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살이 살인사건
P. D. 제임스 지음, 이주혜 옮김 / 아작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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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살이 살인사건』에 담긴 네 편의 단편 소설은 추리 소설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장점만을 모아 놓았다. 사건이 발생하고 단서를 따라가서 범인을 색출하는 일련의 과정이 완벽하게 표현되었다. 한 집 안에 흐르는 비감함과 맞물려 「겨우살이 살인사건」의 이야기 전모가 밝혀지는 순간 허탈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P.D 제임스 소설의 특징은 사건의 범인이 밝혀져도 법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는 거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고 하기도 전에 범인은 사라진다. 


추리 소설 좀 읽었다고는 하지만 추리 소설을 읽으면서 명민한 독자 다운 포즈를 취한 적은 없다. 사건이 일어나면 누가 범인일지 고민하기보다는 작가가 써 주는 대로 따라갈 뿐이다. 그러다가 결말에 가서야 뒤통수를 얻어맞는다. 정신 차려봐. 「아주 흔한 살인사건」도 그런 식이었다. 인기 없는 문서 정리 담당자 게이브리얼은 우연히 죽은 대표의 서랍에서 포르노 수집품을 발견한다. 매주 금요일 밤 은밀한 외출을 한다. 


몰래 사무실에 들어가 손전등 불빛으로 책을 읽는다. 그러다 창문 쪽으로 다가가고 한 여자를 보게 된다. 게이브리얼은 포르노 읽기를 중단하고 여자와 여자를 찾아오는 남자를 지켜본다. 게이브리얼은 자신이 관찰하던 여자가 죽었다는 사실을 신문을 통해 알게 된다. 그날 자신이 본 걸 증언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진다. 여자와 남자는 부적절한 만남을 가진 것이었고 그걸 지켜보던 게이브리얼 역시 회사의 명예에 실추되는 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애덤 달글리시가 등장하는 두 편의 소설, 「박스데일의 유산」과 「크리스마스의 열두 가지 단서」 역시 결말로 나아갈수록 흥미를 자아낸다. 전반부에 깔아 놓은 단서를 주워 담느라 마지막을 읽고 나서도 한 번 더 읽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누가 범인일까. 고민하게 놔두지 않고 결말에 가서 친절하게 정리해 주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인간의 어두운 욕망인 부정한 마음과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을 『겨우살이 살인사건』은 다룬다. 


네 편의 이야기 전부 재미있지만 결말이 완벽하다고 생각되는 작품은 「아주 흔한 살인사건」이다. 제목처럼 내용 역시 아주 흔한 이야기이지만 결말은 아주 흔한 결말이 아니다. 애덤 달글리시의 총명함과 재치가 빛나는 「크리스마스의 열두 가지 단서」는 유머까지 있는 작품이다. 복잡하게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된다. 열린 결말이라고 독자를 난감하게 하지도 않는다. P.D 제임스의 소설은. 장편에 비해 단편에서는 배경 묘사가 적고 바로 이야기로 직진하면서 깔끔한 결말로 인도한다. 『겨우살이 살인사건』은. 책 읽기의 흥미가 떨어졌다 싶을 때 추천한다. 몰입감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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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여름 2022 소설 보다
김지연.이미상.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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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여름의 시간을 지나왔다. 호의가 아닌 줄도 알면서도 호의라고 믿으며 누군가의 호의를 간절하게 기대했던 시간이었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의 제목을 무한정 읊조리는 나날이었다. 내가 누군가가 된다면 기꺼이 언제든 전화하라고 언제든 전화해도 응답해 줄 수 있는 상태가 돼 있어야지 했다. 


'여름, 이 계절의 소설'의 부제로 『소설 보다 : 여름 2022』 속 첫 번째 소설에는 한없이 전화를 거는 사람들이 나온다. 김지연의 「포기」는 오직 신의로만 돈을 빌려준 호두와 빚쟁이들을 피해 이곳저곳을 떠도는 민재, 그런 그들을 지켜보는 '나'의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이다. 민재에게 빌려준 돈만 받으면 호두는 언제든지 친척 집에서 나와 방을 마련할 예정이다. 예정은 늦어지고 민재는 자신이 고동에 있다고만 말하지 정확히 어디에 있다고 알려오지 않는다. 제목처럼 포기를 해야 예정은 이뤄질까.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이라는 네모네모 한 소설에서 이미상은 '할 수 있지만 하기 싫은 일'의 서사를 들려준다. 집 안에 한두 명쯤 존재하는 잉여 인력인 고모와 자매는 사냥을 떠난다. 그곳에서 만난 불쾌한 남성들과의 시간을 통해 왜 우리는 하기 싫은 일을 할 수밖에 없는지 슬프고도 암담한 어조로 이유를 말해준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이 일은 할 수 있다. 하지만 하기는 싫다. 그래도 해야 한다. 뫼비우스의 띠에 갇혀 고통받고 있다. 할 수 있어서 하지만 하기 싫다. 


