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최현숙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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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방, 책상 꾸미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가만히 찬찬히 생각해 본다. 매일 책을 사들이는 일에 대해서도. 한 문단씩 글을 쓸 수 있게 나온 노트를 몇 권씩 장바구니에 담아 놓은 일까지도. 무언갈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대단한 사람이 아닌지라 뾰족한 답은 없다. 다만 짐작하기에 쓰지 못하는 일에 답답함을 소비로서 풀어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정도. 


쓸데없다고 하면 쓸데없는 일. 향이 괜찮은 방향제를 두 개 사서 방에 놓아 놓는 일. 냄새에 민감한 나로서는 방문객이 전무후무한 집이지만 집에 들어왔을 때 이상한 생활의 냄새가 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비슷한 옷을 사고서 잘 샀다고 나를 위로하는 일. 입고 싶을 때 입어야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안 그래, 지나가고 있을 젊음을 만끽하고 싶어서. 


무엇이든 쓴다는 아무 말이나 쓴다와 같다. 어차피 쓰는 거니까. 문제는. 문제는. 없다고 할란다. 내가 쓴다고 하는데 문제가 될 일일까. 최현숙의 산문집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를 읽다 보니 그 생각은 확고해졌다. 나에 대해서든 부모에 대해서든 쓴다. 살아오면서 부끄럽고 치졸했던 일도 쓴다. 글의 영향력은 쓰는 자의 영향력일진대 쓰는 자의 영향력은 없으므로 그냥 막 쓰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무언갈 마구 사들이는 일을 잠시 멈출 수 있지 않을까. 


엄마는 내게 이런 부탁을 한 적이 있다. 자기가 나이 먹고 돈을 못 벌면 한 달에 20만 원씩 부쳐 줄 수 있겠느냐고. 나는 그건 할 수 있지 했다. 결국 엄마는 나이 먹고 돈을 못 벌 수 있는 행운을 갖지 못했다. 살아 있어야 나이도 먹고 돈도 못 버는 시기도 갖는 게 아닌가.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는 엄마와의 그런 마음 아픈 기억들을 떠올리게 했다. 


어린 시절 돈을 훔쳐 스스로를 도둑년이라고 하던 때의 이야기부터 액취증의 기억, 가족과의 결별 스토리, 늙어가는 몸에 대한 단상, 노숙인들과 보내는 노년의 지금까지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는 거침없이 숨김없이 한 인간의 생애를 바라보며 들려준다. 자신을 자신이 조망하는 시선이 압권이다. 후회나 변명의 언어는 없다. 그때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같은 비루한 관점은 허락하지 않는다. 


걱정도 유전일까. 어느새 나도 그때의 엄마와 같은 걱정을 하고 있다. 눈도 안 보이고 나이 많다고 나가라고 하면 무슨 일을 해야 할까. 퇴사자들에게(딱히 궁금한 건 아니지만 묻는다. 예의상. 이제 뭐 하실 거냐고. 그들 역시 그냥 대답해 준다는 대충의 답으로 장사를 할 거라고 한다.) 농담으로 저 일 잘하니까 저 쓰세요 한다. 노후 대비책으로 말이다.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는 하찮은 농담을 하는 나에게 일갈한다. 늙음으로 찾아오는 불행은 소문일 뿐이라고. 카더라 식의 출처 없는 무성의한 농담조차도 되지 않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그렇군. 두려움을 심는 일. 자본주의 사회는 두려움으로 굴러간다. 넌 이제 늙을 거야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겠어. 보험 들고 대출받아서 집 사고 투자해야지. 결혼도 해서 아이도 낳고 그래야 노후가 편하지. 


