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먹다 - 제1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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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규의 『달을 먹다』를 읽고 정작 내가 산 책은 앤드류 솔로몬의 『한낮의 우울』이었다. 책의 마지막 김언수와 인터뷰한 내용에서 김진규는 오래 우울증을 앓아 왔다고 털어놓았다. 갑자기 누군가의 고민과 슬픔을 듣는 일은 어렵기만 했다. 직접 얼굴을 마주 보면서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라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꽤나 고심했을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글자로 마주한 작가의 내밀한 아픔에 깊게 공감했다. 힘들었겠다, 고생했겠다는 과장된 표정 없이 작가가 바이블로 여겼다는 책을 사기로 하고 수첩에 적었다. 
  두껍고 무거운 『한낮의 우울』을 읽으면서 지지부진한 이십 대 중반을 어물쩍 넘겨볼 생각을 했다. 탈 없이 넘기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살고 싶었다. 마당에는 늦가을로 접어들자 은행알들을 툭툭 땅으로 떨어트리는 무심한 은행나무가, 요양원에 부인을 보내고 혼자 살아가는 주인집 할아버지가 볕을 쬐고 있었다. 태양의 고도가 낮아지는 시점에 모두들 빛을 바라며 살아가고 있었다. 
  『달을 먹다』  속 문장들을 꼭꼭 씹어 읽었다. 묘연이 국화주를 담그는 장면에서 난이가 꽃을 찾아 탐하는 묘사까지. 문장은 단 한 문장도 허투루 쓰이지 않았다. 묘사가 지나간 자리에 인물들의 고독한 속내를 구구절절이 적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죄다 사랑에 빠져, 사랑에 미친 자들이었다. 반상을 허물고 족보를 뛰어넘는 사랑에 목마른 사람들이었다. 목이 말라 입이 짜고 끝내 말하지 못한 말들을 속으로 삼켜야 하는 운명을 가진 자들의 말들의 향연은 축축했다. 
  실패한 사랑의 이면을 들추어 낸다. 묘연이 낳은 아들 희우는 난이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난이는 묘연의 이복 자매 하연이 낳은 딸이다. 외가의 이상한 관계로 맺어진 그들은 사랑을 말하지도 못한 채 서로를 향한 그리움으로 자신들을 죽여간다. 『달을 먹다』에서 인물들의 관계도를 그려보면 가문과 신분으로 얽혀 있다. 사랑을 느끼는 상대는 가문 속 사람이거나 신분이 그보다 낮은 자들이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걸림돌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다. 정조에서 순조로 넘어가는 시기를 다룬 소설은 현대로 넘어와 대입할 수 있는 유사성이 있다. 
  흔들리는 전철 안에서 그가 말했다. 이제부터 애인을 만들어야겠어. 나는 물었다. 그게 만든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거야? 얼마 후 그는 애인이 생겼다고 전해왔다. 선언 끝에 그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하는 말을 들려줬다. 나이도 많고, 직업도 없고, 부모도 없는데 애인까지 없다며 걱정을 해줬다고. 그게 걱정인지 비아냥인지 그를 통해 자신의 현재를 괜찮다고 여기는 안심인지 모를 말들이었다. 
  대체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지점이 어디인가. 상대의 무엇에 반해 모든 것을 주고도 없는 것까지 주려고 하는가. 기현은 이복동생 하연을 지켜주기 못해 중이 되었다. 최약국은 자신의 아내를 버려두었다. 여문은 끝내 향이를 찾지 않았다. 향이가 물에 빠져 죽자 향이의 집에 들어가 미친 사람으로 살았다. 죽은 언니의 집을 찾아온 난이는 그녀 역시 희우의 사랑을 갈급한 나머지 몸도 마음도 줄어들어갔다. 
