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전 한 잔 밀리언셀러 클럽 4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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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이런 이야기를 봤나.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 『전쟁 전 한 잔』을 읽으며 든 생각이다. 시작은 평범했다. 소방관 영웅 아버지를 두었던 탐정 패트릭에게 사람을 한 명 찾아 달라는 의뢰가 들어온다. 탐정답게 그는 그 일을 수락한다. 성당 종루에 마련한 허름한 사무소에 가 일의 내용을 동료에게 들려준다. 패트릭은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신문을 읽고 있는 동료가 자신을 한 번이라도 쳐다봐 주었으면 한다. 그때부터 소설의 공기는 달라진다. 사립 탐정을 주인공으로 벌어지는 추리 소설에서 사랑하는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애정의 이야기로. 작가가 의도했든 그러지 않았든 어차피 출간된 이야기는 독자들의 것이므로. 나는 마음대로 『전쟁 전 한 잔』의 장르를 바꾸기로 한다. 


"패트릭, 저 밖은 광기 어린 전쟁터야, 인마. 네놈은 해 저물 때까지도 살아남지 못해. 그리고 앤지, 이놈과 함께 다니면 너도 죽는다."

정말로 옛날 어머니 같은 목소리였다.

그녀는 의자 뒤로 기대고는, 지쳤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운 두 눈을 내게로 향했다. 

"'내 총을 돌려주고 달아나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아무도.'"

딱 「새벽의 7인」에 나오는 제임스 코번 목소리였다. 그 환한 얼굴로 만들어낸 미소는 정말로 가슴을 에고도 남았다. 그 순간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데니스 루헤인, 『전쟁 전 한 잔』中에서)


  상원 의원의 방에서 서류를 훔쳐 달아난 청소부 제나 안젤린을 찾아야 한다. 패트릭은 그의 동료와 함께 비밀로 가득한 임무를 수행한다. 패트릭의 동료로 말할 것 같으면 앤지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로 패트릭과 어린 시절부터 친구로 자랐다. 패트릭은 그녀와 좋은 친구였지만 그녀는 필이라는 다른 좋은 친구를 남편으로 맞았다. 그 후부터 그녀는 좋은 친구이자 남편에게 맞았다. (이런 말장난 안 좋아하시나요. 저는 좋아합니다.) 사업에 실패한 필은 앤지를 죽도록 팼고 이유는 항상 의처증 때문이었다. 패트릭은 생각한다. 왜 그녀 같은 아름답고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심지 굳은 판단을 내릴 줄 아는 여자가 필에게 얻어맞으며 산단 말인가. 


  제나를 찾아내고 그녀가 감춘 서류의 실체에 다가가는 두 사립 탐정은 추잡하고 거대한 비밀의 세계에 발을 담근다. 『전쟁 전 한 잔』은 데니스 루헤인의 대표 시리즈 '사립탐정 켄지&제나로'의 첫 번째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는 순서대로 번역이 되지 않았지만 나는 데니스 루헤인을 늦게 안 행운의 대가로 차분히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부터 읽게 되었다. 탐정은 많다. 많은데 대개 이야기 안에서 그들은 혼자 독자적으로 움직인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만 일을 처리하는 주체는 단독이다. 상대를 향한 사랑을 숨기지도 않으며 아슬아슬한 연애의 긴장감까지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주인공이 있는 추리 소설이라니. 


  정치인의 어둡고 검은 비밀을 파헤치고 인간 본성에 숨어 있는 폭력성이라는 주제를 끌고 가는 압도적인 줄거리 안에는 진짜 사랑 이야기가 숨어 있다. 앤지 제나로는 패트릭 켄지가 끊임없이 보내오는 사랑의 신호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앤지의 눈을 바라보고 그녀가 웃는 웃음을 바라보며 '그 순간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라며 사랑에 눈을 뜨는 패트릭은 그녀의 손을 잡을 수 있을까. 


