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 유품정리사가 떠난 이들의 뒷모습에서 배운 삶의 의미
김새별.전애원 지음 / 청림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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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심코 지나쳐온 다양한 죽음 속에는

언젠가 내가 맞닥뜨릴지도 모를 하루가,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 겪을지도 모를 오늘이,

지금 내 옆에 살고 있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정말로 남는 것은 집도, 돈도, 명예도 아니다.

누군가를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

오직 그것 하나뿐이다.

p.13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김새별 . 전애원 지음청림출판


얼마 전에 [죽은 자의 집 청소](김영사) 라는 책을 읽고 죽음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특수청소업체가 따로 있다는 사실과 감히 상상도 못했던 극한 노동의 실태도 알게 되었다. 아무 이미지도 첨부되지 않았지만 글만으로도 얼마나 참혹하고 더러운지 상상이 돼서 한참을 불편했다. 그렇지만 생각이 좀 바뀌었다고 할까. 눈물도 쏟았다. 읽길 잘했다는 생각도 했고.

왠걸? 비슷한 책이 또 도착했다. 이번에는 유품정리사라는 직업명까지 붙었다. 사실은 별 기대없이 받아들었다. 이런 특수직업들이 힘들다는 것은 알지만 글감인가? 싶어서. 그런데 약간 느낌이 달랐다.

우선 나는 이 책이 더 슬펐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돈을 먼저 찾던 비정한 자식들, 자식을 위해서 병을 숨겨온 부모의 모습들이 상상이 되면서 몇 번씩 코끝이 시큰해졌다. [죽은자의 집 청소] 가 좀 담담하게 다가왔다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은 좀 더 감성을 건드렸다. 근데 작가가 억지로 짜낸 감성은 아니었다. 그저 전달할 뿐이다. 아님 내가 상상력이 뛰어난가;;

울음 참느라 혼났다. 죽음이 절대 막을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해 요즘 생각이 많다. '얼마든지 막을 수도 있는 죽음' 이 존재하는 것 같아서 속상하다.

저자의 이력도 신선하다. 저자 김새별은 유품정리사로 망인의 생전 집을 깔끔하게 비우고 정리하는 특수 청소업체를 운영 중이다. 오래 전에 친구가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고 우연히 그의 시신을 염하는데 참여했다. 그리고 장례지도사가 돼서 일하다가 유품정리사가 된 것이다. 뭔가 차곡차곡 준비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죽음에 대한 특별한 의식을 담담하게 진행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라면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만큼 훌륭한 일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충도 많다. 악취와 해충의 습격처럼 1차적인 고통도 견디기 힘든데 주위 사람들의 뜻모를 배척과 천대가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왜 소금을 뿌리고, 왜 화를 내? 이게 무슨 현대판 갑질과 횡포인지!!!

시체가 지독히도 어지럽히고 간 자리를 치우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편안한 상태는 아닐진데 주위의 강팍한 시선과 멸시와 비난 등을 꿋꿋하게 견뎌야 하는 직업이라니. 금전적 이득만 봐서는 절대로 하지 못할 일. 그러나 이 업체 사람들은 직업적 소명의식을 가지고 이 일들을 감당하고 있었다. 이들이 하지 않는다면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직업엔 귀천이 없다지마는 아무래도 꺼려하는 업종은 있을 것이다. 누구나 처음부터 이 일만이 나의 적성이라고 생각하고 오진 않았겠지만 사장님의 마인드가 훌륭해서인지 이 회사의 직원들 역시도 하나하나 괜찮은 사람들인 것 같았다. 여러가지 일화를 소개하지 않는 것은 독자들이 읽어보길 바라는 마음인데 고양이 무서워하는 직원은 좀 웃겼다.

비정한 죽음이야 없어야겠지마는 어떤 죽음이든 터부시 여겨지는 사회에서 그들이 머물렀던 자리를 편견없이 치워준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히 성스러운 일이다. 이 책이 많이 읽혀지고 알려져서 유품정리사를 천대하는 풍조가 사라지길 바란다. 이 책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저자가 유키즈온더블록 프로그램에서 알려진 것처럼 더 많은 매체에서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인식 및 처우가 개선돼서 이렇게 어렵게 일하시는 분들에게 빛이 나길 진심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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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퍽10 <5+5> 공동번역 출간 프로젝트 1
빅토르 펠레빈 지음, 윤현숙 옮김 / 걷는사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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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분명해졌어.

