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유품정리
가키야 미우 지음, 강성욱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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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집안에 들여놓은 물건 중에 부피가 가장 큰 건 원형 테이블 세트이다. 가로 지름이 무려 1000mm나 된다. 의자 두 개도 같이 왔다. 생각은 이런 거였다. 아침에 빵이나 소시지, 두유를 서서 먹고 가지 않고 앉아서 음악을 들으면서 혹은 뉴스를 보면서 먹어보자. 교양 있는 아침이 되어보자.  테이블이 오고 조립을 하고 처음 며칠은 그렇게 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서서 먹고 갔다. 아침에 그것도 겨우 일어나는 내게 교양을 챙길 시간이 없다는 걸 구매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걸리적거린다는 이유로 원형 테이블은 창가 자리로 쫓겨났다. 춘식이 소파에 누워 있기 전에 잠시 앉아 있는 용도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는 슬픈 이야기. 한동안 집에 물건을 들이는 것에 신중했었다. 당장 필요하지도 않는데 사고 싶다는 기분에 충실한 나머지 집이 물건들로 가득 차 있는 걸 보고서 각성했기 때문이다. 정말 필요한 것만 사자. 그러면서 집안을 정리해 나갔다. 책을 팔고 입지 않은 옷을 정리했다. 비싼 신발도 신지 않으면 삭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키야미우의 소설 『시어머니 유품정리』는 며느리 모토코가 죽은 시어머니 집을 정리하는 이야기이다. 책을 읽어가다 보니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옷만으로 가득 찬 방, 냉장고 두 대에 들어 있던 음식들, 각종 플라스틱 반찬통과 비닐봉지들. 소설에 나오는 대사처럼 차라리 업체를 불러서 정리를 했었어야 했던 시간들. 정말 물건을 함부로 사지 말아야겠다. 아무리 싸다고 해도 옷을 사 모으지 말아야겠다. 비싼 옷이어도 먼지만 쌓인 옷은 입을 기분이 나지 않는다. 깨달음과 반성의 나날들. 


마트에 갔다가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신 모토코의 시어머니 집은 물건들의 천국이었다. 혼자 산다고 해서 물건이 없는 게 아니었다. 싱크대에는 그릇, 서랍장에는 옷, 심지어 인형 장식장에도 추억의 물건이 가득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사층의 집. 모토코는 혼자서 물건을 정리해 나가기 시작한다. 주위의 조언대로 업체에 맡길까 했지만 알뜰한 모토코는 자신이 해보겠다고 의지를 다진다. 


정리는 쉽지 않았다. 대형 폐기물 버리는 날은 지정되어 있고 종량제 봉투에 물건을 담고 계단을 왔다 갔다 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냉장고에 든 음식은 상하기 시작했고 베란다에는 화분과 커다란 돌도 있었다. 젊지 않은 나이의 모토코. 일을 하고 있어 온전히 정리에 시간을 보내기도 힘들다. 긍정적인 성격의 모토코는 대체 왜 이런 걸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을까 죽은 시어머니에게 푸념을 해가면서 씩씩하게 정리를 한다. 그러다가 시어머니의 진짜 모습도 알게 된다. 


모토코의 친정어머니는 시어머니와는 다르게 깔끔한 성격이었다. 병이 들었다는 걸 알고부터는 남은 이들이 자신의 물건 때문에 힘이 들까 봐 정리를 했다. 자신이 가진 물건 목록을 주면서 필요한 걸 고르라고도 했다. 시어머니를 단순히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소유욕이 강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도시에 살면서도 시어머니는 마음을 터놓고 이웃과 왕래를 했다. 모토코의 친정어머니는 남편에게 피해를 줄까 봐 인간관계를 철저하게 거부했다. 


두 어머니들의 상반된 모습을 떠올리면서 모토코는 무얼 남기며 살아야 할지 고민한다. 『시어머니 유품정리』를 다 읽고 나면 세상에 이런 며느리가 어디 있을까 놀랍기만 하다. 왕복 세 시간, 대중교통을 이용해 시어머니 집에 가서 물건을 정리하는 며느리라니. 어머 이건 꼭 사야 해라는 대사를 날리며 오는 지름신을 무찌를 수 있는 소설이다. 지름신에게 빙의 되어 구매하기 버튼을 누르는 나의 따귀를 철썩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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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회사 3부작
임성순 지음 / 실천문학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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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들어서 한 각오가 있다면 각오라고 했지만 대단한 건 아니고 그저 한 달에 한 번은 꼭 쉬자는 것이다. 작년에 쓰지 못한 연차가 쌓여 있고 2년 차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또 연차가 생기더라는. 이제 나도 4대보험 들고 1년이 지나도 계속 일을 다닐 수 있으니까. 한 달에 한 번은 쉬자. 연차 수당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쓰지 못하면 아깝다. 


