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김선지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사(戰士)의 유골이 발견되었습니다. 누구나 남성의 유골이라 생각했겠지요. 하지만 최근 DNA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 유골은 여성의 유골로 밝혀지게 됩니다. 바로 초기 철기 문명을 이끈 스키타이 유적에서 발굴된 여성 전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https://www.sciencealert.com/new-dna-analysis-reveals-an-ancient-scythian-warrior-was-a-13-year-old-girl?fbclid=IwAR0StS4t6MLAe9vBqTfrm4pedUYXpHx34hzURHSIKSyeT7QVwuHsqR8vP28)

전사하면 남성을 먼저 떠올리듯 우리는 많든 적든 고정된 성역할 혹은 편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지금에 와서는 어떤 차별주의자도 마음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던 간에 여성들의 능력이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이야기를 ‘공식적’으로 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불과 100여년 전의 영국에서는 여성이라는 성별 집단 전체적으로 금치산자로 분류되어 남성의 보호 아래에서만 경제 활동이 가능했고 모든 소득과 재산은 아버지 혹은 남편의 소유가 되었으며 계약의 주체가 될 수도 없었으며 심지어 남편에게 체벌권까지 주어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동안의 역사 역시 남성들에 의해 편찬되나 보니 역사 기술 역시 젠더 편향성을 띠고 있었습니다. 한 분야에서 여성의 이름이 역사에 단 한 줄이라도 남겨지려면 남성 동업자에 비해 월등히 뛰어날 때에만 가능했던 시대적 맥락까지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아니 거의 대부분의 분야에서 여성의 이름은 역사에서 지워지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예술이나 과학 쪽 역시 마찬가지인데 과거에 지워진 여성의 업적은 여전히 복원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김선지 著, 은행나무)”의 출간은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이라는 저자의 포부 하에 ‘편견과 차별, 억압에 맞서 싸운’ 스물 한 명의 여성 미술가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영감과 그 영감을 나타낼 수 있는 능력으로만 평가받을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과는 다르게 예술계에서의 성차별이 매우 강고하고 뿌리 깊다는 것은 지난 몇 년 간 예술계에서 쏟아진 미투 사례에서도 우리는 충격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제 1세계라고 다르지 않은 모양입니다. 책의 서문에 따르면 미술사의 명저라고 칭송 받는 H.W. 잰슨의 “서양미술사”에는 여성 화가의 이름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고 나중에서야 구색 맞추기로 끼워넣었다고 합니다. 최근에도 이러한 성차별은 여전해서 전 세계적으로 전시회 비율을 성별로 비율을 내보면 남성이 7, 여성이 3 정도라고 하니 과거 지금보다 더욱 성차별이 심했던 시대에 여성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라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런 의견에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이 책은 그러한 젠더 편향을 조금이나마 정상으로 돌리려는 시도일 것입니다.


이 책에서 소개된 여성 예술가 모두 인상 깊었지만 그 중 특히 인상 깊은 두 예술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먼저 유디트 레이스테르 (Judith Leyster, 1609~1660)입니다. 그녀는 사회 전반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황금 시대의 네덜란드에서 활동한 여성 화가입니다. 그녀는 서민들의 일상을 캔버스에 담은 풍속화가로 여성으로서 최초로 하를렘에서의 직업화가로 알려져 있으며 24세에 성 루카 길드원으로 가입할 만큼 생전에 유명한 화가였습니다. 하지만 그녀 사후 미술사에서 거의 잊혀졌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녀 작품의 독자적인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뛰어나고 훌륭한 작품은 오직 남성만이 창작할 수 있다고 하는 뿌리 깊은 성차별적 사고 때문에 그녀 작품을 남성 화가 프란츠 할스 (Frans Hals, 1582?~1666)의 것으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참 어이가 없는 일이지요. 


