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한국 제1고등학교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64
전성희 지음 / 자음과모음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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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4월 27일, 길이 열린다. 길을 열어 우리가 걷는다. 걸어서 만난다. 비행기를 타지도 않는다. 우리는 하나가 되어 만난다. 손을 잡고 부둥켜안는다. 봄이 온다고 말하자 가을이 왔다고 화답했다. 노래와 춤이, 언어로 소통할 수 없는 자리에 머물렀다. 손뼉을 치고 웃음을 터뜨렸다. 사랑은 그렇게 시작한다. 수줍어하며 말을 건네고 인사를 나눈다. 손을 잡아 온기를 느낀다. 


  전성희의 소설 『통일한국 제1고등학교』는 통일된 한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통일이 된지 10년 후의 한국은 아직 혼란스럽다. 혼란스럽지만 질서를 잡아가고 있다. 개성과 서울 중간쯤에 만들어진 통일시는 통일에 관한 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복합 기능 도시이다. 소설은 그곳에 세워진 고등학교, 통일한국 제1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회장 선거를 통해 차이와 다름, 화합을 이야기하고 있다.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전교 회장을 뽑는 공고가 붙고 남쪽 아이들과 북쪽 아이들이 나뉜다. 흡수 통일을 한 탓에 문화와 경제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이들이 만난 교실은 묘한 분위기로 흘러간다. 언어와 생활방식이 다른 탓에 거리감을 느끼며 학교 안에서도 남쪽, 북쪽으로 갈려 있다. 


  남쪽에서는 공부 잘하고 얼굴도 잘생긴 서재원, 인기 많고 성격 좋은 남보배, 성적이 좋지 않지만 활발하고 긍정적인 남대성이 후보 등록을 했다. 이렇게 나오자 북쪽에서는 통일한국 제1고등학교에서 처음으로 뽑는 회장 선거에 남쪽 아이들만 후보가 되어 나올 수 없다는 생각에 후보를 내려고 한다. 전교생은 105명 그중에서 북쪽 아이들이 56명이다. 고향은 북쪽이지만 남한 국적을 갖고 있는 강철민은 북쪽에서도 후보를 내야 한다며 공부 잘하는 박영민에게 출마를 부추긴다. 


  선거는 남과 북, 북과 남으로 갈리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선거라고 해서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서재원은 남쪽 후보를 불러 단일화를 제안한다. 자신들은 세 명. 북쪽은 한 명. 표가 갈릴 것을 우려해서다. 남보배와 남대성은 쉽게 단일화를 수락하지 않는다. 며칠 동안 문자 공세를 한 탓에 남대성은 출마 포기를 한다. 남은 사람은 자신과 남보배. 아이들을 모아 후보 단일화 투표를 한다. 서재원은 이 학교를 대표하는 사람이 남자인 게 좋다는 발언을 한다. 남보배는 남녀 차별이라고 주장한다. 남보배는 자신이 회장이 되면 남쪽 아이 하나와 북쪽 아이 하나가 짝꿍이 되는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한다. 결과는 서재원이 후보가 된다. 


  북쪽 아이들은 강철민을 중심으로 박영민을 후보로 등록한다. 선거가 있기 전 상대를 견제하는 방법으로 축구와 중간 연설을 하면서 전교 회장 선거의 열기는 달아오른다. 상대의 약점을 파악해 불리한 작전을 펼친다. 박영민의 할아버지가 당 지도부였다는 사실을 알아낸 서재원은 연설 중간에 박영민을 공격한다. 당황하지 않고 박영민은 평등에 대한 소신을 밝히며 연설을 마무리한다. 북쪽 후보는 박영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성도 제 목소리를 내고 아이들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알리고 싶은 리수연도 후보 등록을 했다. 리수연은 북조선이 사라져도 북조선 사람들은 살아갈 것이라는 진심과 마음을 담은 연설을 한다. 


