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
배한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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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출판에서 출간한 [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는 특별한 역사책이다. 시대의 흐름대로 사건을 담은 게 아니라 저자 본인의 생생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잘 짜낸 유물역사책이다. 

저자 배한철은 문화재 기자다. 이번 책이 첫 책이 아니며 문화재관련 전문가도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행복해지는 법! 그는 학창시절부터 관심있었던 문화재와 역사공부를 꾸준히 하며 발로 뛰는 역사학자의 면모를 다지고 있다. 휴일이면 서울 주변의 유적지를 둘러본단다. 도시화가 되어서 그저 지나쳐지는 유물들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저자는 이런 것들을 매우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찾아간다. 정리한다. 그리고 소개한다.


저자는 국보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답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엄청 동의한다. 교과서에서 담아주는 사진은 규격에 맞춰서 들어가지만 직접 가서 만나보면 그 웅장함이나 -꼭 크지 않더라도 - 그 감동이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하루 빨리 통일이 돼야하는 이유, 중국 땅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자유로이 답사 갈 수 있는 날이 와야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책은 총 8부로 나눠져 있다. 본인이 참여했던 국보 발굴 현장 답사기부터 우리의 잃어버린 국보 이야기도 있고, 전쟁을 견딘 국보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미스테리한 그래서 더 재밌는 국보이야기도 있고, 국보가 담은 삼라만상의 기운과 더불어 국보를 제작하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도 만나볼 수 있다. 차례만 봐도 재밌고 다채롭다. 


한개의 챕터는 한 개의 국보를 담고 여러가지 일화들을 속하여 있다. 중간 중간에 국보의 사진도 있다. 교과서에서 봤던 자료들도 있지만 아예 처음보는 사진들도 많았다. 저자가 얼마나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1개의 부마다 말미에 '국보 토막상식'을 넣어두어서 흥미로웠다.



한국사를 공부해놓고 국보를 보러가지 않는 것은 모순이다. 국보는 한시대의 정점에서 태어나 켜켜이 선조의 흔적을 쌓아두었다. 국보에 대한 연구는 지속돼야 한다. 국보가 얼마나 가치있는가 아는 사람이라도 국보가 후손들을 위해 물려줘야 하는 국가의 자산이라는 생각이 없으면 국보는 한낱 재산목록에 불과하다. 그래서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국보 혹은 여타 문화재를 소유하거나 팔아넘기려고 한다. 손춘익 선생이 쓴 [돌사자 이야기] 라는 동화가 있다. 그 책에서는 문화재를 대하는 세 명의 사람이 나온다. 한 명은 농부인데 우연히 돌사자를 발견하고 헐값에 팔아 넘겼다. 그는 문화재를 경시여기는 사람이다. 그 다음은 골동품 상점 주인인데 그는 헐값에 산 돌사자에 이윤을 붙여 일본사람에게 팔아먹는다. 문화재의 가치는 알지만 그저 재산목록으로 본 것이다. 마지막은 나그네다.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그는 돌사자를 사들인 사람이다. 그리고 자기네 나라로 반출하려다 갑자기 벼락이 쳐서 죽는다. 동화라고 얕잡아 보기엔 문화재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먼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됐지만 무엇보다 국보의 소중함이 좀 널리 알려졌으면 하고 소망을 품어보았다. 그리고 우리의 세대는 천년 후의 손들에게 무슨 국보를 남겨줄 수 있나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참 좋은 책이다. 자료 조사도 열심히 했고, 귀중한 사진자료들도 많다. 흥미로운 국보에 대해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주면 교육적으로도 좋을 것 같다. 5학년부터 읽어봐도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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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 - 일상의 아름다움을 찾아낸 파리의 관찰자 클래식 클라우드 24
이연식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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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드가가 인상주의 화가인 줄만 알았다. 잉? 그런데 아니란다. 그건 그가 밖으로 돌아다니며 풍광을 담는 게 아니라 실내로 들어와 앉았다. 도시의 면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동하는 여성이나 발레 공연 등 사람과 현실을 그렸고, 정적인 자연을 그리는 것이아니라 역동적인 모습 자체를 묘사했다. 빛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인상주의라고만 규정지을 수 없는 이유다. 오모나, 내가 알던 드가가 아니네?


  

드가와 파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벨에포크 시대를 먼저 알아야 한다. 드가는 이 시기 속에서도 사람들의 허무와 고단을 포착해냈다.



