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내세 민음사 모던 클래식 7
러셀 뱅크스 지음, 박아람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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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주 북부의 샘덴트라는 작은 도시에서 어느 눈이 내리는 날 스쿨버스가 가드레일을 뚫고 비탈로 추락을 한다. 이 끔찍한 사고로 어린 아이 14명이 죽고 (마을 어린이의 절반이) 마을에는 슬픔과 분노가 자리잡게 된다. 이야기는 사고 후 4명의 마을 사람-버스 운전자 돌로레스 드리스콜, 죽은 쌍둥이 아이의 아버지 빌리 안셀, 과실 소송 전문 변호사 미첼 스티븐스, 사고 생존자 니콜 버렐-이 각자의 입장에서 감추어진 진실을 말하면서 전개된다. 개인적으로 여러 사람의 입장에서 전개되는 스토리는 항상 흥미롭다. 사고 후 모든 것이 절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은밀하고도 충격적인 개인사가 4명의 화자를 통해 드러나고  작고 조용한 마을이지만 모든 일상이 날카롭게 변하기 시작한다.

 

상상할 수 조차 없던 큰 비극을 겪은 사람들에겐 삶이란 살아있어도 결코 산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보내는 응원과 박수는 결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마지막 돌로레스의 냉소적인 말은 뼈아프게 다가왔다.

니콜의 증언을 가장 늦게 알고 돌로레스가 느낀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그리고 따라오는 고마움과 외로움. 돌로레스의 내면에서 꼬리를 물고 도는 이 세가지 감정. 니콜의 거짓증언에 안도감과 고마움이라니...나로서는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가슴을 옥죄는 어떤 속박으로부터 해방된 기분이었을까? 그리고 철저히 혼자라는 생각에 외로움이 뒤따라 온 것일까?

'달콤한 내세'라는 제목은 살아있지만 살아있는게 아닌 삶을 나타내는 것일까? 달콤하다는 건 반어적인 표현이겠지?

책을 읽고 나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한 건 내 기억으로는 처음인 듯 싶다. 나의 뜻과는 다르게 비상식적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에 당황했고, 왜 이래야 하는지 작가의 의도가 좀처럼 잡히질 않아 다 읽고 나서 참 막막했다. 

이 책은 독서 토론 수업에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아주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토론을 하면서 막연했던 자신의 생각을 정리 할 수도 있을 거 같다.

 

이 작품은 1997년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는데 그 해 칸 영화제에서 3개 부문 상을 받아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국내에선 미개봉.

 

러셀 뱅크스의 작품은 <거리의 법칙>이후 2번 째 인데 사실 이 책은 몇 년전 도서관 교환코너에 누가 두고 가서 집어 온 책이다. '민음사 모던 클래식이 웬일이냐!' 하면서.

p.298, 299

니콜 버넬 역시 그들에게 동참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날 아침 나와 함께 버스에 타고 있던 아이들은 모두 그들에게 동참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모두, 그러니까 나와 니콜, 사고에서 살아남은 아이들과 살아남지 못한 아이들. 우리 모두는 이제 완전히 다른 마을 사람들이 된 것 같았다. 우리는 달콤한 내세에서 외딴 마을을 구성하고 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샘덴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든, 우리를 기념하든 멸시하든, 우리의 파괴를 응원하든, 역경을 이겨 내고 승리를 거둔 데 박수를 보내든, 그것은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지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다른 방법은 없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p.299

니콜 버넬과 베어 오토, 램스턴 가 아이들, 숀 워커, 제시카 안셀과 메이슨 안셀, 앳워터와 빌로드 가의 아이들, 버스에 타고 있던 죽은 아이들과 죽지 않은 아이들, 그리고 나 돌로레스 드리스콜, 우리는 모두 제각기 혼자였다. 우리가 아무리 외로움을 공유하고 있다고 해도 그 외로움은 그것이 지닌 단순한 사실을 바꿀 수 없었다. 설사 죽지 않았다고 해도, 아주 중요한 측면에서, 더는 당황스럽지도 두렵지도 않으며 따라서 저항할 수도 없는 아주 중요한 측면에서 우리는 죽은 것과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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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반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78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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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표현 불능증(alexithymia)이란 희귀병을 앓는 주인공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타인과 공감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있는 것인지 새삼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창비 청소년문학 수상작 답게 '친구들과의 소통과 자신의 정체성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중고등학생들이 읽으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 크리스마스 선물로 산 책인데 좀 어렵다고 해서 책장에 꽂아뒀다가 머리도 식힐 겸 읽어 봤는데 흡입력이 대단, 단숨에 다 읽게 되었다. 그러나 초등학생이 읽기엔 다소 어려운 건 사실, 중학생은 되야 이해를 할 수 있을 듯 싶다. 읽으면서 김려령 작가의<완득이>가 생각났는데, 이 작품도 역시 장면장면이 생생하고 전개도 빠르며 캐릭터들이 분명해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기에 주변에 책을 안 읽는 사람들에게 추천해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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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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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온몸으로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의 책은 언제나 즐겁고 유쾌한 자극을 준다. 독서란 본질적으로 고독한 행위라는 그의 말이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고로 2019년은 나에게 고독한 해가 될 듯 싶다. 그리고 행복하다. 습관이 행복한 사람이 진정 행복하다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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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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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오면 왠지 읽어야만 할 거 같은 책 <설국>을 드디어 읽었다. 이걸로 만족이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자칫 힘들어질 수도 있겠다 싶은, 그야말로 분위기가 지배하는 소설이다. 참 이상한게 야한 장면은 한 번도 안 나오는데 왜이리 에로틱하고 퇴페미까지 느껴지는지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이 묘사한 부분. 발가락, 목덜미, 거머리, 양파 구근, 깨끗하다...이런 단어가 감각을 자극한다. 특히 '깨끗하다'는 표현은 잊을만 하면 나와 작가가 청결에 좀 병적인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p.19