하지만 중요한 건

그녀의 창조자들이 자기에게

개인적으로 해를 끼치려고 한 것이 아니라는 걸

그녀도 안다는 거야.

그들은 그냥 자기들 형상대로 그녀를 만든 거야.

p.428


세계가 열광한 러시아의 신세대 작가 빅토르 펠레빈의 SF소설 [아이퍽10]을 읽었다.

나는 원래 SF를 좋아하기 때문에 주저없이 이 책을 선택했다.

러시아 SF는 처음이어서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기다렸다. 그리고 받았는데 두둥-

너무 어려웠다!!!!! 히읽!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이자 책을 이끌어가는 중심은 포르피리 페트로비치다. 그는 아쉽게도 사람이 아니다. 경찰 문학 알고리즘이다. 그는 경찰이니까 범죄를 수사하고 결과물은 소설이다. 그는 소설을 243개나 쓴 대작가이다. (알고리즘이라는 게 함정 ; )그는 돈 많은 미술평론가 마루하 초에게 고용된다. 마루하초는 고환달린 여성이다. 그는 '석고' 라는 미술 분야의 전문가다. 마루하 초는 돈이 많아서 가장 비싼 섹스 가젯인 아이퍽10을 사용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희한했던 것은 기존 내가 읽었던 SF보다 훨씬 자유의지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컴퓨터 프로그램들이 스스로 업데이트는 물론 미래를 설계하고 복수를 계획한다.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은 뭐 껌씹는 것보다 쉬운 일이다. 또, 다른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 하거나 그 프로그램에 스스로 삽입될 수도 있다. 너무 놀라운 혁신이 아닐까.

내가 가장 충격받은 것은 섹스봇이었다. 이제 인간 간의 성애가 위험하고 더러운 것이 되어버렸다. 전염 가능성이 낮고 폭력성이 낮은 섹스봇과의 성애가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버렸다. 엄마라는 존재도 별로 필요가 없어졌다. 이런 알고리즘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 못내 불편했지만 시류인가? 정말 미래사회는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에이즈가 없어질 것이고, 낙태-라는 합리적이긴 하지만 비인간적인 행태- 가 불필요 하게 될 것이고, 강간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미 소설 속에서는 그런 사회가 도래했다) 좋은 점만 보자면 한 없이 좋은 것이 최첨단 시대지만 어딘가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성애란 인간과 인간이 하는 것으로 아직도, 여전히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대까지 가서 살고 싶지가 않다. 으윽.

작가 빅토르 펠레빈은 인간의 탐욕을 AI 사회에 비춰서 말하고자 했는데 그 재능이 아주 천부적이었다. 신예이면서도 대단히 은유를 즐기며, 적절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신랄한 문장들을 자주 구사할 줄 아는 작가였다. 인간 본성의 고전적 개념에 의거해 알고리즘을 만들었지만 인간도 몰랐던 인격체로 업그레이드 돼 인간을 공격하게 될 거라는 다소 허황돼 보이는 공상과학적 클리셰를 뭔가 일어날 것 같은 공포로 바꾸었다. 이 책을 읽다보니 이런 일이 실제로 도래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쇄하다' 라는 말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될 수도 있는 세대, 모든 문장이 네트워크에 걸려있는 시대. 무서워. 개인정보따윈 없겠군)

아직 읽지 못할 독자를 위해서 다 공개할 수는 없지만 잔나라는 캐릭터가 바로 그런 캐릭터였다. 두려웠다. 알고리즘이 인간에게 복수하기 위해 다른 것으로 모습을 바꾸고 접근하는 것은 대단히 혁신적인 이야기자 두려운 스릴러였다. 결국 알고리즘이 인간처럼 자유의지를 가지고 인간을 살해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호러였다. 그렇지만 작가는 영리하게도 이것이 소설일뿐이라고 한 번 더 포장해 두었다. 정말 영리한 작가가 아닐 수 없다.

인공지능 시대는 벌써 왔다. 이제 그것이 실체를 띄느냐, 아직도 둥그런 스피커 속에 존재하느냐는 어찌보면 그저 시간싸움일 뿐이다. 그러나 나를 꼭 닮은 , 마치 인격체인양 보이는 로봇이 나의 모든 것을 지배하려고 드는 세상을 발전된 세상, 나아갈 미래라고 믿고 싶지가 않다. 모든 문명은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아름다운 데까지만 발전하는 게 제일 좋다. 선을 분명히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권 문제는 이미 대두를 넘어서 고착화되고 있다. 다행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기계의 권리 또한 주장한다. 인간의 본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늘상 희생되어야만 하냐는 것이다. 머리가 복잡하다. 기계의 인권까지 보호해 주어야 하나? 나는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따뜻한 SF를 원한다. 나는 아직까지는 따뜻한 감성의 동양적 SF를 사랑하는가보다.

