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의 핵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
조셉 콘라드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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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에 읽은 헝가리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20대에 프랑스어를 배워 소설을 발표, 세계적인 작가가 되어 참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여기 또 그런 사람이 있다. 


조지프 콘래드(Joseph Conrad, 1857~1924), 폴란드 태생으로 1874년 폴란드를 떠나 프랑스 남부 항구 도시 마르세이유에서 상선 선원이 된다. 20대에 영국 상선 선원으로 일하며 영어를 배우기 시작, 1886년 영국으로 귀화하여 30대 후반에 영어로 소설을 써서 발표한다. 그리고 영문학사에서 위대한 영국 작가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 되었으니 참으로 놀랍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1899년 발표한 <암흑의 핵심>은 그가 1890년 벨기에 기선의 선장으로 (1866년 선장 자격증 취득) 고용되어 아프리카 콩고에 갔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콘래드는 콩고에서 아프리카 원주민을 문명화한다는 명분하에 유럽 제국이 저지르는 잔혹한 식민주의를 목도하는데, 이것은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사건으로 남게된다. 아무 생각이 없는 '한 철저한 짐승'에 불과했던 자신이 콩고를 체험한 후,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한 인간으로서도 성장할 수 있었다'(p.178 작품해설)고 한 비평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백하는데, 이 작품은 작가의 이런 사유가 녹아있는 작품이다. 


템즈 강에 떠 있는 넬리(Nellie) 호는 템즈 강 하류로 나아가기 위해 조수가 썰물로 바뀔 때를 기다리고 있다. 정박한 배 위에서 강을 바라보며 침묵하고 있는 사람들 중, 선원으로서 세상 경험이 많은 말로가 콩고에서의 잊을 수 없는 체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어린 시절부터 가고 싶었던 미지의 땅 아프리카, 마침 벨지엄령(領) 콩고의 무역회사에 선장 자리가 비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말로는 숙모의 도움으로 그 선장직 자리를 얻게 된다. 말로는 항해 30일이 지나서야 콩고 강 하구에 다다르고, 마침내 중부 주재소에 도착하지만 타고 가기로 했던 기선은 난파되어있고, 그곳에서 몇 개월을 체류하며 배를 수리한 뒤, 다시 콩고 강 상류 오지로 배를 몰고 가서 내륙 주재소 소장으로 있는 커츠라는 사람을 만나 데리고 나온다는게 이 소설의 줄거리이다. 


말로는 커츠를 만나러 가는 동안 몇몇 직원들에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데, 그는 '천재'이자 '연민과 과학과 진보', '가장 귀한 직원', '비범한 사람' 등으로 칭송받고, 무엇보다 '다른 모든 교역소에서 수집한 상아를 모두 합친 것만큼 많은 상아를 보내'오는 그야말로 회사 입장에서는 '더없이 중요한 인물'이다.

말로는 커츠라는 인물을 만나기 전부터 궁금해진다. 커츠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우러러 보는 것일까. 그냥 '일 자체가 좋아서 일에 집착하는 그런 멋진 녀석'(p.73)일까...


그건 내 항행(航行)의 끝이요 내 체험의 절정이기도 했지. 그 체험은 내 주위의 모든 것에 대해, 그리고 내 자신의 사상 속에, 일종의 빛을 던져주는 듯했어. 또 그것은 참으로 어두웠고 연민의 정을 일으켰으며 그 어떤 면에서도 비범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분명하지도 않았지. 그래, 아주 분명하지가 않았어. 그런데도 일종의 빛을 던져주고 있는 듯했다구. (p.17)


말로는 처음에 이런 의미심장한 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말로는 콩고에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빛을 보았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또한 커츠라는 인물은 어떤 사람일까...

말로가 커츠를 향해 콩고 오지 속으로 들어갈수록 나의 마음도 온통 이 신비스러운 인물에게 기울어진다. 커츠라는 인물을 쫓아 책장을 넘기면서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나 또한 암흑의 세계로 서서히 빨려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이런 두려움을 동반한 호기심이 쉽게 읽히지 않는 이 책을 끝까지 읽게 했다. 