  가문과 품계를 따지고 뒷배경이 단단한 집안을 물색해서 결혼한 그이들의 끝은 미치거나 죽거나 도망갔다. 결혼의 질서는 소설 속 시대에서 한참이나 흘렀는데도 변함이 없다. 사랑에 빠진 자들이 결혼을 결말로 여기기 시작하자 법칙과 관례와 관습들이 튀어나온다.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방법으로 결혼을 선택한다. 사랑에 빠진 자들은 그래서 미친다. 조건 없이 상대를 사랑하다가 조건이 중요한 시점이 온다.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랑이란 없다는 걸 아는데도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든다. 설명과 이해가 뒤따르지 않는 사랑을 하려는 자들의 숨은 이야기가 담긴 『달을 먹다』를 읽으며 늦가을의 햇살을 등지고 여름의 우울을 털어냈다.
  또 밤이었고, 가을이었다. 버리기에 좋았다(19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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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7-11-02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님??@@

2017-11-02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대장 김창수
김탁환.이원태 지음 / 돌베개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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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 작가를 좋아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적 사건들을 소설로 재해석하는 능력에 감탄합니다. 청년 김구의 이름을 가지고 어떤 이야기로 풀어 놓았을지 기대됩니다. 김구 선생의 청년시절로돌아가그의이름을돌려주려는시도에박수를보냅니다.김창수의나라를 향한집념에가슴이뜨거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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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혀 -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권정현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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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식을 탐하지 않는다. 다만 살기 위해 먹는다. 배가 고팠던 기억은 음식에 대한 탐욕으로 변질 되었다. 나눠 먹는 것에 인색하고 허겁지겁 먹느라 소화는 나중으로 미룬다. 혼자 먹는 식사에 익숙해지고 누군가와 음식을 나눠 먹는 것에 어색하다. 허기를 잠재우고 비로서 포만감이 들때 돼지처럼 먹었구나 자괴감이 밀려온다. 소량의 음식을 담에 접시에 장식하듯 담아 전시 하듯 먹는 식사에는 관심이 없다. 칼로리를 계산하고 몸에 좋은 것을 가려 먹는 일은 요원하다. 음식의 철학은 없다. 맛집을 찾지도 않는다. 몇 시간을 기다리고 줄을 서야 하는 곳은 끔찍하다. 싸고 푸짐한 곳에서 여러번 찾아서 익숙한 곳에서 말 없이 외식을 할 뿐이다. 
  권정현의 『칼과혀』의 주인공 야마다 오토조는 만주국 관동군 사령관으로서 음식에 대한 철저한 철학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밀정으로 잡혀온 왕첸을 죽이지 않는다. 그가 요리사라고 말을 하자 제안을 한다. 한 가지 재료와 조리기구를 가지고 불로서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기름과 어떤 양념도 허용치 않는다. 첸은 그 제안에 응한다. 소설의 배경은 일제 강점기. 일제가 만주에 괴뢰 국가를 세우고 황제 푸이를 집정으로 안치고 불안한 나날을 이어가는 시기를 그렸다. 오토조는 전쟁에 관심이 없다. 야망과 권력욕도 없는 인물이다. 스스로를 매끼 맛깔나는 음식에 목말라하는 요리애호가이자 예술비평가 라고 이야기한다. 군인이 되는 것보다 선생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인물이다. 그는 잡혀온 첸을 데리고 미식의 세계로 빠져든다. 
  첸은 자신의 아버지가 물려준 도마를 보물처럼 떠받드는 요리사다. 아버지는 이족의 음식과 광둥 요리를 다양하게 다룰줄 아는 요리사였다. 아버지가 허망하게 목이 꺾여 죽자 첸은 요리의 세계로 들어간다. 도망가지 않고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잃어버린 나라를 위해 적을 죽이려 한다. 오토조의 허무맹랑한 제안을 받아들이고 극락사에서 구한 송이로 요리를 한다. 오토조는 첸을 살려주고 주방에서 요리를 하게 한다.
