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트리플 8
최진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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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의 소설집 『일주일』에 실린 발문을 읽으며 감탄했다. 세 편의 소설은 모두 청소년이 주인공이다. 소설가의 발문을 쓴 이도 청소년이다. 「지금 도망칠 준비가 되면」이라는 제목으로 박정연 학생이 썼다.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사유는 깊고 문장은 간결하고 힘이 넘친다. 나는 저 나이 때 무얼 했나. 무얼 하긴 학교 가기 싫다고 징징대면서 꾸역 꾸역 학교에 가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지.


공부가 어려워 포기했고 음악을 듣고 책을 모았다. 글을 쓰긴 했는데 한심하고 부끄러울 지경의 글을 썼다. 그에 반해 박정연 학생은 공부도 잘할 것 같고 생각도 깊을 것 같다. 최진영은 문장웹진에서 그의 글을 발견했다고 한다. 대단한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일주일』의 첫 번째 이야기는 일요일 저녁 야간 근무를 하는 학생이 등장한다. 특성화고에 다니는 아이는 친구들이 대학 입시로 고민할 때 어떻게 하면 죽지 않고 일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 최저 시급에도 못 미치는 급여를 받으며 어른들도 하기 힘든 일을 한다.

두 번째 이야기 「수요일」은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나온다. 한 아이가 사라지고 그 아이를 찾는 부모 앞에서 아이는 과거를 회상한다. 누구라도 살 수 있고 죽을 수 있다. 내 아이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오만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준다. 세 번째 이야기 「금요일」이 가장 좋았다. 연극부에 들어간 아이가 대본을 쓰고 학교에서 반려 당하자 새롭게 이야기를 쓰자고 한다. 학교를 그만두는 것에 대해 엄마와 대화를 한다. 반대를 하지 않고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모습에 후회를 해도 된다고 하는 너그러움에 반했다.

저마다의 고민. 각자의 슬픔. 출구 없는 내일에 대한 막막함.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 그 시절의 배경색이었다. 어른이 되면 달라질까. 빨리 스무 살이 되면 좋겠다. 매일 생각했다. 스무 살이 뭐냐. 서른이 넘어도 고민은 가득이고 세상은 점점 미쳐 가고 있는데. 『일주일』 속 아이들의 고민은 어른이 된다고 해서 해결되지는 않는다. 소설은 아이들을 가만히 지켜봐 주는 일로 위로를 대신한다. 들어주고 계속 들어주는 일. 어떤 말을 해도 충고나 조언을 하지 않으며.

나는 자라도 내가 되지 못했다. 그래도 읽는 사람은 되었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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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권여름 지음 / &(앤드)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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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다이어터.


얼마 전까지는 유지어터.


지금은.


입이 터져버렸다. 나의 의지는 의지가 아닌 게 되어 버렸다. 마트에 가면 과자 코너를 좀비처럼 서성거린다. 어떤 날은 과자만 샀다. 주말에 뭘 좀 해먹을 거라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실패. 매일 아침마다 몸무게를 잰다. 기부니가 나쁘다. 작년까지는 안 먹는 대로 살이 빠졌는데 올해부터는 다르다. 물만 먹어도 찐다는 게 비유가 아니라는 걸 알아가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최고 몸무게를 찍었다. 똑땅해.


KBS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 《빼고파》를 보고 있다. 먹을 거 먹으면서 하는 건강한 다이어트 방법을 알려준다고 해서. 좋아하는 유튜버 일주어터 님이 나오기도 해서. 보면서 느낀 건 다이어트도 부지런해야 하는구나. 나 같은 한심한 게으름뱅이, 이불과 한 몸은 엄두도 못 내겠다. 적게 먹는 걸로 뺄 수밖에. 입어 터져 버려서 적게 먹지도 않아 오늘 유난히 땀을 많이 흘렸다.


포기할까. 그냥 되는대로 살까. 권여름의 장편소설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의 배경은 유리 단식원이다. 살 때문에 큰 몸 때문에 학교와 사회에서 불이익을 받은 여자들이 그곳에 모인다. 소설은 유튜브 프로그램 Y의 마지막 다이어트에 참가하는 운남이 사라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단식원 코치인 봉희는 운남이 무언갈 먹고 토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남다른 의지력으로 단식원에서 꾸준하게 체중을 감량하고 있던 운남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봉희는 운남의 방에서 찾아낸 손톱깎이 세트를 단서로 운남을 찾아 나선다.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에는 단순히 큰 몸 때문에 원하는 걸 얻지 못하고 좌절감을 맛본 여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유리 단식원 1기였던 봉희는 공부를 잘했음에도 취업을 하지 못했다. 운남은 대학교 동아리에서 배척 당했다.


