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엔 흙이 없다 토성은 바닥이 없다 토성이라는 이름으로 도니까 모래바람을 만지고 간 지문들 속 수백 년 동안의 폭풍들
우반
1학년 때 성적으로 우리는 우열이 가려졌다. 우리는 그걸 건널 수 없는 강이라고 불렀다. 이후 보편화된 인터넷 세계에서 ‘넘사(벽)‘이라는 단어가 크게 유행했다. 말이 현실을 따라가는 걸까. 현실이 말을 따라가는 걸까. 우리사회에 건널 수 없는 강과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 참 많아진 것 같다.
사실 나는 그 당시에 ‘입시‘와 ‘학폭‘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입시는 공공연하게 드러난 스트레스였고, 학폭은 은밀한 스트레스였다. 가해 학생에게 부탁을 했다. 다른 남학생들이 좀 모르게 했으면 좋겠다고……. 가장 힘들었던 것은 매일매일 해야 했던 ‘빵셔틀‘ 운전이었다. 나는 우주를 사랑했기 때문에 스페이
내가 평범한 남학생들과 많이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평범한 남학생들은 그런 나를 ‘찌질이‘라고 불렀다.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할 수없죠. 어차피, 시작해버린 것을"로 시작하는 노래. 폭
일반 학생들은 피해 학생의 고통에 무감각하다(직
우리는 거울 조각 같다. 우리는 거울의 각도를 조금씩 틀어 타인에게 빛을 내어줄 수 있다. 함께 환해진다. 이렇게 사람들은 서로에게서 반사되는 빛으로 연결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서로에게 빛을 내어주면서 함께 치유된다. 결국 사람은 반사되어 온 사람으
저에게 진심으로 감동을 주는 선생님께 저는 함부로 할 수가 없었어요."
먹을 것으로 차별을 당했고(그래서 나는 식탐이 남다르다, 못 먹으면 날카롭다, 맛있는 걸 주면 그 사람을 무조건 좋아한다) 청소나 설거지 같은 집안일은모두 내게 돌아왔다. 나는 억울해서 오빠와 동생을 불러서 일을 나눠서 했다. 그러면 가시나가 나선다고 아버지한테 야단을 맞았다. 네가 딸인 줄 알았다면 낳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
아들만 있는 집에서 달라는데 주려고 고민하다가말았다는 말. 나는 그러니까 버려질 아이였다. 바리데기처럼. 버리지 못해서 데리고 온 아이.
김 작가님과 나는 일곱째였고 출생부터 부정당하고 버려진 아이들이었다. 바리데기. 버려도 버리고 던져도 버린, 버리버리 버리데기, 바리바리 바리데기.
나는 하늘로 날아오르는 풍등에게 빌었다. 우리의 삶이 이제 고요히 흘러가기를. 서로 의지하고 아프지 않고 외롭지 않기를.
내 글이 한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였으면 좋겠습니다. 글을 읽는 당신이 모르는 마음을 알게 되면 좋겠습니다
는 "예술을 위해 전쟁을 치른다"라고 표현한다.
김승일2007년 계간 《서정시학》 신인상시 부문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프로메테우스」, 「나는 미로와 미로의키스』가 있다. 최근에는 시인의 꿈을 평생간직해온 74세의 할머니와 함께 멘토링 시집『자꾸자꾸 사람이 예뻐져』를 펴냈다. 읽고쓰고 강연하면서, 각 지역의 교육·문화·예술공간에서 ‘시 창작‘과 ‘시 낭독‘을 통한 ‘학교폭력예방근절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박지음기획, 출간, 강연을 하고 있으며, 여행을좋아한다. 지은 책으로는 장편소설 「우주로간 고래와 소설집 「네바 강가에서 우리는「관계의 온도」 등이 있다.
강윤미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2005년 광주일보와2010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당선되었으며, 광주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 시그림 아트북 이상형과 이상향」, 시그림책「엄마의 셔츠』, 산문집 ‘우리는 마침내 같은문장에서 만난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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