구술생애사 작가, 소설가, 홈리스 행동가 최현숙은 그 모든 두려움을 소문으로써 날려버린다. 오래 살아남은 자의 조언이자 충고이자 잔소리 같은 말이라서 더더욱 신뢰가 간다. 그가 말하는 족과 관련된 관혼상제 건너뛰기, 원가족과 단절하기, 비급여 항목 정확히 묻기, 반려동물의 이견 지지하기, 간단한 삶에 수긍하며 살기 등 두려움을 소문으로 여길 수 있는 항목을 알뜰히 취해야겠다. 늙을 수 있다는 건 특권이다. 어느덧 그런 사회가 되어버렸다. 늙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므로 매일 책을 사는 일에 자책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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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 어딘가에는 @ 있다 시리즈
한인정 지음 / 포도밭출판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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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문제 아니다. 다음 문장에 비어 있는 곳에 낱말을 채워보자. 어딘가에는 ○○이 있다. 무엇무엇이라고 읽을 텐데. 혹은 땡땡이라고. 생각나는 게 있는지. 곧바로 생각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 어딘가 시리즈 중 하나인 책의 제목이다. 정확히 알 수 없는 어느 곳인 어딘가에는 무엇이든지 있을 수 있다, 무엇이든지 있다. 


짐작하기 어렵고 확신할 수 없지만 어딘가, 무엇무엇은 있다. 싸우면서 소리치는 자들의 외침이 있다고 한다면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는 충북 옥천군에 사는 이주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온 여성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실명 대신 나무, 바다, 새벽, 여름으로 불리는 그녀들은 자신이 겪어온 삶을 이야기한다. 


미디어는 이주 여성의 삶을 전부 보여주고 알려줬을까. 방송에서 보여준 대로 극적이거나 자극적인 부분에 속지는 않고 있나.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는 그동안 이주 여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국적만 얻고 도망가는 여성들이라는 편견이 있지는 않은지. 결혼의 목적은 돈을 받아 고향에 보내기 위함이 아닌지. 


그녀들은 말한다. 도망을 가는 모습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도망을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알아야 한다고. 그런 행동을 하기까지 어려움에 처한 환경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돌봄 노동과 가사 노동에 이어 직업 노동까지 하는 그녀들의 삶의 모습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그녀들의 어려움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환경에 있었다. 


결혼하기 전 남편의 직업은 이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후에는 다른 것이었다는 것. 모국어를 쓰지 못하게 하는 시집 사람들. 단순히 외모만 보고 하대하는 사람들.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겪어야 했던 차별은 그녀들로 하여금 목소리를 내고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알려야 하는 이유를 만들게 했다. 그리하여 '옥천군 결혼이주여성협의회'가 생겨난다. 


옥천에는 이주 여성들이 산다. 옥천에는 '옥천군 결혼이주여성협의가'가 있다. 어딘가에는 하라면 하라는 대로 했다가 좌절을 겪은 이주 여성들이 만든 단체가 있다. 남편에게 맞아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아 상황을 설명하지 못할 때 무조건 빈 몸으로 나가라는 남편에게 맞설 때 집을 나와 갈 곳이 없어졌을 때의 어려움을 알기에 만들어졌다. 


공간이 필요하다. 모여 있을 자리가 필요하다. 나의 말로 말할 때 이해해 주고 도와줄 누군가 필요하다. 어딘가에는 그런 곳이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사는데 힘이 된다. 고민 없이 사 마실 수 있는 커피, 사 입을 수 있는 바지와 같은 맥락이다. 고민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 나의 어려움을 말할 수 있는 곳이면 된다. 고민 없이 무언갈 할 수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살아가진다. 더 이상 밤의 거리를 서성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어딘가에는 그런 곳, 그런 곳들이 많아야 한다. 옥천과 그 어딘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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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 여성 홈리스 이야기 우리시대의 논리 30
김진희 외 지음,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 기획 / 후마니타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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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대한 애착은 아니 집착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이제 와 환경 탓을 하고 싶지 않다. 탓으로 돌린다는 건 비교적 쉬운 회피 방법이면서 도피이기도 하니까. 내가 잘하는 것 중에 하나는 잊어버리기이다. 그래도 기억은 난다. 가방에 책과 교과서, 옷을 쑤셔 넣고 대문을 나서야 했던 밤이 있었다. 그 시절은 짐 싸기의 달인으로 살았다. 