  힘으로써 정의를 짓밟는 비정한 세계에서 진정한 사랑이 꿈틀거리는 소설 『전쟁 전 한 잔』의 장르는 단언컨대 로맨스다. 그것도 그저 뻔하고 평범한 로맨스가 아닌 총탄이 날아오고 찌그러진 차를 타고 도주하는 속에서 서로를 챙기며 피어나는 사랑이 담겨 있는 소설이다. 세간에 알려진 대로 하드보일드라고 생각하며 읽었다간 당신의 심장이 남아나질 못한다. 사립탐정 켄지와 제나로의 아프고 절절한 가슴 시린 진짜 사랑 이야기를 이 가을에 만끽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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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소설가의 사물 - 사소한 물건으로 그려보는 인생 지도
조경란 지음 / 마음산책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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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님이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았습니다. 뜨거운 여름 지나고 가을에 받은 『소설가의 사물』은 작가 님 표현대로 한 편의 편지가 되어 제 가슴에 날아왔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은 무너지고 사라지고 다시 생겨납니다. 그 마음을 다 잡는 일이 하루를 살아내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오래전부터 저는 작가 님의 소설을 좋아해서 열심히 읽은 소리 없는 독자입니다. 스무 살이 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방 안에서 책만 읽었다던 작가 님의 내밀한 고백이 저를 더 소설의 세계로 이끌었는지도 모릅니다. 


  사방이 책으로 가득한 옥탑방에서 자매들과 부모님이 자는 사이에 책을 읽고 글을 쓴 기록을 읽으며 문학으로 향하는 길에 서 있곤 했습니다. 작가의 소개 말에 실린 열일곱 번째 책인 『소설가의 사물』을 방금 다 읽었습니다. 오전에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오후에는 일을 하고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와 쉬는 하루를 가지고 있습니다. 종이책을 좋아했는데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해 처분한 뒤로는 전자책을 읽고 있습니다. 『소설가의 사물』이 전자책으로 나오길 기다려 구매했습니다. 사자마자 읽어 버렸습니다.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하루에도 필요한 물건들은 많습니다. 어제저녁에는 이 가을과 겨울에 들기 좋은 텀블러를 덜컥 구매해버렸습니다. 작가 님도 텀블러 두 개를 번갈아 사용하신다는 부분을 읽고 사길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취향이 같다는 건 놀라운 일이니까요. 헐거운 마음을 다잡고 일하러 갈 때는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텀블러에 물을 담고 역시 귀여운 캐릭터 필통과 수첩을 챙겨 가방에 넣습니다. 발걸음이 가벼워지길 기다립니다. 


  『소설가의 사물』에서 소개해주신 소설과 영화, 사물들의 이야기를 잘 기억해 놓겠습니다. 그중에 제가 가장 먼저 읽고 싶은 작품은 록산 게이의 「언니가 가면 나도 갈래」입니다. 전자책으로는 없네요. 종이책으로 읽어보려고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저는 『소설가의 사물』을 읽고 작가 님의 일상과 표정을 조금은 알아버린 듯하여 친밀감이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를 읽고 같은 제목으로 시를 쓰기도 했습니다. 


  한때는 문학이 전부였습니다. 문학이 아니면 안 된다는 철부지로 살았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들고 부드러운 표정을 지을 줄 알고 상심한 일이 생겨도 웃어넘기는 처세가 생겼습니다. 그러니 문학이 아니면 어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라며 욕심을 버리고 있습니다. 욕심을 버린다고 썼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가끔은 마음이 아프고 입술을 깨물곤 합니다. 


