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1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휴머니스트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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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형제>에서 거대한 간극에 대해 썼습니다. 문화대혁명 시대와 오늘날의 간극은 역사적 간극일 테고, 이광두와 송강 사이의 간극은 현실적 간극일 것입니다. (중략)
우리의 삶이 이러합니다. 우리는 현실과 역사가 중첩되는 거대한 간극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병자(病者)일 수도 있고, 모두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양극단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늘과 과거를 비교해봐도 그렇고, 오늘날과 오늘날을 비교해도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 - 작가 서문 중

 

문화대혁명과 개혁 개방시대를 거치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극과 극의 인생을 살아가는 두 형제를 중심으로 급박한 시대 변화에 우왕좌왕 하면서도 어떻게든 발맞추어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2005년 출간된 위화의 소설이다.

 

나는 지금은 절판된 2007년 휴머니스트에서 나온 3권짜리로 읽었는데, 작년 12월, 2020년 한 해 동안 지친 마음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위로하고자 집어든 책이다. 근데 몇 장을 넘기자마자 나는 조금 당황했다. 위화의 소설을 많이 읽어보진 못했으나 내가 생각했던 그런 위화의 소설과는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너무나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묘사에 당황스럽다가도 때로는 그것이 너무 과장스럽게 느껴져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싶기도 해서 중간중간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공중변소에서 여자 엉덩이를 몰래 훔쳐보다 들키는 이광두, 그의 부친도 그렇게 여자 엉덩이를 몰래 훔쳐 보다 똥통에 빠져 익사했다는 사실. 그런 이광두의 부친을 똥통에 들어가 건져 내는 송범평. 그 반듯한 남자와 재혼하는 이광두의 모친 이란. 그렇게 가족을 이루고 송범평의 아들 송강과 이란의 아들 이광두는 둘도 없는 형제가 된다. 이광두는 송강과 즐거운 유년 시절을 보내고 특유위 '또라이'짓들로 (ㅋㅋㅋ) 독자를 안절부절 웃게 만든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이 오면서 지주 출신이라는 이유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송범평, 병을 치료하러 상하이로 갔다가 남편이 죽은지도 모르고 돌아온 엄마 이란, 그토록 사랑했던 남편의 죽음으로 무너지는 이란의 이야기 등,

이렇게 비극과 희극이 맞물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기가 막힌 이야기가 900페이지 넘게 펼쳐진다.

 

문화대혁명과 자본주의 개방이라는 이 극단의 시간을 40년 만에 겪어야 했던 중국인들. 이런 극과 극을 오가는 삶을 산 중국인들과 그 시대를 묘사하기 위해 위화는 역시 극단적인 과장으로 풍자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 더럽고 천박하며 허황되게 흘러가는 이야기가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그 기가 막힌 시대를 진지하고 깊이있게만 묘사했다면 오히려 위화가 말하려한 그 '역사적, 현실적 간극'이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지 못했겠다는 생각을 했다.

 

위화 소설의 힘은 역시 이야기에 있다. 어떻게 이런 말도 안될 것 같은 이야기를, 그러나 중국이기에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 이야기들이 어쩌면 그리도 끊임없이 나오는지 읽으면서 '역시 중국인들이고 중국 작가답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광두가 공중변소에서 여자 엉덩이를 훔쳐보던 더럽고 순박한 시절을 지나 문화대혁명이라는 광기로 얼룩진 비극의 시대를 거쳐 자본주의를 받아 들여 '돈'이라는 새로운 광기가 지배, 천박한 욕망이 끓어오르는 현대의 중국까지, 중국 현대사와 그  변화 속에서 각기 다르게 살아가는 온갖 인간 군상들이 이 소설에 담겨있다.

 

위화 소설의 매력은 비극을 마주하면서도 웃을 수 있고 희극을 보면서도 눈물을 짓게 만드는데, 이 소설은 그런 그의 특징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듯 싶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덧붙인다. 

웃기고 재미있다. 더럽고 추잡해서 얼굴이 찡그려 지다가도 어느새 웃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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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1-07 13: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면 배고파집니다.
하도 웃어서요. 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1-01-07 16:36   좋아요 2 | URL
저는 만두가 먹고 싶어지더라구요 ㅋㅋㅋ
 
시지프 신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3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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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가을 <이방인>을 다시 읽기 전, <이방인>의 '사상적 단초'가 되는 <시지프 신화>를 먼저 읽었다. 카뮈 글쓰기의 특징은 어떤 한가지 주제를 소설, 희곡, 에세이 세가지 형식의 세트로 발표한다는 점이다. 카뮈의 작품 주제는 3단계로 나뉘는데, 그 첫번째가 '부조리 3부작'으로 알려져 있는 소설<이방인>, 희곡<칼리굴라>, 철학 에세이<시지프 신화>이다. 두 번째는 '반항 3부작'으로 <페스트>, <정의의 사람들>,<반항하는 인간>이며, 3단계는 소설 <최초의 인간>, 희곡<동 파우스트>, 에세이<네메시스의 신화>를 구상했으나 비극의 자동차 사고로 세상에 나오지 못한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p.15)

 

<시지프 신화>는 '자살'이라는 명제로 시작한다. 인간은 자신이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될 때, 무의미한 삶을 마감하고 싶을 때 자살을 생각한다. 카뮈는 인간이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느끼고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는 그 감정을 '부조리의 감정'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이런 부조리의 감정을 느끼고 그런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살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자명한 이치'이기에 우리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카뮈는 묻는다.