「강가/Ganga」에는 자신의 이름을 '강가'라고 부르는 여성이 나온다. 공장에서 일해 모은 돈으로 여행을 온 나는 도시에 내리자마자 자신을 '강가'라고 지칭한다. 남자를 사기 위해 이곳에 왔노라고. 공장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일을 했고 그들 일에 도움을 주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지만 자세한 서사는 나오지 않는다. 타인의 어려움에 도움을 줄 수 없었고 도망치듯 여행을 왔을 뿐이다. '유 쎄이브 마이 라이프. 당신이 내 목숨을 구했어요'라는 말을 듣기 위해 온 것일까. 소설은 살면서 겪는 알 수 없는 근원의 죄책감을 이야기한다. 


내일, 미래, 예정, 추후의 일, 약속, 선언. 이 같은 단어들이 실재하고 지켜지리라 믿었다. 말은 공허하고 문장이 되어도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 2022년 여름의 약속은 휘발되고 그것은 잘못이라는 말만 남았다. 어린 내게 어른들의 말은 이를테면 먹고사는 건 힘든 일, 기술을 배워야 살 수 있다, 살만하면 죽는다 같은 소리는 그저 자신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해 하는 한심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오래 버티고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야 하는 시간이다. 


중심부로 가지 못하고 주변부에만 머물다가 자신에게 주어진 이름을 버리고 새로 지은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 비범함이 아닌 평범함을 꿈꾸는 삶. 누군가의 하기 싫은 일을 선뜻해버리는 삶. 『소설 보다 : 여름 2022』의 세계 속 삶의 모습은 그러했다. 내게 도착할 이야기였을까 의심하며 문장을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다. 미움이 산처럼 쌓였다. 흘러넘친 미움을 보고만 있었다. 미리 대비하지 못한 탓이었다. 전부 쓸려 가고 정말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 게 맞겠다는 결론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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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22 소설 보다
김병운.위수정.이주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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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아내야 하는 일이 있을까. 참지 않을 순 없을까. 『소설 보다 : 봄 2022』에 실린 세 편의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는 '참아냄'이다. 자신이 성적 소수자임을 밝힐 수 없는 일상을 남편이 아닌 누군가를 좋아하는 자신을 사실이 아닌 추문을 들으며 다니는 회사 생활을 모두 견디고 참아내는 인물이 『소설 보다 : 봄 2022』에 등장한다. 


봄에는 추운 겨울을 견디고 봄을 맞이한 사람들이 간혹 쓰러지고 쉽게 일어서지 못하던데. 세 이야기 속 인물들의 끝은 어떻게 될까. 소설이 아닌 다른 세계에 발을 담그려 해도 책장에 무심히 꽂혀 있는 책들 때문에 나는 다시 소설의 세계로 끌려온다. 그렇게 마주한 지나간 계절의 이야기. 가을이 성큼 왔다가 미련 많은 여름에게 은근슬쩍 자리를 내주는 9월에 도착한 늦은 봄의 이야기. 


김병운의 「윤광호」를 읽다가 오래전 기억을 떠올렸다. 이광수의 『무정』을 읽던 시절로. 영채라는 신식 이름을 가진 인물에게 매료되었으나 나중에 작가가 친일을 했다는 이유로 실망하고만 그때로. 소설은 게이 인권 단체 M에서 만난 윤광호라는 인물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쓰인다. 후에 그의 진짜 이름이 윤광호가 아니었음을 알고 그가 이야기해 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사회는 변화할 것이라는 정언 명령이 실천되는 걸 확인한다. 


어떤 시간에는 핸드폰 메모장을 열어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다. 감정이 없는 것처럼 굴자'라고 반복해서 적었다. 마음과 감정이 있어 내가 나를 다치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자책감 때문이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결코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위수정의 「아무도」에서 '나'는 남편과 별거를 한 채 혼자 나와 지낸다. 부모는 '나'에게 아무런 조언도 충고도 하지 않는다. 마음이라는 게 있어 남편이 아닌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자신을 이해해 보려다가 실패한다. 


