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사람
최정화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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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악스트는 글씨가 작으려나. 악스트가 처음 나왔을 때 놀랐던 건 가격이었다. 2,900원. 썩은 비유지만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얼마나 흥분했던지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은 친구에게 악스트를 사서 보라고 권하기까지 했다. 안부 인사조차 생략한 채 싼값의 문예지가 나왔으니 사서 보라는 연락을 받고 당황했겠지. 그 후로 그 애가 책을 샀는지 안 샀는지는 모른다. 나는 구독을 했고 가격이 오른다는 편지를 받고 구독을 해지했다.


또 썩은 비유인데 카페 가서 커피 한 잔 덜먹으면 구독해서 볼 수도 있는데 해지했다. 처음에는 열심히 읽었다. 글씨가 작아도 이 값에 이게 어디야 하면서. 구겨져도 상관없었다. 서평에서 소개한 책을 찾아 읽고 감각적인 사진 옆에 실린 글은 근사해 보여서 필사도 했다. 그때 읽은 최정화의 「도트」가 있었다. 무오. 어딘지 이곳의 느낌이 실리지 않은 이름을 가진 인물이 등장했다.


원래 책은 사 놓고 잊어버리는 맛이 있다. 눈은 떴는데 일어나기는 싫어서 전자책 리더기를 켰다. 리더기는 넷플릭스 같다. 그 안에 볼 건 많은데 막상 보려고 하면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앞부분만 열어 보다가 꺼버린다. 무얼 읽을까 고민하다가 시간이 간다. 시간 내서 꼭 읽어야지 하면서 잠자고 있던 책들을 불러왔다. 최정화의 『없는 사람』이 있었다. 무오.


악스트에서 연재되었던 소설 「도트」는 『없는 사람』으로 새롭게 나왔다. 나는 그게 그건 줄도 모르고 최정화의 신간이 나왔네 하면서 사놓고. 잊어버리고. 무오는 탈취제를 사 오는 길이었다. 이부의 심부름이었다. 나는 수업하다가 불려 나와 잔돈을 바꿔 오라는 원장의 심부름을 종종 했다. 같이 일했던 선생은 그걸 왜 본인이 하지 않고 나한테 시키는지 모를 일이었다고 했다. 원장의 친구였으면서. 그럼 그 순간에 말을 하지. 네가 하라고.


노진에서 택배 상하차 일을 하던 무오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이 바뀌는 일이었다. 힘들어서 힘들고 죽을 것 같이 힘들어서 사람들은 자주 바뀌었다. 그 일을 무오는 이 년 동안 하고 있었다. 껄렁껄렁하게 말하는 이부가 무오를 찾아왔다. 딱 봐도 이런 곳에서 일을 할 사람 같지 않았다, 이부는. 자신과 일을 하자고 고수부지에 데려갔다. 물이 어느 쪽으로 흐르는지 이상한 질문을 하고 사이다를 사줬다. 처음으로 무오에게 관심을 가져주었다.


무오의 일은 단순했다. 도트라고 명명된 자를 따라다니면서 위치를 확인해 주는 일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다. 단순한 이유. 자아실현이니 사회성 확립이니 일의 의미를 떠들어대지만 그런 건 소용이 없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 일을 한다. 하다 보니 열심히가 된다. 일이 익숙해지고 할만할 때쯤 회사 사정이 어려우니 나가란다. 외국 회사에 회사를 넘기겠단다. 안 된다. 우리 기술만 빼가고 먹튀할거다. 해고 철회를 해라. 해고자들을 복직시켜라.


노조원들은 시위를 한다. 무오는 노조원으로 위장해 시위를 불법으로 만들고 무력화하는 일에 투입된다. 도트는 지부장. 그가 방심한 틈을 타서 틈이 보이면 동영상을 찍어 배포하는 일도 한다. 틈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없는 사람』이라는 제목이 훨씬 좋았다. 무오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제목이라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현실에는 꽤 존재한다. 일은 하지만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


무오는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에 빠진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는 단순한 이유로 설명되는 걸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칠십일에 달하는 시간을 노조원들과 먹고 자면서 무오에게는 자신의 삶을 생각할 기회가 생긴다. 나는 어떻게 살아온 존재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오후 두 시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반드시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는 전언은 잘못되었다. 늘 그렇게 잘못 살고 후회한다. 후회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너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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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을 본다 문지 에크리
신해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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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욱의 산문집 『창밖을 본다』는 空冊(공책)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空冊(공책)의 이야기로 끝난다. 출판사를 폐업한 친구 김재옥이 그것도 기념이라고 만든 공책. 신해욱은 공책 한 권을 얻어다 책상 위에 놓아둔다. 질 좋고 두꺼운. 어떤 내용이든 써주라. 하는 얼굴로 공책은 책상 위에 방치된다. 나 역시 마음이 허름한 날에는 문구사에 들러 공책을 사곤 했다.