자살이 부조리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 '과연 부조리는 죽음을 명하는가'(p.23)라고.

 

무표정한 환자들로 가득한 병원에 있다가 화창한 햇살이 내리쬐고 반짝이는 차들이 대로를 달리며 밝은 표정으로 어딘가를 향해 활기차게 걸어가는 사람들을 봤을 때,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곤 한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 병원 문을 열고 마주친 세상은 방금 전까지 내가 봤던 죽음의 세상과는 너무나 다르기에 나는 '왜?!'라는 질문을 한다.  그러나 세상은 나에게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 그 '낯섦'앞에서 고개를 흔들며 방금 내가 봤던 세상을 잊으려 할 뿐이다.

 

그 누구도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없고, 카뮈가 '피비린내 나는 수학'(p.33)이라고 한 시간 앞에서 인간은 그저 무기력한 존재일 뿐이다.

 

인간은 명확한 답을 원하고 '세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환원'시켜야 만족한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은 '연속적인 후회와 무력의 역사'(p.37)일 뿐이다. 그 어떤 철학자도 답을 주지 못했고 (여러 실존철학에 국한할 때), 그들은 결국 신으로 '도피'하거나 '인간의 척도를 넘어' 부조리 자체를 무시하고 '비합리를 신격화'(p.63) 함으로써 '철학적 자살'을 저질렀다고 카뮈는 말한다.

 

카뮈는 '부조리는 인간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세계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양자가 함께 있는 가운데 있을 뿐'(p.52)이라고 말한다.  부조리는 세상과 인간을 '묶어주는 유일한 끈'이며 이 셋은 삼위일체로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셋 중 하나라도 없다면 전체는 파괴된다.

 

여기서 다시 카뮈의 '부조리는 자살을 명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보면, 결국 자살은 부조리를 끝나게만 할 뿐 해결책은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카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살은 부조리를 바로 죽음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그러나 나는 부조리가 지탱되려면 부조리 자체가 해소되어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다. 부조리는 죽음에 대한 의식인 동시에 죽음의 거부라는 점에서 자살에서 벗어난다. 부조리는 사형수의 마지막 생각이 극한에 이르렀을 때, 현기증 나는 추락의 막다른 벼랑 끝에서 어쩔 수 없이 바라보게 되는 저 한 가닥의 구두끈이다. 자살자의 반대, 그것은 다름 아닌 사형수이다.(p.84,85)

 

'도피'나 '비약'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삼위일체-세상,인간,부조리- 중 하나라도 부정하면 그것은 '부조리를 기피'하는 것이 된다. 우리는 부조리 상태에서 살 수밖에 없다. 우리는 '부조리를 주시'하고 의식해야 한다. 그러나 그냥 의식만 하라는 것은 아니다. 

 

카뮈가 부조리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끌어낸 세 가지 결론은 '반항','자유','열정'이다.

희망이 없음을 인정하되 그것이 절망을 뜻하는 것은 아니기에 자신의 '전부를 마지막까지 소진'시키고 '극단적인 긴장, 고독한 노력'(p.86)으로 반항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부조리의 인간은 자신의 환상이 만들어놓은 목표에 자신을 가둬 놓지 않으며 내일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부조리만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온당한 자유의 원리'임을 깨닫는다. 따라서 삶이란 '미래에 대한 무관심'과 더불어 '모든 것을 남김없이 소진하겠다는 열정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p.91)라고 말한다.

 

이리하여 나는 부조리에서 세 가지 귀결을 이끌어 낸다. 그것은 바로 나의 반항, 나의 자유 그리고 나의 열정이다. 오직 의식의 활동을 통해 나는 죽음으로의 초대였던 것을 삶의 법칙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래서 나는 자살을 거부한다. (p.97)

 

그렇다면 부조리한 인간은 어떤 사람인가?

카뮈는 부조리한 인간의 예로 돈 후안, 연극배우, 정복자를 든다. 최대한 많은 여자를 만나며 그 여자들과 더불어 자신이 삶을 남김없이 소진하는 돈 후안, '모든 삶들 속으로 파고들어 다양한 모습의 삶을 경험'하고 연기하는 배우, 운명 앞에 도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늘 죽음을 의식, 죽음마저도 정복의 대상으로 삼는 정복자, 이들은 삶의 영원함을 믿지 않고 자신의 삶을 끝까지 소진하는 부조리의 인간들이다.