이런 착각을 했다. 내가 안 나가면 일은 어떻게 되지? 내가 없으면 일이 안 되는 거 아니야? 거대한 착각. 내가 없어도 세상은 회사는 잘 굴러간다. 그리하여 나는 5월이 가기 전에 연차 하나를 쓰기에 이른다. 이 뭐 대단한 일이라고. 소심과 예민 빼면 시체인 나의 성격으로는 대단한 결심이다. 저 이때 쉬겠어요를 말하지 못하고 돌아온 날. 등신 중에 상등신이라고 나를 자책했다. 


나란 인간은 대체 어떤 인간인가? 나의 감정보다 상대방을 생각하느라 할 말도 못 하는 인간. 임성순의 회사 3부작의 마지막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신이란 존재하는가를 묻는다. 연차를 쓰겠다는 말을 못 하는 인간의 고뇌는 소설의 주제에 비하면 얼마나 사소하고 잡스러운가. 인간의 고통에 신은 응답을 하는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신부와 인간의 존재를 의심하는 의사의 이야기는 나의 하찮은 고민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래도 속상하다.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임성순의 전작들에 비하면 꽤나 묵직한 주제와 서사를 보여준다. 『문근영은 위험해』를 읽고 바로 읽어서인지 문체에 적응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전작은 꽤나 발랄하고 상큼까진 아니고 앙큼함. 사제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간 박현석 신부. 수술 중에 실수로 사람이 죽고 좌절감을 이기지 못하고 해외로 의료 봉사를 떠난 최범준. 


그들이 아프리카에서 만난 15년 전과 이후의 시간을 번갈아 가면서 소설은 들려준다. 순전히 타인을 이롭게 한다는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하러 온 것이 아니기에 그들은 그곳에서 수많은 갈등과 번민을 한다. 학살의 현장에서 다정했던 이웃이 한순간에 폭도로 돌변해 살인을 저지르는 그곳에서 현석과 범준은 신과 인간 존재의 근원을 묻는다. 


어리석은 인간에게 신은 어떤 존재인가. 고통을 받고 있는 인간에게 신은 어떤 답을 줄 수 있는가.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어리석고 고통받는 인간에게 신은 그저 침묵으로써 대답하고 존재한다고 말한다. 영화 《사바하》에서 박목사는 허공에 대고 묻는다. '어디 계시나이까.' 인간의 부르짖음에 신은 그 어떤 응답의 말도 해주지 않는다. 


다정한 이웃이 괴물로 변하는 현장에서 벗어난 그들은 다른 모습으로 재회한다. 범준은 아이의 죽음을 겪고 자살자들의 장기를 적출하는 회사를 차린다. 죽기를 원하는 자들의 죽음을 도와주고 버려질 장기를 꺼내 새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일. 그 일을 회사는 수확이라고 표현한다. 신의 존재를 부정한 채 사제 일을 하는 현석은 누군가의 오해를 뒤집어쓴 채 낯선 장소로 간다. 


나를 부수어 가는 일. 사는 게 벅차고 괴롭다 보니 신을 찾을 여유도 없다는 건 슬픈 건가 다행인 건가. 나의 나약함과 한심스러움을 지켜보는 일로 수양을 대신한다. 생각과는 다르게 사람들은 오히려 다정했다. 그런 다정한 사람들도 때때로 야수의 얼굴이 된다. 그것이 신이 침묵하는 인간 사회의 참모습이다. 내가 어떤 괴물인지 알아야 신과 마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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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은 위험해 회사 3부작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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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순의 장편소설 『문근영은 위험해』를 읽으며 든 생각이란 소설가가 신나서 썼구나였다. 쓰고 싶은 나머지 쓰는 걸 멈추지 못한 채 책상에 앉아 계속 계속 썼구나 그러니까 이야기가 끊기지 않는 거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쓰다가 막혔겠지. 막혀서 물 한 잔 마시고 걷기도 하고 누워 있기도 했겠지. 그러다가도 소설을 써야겠다는 열망에 차올라 다시 자판을 두들기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이다. 그만큼 소설은 거침이 없다. 이걸 전문 용어로 노빠꾸라 한다지. 