유리 단식원은 건강하게 살을 뺄 수 있다고 홍보한다. 봉희는 그 말을 믿고 따르며 코치로 일을 했다. 운남이 사라지고 단식원의 비밀을 하나씩 알아가는 봉희. 다이어트의 목적이 무엇일까. 날씬해지기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왜 나는 다이어트를 하는 걸까. 밤마다 무얼 먹고 자니 몸무게는 하루가 다르게 불어났다.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안 되겠구나. 내 무릎.


건강해지기 위해 시작했는데 어느덧 강박이 되어 버렸다. 매일 몸무게를 재고 달력에 적는다. 숫자에 불과할 뿐인데 숫자 몇 개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행복하지 않다. 책의 마지막에 가면 운남이 다이어트를 시작한 이유가 밝혀진다. 지금부터 잘 생각해 보자. 행복하지 않은 일을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다이어트는 평생 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평생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일.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는 몸이란 과연 내 생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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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최승자 지음 / 난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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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가.


어느 날 시인 최승자는.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기사에서 그 사실을 알았다. 외삼촌이 보호자로 따라 나온 인터뷰에서 시인은 그 사실을 밝혔다. 오랫동안 시를 썼고 어떤 시는 누구라도 알만한 유명한 시인데도. 시를 써서는 생활이 안 되었다고. 인연이 있는 출판사에서 매달 25만 원씩을 부쳐 주었다. 최승자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고 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그러했다.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는 내가 글을 읽는다기보다 글이 나를 읽어내는 느낌의 책이었다. 문장이 저희들끼리 소곤대면서 현실의 나를 흘깃거렸다. 네가 이걸 읽는단 말이지. 그게 가당키나 할 것 같아 하는 식으로. 시인의 산문은 나를 추궁했다. 1976년과 2021년 사이에 쓰인 글은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젊었을 때나 나이가 들었을 때나 최승자의 글은 또렷하고 명징했다.


최승자의 시와 시론은 삶이란 무엇인지를 찾으려고 애를 쓰는 글이었다. 결국은 삶이었다. 살아내는 것이었다. 시가 무엇인지 의문하는 일은 삶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지 되짚는 일이었다. 독일어를 전공한 최승자는 『양철북』을 끝내 읽어내지 못했다. 간첩 혐의로 감옥에서 수감 중인 그가 책장에 쓴 글 때문이었다. 출근길에 엄마를 보고도 끝내 아는 척을 하지 못했다. 살아 있다는 게 때론 죽어 있는 게 아닐까 헛갈리기도 했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에서도 시를 썼다. 문학을 하고 나중에는 신비주의 사상에 젖어 들어갔다. 한때 나는 시를 읽으며 나 자신이 곧 뭐라도 될 것 같은 기분에 취하기도 했다. 시는 읽는 동안은 그랬다. 그럼 시를 쓸 때는 어땠을까. 겉멋과 허세에 찌든 문장을 쓰며 아프지도 않은데 아픈 척을 내내 했던 것 같기도 했다. 오랫동안 시란 무엇인가 고민하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잠깐 괴롭고 잠깐 우울해했다. 그렇게 시는 떠났고 아직도 세상 바깥에서 헤매고 있다.


2021년에 최승자는 이렇게 쓴다.


오래 묵혀두었던 산문집을 출판하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것 같다.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자니

웃음이 쿡 난다.

웃을 일인가.

그만 쓰자

끝.


웃음이 난다고 그게 또 웃을 일인가 자조하면서 그만 쓰자고 정확하게 끝을 외치는 최승자. 존멋이다. 웃을 일이 아닌 건 또 뭔가. 되지도 않는 말에는 재치 있는 말을 하지 못하고 웃어버리는데 자꾸 그렇게 하니까 사람들은 또 나를 우습게 여긴다. 대학교 4년 동안 문학을 배웠는데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리는 시간을 내내 보내고 있다.


괜찮고 다 괜찮을 것. 좋은 일들이 자꾸 생길 거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시의 시간을 살고 있다. 무엇이 시가 되고 시가 되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 모르겠음이 답답하지 않은 건 문득 떠오르는 기억들을 쓰기만 해도 시가 될 거라는 예감이 들고 자꾸 벅차오르고. 최승자 시인이 밥 먹는 걸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뭐든 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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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
다시 로크먼 지음, 정지호 옮김 / 푸른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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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지 않은 건 아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트에서 엄빠 손을 잡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웃음이 나곤 했다. 그뿐이었다. 결혼을 한다거나 그래서 아이가 생긴다거나. 그런 일을 상상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이상한가. 일하겠다고 면접 보는데 왜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냐는 훈계와 다그침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이야기를 들어도. 그런가 보다 하며 여기는 걸러야지 했다.