 

또한 카뮈는 예술가와 작가에 대해 말한다. 부조리의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설명하고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묘사하는 것'(p.145)이며, 부조리한 작품은 '명철한 형태의 사고가 그 속에 개입되어' 있으나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서는 안 되며, 어떤 인생의 목적이나 위안도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소설가는 '이야기'를 지어 들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우주를 창조'하는 철학자여야 하며,이미지, 감각, 암시들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드러내는 것이다.

진정 부조리한 작품은 그 어떤 답을 주어서도, '환상의 제물이 되어 희망을 사주'(p.155)해서도 안 된다. 카뮈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영생의 기쁨과 희망으로 인간의 삶을 비약하는 알료샤를 예로 들면서 그는 '부조리한 소설가가 아니라 실존적 소설가'(p.167)라고 말한다.

 

신들을 속이다 미움을 사서 산 밑에서 꼭대기까지 바위를 밀어 올리는 영원한 형벌을 받은 시지프. 온 힘을 다해 올려놓은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 떨러지고 시지프는 또 다시 아래로 내려가 돌을 굴려 올려야 한다. 카뮈는 그런 시지프의 운명을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야 하는 인간의 삶에 빗대었다. 무의미한 노동을 반복해야 하는 시지프는 진정 부조리의 영웅이며, 끊임없이 반항하는 부조리의 인간이라고 카뮈는 말한다. 이 모습은 매일매일 똑같은 작업을 하는 현대 노동자들의 모습과도 닮았다.

 

그런데 카뮈는 시지프가 바위를 밀어 올리는 모습 보다 다시 돌을 굴리기 위해 산 밑으로 내려오는 그 '휴지의 순간'에 주목한다.

 

이 신화가 비극적인 것은 주인공의 의식이 깨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성공의 희망이 그를 떠받쳐 준다면 무엇 때문에 그가 고통스러워하겠는가? (...)무력하고 반항적인 시지프는 그의 비참한 조건의 넓이를 안다. 그가 산에서 내려올 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조건이다. 아마도 그에게 고뇌를 안겨 주는 통찰이 동시에 그의 승리를 완성시킬 것이다. 멸시로 응수하여 극복되지 않는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p.182,183)

 

시지프는  자신이 처한 부조리한 상황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기에 희망이 없음을 안다. 그러나 절망하지도 않는다. 멸시함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극복, 그 순간의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하고 '바위보다 강'한 것이다.

 

카뮈는 반항하는 인간이야말로 자기 운명의 주인이며, 자신의 전부를 소진하여 끝까지 투쟁하고 부조리한 세상에서 도피하지 않고 당당히 대면할 때 행복을 말할 수 있다고 말한다.

비극의 주인공 시지프가 이 책의 마지막엔 '행복한 시지프'로 묘사되는 이유이다.

 

'행복한 시지프를 마음에 그려 보지 않으면 안 된다.'(p.185)

 

이 책은 올해 내가 읽은 책 중 가장 고생한 작품이다. 200페이지도 안되는 책을 읽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실존주의 철학자들, 후설의 현상학, 내가 읽지도 않은 도스토예프스키 소설들과 카뮈의 뭔가를 암시하는 듯한 스타일의 문장들 그리고 자연히 어려울 수 밖에 없는 번역. 

마침 올해 열린책들에서 새로 번역이 되어 나왔길래 도서관에 찾아봤더니 전체 도서관에 단 한 권도 비치가 안되어 있었서 참고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공부하듯이 최선을 다해 읽었는데, 리뷰를 쓰다보니 '이거 내가 지금 알고 하는 소리인가' 싶어 글을 쓰다가 멈추기를 수십 번 했다.

 

내가 어렵게 읽은 카뮈의 메시지는 이렇다.

부조리한 세상에 던져진 가혹한 인간의 운명은 시지프의 형벌과 비슷하다.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삶 속에서 우리는 부조리한 세상을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

희망은 없고 죽음의 댓가로 따르는 영생의 기쁨같은 것도 없다. 다 환상이 만들어낸 거짓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절망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반항해야 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하면 안된다. 미래의 계획, 인생의 목표, 영원의 기쁨에 묶여 있지 말고 모든 가치판단,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가는 반드시 죽는 사형수이기 때문이다. 늘 명철하게 부조리의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을 소진시켜 열정을 갖고 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시지프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기쁨을 갖고 산을 내려오는 이유일 것이다.

신들에게 반항하는 시지프는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간의 초상인 것이다.

 

인간은 인간 자신의 목적이다. 그의 하나밖에 없는 목적이다. 그가 무엇인가가 되고자 한다면 그것은 바로 삶 속에서다.(p.135)

 

이 문장은 예쁜 캘리그라피 책갈피로 만들어 간직하고 싶다.