내용을 떠나서 콘래드의 문장은 나를 사로잡았고, 작가의 눈에 비친 아프리카 오지의 잡힐 듯 하면서 잡히지 않는 묘사가 정말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아>라고 하는 낱말이 허공에서 울리고 있었어.(...) 백치같은 탐욕의 색채가 마치 시체 썩는 냄새가 확 풍기듯이 모든 것 속에 번지고 있었다네. (...) 그런데 밖을 바라보면, 대지 속의 그 작은 공지(空地)를 둘러싸고 있던 말없는 밀림은, 마치 악이나 진실처럼, 무언가 위대하고 정복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내게 엄습해 왔으며, 이 어처구니없는 침입이 종식되기를 참을성있게 기다리고 있는 듯했어. (p.52,53)


울타리 저편에서는 밀림이 달빛을 받으며 유령처럼 서 있었고, 그 희미한 떨림 사이로, 그리고 을씨년스러운 뜰에서 들려오는 그 연약한 소리 사이로 대지의 침묵은 그 신비로움, 그 웅대함, 그리고 그것이 감추고 있는 생명의 경이로운 실체를 우리의 가슴에 절실히 와닿게 하고 있었다네. (p.59)


이 생명체의 정적(靜寂)은 평화로움과는 조금도 닮지 않고 있었네. 오히려 그것은 어떤 헤아리기 어려운 의도를 감싸고 있는 달랠 수 없는 세력이 지닌 정적이었어. 그래서 그 정적은 마치 복수라도 할 듯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지. (p.77)


우리는 어떤 선사시대의 대지, 그것도 어떤 미지의 유성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대지 위를 방황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우리는 마치 어떤 저주받은 유산을 멋모르고 소유했다가 결국은 깊은 고뇌와 잇따른 고통을 대가로 치른 후 굴복하고 만 최초의 인간이 된 기분이었네. (p.81)


콘래드가 묘사하는 자연은 어머니처럼 편안하고 마냥 선하지 않다. 사람의 왕래가 없는 길은 어둠 속 오지로 뻗어있고 조용하다. 그것은 말없이 지켜보고 있고,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다. '상아'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인간의 탐욕으로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밀림은 복수의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이 소설은 시종일관 이런 분위기로 나를 압도했다.

시적이면서도 그림같은, 손에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문장은 내 눈앞에 어떤 그림을 펼쳐보였고 나는 그 암흑 속으로 더듬대며 한 발씩 걸어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사실 민음사 번역이 몇 군데 이해가 안가 을유문화사의 <어둠의 심연>을 함께 읽었는데, 이 책에 1897년 발표한 <나르시서스호의 검둥이>의 서문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 서문에서 콘래드는 예술가의 '창조적인 임무'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왜 내가 이토록 콘래드의 문장에 강하게 압도당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소설은-만약 그것이 예술이 되기를 조금이라도 갈망한다면-본성에 호소합니다. (...)효과적이 되기 위해 그런 호소는 감각을 통해 전달되는 인상을 주어야 하며, 사실 호소는 그 외에 다른 방식으로는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 감수성은 설득의 말을 잘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 성취하려는 작업은 글의 힘에 의거해서, 당신들이 들을 수 있도록, 느낄 수 있도록-무엇보다도 '볼 수 있도록'-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것만이 중요한 것입니다. 만약 제가 성공한다면, 당신은 자신의 공과에 따라 그곳에서 격려, 위로, 공포, 매력 등 당신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뿐더러, 어쩌면 당신이 깜빡 잊고 요구하지 못한 진실도 살짝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르시서스호의 검둥이>서문, 을유문화사 p.227)


독자가 듣고 느끼고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예술가의 임무이며, 감수성이란 설득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콘래드의 말은 내 가슴에 그대로 들어왔고,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대성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느낀 이미지를 글로 묘사함으로써 독자는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두려움, 공포, 경이로움을 느끼고 그런 '감각을 통해 전달되는 인상'만이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해준다고 콘래드는 믿는다. 작가가 '제시하는 비전이 보는 이들의 마음속에서 피할 수 없는 연대 의식'을 일깨운다는 그가 작가로서 가진 신념을 나는 이 소설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암흑의 핵심>을 이야기할 때 보통 서구 제국주의와 인종주의를 예리하게 비판한 작품이라는 말이 뒤따른다. 그러나 나는 이 소설이 어느 정도 제국주의를 비판하기는 했으나, 영국의 식민주의를 다른 유럽의 식민주의와는 다르게 긍정적으로 본 점, 또 미치기 전의 커츠를 서구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이상을 가진 사람으로 긍정적으로 묘사한 점으로 볼 때 콘래드를 완전한 반제국주의자로 보기 어렵기도 하다. 한마디로 이 소설에서 콘래드가 제국주의에 대해 보여주는 입장은 다소 모호한 점이 있다. 

