니까 나는 아까운 마음이 들어 천천히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를 읽는다. 읽다가 소설이 몇 편 남지 않은 것을 알게 되어 중간에 딴짓을 하기도 했다. 다 읽어버렸다는 실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의 소설 속 인물은 어디에나 있어서 내가 아는 사람 같기도 해서 혹시 내 이야기 아니야라는 착각을 줄 정도이다. 광역버스 안에서 아침을 먹는 선미. 오랜만에 만난 연인과 근사한 저녁을 먹고 싶어 일부러 '파리 살롱'에 앉아 있는 윤. 타이밍을 제대로 못 맞춰 주변 사람에게서 그림자로 오해받는 윤석 선배. 사실 동생이 먹을 줄 알고 일부러 라면을 남겨 왔던 누나 영란. 공장에서 일하다가 사고로 손가락 하나와 한쪽 눈을 잃은 동생의 인생을 슬퍼하는 아버지. 


  김금희가 그려내는 소설의 인물들의 삶에서 나는 추억과 그리움, 짠한 격려를 받는다. 어디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지 몰라 탁탁 끊어내는 단호함을 부리지 못하는 듯한 긴 문장을 읽으며 삼 주째 앓고 있는 감기는 왜 낫지를 않을까, 얼마 전에 큰 결정을 했는데 그게 거짓이고 사기는 아니었을까, 그 일은 정말 일어날 것인가 온갖 의심을 하면서도 김금희가 펼쳐 놓은 사랑스러운 인물들의 하루를 애틋하게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는 마트에서 로봇을 사와 혼자 있는 할아버지에게 대화용으로 선물을 하기도 할 것이며(「춤을 추며 말없이」) 유년 시절의 기억을 지우고 싶은 사람들은 리셋이라는 방법으로 다시 시작하기도 할 것이다(「오직 그 소년과 소녀만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지하철에 서서 기침을 하며 전화를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하루(「야간행」)를 가진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나와 같은 사람을 지구별에서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현실의 만남은 소모적이고 때론 지쳐서 내일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며 소설을 넘기는 여유를 아직 나는 가지고 있다. 이야기가 끝이 날까 딴짓을 하기도 하지만 모든 이야기는 결말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다. 사랑하고 기대한다. 김금희의 소설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웃어라, 내 얼굴 슬로북 Slow Book 4
김종광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교 다닐 때 김종광의 단편 소설을 읽고 합평하는 시간이 있었다. 시간이 많이 남아돌았기에 그동안 나온 김종광의 소설들을(다행히 그때는 신인 작가라 몇 권 없었다) 전부 읽었다. 수업 시간이 되어 다들 한 마디씩 할 시간이 주어졌을 때 눈치도 없이 오랜 시간 동안 주절거렸다. 최근에 나온 소설가 중 이야기를 신나게 잘 쓴다, 이문구 선생의 재림이다, 능청스럽고 뻔뻔하고 그러면서도 슬프다, 기대가 된다는 등의 이야기를 신나게 떠들었다. 선생은 오랜 나의 주절거림을 들어주었다. 다른 학생들이 지루해하거나 말거나 수업 시간이 끝나거나 말거나 선생과 나는 김종광의 소설의 현재, 미래라는 거창한 주제로 주거니 받거니 했다.


  김종광은 충청도식 특유의 아 몰랑 화법, 속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핵심을 찌르는 어법, 다들 쓰지 않는 농촌 서사를 끌고 들어오는 새로운 소설 방식을 선보였다. 90년 대 한국 문학은 정적이고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성향의 인물을 전면에 내세워 답답한 면이 있었다. 불륜과 자의식 과잉의 인물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세기말로 치달으면서 벌이는 난해한 행동이 한국 문학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때 짜잔 하고 나타난 김종광은 새롭고 후졌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새로우면서도 후졌다니. 그의 초기 작품을 읽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난데없이(난데없지는 않겠지. 소설가가 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을 테니) 등장한 이 신예 소설가는 사라져가는 농촌, 그러니까 '전원 일기'에서나 보던 소 끌고 모내기하고 풀 뽑는 그런 현장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 것이다. 


  산문도 그의 소설과 비슷할 줄 알았다. 뻔뻔하고 의뭉스럽고 웃기고 짠하고. 땡. 전부 틀렸다. 전부라고는 할 순 없지만 그의 산문집 『웃어라, 내 얼굴』은 지극히 정상적인 생계형 소설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뻔뻔하고 의뭉스럽고 웃기지 않다. 다만 짠할 뿐이다. 전업 소설가로서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고 무슨 날이 붙은 기념일 챙기는 걸 싫어한다. 아들의 일 년 유치원 학비를 계산하고 그에 반해 대학의 등록금은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생각을 한다. 대출이라는 말에 그와 아내는 각기 다른 생각을 한다. 소설가는 도서관 대출 반납 기한을 아내는 집을 사기 위한 은행 대출을 떠올리는 것이다. 