책에 소개된 유디트 그녀의 자화상입니다. 책에 이 작품에 대한 평가가 적혀져 있지만 그걸 고려하지 않더라도 미술에 문외한이 보더라도 그간 보아온 대가의 자화상과는 다르게 ‘셀피’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위 사진은 책에 소개된 “사냥 장면”이라는 작품인데 무려 종이 오리기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은 요아나 쿠르턴 (Joanna Koerten, 1650-1715)이라는 여성 미술가의 작품입니다. 그녀는 미술의 여러 분야에 재능을 보였지만 위 작품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녀는 특히 종이 오리기에 있어 독보적인 존재였다고 합니다. 그녀의 작품은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 영국의 윌리엄 3세 등 당시 유럽의 왕실과 귀족에서 앞다투어 구매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으며 당대 최고 화가 중 하나인 램브란트의 작품보다 비싸게 판매되었다니 그녀의 명성이 얼마나 높았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예술 분야를 독자적으로 창조해낸 그녀이지만 미술사학자들은 그저 민속 예술로만 치부하고 미술사에 기록하지 않은 것 역시 성차별적 발로였다면 과한 해석일까요? 더구나 안타까운 것은 그녀의 걸작들이 종이라는 소재의 특성 상 지금은 겨우 15 작품만 남아 있다는데다 그나마 전시실에 걸리지 못하고 수장고 속에서 수 백년 간 잠들어 있다는 점입니다. 여성인데다 회화보다 낮게 평가 받았던 공예가라는 ‘이중의 질곡’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예술을 재창조한 그녀는 진정한 예술가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외에도 미술사에 잊혀진 많은 여성들의 훌륭한 족적이 책에 많이 소개되어 있으니 직접 확인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싸우는여성들의미술사, #김선지, #은행나무, #우수출판컨텐츠, #브런치북대상, #문화충전200, #서평이벤트, #도서이벤트, #서평단




※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술가들이 사랑한 컬러의 역사 CHROMATOPIA
데이비드 콜즈 지음, 김재경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류는 약 수십만년 전부터 그림을 그려왔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스페인 알타미라와 프랑스 라스코 벽화입니다. 특히 알타미라 동굴에 그려진 벽화는 소의 특징을 잘 잡아 붉은 색이나 갈색 안료를 사용하여 매우 정교하게 그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렇듯 인류는 그 존재를 스스로 인식한 이후부터 무언가를 그려왔습니다. 인류는 사물을 근사(近似)하게 묘사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것에 맞는 색을 가진 안료를 찾아 왔을 것이라 당연스럽게도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물감을 제조하여 판매하는 것은 훨씬 후대의 일이고 그동안 화가들은 자신의 예술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스스로 물감을 만들어 자신만의 색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이번에 출간된 “예술가들이 사랑한 컬러의 역사 (데이비드 콜즈 著, 김재경 譯, 영진닷컴)”는 이러한 안료의 역사를 일반인이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저자인 데이비드 콜즈는 평생을 색과 안료를 연구한 현직 물감 제조업자로 옛날부터 지금까지 예술가들이 색을 표현했던 중요한 안료 60여 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단순한 텍스트로만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호주의 사진작가 아드리안 렌더의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데이비드 콜즈의 깊이 있는 설명을 함께 감상함으로써 직관적으로 안료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안료에 대해 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지만 그 중 의미 깊게 다가온 몇 가지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먼저 황토입니다. 황토는 인류가 사용한 최초의 안료로 사용 흔적은 무려 25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앞서 설명한 알타미라나 라스코 벽화에도 사용된 바 있는 황토는 함유된 철에 따라 노랑색, 빨강색, 갈색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고대인들은 황토를 곱게 갈아 가루로 만든 다음 물에 섞어 물감으로 사용했으며 점차 이를 개선해 불순물까지 제거하여 색의 순도를 높여 왔다고 합니다. 특히 노란 빛을 띠는 황토 (Yellow Ochres)는 불에 구워 사용할 수도 있는데 중간 불에는 주황색으로, 강한 불에는 붉은 색으로 변해서 다양한 색깔에 사용할 수도 있었다고 하는데 색을 표현하기 위해 이러한 방법을 탐구한 고대인들의 노력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호두 역시 안료의 재료로 쓰인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호두 열매의 색소와 타닌을 통해 추출한 안료는 풍부하면서도 부드러운 갈색을 띤다고 합니다. 호두 열매에서 색을 추출하는 방법으로는 온수와 냉수 추출 두가지가 있는데 온수 방식은 시간이 좀 덜 걸리는 대신 색이 다소 연하고 냉수 추출 방식은 과육이 발효되는 시간이 필요해 최소 두 달은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호두 잉크는 영구적으로 착색되고 내광성이 강해 직물의 염료로 많이 사용되었다고 하네요.