이런 문장을 보면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더욱 안타깝다. 너무나 아까운 죽음이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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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12-31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29님 ^^ 올 한 해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도 많이 뵈요~

coolcat329 2020-12-31 23:21   좋아요 1 | URL
앗~~^^ 방금 초딩님 글 읽고 댓글 발견~~통했네요.
초딩님 댓글 감사하고 오늘 밤 좋은 꿈 꾸시길~~☺

페크pek0501 2021-01-01 1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명한 저서를 읽으셨네요.

님이 뜻하는 대로 일이 술술 풀리는 행복한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 ★ ★

coolcat329 2021-01-01 13:50   좋아요 0 | URL
술술~풀리는~정말 이런 한 해가 우리 모두에게 오기를요~
감사합니다 ~☺
 
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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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두 편의 중편 소설이 실려 있는데 표제작인 <달에 울다>는 평론가 신형철이 극찬을 해서 유명, '시소설의 정수'를 보여준 작품이라고 한다. 통속적인 스토리를 마루야마 겐지만의 담백하고 간결한 문체, 독특한 형식으로 서늘하면서도 아름답게 보여준 소품같은 작품이다.


남자 주인공 방에는 병풍이 있다. 주인공의 상상 속에서 계절 마다 변하는 병풍 속의  풍경과 달의 모습, 눈 먼 법사가 부는 비파 소리의 묘사는 이 소설의 단연 돋보이는 부분이다. 춘하추동(春夏秋冬) 각 계절의 풍경에 맞추어 주인공의 열살부터 마흔까지의 삶이 그려지는 구성이 매우 인상적이다. 

 

봄 병풍에 그려진 그림은 중천에 걸려 있는 흐릿한 달, 동풍에 흔들리는 강변의 갈대, 그리고 걸식하는 법사(法師)다. 휘늘어진 버드나무 둥치에 털썩 주저앉은 법사는 달을 향해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내며 격렬하게 비파를 타고 있다.(...)볏짚을 채운 요와 고이노보리를 부수어 만든 이불 속 아이는 바로 30년 전, 이제 막 열 살이 된 나다.(p.9)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아버지와 사과 농사를 지으면서 한번도 마을을 떠난 적이 없다.

작고 외진 마을이지만 이곳에도 세상의 폭력과 잔인함, 그 뒤엔 권력이 숨어 있다.

 

마을의 권력인 촌장의 곳간이 털릴 뻔하고 한 남자가 도망친다. 그 남자는 마을 사람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고 그 선두에는 화자인 '나'의 아버지가 있다. 도둑을 잡은 기념으로 마을엔 시끌벅적한 잔치가 열리고 죽은 남자의 아내와 딸은 마을을 떠난다. 떠난 지 얼마 안되 다시 돌아온 모녀, '나'는 죽은 남자의 딸인 야에코를 사랑한다.

 

주인공이 20살, 30살, 40살...나이 듦에 따라 병풍 속 계절도 바뀌고 세상도 변한다.

야에코와 사랑을 나누는 '나'는 20대 여름의 '뜨거운 영혼'.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은 야에코를 보내고 홀로 남아 뻔한 앞 날만을 마주한 30대의 '나'는 가을의 마비된 영혼이며, 삭막하게 변한 세상 속에서 모두가 떠나고 홀로 사과 농사를 짓는 40대의 '나'는 '패기 한 조각 없는 회색빛 영혼'이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돌아와 하얀 눈위에서 죽어가고 있는 야에코를 발견한 '나'는 그녀의 삶은 그래도 '시시한' 나의 삶보다는 '농익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의 가슴 속에는 야에코가 아버지를 잃은 그 날의 죄책감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그러나 봄이 와 땅이 부드러워져 그녀를 묻어 주고 나면 그 '긴 꼬리'는 끊어질 것임을 '나'는 안다.

 

마음을 적시는 문장들 속에 도시화로 인해 황페해져가는 자연과 사라져가는 인간성을 향한 작가의 싸늘한 시선도 눈에 띈다.

야에코의 아버지를 집단으로 죽여 놓고도 전혀 죄책감을 못 느끼는 마을 사람들, '온갖 짓을 다 저지르고도' 잘 살아가는 인간들을 보며 '나'는 세상에 환멸을 느낀다.
소독약은 진드기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반디도 죽이며, 오염된 지하수를 원래대로 되돌리려면 ‘마을 주민 전원이 살아가는 방식을 고쳐야 한다’(p.82) 고 작가는 주인공의 생각을 빌어 말한다.
또한 사람들은 점점 나쁘게 변하고 ‘그저 애매한 상태로 질질 후퇴’(p.96)만 할 뿐이며, 심지어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들까지도 그런 얼굴을 하고 있다.’(p.96)고 나날이 변하는 세상의 모습에 회의적이다.