그렇지만 다가오는 현실이라면 직시해야겠지. 아무튼 어려웠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다음에 찬찬히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작품! (두 번 읽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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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조차 아름다운 당신에게 - 상처받기 쉬운 당신을 위한, 정여울의 마음 상담소
정여울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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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요즘 우후죽순 출간되는 에세이들을 접하면서 자기의 내면 이야기라기보단 지식 자랑이나 아리송한 감성 보여주기 식일 때가 많아 실망이 잦았다. 심리학 책도 마찬가지. 융이나 아들러를 직접 다룬 내용이거나 내담자의 상황을 알려주며 이론을 정립하는 의사 에세이도 많이 보았고, 보다 현학적이고 철학적인 것도 읽어보았다. 물론 좋은 책도 많았다. 하지만 작가 개인의 삶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만큼 녹아있었는지 묻는다면 대체로 부정적이다.

정여울의 신간 에세이 [상처조차 아름다운 당신에게] 가 은행나무에서 출간됐다. 얼마 전에 [헤세]를 읽었고, 오래전에 작가의 여행 에세이를 읽어봤던 터라 익숙하긴 했지만 심리 책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읽기 전엔 걱정이 더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원래도 담담한 문체, 작가의 깔끔한 필력 등을 믿었기에 주저 없이 도전했다. 그런데 웬일이야! 예쁜 수첩이 따라왔네^^ (굿즈에 쉽게 빠지는 스타일)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박사학위까지 있는 그녀가 어릴 때 감정적 학대를 견디며 살아왔다는 것은 팬인 나에게 약간의 충격이었다. 똑똑한 사람도 불행할 수 있다는 , 아니 어쩌면 더 불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한 때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어도 상당 부분은 차지한다고 부지간에 (그렇지만 상시로)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에게 사랑받고자 공부에 매달렸다고 한다. 행복하지 않았지만 자기를 증명할 길이 그것 뿐이었다고. 사춘기 접어 들기 전 가장 예민할지도 몰랐던 그 소녀 시절에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받은 모멸은 아이를 더 움츠러들게 만들었다고 한다. 소아우울증을 알았던 그녀가 11세에 극단적인 생각을 했었다고 하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스물아홉살이 돼서야 심리학을 공부하게 됐고, 내재된 트라우마와 발현된 스트레스, 가슴 속에 들어찬 울분 등을 마주하게 됐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아는 두가지로 나뉜다. 밖으로 드러나는 자아와 내면의 자아. 밖으로 드러나는 자아는 보통 에고라고 부르는데 정여울 작가는 그 반대 개념을 셀프라고 말한다. 에고는 본래의 자기이자 의식적인 자기다. 사회적이고 계산적이며 비교를 즐긴다. 그러나 셀프는 문명화된 자기로 내면적이고 무의식적이다. 셀프가 성숙해야 상처가 적다. 셀프는 충족되지 않았는데 에고만 가득하면 불행할 수밖에 없고, 페르소나가 연기만 하면서 살아야 한다.

정여울 작가는 성장이라는 개념은 지양하고 내면화라고 부르길 원한다. 성장은 도태를 수반하지만 개성화는 보다 나은 개념이라는 것. '나'를 찾는 노력은 현대인이 늘상 하는 것 중에 하나아닌가.

이 책이 좋은 것은 챕터마다 설명이 쉽고, 사회적 이슈와 더불어 작가 개인의 경험이나 생각도 담백하게 즐길 수 있는데다가 독자도 책에 참여시킨다는 점이다. 독자에게 공간을 마련해주고 '이제 너의 이야기를 써봐.' 라고 말한다.
꼼꼼하고 세밀하게 위로한다.

정여울은 작가답게 언어로 비교하고, 작품으로 이야기한다. 그가 거론하는 모든 작품들이 흥미롭고 적절했다. 읽어본 작품들은 더 와닿았고, 읽지 못한 작품들은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가 인물에 대한 탐구를 참 많이 했구나 싶었고, 작품 속 캐릭터를 심리학적으로 접근하고 분석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기도 했다.