에드가르 드가는 1834년에 파리에서 태어나 1917년에 별세할 때까지 주옥같은 회화를 남겼다. 드가는 마네와 교류했고, 사진과 판화와 조각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사진술이 발달하면서 그림의 오류들이 발견된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나 드가는 그림이 가진 고유한 것을 증명하기 위해 상당히 애썼다. 또, 유화를 즐기는 회화가들과는 달리 파스텔을 즐겨썼다고 하니 그 점도 신기했다.


드가는 미혼으로 살았지만 여성을 많이 그렸다. 권위적인 모습보다는 아름다움에 주목한 것 같았다.


작가는 마네보다 드가가 훨씬 매력적이라고 이야기했다. (마네 팬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싶다. 갑자기 피리부는 소년이 생각나...)


  드가는 역설적인 예술가다. 인상주의 그룹의 핵심이면서 인상주의에서 벗어난 듯한 그림을 그렸고 (본인을 사실주의 화가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혁신적이기도 했지만 전통을 고수하기도 했다. 체제에 순응하면서도 체제를 미워했고, 루브르에서 공부했지만 오르세에 더 많은 작품이 있다. 전통적이면서도 새로운 사람, 파리를 닮은 사람. 

도시에 살면서 우리는 무엇에 탐닉하고 있을까? 늘 제대로 바라보고 그대로 담아내려고 했던 드가의 생각은 당시의 예술 사조에서 썩 반기는 구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어딘가 방향성을 상실하고 어딘가 무의미한 가족 사진 앞에 직접 서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림 중에 하나인 <콜코르드 광장, 르피크 자작과 딸들>p.135 이다.


마치 몰래 찍은 자연스러운 사진 같지만 어딘지 서글픈 그림이다.


  우리는 거장이라고 부르고 있는 드가는 첫번째 인상주의 작품 전시회에서 실패하기도 하고 회원들과 의견이 갈려 싸우기도 했다. 예술가들은 서로 개성이 강하니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모네와 르누아르보다 형이라고 하니 뭔가 어색하다 ㅋㅋㅋ 나이가 제대로 기록돼 있는 것도 신기하고. 1830년대 사진술이 발달하면서 회화의 한계와 거짓에 대해 갑론을박이 많았다. 그 유명한 제리코의 <엡섬의 경마> 와 마네의 <블로뉴 숲의 경마> 는 사진술의 발달 이후 그 폭발적인 에너지에도 불구하고 거짓말 회화 인 것처럼 돼버렸다. 말은 실제로 그렇게 앞 뒤 다리를 쭉 펴고 달릴 수 없기 때문이다. 뒷다리가 접혀야 정상이다. 미국의 사진가 에드워드 마이브리지가 촬영한 경주마의 사진이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것이다. 드가의 그림은 좀 더 나아보인다. 다른 사람들을 찰나의 스피드를 그릴 때 드가는 천천히 멈추는 영속성을 그리려고 했던 것 같다. 이런식으로 비교해주니 너무 재밌었다. 드가는 화가지만 점토나 밀랍으로 형상을 만드는 조소작업도 했다. 결혼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독하게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굵직한 사건들을 겪으면서도 예술가로서의 소신을 지키며 살아갔던 드가. 나는 드가가 이렇게 다채로운 사람인 것을 처음 알았다. 역설의 예술가라는 그 말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p.147 이라는 회화를 다른 예술에세이에서 보고 상당히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 책에 쓰인대로 실존인물이 자기 얼굴을 보고 놀랄 수 밖에 없었겠다 진짜) 아침부터 몰아치는 알콜중독자의 묘한 눈과 그 기운. 공기의 무게까지 그릴 줄 아는 화가라는 말에 상당부분 공감한다. 그 예술 에세이를 볼 때 그 그림이 드가의 그림이라는 것을 알았었겠지만 금방 잊었다. 그런데 그림을 보니 생각이 확 난다. 드가의 그림이 강렬했던 것은 사실이다. 예술 시류의 중심에 있었지만 언제나 당당한 이단아, 드가.


그의 삶과 예술에 대해 이토록 상세하고 읽기 좋게 서술 해 놓다니 고맙고 감동적이었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서평을 쓰면 늘 서평이 길어진다. 소개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다. ㅎㅎ


소장 욕구 뿜뿜인 이 책은 벌써 스물네번째 책이다. 작가, 화가, 음악가, 철학자 등 거장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면서 그의 삶과 작품을 조명해 보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정말 좋다.


