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3
알베르 카뮈 지음, 유호식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코로나...이국적인 맥주 이름이기도 한 이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의 일상은 완전히 다른 그 무엇이 되어 버렸다. 설마설마하던 것이 2월 말 대구에서 절정을 찍고 나 또한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답답하던 차에 이 책을 무작정 사서 지난 달에 읽었다.

 

이 소설은 페스트에 감염되어 봉쇄된 도시 오랑의 상황을 관찰하고 기록한 르포르타쥬 형식을 취하고 있다. 소설 처음에 서술자는 이 작품을 194x년 오랑에서 일어난 이상한 사건을 다룬 연대기라 말한다.

프랑스 식민지 영토인 알제리의 해안도시 오랑에서 무서운 전염병인 페스트가 발생한다. 처음에는 한 두 마리만 발견되던 것이 불과 이틀 사이에 '공장과 창고에서 죽은 쥐가 수백 마리나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사태는 더욱 악화되어 '쥐들은 떼를 지어 밖으로 나와 죽기 시작'하고, 그것은 마치 '땅이 쌓여 있던 분비물을 배출하고, 지금까지 안에서 곪고 있던 종기와 피고름이 표면으로 올라오는 것 같았다' 라고 묘사된다. 땅에서 피고름이 올라온다니...잊을 수 없는 끔찍한 묘사이다. 반면에 방역당국은 아무 대책이 없고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재앙이 자기에게 닦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재앙은 인간의 척도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들은 재앙을 비현실적인 것, 곧 지나가버릴 악몽에 불과한 것으로 여긴다.'(p.51)

 

결국 1부는 이렇게 끝난다.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폐쇄하라.'

 

도시가 폐쇄되면서 폐스트는 드디어 '모두의 문제'가 된다. 시민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졸지에 생이별'을 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죄수와 다름 없는 '현재는 견딜 수 없고, 과거는 혐오스럽고, 미래마저 박탈당한 처지'가 된다.

 

카뮈는 이런 감옥과도 같은 도시에서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폐쇄된 도시에서 요양원에 간 아내와 생이별한 채 최선을 다해 환자를 돌보는 의사 리외. 아랍인들의 생활상을 취재하기 위해 오랑에 잠시 들렀으나 도시가 폐쇄되어 연인이 기다리는 파리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자 탈출을 시도하는 기자 랑베르. 페스트는 악한 사람을 벌하기 위해 신이 내린 벌이라며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신의 뜻대로 살것을 강조하는 파늘루 신부. 타지인이지만 보건대를 조직하여 실질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하려는 타루. 시청의 하급 직원으로 눈에 띄지는 않지만 보건대에서 통계 업무를 맡은 그랑. 열악한 현장에서 혈청 제조에 온 열정을 쏟아붓는 늙은 의사 카스텔. 그리고 이들과는 다르게 페스트를 반가워 하는 인물 코타루. 그는 범죄를 저지르고 체포될 위기에 처하자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으로 페스트로 인해 도시가 아수라장이 되자 오히려 살 맛이 나고 한 술 더 떠서 배급물자를 암거래하여 경제적인 이득까지 얻는 또 다른 인간의 모습이다.

 

의사 리외와 타루는 보건대를 조직하여 페스트와의 싸움에 앞장선다.

그저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무릎을 꿇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많은 도덕가들과는 반대로 이들이 내린 결론은 단 한가지, '바로 페스트와 싸우는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싸워야 하며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는 것',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 앞에서 타루는 보건대를 조직하고 리외는 의사로서의 직분을 다한다.

 

반면에 도시에 갇히게 되어 탈출을 시도하는 랑베르는 리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영웅주의를 믿지 않아요. 내가 아는 한 영웅주의는 어렵지도 않고, 또 영웅주의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내가 관심있는 건, 사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것을 위해 죽는 것이에요. (...) 정말 그럴 수 없다면, 영웅놀이는 그만 두고 모든 사람들이 해방되기를 기다리자고요. 나는 그 이상은 하지 않겠어요." (p.194)

 

하지만 리외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데 내 생각에 리외의 이 말은 이 소설의 핵심이 아닌가 생각한다.