스프링이 달린 것부터 없는 것 줄이 있는 것 없는 것. 그렇게 모으고 모은 공책이 책꽂이에 가득 꽂혀 있었다. 어느 날은 보기 싫어져 아이들에게 나눠 준 공책들. 쓰는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자의식은 그냥 사는 사람으로 굳어져 갔다. 쓰는 것보다 사는 게 더 어려운 나날들. 유명인이 쓴다는 공책만 있으면 유명인이 앉는다는 책상만 있으면. 엉뚱하게도 소비를 하면서 쓰고자 하는 욕망을 달랬다. 잘 달래지지도 않고 매번 실패하면서.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책꽂이를 하나 주워왔다. 예전에 다 갖다 버렸는데. 없으니까 허전해져서. 다시 사기는 좀 그래서. 퇴근하고 분리수거장을 돌아다녔다. 아이들 전집을 비치해 놓는 용도로 쓰였는지 야광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책꽂이. 에프킬라를 뿌려 가며 스티커를 떼어냈다. 일의 스트레스를 책 사는 것으로 풀었던지라 신간 시집이 많았다. 표지를 보이게끔 진열해 놓고 한동안 멍하니 들여다 보기만 했다.


책을 꽂아 놓고도 넷플릭스를 봤다. 동생의 결혼식이 끝나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아래쪽에 꽂힌 신해욱의 『창밖을 본다』를 그야말로 무심코 꺼내들었다. 자본주의의 끝판왕이라는 결혼식을 감상 또는 참석하느라 지쳐버렸다. 흰 종이와 검은 글자라는 단순함이 필요했다. 시인도 별 사람 아니군. 하는 짓이 나와 똑같군. 공책의 이야기는 매혹적이었다.


해와 별이 없어도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지 않는 사람. 남극과 북극의 지구 자기장에 신체가 반응하지 않는 사람. 걸어 다니는 나침반 같은 사람. 왼손으로 네모를 그리며 오른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듯 세계의 동서남북과 내 몸의 전후좌우를 또렷이 가를 수 있는 사람. 절대음감이나 절대방향감이 있다면 절대성격을 지닌 사람도 있을까. 누구와 있는가, 어떤 환경을 살아가는가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 주어진 자리나 역할에 따라 태도가 변하지 않는 사람. 내면의 나침반을 지닌 사람.

(신해욱, 『창밖을 본다』中에서)


창의 안과 밖의 차이는 무엇인가. 시인은 창 안쪽에서 매번 바깥을 응시한다. 심야버스와 열차에 앉아서도 창밖을 본다. 풍경에 뛰어들 수 없는 사람. 시인의 숙명은 풍경을 관조하고 직시할 수 있으면 직시하고 외면할 수 있다면 외면한다. 쓰고 싶으면 쓰는 건 아니고 쓰고 싶은데도 쓰지 못하는 사람. 써야 할 것이 있어도 망설이는 사람. 견딜 수 없다고 여길 때는 화장실에 앉아 메모 앱을 열어 욕을 썼다. 참지 못하고 속으로 생각하던 걸 내뱉을까 봐, 겁나서.


空冊을 가방 안에 넣어 다니느라 가방은 늘 무거웠다. 앞의 몇 페이지만 써 놓고 책꽂이에 다시 꽂아 넣는 짓을 반복한다. 김소연 시인은 산문에서 어느 날 갑자기 책상 앞에 앉아 시를 쓸 날이 올 거라는 이상한 희망을 심어주었다. 신해욱의 『창밖을 본다』는 죽은 언어가 되어 버린 詩라는 걸 불러내어 준다. 어디 있었니. 생각을 자주 하지 말고 신나는 게 있으면 신나게 즐겨야 한다. 창밖을 보는 자의 지침이다.


엉성하면 어떤가. 누가 보거나 말거나 일단은 내가 재밌을 것. 잘하려고 애쓰느라 나를 괴롭히지 말 것. 퀄리티에 연연하지 말 것. 만드는 재미를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것. 그런 자세를 아마추어 정신이랑 부르는 걸 텐데 쟤들은 무슨 정신 같은 거 없이도 신나고. 같이 놀지 않고 창밖으로만 봐도 좋군.