유튜브에서도 만나 볼 수 있다고 하니 책을 읽고 한 번 씩 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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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나의 도시를 앨리스처럼 1~2 - 전2권
네빌 슈트 지음, 정유선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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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엔지니어이자 작가인 네빌슈트의 소설 [나의 도시를 앨리스처럼] 을 읽었다. 소설이라면 무조건 열린 마음으로 보는 나는 표지부터 마음에 들어 고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목도 그렇고!

그렇지만 읽다보니 유쾌한 내용이 아니어서 깜짝 놀랐다. 이건 정말 표지의 배신?


서술자인 노엘은 변호사다. 그는 진이라는 영국 여자의 재산을 관리하게 되는데 이유인즉슨 진의 삼촌이 죽기 전에 혈육인 조카들에게 재산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 중 진의 오빠가 전사하면서 꽤 많은 재산이 진에게 왔고 진이 너무 어리기 때문에 30세 중반이 되기 전까지는 모든 재산이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만 연금식으로 지급받기 때문에 그것을 인계해주고 관리하기 위해서 노엘이 필요한 것이다. (복잡;;)

그래서 노엘은 진을 만난다. 진은 속기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평범한 사원이다. 하지만 알고보니 진은 전쟁 중에 포로 끌려갔던 경험이 있었다. 1930년대의 일이다. 일본은 말레이반도를 습격했고, 그 때 영국인들을 붙잡아 남자는 포로수용소에 집어 넣고 여자들은 방치했다. 방치했다기 보다 빙빙 돌려가며 학대했다. 동양인들에 비해 처참하게 대하지는 않았지만 계속 걷게 했다. 말라리아나 과로로 줄줄이 급사하는 가운데 진과 몇몇은 살아남았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한 마을의 도움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진의 끈기와 성실, 그리고 자비와 용기 때문이다. 그녀는 영국으로 귀환된 후에도 여전히 삼년동안 살았던 마을을 생각한다.

진이 여러날을 걸으며 주변 사람들을 죽음으로 떠나보내며 겪은 일 중에 가장 충격적인 일은 그네들을 몰래 도와주던 호주 군인 조의 죽음이었다. 조는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박힌 채 처형당했다. 아니,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 조가 살아있었다. 조 역시 간절히 진을 만나고 싶어했다. 그들은 전쟁 후 6 년째 빙빙 돌고 있었다. 그들은 과연 만날 수 있을 것인가 말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은 잘 됐다. 만났고 사랑했고 결혼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랑이야기로만 본다면 이 소설은 재미없다. 이 소설은 전쟁포로였던 진 패짓이라는 한 여자가 억대의 재산을 물려받고나서 한 행동들을 집중해서 봐야 한다. 3년동안 위험을 무릅쓰고 버려진 전쟁포로를 돌봐주었던 말레이의 한 마을에 우물을 파서 여성들의 일거리를 줄여준 진은 호주로 건너가 호주 여성들을 돕는다. 그녀는 마치 슈퍼우먼처럼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선한 영향력을 뿜뿜 풍기면서 살아간다. 진의 그런 용기있는 행동들이 너무 멋있으면서도 돈이 있으니까 가능하지 싶었다. 그렇지만 돈이 있다고 다 그렇게 베풀고 나누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진이라는 캐릭터가 정말 멋져서 누구에게든 소개시켜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1권이 더 재밌다. 1권은 가슴이 늘 쫄깃거린다. 포로가 된 영국여자들이 마치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40일을 걸어야 했던 이스라엘 민족처럼 말레이반도 곳곳을 걸어야만 했을 때 진이 일본군 병사들과 대적하면서 이뤄낸 결과는 대단했다. 결국 일본군이 진과 사람들을 버린 것이긴 하지만 죽음의 순간에서도 홀로 도망치지 않고 병자와 아이를 돌보며 끝내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그리고 잊지 않고 가진 것을 이용해서 은혜를 갚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그러나 2권으로 가면 갑자기 조의 생존 소식을 알게 되고 조 역시 극적으로 살아나면서 6년이란 시간동안 회복하고 오해를 풀고 진을 찾아 영국으로 오는데 이 과정이 너무 작위적으로 느껴지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상당히 읽을만 하다. 읽으면서 재밌었고, 알게 된 것도 많고. 북반구와 남반구를 넘나들고, 10년의 세월을 넘나들고, 세대와 인종의 차이를 넘나드는 이 소설이 참 재밌었다. 마지막으로 노엘의 사랑은 영화 [인턴]이 생각났다. 젊은 날의 눈부심이랄까, 젊은 매력과 활기에 대한 동경이랄까. ㅎㅎ