P. D. 제임스를 읽다가 알았다. 번역가 이주혜가 소설가 이주혜라는 것을. 『소설 보다 : 봄 2022』에 실린 마지막 소설은 이주혜의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였다. 마침 병렬 독서 중이라 P. D. 제임스의 「겨우살이 살인사건」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번역가의 약력을 읽었다. 옆에 놓인 『소설 보다 : 봄 2022』에도 같은 이름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이주혜는 이 이주혜였다. 어쩐지 외국 소설인데도 잘 읽히더라. 어린 나이에 집안을 책임지며 살아온 여성이 수술 후에 영혼이 분리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좀 살만하니까 아프거나 사고로 죽는다.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에는 두 명의 여성이 나온다. 은정과 소희. 둘은 가구 회사의 사수와 부사수로 만나지만 언니, 동생으로 지낸다. 사장의 총아가 소희가 아닌 은정으로 드러나면서 사이는 소원해진다. 자궁을 드러내는 수술을 하던 은정은 영혼이 되어 30년 넘게 근무한 회사로 찾아간다. 그곳에서 지나간 시절을 회상한다. 비밀스러운 일본 출장길과 끝내 오해를 풀지 못한 이후의 시간을.


견디지 않았으면 한다. 미래에 뭐가 있을 줄 알고 참고 견디면서 혹독한 시간을 살아내는지 모르겠다. 마음이 맞지 않으면 마음을 던지는 식으로. 가시 돋친 말은 다시 돌려주는 식으로. 소설 속 인물의 삶을 참고삼아 현실의 나는 단단해지기를 바란다. 나중을 걱정하느라 현재를 소진하는 방식으로 살아낸 사람의 최후를 알고 있으므로. 언젠가 네가 쓰는 소설 속 인물들은 왜 다들 병들고 불행하기만 하냐는 질문을 받은 적 있다. 병들지 않고 불행하지 않은 사람이 있긴 하나요. 그간의 삶은 그랬다는 걸 이해하지 못할 말이어서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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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대하여 - 박상영 연작소설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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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의 연작 소설집 『믿음에 대하여』에서 강조하는 주제 문장은 '성격은 곧 운명'이라는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말했다고 하는데 소설을 읽는 내내 그 말이 맞을까 아닐까를 계속 곱씹게 된다. 네 편의 이야기에 담긴 인물들의 생활상을 따라가다 보면 지난 시간의 기억이 방해꾼처럼 찾아와 읽기의 몰입을 깨뜨린다. 이게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인지도 못한 채 당하기만 했던 건 비단 나만이 아니었군 이러면서. 


첫 번째 소설 「요즘 애들」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겠다. 황은채와 김남준은 매거진 C에 수습기자로 취직한다. 말이 기자지 온갖 잡다한 일 커피 내리기, 식물 관리 등의 일이 업무로 주어진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시간이 되면 SNS에 글을 올려야 하고 사수 배서정의 일관되지 않은 업무 지시를 따라야 하는 사회 초년생의 고달픔을 그린다. 존버라는 말이 왜 그렇게 싫을까. 무슨 일이 있어도 버티는 자가 승리하리라는 근거 없는 미신 같은 말, 존버. 


김남준은 어떤 결단을 내린다. 배서정처럼 될 것인가. 배서정 같은 인간이 되지 않을 것인가. 일을 하다 보니 알겠다. 누구와 일을 하는지도 중요하다는걸. 나는 저 인간처럼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어느덧 나도 저 인간이 되어 버리는 곳은 직장. 결국 직장에서의 자아를 만드는 건 자신의 일이 되겠다. 선택의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 과감히 자신을 지키는 자가 건강하리라. 


표제작 「믿음에 대하여」는 사진작가로 잘나가던 철우가 애인의 죽음을 겪고 난 이후의 일을 그린다. 철우의 애인은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죽음 이후에 거짓말은 밝혀지고 철우는 그때까지 자신이 믿고 있었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안정된 생활은 그렇게 믿고 싶은 자신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었을 뿐이다. 어머니는 불성실한 아버지와 사느라 지쳐 있었고 어느 날 예수님을 만나 삶의 의지를 찾는다. 바이러스로부터 불행으로부터 하나님 아버지가 지켜줄 것이라며 믿음을 강요한다. 