여자의 인상은 믿기 어려울 만큼 깨끗했다. 발가락 뒤 오목한 곳까지 깨끗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p.31

가늘고 높은 코가 약간 쓸쓸해 보이긴 해도 그 아래 조그맣게 오므린 입술은 실로 아름다운 거머리가 움직이듯 매끄럽게 펴졌다 줄었다 했다.

 

다소 콧날이 오똑한 둥근 얼굴은 그저 평범한 윤곽이지만 마치 순백의 도자기에 엷은 분홍빛 붓을 살짝 갖다 댄 듯한 살결에다, 목덜미도 아직 가냘퍼, 미인이라기보다는 우선 깨끗했다.

 

p.36

여자가 샐쭉해서 고개를 숙이자, 목덜미가 훤히 드러나고 등줄기까지 붉어진 것이 보여 흠뻑 젖은 알몸을 고스란히 내놓은 것 같았다.

 

p.65

백합이나 양파 구근을 벗겨낸 듯한 새하얀 피부는 목덜미까지 은근히 홍조를 띠고 있어 무엇보다 청결했다.

 

서사가 풍부한 작품을 좋아하는 나에겐 좀 심심한 내용이었지만 한편으론 그 잔잔함 속에서 묘한 재미가 느껴져 계속 읽게 되는 소설이었다. 다만 문장에 드러나지 않은 숨겨진 의미를 놓칠까봐 일부러 천천히 읽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좀 더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이 책을 덮고 난 후 든 생각이다.

 

이야기는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라는 너무나 유명한 첫 문장과 함께 시작된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펼쳐지는 하얀 세상이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도쿄에 사는 시마무라라는 남자가 눈의 고장 니가타 현의 한 온천장을 방문하면서 거기서 만난 고마코라는 게이샤와 요코라는 여자 사이에서 묘하게 일어나는 감정을 아름다운 자연의 묘사와 함께 표현한 작품이다.

 

고마코는 이 소설에서 가장 생생한 인물이다. 시마무라를 사랑하지만 시종일관 방관적 자세로 있는 그를 보며 홀로 애타하면서도 늘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여인이다. 늘 허무주의에 빠져있는 시마무라, 소설 첫 부분 기차 안에서 시마무라의 시선으로 묘사되는 이미지 외에는 어떤 여자인지 알길 없는 요코와는 다르게 고마코라는 인물은 이 소설을 살아있게 하는 생명이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요코 또한 고마코만큼 생생하게 묘사되진 않지만 스승의 아들 유키오를 온 정성을 다해 간호하고 그가 죽은 후에도 매일 묘에 찾아가는 모습을 통해 한 사람을 향한 그녀의 진실된 사랑만큼은 요코라는 인물 자체보다 더 강렬하게 소설 속에서 부각된다.  이런 고마코와 요코는 방식은 다르지만 소설 속에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시마무라의 삶은 어딘가 병약하고 허무하며 보는 사람을 기운빠지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작품의 주인공은 고마코와 요코가 아닌가 싶다.

 

어찌보면 시마무라가 맞다. 어차피 죽음으로 끝날 우리의 삶이란 허무하다. 사랑도 언젠가는 끝나고 열심히 살아봤자 어차피 죽으면 끝인 것이다. 열심히 살아서 뭐할 것인가?

 

p.55

고마코가 아들의 약혼녀, 요코가 아들의 새 애인, 그러나 아들이 얼마 못 가 죽는다면, 시마무라의 머리에는 또 다시 헛수고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고마코가 약혼자로서의 약속을 끝까지 지킨 것도, 몸을 팔아서까지 요양시킨 것도 모두 헛수고가 아니고 무엇이랴.