  상대를 정해 놓고 편지를 써 본 적이 오래입니다. 다시 생각해 봅니다. 저는 오래도록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정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물론 단 한 번도 답장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쓴 편지에 주된 내용은 '여기 있기에 문제없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짐작하셨겠지만 편지의 수신인은 문학입니다. 새침하고 말이 없는 신경질적인 그에게 저는 구애의 문장을 쉴 새 없이 쓰고 있습니다. 나라는 사람이 여기 있기에 문제없이 살고 있다는 내용을 받은 그는 얼마나 우스울까요. 매번 좌절하고 혼자 실망하고 망설이는 제가 한심해 보일 텐데 그는 말없이 묵묵히 제 수다를 들어주고 있습니다. 


  『소설가의 사물』에 담긴 내용을 읽어가며 우리는 만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의 낯선 거리에서 움츠러드는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문구점에 가서 연필, 엽서, 공책을 고르는 풍경이 떠오릅니다. 손수건은 늘 두 개씩. 티셔츠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입는 가족들의 등을 바라보는 일. 조카의 내면 일기를 읽으며 마음이 뜨거워지는 일. 우리의 일상이 닮아 있다고 느끼는 건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기에 소설을 읽고 사물에게 의미를 부여해줍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책상에는 어제 도착한 신간 책들과 유리컵 두 개, 필통과 공책, 마스킹 테이프, 외출용 노트북이 있습니다. 사 놓고 먹지 않은 초콜릿 과자도 하나 있네요.


  우리를 꿈꾸게 하는 사물들 곁에서 느리지만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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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여름 2018 소설 보다
김봉곤.조남주.김혜진.정지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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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은 시절을 통과한다. 우리는 소설이 되기 이전의 시간을 지나온다. 도서관에 앉아 묵은 책 냄새를 맡으며 활자를 눈에 때려 박던 청춘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과거를 건너온다. 머무는 사람이 되기보다 지나갈 사람으로 살기 위해 버티던 시절이었다. 김봉곤의 소설 「시절과 기분」은 소설만 생각했던 그때를 기억하게 한다. 소설 속 화자인 '나'와 소설가를 동일시하는 오류는 범하지 않는다. 인물을 만든 조물주라고 해도 엄연히 다른 세계의 문법으로 쓴 것임을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김봉곤의 소설은 소설의 '나'와 현실의 김봉곤이 자주 겹친다. 자꾸 읽다보니 그런 의도로 쓴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소설 좀 읽어본 이들은 안다. 어디까지가 허구고 진실인지. 글은 문장은 숨겨지지 않는다. 그걸 쓴 사람의 성격이 옆모습이 뒷모습이 빤히 보인다. 소설 꽤나 읽어본 이들은 선무당이 되어 버리기 일쑤다. 단어를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그이의 행동 패턴을 읽어내기도 한다. 「시절과 기분」을 읽다 보면 '나'가 아닌 김봉곤의 시절에 대해 추측하고 오늘의 기분을 파악하기에 이른다. 소설은 김봉곤에게 세상을 긍정할 수 있는 여유를 선사한다. 


  조남주의 「가출」은 계간지에서 한 번 읽고 『소설 보다: 봄-여름 2018』에서 한 번 더 읽었다. (두 번 읽었다는 소리를 이토록 장황하게 하다니, 문장 연습을 더 해야겠다.) '아버지가 가출했다'로 시작했으니 아버지가 돌아왔다로 끝날 줄 알았다. 대개 소설은 집 나가서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 구조를 가졌으니까. 앞에서 소설 좀 읽어본 티를 팍팍 냈는데 아니다, 소설, 더 읽어야겠다. 「가출」의 서사는 뻔해서 뻔뻔하게 느껴질 정도의 진부함을 거부한다. 


  저축 은행에 들어 있는 돈 160만 원을 가지고 집을 나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이 가족의 비극이 시작되느냐 또 그게 아닌 오랜만에 삼 남매가 집에 모여 청국장을 먹고 갈비를 뜯는다. 아파트 키드로 살아가는 조카들이 아버지 방에 들어가고 거실을 뛰어다닌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않는 아버지는 매달 공과금을 은행에 직접 가서 납부했다. 엄마는 공과금 내는 날짜가 다가오자 자식들에게 아버지의 가출 사실을 알린다. '나'의 2030 레이디 신용 카드를 들고나간 아버지의 여행이 오래도록 계속됐으면 좋겠다. 