  통일된 후의 통일한국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대립을 학교라는 배경으로 끌고 온 소설은 한국 사회가 처한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통일한국 제1고등학교의 교훈은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화합하자!'이다. 체제가 다른 상태에서 흡수 통일이 된 미래에서 벌어지는 일을 가정하여 다름을 인정하고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지를 보여준다. 사회의 축소판이라 불리는 교실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이 행하던 잘못을 저지른다. 잘못이 있다는 걸 깨닫고 고쳐 나가는 점은 어른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통일한국의 리더는 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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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 번식장에서 보호소까지, 버려진 개들에 관한 르포
하재영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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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는 나에게 친근한 동물이 아니다. 개뿐만이 아니라 고양이, 쥐도, 햄스터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이 귀여워하고 평생을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동물들이 나는 무서웠다. 어렸을 때 개에게 물린 후로 개만 나타나면 뛰었다. 전봇대 뒤에 숨어서 개가 지나가길 바랐다. 자전거 옆에 고양이가 죽어 누워 있기도 했고 물을 받아 놓은 대야에 쥐가 빠져 죽어 있기도 했다. 친구들이 자기 집에서 기른다며 햄스터 상자를 열었을 때 나는 교실 밖으로 도망갔다. 털이 있고 작은 눈을 가지고 이빨이 있는 그것들에게 쉽게 정을 줄 수가 없었다. 


  사람은 변한다. 약간만.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다 보면 크게 변할 것 같지만 생존에 필요한 만큼만 적응한다. 사회성이라는 게 생겨서 사회 안에서 살아가게끔 진화한다. 주인집 개가 있었고 마음대로 지은 이름을 부르면 목에 달린 방울을 흔들며 뛰어왔다. 먹이를 주고 한 번씩 털을 쓰다듬어 주었다. 오래전에 이야기이다. 지금 그 강아지는 죽었겠지 생각하며 하재영의 르포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을 읽는다. 


  소설가 하재영은 어떤 시작을 계기로 개인적 체험을 한다. 피피라는 치와와 강아지를 키우면서 소설가의 인생은 변곡점을 맞는다. 우연과 필연 사이에 무엇이 존재하는가. 피피는 소설가의 집에 우연히 가게 된 것인가. 꼭 가야 할 이유가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난 것인가. 누구도 알 수 없다. 작고 누군가가 키우지 못할 사정이 생긴 피피가 함께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애완동물이라는 명칭 대신 평생을 함께하고 인생의 동반자라는 개념이 강한 반려동물로서 개는 사람에게 가장 친숙한 존재이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에서도 나오지만 동종보다 사람에게 정을 주고 따르는 종은 개가 유일하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언젠가 아프다. 동물을 사랑하는 일은 특히 그렇다. 대개의 경우 그들은 우리보다 먼저 떠나고 우리는 그들보다 이 세상에 오래 머문다. 그런 줄 알았지만 여전히 모르겠는 것은, 미코야, 왜 나에게 너였을까. 왜 너에게 나였을까.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중에서 어떤 응답, 하재영-


  피피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하재영은 또 다른 피피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그러다 온라인에서 '뚱아저씨'를 만난다. 만남은 만남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만남을 피하지도 피할 수도 없는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뚱아저씨'는 다이어트 컨설턴트 겸 퍼스널 트레이너라는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실의에 빠진 그는 유기견을 입양한다. 그리고 인생은 동물 구조로 이어진다. 


  소설가도 그렇고 '뚱아저씨'도 '행강대부'도 알 수 없는 힘들에 끌려 동물 구조의 길로 들어선다. 누가 그들의 손을 잡아 버려진 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하고 입양하는 힘든 길로 이끄는가. 당신은 알 수 있는가. 생각하기와 질문하기를 거쳐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은 이야기하기를 시작한다. '동물에 대한 아무 비하도 멸시도 없이 말하건대 인간다움'을 말한다. 


  소설가는 취재를 위해 동물보호 단체의 활동가들과 새끼 빼는 기계들처럼 취급당하는 개들이 모인 번식장과 세상의 모든 개를 팔 수 있는 경매장을 다닌다. 버려진 개들이 가는 마지막 장소 공설 보호소, 애니멀 호더의 경향을 보이는 사설 보호소까지도. 그리고 살아서 나갈 수 없는 개들이 모인 개농장과 개시장을 간다. 길을 잃거나 주인이 버린 경우 개들은 유기견으로 취급되어 보호소에 맡겨진다. 그곳에서 개들은 열흘 동안 입양을 기다린다. 그 후에 개들은 안락사 당한다. 


  보호소를 운영하는 어떤 수의사는 안락사를 시키는 대신 개장수에게 개를 팔아버렸다. 시에서 주는 지원금을 받을 대로 받고 몰래 뒷돈도 챙기는 것이다. 수의사라는데 주사기 하나로 여섯 마리 개에게 주사를 놓았다. 그 개들은 감염으로 전부 죽었다. 보호소라고 사정이 나은 것이 아니다. 안락사는 고통사를 의미했다.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주입해야 하는 약물로 안락사를 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마취도 하지 않은 채 약물을 투입 당한 개들은 고통 속에서 처절하게 죽어간다. 소설가는 언어 뒤에 숨겨진 폭력성을 찾아낸다. '어떤 안락사는 고통사라는 말과 동의어라는 것을, 어떤 입양은 죽음으로 가는 급행열차라는 것을, 언어들은 알려주지 않는다고' 쓴다. 