 

"당신 말이 옳아요, 랑베르. (...) 하지만 이것만은 말해주고 싶어요. 이 모든 것은 영웅주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이건 성실성의 문제예요. 비웃을지 모르지만,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p.194)

 

성실성, 그건 바로 '내 직분을 완수하는 것' 이다.

 

교회 또한 나름대로 페스트와 싸우는 의미로 기도주간을 기획, 파늘루 신부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설교한다.

 

"오늘 여러분에게 페스트가 닥친 것은 반성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정의로운 사람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들이 떠는 것은 당연합니다.(...) 반성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페스트가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하느님의 자비'임을 알고, 고통 속에서도 '영생의 불빛'을 봐야한다는 교회의 전형적인 희망 메세지를 전하며 설교는 끝난다.

전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관념적인 종교관에 매몰된 파늘루 신부의 설교를 리외는 받아들일 수 없다.

 

타루는 이런 리외에게 질문이 많다.

 

"선생님도 파늘루 신부처럼 페스트에도 나름의 이점이 있어서 사람을 각성하게 하고 생각하게 만든다고 여기시나요?", " 선생님은 신도 믿지 않으면서 그렇게 헌신적인 이유가 뭔가요?", "무엇에 대해 보호하는 거죠?"

 

"신이 침묵하고 있는 하늘을 바라볼 일이 아니라, 신을 믿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죽음과 싸우는 것이 어쩌면 신에게도 더 좋을지 모른다는 겁니다" (p.153)

 

리외에게 페스트는 '끝없는 패배'일 뿐이다. 의사 생활을 하면서 그가 깨달은 것은 사람은 '죽음에 익숙해질 수는 없다' 는 사실이다.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세계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 '죽음과 싸우는 것'이다. 랑베르처럼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파늘루 신부처럼 하늘만 쳐다보며 영생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현실에서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파늘루 신부도 오통 검사의 어린 아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음에 변화가 일어난다. 페스트는 죄많은 인간을 다스리기 위해 신이 내린 벌이라던 신부에게 리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 적어도 이 아이는 아무 죄가 없었습니다. 잘 알고 계시겠죠!"

 

"사랑에 대해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이 세상에서 아이들이 고통받아야 한다면, 그런 세상은 죽을 때까지 사랑하지 않고 거부하겠습니다." (p.255)

 

페스트가 악한 인간을 벌하기 위해 내려진 재앙이라면 이 죄없는 어린 아이의 죽음은 무엇을 뜻하느냐는 리외의 외침에 파눌루 신부는 손을 내민다. 리외도 손을 맞잡으며 "우리는 그것들을 겪어내고 그것들과 싸우기 위해 함께 있는 겁니다. 보다시피 하느님도 이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한다. 난 이 장면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자기 일에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의사와 겸손하고 말 길을 알아듣는(!) 성직자의 맞잡은 손이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너무나 아름답고 귀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파늘루 신부는 두 번째 설교에서 어린 아이가 겪는 고통은 이해할 수 없으며, 그 고통을 하늘나라의 영생이 보상해 준다는 식으로 해석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기독교인은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주어져 있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의 핵심을 향해 뛰어들어야' 하며 '오직,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면서라도 앞으로 나아가며 선을 행하도록 노력해야' 하고,'페스트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섬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신을 사랑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가 어린아이들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기에, 그 죽음이 필연적이기를 바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신을 사랑해야 하고 이것이 진정한 신앙심이라고 설교한다.

 

또한 리외를 향해 영웅주의라며 자신을 합리화했던 랑베르도 그토록 바라던 탈출을 앞에 두고 자신의 마음을 바꾼다.

 

"혼자서만 행복한 것은 수치스러울 수 있어요. (...) 나는 이 도시에서 이방인이니까 여러분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왔어요. 그러나 이제 내 경험에 비추어, 원하든 원치 않든 나도 이곳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 사건은 우리 모두와 관련되어 있으니까요."(p.244)

 

이 소설에서 서술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시청의 하급직원인 조제프 그랑이다. 서술자는 2부에서 전염병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보건대를 실제 이상으로 과대평가할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어떤 행동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을 지나치게 중요시하다 보면 결국은 간접적으로나마 악에 강력한 찬사를 바치게' 되기 때문이다.

