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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집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6월
평점 :
나는 지그시 미소를 짓는다. 그녀가 아무리 의심해도 나의 확신은 더욱 굳건해져만 간다. 마그리트가 옳았다. '환상은 우리가 믿는 곳에 있는 게 아니다.' 마르타 베크만의 진정한 삶은 말기 환자를 위한 침상이 아니라, 그림 속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산산조각 난 존재, 덧없기 짝이 없는 운명에게 비상탈출구를 열어주고 또 다른 세계를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예술가들의 역할이 아닌가.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빛의 집』 中에서)
예술은 죽어가는 자를 위한 선물이다. 예술가란 삶의 빛이 꺼져가는 이들을 저세상으로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육체는 왜소해지고 정신은 흐릿해져 갈 때 우리 삶의 남은 힘을 모아 예술에 투사한다. 뇌의 착각 말고 과학적인 증명으로 밝힐 수 없는 지점에 예술이 침투해 들어간다.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상태의 영혼은 그림과 문학, 음악으로 장르를 넘나들며 시공간을 파괴한다.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의 소설 『빛의 집』을 읽고 든 생각이다.
제레미 렉스. 네 살부터 열두 살까지 잘 나가는 인기 아역 배우였다. 스물다섯인 지금은 일한 지 삼 일 만에 해고되었고 제빵사 자격증이 전부인 청년이다. 퀴즈 프로그램에서 우승해 2인 여행권을 얻었다. 사랑하는 여인 캉디스와 함께 그녀가 좋아하는 그림인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을 보러 갈 꿈에 부풀어 있었다. 사소한 다툼으로 결국 킹사이즈 침대 하나를 차지한 채 그녀에게 보낼 편지나 쓰고 있는 처지다. 곤돌라끼리 부딪쳐 필리프 네케르라는 남자를 만났고 그도 최근에 연인과 안 좋은 일을 당한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제레미는 그에게 레스토랑 디너 이용권을 함께 사용하자는 낯 뜨거운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같이 저녁을 먹는 대신 휴대 전화 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제레미는 혼자 '빛의 제국'을 보러 가서 이상한 경험을 한다. 그림 속에서 빛나고 있는 주황색 불이 그의 눈앞에서 꺼진 것이다. 이층에는 두 개의 창문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그 창의 불 하나가 꺼졌다고 경비원에게 말했지만 곧 폐관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빈 집에 살고 있는 유령이나 영혼을 탐지하는 일을 하는 필리프 네케르에게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분명 창문에 불이 꺼졌다고. 다음날 미술관으로 다시 그림을 보러 간 제레미에게 놀라운 일이 펼쳐진다. 검은 머리의 젊은 여자가 그림 속 창문을 열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제레미는 같이 온 필리프 네케르를 찾았지만 그는 보이지 않는다. '빛의 제국'의 그림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제레미는 그 순간 자신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각몽 안에서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감사해 하면서. 그는 르네가 싫어하니 창문으로 들어오라는 여자의 부탁에 응한다. 검은 머리 여자는 자신을 마르타라고 소개한다. 르네가 누드화를 그릴 때 모델이 되어 주었다고 한다. 그림 안에서 멍하게 앉아 있는 남자를 보기도 한다. 마르타는 그가 오류 때문에 말을 듣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마르타는 그에게 감미로운 밤이 되길 바란다고 말하며 사라진다. 제레미는 캉디스를 처음 만나던 순간으로 돌아간다. 모든 것이 처음 그녀를 만나던 장소의 질감으로 펼쳐져 있었다. 방금 만든 크루아상을 가지고 그녀 방으로 들어설 때의 느낌이 살아났다.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발현되어 사랑으로 이어진 순간으로 돌아간 것이다. 장면은 다시 이년 후의 시간으로 바뀌고 날선 공방과 서로를 향한 원망이 없는 시절로 제레미를 데리고 간다.
사분 삼십 초 동안 제레미는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간 시간동안 그는 완벽하게 죽어 있었다. 그림 속에서 캉디스와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고자 제레미는 기이한 실험실로 찾아가 머리에 뚜껑을 쓰고 전극을 붙인다. 식물로 환각을 일으키고 다른 세계를 넘나들 수 있다는 전력 공사의 직원의 집에 가서 궐련을 피우기도 한다.
제레미는 '빛의 제국'의 그림 속으로 도피한다. 지금의 현실은 제빵사이긴 하지만 가끔 빵을 만들고 캉디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첼로 연주를 시작했지만 그마저도 끝을 보지 못했다. 심장 전문의로 성장한 캉디스의 꿈을 위해 3만 달러를 투자했지만 그가 그림 앞에서 심장 이상으로 쓰러지자 골칫거리를 만들지 않기 위해 돈을 돌려받는다. 어째, 점점 캉디스와의 관계는 멀어지고 이별할 것 같은 조바심이 춤을 춘다. 제레미는 마르타만이 그가 처한 현실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빛도 어둠도 완벽하게 지배하지 않는 시간. 지상에는 어둠이 깔려 있어 가로등에 불이 켜지고 이층의 방 두 개에도 주황색 불빛이 들어온다. 하늘은 아직 청명하다.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불온한 시간을 그린 그림 안에서 벌어지는 이상 야릇한 일을 그린 『빛의 집』은 시종일관 유쾌하다. 사랑에 빠진 자만이 벌일 수 있는 황당무계한 사건의 연속으로 결국 그림 속비밀을 밝혀가는 추리적인 재미까지 소설은 선사한다.
사랑에 빠진 자의 눈빛을 본 적이 있는가. 총명한 눈의 생기는 반쯤 흐려지고 그 혹은 그녀를 향한 집착으로 불이 꺼진다. 내가 이만큼 상대를 갈망하는데 반응이 없을 때 스스로 빛을 끄고 심연으로 들어간다. 사랑을 잃어버리고 있는 자의 행동이다. 제레미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그녀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한 예술가가 남긴 그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선택한다. 누군가의 호출이든 구원의 외침이든 낮은 목소리에 반응한다.
완벽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무시와 냉대를 감내해야 한다. 『빛의 집』은 죽음으로 이르는 길에 예술이 있다면 고통과 절망에서 비껴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으로 쓰였다. 젊은 시절 화가의 뮤즈로 문학 속으로 침잠하는 시기로 완벽한 죽음에 이를 수 있다. 예술은 인간의 절망에 화답한다. 제레미가 그림 안에서 캉디스와 만났던 시간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였다. 그는 좋았던 시절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미래의 행복한 순간을 미리 맛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의 감정은 실존이고 현재로 기억된다. 과거는 흐릿해지고 미래만이 남는다. 마르타의 과거는 그녀 침실의 대형 거울 뒤에 숨겨진 채 보존된다. 현재는 죽음으로 건너가기 위한 단 하나의 장치로 발견되기를 기다린다. 절망과 사랑의 공통점은 그 끝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절망해서 죽거나 사랑해서 죽는다. 죽기 위해 절망하고 사랑한다. 완벽을 가장한 죽음이 우리 곁에 머물기를 바랄 때 예술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