트라우마를 이기려면 내적자원을 가져야 한다. 그래도 한때 행복했던 기억들은 나를 죽지않고 여기까지 나오게 해줬다. 그러니 내면아이를 만날 때 행복했던 기억을 끄집어내거나 없다면 새로이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정여울 작가는 그 내적자원이 책이었다고 고백했다. 나는 무엇일까? 지나온 날은 후회되기 마련이다. 그 때 좀 잘할 걸, 그 때 이렇게 했어야 해. (그 때 땅을 샀어야지!ㅎㅎ)

하지만 지나온 모든 날들을 견뎌낸 자는 어려운 상징계에 들어와 어른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 어른이다. 때론 어른도 상처받는다. 아무렇지 않게 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가슴 속 어딘가에 깊이 상처받은 채 외면된 내면 아이가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마침내 괜찮아지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에세이를 반드시 읽어보길 추천한다. 내면아이를 성인자아가 입양하지 못하면, 성인이 계속 상상계에만 빠져있다면 온갖 중독과 공포를 경험하면서 당당하게 외출하기가 어려워진다. 사회로의 진출이 막힌다.

나는 이 책이 굉장히 책임감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이 읽고, 잃어버린 '나'를 발견하는 값진 시간이 되길 바라본다. 좋았다.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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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산문선 열린책들 세계문학 256
조지 오웰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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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농장]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완전히 의식하면서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통일하려고 시도한

첫 번째 책이다.

p.17



조지오웰 산문선Selected Essays

조지오웰허진 옮김열린책들


조지오웰 산문집이라니 ! 처음에 너무 놀랐다. 소설가들이 글쓰는 거야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늘 소설만 접했던터라 그의 에세이가 있다는 말에 주저없이 이 책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는 읽길 잘했다. 에세이도 빨려 들어가는 구만 그려! 그의 필력은 매력을 넘어서 마력을 지녔다. 문장 하나하나가 장면과 결합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진짜로 너무 재밌었다.

[동물농장]을 읽었지만 이런 사실을 조사없이 읽었기 때문에 전혀 몰랐다. 이번 기회에 나는 조지오웰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됐다. 문학은 접했지만 그의 일상을 접할 일이 없었던 터라 상당히 충격을 받기도 했다.

당시 인도는 영국의 가장 큰 식민지였기 때문에 조지오웰은 공무를 보러 간 아버지 덕분에 인도에서 출생했다. 어머니와 영국으로 돌아와 명문학교에서 수학했고, 미얀마로 건너가 인도 제국주의 경찰이 되었다.

에세이의 앞부분은 작가가 제국주의 경찰로 복무하던 시절에 있었던 일화와 느낌을 담담한 필치로 서술 돼 있다. 그는 무심코 일어나는 약자에 대한 학대를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기는 하지만 정작 어쩔 수 없이 가해의 방향에서 실행에 옮기는 폭력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를테면, 버마인을 대하는 태도라든가, 코끼리를 총으로 쏘는 장면들은 그가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는 있지만 실제로 실천할 수는 없는 아이러니가 담겨있다. 그러나 그는 진솔하게 썼으며 자기를 변명한다든가 합리화시키려고 굴지 않았다.


할 일도 주지 않고 무식한 사람을 온종일 가두는 것은

정말 멍청하고 잔인한 짓이다.

이는 개를 술통에 매어 두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기 안에 위안거리를 가지고 있는 유식한 사람만이

감금을 견딜 수 있다.

p.58


또, 무슨 이유에서인지 부랑자 숙소에 가서 살기도 하고 강제노동을 경험하기도 하는데 그곳에서 보고 듣은 것의 모든 묘사가 참담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러면서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을 서슴치 않았는데 특히 유럽인들이 아시아인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상세히 적어두고 비난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도 크게 다르지 않음이 시사돼 자아성찰적 요소도 배제하지 않았다. 독자는 조지오웰의 이런 다양성을 통해 '인간 조지오웰' 에 대해 깊이 느끼고 반응할 것이다.


실제로 민주주의와 전체주의가 어떻든

그 둘이 똑같다는 말만큼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

비밀경찰과 문학 검열, 징집 노동이 존재하는 군사화된 대륙 국가는

빈민가와 실업, 파업과 정당 정치가 존재하는 느슨한 민주주의 해양 국가와

개념자체가 전혀 다르다.

p.292


사회주의자 답게 가난과 노동에 대한 개인의 시각을 주관적으로 잘 기술해 두었는데 거의 논문에 가까웠다. 얼마나 많은 고민이 담겨있는지 알 수 있었다. 또, 작가답게 잘쓴 문장에 대한 본인의 견지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모색해 두었다. 문장에 대한 그의 생각만 따로 빼서 책을 만들어도 후배 작가지망생에게는 아주 도움이 될 것 같다. 글쓰기 강의해주는 조지오웰이라니!!


