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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 미국 ㅣ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허먼 멜빌 외 지음, 한기욱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평점 :
젊은 굿맨 브라운.
검은 고양이
필경사 바틀비 등 11편의 미국 단편집..
이중 내가 읽은 건 위의 3편과 더불어
샬론 퍼킨스 길먼의 누련 벽지.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에게 장미를.. .
샬론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
익숙한 제목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작년 서울 국제 공연 예술제에서 봤었던...
예매까지 해놓고 일정생겨 못 본 연극. 그때는 독일 극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마 연극에서는 산후우울증이었던 것 같은데... 소개글만 봤으니 기억이 날리가...
우리나라에서 다시 했음 좋겠는데.... 과연 기회가 있을까 싶다..
작년에 무슨일이 있어도 봤었어야 했어.. ㅠㅠ
<길먼의 누런 벽지>는
예전 영화 가스등을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중독되어 죽어가는 여자. 잉그리드 버그만이 정말 매력적이었었는데.
우울증이라고 단정지어 넣고 옴싹달싹 못하게 하는 남편들. 가족들.
글을 쓴다는 것을 숨길 수 밖에 없었고
벽지를 벅벅 뜯어가는 것과 자는 것 밖에는 할일이 없었던 여자.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것이 미쳐야만 가능했던 여자.
버지니아 울프도 생각나고 제인에어의 로체스터 부인도 생각났다.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지 못하고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다락방에
누런 벽지의 방에 갖혀있어야 했던 여자들..
약을 먹혀야 했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됬던 그녀들..
20세기 초까지도 그녀들이 많았었고 지금도 그런 그녀들은 많다.
그녀들이 진정 다락방에서 누런 벽지의 방에서 탈출하길 바란다.
보이기에 자유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서 보호되는 자유가 아니라..
당당하게 떳떳하게 자유로워졌음 한다.. 그런 자유가 아니라면 죽음도 불사하리라~~~
문제는 나도.. 그런 자유를 누려 본적이 없어서 그런 자유가 뭔지... 관념적으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정도는 예전보다는 낫지 않아? 당신들 뜻대로 맘대로 살고 있잖아..
당신보다 더 못한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직도 자유 타령이야~~ 한다면...
목소리가 약해질 수 밖에 없다....
아직 나도 누런 벽지의 방에 있는 것은 확실한데...
불투명해보이는 유리창에 붙인 누런 벽지인듯해서.. 바깥도 살짝 보이고... 방에 있는 나도 살짝 보이고... 그래서 자유롭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아니... 더 이상의 것에 눈을 감고 싶어하고 있는 것 같아서... 더 그러하다.
무지 무지 맘이 불편 했던 작품이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우리 방 벽지가 누렇게 변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 " 나 드디어 나왔어요." 내가 말했다. " 당신과 제니의 반대를 무릅쓰고요. 그리고 내가 벽지 대부분을 벗겨냈으니, 당신이 나를 도로 집어 넣을 수는 없어요!"
그런데 저 남자는 왜 기절해버린 거지? 그는 기절했고, 그것도 벽옆의 내 길목을 가로질러서 쓰러지는 바람에 나는 매번 그를 기어서 넘어가야만 했어!!! --- 189p




포크너는 상당히 익숙한 작가인데...
실상 작품은 처음인 것 같다. 고전이란 읽어본 듯하지만 결코 읽지 않은 것이라고 하던데.. 포크너가 나에게는 그러한 듯하다.. ㅋㅋㅋㅋㅋ
듣기만 엄청 들어본.. 심지어 헨리 제임스랑도 헷갈린... 재미있는 것은 포트너의< 내가 죽어 누워있을때>라는 작품이 집에 떡~~~~하니 있다는 사실... ㅋㅋㅋ
이게 뭐람... ㅋㅋㅋ
<에밀리에게 장미를>
허물어 지는 마지막 귀족의 딸. 기존 질서의 붕괴.
이를 거부하고 싶은 아버지. 아버지는 죽고 딸에게는 기존 질서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호모인 남자를 사랑하는 것..
그러나.. 그 마저도...
그리고 모든 것이 정지해버렸다. 에밀리의 집도 에밀리도...
모든 것을 박제화시킨 에밀리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 또한 다락방이나 노란 벽지안의 그녀들과 다를바가 없지 않을까?
이미 죽어버린 아버지에 의해서 스스로 집에 갖혀버린 그녀..
새로운 변화에 적응할 수 도 없고 할 방법도 모르고 알 필요도 없게 만들어버린 그녀를 지배하고 있는 과거의 그림자.. 집과 함께 쇠락해 가는 것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그녀..
그냥 그 남자랑 떠나버리지... 그 남자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 올게 아니라...
집은 무너졌어도 그녀는 다른 모습으로 살 수 있을 을 지도 모르는데..
물론 장소를 바꾼다고 해도 이때까지의 사고까지 바꿀 수는 없으니.. 더 불행 해졌을지도...
에밀리같이 시대와 함께 박제화되어 스스로의 목숨을 바친 사람이 한둘이 아니겠지.
변해가는 시대의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을 것이고.
변화가 두려워서 그랬을 사람도 있고..
어째든.. 스스로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그 벽을 나오지 못하는 사람은...
여자든 남자든....
어찌 생각해 보면 타인에 의해 붕괴되는 것보다는 스스로의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마지막까지 자존심도 지키고....
문득..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가 생각이 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고 말하던 그녀가......
* 살아 생전의 에밀리는 하나의 전통이자 의무이자 걱정거리였고 시장이었던 싸르트리스 대령이 그녀의 세금을 면제해준 1894년의 그날부터 마을에서 일종의 세습 채무었다. --310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