  한쪽에서는 반려동물로써 개를 키우고 다른 한쪽에서는 보신으로써 개를 먹는다. 개를 먹는 사회. 돼지, 닭, 소, 오리도 먹는데 개는 왜 안되냐 반감이 드는가. 개 식용을 합법화해서 깨끗하게 도축하고 확인된 개를 먹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질문하고 싶은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에서는 개를 시작으로 한 이러한 반감과 질문에 대한 답을 들려준다.

  

개식용 문제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개가 축산법에는 포함되면서 축산물 위생관리법에는 포함되지 않는 동물이라는 점이다. 즉 현행법은 개를 사육하는 것만 허용할 뿐 식품으로 도살, 유통, 판매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축산물 위생관리법 제7조 '가축의 도살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도살은 "허가받은 작업장에서 해야 한다." 그러나 개는 축산물 위생 관리법의 대상이 아니므로 허가받은 작업장(도살장)이 없다. 그래서 개를 잡아먹으려는 사람과 개를 식용으로 판매하려는 사람은 개농장, 개시장, 무허가 도축장, 개인 주택, 야산 등에서 개를 도살한다.

-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중에서 쓸모 없어진 존재들의 하수처리장, 하재영-


  단순하다. 시대가 바뀌고 문화의 관점이 다양해진 현시대에 맞는 법을 개정하면 된다. 잘못된 것은 고친다. 관습에 의해 우리가 식용으로 개를 다루었다면 시대의 흐름에 맞게 법을 만들면 된다. 개식용을 합법화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동안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개식용이 합법화될 경우 개 역시도 농장동물로 편입되어 비인도적인 환경에서 키워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꼬집는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저질러지는 사람들의 추악한 이기심과 현대 축산업의 민낯을 들추어낸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은 동물복지 대신 동물권이라는 개념을 가져다 쓴다. '동물권은 동물해방과 짝을 이루는 개념으로 동물도 생명권이 있다는 것, 고통을 피하고 학대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라는 것이다. '동물보호가 인간이 주체가 되어 객체를 보살핀다는 시혜의 어감을 가진다면 동물권은 우리의 인식이나 의지와 상관없는 자연권적인 어감을 가지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다시 시작해보자. 생태피라미드를 구성하는 최종 소비자는 인간이다. 생산자부터 올라간 삼각형의 가장 윗부분을 인간이 차지한다. 동물을 함부로 대하는 사회에서 인간 역시 그런 취급을 받지 말라는 법이 없다. 


  동물보호단체에서 일하며 동물 구조에 힘쓴 소설가가 오랜 시간 힘겹게 써 내려간 글에서 그는 '이 이야기는 자격이 없는 자의 응답이다'라고 끝마친다. 펜션에서 만난 바둑이 미코의 죽음을 겪으며 죽음이라는 모호한 관념을 실체로 맞닥뜨린 소설가는 하나의 질문을 만들어 간다. '나는 어디에서 타자와의 공존을 시작할 수 있을까?'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은 나와 당신이 만들어갈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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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뉴욕의 맛
제시카 톰 지음, 노지양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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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과 음식에 관해서라면 나는 고급 취향이 못 된다. 취향이라는 게 고급, 중급, 초급이 있는 건 아니지만 방송과 프로그램에서 보이는 부분에서 나는 멀리 있다. 패션은 패션이라고 부를 것도 없이 크고 편한 옷 몇 개를 돌려 입는 게 전부다. 비슷한 색깔과 문양을 몇 개씩 사놓고도 계절 내내 한두 개를 돌려 입는다. 음식은 배가 부를 때까지 먹을 수 있으면 좋다. 미식이라고 요즘은 많이 떠들어 대지만 허기를 채울 수 있을 정도의 양을 먹으면 만족한다. 