(신해욱, 『창밖을 본다』中에서)


창 안에서 창밖은 조용하고 근사하고 신비롭기만 하다. 같이 놀지 않아도 신남이 경쾌함이 느껴지는 자리. 이상한 유머를 던져 놓고 나는 매번 웃었다. 아이들은 웃지 않고 웃는 나를 보기만 했는데도. 그래놓고 나는 나만 즐거우면 됐다고 뻔뻔하게 또 웃었다. 웃었다. 웃어서 즐거웠다. 끝이라고 여겼다가 그건 아니고 새로 시작이다고 외치는 삶은 기괴하다. 비어 있는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창의 바깥을 힐끔거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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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버씨의 죽음 - 갈아넣고 쥐어짜고 태우는 일터는 어떻게 사회적 살인의 장소가 되는가
김영선 지음 / 오월의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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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다소 많이 어두운 이야기가 담긴 리뷰입니다. 지금 몹시 힘들거나 지친 분들은 읽기를 피해주세요. 좋았던 기분도 더러워질 수 있습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하는 심정으로 그만둔다고 말하고 후임자 오면 인수인계까지 하겠다고 했을 때. 부탁이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의 단점과 내가 그만두게 된 이유를 글로 적어달라고. 나는 해코지가 무섭다고 했다. 절대 그럴 일 없고 그렇게 되면 종이를 찢어버리겠단다.


후임자가 와서 오래 근무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생겼을 때 그를 내보내기 위한 용도로 쓰겠단다. 자신은 앞날을 미리 걱정하는 편이라서 그런다고도. 내가 힘들어서 미치겠다고 죽을 것 같다고 말한 건 다 뭔가. 견딜 수 없어서 나가는 사람이 있는데 무슨 증거가 필요할까. 참으로 이기적인 부탁이었다. 글 쓰는 거야 누워서도 쓸 수 있으니까. 알았다고 했다.


떠올랐다. 대장금의 명대사. '저는 제 입에서 고기를 씹을 때 홍시 맛이 났는데 어찌 홍시라 생각했느냐 하시면 그냥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이온데.' 힘들다. 어찌 힘드냐. 힘들어서 힘들다고 하는데 어찌 힘드냐고 물으시면 힘들어서 힘들다. 라고는 할 수 없어서 전부 이야기했다. 일이 생기면 다급해져서 고함치고 늘 윽박지르듯 말한다.


일을 주고 1분도 안 지났는데 다 했냐고 묻는다.(계속 이러니까 나를 놀리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실수를 하면 왜 잘못했냐, 뭐가 잘못됐냐. 이유를 알아야 하지 않겠냐. 집요하게 묻는다. 일하고 있는 거 뻔히 아는데도 옆에 와서 뭐 하냐고 계속 묻는다. 다른 사람 앞에서 하대하고 무시하듯 말을 한다. 반말은 기본 장착. 빨리하라고 재촉해서 주눅 든다. 안 그래도 처음 하는 일이라 서투른데 자꾸 그러니까 실수를 반복한다.


책임져야 할 것 같은 일이 생기면 나에게 떠넘긴다. 일의 주체를 자신에게서 나로 넘긴다. 교묘하게. 나를 비서 부리듯 대한다. 결정적으로 자신의 비위를 맞추는 게 나의 업무라고 윽박질렀다. 내 성격을 네가 다 이해해야 한다고. 대체 얼마나 편하게 일하고 싶어서 그러느냐. 그동안 편한 일만 했느냐. 너무 힘들어서 애인한테 말했더니 직장으로 애인이 찾아오는 막장 드라마에도 안 나올 것 같은 장면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러도고 변명만 늘어놓았다.


이야기를 하고자 한 사람 앞에서 자신의 변명만을 무한 반복했다. 고칠 수 없단다. 자신의 비위를 맞추면서 일을 하라니. 나는 공부하고 자격증 따서 취업을 했다. 일을 해서 돈을 벌려고.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며 돈을 벌고 싶은 게 아니다. 상꼰대. 내가 그런 소리를 듣고서 네 네, 돈 버는 거 다 힘들죠, 그렇게 해서 돈 버는 거죠. 수긍하고 순응하면 계속 이런 더러운 세상이 될 것 같아, 세상은 점점 나빠지고 나쁜 놈들이 웃으며 살게 될 것 같아. 그만둔다.