  주공 임대 아파트에서 집을 빼던 시절을 회상하는 부분에서는 짠해서 잠시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어야 했다. 수첩만 한 크기의 벽지 훼손이 있었다. 관리 사무소 사람들은 벽지를 야멸차게 찢었다. 그리고 보증금에서 100만 원을 제하고 주었다. 집 없는 세입자의 서러운 이사 날의 풍경이었다.  『웃어라, 내 얼굴』은 네 개의 주제로 되어 있다. 가족에게 배우다, 괴력난신과 더불어, 무슨 날, 읽고 쓰고 생각하고.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은 '1박 2일'에 푹 빠져 있다. 그 아이가 자라 중학생이 되어 미래의 직업란에 공무원이라고 쓴다. 소설가인 아버지는 아이의 현실적인 희망 앞에 서글퍼진다. 아이의 꿈은 어른이 강요하는 것이라 그렇고 아들이 꿈이 소박해서 슬프다.


  소설에서 보여주는 뻔뻔하고 웃기고 능청스러운 장면은 없다. 산문은 삶이라는 서글픔과 막막함을 담아내는 최적의 도구이다. 그 앞에서 눙치고 숨기면서까지 속을 드러내지 않을 수는 없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한국에서 소설만을 쓰며 살아가는 '20년 차 소설가' 김종광의 현실은 녹록하지 않음을 그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는 이제야 알게 되는 것이다. 내가 뭐라고 한 신인 작가의 현재와 미래를 논했단 말인가. 책날개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본다. 김종광은 부지런히 썼다. 소설가가 아닌 생활인 김종광 일상의 얼굴은 다행히 웃는 얼굴이었다. 스스로에게 웃어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미래의 얼굴 역시 다정한 얼굴로서 살고 있을 것이다. 『웃어라, 내 얼굴』을 읽는 것으로 다정하고 걱정 많은 소설가의 오늘에 응원을 보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민은 채식주의자 짧아도 괜찮아 4
구병모 외 지음 / 걷는사람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교에 가면 쥐덫에 잡힌 쥐를 보곤 했다. 짓궂은 남자애들이 죽은 쥐를 가지고 장난을 쳤다. 나를 비롯한 애들은 무서워서 구석에 숨었다. 쥐를 내 쪽으로 던졌다. 소리를 지르다 못해 울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도 쥐는 무섭다. 세 들어 살던 집에는 고양이들이 자주 출몰했다. 밤에 화장실에 갈 때 녀석들과 마주치곤 했는데 푸르게 빛나던 눈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여전히 고양이의 눈을 바로 보지 못한다. 동네에 사나운 개 한 마리가 있었다. 어쩌다 그 개 앞을 뛰어갔는데 묶여 있는 줄로만 알았던 개가 뛰어와 내 엉덩이를 물었다. 산책 중인 강아지를 만나면 못 본 척 돌아가는 이유다. 


  그리하여 쥐과인 햄스터를 키운다거나 고양이 발을 만져본다거나 개를 품에 안는다는 일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쫓기고 물리는 일이 없었더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털이 있든 없든 동물은 내게 무섭고 두려운 존재로 다가온다. 중요하다, 유년의 기억들은. 가까이 가지는 못하지만 멀리서라면 가능하다. 뚱뚱한 엉덩이를 실룩이며 걷는 강아지를 보기도 하고 개와 비슷한 성질을 가진 개양이를 귀여워한다. 그것은 거리가 주는 안도감 때문이다. 무언갈 키운다는 것은 책임감이 필요한 일이다. 시간 되면 밥 주고 산책을 하고 아프면 돌봐주는 일들을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 물론 반려동물이 주는 위안과 다정함이 따라오지만 살아 있는 것을 돌봐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이길 수 없다. 


  걷는사람에서 나오는 '짧아도 괜찮아' 시리즈 네 번째 주제는 '동물권'이다. 인간에게 부여되는 인권이 있듯이 동물에게도 고통을 피하고 학대받지 않을 권리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 동물권이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를 읽고 한동안 닭을 먹지 않았다. 모든 고기를 끊을 수 없으니 좁은 닭장 안에서 학대받으며 도축되는 닭만은 먹지 말자고 결심한 것이었다. 닭과 소, 돼지 등 사람들이 먹는 육류의 공정 과정은 공정하지 않고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다. 포어는 미국의 최대 닭 소비량을 자랑하는 KFC의 닭 도축장을 가려 했지만 실패했다. 본사가 포어의 방문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민은 채식주의자』에서 소설가들은 개, 고양이, 햄스터, 소, 고릴라의 이야기를 그린다. 전쟁에 쓰이는 개의 이야기를 다룬 구병모의 「날아라, 오딘」을 시작으로 키우던 주인이 아프자 맡겨지는 고양이의 미래를 그린 「미래의 일생」,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햄스터를 덜컥 사서 키우게 되는 「살아 있는 건 다 신기해」로 우리를 동물과 함께 하는 삶으로 데려간다. 떠난 연인이 채식주의자여서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되어 이별 후에 고기에 기갈이 들려 무지막지하게 먹게 되는 이야기 「무민은 채식주의자」. 산란계가 아닌 육계의 운명으로 태어난 자신의 인생을 담담하게 말하는 닭의 목소리가 담긴 「오늘의 기원」. 동물권을 주제로 한 짧은 소설들을 읽다 보면 우리는 오래 다정한 것에 굶주려 있구나 하고 생각한다. 


