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꿍 : 이두온x서미애 안전가옥 쇼-트 11
이두온.서미애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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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로니아 왕국의 함무라비 법전의 특징은 보복주의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할 때 그 보복주의. 내가 당한 만큼 상대에게 그대로 돌려준다. 잔인한 법 적용 같지만 한 나라를 다스리며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법 조항이 필요 했으리라. 혹은 억울한 사람들이 없었으면 하던 바람이 작용했을 수도. 뉴스를 보면 화가 난다. 비단 나만 그렇지 않을 거라는.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 걸 아는데도 체념 대신 화가 난다. 이제는 그러려니 할 법만도 한데 마음의 기본값이 미움과 분노가 되었다. 차를 빼달라고 헤어지자고 했을 뿐인데 무차별 폭행을 하고 상대를 죽인다. 이게 말이 되냐? 그렇다면 법은? 노회찬 의원의 말씀대로 법은 만인이 아닌 만 명에게만 평등하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렸는데 고작 집행 유예나 보석으로 풀려난다. 


사적 복수는 그래서 픽션의 단골 소재가 된다. 피해를 입었음에도 실력 좋은 변호사를 구할 수 없어 범죄자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걸 봐야 한다면. 나의 가족이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범죄 신고는 112이지만 가족이니까 사귀는 사이니까 잘 해결해 보라는 말을 듣는다면. 한 번쯤 아니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복수를 소원한다. 


안전가옥에서 나온 쇼-트 시리즈 『짝꿍 : 이두온x서미애』은 사적 복수를 다룬다. 이두온, 서미애 작가의 소설적 특징은 과감하고도 날렵하게 이야기의 중심으로 돌진한다는 것이다. 독자를 감질나게 피곤하게 만들지 않는다. 미친듯한 속도감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인간사에 시달려 급피곤한 내가 무리 없이 소설 안으로 입장할 수 있다. 


첫 번째 소설 이두온의 「더없이 중요한 시기」는 경쟁자를 나락으로 빠뜨리기 위해 펼친 술수 때문에 꿈이 망가진 소녀, 태이가 등장한다. 언니의 남자친구에게서 얻은 자동차를 타고 친구 예빈을 만나러 가는 격정적인 시작이다. 후에 자동차를 어떻게 얻었는지 전말이 밝혀지고 태빈과 예빈의 시기는 더없이 중요해진다. 복수는 좀처럼 완벽할 수 없다는 서글프고 흐린 결말로 진행된다. 


서미애의 소설 「이토록 자상한 복수」는 제목처럼 어쩌면 그렇게 자상하게 복수를 설계할 수 있는지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성공 가도를 달리려는 한 남자의 파국의 과정이 속도에 미친 레이서의 뒷자리에 탄 것처럼 펼쳐진다. 과거 자신의 잘못을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는 느리고 다정하고 자상한 복수의 대상이 된다. 대체 어느 지점에서 복수를 당했는지 모르면. 


허구라는 장치를 빌려서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준다. 『짝꿍 : 이두온x서미애』의 세계관은. 오늘부터 내 꿈은 너야라고 말하는 푸석한 얼굴의 동은이를 응원해도 죄책감이 없는 이유는 그녀가 허구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짝꿍 : 이두온x서미애』에서 미약한 쾌감과 안도감을 느끼는 나 반성해가 아니라 그렇게라도 분노를 풀어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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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십육일 -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 에세이
4·16재단 엮음, 임진아 그림 / 사계절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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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년 5월 1일이다. 다행히 쉬었고 그게 또 기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청소를 하고 책을 읽다가 잠들었다. 눈을 뜨니 저녁 여섯시였다. 이렇게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에 일을 하면서 누군가를 미워하고 그런 나를 미워하다니 노동은 가치가 없게 느껴진다. 미운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다른 어떤 이는 무진장 일을 하고 싶어 할 수 있으니까) 일하는 건 좋아지지 않는다. 