소설은 제목처럼 위험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세 친구. 세 친구는 상징일까. 왜 친구는 세 명일까. 두 명도 있고 네 명도 있을 텐데.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면(거슬러 올라가시는 건 알아서들 하시길) 세 명의 친구를 데리고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이 전통적으로 먹히는가 보다. 시트콤 《세 친구》가 떠오른다. 유명한 장면 있지 않는가. 운전 연수를 하던 문숙이 우회전을 못 해 부산까지 직진해 가던. 뻘하게 웃긴데 배를 잡고 웃었다. 또 전문용어로 포복절도.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맞다. 세 친구. 


『문근영은 위험해』에는 문근영만큼 위험한 세 친구가 나온다. 고등학교에서 왕따로 만난 세 친구는 사회에 나와서도 왕따 친구의 면면을 이어간다. 머리 좋은 승희, 음모론자 성순, 왕따 유경험자 혜영. 고등학교 2학년 새학기 첫 시간에 담임이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그들은 묶여서 왕따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름 유머를 구사한답시고 담임은 세 친구의 이름이 여학생 같다는 소리를 했다. 누군가 던져줄 먹잇감만 기다리고 있던 고2들은 만세를 불렀다.


샤방한 여학생의 이름을 가진 세 친구는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성순은 자퇴를 했고 승희는 퇴학을 당했다. 혜영만 남아 간신히 학교를 졸업했다. 성순은 유산을 물려받아 벼락부자가 되었고 승희는 천재적인 컴퓨터 실력으로 집에서 은둔하며 성인물 본좌로 이름을 떨쳤고 혜영은 재수 끝에 대학을 가서 사랑에 실패하고 현실 도피로 문근영을 숭배했다. 


어느 날 세 친구의 꿈속에 문근영이 등장했다. 같은 꿈을 꾼 그들은 음모론자 성순의 이야기에 압도 당해 일을 꾸미기 시작한다. 문근영을 납치해 사람들을 구하고 나아가 지구를 지키겠다는 계획이다. 『문근영은 위험해』에는 세 명의 친구 외에도 소설가 성순이 등장한다. 『문근영은 위험해』를 쓴 현실의 레알 소설가 임성순, 『문근영은 위험해』 안에서 소설을 쓰며 회사의 협박을 받는 임성순, 문근영을 납치한 음모론자 임성순. 세 명의 임성순들이 혼란의 환장을 더한 난장을 보여준다. 


『문근영은 위험해』는 임성순의 회사 3부작 시리즈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소설이다. 회사란 무엇인가. 그러니까 정말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어떻게 하면 무리 없이 그만둘 수 있을지 매 순간 고민하게 만드는 아침마다 눈을 뜨면 인간 존재와 더불어 세계의 근원이란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온갖 철학적인 고민을 하게 만드는 개똥 같은 곳이다. 성순, 승희, 혜영이 문근영을 납치하면서 알게 되는 회사의 실체는 더 가관이다. 여기서부터 스포. 지구는 외계인들이 만들어낸 게임의 배경일 뿐이었다.


인간들은 NPC였고 다양한 인간으로 변할 수 있는 문근영들이 지구에 들어와 멸종한 생명체 샘플을 채취하고 있었다. 지구인들의 삶은 외계인들이 만들어낸 게임 속이었다. 아등바등 지구인들이 살아가는 건 외계인 게임 유저들의 현란한 플레이였던 것이었던 것이다. 이 허무할 수가. 내가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혹은 전화를 하면서 쩔쩔매던 건 실력 없는 게이머의 플레이라는 것인데. 그냥 버그로 종료되면 좋겠지 싶다.


노란색의 각주와 함께 『문근영은 위험해』는 신나게 질주한다. 이야기 속으로. 소설 안에서 소설 쓰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걸 또 또 전문용어로 메타픽션이라고 한다. 『문근영은 위험해』는 그러니까 메타 픽션을 표방하다. 참 가지가지한다. 임성순이 임성순과 임성순을 만들어내서 소설을 쓰게 한다. 세상은 이미 거대한 음모로 가득 차 있어 음모와 함께 삶이 굴러간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개 많은 음모로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는 멀더와 스컬리의 활약이 이 세계의 유일한 생산성 있는 활동이 아닐까 진지한 고민에 빠진다. 


