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하는 인간 - 확증편향의 시대, 인간에 대한 새롭고 오래된 대답
박규철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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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흔히 정보의 바다라고 칭합니다. 하지만 과거 인터넷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은 이제 사라지고 이제는 정보 과잉, 정보 홍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처리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정보로 인해, 사람들은 이제 정보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의 취사선택을 알고리즘에 의해 더욱 강화되고, 바야흐로 확증 편향 시대가 열렸습니다.

또한 1인 미디어에서 떠들어대는 인터넷에 떠도는 얕은 정보, 독단, 아집, 말재주로 무장한 가짜 전문가가 진짜 전문가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최고 권력자가 나서서 ‘대안적 사실 (alternative facts)’이라는 정체 불명의 말을 통해 거짓을 정당화할 뿐 아니라 안티 백서 등 반지성주의를 부추기고 있는 시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는 시대. 자신이 믿는 것만 받아들이며 그 믿음을 키워가는 시대. 가짜 전문가가 진짜 전문가를 구축(驅逐)하는 시대.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흔들어대는 시대. 사이비 과학과 사이비 역사가 득세하는 시대. 미신이 다시 창궐하는 시대.

지금 이 시대의 적나라한 민낯이 아닐까 합니다.  


 “의심하는 인간 (박규철 著, 추수밭)”을 읽었습니다. 저자는 박규철 교수입니다. 박규철 교수는 철학 박사로  전공 분야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철학이지만, 고대 회의주의가 우리에게 주는 통찰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현대적 병폐 중 하나인 확증 편향과 반지성주의에 대한 치료제로 철학적 방법론 중 하나인 회의주의 (懷疑主義, skepticism)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진리는 얻는 것이 아니라 구하는 것이라 말하며 진리를 구하기 위해서는 회의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이야기합니다. 회의주의란 어떤 종류의 지식이든 참된 지식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지 의심하고, 어떤 명제라도 그것이 참임을 확신하기에 충분한 근거가 필요하다 생각하는 철학적 방법론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회의주의자들은 삶이 주는 불안과 불행에서 벗어나는 길을 호모 두비탄스 (homo dubitans)라는 새로운 인간상에서 찾으려 했고, 이는 현대인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주장합니다. 그들의 사회 역시 충분한 탐구 없는 아집과 독단, 교만에 빠져 있었기에 탐구의 종식 이전까지 판단을 유보하는 회의주의가 사회 전체적인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 믿었다는 것이지요.


저자는 현대 한국에서 고대 그리스와 유사한 독단과 아집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정치, 경제, 종교 등 많은 사회적 영역에서 소통과 경청은 사라지고 독설과 장광설만 난무하는 독단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점차 힘을 얻고 있다고 일갈(一喝)합니다. 또한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치료하기 위해 고대 회의주의가 주는 통찰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역설(力說)합니다. 이미 고대에 그 생명이 다했다고 생각했던 고대 회의주의는 여러 시대를 통해 지혜로서 계승되고 발전되어 지금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그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 (γνῶθι σεαυτόν)’며 무지의 자각을 강조하였습니다. 독단은 무지임을 알지 못하니 빠져나올 수 없는 무지의 감옥입니다. 여기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열쇠로 저자는 회의주의적 통찰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의 이해를 위해 고대 회의주의 의미에 대해 살피고 있습니다. 그 다음, 고대 회의주의를 이끈 대표적인 철학자인 아르케실라오스, 카르네아데스, 피론, 아이네시데모스,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에 대한 설명과 함께 주요 개념, 논증 방식 등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중세와 근대에 이르기까지 회의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확증 편향 시대에 접어든 현대에서 고대 회의주의의 활용에 대한 저자의 의견까지 나아갑니다. 