그래서 나이지리아의 작가 치누아 아체베는 이 작품을 향해 "한 보잘것없는 유럽인의 정신적인 와해를 위한 소도구로 아프리카를 전락시키는 이 허무맹랑하고도 그릇된 교만함이 눈에 보이지 않는단 말입니까?" (<어둠의 심연>작품해설, 을유문화사) 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또한 어떤 비평가는 이 작품을 거론하면서 '제국주의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던 콘래드가 원주민들이 유럽의 지배를 벗어나서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제국주의가 종식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은 것이야말로 작가의 비극적 한계'(작품해설, 민음사)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비록 콘래드가 이 소설에서 제국주의에 대해 몇 군데에서 양가적인 태도를 취하고 아프리카 인을 야만적으로 묘사하기는 하나, 19세기 후반이 유럽의 식민지 경쟁이 한창 무르익었던 시기임을 감안할 때 작가가 이런 분위기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역자도 해설에서 20세기의 정치적 잣대로 19세기 말의 한 지식인 작가의 정치적 소신을 가늠하는건 공평하지 않다며, '콘래드는 여러 편의 <정치 소설>을 썼지만 그의 목표는 <정치>에 있지 않고 <소설>에 있었다'(작품해설, 민음사)고 말한다. 


콘래드가 이 소설에서 하고 싶었던 궁극적인 이야기는 제국주의 비판이 아니라 커츠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 본성 속에 도사리고 있는 악, 다시 말해 '암흑의 핵심'을 제국주의라는 정치적 상황을 이용해 보여준 것이고 그것을 어둠, 암흑의 이미지로 뛰어나게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책은 그렇게 쉽게 읽히지 않았다. (역자에게는 죄송하지만, 을유의 <어둠의 심연>이 훨씬 읽기 편했고, 제목도 '어둠의 심연'이 소설의 분위기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콘래드의 또 다른 대표작 <로드 짐>과 <비밀요원> 읽기를 앞두고 꼭 이 작품을 먼저 읽고 싶었다. 고지식한 편이라 시대순으로 읽어야 마음이 편하고 중편이라 먼저 집어든 책이 이렇게 나를 심리적으로 짓누를 줄은 몰랐다.(좋은 의미로...)


위에서도 말했듯이 내용보다는 작가의 분위기를 끌고 나가는 압도적인 문장이 너무 좋았고, 눈에 보이는 세부적인 묘사가 아닌 작가가 실제로 체험한 그 인상을 이렇게 문장으로 보여준 점이 대단하는 생각이 들었다. 8월쯤 읽게 될 그의 나머지 두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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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3-31 23: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같은 소설을 읽어도 역시 아는 만큼 보이나봐요. 저도 너무 좋긴 했는데 이렇게 설명할 수가 없었어요! 덕분에 정리해 볼 수 있네요. 다시 읽어보고 싶은 작품^^

coolcat329 2021-04-01 08:04   좋아요 1 | URL
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다니 감사합니다. 할 말이 많았는데 제가 글 쓰는 힘이 약해 다 쓰지 못했네요. ㅠ

scott 2021-03-31 23: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쿨캣님 역쉬 예리!! 민음사 번역보다 을유 勝!! 콘래드의 문장 묘사에 탐복 쿨캣님에 리뷰에 감탄을 ^ㅎ^

coolcat329 2021-04-01 08:09   좋아요 2 | URL
에고...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1-04-01 0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예전에 을유문화사 버전으로
보았던 것 같은데, 기억이 하나도
나질 않네요...

coolcat329 2021-04-01 08:15   좋아요 2 | URL
방금 을유 <어둠의 심연> 레삭님 리뷰 읽고 왔습니다. 2009년에 읽으셨더군요. ㅎㅎ 기억이 안 나실만 하네요.ㅎㅎ 이 책은 정말 ‘다양한 텍스트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의견에 동감이에요.
 
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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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라는 인상적인 문장으로 시작하는 <동급생>은 프레드 울만 (Fred Uhlman 1901~1985) 의 중편소설이다. 작가는 독일 출생이지만 히틀러가 집권한 후 독일을 떠나 몇 군데를 전전하다가 영국에 정착한 화가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1971년 노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처음에는 주목받지 못하다가 1977년 재출간되면서 큰 화제가 되었다. 