  이 소설은  생존을 향한 인간들의 지독한 욕망을 음식과 요리라는 소재로 그려내고 있다. 전쟁중에도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 재료를 구해 요리를 하고 탐식한다. 배고픔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먹는다는 것은 살겠다는 의지다. 조선 여인 길순이 첸의 어머니 베베와 음식을 만들고 몇 번이나 차를 우릴지 생각하는 것은 잃어버린 나라에 살면서도 살아가겠다는 희망이다. 땅을 빼앗고 사람들을 죽이고 드넓은 영토를 차지하기위해 괴뢰 국가를 세운 제국의 인간들도 먹어야 한다. 땅을 빼앗기고 남쪽 섬에 가서 취직 시켜 준다는 말을 믿고 배에 올라탄 식민지인들도 먹어야 살 수 있다. 
  죽음이 도사리는 곳에서 미식이 탄생한다. 재료를 손질하고 살아 있는 것들을 죽여야 한다. 칼로 자르고 썰고 불에 데우고 굽는다. 칼과 불을 통해 만든 요리는, 재료를 죽인 요리는 다른 향기와 맛으로 인간의 가장 예민한 감각인 혀에서 춤을 춘다. 혀가 느끼는 감각을 포기하지 못한 인간들은 이제 죽음도 두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토조는 자신을 독으로 죽이려고 했던 첸을 다시 한 번 살려둔다. 독이 든 음식으로 죽을뻔 했던 오토조는 죽여야 하는 대상인 자신을 먹이기 위해 요리를 해야 하는 운명을 첸에게 부여한다. 죽음과 맞바꾼 음식을 오토조는 포기하지 않는다. 
  소설은 문장으로 밀고 나간다. 음식 묘사는 입에 침이 고인다. 칼과 불의 위험에서 만들어진 요리를 먹는 인간들의 혀는 간사하다. 가장 부드럽고 내밀한 기관인 혀로는 살수도 죽을 수도 있다. 욕심을 발설하고 욕구를 해소하는 혀. 원자 폭탄이 떨어지고 천황이 항복을 말하는데도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참혹하다. 
  살고 싶다. 끝까지 살아서 아름다운 날들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가을 길에서 만난 하얀 나비는 누구의 영혼인가. 죽은 자가 보내온 안부의 인사로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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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는 곳으로 오늘의 젊은 작가 16
최진영 지음 / 민음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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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영의 소설 『해가 지는 곳으로』의 첫 문장은 당신은 한국을 아는가?(9p)로 시작된다. 당연히 안다, 한국. 늘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그 안에서 우리는 밥 먹고 웃고 걱정하며 살아간다.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면 외신이 먼저 떠들어대고 전쟁이 날까 은행에 가서 현금을 인출해 오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곳, 한국. 이분법적 사고가 현재 진행 중인 여기에서 우리는 사랑을 시작한다. 이방인도 현지인도 꿈을 꾸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이 땅에서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한국을 떠나온 사람들이 있다. 어린아이 간을 먹으면 낫는다는 해괴한 소문이 퍼지고 약탈과 파괴가 들끓는 모국을 버리고 대륙으로 떠나온 단과 류, 도리와 미소, 지나 가족, 건지가 있다. 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휴전선이 있는데 여전히 남과 북은 대치되고 있는데 그들은 대륙으로 향해간다. 그들이 살아가는 한국은 통일이 된 상태일 수도 있고 가뿐하게 지뢰 따위는 제거하고 북으로 중국으로 러시아로 달아날 수도 있는 절박한 상황일 수도 있다. 
  세계는 바이러스를 잡을 백신을 발명하고도 속도에 뒤처져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다. 건물은 파괴되고 강간과 도둑질이 일상으로 자리 잡은 대륙에서 도리와 미소는 해가 지는 곳으로 가려고 한다. 러시아 대륙으로 설정된 배경에서 그들이 견딜 수 없는 것은 추위와 좀비처럼 변해버린 사람들의 잔인한 행동이다. 말을 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동생 미소를 지키기 위해 도리는 도둑질을 하고 타인의 선의를 믿지 않는다. 그녀들이 지나 가족을 만나 트럭 한 칸을 얻어 타고 길을 떠나면서도 말을 하지 않고 눈치를 살피는 것은 지나 아버지의 한마디 때문이다. 차에 타면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치러야 할 거다.(32p) 폐허가 된 세상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남을 공격하고 자신조차 믿지 않게 되는 것이다.