퇴사하기 전 대표 앞에서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 전화해서 물어보라기에 빈말인 줄 알면서도 그렇게 했는데 귀가 따가울 정도로 나의 단점을 지적해대기에 나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손절. 성격을 드러내는 자와 끝까지 성격을 드러내지 않다가 방심하다가 드러내는 자를 겪어보니 알겠다. 일을 할 때는 성격 자체가 없는 것처럼 굴어야 한다는 걸. 


『믿음에 대하여』에서 벌어지는 직장의 일들, 특히 황은채가 팀장으로서 팀원들에게 지키려고 했던 예의는 노력에서 비롯된 거라는 장면은 기억에 남는다. 자신이 생각하는 걸 그대로 입 밖으로 행동으로 드러내는 자들은 얼마나 많은가. 생각은 하지만 감정이 실리지 않게 평서문으로 말하는 황은채. 요즘 애들이었던 시절에서 요즘 애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현재에서 황은채의 노력의 모습을 잊지 않아야겠다. 


조언이랍시고 해주는 말은 대부분 헛소리고 상대를 슬프게 만든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런 나를 바꾸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바꾸는 게 상대적으로 쉽고 정신건강에 좋다. 박상영이 그리는 직장 이야기는 현실 공포라서 그가 말하고 싶어 하는 동성 간의 사랑을 인류 보편의 사랑으로 봐달라는 호소는 당연하게 들린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되냐는 식으로 말이다. 누구를 사랑하든 그건 문제가 아니고 직장에서 제발 인간의 존엄성 정도는 지켜 달라는 외침이 더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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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밑 두개골 탐정 코델리아 그레이 시리즈
P. D. 제임스 지음, 이주혜 옮김 / 아작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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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P. D. 제임스의 코델리아 그레이 시리즈는 『피부밑 두개골』로 막을 내린다.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에서 코델리아가 탐정이라는 길로 들어서는 과정을 보여줬다면 『피부밑 두개골』은 탐정 일의 만만치 않음을 그려낸다. 사건 의뢰라고 들어오는 건 사라진 고양이를 찾는 일이 대부분인 프라이드 탐정사무소에서 코델리아는 용기를 잃지 않는 법을 터득하고 있는 중이었다. 


인자한 성격의 모즐리 여사와 수다쟁이 베비스. 둘은 코델리아를 업신여기지 않으며 함께 일을 해 나간다. 나이가 어리고 여자라서 의뢰인들은 대놓고 코델리아를 못 미더워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코델리아는 사무소를 꾸려나가기 위한 그달치의 경비를 셈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배우 클라리사 라일의 남편이라는 조지 경이 찾아와 사건을 맡기고 코델리아는 짐을 꾸린다. 


죽음의 분위기를 풍기는 희곡의 대사와 음산한 그림을 그린 협박 편지 때문에 아내가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코시섬에서 열리는 연극 공연에 코델리아가 가서 시중을 드는 척 협박 편지의 범인이 누군지 알아내달라고 조지 경은 말한다. 사라진 고양이를 찾아달라는 의뢰보다 얼마나 긴장감 넘치는 일인가. 코델리아는 코시섬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간다. 


『피부밑 두개골』은 인간의 추악한 면을 다룬다. 자신의 명예와 부를 위해서 타인의 감정과 생활을 짓밟는 일의 결과는 참혹하다. 코시섬에 모인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 상황을 나열하면서 협박 편지의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해가는 일이 흥미롭다. 코델리아는 임무를 다하지 못하지만 사건의 결과에 낙담하지 않는다. 똑똑하고 재치 있는 면면을 드러내면서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낸다. 


소설의 마지막을 읽으면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코델리아의 믿음, 희망, 낙관이 지속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코델리아가 꿈꾸는 세계는 도래하지 않으며 여전히 탐정 일은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을 거라 사람들은 냉소할 거라는 짐작이다. 이제 나는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누기로 했다. 내게 친절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자기중심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없는 세상은 세상이 아니기에. P. D. 제임스는 왜 코델리아 시리즈를 두 권만 썼을까. 코델리아에게 더 나은 세계를 보여주기 어렵다는 판단이 든 것이 아니었을까. 불친절하고 폭력적인 세계로 코델리아를 데리고 가기 미안해서가 아니었을까. 짐작만 할 뿐이다. 당신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한 마디. 이 세계에 필요한 건 그 한 마디면 충분하다. 친절이 가식이어도 좋다. 제발 친절한 척이라도 해달라. 코델리아와 나는 그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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