<동급생>은 1930년대 초 독일 서남부 슈투트가르트를 배경으로 유대인 소년과 독일 귀족 소년 사이의 순수하면서도 낭만적인 우정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유대인 의사의 아들인 한스 슈바르츠는 16살로, 어느 날 그가 다니는 학교에 귀족 집안의 소년이 전학을 온다. 그의 이름은 콘라딘 폰 호엔펠스. 그는 한스가 이상형으로 꿈꾸던 바로 그런 친구였다. 한스는 '그의 당당한 자세, 예의 바름, 우아함, 잘생긴 용모에 끌렸'고, 친해지기 위해 서서히 다가간다. 


한스의 뜻대로 두 소년은 친구가 되어 함께 기차 여행도 하며 시도 읊고, 삶과 종교에 대한 진지한 대화도 나누며 둘만의 우정을 키워 나간다. 

그러나 그 누구도 방해하지 못할 듯 보이던 이들의 우정도 시대를 뒤덮고 있는 광기 앞에서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한스가 처음에 콘라딘을 보고 강하게 끌린 것은 그가 '우리 역사의 일부'인 호엔펠스 가문이었기 때문이다. 이 명문가가 배출한 인물들을 한스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들이 바로 자신의 나라 독일을 빛낸 인물들이었기에 한스는 그들의 후손인 콘라딘과 그토록 친구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또한 한스의 아버지는 합리적인 인물로 '유대인들과 기독교도들에게서 동시에 존경 받는 평판 좋은 의사'이다. 그는 동화된 유대인으로서 시온주의자를 혐오한다. 이스라엘이 2천년이나 지난 지금 팔레스타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이탈리아인들이 로마 시대에 한 때 독일을 점령했다는 이유로 독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터무니 없는 짓'(p.82)이라고 생각한다. 


한스와 한스 가족은 자신들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 혈통만 유대인일뿐 그들은 조국인 독일을 사랑하고 독일을 위해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독일의 국민이다.

그러나 이들을 둘러싼 세계는 더 이상 그들이 알던 세계가 아니며 그것은 한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토록 친해지고 싶었던 친구와의 반짝이던 우정도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서 그 빛을 잃어가고 한스와 콘라딘은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평온하던 시절 한스와 콘라딘은 매일같이 고민하며 이야기했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슨 목적을 위해? 우리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인류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해야 이 잘 안 되는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을까?' (p.70)


이 책의 잊을 수 없는 마지막 문장은 두 소년이 함께 나누던 이런 고민들을 떠올리게 하고 이 책을 다시 읽게 만든다. 영어 제목인 <Reunion> 처럼 이들이 다시 만나 이야기 나누는 그 내밀하면서도 소중한 순간들이 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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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3-26 2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얇은데 참 울컥한 작품이죠. 전 이 책 다 읽고 팔아야지 했었는데 아직 갖고 있네요. ㅎㅎㅎ

coolcat329 2021-03-27 06:59   좋아요 0 | URL
네...가슴이 미어진다는게 이런 상황이 아닌가 싶어요. 참...ㅠㅠ

han22598 2021-03-30 0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 작년에 읽었는데, 지금도 그때의 느낌을 잊을 수 없어요. 아마도 앞으로도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아요. 이런 책들...참 대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coolcat329 2021-03-30 13:31   좋아요 0 | URL
읽으셨군요...맞아요. 이 책의 처음과 끝은 참...잊을 수 없네요...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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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은 마가렛 애트우드의 <증언들>과 함께 2019년 부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흑인 최초의 부커상 수상이기에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저자 버나딘 에바리스토는 1959년 영국인 어머니와 나이지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학창시절 백인들 사이에서 유일한 흑인으로 지내며 '1982년 연극학교를 졸업하지만 흑인 여성이라는 한계로 연극 활동에 제약이 따르자 직접 흑인 여성 극단을 창립하고 흑인 페미니즘 문화 운동을 벌였다.'(p.630 역자해설)


작가는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의 역사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해왔는데, 이 소설은 고국을 떠나 영국에 정착한 흑인 여성들의 삶을 다각도로 보여줌으로써, 주류에서 밀려나 있던 영국 흑인여성의 삶을 자연스러운 형식으로 그린다. 그들의 삶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함께 공감하기도 하고 때로는 나의 무지와 편견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이 소설에는 총 12명의 흑인 여성이 등장한다. 10대부터 90대 노인까지 각각 다른 시대와 환경에서 살아온 12명 흑인 여성의 삶을 한 챕터 씩 레즈비언 연극 연출가 앰마를 시작으로 다채롭게 보여준다. 12명의 여성은 혈연과 지연으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한 다리 건너 연결되어 있기도 하며,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이기도 하지만 결국엔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친구, 동료로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어 재미있다. 