"앞으로도 좋은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아."(p.105)라고 말하는 버스 운전사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현대 인간들, 그 속에서 ‘사과나무와 함께 언제까지나 이 땅에서 움직이지 않’(p.38)겠다는 주인공의 모습이 애달프고 귀하게 느껴진다.
야에코와 ‘영리한 개’ 백구, 화자가 사랑했던 이들은 모두 이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병풍 속에서 사과나무는 셀 수 없이 많아짐을 ‘나’는 본다.

'봄이 오면 하얀 강아지를 키우자'는 '나'에게 남은 건 이제 사과 나무뿐이다. 야에코네 사과와 자신의 사과를 접목기켜 어린 나무를 심겠다고 한 꿈, 남자는 그 꿈을 이루었을까...

다음은 야에코에게 생명이 되어주고 싶은 '나'의 사랑이 아름답고도 강렬하게 나타난, 가장 인상깊었던 문장이다.

 

 

마을 지하수는 뜨겁다.
그렇다고 온천수는 아니다. 백구나 야에코는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항상 그 물을 감지하고 사과나무처럼 끊임없이 빨아들이며 살고 있다. 내 몸에서 여과되고 농축된 물은 야에코 몸으로 옮겨 가 그녀의 나날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한다. (p.48)

 

 

두 번째 소설인 <조롱(鳥籠)을 높이 매달고>는 직장과 가족에게 버림받고 제2의 인생을 위해 고향을 찾아간 한 40대 남자의 이야기이다.

맨정신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으로부터 떠나 이제는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기로 한 주인공과 그가 자신의 영혼을 치유하기 위한 몸부림이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그려진다.

 

주인공은 속세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이곳에서 또 의지할 대상을 찾는다. 그것은 바로 피리새. 피리새만이 자신을 치유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소리를 쫓아 간 곳에서 노인을 발견하는데, 노인의 딸은 인근 도시에서 몸을 팔아 아버지를 부양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 매일 온천욕을 즐기며 피리새를 키우고 있는 노인에게 죽이고 싶을 정도의 증오심을 느끼지만 결국 마을을 떠나기로 한다. 떠나기로 한 날 아침 피리새 소리를 듣고 잠을 깬 '나'는 피리새를 돌려주기 위해 노인을 찾아가는 도중 생각한다.

 

'누구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면 된다. 나는 나대로 내 멋대로 살아가겠다. 단순한 이치였다.'(p.261)

 

그러나 노인은 온천에서 죽어 있었고 '나'는 조롱을 언덕 위 나무에 매달아 놓고 피리새가 날아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둔다. 피리새가 자유를 찾아 날아가기를 바라며 '나'또한 마을을 떠나고 물 흐르듯이 삶을 이어나간다.

 

무언가를 기대하고 찾아온 곳에서 피리새를 얻기만 하면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믿은 주인공. 그러나 작가는 그것은 착각이며 외부에 의존하는 삶은 결코 그 답이 될 수 없음을 말하고자 한 것 같다. 진정한 삶을 살고 싶다면 오직 스스로 자신을 상대로 싸우고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을.

 

<달에 울다>가 시소설로서 문장이 아름답고 계절마다 변하는 이미지가 인상깊었다면, 두 번째 <조롱을 높이 매달고>는 상처받은 영혼을 스스로 치유하기 위한 한 인간의 고독한 몸부림을 보여준다. 그러나 <달에 울다>에 비해서 재미가 없었고, 정신이 불안한 주인공의 심리가  많이 낯설고 이해가 되지 않아 잘 읽히지 않았다.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은 처음 읽어 봤는데, 글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달에 울다>를 만난 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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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12-28 14: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양반이 아주 오래 전에 <납장미>를 쓴 이로군요.
깡패 총 쏘는 얘기 하다가 어떻게 ˝시소설˝을 쓰게 됐을지 궁금합니다. ㅋㅋㅋㅋ

coolcat329 2020-12-28 17:29   좋아요 0 | URL
네~맞아요ㅎ 납장미. 예전에 폴스타프님 리뷰 중 성윤석 시인의 <밤의 화학식> 읽었는데, 거기 첫번째 시가 ‘납‘(Pb)인거에요. 그래서 마루야마의 납장미에 대해 써놓으신걸 읽고, 굉장히 서정적이다 생각했어요. 납장미가 총알이 무쇠종에 부딪혀서 표면에 퍼진 자국이라고. 저는 납으로 만든 장미인줄 알았거든요.