김영선의 『존버씨의 죽음』을 읽어가다 나는 그간 내가 느낀 감정이 실재하는 것이었구나 안도했다. 호흡 불안, 고립감, 소외감, 통증, 불안감이 나를 지배했다. 퇴근을 했어도 쉬고 있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잊어버리고 쉴 수 없었다. 오죽했으면 일을 하는 동안 '나는 감정이 없다'를 속으로 되뇌었을까. 나는 인간인데. 감정이 있는 인간인데. 비인간으로 만들면서까지 일을 해야 할까. 울고 싶은 심정으로 일을 했다. 자기 편한 쪽으로 업무를 분담하는 꼴을 보고서도. 일이 안 되면 왜 안되는가 집요하게 추궁하는 걸 들으면서도. 나는 감정이 없다, 감정이 없다를.


기질론은 낡아빠져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본이 동원하는 여전한 프레임으로 언제나 강력한 힘을 발휘해왔다. '쟤는 원래 예민해서 그래' '나약해 빠져가지곤' '정신 상태가 글러먹었어' '완벽주의 성향' '유리 멘탈·두부 멘탈·쿠크다스 멘탈(유리, 두부, 쿠크다스처럼 부러지기 쉬운 멘탈)' '멘존약(멘탈 존나 약함)' 등. 한 노동자의 상태가 일터의 다양한 연관 고리에 영향받아 구성되는 산물이라는 사실을 탈각시켜버리고 오로지 그 개별 노동자의 원래 속성인 것으로 여기게끔 하는 일종의 물신주의와 다르지 않다.

(김영선, 『존버씨의 죽음』中에서)



존버란 무엇인가. 존나 버티다의 약자. 어떤 일에서든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자가 이긴다며 버팀을 치켜세워주는 말로 쓰인다. 근데 버티면 승리할까. 다들 그런다니까 존버 해봐. 하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한다. 이 사회에서는. 『존버씨의 죽음』은 일터에서 죽어간 존버씨와 죽어가는 산 자 존버씨의 행적을 쫓는다. 과로 죽음과 과로 자살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논문을 인용하면서도 가독성을 잃지 않는 책이다. 일하러 갔는데 왜 죽는단 말인가.


밑줄을 그은 부분은 나의 사고와 표현력이 부족해 말하지 못한 고통을 대신 말해주고 있는 부분이었다. 나의 성격이 약하다는 것으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했다. 내가 더 강해져야 한다고. 나는 잘 웃고 잘 떠드는 사람이었다. 일을 시키지 않아도 찾아서 하는 부류였다. 바뀌고 있었다. 웃지 않고 말하지 않으며 일을 줘도 하기 싫어서 대답조차 침묵을 가진 뒤에 했다. 내가 봐도 한심하게 바뀌고 있었다. 일을 하다 약국으로 달려가 안정제를 사 먹었다. 끝나고도 사 먹었다.


궁금한 것은 그 힘듦의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공감되는가였다. 고용불안을 매개로 경쟁을 가속화하는 신자유주의적 시스템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의 무게에 눌려 고립되고, 타자의 고통에 다다르는 데 어려움을 겪어가 심지어 무감각해지는 경향을 보이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었다.

…베라르디는 무감각과 비공감을 우리 시대의 윤리적 재양이라고 진단한다.

(김영선, 『존버씨의 죽음』中에서)


안 믿는 것 같아서 녹음까지 해서 들려줬다. 몇 십분의 긴 녹음을 듣고도 어떤 말도 하지 않더라. 힘들었겠네. 한 마디를 바란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 욕을 하지 않아서? 때린 게 아니어서? 그랬다면 나는 바로 경찰에 신고했지. 녹음 속의 언어들은 우리 사회가 가진 고질적인 문제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언어였다. 사는 게 팍팍해서 남의 어려움은 보지 못하게 된 건가. 자신이 겪은 게 아니라서 공감이 되지 못하는가. 무감각과 비공감의 자세로 살아가는 자에게 나는 무기력했다.


일하는 동안 책을 많이 샀다. 기분 나쁨과 몸의 힘듦을 풀 데가 없어서. 예전보다 몇 십만 원 더 벌었는데 더 썼다. 벌어도 버는 게 아니었다. 산 책의 제목이 가관이다. 『존버씨의 죽음』, 『아주 편안한 죽음』, 『말론 죽다』, 『평범한 인생』. 사람이 힘들어서 죽겠다는데 원래 그 사람은 그러니까 변하지 않으니까 참고 가자는 말인지 방귀인지 모를 소리를 듣는 동안 몸에 이상이 왔다. 눈을 자주 깜빡이고 고개를 자꾸 갸우뚱하고 키보드를 치는데 손이 떨리는. 틱 증상이었다. 호흡이 불안해지면 화장실로 도망가 숨을 크게 쉬었다.