'자신을 따돌리는 기득권 세력'에 맞서 꿈을 향해 도전하는 여성, 상처 속에서도 주류로 진입하기 위해 앞만 보고 나아가는 여성,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주 노동자로 열심히 사는 여성,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여성, 과거의 실수를 인정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게 위해 열심히 사는 여성,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지만 당당히 자신의 얼굴을 드는 여성 등 사연이 없는 인생이 없다. 그러나 이들은 주체성을 가진 하나의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여성들이다. 


12명 개인의 역사이지만 이들의 삶은 전체 흑인 여성의 삶을 보여주는 큰 그림으로도 다가온다. 

각기 다른 12개의 이야기를 연결해가며 숨가쁘게 읽다보면 어느새 에필로그에 다다르는데, 12개의 이야기로 산만해졌던 마음이 결국 하나로 모아져 가슴 적시는 감동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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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3-24 19: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리뷰도 많고, 🌟5개니까 정말 읽어보고 싶네요^^ (서점에서 두께 보고 놀라서 망설였어요ㅋ)

coolcat329 2021-03-24 20:12   좋아요 3 | URL
저는 이 책 읽고 저의 무지와 편견에 놀랐어요. 젠더프리라는 것도 처음 알았구요. 페미니즘이란게 단어 몇개로 정의내릴 수 있는것도 아니고 수많은 개개인에 따라 페미니즘의 얼굴도 변하는 거더라구요. 같은 레즈비언끼리도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생각이 다르고, 엄마와 딸도 다르고, 레즈비언 커플들 사이에서도 상하지배 관계가 나타나고 등등... 제가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문제들이 있더라구요. 제가 너무 우물안 개구리 같았어요. 꼭 읽어보세요. 새파랑님 추진력이 또 대단하시죠~~😅

새파랑 2021-03-24 20:29   좋아요 1 | URL
많이 느낄 수 있는 책인가 봅니다. 추진력은 없지만...꼭 읽어보겠습니다~!

얄라알라 2021-03-24 21: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한달음에 읽던 때의 감동이 리뷰읽으니 되살아 나네요. 버나딘 에바리스토 작가님, 대화할 때도 에너지가 엄청 나시더라고요^^ 역자 해설 페이지가 630쪽 넘어가야 있었군...정말 길었던 책이군..^^ 하면서 또 읽고 싶어지네요

coolcat329 2021-03-24 21:47   좋아요 2 | URL
작가 인터뷰 저도 찾아봐야겠어요. 얄라님도 이 책 좋으셨군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얄라알라 2021-03-24 21: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예^^ 저는 소설에서 캐릭터들이 자기표현력 강렬하고 매력적이어서 작가도 어느 정도 비슷하겠거니 하고 막연히 상상했는데, 패션니스타에 바디 랭귀지의 자신감에....홀딱 반했어요^^

coolcat329 2021-03-24 22:21   좋아요 3 | URL
저 방금 얄라님 글 들어가서 에바리스토 인터뷰 보고 왔습니다. 사진보다 훨씬 젊고 세련되고 부드러워 보여요. 목소리도 지성미가 흐르고 당당하고...외모보고 혼자 판단했던 제 생각이 또 틀렸네요...ㅠ

얄라알라 2021-03-24 22: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coolcat님도 그렇게 보셨네요. 패션, 색감 정말 화려하면서도 우아하지 않나요. 저는 역으로 한살 한 살 올라갈수록 좋아하던 색을 다 버리고 무채색으로 가는데 에바리스토 작가님 의상, 헤어밴드까지....매력 뿜뿜이시더라고요^^

scott 2021-03-25 11: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쿨캣님 리뷰 읽으니 더더욱 구매욕이 ❣️
[페미니즘이란게 단어 몇개로 정의내릴 수 있는것도 아니고 수많은 개개인에 따라 페미니즘의 얼굴도 변하는 거]
이말씀에 동감 ~~
우리 사회가 아직도 넘 무지 합니다
꾸준히 읽고 또 읽으며 배워야 ~*

coolcat329 2021-03-25 12:27   좋아요 3 | URL
네, 저는 그 중에서도 특히 무지한 사람이었는데 이번에 이 책 읽으며 책 열심히 읽자~또 느꼈습니다. 🥲
 
어제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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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1995년 발표된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4번째 소설이다. 