  파괴된 세계에서 전쟁을 겪고 있는 듯한 상황에서 그들은 사랑을 시작한다. 일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미루고 감춰왔던 사랑을 꺼낸다. 나중으로 유보되고 양보한 사랑을 들추어낸다. 대출금과 적금 납부의 하루에서 방관했던 서로를 향한 사랑과 미움의 감정들을 바이러스로 가득 찬 세계에서 보여준다. 살아가는 것은 대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그들은 사랑을 시작하는가. 나를 잃지 않는 일만이 서로를 만날 수 있다는 믿음만이 그들이 꾸는 꿈이 된다. 
  최진영의 소설들은 서사가 탄탄하다. 단단한 이야기 속에 버무려진 문장들은 힘이 있고 살아 있다. 단번에 소설을 읽어낼 수 있게 하는 흡인력이 있다. 정돈된 문장 속에서 안정된 이야기를 구사할 줄 안다. 과잉된 문장으로 서사 속을 헤매지 않는다. 살아가는 것과 살아남는 것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 질문하는 이 소설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은 의문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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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는 입을 다무네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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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 씨는, 어떻게 보았어요?
앞뒤 자른 말이었지만 무슨 얘긴지는 알아먹었다.
온갖 보물이 들어 있는 다락방 같은 여자.
여혜는 이경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뭐 더 없냐는 듯.
영원한 동심, 우주만큼의 자유, 한낮의 무의식, 또······.
그런 뻔한 얘기 말고, 그냥 즉물적인 느낌을 얘기해 봐요.
듣고 보니 이경은 자신이 그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슬펐어요.
슬프다.······뭐가?
우리가 몸을 가졌다는 것, 마음도 가졌다는 것. 어딘가로 향해 매 순간 달려가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이.
여혜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아! 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지. 그런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두어개씩 하고 정작 학교는 제대로 나가지도 못하는 이경.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해서 오늘 점심은 5천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해결하는게 고민인 하루를 가진 이경. 그렇게 회사에 다니다가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앞으로도 계속 이런 삶이 펼쳐질 것 같은 예감에 부랴부랴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갔다. 저금해 둔 돈을 까 먹으며 일 년을 공부하는 그녀를 찾아온 친구는 이경이 원하는 대학을 써 둔 종이를 보고 큿 하고 웃었다.
  엄마는 이경을 할머니에게 맡겨 두고 집을 나갔다.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가 죽고 그 집에 월세를 받기 위해 친구와 산다. 출석이 모자라 학점이 엉망인 교양 과목 교수를 찾아가 부모도 없고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안되는 제 사정을 설명한다. 교수는 기말때 제출하는 영상 과제를 충실히 이행하면 깎인 점수가 만회된다는 팁 같지도 않은 이야기를 한다.
  자신을 좋아하는 현수에게서 받은 카메라를 가지고 이제는 노래를 하지 않고 은둔해 있는 가수 율을 찾아가 다큐멘터리 작업을 한다. 율은 말이 거의 없고 사회 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로 우울에 빠져 있다. 소설은 율이 꾸는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카메라를 다뤄 본적도 영상물을 제작해본 적도 없는 이경은 흔들리는 손떨림을 그대로 노출한 채 촬영을 한다. 율은 꿈에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자신의 몸이 사라져가는 장면을 이야기 한다. 무대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그에게 목소리와 악보를 적을 손이 사라지는 꿈은 현실에서도 이어진다. 스스로 천재라고 자부하는 그의 음악은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지고 그가 재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멀다.
  이경이 찾아와 서툰 솜씨로 율의 자아를 깨우지만 그와 함께 살아가는 여혜는 그 두드림의 세기가 일정치 않다고 느낀다. 빔 벤더스의 다큐를 같이 본 후 여혜는 이경에게 감상을 묻는다. 사는 것 자체가 누군가 몰래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는 페이크 다큐 같은 삶을 살아내는 이경은 몸과 마음의 존재를 슬퍼한다. 