  하명희의 소설 「손을 흔들다」에서 장님 소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외로운 건 다른 걸로 채울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리운 건 다른 걸로 채워도, 아무리 채우려고 해도 절대로 채울 수 없는 거예요."


  외로운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하고 그립지 않기 위해 온기를 나눌 수 있는 동물과 함께 하는 삶을 선택한다. 어느 저녁, 지친 나의 뒤를 따르는 누군가에게 바쳐지는 소설 『무민은 채식주의자』를 통해 무섭고 두려웠던 유년의 기억의 색채가 옅어지기를 희망한다. 소설은 그러라고 있는 것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라진 소방차 마르틴 베크 시리즈 5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 다섯 번째 이야기 『사라진 소방차』의 처음은 죽은 남자가 쓴 메모에 '마르틴 베크'라는 이름이 나오면서 시작한다. 남자는 권총으로 자살을 했다. 경찰은 현장을 둘러 보고 메모장에 적힌 그 이름을 발견했다. 경찰이 아는 이름이었다. 이야기는 한 남자의 자살에서 마르틴 베크가 양로원에 계신 어머니를 만나는 장면을 무리 없이 연결한다. 죽음과 삶이라는 양면성을 보여주면서 사건의 시작을 알린다.  왜 죽은 남자는 일면식도 없는 마르틴 베크의 이름을 적어 두었던 것일까.


  『사라진 소방차』에는 마르틴 베크 이외에도 다양한 인물의 경찰이 등장한다. 마이 셰발, 페르 발뢰의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경찰들은 지극히 평범하다. (단 멜란데르는 다르다. 그는 기억력이 비상하다. 사진 기억력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사건의 연도와 발생 시기, 특징들을 외운다.) 사건을 수사하고 휴일을 맞이하면 가족과 함께 보내거나 사소한 이유를 들어 혼자 보내기도 한다. 휴가 기간에는 휴가를 떠나고 다시 복귀해 사건을 파헤친다. 스웨덴은 지구 최고의 복지 국가라는 수식어를 가졌지만 각종 강력 범죄율이 높다는 이면을 가지고 있다. 잔인하게 여성이 살해당하고 수시로 권총 자살을 하며 마약 거래에 실패하면 죽임을 당한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경찰들, 그러니까 마르틴 베크와 동료 경찰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사건 하나를 맡으면 머리를 맞대고 국장이 비웃는 가설을 세운다. 그러다 자신들이 놓친 단서를 찾아간다. 군라드 라르손은 자동차 절도범인 말름의 집 주변을 신입과 함께 잠복 수사하고 있었다. 얼어붙은 추위 때문에 투덜거리는 신입을 잠깐 보내 놓고 집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작은 불꽃이 일어나더니 건물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건물에는 모두 열한 명이 있었다. 군라드는 사람들을 뛰어내리게 하고 아이는 손으로 받았다. 


  화재의 원인을 찾아가는 마르틴 베크와 동료들. 이 과정에서 마르틴 베크의 활약보다는 멜란데르, 군라드 라르손, 꿈이 경찰 총장인 벤뉘 스카케, 콜베리, 몬손, 뢴이 사건의 핵심에 접근하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화재 시 부른 소방차는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거리에 소방차가 있었고 군라드의 지시에 따라 한 번 더 신입이 신고를 해 소방차가 출동했다. 그들은 최초의 신고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놓쳤다. 사건은 말름이 자살을 하려고 가스 밸브를 열어 놓은 탓에 화재가 난 것으로 처리되었다. 


  현장을 둘러본 멜란데르는 사건이 단순한 자살이 아님을 알아내고 군라드 역시 방화에 의해 화재가 벌어졌음을 추측한다. 마르틴 베크는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주변을 살피며 사건의 원인을 찾는 경찰들에게 영감을 주는 역할을 맡는다, 『사라진 소방차』에서는. 가족을 사랑하지만 혼자 휴가를 즐기기를 좋아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비상한 머리를 가진 마르틴 베크. 


  소설은 인과 관계를 따진다. 추리 소설은 앞뒤가 정확히 맞아야 하고 독자는 자신이 맞춘 퍼즐이 완벽하길 바란다. 『사라진 소방차』는 완벽한 추리를 기대한 독자의 허를 찌른다. 첫 장면에서 시작한 남자의 자살, 그가 쓴 메모 속 이름 마르틴 베크, 화재 현장에 남겨진 작은 폭발 장치, 범인이라고 단정했지만 시체로 떠오른 남자. 사건 현장은 완벽한 우연으로 맞물려 수사에 혼돈을 준다. 우연에서 실마리를 찾아가는 살인수사과의 경찰들. 『사라진 소방차』는 앞의 네 권의 마르틴 베크 시리즈 보다 더 기발하다. 춥고 어두운 배경으로 펼쳐지는 경찰들의 좌충우돌 범인 찾기에 유머가 더해지면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