그녀는 1956년 헝가리 혁명의 여파로 탄압이 심해지자 남편과 어린 딸과 함께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를 거쳐 스위스 뇌샤텔에 머물게 된다. 난민 신분으로 시계 공장에서 하루 10시간의 노동을 하면서도 헝가리어로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녀는 당시를 <문맹>에서 이렇게 묘사한다.


우리는 이곳에 오면서 무엇인가를 기대했다. 무엇을 기대하는지는 몰랐지만 틀림없이 이런 것, 활기 없는 작업의 나날들, 조용한 저녁들, 변화도 없고 놀랄 일도 없고, 희망도 없는 부동의 삶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문맹> (p.89,90)


<어제>의 주인공 토비아스도 시계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낯선 나라의 말로 글을 쓴다. 

자신의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무거운 과거를 가슴에 묻은채, 그는 타국에서 상도르라는 이름의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어머니는 도둑이며 거지이며 창녀였다.'(p.27)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장은 그 어떤 머뭇거림도 없이 훅하고 내 가슴에 꽂힌다. 

이 소설은 150페이지쯤 되는 짧은 소설로 작가의 글이 늘 그렇듯이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작가가 낯선 타국에서 망명자 신분으로 공장에서 일하며 힘겹게 살던 그 시기가 얼마나 고달프고 외로운 삶이었을지 이 소설을 읽다보면 알 수 있다. 


망명자들이 낯선 나라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현실을 보고 술집의 종업원은 토비아스에게 이런 말을 한다. 


"당신네 외국인들은 맨날 조의금을 걷고 맨날 장례식을 하는군요."(p.63)


또 이런 대화. 


"나, 안 죽었어?

"네가 왜 죽어?"

"가스를 열어놓았는데."

"일주일 전부터 가스가 끊겼어. 돈을 내지 않았거든. 전기료도 마찬가지야. 그것도 곧 끊기겠지."

(p.127)


이 세상은 이들에게 죽음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는 그들은 '무게가 없는 사람들'이며, 그들이 가야 하는 길은 '집을 떠난 사람들이 가는 길', '끝이 없는, 넓고 곧은 길'이다. 

낯선 나라에서 죽을 때까지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실존적 모습을 작가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내일, 어제, 그런 단어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현재가 있을 뿐. 어떤 때는 눈이 온다. 또다른 때는 비가 온다. 그리고 나서 해가 나고, 바람이 분다. 이 모든 것은 현재이다. 그것은 과거가 아니었고, 미래가 아닐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다. 항상. 모든 것이 동시에. 왜냐하면 사물들은 내 안에서 살고 있지 시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서는, 모든 것이 현재이다. (p.121)


이들의 삶에 다른 대안은 없다. 꿈과 희망은 '현재'의 걸림돌일 뿐이다. 

오히려 꿈을 내려놓는 순간 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었을 거야." (p.145)


사랑을 모르고, 그 누구도 필요하지 않기에 '자신만으로도 충분'한 삶, 그래도 신조차 필요없는 삶...이것이 그녀가 말하는 망명자, 이방인의 삶이다. 


역시나 내 눈앞에 예고없이 불쑥 나타난 마지막 문장은 참으로 쓸쓸하다.


'나는 이제 더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 (p.149) 


작가가 되고자 한 그의 꿈, 한 여인을 향한 애절한 사랑은 그저 '어제'일 뿐이다.

그에게는 오직 '현재'만이 버티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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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3-22 11: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건 다른 표지군요(구판절판~)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네요 ㅋ어제와 오늘 표현이 좋네요 (150페이지라니 바로 끌립니다^^)

coolcat329 2021-03-22 11:47   좋아요 3 | URL
네~저는 개정판 못 구해서 구판 겨우 구해 읽었습니다. 책은 얇은데 내용은 참...여운이 짙습니다~~

청아 2021-03-22 12: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체 이야기로 인해 마지막 문장이 너무 강하게 와닿았어요!
잘 정리해 주셔서 감동이 되살아납니다!🥲

scott 2021-03-23 11: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물들은 내 안에서 살고 있지 시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서는, 모든 것이 현재이다.]이문장속에 작가 아고타의 사상이 응축 되어 있네요 감동이 두배 살아남 !!

coolcat329 2021-03-23 11:55   좋아요 1 | URL
담담하지만 많은 것들이 응축된 문장...저도 같은 느낌입니다.
 