광주 시민에게 발포 명령을 내리게 한 것도 미국과 소련의 합동 음모 작전이 뒷배경에 있었다는 성순의 그럴듯한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나는 메타 픽션의 세계 『문근영은 위험해』에 빠져 빠져 빠져 버렸다. 그나저나 책이 절판되었던 데 왜지? 이것도 회사가 성순을 이용만 하고 버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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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여사는 킬러 네오픽션 ON시리즈 7
강지영 지음 / 네오픽션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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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더 글로리》를 재미있게 봤다. 극 중 동은이의 대사처럼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나 지금 되게 신'났다. 내용만 놓고 보자면 신나면 안 되는데, 신났다. 학교 폭력을 당한 동은이 10대, 20대, 30대를 다 걸고 연진이와 그 무리들을 복수하는 내용 때문에. 현실에서는 절대 동은이처럼 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복수는 통쾌했고 짜릿한 쾌감마저 일었다. 세상에 복수 자금을 모으기 위해 김밥 집과 목욕탕에서 일하고 과외까지 하다니. 이런 복수극이 그전에 있었나. 


동은은 차곡차곡 돈을 모아 최저시급과 비용 처리 비용은 따로 챙겨주면서 일을 해줄 이모님을 고용한다. 신마저 동은을 도와 연진은 천벌을 받는다. 드라마는 실화에 기반했다. 곱슬머리를 펴거나 웨이브를 하라고 있는 고데기를 몸에다 지지는 악행이 실제로 있었다.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는 대신 서로에게 칼을 쥐여 주면서 동은의 복수는 마무리된다. 


강지영의 소설  『심여사는 킬러』는 동은이와는 다르게 직접 칼을 들고 복수를 대행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름은 심은옥. 나이는 쉰한 살. 마트 정육점에서 일하다 주인이 도박을 하다가 쇠고랑을 차는 바람에 실업자가 됐다. 남편은 남의 가게를 들이 박고 죽었고 딸과 아들이 있다. 쉬지 않고 바로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심여사다. 생활정보지에서 '40세 이상 주부사원 모집, 월 300 보장, 비밀유지 상여금 500% 지급, 스마일'이라는 문구를 보자마자 전화를 거는 실행력까지 갖춘 심여사. 


급여가 높은 게 수상쩍지만 심여사는 스마일에 문을 두드린다. 그곳에서 심여사는 전직 정육점 사장과 근무자 경력을 살려서 일을 시작한다. 전직 킬러 박태상에게 칼 쓰는 법을 제대로 배워서 말이다. 제목처럼 심여사는 스마일에서 킬러로 일을 한다. 누구도 심여사를 킬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심여사의 직업적 능력이다. 아 그리고 스마일은 짐작대로 흥신소다. 박태상은 심여사에게서 킬러로서의 재능을 발견한다. 킬러로서의 조건을 딱 갖추고 있다고. 


망설이는 심여사에게 박태상은 금궤 하나를 건넨다. 현금으로 바꾸면 삼천만 원이라는 말에 심여사는 고개를 끄덕인다. 공과금, 월세, 등록금, 생활비 때문에 킬러, 즉 살인자가 된다. 『심여사는 킬러』는 지극히 현실적인 소설이다. 주인공이 킬러인데 현실적이라니 앞뒤가 맞지 않지만 읽어보면 알게 된다. 현실 밀착형 소설이라는걸. 누구나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박태상의 말처럼 스마일에는 의뢰가 끊이지 않는다. 


죽이고 싶은 이유는 다양했다. 소설은 각각의 인물을 중심으로 그들의 서사를 속도감 있게 풀어 놓는다. 그들이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이유를 알 때마다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일을 당했거나 당하고 있거나. 동은이는 머리가 좋고 끈기가 있다. 치밀함과 실행력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럼 심여사는? 특유의 수더분한 외모와 친화력 있는 성격으로 복수 대상자들과 유대 관계를 쌓는다. 안다. 복수를 하려고 누군가를 죽이는 건 범죄라는걸.


소설이니까. 드라마니까. 그게 허구니까. 현실에서 못 하는 일을 상상으로는 할 수 있다. 그것마저 없다면 진짜 이곳은 지옥이 되니까. 마음속에 쉴 곳 하나는 남겨둬야 하지 않을까. 상상으로는 백만 번도 더 했던 그 일을 소설과 드라마에서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주인공들이 결국은 해내는 걸 보는 후련함이라도 있어야 한다. 『심여사는 킬러』에서 활약하는 심은옥 씨를 보면서 소심한 응원을 보낸다. 아자아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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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장강명 지음 / 유유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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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보는 건 숫자이고 빈번하게 하는 말은 종합소득세니 월 마감이니 정산이니 하는 숫자와 관련한 말이다. 거래처 사장님들은 어찌나 숫자에 밝으신지 돈이 하루라도 늦게 들어가면 득달같이 전화를 걸어온다. 우리 쪽은 이 날짜에 들어간다고 해도 자기들 쪽에 맞춰달라고 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으니 거래를 하지 말자고 내 쪽에서 말하는 수밖에 없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장담할 수 없는 게 인생이다. 문과생은 하루 종일 숫자만 보고 숫자로만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어 있단다. 일억 이상 되는 금액을 헤아릴 수 없어 엑셀에 쳐보고 셀 서식에 들어가 숫자(한글)로 변환한다. 그렇다는 이야기. 돈이란 누구에게든 너무나 중요한 화제이고 생계여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틀리면 절대 안 된다는 소리다. 그럼에도 실수를 한다. 확신으로 가득 차서 숫자를 보았지만 잘못 보고 쳤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 도시 괴담 혹은 오피스 스릴러. 