  김혜진의 「다른 기억」은 대학 신문사에서 일어난 짧았던 시절의 이야기를 그린다. 주간으로 있던 교수에게 일어난 일을 기점으로 벌어지는 '너'와 '나'의 미묘한 감정을 따라간다. 그 끝에는 기억의 불일치라는 허무가 기다리고 있다. 같은 공간에서 한 시절을 보냈지만 추억이라고 받아든 기억은 묘하게 어긋나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언제 한 번 만나자는 말로 그 시간을 이어가보려고 하지만 닫힌 문 앞에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공허만이 남는다. 


   다양한 시간을 살고 있는 만큼 소설의 이야기도 다채롭다는 사실이 놀랍지는 않다. 모두 다르고 모두 이상하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실패로 돌아갈 것이 뻔하니 이해보다는 오해로 놔두는 게 현명한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소설 덕분이다. 소설 속 인물들에게서 배운다. 현실에서 관계하는 인간들에게는 적절한 무시와 비웃음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미소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정지돈의 소설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를 이해하기보다는 오해한 채로 놔두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소설을 오독하는 재미로 살아간다. 답을 맞히고 높은 점수를 내는 일에는 실패했으니 소설을 읽으며 지낸다고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도 신난다. 이왕 엉성하게 살기로 했으니 어떤 소설을 읽을 때는 느슨함을 유지한다. 과거를 이야기하는 듯하다가 돌연 표정을 바꿔 반복되는 미래의 예언을 들려주는 소설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를 읽을 때에는 긴장보다는 여유를 찾으시길.


  『소설 보다: 봄-여름 2018』의 실린 네 편의 소설을 읽었더니 가을이 찾아왔다. 내가 소설을 읽어서 가을이 온 것인지 가을이 왔기 때문에 소설을 읽기 시작한 건지 모를 일이지만 얇은 책 한 권 안에 두 개의 계절이 담겨 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봄과 여름을 지냈으니 가을과 겨울이 남았다. 남은 두 계절에서 보내는 소설을 기다리며 두꺼운 옷을 꺼내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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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리아민의 다른 삶 - 제8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전혜정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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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일야화의 이야기 속 주인공 세헤라자데는 왕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목숨을 이어갔다. 『독재자 리아민의 다른 삶』의 주인공 박상호는 독재자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단순히 이야기를 듣는 것이라면 별문제 없겠지만 소설의 인물의 운명이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박상호는 첫 소설을 성공작으로 이끈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에게는 장기 집권을 꿈꾸는 리아민의 전기를 써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 것이다.


  이야기를 하는 자와 이야기를 쓰는 자의 욕망이 맞물리면서 소설은 급박한 사건으로 펼쳐진다. 대통령의 전기를 쓴다는 소문이 나면서 박상호에게는 정치부 기자 정율리가 접근해 온다. 한순간에 연인이 되면서 박상호는 정율리에게 대통령 전기를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만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박상호는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을 정율리에게 모두 쏟아 버리고 만다. 


  리아민의 이야기를 듣다가 박상호는 이상한 지점에 맞닥뜨린다. 리아민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집무실에 있던 책들의 수준은 극히 낮았고 문학적인 소양도 누군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하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그래도 써야 한다. 박상호는 쓰는 운명에 갇힌 사람답게 리아민의 전기를 쓴다. 


  영부인 최세희라는 새로운 화자의 등장으로 박상호는 이야기 감옥에 갇힌다. 그녀는 여배우로 리아민과는 공식적으로는 열아홉 살의 나이 차이가 난다. 그녀는 박상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리아민의 전기에 그녀라는 인물을 어떻게 쓸 것인가. 박상호는 전기를 쓴다기 보다 리아민을 주인공으로 하는 새로운 소설을 써 버린다. 그 자신 역시 첫 소설 이후에 성공작을 쓰지 못한 지 오래였다. 


