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왜 이렇게 못생겼어?" 엄마는 단호하게 답한다. "넌 못생기지 않았어."
"엄마의 생각이니까 제일 중요한 거야. 내가 널 제일 잘 아니까."
"I‘m not defined by you." (나는 당신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다)
가령 어떤 사람이 나를 고구마라고 부른다 해서내가 고구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엔 불가능한꿈을 가지자(Be the realist, but dream unrealistic dreamin your heart)."
번역문을 즐기려면, 번역의 묘미를 느끼려면번역문 자체를 원문처럼 떠받들어선 안 된다. 번역가는 하나의 곡을 오만 가지저마다의 방식으로 연주하는 연주자들이다.
불안이 내 속을 아무리 좀먹어도, 피가 철철 나도그냥 그러려니 하는 선천성 무통증 환자처럼.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진짜 안 아팠던 걸까. 모르겠다. 어쩌면 너무 아파서 아픈 줄도 몰랐는지도.
올해는 꼭 보자며 서로 기약 없는 약속을건네고 통화를 마쳤다. 웃으며 얘기하고살갑게 전화를 끊으면서도 우린 너무 잘 안다. 올해 만나게 될 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는 걸.
어떤 논리가 있든 어떤 사정이 있든내 마음에 안 들면 틀렸다고 주장하는 태도. 이런 상황이 연출되면 대개는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긴다. 목소리 큰 사람과 싸우는 건 피곤한 일이거든.
"엄마처럼 살지 마. 근데 엄마는 엄마대로행복했어. 엄마 인생도 나름 쨍쨍했어. 그림 같은 순간이 얼마나 많았다고."
자식들은, 특히나 궁하게 자란 자식들은그저 부모의 인생이 불행했을 거라고 넘겨짚는다. 하지만 부모의 인생은 부모의 인생대로 희로애락이 있었을 거다. 어떻게 나는 그 시절을 한번 물어볼 생각도 않고당신의 불행을 멋대로 단정했을까.
반복된 농담이 사회적 인식을 형성하는과정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
슬픔이 올 땐, 홀로 은밀히 오지 않고 떼로 몰려온다(When sorrows come, they come not single spies, but inbattalions)." 셰익스피어 <햄릿> 4막 5장 말씀. 여기서 ‘슬픔‘ ‘일‘로
가난은 개인의 책임이 아닌 경우가 훨씬 많다. 이런 말은 그들이 그저 미련했기에, 노력하지 않았기에 가난하게 죽는다고말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미련하지도 않을뿐더러 몸을 갈아가며노력한 사람들이 가난하게 죽는 것을나는 너무나도 많이 봤다.
의도가 악하든, 역하든 요령이 좋은 오역은혐오 시장에서 통한다. 그 오역물이 선정적이고 추할수록반응이 좋고 돈이 된다.
괜찮을 거야. 다 잘될 거야. 너무 겁먹지 않아도 돼.
개인적인 행복과타인의 불행을동시에 마주하는 순간에도, 때로는 죄책감으로때로는 감사함으로삶을 이어간다. 삶은 이토록 모순적이고 불가해하다. 감히 번역해 낼 수 없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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