그래서 존버하지 못했어.


『존버씨의 죽음』의 마지막에는 과노동 저지의 방법이 나온다. 노동조합, 기업, 개인이 해야 될 지침을 알려준다. 노동조합과 기업이 해야 할 일은 모르겠고 개인이 해야 할 일에 밑줄을 그었다. 연차휴가는 할 수 있는 한 다 챙겨 쉬라는 말. 내가 한 달 만근해서 생긴 연차 쓰겠다는 것도 눈치 주면서 못 쓰게 해놓고 이제서야 선심 쓰듯 연차까지 사용해서 쉬라는 말. 이런 걸 원하는 게 아니었냐는 뒤끝 쩌는 말. 이틀만 견디면 된다. 이틀. 이틀만 존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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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생애 소설Q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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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의 소설 『완벽한 생애』의 주인공 윤주는 서울의 방을 여행자에게 빌려주고 제주도로 떠난다. 소설은 윤주가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 안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시작하자마자 떠나는 이야기. 대체 어떤 사연이길래 떠나는 걸까.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현실의 나 역시 쫓기듯 도망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으로부터?


고함과 은근한 협박과 모욕적인 말들로부터.


모욕의 뜻을 찾아보았다. '깔보고 욕되게 함'. 유의어로는 '치욕, 욕, 수모, 부끄러움, 모독, 멸시'가 있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일상어로 쓰이는 말인데도 낯설게 느껴져 한참이나 뜻을 생각하게 되는 순간. 그러다 결국 뜻을 찾아보고 상황을 구체화해보는 일. 윤주는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고도 기회를 갖지 못했다. 남들처럼 스펙을 쌓을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피디 시험에 낙방하고 방송사 스크립터에서 작가로 옮기기까지. 윤주의 생애는 거칠고 메말라갔다. 우연히 직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차라리 듣지 않았던 게 좋았을까. 나는 과거에 집착하고 그때 하지 못했던 말과 행동으로 스스로를 괴롭게 만드는 성향이 있다. 후회를 반복하는 게 일일 정도로. 이제는 그러지 말자는 다짐을 한다. 윤주의 결단은 용기를 준다.


윤주의 재계약을 두고 피디와 아나운서는 이야기를 나눈다. 한 사람의 생계가 걸린 문제를 놓고 그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자를까 말까 정도로 끝났으면 나았을걸. 두 사람의 웃음소리를 듣고 윤주는 그 길로 방송국을 나온다. 한때는 인권법재단에서 간사로 일한 미정은 제주도로 이주해 신공항 건설 반대를 하는 활동가로 있다. 미정은 윤주에게 전화를 건다. 실직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동적으로 제주도로 오라고 한다.


『완벽한 생애』의 첫 부분에서 윤주가 제주도 비행기 안에 있었던 그간의 사정이다. 타의에 의해 직업을 잃은 윤주.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있는지 방향성을 잃은 미정. 이별 후 그 사람의 흔적을 따라 홍콩에서 서울까지 온 시징. 소설은 각기 다른 세 사람의 현재를 보여주면서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묻는다. 너는 왜 그 자리에 있니. 정말 슬프지 않은 게 맞니.


소설은 떠나는 이야기에서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걸 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말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상상하느라 현재를 가혹한 상태로 몰아넣는 잘못을 저지르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완벽한 생애』에 있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는 일조차 사치가 되어 버린 현실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방법이라고 알려주는 게 굴복, 순응, 굴종의 언어들. 네가 참으면 된다는 식의 뭣 같은 말들.


윤주, 미정, 시징 그리고 보경 언니까지. 휴대전화 속 저장된 이름으로 살고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다. 이렇게 살고 있다고 했지. 전화를 걸어볼까. 망설이다 결국엔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만을 주는 사람들. 다만 살아내기를 바라며. 부디 나다움을 지켜가며 외롭지 않기를 바라며. 위로조차 마음으로만 보낸다. 그들이 떠나는 이유란 고작 이런 거다.


내가 잘못 살고 있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내가 한 행동은 최선이었다는 걸 다짐 받기 위해서. 나 스스로부터.