명료한 언어의 가장 큰 적은 부정직함이다.

실제 목표와 겉으로 내세운 목쵸가 다른 사람은

먹물을 내뿜는 오징어처럼

긴 단어와 낡아 빠진 숙어에

거의 본능적으로 의존한다.

p.183


다독했는지 본인이 사랑하는 작품들에 대해 말하는 부분도 인상깊었다. (아는 작가 나올 땐 또 그렇게 좋을 수가 없고!!)

본인이 바라보는 사물이나 동물에 대해 농담처럼 던진 단상들도 재밌었고, 겪은 일을 일기처럼 풀어놓았을 때는 시대상도 잘 엿보이고, 작가에게도 부쩍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그의 글은 솔직하고 정직했다. 날 것은 자연 그대로, 쓸쓸하면 쓸쓸한대로, 비참함은 또 그것대로.


영국의 지배 계층은 전통이 있었고,

필요하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제1계명이라고

가르치는 퍼블릭 스쿨에 다녔다.

영국의 지배 계층은 동포를 약탈하면서도

스스로 진정한 애국자로 '느껴야' 했다.

따라서 그들의 탈출구는 하나밖에 없었으니,

바로 멍청함이었다.

p.223


행여 독서를 고민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주저말고 선택하시길. 시대를 빛낸 작가 , 조지오웰을 더 잘 들여다보고 그의 사유에 감동할 기회를 붙잡는 값진 계절이 될 것이라 의심치 않으니. 소장가치 높은 책이다. 특히 내 글을 쓰고 싶은 작가 지망생은 주저없이 픽하시길 강추!


생각이 언어를 오염시킨다면

언어 역시 생각을 오염시킬 수 있다.

-조지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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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미술 365
김영숙 지음 / 비에이블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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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프지 않아요.

나는 고장난 것 뿐이에요.

그러나 나는 그림만 그릴 수 있다면

살아있는 게 행복해요.

-프리다 칼로


프리다칼로를 원래 좋아한다. 몇 년전이었을까? 우연히 그녀의 일기를 읽고나서 완전히 입덕했다. 그 처연했던 삶과 사랑과 작품들이 부족한 나의 미학적 조예에 오브제처럼 박혔다. 그때부터 나는 미술을 좋아하게 됐다. 그리지는 못하지만 화가의 일생을 공부하는 것도, 그림을 여러각도로 보는 것도, 해석해 놓은 것을 따라 다시 감상하는 것도 좋아져버렸다. 하지만 가끔 미술사 책이나 예술 에세이를 읽거나 그보다 더 가끔 전시회를 가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은 많이 없었다. 그런데 왠일! 원한다면 매일 미술작품을 만나볼 수 있게 됐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작품뿐만 아니라 화가의 일생, 세계사, 스캔들까지도!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1 페이지 미술 365김영숙비에이블

이 책은 정말 좋은 책이다. 이유는 매일 미술에 대해서 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어도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부지기수다. 문학과 음악을 뗄 수 없듯이 미술과 문학도 뗄 수 없다. 수 많은 화가들이 문학 작품을 오마주했다. 또, 미술과 종교는 또 불가분의 관계다. 유럽의 중세 미술은 크리스트교를 빼놓고 논할 수가 없다. 고대미술도 마찬가지다. 그것들도 신화나 샤머니즘과 다르게 생각하기 어렵다. 또, 미술을 말할 때는 자연스럽게 역사적 흐름대로 이야기한다. 미술은 도처에 있다. 그러기에 미술을 등한시 하고서 독서를 완료했다고 말하긴 어렵겠다. 이것이 내가 미술사 책이나 미술에세이를 읽는 이유다.

자주 찾아본다고 해도 외우지는 않기 때문에 나는 이책이 반가웠다. 매일 한바닥 씩이야 못 읽을쏘냐.

물론 나는 빨리 소개하는 글을 쓰고 싶기도 했고, 뒷 내용도 궁금해 일반적 책읽기처럼 단숨에 읽어버렸지만 책 읽기 싫어하는 청소년이나 별로 책 읽을 시간이 없는 어른들에게도 부담없이 하루 한쪽씩 권할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책의 구성은 아주 좋다. 일반적인 미술 백과처럼 화가 이름 순으로 구성되거나 미술사책처럼 시대순으로 나열된 게 아니다. 월요일은 작품들을 중심으로, 화요일은 미술사를 설명하면서, 수요일은 화가를 말해주고, 목요일엔 장르나 기법들을 소개하면서 미술을 경험하게 하는 특이한 방식을 지녔다.