혹시 밴타 블랙이라는 물질을 기억하십니까? 밴타는 수직 정렬 나노 튜브 배열(Vertically Aligned NanoTube Arrays)의 약자로 가장 완벽한 검정을 구현하기 위해 영국 연구진이 탄소나노튜브를 활용하여 빛의 99.965%를 흡수하는 물질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간단하게 생각해도 이 검정색에 대한 많은 활용방법이 있겠지만 실제로는 어떤 예술가에 의해 반타 블랙의 사용이 자신의 예술적 목적에 독점적으로 사용하게 제한함으로써 많은 논쟁을 촉발시켰고, 이러한 독점 사용권 논쟁은 이후 가장 분홍스러운 분홍, 가장 노랑스러운 노랑, 가장 초록스러운 초록 안료의 개발을 이끌면서 흥미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어찌되었던 이 가장 완벽한 검정색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검게 보이는데 과거에는 자연 재료를 통해 색을 표현하는 안료를 만들어왔다면 현대에는 과학 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안료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렇듯 보다 완벽한 색에 대한 인류의 탐구와 추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밴타 블랙보다 빛의 흡수율을 더 높여 더 완벽한 검정을 MIT 연구진이 만들어내면서 밴타 블랙은 더 이상 가장 완벽한 검정이 아니게 되었다고 합니다.) 


굳이 미술에 대한 관심이 아니더라도 색과 안료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발전하여 왔는지에 대한 미시사 관점, 과학 기술이 안료의 개발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대한 관점 등 다양한 관점에서의 지적 호기심을 충분히 충족시켜줄 수 있어 매우 만족스러운 독서였습니다.  



#컬러의역사, #색채학, #미술사, #예술사, #예술가들이사랑한컬러의역사, #미술역사, #색채디자인, #크로마토피아, #데이비드콜즈, #아드리안렌더, #김재경,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형공장
엘리자베스 맥닐 지음, 박설영 옮김 / B612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엘리자베스 맥닐(1988~)은 어렸을 적 부모님과 함께 런던으로 휴가를 떠납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존 밀레이의 ‘오필리아’라는 작품의 아름다움에 푹 빠지게 됩니다. 그 후 그녀는 존 밀레이가 속한 라파엘 전파 형제회(Pre-Raphaelite Brotherhood, Pre-Raphaelites)라는 예술 단체에 대해 알게 되고 그들에 대한 관심을 이어갑니다. 그러다 그들이 그린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들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되고 그들의 삶과 라파엘 전파 형제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지워져 갔는지에 대해 알게 됩니다. 특히 맥닐은 ‘오필리아’의 모델이자 그림의 모델로만 머무르지 않고 그녀의 예술적 영감을 직접 표현하기 위해 그림을 배워 스스로 화가가 되고 시인이 된 엘리자베스 시달 (Elizabeth Eleanor Siddall, 1829~1862)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녀의 찬란하면서도 비극적인 인생에 매료됩니다. 

맥닐은 그녀에게 영감을 준 ‘빅터 윈드 뮤지엄 오브 큐리오시티(The Viktor Wynd Museum of Curiosities)’와 엮어 주체적인 예술인으로 살고자 했던 엘리자베스 시달의 삶을 소설적으로 복원합니다. 


그 작품이 바로 최근 국내에 소개된 ‘인형공장 (엘리자베스 맥닐 著, 박설영 譯, B612, 원제 : The Doll Factory)입니다.  

때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에 인류 역사상 가장 광대한 제국 중 하나를 건설하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명성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시대입니다. 지금은 대화재로 사라져버린 수정궁 (The Crystal Palace)의 위용은 아마도 그러한 자부심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자부심이 발하는 빛의 이면에는 ‘인간’을 전시할 만큼 기묘한 문화를 만들어내는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했습니다. 

또한 광기에 가까운 수집벽 역시 유행했는데 그런 욕구를 대표하는 사람이 바로 사일러스 리드입니다. 그의 시선에 첫사랑과 닮은 여인이 눈에 들어오고 친근하지만 낯선 그녀가 자꾸 생각납니다. 그러다 그의 관심은 점차 집착으로 바뀌어 가는데….