4월 다음에 5월. 시간과 계절은 근면 성실한 노동자의 모습이라 너희들에게 일을 맡겨야겠다. 주인도 아닌데 주인 의식을 가지라는 말을 들어도 너희들은 묵묵히 출근을 하고 일을 해내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파이팅 외쳐주겠다. 그러니 나 대신 내일 너희들이 일을 해. 오늘이 왔으니 어제도 있었겠지. 오늘과 내일보다는 어제에 마음이 쓰이는 요즘이다. 


그러니까 과거에.


어제는 오랜만에 어떤 한 단어를 묵음이 아닌 소리로 내보았다. 그 말은 언젠가부터 힘이 나는 대신 슬픔이 밀려들어와 속으로만 마음속으로만 내뱉었던 말이었다. 내내 골몰했던 말이기도 했다. 시간이 이만큼 흘렀으니 슬픔 없이도 일상어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천천히 대놓고 말을 해보기로 하지만 쉽진 않을 것 같아 가슴속 빈 방에 놓인 칠판에 빼곡히 적어보기만 하려고. 


4·16재단에서 엮은 『월간 십육일』을 사 놓고 한달음에 읽지 못했다. 다들 4월을 어떻게 살아냈는지 물어보고 싶다. 나의 경우 황당한 상황이 연이어 일어났고 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중언부언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말을 길고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받아들이고 이해해 보려다가 실패한 사례였다. 급기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속엣말을 입 밖으로 꺼내버리고 말았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다시 놓인다. 그것에 비하면 말이다. 


『월간 십육일』의 모든 에세이가 잊히지 않는다. 매달 16일에 모인 글이기에. 단 하루였지만 평생의 하루가 되어 버린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시인 고명재는 『월간 십육일』에서 영수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슴지 말고 기억해요」에서 고명재는 '있음'과 '시'에 대한 여기의 자리를 만든다. 거기 있었으나 여기 없는 사람들이 있다. 영수 엄마는 영수를 잃고 반찬 가게에서 일을 도와주는 시인과 동생의 모습을 보고 펑펑 운다. 


영수 엄마에게도 자식이 있었다. 과거시제 선어말 어미 '었' 때문에 이 문장은 서럽다. 엄마 일을 도와주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우는 영수 엄마에게 시인은 '수백 번 생각하다 눈을 감은 채 나는 영수를 위해 오래도록 기도를 했다. 너희 엄마가 너를 정말 보고 싶어 하셔. 온 힘을 다해 꿈에서라도 찾아뵙도록 해.'라는 그때의 심상을 들려준다. 


시간은 우리를 다만 슬프게 놔두지 않는다. 영수 엄마에게 영수의 친구들이 찾아와 '저희가 이제 스물세 살이에요.'라는 말로 엄마를 안아준다. 영수 아빠가 웃고 여기 없음은 시가 된다. 『월간 십육일』은 우리가 아직 살지 못한 시간 2024년 10월 16일까지 우리를 데리고 간다. 2020년 6월 16일에서 말이다. 자주 잊겠지만 매달 16일에 세월호 기억 에세이는 나와 당신의 분주한 시간 속으로 찾아올 예정이다. 


말해놓고 머쓱하거나 슬퍼지지 않을 테까지. 세상에 나오고 싶어서 오래 숨죽이고 있었을 나와 당신의 말이 『월간 십육일』에 있다. 나는 오늘 이 글에서 그 말을 마음껏 써서 시로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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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수빈이가 되고 싶어 안전가옥 쇼-트 28
청예 지음 / 안전가옥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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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나는 한 번도 내가 되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장래희망 같은 걸 적어 내야 했던 때에도 어디서 주워들은 어른들의 말을 빌려 의사, 선생님, 박사 이딴 걸로 희망을 대체했다. 내일이나 모레 아주 먼 장래 정도는 당연히 나에게 주어지리라 믿었다. 어리석고 불완전하고 미숙했다고 여긴다. 죽음을 실재하지 못했다. 이별이란 연락이 오지 않아 만날 수 없는 정도의 슬픈 기분이었다. 열다섯의 나는. 