다행히 집이 생겼고 집에 누워서 예쁘고 실용적이게 꾸며 놓은 집 소개 영상을 자주 본다. 어떤 유튜브 채널은 냉장고와 신발장, 수납장 안까지 보여준다. 남들은 어떻게 사나 궁금증과 호기심을 채워 준다. 보면서 영감받아 책상의 위치를 바꾸기도 한다. 쓰지 않는 물건을 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주말은 흘러간다. 청소 잠깐하고 누워 있다가 정리하고 다시 눕는다.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이 2년간의 취재 끝에 쓴 여성 홈리스 이야기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의 첫 번째 챕터를 읽으며 놀랐다. 이 책을 읽던 시간은 오전이었다. 특이하게 이번 주는 여섯 시와 일곱 시 사이에 눈이 떠졌다. 그전에는 알람이 울리기 전까지 누워 있었다. 그러다 어두운 생각에 빠지는 게 루틴이었다. 안되겠다 싶어 일어나 책을 읽었다. 그렇게 출근하기 전까지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를 읽었다. 


놀라고 이럴 수가 있을까 싶었던 첫 번째 이야기는 공원 화장실에서 청소를 하며 그 안에서 잠을 자는 1959년생, 주민등록이 말소된 자신을 이가혜라고 소개하는 여성의 사연이었다. 그녀는 2015년 봄부터 화장실에서 살았다. 화장실과 주변을 청소한다. 밤이 되면 문이 잠기지 않는 그곳에서 잠을 잔다. 누가 들어올지 몰라 깊은 잠은 잘 수 없다. 


가혜 님의 이야기 끝에 흑백사진이 한 장 작게 들어 있었다. 그녀가 머물고 있는 화장실 한편을 담은 사진이었다. 흑백이지만 그곳이 얼마나 깨끗한지 알 수 있었다. 화장실에서 산다니. 책을 읽어갈수록 화장실에서 지내는 건 흔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여성 홈리스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같은 처지에 있는 남성들의 노골적인 위협과 협박을 피해 화장실로 숨어든다고 했다. 


감히 나의 경험을 비할 바는 아니지만 화장실로 도망친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집이 있든 없든 화장실은 그런 곳이었다. 위험을 피해서 들어가지만 도리어 위험해지고 마는 곳.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는 여성 홈리스들을 취재하며 주거는 곧 생명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알린다. 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 가지 못했고 여자라는 이유로 남편에게 학대를 받았다. 


처음부터 집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집이 집이 아니었다. 집에서 나와야 했고 집을 구해야 했지만 노동을 할수록 점점 가난해지기만 했다. 역사에서 공원에서 화장실에서 산다. 주거 지원이란 게 얇은 합판으로 덧댄 길에서 사는 것과 다름없는 고시원과 쪽방으로의 이주가 전부였다. 정책은 어렵고 서류는 복잡하다. 그녀들이 단단한 벽과 방이 있는 곳에서 살수 있는 힘을 모으기 위해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는 쓰였다. 


집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타인의 불행을 보고 나의 현실에 안도하는 용도의 책이 아니다. 가방에 들어가는 것과 방에 들어가는 것의 차이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방에 들어가지 못해 가방에 들어가 사는 현실이 존재한다. 저 무수하고도 헉 소리 나는 금액의 아파트들은 누굴 위해 서 있는가. 홈리스이지만 활동가로서도 살아가는 서가숙의 외침을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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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김의경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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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부터 슬프다. 토요일에는 정신없이 누워 있다. 정신을 차리면 일요일 오전이다. 청소랑 이불 빨래 해놓고 다시 눕는다. 내일 월요일이구나 그러면서. 누워 있다 보면 잠이 온다.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한자 책, 영어책, 세무 자격증 책을 샀다. 사기만 했다는 슬픈 이야기. 책장 한편에는 그런 책들로 빼곡하고 원래의 정신으로 소설책과 시집을 사 모으고 있다. 