문맹 - 자전적 이야기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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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은 '자전적 이야기'로서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삶을 특유의 깔끔하고 절제된 언어로 보여준다. 

그녀는 1935년 헝가리에서 태어나 4살때부터 글을 읽을 줄 알았고 이야기를 지어내고 쓰기를 좋아했던 영특한 소녀였다. 어린 동생에게 넌 주어온 아이라며 능청스럽게 이야기를 지어내는 그녀의 모습은 그녀 인생에서 찾아보기 힘든 행복한 모습이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이 찾아온 시기는 부모님과 오빠, 남동생과 헤어져 낯선 도시의 기숙사에 들어간 후부터라고 한다. 가난하고 외로웠던 소녀 시절, 작가에게 글쓰기는 유일한 삶의 버팀목이었다.


뭔가 읽을 것이 있을 때면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나는 계속 읽고, 그러고 나면 울면서 잠든 밤 사이에 문장들이 태어난다.  문장들은 내 곁을 맴돌다,속삭이고 리듬과 운율을 갖추고, 노래를 부르며 시가 된다. (p.34)


<문맹>은 이렇게 어려서부터 이야기와 글쓰기를 좋아했던 작가가 스위스로 망명하면서 자신의 모국어를 상실하고, 일 외에는 할 일도 어떤 희망도 없는 삶 속에서 오로지 다시 글을 쓰기 위해 '미지의 언어'인 프랑스어를 배우게 되는 그 험난한 여정을 보여준다. 


그렇게 해서 스물한 살의 나이로 스위스에, 그 중에서도 전적으로 우연히 프랑스어를 쓰는 도시에 도착했을 때, 나는 완벽한 미지의 언어와 맞서게 된다. 바로 여기에서 이 언어를 정복하려는 나의 전투, 내 평생 동안 지속될 길고 격렬한 전투가 시작된다. (p.52)


스위스 난민 생활 5년 후 그녀는 학교에 나가 프랑스어를 배운다. 그동안은 말만 했을 뿐 읽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읽지 않고 5년을 살았는지 그녀는 이상하다. 

2년 후 우수한 성적으로 '프랑스어 교육 수료증'을 받은 그녀는 자신이 프랑스어를 쓰는 작가들처럼 프랑스어로 글은 못 쓰겠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쓸 것'(p.112)이라고 다짐한다.  


낯선 타국에서의 삶은 '달리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는 '사막'과도 같은 삶이었지만, 그녀는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서 새로운 언어를 배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국말로 글쓰기도 힘든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녀는 '쓰는 것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은 채,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끝까지 썼고,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작가는 이 짧은 '자전적 이야기'를 다음과 같은 비장한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프랑스어로 쓰는 것, 그것은 나에게 강제된 일이다. 이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한 문맹의 도전.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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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3-21 15: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스무살이 넘어서 자유를 준 국가 언어를 배우면서 전쟁으로 인한 충격과 상실에서 멈춰버린 자아가 치열하게 쓰고 또 썼다는것 자체가 인간 승리인것 같아요. 5년동안 스위스에 준 공장에서 일만 했다고 학교는 그후 난민 공동체 도움으로 다녔다고 하네요.

coolcat329 2021-03-21 16:01   좋아요 3 | URL
아 난민공동체 도움으로 공부한거군요. 저는 5년 동안 공장에서 번 돈으로 드디어 학교 들어간 줄 알았어요.
네...정말 강하고 대단한 사람이에요.

바람돌이 2021-03-21 2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른 언어로 읽는 것도 난감한데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책을 쓰는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천재여야 하는걸까요? 가끔 사람들의 이런 능력은 너무 너무 신기합니다. ^^ 아고다 크리스토프는 저에게는 정말 강렬한 작가인데 이 책은 꼭 읽어봐야겟네요. 오늘도 좋은 책을 한 권 보관함에 넣어가니 알라딘 서재 마실 성공입니다. ^^

coolcat329 2021-03-22 09:58   좋아요 0 | URL
저는 한국어로 글 쓰는 것도 힘듭니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글 쓰는 작가들 정말 천재입니다. 나보코프, 쿤데라, 콘라드...이 분들도...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