길모퉁이의 작은방이었다. 브랜드 교복을 사지 못해 속상했겠지. 집에 돌아온 나를 반겨주는 이가 없어 울적했겠지. 하는 수없이 공부를 했다. 비행 청소년이 되는 일에도 재능이 없었다. 청예의 신작 소설 『수빈이가 되고 싶어』의 두 주인공 여름과 겨울은 서로를 라이벌로 생각한다. 서로를 바라보며 질투와 시기, 미움이라는 감정을 적립해간다. 열다섯의 그들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여름과 겨울은 영화 〈 A 프로젝트〉의 주인공 자리를 놓고 선의의 아니 무한 경쟁을 벌인다. 애초에 주인공은 오수빈이었다. 원 톱 아역 배우 수빈에게 주인공을 주기 위해 작가는 인물의 이름도 수빈으로 정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수빈이 하차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여름과 겨울은 치열한 오디션을 본다. 여름은 연기가 되고 겨울은 얼굴이 된다. 


어른들은 말씀하셨지. 학교 가면 친구들과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 선생님 말씀 잘 듣고는 덤. 『수빈이가 되고 싶어』는 친구가 되기를 거부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북반구의 여름은 남반구의 겨울. 두 계절은 서로를 의식할 뿐 만나지 못한다. 대척점에 서 있는 두 계절의 모습으로 여름과 겨울의 열다섯의 시간은 폭발한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꿈을 꾸는 그들은 이해, 배려, 공감, 존중이라는 교과서적인 가치는 과감히 던져 버린다. 미움, 증오, 분노, 고통의 현실적인 감정을 상대에게 낱낱이 드러낸다. 심지어 망설이지도 않는다. 솔직한 너무나도 솔직하고 순수한 악이라서 서로를 향한 그들의 감정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이제 열다섯들은 그런 얼굴로 살아내고 있는 걸까. 너를 밟고 내가 올라가겠다는 마음이 기본이 된 채 말이다. 양보는 개나 줘버려. 


나의 열다섯은 누구를 미워할 수도 없었다. 미워할 여유가 없었다는 게 맞겠다. 누군가를 미워하기보다 나를 한심해 하는 걸 선택했다. 후에 이런 선택이 나를 아프게 했다는 걸 깨달았다. 타인을 미워했다면 덜 아플 수 있었을까. 그건 또 아닌 것 같아. 아프지 않을 순 없었겠지. 『수빈이가 되고 싶어』는 너는 누구도 아닌 네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소설이다. 여름과 겨울은 상대의 모습에서 궁극의 나를 발견한다. 


여름이가 되고 싶어. 겨울이가 되고 싶어. 너의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직역처럼 너의 목소리로 나의 이름을 듣는 순간을 영원으로 간직한 채 불완전의 시절을 건너와야 한다. 네가 불러주는 나의 이름이 꿈이 되어야 한다. 괜찮은 내가 될 수 있다고 다가올 미래에 희망한다. 그럼에도 할 말은 하는 할머니가 되는 나의 장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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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환승 인간 - 좋아하는 마음에서 더 좋아하는 마음으로
한정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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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현의 에세이 『환승 인간』의 첫 문장은 '그것이 나의 문제라고들 한다'이다. 이어서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 속 이야기를 들려준다. 화장실에서 일주일 동안 숨어서 지낸 시인의. 예전에 읽었던 르포를 떠올리게 했다. 집이 없어 공원 화장실에서 지내던 여성 노숙인의. 전자는 허구이고 후자는 현실이다. 간격과 차이가 있을까.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때 나는 자주 빈번하게 화장실로 도망을 갔다. 일을 하다 숨이 막히고 울 듯한 기분이 들 때마다. 세계에서 가장 편한 곳이 배설을 하는 화장실이었다 게 믿기지 않는다. 그때의 그곳을 지나 이곳으로 나는 도착해 있다. 잘한 일이고 잘하고 있는 걸까 매 순간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요즘의 나는 입속에 '사랑'이라는 말을 넣어 다닌다. 