타루의 보건대가 아무리 훌륭해도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하고 그것에 적절한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행위를 '과도하게 찬양'하는 것은 인간에게 그런 행위를 좀처럼 보기 힘들기 때문임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페스트와 싸우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인 상황에서 보건대를 조직하고 혈청을 제조하는데 온 열정을 쏟아붓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서술자는 '영웅적인 점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랑'을 -영웅이 한 사람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면- 영웅이라고 칭한다.

 

위에서 말한대로 리외는 페스트와 싸우는 방법으로 '성실성'을 강조한다. 내가 맡은 직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랑은 바로 이런 '성실성'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시청에서의 업무 외에도 퇴근 후 집에서 글을 쓴다. 비록 한 문장을 가지고 끙끙대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 완벽한 하나의 문장을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붓는다. 보건대에서도 사람들 앞에서 나서는 업무는 아니지만 모든 일을 등록하고 통계를 내는 중요한 일을 한다. 그랑은 이 모든 업무를 해내기에 피곤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할 일만 성실하게 해내려고 노력' 한다.

서술자는 이런 그랑을 '약간의 선량한 마음과 언뜻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운 이상밖에 가진 것이 없는 이 영웅'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타루와 리외같이 앞에서 행동하는 사람들도 중요하지만 이들을 과하게 영웅시 하다보면 그랑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들을 간과하기 쉽다. 서술자는 그것이 악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하는 일은 다르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재앙 앞에서 무릎 꿇지 않고 버티고 투쟁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우러러 봐야 할 영웅은 없다. 그저 모두가 다 영웅이자 보통 사람들이고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연약한 인간들일 뿐이다.

 

이런 힘든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서 대한민국의 많은 이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위험을 감수하고 코로나 최전선에서 싸운 의료진들과 방역 당국 관계자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성금과 응원의 목소리들, 자가 방역에 철저하게 임한 국민들 모두가 다 카뮈가 말하는 성실한 사람들이다.

 

사망률이 감소하면서 도시가 페스트로부터 해방되기 시작할 때 아이러니 하게도 타루가 쓰러진다. 가장 좋은 사람이 먼저 죽는다는, 그것이 인생이라는 노인의 말이 가슴에 박힌다.

페스트가 사라지는 와중에 덮치는 죽음...인간의 삶은 죽음 앞에서 늘 어색하다.

 

리외는 다시 찾은 삶에 기뻐하는 군중들과 하늘의 불꽃을 보며 '침묵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글을 쓰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지금의 이 기쁨은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것, '페스트 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되지 않으며 수십 년 동안 가구나 내복에 잠복해 있고, 방이나 지하실, 트렁크, 손수건, 낡은 서류 속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안다.

 

페스트는 짧은 우리의 인생에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타루의 죽음 같은 '삶의 알수없음' 이란 생각이 든다.

타루가 리외에게 한 말로 글을 마치려고 한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 세상 그 누구도 페스트 앞에서 무사하지 않으니까요. (...) 페스트 환자가 되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은 더욱 피곤한 일이에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피곤해 보이는 거에요. 오늘날에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거든요."(p.29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폭풍의 언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8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종길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명한 브론테 자매 중 한 명으로 30년의 짧은 생을 살다간 에밀리 브론테의 유일한 작품 <워더링 하이츠>를 지난 달에 읽었다. 폭풍의 언덕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지만 워더링 하이츠(Wuthering Heights)는 저택 이름인 고유명사이므로 굳이 번역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유명숙 번역의 을유문화사 작품 해설 참조)

 

1818년 영국의 황량한 요크셔에서 태어난 에밀리는 세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언니, 동생과 함께 세상과 동떨어진 생활을 하며 지냈다. 잠깐 기숙학교에 다닌 것을 제외하면 목사인 아버지의 사제관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보낸 것이 전부인 그녀가 이런 폭발할 듯한 사랑의 광기와 그로인한 복수의 소설을 썼다는 사실이 읽는 내내 놀라웠다. 거의 고립되다시피 살던 병약한 그녀의 내부에서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는지 참으로 미스터리이다.