월급사실주의 동인에서 만든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는 모든 자기 계발을 포기한 한심한 눕순이가 산 최근의 책이다. 동인의 이름이 맘에 든다. 월급사실주의라니. 월급이라니. 말만 들어도 개 설레는 단어. 월급. 월급에 진심인 소설가들이 소설을 썼다니. 으아. 정말 좋구나. 일하고 먹고 살아가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애호하는 나로서는 사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오늘. 그러니까 월급날은 10일인데 10일이 공휴일이면 다음날 주는 곳이라 11일인 오늘 월급을 받았더랬다. 왜. 왜. 왜. 원래 월급은 일찍 주는 게 국룰 아닌가요? 뭐 대표 방침이 그러하니까 어쩔 수 없다만  빨리는 바라지도 않고 제날짜에 라도 받고 싶다. 알라딘에서 마침 기막히게 내 월급 날인 줄 알고 쿠폰을 주길래 책 샀다. 알라딘은 진짜 책 빨리 배송해 준다. 너 정말 고맙다. 


잊지 않고 정신 차리고(주말에는 없는 정신이 월요일부터는 돌아온다는 외거노비의 비루한 운명. 정신차려 이 각박한 세상에서.)급여명세서도 보냈다. 수고하셨다는 말과 함께. 다음에는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라는 예스러운 문구를 적어볼까나.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도 읽었으니 말이다. 원래 이 말은 급여명세서나 누런 월급봉투에 쓰인 말이니까. 주말 내내 누워서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를 읽었다. 한 편만 읽어야지 했다가 누운 자리에서 열한 편을 다 읽어버렸다라나 뭐라나. 그렇게 월급에 진심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사라져가는 일요일을 애도했다. 


삼각김밥 공장에 일하러 간 청년 노동자의 분투기 「순간접착제」를 시작으로 학습지 교사의 어느 여름을 그린 「밤의 벤치」, 점심 식대를 올리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 담긴 「광합성 런치」,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걱정에 걱정으로 지새우는 시간의 「숨바꼭질」 등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의 세계는 먹고사니즘의 간절함을 보여준다. 때론 기쁘지만 항상 지치는 기본값의 감정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전화를 걸 일이 많다. 이쪽에서는 밝게 말해도 대체로 상대방은 힘이 없다. 말을 하지만 잘 들리지 않아 사오정처럼 되묻는다. 이해한다. 암 이해하고 말고. 밝고 명랑하고 상냥한 게 이상한 일이다. 검증되지 않은 통계지만 목요일 오후에 사람들은 더 힘이 없다. 이제 목요일이라니 하는 감정이 전화를 타고 건너온다. 이서수의 소설 「광합성 런치」를 읽으며 웃고 울었다. 


재무팀장. 불혹의 나이. 차진혜는 좋아하는 박이재를 위해 식대 인상에 앞장선다. 목표는 식대 만 원. 7천 원으로는 회사에서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 동해 식당의 대구탕 밖에는 먹을 게 없다. 식대 때문에 박이재가 퇴사할 수도 있다는 소리를 들은 다음부터는 어떡하든 대표를 설득해야 한다. 이재가 휴게실에서 두유를 몰래 가져가려다 걸렸을 때 진혜는 더 가져가라고 말해준다. 엑셀을 못하는 인사팀 홍 차장이 비혼 축의금을 받기 위해 글을 써왔을 때는 농담을 건넨다.


특성화고의 현실을 담은 「섬광」, 코로나로 타격을 맞은 여행사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간장에 독」, 배달 일과 택배 상하차 일을 해서 번 돈을 여친과 유튜버에게 바치며 자신은 지하철에서 잠을 자는 스무 살의 하루는 「카스트 에이지」에 있다. 기획의 말에 장강명은 '우리 시대 노동 현장을 담은 작품이 더 나와야 한다'라고 밝힌다. 책에 실릴 소설의 규칙 중 하나는 '판타지를 쓰지 않는다'이다. 기계가 말을 하거나 타임워프를 해서 시공간을 떠돌고 지구에 자원이 없어 다른 행성으로 이주 해야 한다는 설정 따위는 없다. 