  단 한 번도 명품 옷이나 가방, 신발을 가져본 적도 없다. 가격표를 들여다보고 0을 제대로 세고 있나 의구심이 들 뿐이다. 선물로 명품을 선물하곤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럴 수도 있구나 생각하고는 말았다. 그들은 일상적으로 백화점에 가서 명품 매장에 들어가 물건을 고르고 계산한다. 생일이라고 돈가스만 사준 게 미안했다. 초를 켜고 노래를 불러주는 목적 외에는 필요 없는 케이크를 사지 않았다고 뿌듯해했는데. 뚱뚱한 팔로 한 번 안아주고는 끝이었는데.


  코스 요리가 나온다는 곳도 가본 적이 없어 기념일이 되면(사실 기념일도 잘 안 챙긴다. 기념할 날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 돼지갈비 집에 가서 갈비를 굽는 게 전부였다. 생활은 평범하고 보통의 날들로 흘러간다. 매일 하이패션을 입고 미식으로 살아간다면 행복할까. 


  제시카 톰의 『단지 뉴욕의 맛』은 음식 작가를 꿈꾸는 대학원생 티아 먼로를 통해 성공과 행복에 관한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당신, 어떻게 살아야 꿈을 찾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인가. 티아는 모든 꿈이 모여든다는 뉴욕에 살아간다. 그곳이 어떤 곳인가. 영화나 책을 통해 알고 있는 뉴욕은 활기 넘치고 스타벅스 커피를 한 손에 들고 키 크고 날씬한 여성이 걸어가는 곳이었다. 노란 택시를 잡고 내려서 큰 건물로 들어가 하루의 업무를 시작하는 바쁜 도시. 


  화려하게 보이는 뉴욕에서 청춘들의 꿈은 좌절하고 짓밟힌다. 『단지 뉴욕의 맛』은 성공을 위해 모여든 뉴욕에서 꿈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그들에게서 성공이란 달콤하거나 화려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학에 가고 졸업. 다시 대학원에 입학. 기회를 잡지 못하면 인턴십 자리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티아는 대학에 오기 전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마지막 요리 시간을 소재로 글을 썼다. 교내 신문에 글이 실리고 <뉴욕타임스>에서 연락이 와 칼럼을 썼다. <뉴욕타임스>의 푸드 섹션 에디터, 레스토랑 비평가이기도 한 헬렌 란스키가 티아의 글을 마음에 들어 했다.


  대학에 와서 방황을 한 티아는 그 일을 계기로 뉴욕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요리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한 것이다. 대학원 입학 환영회에서 헬렌을 만나 인턴 자리를 얻기 위해 할아버지에게 드렸던 다쿠아즈 드롭을 직접 만들었다. 헬렌을 만나 그녀가 칭찬했던 글을 쓴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알리면서 다쿠아즈 드롭을 건네고 싶었다. 헬렌 밑에서 레시피를 연구하고 글을 쓰고 싶었다. 눈앞에 있는 헬렌에게 쿠키를 내밀면 되는데 그 순간 나타난 마이클 잘츠가 나타나 모든 것을 망치고 말았다. 

 

  쿠키는 땅에 떨어지고 헬렌을 만나지도 못했다. 당황하는 그녀에게 마이클은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이메일 주소를 건넨다. 마이클은 <뉴욕타임스>에 레스토랑 리뷰를 정기 기고하는 평론가였다. 티아는 자신이 쓴 에세이를 첨부해 메일을 보낸다. 모든 일이 그렇듯 시작이 꼬이면 끝도 꼬이게 된다. 그때부터 티아의 뉴욕 생활은 평범한 대학원생에서 벗어난다. 비밀을 가진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해 주변 세계에서 점점 멀어진다. 


  미각을 잃은 레스토랑 평론가와 함께 음식을 맛보고 대신 감상을 말하고 리뷰를 쓴다. 그에 따른 보상으로는 명품 옷을 가지고 미식의 세계에서 웨이팅 없이 음식을 맛보는 생활. 티아의 일상은 혼란으로 가득 찬다. 그녀가 꿈꾸는 뉴욕의 맛은 점점 멀어지고 오직 화려함과 자기 과시로 물든 공허한 맛이 남을 뿐이다. 


  『단지 뉴욕의 맛』을 읽는 독자는 티아의 선택을 지지할 수도 망설일 수도 있다.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욕망을 끌어내는 이 소설은 당신이 꿈꾸는 세계의 이면을 보여준다. 성공의 계단을 오르지 않고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는 우리의 못된 마음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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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잘 모르겠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499
심보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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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잘 모르겠어' 시집의 뒷면

-심보선


낯설고 아름다운 나라에 도착하면 늘 생각해.