페크pek0501 2020-12-28 14: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가지고 있는 1인입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추천하는 걸 책에서 보고서 샀는데 읽지는 못했어요.
새해엔 꼭 읽으려고요.
아, 새해엔 구매한 책이 많은 해가 아니고 책을 많이 읽은 해로 기억되길 소망합니다.

coolcat329 2020-12-28 17:30   좋아요 0 | URL
이 책 갖고 계시군요. 네 저도 책 그만 사들이고 있는 책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새해엔 페크님 책도 꼭 읽을게요. 😀

잠자냥 2020-12-28 1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새로나온 버전으로 <달에 울다> 살까말까 고민중이었는데 쿨캣 님 포스팅 참조할게요! ㅎㅎ

coolcat329 2020-12-28 17:39   좋아요 1 | URL
잠자냥님이 안 읽으신 책이 있다니, 살짝 기분이 좋으네요 ㅎ 이번에 새로 나왔군요. 😊

scott 2020-12-31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쿨켓님
2021년산 복주머니 하나 놓고 가여 ㅋㅋ

\-----/
/~~~~~\ 2021년
| 福마뉘ㅣ
\______/


coolcat329 2020-12-31 10:24   좋아요 1 | URL
만나면 기분좋은 스콧님, 감사합니다.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셔요.
 
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 창비세계문학 6
딩링 지음, 김미란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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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세계문학은 빈티지한 스타일이 좋아서 중고서점에서 보이는 족족 다 사들이고 있는데, 처음 듣는 작가의 이 책도 그렇게 나에게 오게 되었다.

 

딩링(丁玲 1904~1986)은 중국 5.4 신문화운동이 길러낸 여성 작가로서 본명은 장웨이인데 5.4 신문학 사상을 접한 뒤 딩링으로 개명을 한다. 여기서 링,'玲'은 '옥소리 령'으로 내 이름의 '영'자와 같은 한자라 반가웠다.

 

딩링은 파란만장한 중국 현대사와 그 삶을 같이 했기 때문에 그녀의 글쓰기도 그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초기엔 여성 지식인의 시각으로 창작활동을 하다가 공산당의 근거지인 옌안으로 와서는 자신의 기대와는 다르게 민중 위에서 군림하는 공산당 특권층과 여전히 일과 가정의 고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 여성들을 보면서 그 실상을 폭로하는 작품을 쓰게 된다.

이러한 활동으로 딩링은 중국공산당에게 '자유주의적 작가'로 낙인찍혀 변방으로 발령, 농촌생활을 한다. 이 후 딩링은 비판적인 글쓰기 보다는 '사회의 밝은 면을 부각시키는' 당이 장려하는 글을 쓰고 1952년 '사회주의권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스탈린 문학상'을 수상, 중국혁명의 과정을 세계에 알리는 작가로 명성을 얻게 된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이 급진적인 좌경노선을 추진하면서 그녀의 삶은 다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학생들에게 '무릇 작가라면 자신만의 대표작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던 발언이 '출세주의'로 고발, 부르주아 사상을 지닌 우파 작가로 분류된 것이다.

그녀는 당으로부터 숙청 당하고 작가로서 글을 쓸 권리도 박탈 당한 채, 감옥에 수감, 추운 동북지방에서 육체노동을 하게 된다. 이후 문화대혁명(1966~76)이 끝나고 그녀가 다시 세상에 나타날 때까지 어떤 생활을 했는지 거의 알려진게 없지만 심한 고초를 겪었음은 말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소설집은 이러한 딩링의 시대에 따라 그 성향이 다른 소설이 4편 실려있다.

이 책의 표제작인 <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는 1941년에 쓴 작품으로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갔다가 병에 걸려 고향으로 돌아온, 일본군에게 더럽혀진 '부도덕한 여자'로 취급받는 전전의 가슴아픈 이야기이다. 잔혹한 역사에 희생당하고 집으로 돌아온 성노예 여성들을 바라보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멸시는 워낙 알려진 사실이기에 놀랍지 않았지만, 그렇게 돌아온 여성들을 중국공산당이 다시 스파이로 '파견', '애국이란 명목으로' 그들을 이용한 사실에 나는 매우 놀랐다. 힘없는 어린 여성들이 탐욕스러운 전쟁에 이용되고 나중에는  '다 헤어진 신발'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받았으니 얼마나 비참했을까...

그러나 전전은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 마을에 잠깐 머물고 있는 화자인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실제로 너무나 많은 일본 놈들한테 당해서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도 기억이 잘 나질 않고 결국엔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 되고 말았어요.(...)나는 낯선 사람들 속에서 바쁘게 사는 게 집에서 지내거나 친지들이 있는 곳에서 사는 것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번에 그들이 xx로 데려가서 치료해주기로 했으니까 나는 그곳에 머물면서 공부를 하고 싶어요."(p.40)

 

딩링은 전시에 성노예로 끌려간 여성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주변의 차가운 시선을 고발하고,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이라도 자신의 미래를 위해 분투하는 인간의 모습을 전전이라는 의지의 여성을 통해 보여준다.