 이 책, “의심하는 인간”은 스스로 독단의 감옥에 갇히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고대 회의주의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얻을 수 있는 독서가 될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의심하는인간, #박규철, #추수밭, #청림출판, #책좋사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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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 - 세계를 바꾼 다섯 가지의 위대한 서사
바츨라프 스밀 지음, 솝희 옮김 / 처음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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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전환 (바츨라프 스밀 著, 솝희 譯, 처음북스, 원제 : Grand Transitions: How the Modern World Was Made)”을 읽었습니다.


저자는 바츨라프 스밀 (Vaclav Smil, 1943~)입니다. 이 분은 에너지, 환경, 식품, 인구와 관련한 공공 정책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하는 체코 출신 캐나다 과학자이자 정책 분석가라고 합니다. 특히 세계 발달사를 다루는데 있어 통계를 수단으로 활용하는데 “숫자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 (강주헌 譯, 김영사, 원제 : Numbers Don't Lie: 71 Stories to Help Us Understand the Modern World)”에 그러한 저자의 경향이 여실히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 책, “대전환”은 전작 “숫자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에서 다룬 각종 주제를 인구, 식량, 에너지, 경제, 환경으로 압축적으로 범주화하고, 좀더 서사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는 그리고 이 다섯 가지에 있어 성장, 혁신, 진보를 이룬 것이 현대 사회를 만든 ‘대전환(Grand Transitions)’이라 정의합니다. 

각각의 범주는 오롯이 존재하지 않고 현대사회로의 전환을 이끈 다른 요소들과 상호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에 중점을 두고 전환의 진행, 발전, 보급 뿐 아니라 각 전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과 그 결과까지 살피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전환 요소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작용하면서 삶의 방식, 규범, 기대수준을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변화시키며 진일보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우리가 과거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대 진보를 이뤄냈고, 지금의 풍요를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수혜는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지구 생태계와 생물권을 위태롭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탄소 위기, 기후 위기 등을 부르짖지만 여전히 화석 연료를 기반으로 한  에너지 사용이 대부분이며 대다수의 나라는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을 엄두도 못 내고 있습니다. 


 인류는 그 동안 수많은 절멸의 위기를 건너왔다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멀리는 약 7만년 전 토바 화산 대폭발로 인해 수 천 명 수준으로 인구가 줄어들기도 하였고, 냉전 기간 동안 수 차례 핵전쟁의 위기를 넘기기도 하였습니다. 즉 저자는 우리의 진화는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 언제든지 종결될 수 있었음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놀랄 만큼 창의성을 발휘하여 대전환의 여파로 발생하는 수많은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며 지금까지 살아남았고, 여전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로 저자는 인류 문명에 대한 희망을 잃지는 않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후 위기로 인해 우리 문명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이미 COVID-19를 경험함으로써 우리의 시스템이나 과학기술은 바이러스성 감염병의 대유행을 막을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 만 년이라는 시간 동안 인류는 문명을 구축하면서, 많은 발전을 이뤄왔지만 여전히 지속 가능성이 불확실합니다. 그러므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대전환 시기를 통해 무엇을 해냈고, 앞으로 무엇을 해내야 하는지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대전환, #바츨라프스밀, #솝희, #처음북스, #책과콩나무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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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된다는 것 - 데이터, 사이보그,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의식을 탐험하다
아닐 세스 지음, 장혜인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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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된다는 것 (아닐 세스 著, 장혜인 譯, 흐름출판, 원제 : Being You: A New Science of Consciousness)”를 읽었습니다.


저자는 아닐 세스 (Anil Seth)로 다년 간 뇌 기반 신경과학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신경과학자이며, 의식과 관련한 연구가 그의 주요 연구 분야라고 합니다. 저자는 이 책, “내가 된다는 것”에서 최근 각광받는 ‘의식’에 대한 신경과학 분야의 연구성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의식 (意識, consciousness)’이란 개체가 현실에서 감각, 체험, 인식하는 모든 정신작용과 그 내용을 포함하는 일체의 경험 또는 현상을 의미하며 모든 정신활동의 기초가 되는 기능으로 나를 ‘나’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개념입니다. 