금요일에는 세계사적으로 미술을 풀어내고, 토요일은 누구나 재밌어하는 스캔들로, 일요일은 신화나 종교적으로 풀어낸 미술을 담아두었다. 얼마나 연구를 많이 했을까 싶어 찾아보니 원래 미술 쪽 명저를 많이 집필하신 분이었다. 어쩐지! 이 정도로 깔끔하게 구성을 할 정도면 어지간한 조예로는 어림도 없겠다 싶다. 덕분에 나는 좋은 책을 만났으니 다행이고 행복하다.

앞서 이야기 했지만 프리다칼로를 좋아한다. 멕시코의 유명 여류화가로 그녀 역시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일테지만 무엇보다 화가의 일생 자체가 고난의 행군이었고, 장르나 기법 면에서도 상당히 특별했으므로 많은 분야에 노미네이트 되어서 팬으로서 뿌듯했다. 짧은 일생이었지만 많은 작품을 남긴만큼 여러가지 의미로 만나볼 수 있어서 좋았다.

단테는 [신곡]을 쓴 작가인줄만 알았더니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라는 화가가 있었다니. 그 역시 유명인인데 나는 처음알았다. (미술에세이 더 읽어야겠다 ㅠ) 그는 작가 단테 알리기에리를 존경한 아버지 로세티에 의해 이런 이름이 지어진 것이었다. 이름에 대한 부담감이 심했을 것 같다. 그의 일생도 보아하니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 같아서 가슴이 아팠다.

장르 및 기법은 목요일 파트다. 52개의 파트를 읽고나면 미술기법적 조예가 좀 더 생길테다. 그렇다면 다음에 가게 되는 회화 전시회에서 좀 더 발전된 감상포인트를 지닐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읽었다.

특별히 도메니코 기를란다요가 그린 <최후의 만찬> (1486)이 기억에 남는데 다빈치의 그림과는 사뭇다른 구성을 지녔다. 예수님 앞에 가롯유다가 앉아있으며 다른 그림에서는 볼 수 없는 체리가 있다. (그림의 상징성은 책으로 확인하시라ㅎㅎ) 오 신기했다. 역시 뭐든지 알수록 보이는 법이다.

얼마 전에 [페르메이르] (아르테) 를 읽었는데 그의 그림은 대단히 사실적인 그림인데 그 기법이 '카메라 오브스쿠라' 라는 기법이라고 한다. 오 그런 전문용어는 몰랐는데 알고보니 신기했다. 암실에서 구멍을 뚫어 빛이 들어오게 하듯이 하는 기법이라니 .. 이름 붙인 게 더 놀랍지만 이렇게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기억에 남는 기법 다 말하려면 내용이 너무 길어지니 궁금하신 분들은 책으로 확인하시길 바란다.

앞에서 이야기 했던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는 비운의 화가지만 스캔들의 주인이기도 했다. 342일째 되는 토요일에 독자는 그의 그림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삼각관계의 주인공이었으며 심지어 세컨드였다. ㅎㅎㅎ

사진기가 발달하기 전에 사람들은 그림을 정밀하게 보고 그리기도 했지만 다소 이럴것이다 라며 상상해서 그렸다. 테오도르 제리코가 그린 <앱섬 더비 경마장> 의 말은 유명하다. 그림에서는 말이 네 다리를 가로로 쫙 펴고 공중부양 하듯이 뛰고 있지만 이 그림은 잘못 그린 그림이다. 왜냐하면 곧 사진기가 발달하게 되는데 사진을 찍은 결과 말의 다리는 절대로 저렇게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ㅎㅎㅎ 아! 사진기가 좀 더 뒤에 나왔더라면^^

이 밖에도 재밌는 이야기가 쏙쏙 많이 숨어있다. 참 괜찮은 책이다.

다만 한페이지에 그림과 설명을 함께 넣어야 하므로 그림이 굉장히 작게 들어가 있어서 아쉬웠다. 궁금한 그림은 일일일이 검색해서 확대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지면에 그림을 크게 넣을 수 없는 책이라서 그런 것이므로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다행히 언제나 검색할 수 있으니 다행아닌가!

짧지만 재밌다. 유용하다. 그리고 더 알고 싶다. 이 책이 메인 텍스트가 되지만 서브로 독서의 지평을 더더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실용서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정말 완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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