사랑이 필요해, 사랑이 있을까, 사랑이 있었으면 하는 식으로. 『환승 인간』을 읽으며 더 자주 사랑이라는 말에 매달렸다. 어디에도 사랑이 없는 것 같은 봄이다. 가혹하고 비참하고 서글픈 봄이다. 나와 당신 우리에게 예전의 봄은 다시 찾아오지 않겠지. 화장실에 숨어 시를 외우던 시인은 미친다. 이후에 시인은 아무것도 잊지 못하고 사람들은 그것이 시인의 문제라고 말한다. 


시인의 문제는 나의 문제이다. 아무것도 잊지 못하는 것, 아니 아무것도 잊을 수 없는 것. 잊어버려라고들 쉽게 말하지만 과거의 슬픔과 아픔, 분노, 수치는 잊히지 않는다. 그러다 한정현은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떠올린다. 나에게 하는 질문으로 답을 해보자면 무엇을 할 수 없는 게 문학이다고 말할 수 있겠다. 사는 데 도움도 쓸모도 없는 문학. 자의식 과잉에 겉멋만 들게 하는 문학. 


『환승 인간』의 주제처럼 나는 나에게서 다른 나에게로 환승하고 싶다. 지금보다 말도 잘하며 단호하고 문학을 숙제처럼 여기지 않는 나로. 그리고 도움을 받고 싶다. 누군가 나를 조금이라도 도와줬으면 좋겠다. 나를 버려두지도 방치하지도 않은 채 말이다. 한정현은 어린 시절과 어른이 된 지금에 본 영화를 소개해 준다. 소설가가 되기까지 고통의 순간에서 만났던 사람과 문학과 영화는 도움이었다. 


소설을 오래 쓸 거라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 영원히 소설을 써야 한다는 생각도 전혀 없고, 소설 외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더욱더 없다. 내 인생의 모토는 '살아만 있자'인데, 사실 이건 책과 인생이 유사하다고 느끼는 지점 때문에 더욱 그렇다. 책이 끝나지만 않으면 다음 장은 분명 예측 불가하지만 흥미로운 일들이 존재하고, 인생도 그렇다고 느낀다. 무조건 '살아 있을 것'이 내 인생의 모토이다. 다만 살아 있을 때 재미있으면 좋으니까, '여러 이름'을 뒤집어쓰고 '여러 존재'로 환승하며 살아보는 거다.

(한정현, 『환승 인간』, 「오래 살아서 더 자주 환승해야지」中에서)


소설가 한정현은 소설을 오래 쓸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너무도 솔직하게 밝힌다. 소설가니까 끝까지 소설을 쓰겠다는 집착과 다짐이 없어서 혹은 욕심이 없어서 놀랐다. 문학을 사명처럼 여기지 않는 산뜻함에 반했다. 그저 살아만 있자는 재미있으면 좋으니까 여러 이름과 여러 존재로 환승하며 살아가자는 소설가라니. 매 순간을 진지하고 무겁게 사는 내가 본받아야 할 자세이다. 