 

이런 사실을 고마코도 알고 요코도 안다.

책을 읽고 책에 관한 메모를 해두는 고마코에게 "그런 걸 기록해 놓은들 무슨 소용 있나?"라고 말하는 시마무라에게 고마코도 "소용없죠" 라며 응수한다. 그러나 한 번 더 헛수고라고 확실히 말하려는 순간 시마무라는 그런 고마코에게 매혹당한다.

 

p.39

전혀 헛수고라고 시마무라가 왠지 한번 더 목소리에 힘을 주려는 순간, 눈(雪)이 울릴 듯한 고요가 몸에 스며들어 그만 여자에게 매혹당하고 말았다. 그녀에겐 결코 헛수고일 리가 없다는 것을 그가 알면서도 아예 헛수고라고 못박아 버리자, 뭔가 그녀의 존재가 오히려 순수하게 느껴졌다.

 

죽음을 생각하면 삶이란 어디서 봐도 허무하다. 사랑의 열정, 좀 더 나은 앞날을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것, 타인에 대한 나의 희생 등 모든게 다 소용없는 헛수고이다.

이것을 고마코나 요코도 모를리 없다. 하지만 그런 삶의 허무함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허무하기에 더욱 더 적극적으로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는 삶의 자세가 고마코와 요코에겐 있다. 삶을 긍정하고 최선을 다해 자신의 위치에서 살아가는 그녀들이 하얀 눈을 배경으로한 비현실적인 세상에서 매우 강렬하게 다가왔다. 시마무라가 현실을 떠나 눈의 고장으로 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죽을 인생인줄 알면서도 삶을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어 내려는 사람에게 눈과 같은 순수함과 계절의 변화와 같은 생명력을 느끼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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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테 안경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조 바사니 지음, 김희정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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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무솔리니 파시스트 당이 집권하던 이탈리아의 소도시 페라라. 이탈리아가 독일 히틀러와 손을 잡은 시대에 주류사회로 결코 흡수될 수 없었던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 사람은 성공한 의사이지만 동성애자이고 또 한 사람은 앞날이 창창한 부루주아 대학생이지만 유대인이다. 동성애자와 유대인으로 대표되는 소수가 다수로부터 받는 은밀한 폭력이 시대와 결합하여 무섭게 작동하기까지의 과정을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문체로 그리고 있다.

 

나는 이미 이 끔찍한 역사를 알고 있기에 철저하게 소외당한 두 사람이 나누는 우정어린 대화가 그토록 절망적으로 느껴질 수 없었다. 전화 통화에서 동성애자인 파디가티 선생님의 마지막 말 "행운을 빌어. 너와 네 가족의......"

1937년은 이탈리아에 인종법이 시행되기 1년 전으로 마치 폭풍 전야와도 같은 불안하지만 앞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시기이다. 이런 시기에 아무 저항도 할 수 없는 외로운 한 사람이 또 다른 외로운 사람에게 건네는 이 말이 왜이리 가슴아프던지...

 

다음은 소설 초반 파디가티 선생님에 대한 묘사이다. 마지막 비극적인 그의 죽음과 대비되어 개인적으로 슬펐던 부분이다. 

 

p.9

그의 공손하고 신중한 태도, 눈에 띄는 청렴함, 가난한 환자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고귀한 정신을 사람들은 높이 샀다. 하지만 이런 이유보다도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이 먼저 그에게 호감을 느끼게 했다. 수염 없는 매끈한 뺨에 창백한 안색 위로 금테 안경이 유쾌하게 빛났고 사춘기의 위기를 기적적으로 견뎌낸 선천성 심장병 환자의 통통한 육체도 , 항상, 심지어 여름에도 부드러운 영국산 모직 외투에 싸여 있는 그 살진 몸도 전혀 불쾌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전쟁 동안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우편 검열관으로 복무해야 했다). 여하튼 분명 그에게는 뭔가 단번에 사람들을 매료하고 안심시키는 면이 있었다.

 

파디가티의 존재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금테 안경은 그를 상징하는 물건이다. 사회적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던 사람이 다수의 그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기력하게 짓밟히는 모습이 나중에 렌즈에 금이 간 금테 안경을 통해 슬프게 묘사된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평범한 인간들의 동성애자를 향한 혐오와 멸시가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 아닌가...

 

이탈리아 소설은 처음이고 조르조 바사니라는 작가도 몰랐다.

1987년 영화로도 만들어 졌는데 파디가티 선생님역은 <시네마 천국>의 필립 느와레가 맡았다니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애잔함이 더욱 가슴에 스며드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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