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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은 위험해 ㅣ 회사 3부작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임성순의 장편소설 『문근영은 위험해』를 읽으며 든 생각이란 소설가가 신나서 썼구나였다. 쓰고 싶은 나머지 쓰는 걸 멈추지 못한 채 책상에 앉아 계속 계속 썼구나 그러니까 이야기가 끊기지 않는 거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쓰다가 막혔겠지. 막혀서 물 한 잔 마시고 걷기도 하고 누워 있기도 했겠지. 그러다가도 소설을 써야겠다는 열망에 차올라 다시 자판을 두들기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이다. 그만큼 소설은 거침이 없다. 이걸 전문 용어로 노빠꾸라 한다지.
소설은 제목처럼 위험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세 친구. 세 친구는 상징일까. 왜 친구는 세 명일까. 두 명도 있고 네 명도 있을 텐데.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면(거슬러 올라가시는 건 알아서들 하시길) 세 명의 친구를 데리고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이 전통적으로 먹히는가 보다. 시트콤 《세 친구》가 떠오른다. 유명한 장면 있지 않는가. 운전 연수를 하던 문숙이 우회전을 못 해 부산까지 직진해 가던. 뻘하게 웃긴데 배를 잡고 웃었다. 또 전문용어로 포복절도.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맞다. 세 친구.
『문근영은 위험해』에는 문근영만큼 위험한 세 친구가 나온다. 고등학교에서 왕따로 만난 세 친구는 사회에 나와서도 왕따 친구의 면면을 이어간다. 머리 좋은 승희, 음모론자 성순, 왕따 유경험자 혜영. 고등학교 2학년 새학기 첫 시간에 담임이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그들은 묶여서 왕따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름 유머를 구사한답시고 담임은 세 친구의 이름이 여학생 같다는 소리를 했다. 누군가 던져줄 먹잇감만 기다리고 있던 고2들은 만세를 불렀다.
샤방한 여학생의 이름을 가진 세 친구는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성순은 자퇴를 했고 승희는 퇴학을 당했다. 혜영만 남아 간신히 학교를 졸업했다. 성순은 유산을 물려받아 벼락부자가 되었고 승희는 천재적인 컴퓨터 실력으로 집에서 은둔하며 성인물 본좌로 이름을 떨쳤고 혜영은 재수 끝에 대학을 가서 사랑에 실패하고 현실 도피로 문근영을 숭배했다.
어느 날 세 친구의 꿈속에 문근영이 등장했다. 같은 꿈을 꾼 그들은 음모론자 성순의 이야기에 압도 당해 일을 꾸미기 시작한다. 문근영을 납치해 사람들을 구하고 나아가 지구를 지키겠다는 계획이다. 『문근영은 위험해』에는 세 명의 친구 외에도 소설가 성순이 등장한다. 『문근영은 위험해』를 쓴 현실의 레알 소설가 임성순, 『문근영은 위험해』 안에서 소설을 쓰며 회사의 협박을 받는 임성순, 문근영을 납치한 음모론자 임성순. 세 명의 임성순들이 혼란의 환장을 더한 난장을 보여준다.
『문근영은 위험해』는 임성순의 회사 3부작 시리즈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소설이다. 회사란 무엇인가. 그러니까 정말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어떻게 하면 무리 없이 그만둘 수 있을지 매 순간 고민하게 만드는 아침마다 눈을 뜨면 인간 존재와 더불어 세계의 근원이란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온갖 철학적인 고민을 하게 만드는 개똥 같은 곳이다. 성순, 승희, 혜영이 문근영을 납치하면서 알게 되는 회사의 실체는 더 가관이다. 여기서부터 스포. 지구는 외계인들이 만들어낸 게임의 배경일 뿐이었다.
인간들은 NPC였고 다양한 인간으로 변할 수 있는 문근영들이 지구에 들어와 멸종한 생명체 샘플을 채취하고 있었다. 지구인들의 삶은 외계인들이 만들어낸 게임 속이었다. 아등바등 지구인들이 살아가는 건 외계인 게임 유저들의 현란한 플레이였던 것이었던 것이다. 이 허무할 수가. 내가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혹은 전화를 하면서 쩔쩔매던 건 실력 없는 게이머의 플레이라는 것인데. 그냥 버그로 종료되면 좋겠지 싶다.
노란색의 각주와 함께 『문근영은 위험해』는 신나게 질주한다. 이야기 속으로. 소설 안에서 소설 쓰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걸 또 또 전문용어로 메타픽션이라고 한다. 『문근영은 위험해』는 그러니까 메타 픽션을 표방하다. 참 가지가지한다. 임성순이 임성순과 임성순을 만들어내서 소설을 쓰게 한다. 세상은 이미 거대한 음모로 가득 차 있어 음모와 함께 삶이 굴러간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개 많은 음모로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는 멀더와 스컬리의 활약이 이 세계의 유일한 생산성 있는 활동이 아닐까 진지한 고민에 빠진다.
광주 시민에게 발포 명령을 내리게 한 것도 미국과 소련의 합동 음모 작전이 뒷배경에 있었다는 성순의 그럴듯한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나는 메타 픽션의 세계 『문근영은 위험해』에 빠져 빠져 빠져 버렸다. 그나저나 책이 절판되었던 데 왜지? 이것도 회사가 성순을 이용만 하고 버린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