윤주는 자신의 방으로 여행 온 시징에게 편지를 쓴다. 만난 적 없는 낯선 이에게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털어놓는다. 느낄 수 있다. 나의 이야기를 해도 되는 사람인지. 시징은 그런 사람이었다. 어두운 속내를 드러내도 결점으로 삼지 않는 사람. 준비 없이 도망쳐 나왔다고 해도 잘했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 수고했고 잘했어라는 말을 아낌없이 해줄 수 있는 사람.


조해진의 문장이 단순하고 가벼워져서 읽기에 편했다. 『완벽한 생애』를 펼쳐든 순간은 살아내는 일조차 사치라고 느낀 순간이었다. 대체 어쩌자고 생애 앞에 완벽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단 말인가. 의문을 품고서. 읽어갔다. 모욕의 언어를 감내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들.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기 위해 힘을 내는 사람들. 타인의 슬픔을 결코 모른척하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생은 완벽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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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방 사계절 1318 문고 128
최양선 지음 / 사계절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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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선의 소설집 『달의 방』을 다 읽었고 리뷰를 쓰려고 책 사진을 찍었고 노트북을 켰다. 얼마 전에 새로 산 자이언트 춘식이 소파에 앉았다. 살고 있는 집에서 이사를 가야 하는 두 모녀의 이야기를 다룬 표제작 「달의 방」을 먼저 읽었다. 실린 순서대로 읽지는 않고 후루룩 넘기다가 맘에 드는 문장이 있으면 읽어가기 시작했다. 책을 받아 보면 알겠지만 얇고 가벼워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다섯 편의 소설이 실렸고 맘만 먹는다면 앉은 혹은 누운 자리에서 금방 한 권을 읽을 수 있으리라.


일주일을 붙잡고 있었고 쓰려고 했다가 책에 대한 이야기는 놔두고 엉뚱하게 신세한탄을 썼다.(신세한탄의 이야기는 조만간 손을 봐서 올릴 예정이다.) 다시 책의 이야기로 간다. 한창 마트에서 일하던 엄마가 저녁에 들어왔다. 집을 보러 가기 위해서였다. 지금이 아니면 시간이 없다고 한다. 전세 기간이 끝나서 빨리 집을 알아봐야 한다는 걸 '나'는 모르고 있었다. 밤에 집을 보러 다닌다. 밤에.


환한 낮에도 보이지 않는 집의 결점은 밤에는 더더욱 드러나지 않는다. 엄마와 내가 집을 보러 가는 그 밤 개기 월식이 일어난다. 달이 보이지 않는 밤에 중개사와 집을 보러 다니지만 마땅한 집을 찾는 건 어렵다. 마지막 집에 도착했을 때 집에 혼자 있는 아이와 만난다. 친구가 없으리라는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어른들이 오기를 기다리며 「달의 방」은 끝난다.


정말 다행히도 더 이상 이사를 다니지 않아도 된다. 아주 잠깐 놀러 온 지구별에서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지 않아도 된다니. 그간의 힘듦은 잊어버려도 되겠다, 달랜다. 청소 노동자 할머니와 살고 있는 '나'의 일상을 담은 「붉은 조끼」에서 투쟁이란 살아가는 것이라고 배운다. 제도와 법을 바꾸려고 싸우는 게 아닌 나를 지키기 위해서 살아가고 살아남는 일이 위대한 투쟁이라는걸. 최양선의 소설이 좋은 이유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를 지키며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과장하지도 축소하지도 않는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 아이들의 이야기. 나는 아주 오랫동안 웃기고 이상한 아이들과 함께 할 줄 알았다. 힘든 시험 기간이지만 웃으면서 공부를 하러 오고 시험 기간인데도 시내에 놀러 다니는. 학원에 왜 안 왔냐고 전화를 걸면 분명 놀고 있음에도 지금 가고 있다고 뻥을 치는. 말도 안 되는 오답을 써 놓고도 그게 왜 오답인지 어리둥절해하는. 그런 아이들과 함께.


『달의 방』에 등장하는 아이들을 실제로 만난다면 함께 떡볶이와 순대를 먹고 싶다. 문구점에 가서 학용품을 선물해 주고 힘이 들면 연락하라고 주저 없이 전화번호를 건네주고 싶다. 착하고 착해서 남에게 받은 상처마저도 자기 책임으로 돌려버리는 아이들. 소리 내어 마음껏 울지도 못하면서 누군가 울고 있으면 울음의 이유를 알아내어 해결해 주려고 하는 아이들이 『달의 방』에는 있다.


어떤 일이 생기든 너의 잘못이 아니다.


『달의 방』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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