 

두 번째 단편<병원에서>도 같은 해인 1941년 쓴 작품으로 도시에서 시골 병원의 산부인과 의사로 오게 된 루핑이라는 씩씩한 여성이 주인공이다. 루핑은 공산당원으로서 미래의 정치 공작원을 꿈꾸지만 당에서는 그녀를 시골의 병원으로 보낸다. 명령을 거역할 수 없어 시골로 오지만 하룻밤을 자고 난 그녀는 '새로운 생활을 멋지게 시작하는 거야' 라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러나 병원의 상황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구부러진 주사바늘, 사용한 종이를 소독도 하지 않고 다시 쓰고, 청소는 커녕 구석구석 버린 솜과 거즈가 널려 있다. 루핑이 아무리 청결을 강조해도 듣지 않자 의사인 루핑이 직접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하지만 그 누구도 미안해하지 않는다. 루핑은 '자신이 목도한 불합리한 일'들을 이야기하고 시정을 요청하지만 고루한 관료주의와 타성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그녀를 무시하고 오히려 그녀는 당으로부터 '자유주의자','영웅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 비판을 받은 그녀는 자신의 신념에 대한 회의감에 젖기도 하며 의기소침해지지만 우연히 두 다리가 다 잘린, 산전수전 다 겪은 환자와 대화를 나눈 후 다음과 같이 마음을 다잡는다.

 

무릇 사람은 온갖 시련을 겪고도 꺾이지 않아야 비로소 쓸모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고난 속에서 성장하니까.(p.77)

 

이 작품은 '간부를 비판함으로써 이들과 대중 사이를 멀어지게 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고 이후 그녀는 사회주의 이념에 부합하는 글로 마오에게 인정을 받는다. 그녀의 이러한 행보는 작가로서의 신념이 꺾인 것일텐데, 1957년 '반우파투쟁'에서 또 우파작가로 몰려 숙청을 당하니 그녀의 삶은 고난 그 자체였음을 알 수 있다.

 

<발사되지 않은 총알 하나>는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민족주의를 고취하고자 발표한 작품으로 홍군 소년병의 이야기이다. 이동 중 대오에서 낙오한 어린 홍군이 마을에 숨어 있다가 국민당 군대에 발각되고 총살 당하기 전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대장! 총알 하나를 남겨두는 게 좋겠소. 남겨두었다가 일본 놈과 싸우시오! 나를 칼로 죽이고!" (p.97)

 

이념을 떠나 일본을 상대로 하나의 중국인으로 단결하자는 작가의 의도가 분명한 작품이다.

 

마지막 이야기 <두완샹> 은 사회주의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딩링이 1955년 우파작가로 비판받고 1978년까지 어떠한 활동도 없다가 그 해에 발표한 작품으로 작가가 20년간 육체노동을 했던 베이다황(北大荒)에서 만난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두완샹이라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소녀가 13살에 조혼하고 며느리로 부지런히 대가족을 위해 일한다. 17살에 남편이 한국전쟁에 참가한 가운데서도 열심히 생활하던 그녀는 토지개혁 조사로 마을로 온 여성 동지의 눈에 띄어 교육을 받고 마을의 부녀 주임이 된다. 전쟁에 나갔던 남편이 돌아오고 1958년 남편이 동북의 베이다황으로 발령이 나는데, 이곳은 6월에도 눈이 내리고 겨울엔 사람이 동사하는 험난한 곳이다.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두완샹은 "그렇게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라면 제가 왜 살지 못하겠어요? 변방을 건설하러 가는 거잖아요."(p.112)라며 남편과 떠난다. 두완샹은 스스로 할 일을 찾아 남들이 쉴 때도 쉬지 않고 일하며 모범 노동자로 인정을 받게 된다. 1964년 노조의 여성간사가 되지만 거거에 만족하지 않고 조국을 위해 황무지를 개간하고 변방을 개척한다는 사명감과 책임을 잊지 않는다. 이 소설은 두완샹이 청중들 앞에서 강연하는 것으로 끝난다.

 

"저는 평범한 사람이며 누구나 다 하는 평범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가지 이치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오로지 영원히 당의 지도하에, 있는 그대로 사실에 근거하여 진리를 탐구하고 성실하게 당의 요구에 따라 공산주의 사업을 위해 죽는 날까지 분투하기를 희망합니다." (p.145)

 

'모래바람을 견디고 자란 한그루 살구나무'같은 공산주의 노동 영웅 두완샹. 중국 공산당의 이념에 충실한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적지않게 당황했고 많이 불편했다.

인간적인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시종일관 강인하고 열정적인 모습의 두완샹이 인조인간 같았다.

 

그러나 뒤에 작품해설에서 작가가 겪은 삶의 풍파와 그녀 자신만이 갖고 있던 신념이 이런 글을 쓸 수밖에 없게 만들었음을 알게 되었다. 예술성보다는 정치성을 띈 이 소설은 그녀가 얼마나 사상적으로 부담을 갖고 글을 썼는지 알게 해준다.