장강명의 에세이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대체 출판업계는 어떤 집단이란 말인가. 그런 식으로 운영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단 말인가. 일부만 이럴 테지. 전부 그렇지는 않겠지. 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책에 나온 사례의 출판사들은 유명한 곳이었다. 책에서는 실명이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기사에 이미 나온 곳들이라 실망이 한가득이었다. 작가들이 책을 쓴다. 출판사와 계약을 맺는다. 작가는 궁금하다. 자신의 책이 얼마나 팔리는지. 그에 맞춰 들어온 돈은 제대로 정산이 된 금액인지. 당연한 궁금중 아닌가.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을 읽으면 알 수 있겠지만 출판사는 거래의 기본적인 조건을 지키지 않는 집단이라는 게 밝혀진다. 책의 판매량을 집계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작가에게는 제대로 된 정산서를 보내주지 않는다. 어느 날 통장에 입금된 금액을 보고 내 책이 이 정도 팔렸구나 짐작할 수 있단다. 출판사마다 다른 정산 방식이 있는 건 알겠다. 하지만 한 출판사에서 같은 작가의 책을 정산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분명 출판사도 회사니까 회계담당자가 있을 텐데. 


나야 능력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아서 문학상을 수상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사람 인생 모르지 않는가. 그러니 알고 싶다. 문학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면 상금을 준다. 상금이 곧 선인세라고 한다. 수상작은 상금을 초과할 정도로 팔리지 않는 이상 인세가 들어오지 않는 방식이라고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은 말해준다. 급여생활자들은 매달 급여명세서를 받는다. 당신의 월급에서 4대보험료와 소득세, 지방 소득세 얼마를 뗀다는. 기본적인 일이다. 작가들의 경우도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의 창작물을 판 대가로 돈을 받아야 한다. 당연히 책의 판매량과 그에 따른 정산 내역서를 받아보아야 한다. 통장에 얼렁뚱땅 같이 들어온 돈으로 판매량과 정산내역을 짐작해 보는 게 아닌. 책의 판매량 집계가 문제라고 하는데 책에서 지적한 대로 편의점에만 가도 포스기에는 하루 동안 어떤 물건이 얼마나 팔렸는지 알 수 있다. 이런 기초적인 시스템이 출판업에서는 통용되지 않을까. 


소설가가 쓴 에세이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은 출판사의 정산 시스템을 비판하는 내용과 돈 이야기 말고도(「입금 잊지 말아 주세요」라는 제목은 왜 이렇게 슬플까.) 한 작품을 쓰기까지의 고뇌와 소설가와 생활인으로서 균형을 맞춰 살아가기 위한 분투가 담겨 있다. 소설가가 읽은 책과 추천하는 책(그래서 심재천, 정아은, 임성순의 책들을 잔뜩 샀다.) 한국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 제시까지. 그러나 나는 유독 소설가가 제때 받지 못한 돈과 인세 보고서도 보내지 않는 출판사의 허술한 회계 처리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작가들이라 하면 배울 만큼 배우고 배울 만큼 배워도 더 배우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인데 이런 취급을 받고 있단 말이지 하는 안타까움에 더해서 말이다. 하긴 나조차도 받아야 할 돈이 있음에도 그저 눈을 감고 있는데. 어디 작가들만 이럴까. 한국 사회 곳곳에서 임금 미지급 사태는 벌어지고 있다. 그래도 소위 문화 산업 종사자들인데. 작가들 못지않게 배운 사람들인데 정상적이지 않은 체계로 일을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본다. 소설이 어떻고 소설은 이래야 한다는 리뷰를 쓸 줄 알았는데. 돈 이야기만 했다. 그런 책이다.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은. 이상한 판이구나 그곳은 하늘을 올려다보게 만든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가기를 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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