두 권이라 좀 부담은 있지만 가볍게 읽어보기에 괜찮은 소설이다. 작가 네빌슈트는 1899년생인데 전쟁에 참여하는 엔지니어였으므로 무기도 만들었고 이름도 숨겼다. 네빌 슈트는 필명이다. 주인공이 여자인 것이 작가에겐 다소 어려운 설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진의 심리묘사는 그렇게 잘 됐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서술자가 중년 남성인 것은 대단히 어울리는 설정이었다. 어쩌면 그도 진 패짓 같은 눈부신 젊은이를 만났을런지도 모르겠다^^

그의 이력을 알고나면 이 소설의 배경이 더욱 사실적으로 느껴지게 될 것이다.

우연한 기회로 읽은 책 중에 좋은 책이 참 많다. 이 세상에는 진처럼 용감한 여성이 많아지면 좋겠고, 조처럼 지고지순한 사랑과 자기 나라에 대한 애정을 가진 젊은이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노엘변호사처럼 정직하고 믿을만한 법조인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대신 전쟁은 절대로 없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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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1
나태주 엮음 / &(앤드)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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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무슨 힘이 있습니까?

시에 무슨 힘이 있습니다.

시는 용기를 주는 찬란한 나의 편입니다."

- 김승희


유명 드라마에서 소개되면서 갑자기 인기를 얻게 된 나태주 시인의 짧은 시 <풀꽃1> 을 기억한다. 풀꽃 시인이라고 불리는 나태주 시인이 (주) 넥서스의 문학 브랜드 앤드(&)에서 에세이를 출간했다.

나태주 시인이 건 슬로건은 '나를 살린 시들이 이제 너를 지켜주기를!'

이게 무슨 말이지. 시인이 죽을뻔했나.

궁금했다. 저자의 이름만으로도 엄청 흥미가 갔던 책이다


하얀 바탕에 이름모를 풀이 불쑥, 그렇지만 겸손하게 솟아있는 깨끗한 책. 시인은 교직생활을 하면서 느낀 자연에 대한 여러가지 심상을 언어로 풀어 시로 남겨두었다. 그리고 그가 일평생 만난 시 중에 가슴을 울린 명시 114편을 간단한 감상과 함께 남겨두었다. 그것이 이번에 나온 시 에세이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이다.


구성은 이렇다.

시의 전문이 삽입돼 있다. 그리고 이 시에 대한 간단한 감상을 짧게 넣어두었다. 당연히 저자의 생각이다. 그 속엔 수록된 시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시인과 저자와의 에피소드도 있다. 길지 않아서 지루하진 않지만 그 바람에 아쉽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너무 요약해서 해주는 기분일까?

상대적으로 소설이나 인문학서보다는 시집을 안 읽는 나에게 가끔 이런 류의 에세이는 명시를 발견하게 해주는 보물섬 같은 책이다. 110개 넘는 시 중에서 내가 고른 한 개의 시는 천양희 시인의 <마흔 살이 되는 해는> 이라는 시다. 마흔이 얼마 안 남아서 그런건지 화자의 저 초연을 닮고 싶어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희한하게 저 시를 한 번 쯤 필사해두고 싶었다. 명시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시들도 많지만 전혀 모르는 시들도 있어서 어떤 시는 소리내서 읽어보기도 했다. 소리내서 읽으면 눈으로만 읽을 때보다는 또 다르게 다가오니까.



천천히 읽어야 하는 책이다. 후루룩 읽기에는 아깝고 아쉬운 책이다.


가슴이 마구 따뜻해 지던 책 ,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다. 나태주 시인이 그랬듯이 좀 울적할 때 시를 읽어보자. 요즘처럼 뭔가 내 맘대로 안 될 때는 시를 곁에 두어야겠다. 구차한 설명 없이 나와 글을 연결해주는 고리가 나를 좋은 영혼으로 인도할 것이다.


시는 남을 생각나게 한다. 늘 나와 내 가족만 보고 달려가게 만들던 비루한 삶 가운데 '함께' 라는 찬란함을 선물해준다. 길지 않은 시구들을 읊다보면 희한하게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가 보인다. 별 생각없이 보낸 하루 속에서 마주친 남을 생각하게 한다. 생각이 많아지면 지혜가 나오는 법이다.