아파트 도색 작업이 한창 중이다. 누워 있다가 줄에 매달려 아파트 벽면을 세척 중인 사람의 흔들리는 몸을 보았다. 여기는 14층인데 사람을 만났다. 괴담이 아니다. 그 옛날 옛날의 공포 이야기. 밤에 공부하는데 창가에 할머니가 나타났다는. 여기는 이층인데 하는. 줄에 의지한 채 창과 창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람을 두고 나는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노동은 신성하다고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부추기는 한국 사회는 병들었다. 포괄임금제 그런 어려운 말은 모르겠고 식대를 주거나 점심을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 꿀 같은 주말에 김치볶음밥 만드는 시간도 아깝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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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총총 시리즈
황선우.김혼비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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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최선을 다해왔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일이 없었다.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기다렸다. 실패가 잦았고 성공은 흔치 않았다. 묵묵히 열심히 하자는 다짐을 매일 했음에도 최선과 열심인 일에는 어떠한 말을 기다렸다. 김혼비와 황선우의 편지글이 담긴 책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의 제목을 보고 깨달았다. 그동안의 나의 최선은 이상한 최선이었다는 것을. 


다들 살아있나. 죽지 않기 위해 버티고 있나. 정신은 죽고 몸만 남은 채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면 이미 죽었지만 다음 달 청구되는 지불 내역들을 갚기 위해 귀신이 된 채라도 일을 하고 있나. 세상의 중심은 나이므로. 내가 본 세계의 원리는 얄팍한 꼼수와 허수로 돌아갔다. 감히 이렇게 생각한다. 나보다 열심과 최선과 노력을 하지 않은 이들이 더 잘 살아가고 있다고. 나만 왜. 


맞다.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김혼비와 황선우가 주고받는 편지에서 실마리를 얻는다. 일이 끝나면 한자를 쓴다거나(너무 열심히 쓰지 않는다. 그저 쓰는 걸로 위안을 삼는다.) 목탁을 사서 두드리고 납득할 수 없는 죽음에는 끝까지 애도한다. 탁구를 하면서 재미 이상을 느끼고 번아웃으로 단어를 잘못 말해도 그것대로 웃을 수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 하나. 엄마는 옆으로 누워서 천수경을 들었다.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왜 저런 걸 들을까. 알 수 없었다. 이제야 이해와 마음이 간다. 몸이 허물어지고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날들에 바치는 성가였다. 출근을 하려고 눈을 떴다. 전날 읽은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의 내용이 떠올랐다. 유튜브에 목탁소리를 검색했다. 황선우의 방법이었다. 


알람이 울리기 전까지 목탁소리와 반야심경을 들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가자 가자 넘어가자, 모두 넘어가서 무한한 깨달음을 이루자. 오늘의 깨달음은 화를 내기 전에 왜 화가 났는지 생각해 보고 그대로 화가 난다면 화를 내면서 가라앉히자는 것. 화를 참으면 죽는다. 최선을 다하는 일은 화가 나는 일이었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며 물미역 같은 시간으로 살아도 된다.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는 이야기한다. 편지란 눈치 보지 않고 방해받지 않으며 나의 이야기를 최선으로 할 수 있는 장르이다. 가만히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들은 줄곧 자기 즉 나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싶어 안달이 나고 있었다. 편지를 쓰라고 혹은 일기를 쓰라고 말하고 싶다. 진짜 정말 사람들은 남에게 관심이 없다.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들을 때 에너지가 훨씬 많이 소모된다. 추임새, 표정, 자세를 갖춰야 한다. 사회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글은 어떤 자세든 용인된다. 심지어 울어도 된다.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는 나의 최선을 생각하고 선택하게 하는 책이다. 나의 최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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