  작가 정미경의 마지막 작품이 된 『가수는 입을 다무네』의 줄거리를 따라가다보면 마주치는 삶의 황폐함과 불완전함 때문에 마음이 스산해진다. 작가는 암말기 선고를 받고 한 달이 지난 다음에 죽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을 거부하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 곁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아들의 결혼식에 가고 싶어 했으나 수척해진 얼굴을 화장으로도 가릴 수 없어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작가가 쓴 마지막 단편을 작년 가을 이맘때쯤 읽었다. 작가는 떠났지만 작품은 남았다.
  소설은 이경과 가수 율의 삶의 궤적을 연출 없는 다큐의 어조로 보여준다. 타자의 개입 없이 카메라로 찍는 흔들리고 거친 질감과 영상미를 가진 화면으로 삶을 그려낸다. 틀에 박힌 듯 억지 감동과 눈물을 짜내는 영화 같은 방식이 아니다. 이경에게 과제를 내준 교수는 영화를 찍어 오지 말라고 한다. 이경은 율과 인터뷰를 하며 그의 이야기를 찍는 한편 그녀를 버리고 떠난 엄마를 찾아간다. 엄마가 믿는 종교를 들추어 내고 행복 없는 신산한 일상을 거짓 없이 찍는다. 
  기형도의 시 제목을 가진 이 소설은 율이 노래를 하지 않게 된 것과 예술이 가지는 허상을 인물을 통해 그려낸다. 율의 부인 여혜는 더이상 노래 하지 않는 남편의 고통을 가만히 응시한다. 자신의 고통을 감춰두고 율의 침묵과 침잠을 곁에서 아파한다. 입을 다문 가수의 곁에서 감내하는 일상의 평범함을 그리워한다.
  예술이 우연에 기대어 유명해지는 것과 삶이 주는 무기력함을 작가 정미경은 담담하게 표현한다. 소설은 이경과 엄마의 일상적인 대화로 끝이 난다. 소설은 끝이 났고 결말은 지은 작가의 삶 역시 안타깝게도 마지막을 말하고 말았다. 생경한 것은 죽음이 아닌 삶 자체인지도 모른다. 죽었다는 것에 놀라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뜻밖의 일이 되어가는 시대. 작가 정미경의 명복을 빈다.



가수는 입을 다무네


걸어가면서도 나는 기억할 수 있네
그때 나의 노래 죄다 비극었으나
단순한 여자들은 나를 둘러쌌네
행복한 난투극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어리석었던 청춘을, 나는 욕하지 않으리

흰 김이 피어오르는 골목에 떠밀려
그는 갑자기 가랑비와 인파 속에 뒤섞인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
모든 세월이 떠돌이를 법으로 몰아냈으니
너무 많은 거리가 내 마음을 운반했구나
그는 천천히 얇고 검은 입술을 다문다
가랑비는 조금씩 그의 머리카락을 적신다
한마디로 입구 없는 삶이었지만
모든 것을 취소하고 싶었던 시절도 아득했다
나를 괴롭힐 장면이 아직도 남아 있을까
모퉁이에서 그는 외투 깃을 만지작거린다
누군가 나의 고백을 들어주었으면 좋으련만
그가 누구든 엄청난 추억을 나는 지불하리라
그는 걸음을 멈춘다, 어느새 다 젖었다
언제부턴가 내 얼굴은 까닭 없이 눈을 찌푸리고
내 마음은 고통에게서 조용히 버림받았으니
여보게, 삶은 떠돌이들을 한 군데 쓸어 담지 않는다. 그는
무슨 영화의 주제가처럼 가족도 없이 흘러온 것이다
그의 입술은 마른 가랑잎, 모든 깨달음은 뒤늦은 것이니
따라가보면 축축한 등뒤로 이런 웅얼거림도 들린다

어떠한 날씨도 이 거리를 바꾸지 못하리
검은 외투를 입은 중년 사내 혼자
가랑비와 인파 속을 걷고 있네
너무 먼 거리여서 표정은 알 수 없으나
강조된 것은 사내도 가랑비도 아니었네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中에서,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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