아이를 보면 귀여워 죽겠다거나 누군가 결혼을 하면 나도 하고 싶다거나 마음조차 들지 않는 나는 비정상인가. 다시 로크먼의 책 『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을 읽고 나서 명쾌한 답을 얻었다. 너는 절대 이상하지 않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게 놔둔 사회와 관습과 문화와 역사가 잘못됐다. 바다 건너 사는 미국 언니 다시 로크먼은 다양한 사례와 해박한 지식, 다정한 어조로 말해 주었다.


어떤 게 잘못되었나. 우선 모성 본능이라는 말부터. 남자 너는 이런 일 못해는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생물학적으로 남자와 여자는 다르지 않다. 똑같이 세포 분열해서 성별만 다르게 태어났지 할 수 있는 일 없는 일을 구별 지을 필요가 없다. 사회화 과정에서 여성, 남성의 역할 분담이 나누어진다. 여자아이의 경우 인형을 주며 놀게 한다. 잘 데리고 놀면 칭찬한다. 남자아이는 로봇과 공을 준다. 던지거나 뻥 차면 칭찬한다.


아이는 칭찬을 받는 순간 학습한다. 아, 이걸 더 잘하겠다. 여기서부터 역할 분담이 달라진다. 똑같이 인형을 줘보자. 똑같이 로봇과 공을 줘보자. 어떻게 될지는 더 잘 알겠지. 모성 본능은 사회가 책임질 수 없는 양육과 돌봄을 여성에게 떠넘기기 위해 만들어낸 말일뿐이다. 법과 제도를 만들 형편도 여력도 되지 않기에 여성에게 짐을 지우기 위해 너희는 모성 본능이 있으니 직장을 다녀도 집에 돌아와서는 남자보다 애를 더 많이 돌봐야 하고 상사에게 싫은 소리를 해야 한다고 부추기기 위해.


그리고 적대적 성차별과 온정적 성차별이 있다. 이 사회가 약고 교묘해진 게 결혼과 육아 정책을 만들고 인식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책의 제목대로 은밀하고 달콤한 말로 여성이 스스로를 주눅 들고 문제가 있다고 만들고 있다. 여성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차별 속으로 몰아넣는다. 적대적 성차별의 언어는 가령 이런 식이다. "여자는 함께 일할 때 툭하면 자기들끼리 싸운다." 누가 보아도 성차별적인 언어다. 온정적 성차별은 모호하다. "여자는 남자가 할 수 없는 식으로 남을 보살펴준다." 모호하고 교묘함을 느꼈는가.


다시 로크먼은 『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주저하지 않고 털어놓는다. 남편 조지와의 갈등을 사례로 일하는 여성이 겪고 있는 부당 노동과 현실을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듯한 현장감으로 재현한다. 부부 100쌍을 인터뷰했다더니 전문 서적과 논문이 아닌 부부들의 사례로 사실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겪고 있는 듯한 혹은 내가 모르고 겪을 일을 보여줌으로써 정신 차리게 손을 꼬옥 잡아준다. 네가 잘못된 게 아니야.


일하고 돌아왔는데 집이 더럽고 선생님한테 아이 관련 문자가 와도 죄책감과 부채감을 여성 혼자서 가질 필요가 없다는 걸 과학과 역사, 인문학으로 알려준다. 동일 노동을 하고서도 여성은 남성 보다 낮은 임금을 받아도 된다는 당연한 생각은 누가 하게 만들었는가. 부부가 똑같이 실직을 해도 왜 집안일은 여성이 더 하게 되는가. 여성 작가에서 일과 양육의 병행을 묻는 어리석음의 출처는 무엇인가.