언니인 로즈와 함께 인형 가게에서 도자기 인형의 얼굴을 그리고는 있지만 아이리스 휘틀은 언제나 스스로의 그림을 그리고 싶어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심부름을 가던 그녀는 윌리엄 홀먼 헌트, 존 에버렛 밀레이,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등이 소속되어 있는 라파엘 전파 형제회 (Pre-Raphaelite Brotherhood)의 모델 제안을 받습니다. 그녀는 설터 부인의 인형가게에서 탈출할 기회가 찾아온 것을 깨닫게 되는데…



이 작품이 엘리자베스 맥닐의 데뷔작인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역사 스릴러 장르 소설입니다.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겠습니다.  


Ps. 책 표지에 문장 하나가 눈길을 끕니다. 바로 이 작품의 주제의식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문장이라 생각합니다. 

“Freedom is a precious thing”


Ps.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여성은 교육을 받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으며 자신의 수입이나 재산, 심지어 신체까지 아버지의 것이며 결혼 후에는 남편의 것이 되었다고 합니다. 즉, 당시 여성은 자신의 권리로 법적 존재가 될 수 없었죠. 그러므로 재산을 가질 수 없고, 소송을 제기할 수 없으며 계약의 당사자가 될 수 없고, 이혼을 제기할 수 없으며 남편으로부터 체벌을 당할 수 있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이러한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여성의 지위를 생각하고 책을 읽으면 감상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인형공장, #엘리자베스멕닐, #엘리자베스시달, #박설영, #B612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훈 작가의 신작 달 너머로 달리는 말 (파람북)”은 땅을 부쳐 먹기에 땅에 얽매인 단()과 땅에 얽매이지 않고 약탈과 목축으로 살아가는 초() 두 나라의 이야기를 다룬 판타지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김훈 작가가 처음 도전하는 판타지 소설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법과 드래곤이 나오는 전형적인 판타지물은 아닙니다. 시원의 시대에 벌어진 정주문명과 유목문명의 충돌을 상정하여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요 캐릭터들 상당 수가 신월마, 비혈마와 같은 말들인데 이들을 묘사할 때 마술적인 느낌을 물씬 주고 있어 이 작품이 판타지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시대는 인간이 말을 길들여 그 등에 올라탄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절일 만큼 오래된 시원(始原)의 시대입니다. ()은 당대에 쓰여진 단사(旦史)라는 가상의 역사서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는 문자와 기록을 금지하였기에 후대에 쓰여진 시원기(始原記)에서 이야기를 하나 하나 짜맞추어 각 나라와 사람 그리고 말의 이야기를 가상의 작가가 하나 하나 복원하여 들려줍니다.

책을 보면서 문명을 자처하는 인간의 야만적 폭력성,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근원인 타()에 대한 혐오와 공포에 구속되고 자유롭지 못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동반자이자 저항자로 설정된 이 본능적으로 달을 향해 무리 지어 달리는 신월마나 일몰을 향해 이유도 모르는 채 달려가는 비혈마가 문명을 이루지 않은 채 자연과 뒤엉켜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生命)을 표현하는 듯하였습니다.

책 뒷날개에 쓰인 문장은 전투와 같고 표현은 양보할 수 없다라는 김훈 작가의 말처럼 언어를 조탁함에 있어 대가의 풍모가 느껴지는 김훈 작가의 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내가 글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글이 나한테 다가오는 것처럼 매우 흥미롭게 읽혀 나갑니다. 예전부터 김훈 작가의 문장은 건조하리 만치 간결하면서도 칼처럼 예리한 힘이 있다는 정평이 있는 작가였고 그간의 작품에서도 충분히 그의 문장의 간결함과 힘을 느껴왔지만 이번 작품에서 그 극의를 본 느낌이었습니다.

Ps. 귀한 초판 사인본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달너머로달리는말, #김훈, #파람북, #문명과야만, #간결한힘, #인간과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소한 기원 사소한 우주 시리즈
앤 레키 지음, 신해경 옮김 / 아작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앗 갑자기 이렇게 출간하는 경우가!!!


격하게 환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