 

다시는 딩링의 소설을 읽을 일은 없을 듯 싶지만 중국 문학에 딩링이라는 여성 작가가 있었고 파란만장한 중국 현대사와 그 궤를 같이한 그녀의 문학 인생이 인상깊었다. 무엇보다 이러한 고난을 겪은 작가가 비단 그녀 뿐만은 아니었을테니 그중에는 당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세상에 진실을 알린 작가도 있을 것이다. 그런 작가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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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 북로드 세계문학 컬렉션
루쉰 지음, 북트랜스 옮김 / 북로드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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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은 루쉰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정신 승리법’으로 유명하다.
올 가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중국의 ‘혁명이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나’에 주목하며 읽었다.

아Q는 집도 가족도 없는 날품팔이 하층민이다. 그러나 자존심 하나는 강해서 그 누구에게도 지고 싶어하지 않고 자신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다혈질에 현실인식도 부족, 시비가 붙을 때마다 얻어 터지지만 ‘자식 놈에게 맞은 셈’이라며 정신적으로 늘 승리한다. 이런 아Q는 신해혁명(1911) 당시 노예근성에 젖어있던 중국 민중을 대표한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청나라는 계속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대국 의식에만 사로잡혀 나라가 망해가는 줄도 모르고, 방관자적인 민중들은 이런 위기를 인식조차 못했으니 루쉰이 자신의 첫 작품집을 <납함(呐喊)>-외침-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를 알만하다.

망해가는 나라를 구하고 새로운 세상을 위해 평생을 혁명에 투신한 쑨원이 겨우 혁명을 일으키나 아무런 변화가 없다. 책 속에서도 혁명당이 성내로 진입했지만 ‘관직 이름만 달라졌을 뿐 그대로’이고, 기득권자였던 거인 영감은 또 무슨 벼슬자리를 얻기까지 하니까 말이다. 민중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혁명이고 기득권 층 내에서만 변화가 있을 뿐이다.

아Q가 생각하는 혁명은 또 어떤가? 평소 혁명을 반란으로 여기며 혐오하던 그가 혁명은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을 죽일 수 있고 원하는 여자를 마음껏 취할 수 있는 길임을 안 순간 그는 돌변한다. 혁명이 뭔지도,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른채.

자오영감과 자오수재, 가짜 양놈으로 대변되는 기득권층은 또 어떤가? 혁명군의 바람이 마을에까지 밀려오자 얼마나 발빠르게 움직이는지 모른다. 변발을 자를 용기도 없어서 틀어올리는 자들이 혁명의 의미를 알까? 변발이 잘릴까 두려워 성내에도 못 들어간 자오수재는 평소 친하지도 않은 가짜 양놈에게 돈을 주고 혁명당을 상징하는 은 복숭아 뱃지를 달고 다닌다. 이를 본 아버지 자오영감은 ‘과거 급제했을 때보다 훨씬 더 거들먹거렸다‘ 고 하니 이들이 급변하는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은 최고다.
청나라 시대에는 민중 위에 군림하다가 상황이 변하자 혁명군 측에 붙어 또 민중을 억압하니 루쉰이 봤을 때 이런 민중이 얼마나 안타깝고 절망스러웠을까...

루쉰의 첫 소설집 제목인 <납함>, 외침! 루쉰이 살아있는 동안 속으로 얼마나 외쳤을지...나는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노예근성에 젖어 나라가 존망의 위기 앞에 있는 줄도 모르는 중국인들에게 제발 현실을 직시하라고, 제발 우리의 패배를 자각하고 다시는 같은 패배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깨어나야 한다는 루쉰의 외침이 소설 속에서 들려오는 듯 했다.

고상한 뜻이나 대의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음을, 양심적이고 자기 희생적인 지배층과 그들을 뒷받침해 주는 뜻을 같이 하는 다수의 민중이 있어야만 세상은 조금이나마 변함을 새삼 다시 느꼈다.

이 책에는 아Q정전, 광인일기, 고향 세 단편이 실려있는데,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루쉰의 작품 <고향>의 마지막 구절과 함께 글을 마칠까 한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또한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없었는데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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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24 1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쿨캣님 루쉰작품ㅇㄴ 을유에서 나온걸로 읽었는데 고전중에 고전인것 같아요.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쿨캣님 서재에 트리 한그루 놓고 가여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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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rry ☆ Christma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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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erry ..:+ +:.. Christma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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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메리 크리스 마스 ^.~

coolcat329 2020-12-24 10:34   좋아요 1 | URL
와~~눈이 너무 즐겁습니다. 스콧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되셔요. ☺

레삭매냐 2020-12-27 11: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 때 전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청나라는 서세동점의 시대에
영국의 부도덕한 아편전쟁으로
대변되는 외세의 침탈과 태평천국
의 난이라는 내부의 모순으로 결국
망하게 되지 않았나 싶네요.

중국 민중의 대부분이 아큐처럼
혁명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혁명
에 나섰다가 낭패를 당하지 않았나
뭐 그런 생각을 해보는 아침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