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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쓰게 된다 -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
김중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2월
평점 :
김중혁의 소설들을 좋아한다. 『펭귄뉴스』부터 시작해서 『가짜 팔로 하는 포옹』까지 출간된 소설들을 모두 사서 읽었다. 산문집은 더 좋아한다. 소설가들의 산문집이란 허구의 세계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들려주는 내밀한 수다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설가가 들려주는 생활의 이야기들, 즐겨 듣는 음악과 감명 깊게 읽은 책과 본 영화들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산문집에서 찾고자 한다. 『뭐라도 되겠지』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지은 제목 같기도 해서 좋아한다. 『모든 게 노래』는 제목처럼 책의 빛깔이 노랗다. 세상 모든 게 노래, 그래 어떤 날은 세상이 노랗게만 보일 때가 있다.
『좀비들』은 두 번 읽었다. 종이책으로 읽고 전자책으로도 읽었다. 소설 속 인물인 뚱보130을 좋아한다. 한 작가에 대한 글을 쓰면서 좋아한다고 여러 번 쓸 수 있어서 좋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별게 있나.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이 나올 때 서점사에서 주는 파란 공책의 굿즈를 받았다. 글을,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응원이 담긴 파란 공책. 필기도구와 좋아하는 소설들이 소개되어 있었던 공책. 중혁 작가는 소설을 쓰기 위한 방법들을 몇 가지 아주 조금 제시해 놓고 (더 알면 다친 다는 듯) 이 정도 알려줬으니 당신도 한 번 써보라는 듯 줄 조차 없는 백지들을 남겨 놓았다.
써보라고, 인물을 만들고 줄거리를 생각하고 손에 쥐기만 하면 술술 써질 것 같은 필기도구들을 알려줬다. 그 공책에 이야기를 적었으면 좋았겠지만 한동안 책꽂이에 꽂아두고 다른 책들을 읽고 딴생각에 잠기곤 했다. 파란 공책에서 못다 한 중혁 작가의 창작의 비기와 연장들, 시험을 풀듯 다음 대화를 생각해야 하는 문제들이 담긴 창작서가 나왔다. 역시 제목도 무한 긍정과 초사이언적인 희망이 담겨 있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 한때 거실 곳곳에 걸려 있던 하면 된다 라는 가훈처럼, 뭐라는 거야, 하면 된다니 차라리 라면 된다가 더 웃기겠군 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제목으로 오인받을 수도 있는 제목으로 창작서를 내놓을 수 있는 대체 불가의 당당함을 좋아한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문장들이 거슬린다. 작가는 『무엇이든 쓰게 된다』에서는 한 문장 안에 같은 단어들이 들어간 문장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뿐이다. 이 책은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하고 구성과 인물을 만드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지 세세하게 나열하지 않는다. 다른 소설 쓰기의 창작서와는 다르게 이 책은 작가가 글을 쓸 때 사용하는 도구들로 시작한다. 연필과 독서대, 모니터, 공책과 메모롤, 사용했던 컴퓨터들의 역사로 출발한다. 근사하다. 나랑 비슷하다. 내 책상 서랍에도 연필과 펜들이 색깔별로 가득 들어 있다. 색이 연하고 곧 품절될 것 같아서 형광펜은 같은 색으로 세 개에서 네 개씩. 펜텔 그래프와 유니 샤프, 누를 때마다 샤프심이 쓰기 좋게 나온다는 구루토가, 스테들러는 당연히 샤프와 연필이 같이 있다. 수첩과 포스트잇, 핸디 테이프, 메모지, 공책은 서랍과 책꽂이를 점령했다.
쓴다. 쓸 것이다. 언젠가는.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나는 쓰고 싶은 사람이니 당연히 쓸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글쓰기 연장들을 사서 모았다. 좋은 글을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 샀다. 읽을 것이다. 샀는데 계속 신간이 나온다. 또 산다. 책이 쌓이고 있다. 어느 순간 책이 쌓여 가는 걸 즐긴다. 머리맡에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이 놓여 있다. 겨울이라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쳐도 바람이 들어온다. 도서관 책들은 커튼을 눌러줘서 바람이 들어오는 걸 막아준다. 책의 쓸모를 발견한 순간이다. 쓰고 읽는다. 읽고 쓴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는 여느 창작서와는 다르다. 일단 재미있다. 작가의 연장들을 구경하는 재미, 글쓰기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작가라는 사람도 나와 다르지 않구나 생각하게 하는 재미, 글쓰기 책인데 실전 그림 그리기라는 부분이 있어 그림을 못 그려도 그려보라고 부추겨서 우스운 그림을 그리게 만드는 재미, 수능 영역처럼 만들어진 대화 완전정복 문제를 풀면서 역시 나는 찍기도 못하구나 답 사이로 막 피해 가는 멍청함을 한 번 더 확인하는 재미.
소설을 쓸 것이라고 잘난 척만 해댔지 맞춤법, 비문 없이 문장 쓰기, 문법, 인물 묘사, 구성 짜기, 문단 나누기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이게 문제다. 알지 못하면 열심히 배우면 되는데 잘 알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배우지 않는다.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니라고 어물쩍 넘기는 것이다. 대신 나는 많이 읽잖아. 대가들이 그랬어, 무조건 읽으라고. 열심히는 읽는데 머리를 쓰지 않으니 고급 기술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작가들이 쓰는 창작서들을 읽곤 했는데 읽고 나서는 잊어버렸다. 잊고 비문을 써대고 마음대로 문단을 나누고 묘사는 귀찮아서 진술로만 썼다.
'창작의 비밀을 알아내려는 마음과 창작의 비밀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 사이의 에너지가 글을 쓰려는 동력이 되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라는 문장을 읽고 감동했다. 소설 작법서들을 읽으며 알고 싶었던 창작의 비밀을 무식한 나는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소설을 못 쓰는 것이다, 하지만 기술 따윈 몰라도 된다, 쓰고 싶은 대로 쓰는 현실이 절망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무엇이든 쓰게 된다』에서 확인했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의 예언은 맞았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를 읽고 나는 나만 즐거운 이 글을 썼다. 남들이 읽어주지 않아도 전기 낭비를 하고 있어도 차라리 이러고 있을 시간에 인기 드라마라도 보지 그래라는 핀잔을 들어도 쓰고 싶은 문장들이 있는 것이다. 문장들은 대책 없는 낙관적인 나의 미래에 주문을 걸어온다. 뭐라도 되겠지 그러니까 무엇이든 쓰게 된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