단순하게 말하자면 모성 본능이라는 말은 헛소리다. 주양육자를 당연히 여성으로 보는 시선을 바꿔야 한다. 기저귀를 엉망으로 갈아도 여성은 침착하게 남성에게 알려주면 된다. 공감 능력과 공동체를 생각하는 일에는 여성이 남성보다 뛰어날 일은 없다. 온정적 성차별의 언어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일의 원인을 자신 탓으로 돌리는 건 쉬운 해결책이다. 살아봐서 알지 않은가. 그렇게 단순할리 없다, 세상은. 『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은 나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성차별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화가 난다. 그러다가 유레카를 외치며 이마를 친다.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 하는구나. 그래야 무시당하지 않으며 살 수 있구나. 좋은 봄날에 건투를 빈다. 내가 하는 일은 너보다 후진 일이 아니다. 똑같이 최저 임금 9,160원 받으며 하는 일이다. 집에 와서 같이 움직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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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밥맛
서귤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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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고 읽는 기준이 까다롭, 지 않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라서. 무심코 읽었는데 지금의 내 상황과 맞아떨어져서. 표지가 귀여워서. 첫 문장이 웃겨서. 서귤의 『회사 밥맛』은 표지 밑에 쓰인 글이 웃겨서 읽기 시작했다. '이렇게 개처럼 일했는데 아무거나 먹으려고?' 하는 글. 눈이 약간 맛이 간 여자가 오직 살려고 음료를 흡입하고 있는 그림까지. 안 읽을 수가 없는 책이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 테지만 제목은 중의적이다. 회사에서 먹는 밥맛 혹은 회사는 밥맛이라는. 오랜 회사 생활에서도 어떻게 했으면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을까. 서귤이 부럽다. 그에 반해 나의 유머감각은 조금만 방심하고 정신을 놓고 있으면 까딱 잘못하다가는 분위기와 함께 인간관계를 망치는 수준인데. 학교 다닐 때까지는 그럭저럭 통했는데. 조금 이상한 애로 보이는 수준이었는데. 사회에서는 영 글러먹은 유머감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10년 넘는 시간 동안 점심 대신 저녁을 먹었다. 시간은 30분 정도. 라면도 끓이고 소시지도 굽고. 비빔밥도 하고 몇 번 얻어먹으면 눈치껏 내가 쏘기도 했다. 허겁지겁 먹느라 무슨 맛인지도 모르는 건 아니고 맛있게 많이 먹었다. 계속 그렇게 저녁에 무얼 먹지요? 물어보면서 오늘의 메뉴를 심각하고도 진지하게 고르며 살 줄 알았다. 그리고 8개월의 점심시간. 최악의 시간. 무엇이 최악이었냐고 물어본다면 전부 다였다고 말해야겠다.


정적이 흐르는 걸 참지 못하고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는 시기를 지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밥만 먹은 시간까지. 그만둬야겠다고 생각이 든 날 처음으로 밖에 나가 혼자 점심을 먹었다. 이렇게 먹을 수도 있었는데. 왜 나는 억지로 싫은 사람과 마주 앉아 밥을 먹었던가.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일에 후회는 하지 말자. 『회사 밥맛』을 읽으며 그간의 밥시간을 떠올렸다. 서귤은 국어 교사 임용을 포기하고 회사원이 됐다.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왜 선생이 안 됐냐는 말이었다고.


의대, 법대 정도 빼고는 학과 대로 직업을 가지는 사람이 그렇게 흔한가. 하여튼 회사 인간들은 쓸데없는 말하기 선수들이라니깐. 일 년 만 버티자던 서귤은 존버 정신으로 7년째 회사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쯤 되면 손뼉을 쳐야 한다. 7년이라니. 글과 만화로 봤을 때 서귤의 회사는 애매하게 이상한 사람들이 많던데 잘도 다니고 있다. 그 힘과 원동력 중에 하나는 아니 전부는 회사에서 먹는 점심과 간식이 아닐까, 『회사 밥맛』은 이야기하고 있다.


각각 '오늘의 메뉴'에 담긴 회사 생활의 이야기는 정식 회사는 다녀본 적은 없고 회사인척하는 곳에서만 일한 나도 무지막지하게 공감이 됐다. 아무거나 먹자고 해서 메뉴를 말해도 전부 거절하고 자기 먹고 싶은 거 고르고 회의하면서 김밥을 먹는다. 짠하다가도 이제는 상사의 농담에도 능글맞게 받아치는 서귤의 모습에 부러움과 탄성을 보낸다. 글도 글이지만 자신의 눈을 퀭하게 그려 놓은 만화도 웃긴다. 회사 생활에 적응을 했냐 안 했냐의 기준이 웃느냐 웃지 않느냐 이다니 와, 천잰데 하는 식이다.


진짜 커피와 가짜 커피의 차이가 뭔지 아시려나. 일할 때 먹는 커피는 가짜 커피. 그 외에 먹는 커피가 진짜 커피. 어떤 알고리즘의 계산법인지는 모르지만 어느 날 유튜브 최상단에 미라클 모닝 영상이 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얼결에 보다가 꺼버렸다. 대체 새벽 네 시 반이나 다섯 시에 왜 일어나는 건데. 그렇게 일어나서 운동하고 공부하고 아침까지 챙겨 먹고 다시 자는 게 아니라 일을 하러 나간단 말이야? 세상 말세네. 그려. 아침에 눈 뜨는 거 자체가 나에겐 기적이다.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추천합니다, 이 책, 『회사 밥맛』. 요즘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내가 싸가는 도시락의 메뉴는 김치볶음밥이다. 오늘 뭐 먹지의 고민으로부터 해방될 탁월한 선택 아닌가. 금수저 아닌 이상 돈 벌러 계속 눈 뜨고 살려고 입안에 무언갈 넣으며 일할 것 같은데 지치지는 말자. 하다 안 되면 그만두는 것도 종일 한자리에 앉아 드라마를 보는 것도 괜찮다, 다 괜찮다. 큰일 나지 않는다. 나는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이렇듯 길고도 간절하게 쓰는 버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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