이곳의 장례 전통은 어떠한가.

무덤 속 머리는 동서남북 중 어디를 향하나.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 나를 기꺼이 맞이해준다면.

실례가 안 된다면 여기서 죽어도 될까요?

물어봐도 화들짝 놀라지 않고

열쇠와 필기구를 말없이 건네준다면.

객사의 원래 뜻은 손님으로 죽는 것.

가장 멀리 뻗은 길 따라 몸을 누이고

그때 밤하늘에 뜬 삐뚤빼뚤한 별자리 하나를

삐뚤빼뚤한 내 영혼에 딱 맞는 관으로 삼는 거지.

낯설고 아름다운 나라에 도착하면 늘 생각해.

사람이 죽으면 다시 태어날 수 있는가.

얼마나 좋을까?

죽는 곳은 여럿이어도

태어나는 곳은 하나라면.

같은 세계에서 같은 사람들이랑

부디 단 한 번이라도

삶이 고단하지 않을 때까지

죽음이 서럽지 않을 때까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문지 시집을 사는 날이면 버스에 앉아 시집의 앞면과 뒷면을 골똘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앞면에는 이제하 선생의 시인을 그린 그림이 있고 뒷면에는 시인의 말과는 다른 이야기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무한을 건너가는 배 같은 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의 섬으로 들어가기 전 배를 타고 건넙니다. 뒷면의 글을 읽으며 시들을 읽을 준비를 하는 것이지요. 낯설고 아름다운 나라에 도착하면 장례 전통을 먼저 생각하는 시인. 아름다운을 쓰려다가 앎이라고 쳤습니다. 오타에서 발견한 아름다운의 다른 이름은 앎일 수도 있구나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별자리 하나를 정해 그 속에 나의 영혼을 들여놓겠다는 시인의 말이 슬프고도 아름답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아름다운 앎을 시집의 뒷면을 읽으며 알아갑니다. 


오늘은 잘 모르겠어

-심보선


당신의 눈동자

내가 오래 바라보면 한 쌍의 신(神)이 됐었지


당신의 무릎

내가 그 아래 누우면 두 마리 새가 됐었지


지지난밤에는 사랑을 나눴고

지난밤에는 눈물을 흘렸던 것으로 볼 때

어제까지 나는 인간이 확실했었으나


오늘은 잘 모르겠어


눈꺼풀은 지그시 닫히고

무릎은 가만히 퍼졌지


거기까지는 알겠으나


새는 다시 날아오나


신은 언제 죽나


그나저나 당신은······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와 같은 것일까요.  아침에 눈을 뜨고 햇빛을 먼저 방안에 들여주는 나는 어제의 나와 같은 사람일까요. 어제는 나라는 사람이 이 세계에 존재했을 수도 있지만 글쎄요, 오늘은 잘 모르겠네요. 당신의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무릎 아래를 지그시 눌렀던 것 같은데 당신은 어제와 같은 당신일지 오늘은 잘 모르겠어요. 인간이기에 어제는 실수를 저지르고 슬픔에 빠져있기도 했는데 오늘은 어제와 같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모르겠어가 아닌 오늘은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시에서 오늘의 작은 가능성을 예상해 봅니다.