 

황량한 요크셔 지방에 워더링 하이츠 저택의 주인 언쇼에겐 두 자녀가 있다. 힌들리와 캐서린. 어느날 언쇼는 리버풀에 갔다가 더러운 고아 소년을 데리고 온다. 언쇼는 그 아이에게 '히스클리프'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편애한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에 아들 힌들리는 히스클리프를 미워하게 되지만, 딸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와 둘도 없는 단짝이 되어 서로 의지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언쇼가 세상을 떠나게 되고 주인이 힌들리로 바뀌면서 히스클리프는 온갖 학대와 모멸을 받으며 하인이나 다름없는 처지가 된다. 그러나 캐서린과 히스클리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지고 둘은 우정 이상의 감정을 키워나가게 된다.

 

반면 근처엔 드러시크로스 저택이 있는데 여기엔 린트 가의 남매인 에드거와 이자벨라가 산다. 어느 날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우연히 이 근처에 갔다가 캐서린이 개에게 물려 그 집에서 몇 주간 치료를 받게되고 둘은 처음으로 떨어져 있게 된다. 워더링 하이츠에서 '들짐승처럼 거칠게' 자라던 캐서린은 세련되고 우아한 린튼 가를 접하고는 '매우 정숙한 아가씨'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늘 하나였던 둘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하고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당시 여성으로서 집안의 유산도 못받고 오로지 남편의 재력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에서 에드거의 청혼을 받고 갈등한다. 다음은 청혼을 받은 날 캐서린이 가정부 넬리에게 고백하는 장면이다.

 

"지금 히스클리프와 결혼한다면 격이 떨어지지. 그래서 내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그에게 알릴 수가 없어. 히스클리프가 잘 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넬리, 그가 나보다도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 만약 내가 히스클리프와 결혼한다면 우리가 거지가 될 거라고 생각한 적 없어? 하지만 내가 린튼과 결혼한다면 히스클리프가 오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도와줄 수 있어."

 

캐서린이 자신과 결혼하면 격이 떨어질거라는 얘기를 듣고 (끝까지 듣지 않고!) 히스클리프는 워더링 하이츠를 떠난다. 히스클리프가 갑자기 사라지자 캐서린은 정신착란 증세까지 보이다가 3년 후 에드거와 결혼하고 드디어 안온한 날을 보내게 된다. 히스클리프가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는...

 

그 악명높은 히스클리프의 잔인하고도 비열한 복수가 막장스럽게 전개되는 가운데 나는 히스클리프의 이런 복수에 대한 광적인 집착에 꽤 놀랐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악랄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자신을 학대한 힌들리를 시작으로 자신을 천하게 여겨 에드거와 결혼한 캐서린, 캐서린을 자신으로부터 빼앗아 갔다는 이유로 에드거를 , 또 에드거의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이자벨라에게 접근, 그녀와 결혼하여 죽게 만들고 한 마디로 주변을 생지옥으로 만든다.

 

복수를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히스클리프를 보며 사랑이 변질됐을 때 얼마나 파괴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 사랑이란 것이 아름다운 면만 있는게 아님을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을 떠난 캐서린을 향한 분노는 평범한 나로서는 범접할 수 없다.

 

"당신은 나를 사랑했어. 그러면서도 무슨 권리로 나를 버리고 간 거지? 무슨 권리로. (...)불행도, 타락도, 죽음도, 그리고 신이나 악마가 할 수 있는 어떠한 것도 우리 사이를 떼놓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당신 스스로 나를 버린거야. 내가 당신의 마음을 찢어놓은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찢어놓은 거야.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내 가슴도 찢어놓은 거야. 건강한 만큼 나는 불리하지. 내가 살고 싶은 줄 알아? 당신이 죽은 뒤에 내 삶이 어떨 것 같아? 아, 당신 같으면 마음 속 애인을 무덤 속에 묻고도 살고 싶겠어?"