오늘의 나는 환승에 실패했다. 다만 기회가 된다면 하고 싶은 말을 잊지 않기 위해 적는다. 이렇게 추상적으로밖에 말할 수 없어서 죄송합니다. 그저 누구라도 나를 도와주었으면 합니다. 나는 사람들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해결하기 힘든 해결하기 싫은 일을 대신해주는 사람이 아닌 문학이 취미인 사람입니다. 자꾸 그러시면 환승 이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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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은의 가게
이서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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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수의 신간 장편소설 『마은의 가게』의 표지를 쓰다듬는 저녁이다. 아주 오래전에 모았던 편지지 재질이다. 약간의 오돌토돌함. 약간의 까끌까글함. 미약한 보드라움. 미약한 쓸쓸함. 책을 읽고 나서일까. 표지만 만지고 있는데도 다채로운 기분과 감정이 든다. 지난밤은 책을 읽고 오늘 밤은 책을 어루만진다. 『마은의 가게』속 세계에 계속 머무르고 싶다. 책을 홀랑 읽어버린 내가 조금 밉다. 천천히 아껴 읽을걸. 하지만 『마은의 가게』를 읽으면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빨리 자야 하는데도 주인공 마은과 보영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 책을 덮을 수 없었다. 그런 단호함과 결연함이 내게는 없다. 나의 공마은이었다가 우리의 공마은이 되는 이토록 슬프고 다정한 마은의 세계. 연극을 했다가 학원 강사를 했다가 먹고 살 게 없는 서른일곱에 마은은 카페를 연다. 자본금은 이천만 원. 추가 여유 자금은 칠백만 원. 도합 이천칠백만 원으로 자영업자가 되기로 한다. 이게 될까. 의문이 들지만 마은은 해내고야 만다. 


권리금 없는 가게를 찾아냈고 공사비를 아끼는 방향으로. 마은은 잠깐 망설이고 주저하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가게를 연다. 자신의 이름을 딴 '마은의 가게'는 마은에게 일터이자 집이 된다. 나의 원픽 작가 이서수는 계속 계속 나를 울리고 위로한다. 마은이 나 같아서. 나 같은 마은이어서. 아낌없는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혹시 아시는지.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이서수를 검색한다는 것. 시간이 나면 신간 목록을 훑고 시간이 없으면 냅다 이서수를 친다. 그래야 하루가 좋은 쪽으로 완성된다. 이 같은 행위는 제발 오래 소설을 써주세요. 언제든 구매 준비가 되어 있거든요. 기도 의식이다.


'여성 자영업자가 겪는 두려움과 자괴감'을 그리고 싶었다고 작가의 말에서 밝힌다. 한동안 마은은 자신의 가게에서도 두려움과 공포를 느낀다. 여자라서 애인이 없어서 집이 없어서 마은은 낯선 이들에게 무시를 당한다. 주눅이 들어서 마은은 꼭 해야 할 말도 하지 못한 채 속앓이를 한다. 『마은의 가게』는 호러와 서스펜스를 넘나든다. 일상 공포란 이런 것이다를 『마은의 가게』는 보여준다. 사람들은 자주 오해한다. 싸우고 얼굴 붉히기 싫어서 참는 건데 그런 나를 쉽고 우습게 본다. 


아무 말 안 하니까 이렇게 해도 되겠지. 선을 넘는다. 음 그럴 땐 일단 참는다. 좀 많이 참는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 옛 성현들의 가르침을 되새기면서. 마은 역시 그렇게 한다. 첫 가게이고 망하게 하고 싶지 않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으이구 바보 같아 할지라도 마은은 참는다. 계속 마은이 참고 인내하고 견뎠으면 진짜 아주 많이 속상했을 것 같다. 현실의 내가 나를 극복하지는 못하지만 소설 속 당신이 이겨내는 모습은 보고 싶거든요. 


마은의 승리는 나의 승리. 고구마 백 개를 먹은 것 같은 초반의 마은은 조금씩 자신에게 소화제를 투입한다. 후반부에서 마은은 시원하게 트림을 하며 회심의 멘트를 날린다. 좋았어, 잘하고 있어 공마은! 응원봉을 들고 공마은을 외친다. 나도 그럴 수 있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단숨에 급소를 파고드는 말로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는 내공을 『마은의 가게』에서 얻어 간다. 그런데도 나 오늘 구질구질하게 길고도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의 반복을 했단 말이지. 


괜찮아. 


주눅 들어도 유창하게 말하지 못해도.


너의 언어로 할 말은 하는 너이기에. 


오늘도 고생했어. 내일은 조금만 고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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