침들의 시간

-심보선


그가 그녀의 손등에 묻은 자그마한 얼룩을

자신의 침으로 닦아줄 때


그녀가 자신의 손등에 묻은 끈적이는 침을

화장실 휴지로 닦아낼 때


닦아주고 닦아내는 

구원받고 버림받는


못 견디게 더러운

더럽도록 숭고한


언제나 예상보다

너무 이르게 혹은

너무 늦게 도착하는


서로 다른 

침들의 시간

침들의 시간


여름날, 내 손등에 모기가 날아와 깨물었습니다. 마당에는 풀이 웃자라 있었고 비가 왔던 때라 모기는 극성이었습니다. 붉은 손등을 어쩌지 못하고 앉아 있을 때 당신이 다가와 열십자를 그려주고 침을 발라주었습니다. 더럽다 말했지만 나는 웃었고 당신의 얼굴도 환했습니다. 벌레에 물렸다고 말하면 재빠르게 달려와 침을 발라주고 그대로 약국으로 달려가던 당신의 뒷모습. 약보다는 당신의 두터운 손이 말간 침이 더 좋았지요. 우리가 침들을 나누어 가지던 시간, 우리가 서로의 몸에 십자가를 그려주는 순간, 세상은 고요하고 도착하지 않은 미래로 슬퍼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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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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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의 마을, 아이들이 숲에서 얼음 위에서 하키 연습을 하는 소리가 일상적으로 들리는 곳. "술에 취한 거인이 눈밭에다 오줌으로 자기 이름을 갈기려던 것처럼 생겼"다고 말하는 마을. 그곳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베어타운-아무리 즐겨도 부족한 도시!'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과거의 말이다. 지금은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인구도 줄어드는 쇠락의 길을 겪고 있다. 단 하나, 마을의 희망을 상징하는 공간인 아이스링크가 있다. 마을의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하키 팀의 성적도 곤두박질쳤다. 다들 말한다. 하키 팀이 우승하면 마을의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고.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 『베어타운』은 용기를 이야기한다. 쇠락한 마을에서 사람들이 가지는 단 하나의 희망이란 청소년 하키 팀이 준결승에서 우승해서 베어타운에 하키 스쿨을 짓게 만드는 것이다. 하키 스쿨이 들어오면 새로운 아이스링크와 넓은 도로, 컨퍼런스 센터와 쇼핑몰이 생길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몰려오고 공장 실업자들이 취직을 할 수 있다. 베어타운의 사람들은 가슴에 곰을 가지고 살고 있다. 힘과 몸집, 공포로 상징되는 곰을 간직한 채 하키 팀의 우승을 바란다. 


  소설은 아름답다. 문장은 정확하고 인물들의 심리 묘사는 탁월하다. 폐쇄성이 짙은 마을 하나를 창조해낸 작가는 인간이 가진 본성을 낱낱이 보여준다. 우리 안에 잠든 곰을 흔들어 깨운다. 마을에 하나만 남은 학교는 그야말로 하키 팀에 의한 하키 팀을 위한 곳이다. 몸과 몸의 대결에서 아이들은 밀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무기로 만든다. 마을이 존재하는 이래 가장 뛰어난 선수 케빈, 그 아이를 경기에서 보호하는 벤. 난민으로 이 나라에 들어와 아이스링크 청소를 하는 엄마와 살아가면서 오전 한 시간 하키 연습에 행복한 아맛. 소년들은 각자의 꿈을 골대로 밀어 넣기 위한 경기를 준비한다. 


  하키를 위한 베어타운에서 꿈은 성장하거나 사라지는 둘 중 하나의 운명을 가진다. 선수로 프로 팀에 가거나 부상과 실력 부족으로 하키를 그만두고 공장 근무자로 일하는 것. 마을에서 하키 팀에 지원을 가장 많이 하는 케빈의 아버지 에르달은 몇 점 차이로 이겼느냐만이 중요한 사람이다. 아들이 준결승전에서 골을 넣어도 경기에서 이겨도 기쁜 내색은 비추지 않는다. 경기 자료를 보고 슛, 어시스트, 골, 우세했던 시간들을 체크할 뿐이다. 케빈이 그날 그 밤, 마야에게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중요하지 않다. 베어타운에서 하키를 하지 못한다면 그가 가진 재력으로 헤드로 옮겨 팀을 만들면 된다. 그 안에 숨긴 곰이 이빨을 드러낸다. 


  탕, 탕, 탕. 숲에서 경기장에서 들리는 소리는 마을의 배경 음악이 된다. 사람들이 가진 꿈의 크기는 점점 줄어들었지만 희망이라는 곰은 사라지지 않았다. 곰은 용기를 낸 한 여자아이의 존재를 부정한다. 용기는 거대한 발톱으로 변해 아이를 공포 속으로 몰아간다. 공동체를 생각하자는 사람들이 모여 하키 팀을 응원하고 우승을 꿈꾼다. 자신이 겪은 일을 숨기지 않고 밝히는 마야의 용기를 베어타운의 사람들은 발톱을 들어 할퀼 것인가, 넓은 품으로 받아들인 것인가. 소설은 우리 안의 곰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묻는다. 


  소설을 읽는 내내 카슨 매컬러스의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이 떠올랐다. 차가운 링크에서 뜨거운 땀을 흘리는 스포츠가 지배하는 세계와 황량하고 바람만 불어오는 미국의 남부 사람들의 이야기가 포개졌다. 소설은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다. 숲에서 만나면 우리는 외롭고 죽은 척해야 한다. 곰 앞에서는. 쓸쓸한 비바람이 불어오고 맑은 날을 기대하지만 내내 흐릴 것이라는 예보를 받는 밤, 당신의 곰이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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