 

"나를 가만히 둬. 가만히 좀. 내가 잘못했다면 나는 그 때문에 죽는 거야. 그것으로 족하지! 당신도 나를 버리고 가지 않았어? 그러나 당신을 책망하지는 않겠어. 나는 당신을 용서해. 당신도 나를 용서해 줘."

 

자신 때문에 괴로워 하는 캐서린 보다는 캐서린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고통에 몸부림쳤는지 좀 알아달라는 히스클리프의 절규, 그에 맞서 지지 않고 죽어가는 와중에도 소리지르는 캐서린의 외침. 불과 불이 만나 활활 타올라 주변을 다 불바다로 만드는 이미지가 그려진다.

 

보통 사랑이라 하면 아름다운 생각을 하게 되지만 이 작품은 사랑의 어두운 면, 가지지 못한 사랑이 집착으로 변질되어 그 폭력성을 강렬한 인물들을 통하여 막장스럽게 보여준, 막장 소설의 원조격인 작품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은 상처, 그 상처를 고스란히 상대방에게 주고 싶은 마음 누구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선과 악은 늘 가까이 있듯이 이런 사랑의 마음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사랑 그 속성이 가진 이런 아이러니함을 휘몰아치듯이 써 낸 에밀리 브론테가 어떤 사람이었을지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티오피아 시다모 난세보_2020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1년 7월
평점 :
품절


에티오피아 커피답게 가벼우면서도 향이 풍부합니다. 어제받아 오늘 아침 처음 마시는데 상쾌해지는 느낌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녀 이야기 (리커버 일반판, 무선)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성을 여러 계급으로 나누어 국가가 통제하는 사회라는 설정이 디스토피아 소설 중에서 이 작품이 갖는 독특한 점. 지난 달에 읽고 쓰려니 또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섬세하면서도 조심스러운 화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읽는 과정이 매우 스릴있었다. <증언들>도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씨 451 (리커버 특별판, 양장)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박상준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4월
평점 :
품절


책이 금지된 세상, 비판하고 생각하는 인간을 원하지 않는 사회에서 책을 태우는 것이 직업인 방화수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이다. 쾌락만을 추구하는 사람들, 사람 간의 대화는 단절되고 벽면에 설치된 TV 를 보며 아무 생각없이 사는 인간들, 이런 인간들이 다른 생각을 못하도록 통제하는 사회이다.주인공의 아내는 거실 벽 3면을 TV로 둘러 놓고 그 속에 나오는 사람들을 친척으로 설정, 그들과 교류하며 지낸다. 그리고 마치 우리가 열심히 돈을 모아 더 좋은 차를 사는 것처럼 조만간 돈의 여유가 생기면 나머지 한 면도 TV로 채우길 원한다.  자극적인 정보와 즉각적인 쾌락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더이상 책은 필요하지 않다.

 

SF 거장 레이 브래드버리의 시적인 문체와 책을 불태우는 사회라는 설정이 흥미로운 작품이지만, 나에겐 큰 인상을 주지 못했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읽으면서 지루해서 혼났다. 그나마 얇은 책이라 빨리 읽었지만 재미가 없었다. 개연성도 떨어지고 구성도 엉성하며 무엇보다 주인공의 행동과 말이 마음에 와 닿질 않았다.

 

이 소설이 <1984>와 <멋진 신세계>를 능가하는 작품이라는 홍보문구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재미라도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책을 불태우는 사회라는 설정과 리커버 표지만이 매력적일 뿐 나에겐 별 감동을 주진 못한 작품이다.

 

아, 물론 책이 없는 사회는 암울하다는 거...책은 사람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고 개개인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며 내 생각을 표현하게 함으로써 내 삶에 없어서는 안되는 인생 취미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으니 '역시 책은 좋다'는 사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0-03-25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루했군요? 전 아직 이 리커버 특별판 사놓고 안 읽었는데. ㅎㅎㅎㅎ
저도 곧 읽어봐야겠어요-

coolcat329 2020-03-25 17:38   좋아요 0 | URL
네~잠자냥님의 생각도 궁금하네요~

2020-04-03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