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라이트 마일 ㅣ 밀리언셀러 클럽 85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2월
평점 :
『문라이트 마일』에서 우리의 주인공 켄지와 제나로는 많은 변화를 보여준다. 그동안 사립탐정으로서 거친 현장에 투입돼 총에 맞고 얼굴을 다치고 손의 신경이 손상되었다. 그들이 맡은 사건의 특성상 경찰 보다 험한 일을 당하기 부지기수였다. 연쇄 살인마를 잡고 폭력배들 소굴로 들어가 협상을 하는 등 켄지와 제나로는 힘들게 살아왔다. 『문라이트 마일』은 켄지가 정규직을 따 내기 위해 부잣집 도련님을 감시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제나로를 이용해 미끼를 던지고 도련님이 물기를 기다린다. 작전은 성공. 정규직으로 채용되려나 싶었는데 그만 도련님에게 모욕을 주었다는 의뢰인의 항의에 정규직 보류.
현실의 시간과 더불어 소설 속의 시간도 충실히 흘러갔다. 그동안 그들은 결혼을 했고 네 살 된 딸 가브리엘라를 두었다. 자식이 생겼으니 더 이상 위험한 일을 하기 힘들다. 제나로는 학교에 들어갔고 켄지는 각종 보험료와 학비, 생활비를 벌기 위해 회사에서 시키는 일을 충실히 하고 있다. 거칠게 없고 아무 말이나 툭툭 내 뱉고 언어유희를 일삼는 켄지는 이제 입조심까지 해야 한다. 뻔뻔하게 사람을 치고도 돈을 써서 형량을 줄이고 재산을 빼돌리는 의뢰인들을 정규직 채용이라는 이유로 굽어살펴야 한다. 까짓것 뭐, 켄지는 행복한 가정을 위해 하려고 한다. 어떻게든 두하멜 스탠드포드 정규직 자리로 들어가야 한다.
세상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면 이야기 진행이 안된다. 능글맞은 사장이 이번 건만 잘하면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켄지 앞에 베아트리체 맥크레디가 나온다. 이 사람이 누군가 하면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조카 아만다를 잃어버렸다고 켄지와 제나로를 찾아온 여인이다. 그렇다. 『문라이트 마일』은 『가라, 아이야, 가라』의 이후를 다룬다. 켄지는 아만다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네 살의 아만다는 우여곡절을 겪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야기는 12년 후인 아만다가 열여설 살이 된 현재를 다룬다. 이번에도 아만다가 실종되었다. 베아트리체는 다시 한 번 실종된 조카딸을 찾아달라고 켄지 앞에 나타난다.
약쟁이, 알코올 중독자 엄마 곁에서 아만다는 잘 자랐다. 객관적으로 보기엔 그랬다. 아만다의 행방을 쫓기 위해 그녀가 다니는 학교에 가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약과 술에 전 엄마 대신에 자신에 관한 일은 스스로 결정했다. 각종 장학금 신청을 해서 받았고 성적도 좋았다. 이대로만 간다면 하버드나, 예일은 문제없었다. 그런 그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켄지는 정규직 채용 보다 지금의 안락한 가정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깨닫는다. 자신이 한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한다.
그들은 위험한 일에서는 손을 털기로 했다. 학교에 다니고 매일 회사에 출근해 던킨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고 싶었다. 늙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서른 초반에 총알이 날아다니고 덩치들의 위협에도 기가 죽지 않았던 탐정들은 나이가 먹었다. 마흔이 넘었고 그들에게는 지켜야 할 딸이 있다. 파산 지경에 가지 않으려면 안정된 직장이 필요하다. 정의, 용서, 정직, 관용, 포용에 걸맞은 일보다 현실, 보험료, 차량 유지비, 베이비시터 구하기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나이에 들어선 것이다.
『문라이트 마일』의 결말을 읽다 보면 이제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는 안 나올 것 같은 불길함에 휩싸인다. 그들은 안정과 평화 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그걸 보는 독자는 박수와 응원을 보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소설 속에서 그들이 펼치는 활약을 계속 보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쑤시고 덩치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겁부터 나는 탐정이 되었지만 껄렁껄렁한 말로 상대를 약 올리는 기술만은 변하지 않았다. 탐정도 나도 늙는다. 그래도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것이 나이듦의 반격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