시는 세대를 연결한다. 잊고 있던 내 아버지의 세대, 그보다 더 윗 세대를 생각나게 한다. 우리 세대가 스러지고 난 후의 다음 세대를 생각하게 한다. 시는 그런 것이다. 과거가 노래가 되고, 미래가 꿈이 되는 것이 시다. 시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시를 좋아한다. 시는 아름다운 역사서니까.


인생을 돌아보고 싶은 사람 누구에게든지 추천하고 싶은 책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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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 전집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2
이솝 지음, 아서 래컴 그림,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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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돼서 읽는 이솝의 우화들!



어릴 때 이솝우화 안 읽어본 사람 있을까? 초등학교 때 탈무드와 함께 교훈을 목적으로 누구나 읽어봤음직한 책을 마흔이 다돼서 새롭게 읽으니 느낌이 아주 남달랐다.

어릴 때는 그저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재밌는 이야기에 불과했더라면 다 커서 읽는 이솝 우화는 기원전에 살았던 철학자이자 문장가 이솝이 인간세상에서 느낀 여러가지 우스꽝스러운 상황들을 우회적으로 돌려서 이야기하는 촌철살인의 글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솝은 세상의 부조리를 꼬집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해학과 재치는 2500년이 지나서도 사랑받을 수 없게 생겨먹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세상살이는 다 거기서 거기고, 인간은 여전히 너무도 부조리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도 극찬한 고전 중의 고전이라는 [이솝우화] !

이번에 현대지성에서 출간된 책은 특별히 아서래컴의 그림으로 함께한다. 아서래컴은 그림형제의 동화삽화를 그려 주목받게 된 영국 일러스트레이터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이 사람 역시 일러스트계의 거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 그림체가 확실히 남다르긴 했다.

이 책은 358개의 우화가 실려있다. 글과 함께 어떤 상황에서 쓰이는 글인지 설명을 달아놓았다. 지금와서 생각하니 예전에는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솝이 직접 써 놓은 것인지 옮긴이가 첨부한 것인지 궁금했다. 358개가 모두 다른 이야기지만 결국 겸손과 정직과 성실 등을 가르치는 상당히 계도적인 글들이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188번글 <모기와 사자>에는 '이 이야기에는 특별한 교훈이 없다' 고 나온다. 그런 말도 무척 신선했다. 그런데 나는 이 글에서 교훈은 없을지 몰라도 삶의 지혜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사자와 싸워서 이겼다고 자만하며 날아가던 모기가 거미줄에 걸려 끝내 죽어가면서도 '내가 사자와도 이겼는데 거미에게 지다니 분하다.' 고 했단다. 어쩌면 인간도 죽을 때까지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고 잘난체 하는 동물일지도. 사실 이솝 우화는 짧지만 여운이 길다. 자꾸만 생각해보게 된다. 나의 상황에 빗대보고, 읽다보면 등장하는 동물이나 인물들과 은근히 닮은 주변사람들을 기억해내게 된다. 재밌는 작업이다.

또, 동양의 시각과 비슷한 이야기들도 눈에 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 이나 '소탐대실' 격인 이야기도 재밌었다. 어릴 때 <콩쥐 팥쥐> 와 <신데렐라> 가 어딘가 모르게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것도 그런 맥락이겠지. 어쨌든 인간세상이 동양이나 서양이나 거기서 거기니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세만 부리던 자는 권력의 맛에 미끄러져 추락해버리고, 남을 속이며 이득을 취하려던 사람은 언제든 가장 손해보는 지경에 이른다. 실제로 어른이 돼서 보니 정말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야만 또 살아가는 재미가 있다. 나쁜 사람들이 언제나 승리하면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또 기억에 남는 이야기 중에 하나는 <사자의 왕권> 이었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가 촉각을 세우는 이유는 대선 주자의 승패에 따라 국가들의 이권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야기 말미에 이런 글이 있다.

"나라에 정의가 있어서 모든 재판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면 , 힘 없는 자들도 평화롭게 살아가게 된다." 정의는 정말 승리할 수 있을까?

하여튼 재밌다. 정말 재밌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읽어보면 좋겠다. 모든 이야기가 같지 않지만 반드시 다르지도 않고, 지금 당장 와닿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렇지만 읽다보면 나도 모르는 모종의 지혜가 내 삶에 스며들게 된다. 이야기는 인생의 행로를 결정하는 분명한 힘이 있다. 이 짧고 작은 우화들이 그런 힘을 발휘할 때는 언제일지 모두 읽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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