  『독재자 리아민의 다른 삶』은 이야기를 하려는 욕망과 쓰려는 욕망을 다룬다. 두 욕망은 다르지 않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자들은 많다. 리아민처럼 이야기를 수단으로 여기며 성공으로 향하는 자들을 조롱한다. 역시 박상호처럼 타인의 이야기를 자신의 것으로 취하며 성공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자들의 허위를 비웃는다. 박상호가 쓴 소설 안에는 그의 과거가 숨겨져 있었다. 진실을 묻어 두고 거짓으로 무장하려는 리아민과 이야기 속에 진실을 찾으려는 박상호의 대결은 누구의 승리로 끝이 날 것인가. 『독재자 리아민의 다른 삶』은 권력과 욕망으로 무장한 세계에 이야기의 힘을 믿는 소설가의 미약한 외침이 담겨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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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란한 유리 낭만픽션 8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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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은 나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일본으로 데려간다. 일본 전역으로 뻗어 있는 기차역으로 사람이 가지 않은 짐승이 다니는 길로. 시대는 다양하다. 전쟁 중이거나 전쟁이 끝난 혼란한 일본의 시간에서 미스터리는 펼쳐진다. 나이 마흔에 소설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다양한 작품을 썼다. 미스터리 소설가로 알려졌지만 역사 소설로 데뷔해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전력이 있다. 


  나는 주로 그의 미스터리 소설을 읽어왔다. 단편과 중편 컬렉션을 좋아하고 논픽션을 단행본으로 묶은 『일본의 검은 안개』를 인상 깊게 읽었다. 사건의 개요를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소개하는 방식의 서술이 마음에 든다. 진행 개요를 따라가다 만나는 트릭의 반전을 마주하다 보면 때론 숨이 막힐 때가 있다. 범죄자의 인간 본성에 숨겨둔 교묘함과 간악함이 드러나는 경우에는 더욱더 간담이 서늘해진다. 


  최근에 나온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 『현란한 유리』는 3캐럿의 다이아몬드를 가진 사람들의 비극을 연작 형식으로 쓴 추리 소설이다. 흠결이 없고 다이아몬드의 모양은 원형이다. 링은 백금 한 돈. 보석상 우카이 주베에는 자신이 판 다이아몬드 반지의 구매자에 대한 간단한 이력을 수첩에 적어 놓는다. 어찌 된 운명인지 보석을 사 가는 사람의 신변에는 어둡고 불길한 사건이 생긴다. 열두 편의 이야기는 다이아몬드를 손에 쥔 사람들의 비극적인 운명을 그린다. 


  전쟁 전후를 배경으로 혼란한 일본 사회의 단면을 미스터리로 포착해내는 재주는 마쓰모토 세이초를 따라갈 수 없다. 탐욕에 눈이 먼 자들을 내세워 불온한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 실려 있는 작품 중 「백제의 풀」과 「도망」은 마쓰모토 세이초가 전쟁 중 한국에 복무한 경험이 들어 있다. 그는 징집되어 이 년 정도를 한국의 정읍과 용산에서 지낸 적이 있다. 사람이 죽고 건물이 무너지는 전쟁 중이어도 오히려 전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욕망은 불타오른다. 


  짧은 이야기 안에 인간의 욕심과 배반, 슬픔까지 다룬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불사하지 않는 인물들의 결말을 상상하는 재미까지도 마쓰모토 세이초는 그려 놓는다. 사건의 전모를 따라가다 보면 생각지도 않는 범죄자의 트릭 앞에서 과연 인간이란 이토록 잔혹한 것이구나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인과응보식의 결말이 식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욕심의 끝에는 처절한 슬픔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이라면 『현란한 유리』안에 담긴 이야기를 좋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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