이 개념은 한동안 철학과 윤리학의 영역이었고 과학의 영역에서 이 개념을 다루는 것은 거의 금기시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의식은 과학의 영역에 편입되어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고, 또한 최근 양자역학과의 연관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등 물리학 등 분야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의식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신경과학 분야에서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최근 AI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더욱 각광 받는 분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뇌는 아주 작은 생물학적 기계인 뉴런들의 활동을 통해 의식적 경험을 만들어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바로 ‘뇌’가 만들어낸 이 경험이 ‘일인칭’으로 경험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경험은 매우 주관적입니다. 뇌가 만들어내는 이러한 의식적 경험의 특질에다 저자가 책에서 제시한 가정을 섞고, 거기에 생각을 조금 더 뻗어 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고 실험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뇌와 똑 같은 기능을 하는 기계로 뇌를 대체할 경우, 그 뇌에서 경험하는 의식이 진짜 의식인지, 아니면 정교하게 시뮬레이션된 유사 의식 (pseudo-consciousness)인지 어떻게 구분 가능할까요? 


이 질문은 상당히 SF적이지만 질문을 살짝 뒤집어 보면 매우 현실적인 질문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의식적 경험은 생애주기에 따라 크게 변화하게 되는데, 특히 신경 퇴행성 쇠퇴기 진행되는 노년기에 이르러 더욱 극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심지어 자신이 누구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단계에 접어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듯 사람의 일생 동안 일관되고 유니크하게 존재하는 ‘자기(self)’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 그리고 10년 후의 ‘나’를 동일하게 여깁니다. (자기 동일성, 自己同一性, self-identity)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불행히도 우리는 이 대답을 아직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조금씩 그 비밀을 알아내고 있습니다.  저자 역시 이러한 연구의 최첨단에 서 있는 분으로 자신과 자신이 속한 분야의 연구 성과를 이 책에서 자세히 풀어내 주고 있습니다. 






#내가된다는것, #아닐세스, #장혜인, #흐름출판, #컬처블룸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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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는 식물들 - 아직 쓸모를 발견하지 못한 꽃과 풀에 대하여
존 카디너 지음, 강유리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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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는 식물들 (존 카디너 著, 강유리 譯, 윌북, 원제 : Lives of Weeds)”을 읽었습니다.


저자인 존 카디너 (John Cardina)는 농업경제학을 전공한 학자로 현재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 재직 중인 분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식물의 침입종 (Invasive species)으로 인한 문제를 연구하고 있으며, 지속 가능한 농업, 자연 시스템의 유지 및 보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고 하네요. 


민들레. 타락사쿰 오피키날레( Taraxacum officinale )이라는 학명을 가진 이 풀은 화단을 관리하는 사람들에게 악마와 같은 풀입니다. 그렇기에 잡초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풀이 잡초가 된 시기는 비교적 늦은 19~20세기라 합니다. 깊은 뿌리를 무기로 납작하게 엎드려 살아남는데 능한 이 풀을 없애기 위해 인간들은 별의 별 수단을 다 사용하지만 별무소용 (別無所用).

단지 화단을 망친다는 심리적 이유로 잡초로 분류된 이 풀은 정말 억울할 것 같습니다. 동아시아에서는 그 쓰임새를 발견하여 약재, 대용차 등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특유의 생명력 덕분에 사람들의 인식도 괜찮은 풀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민들레, 어저귀, 기름골, 플로리다 베가위드, 망초, 비름, 돼지풀, 강아지풀 등은 인간이 그 쓰임새를 찾지 못했거나, 인간이 하고자 하는 일들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잡초로 분류되는 식물들입니다. 그래도 이들은 이름이라도 있습니다. 우리가 통칭 잡초라 일컫는 많은 식물들 역시 이름을 가진 풀도 있고 그렇지 않은 풀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하는 일을 방해하는 풀들을 우리는 잡초라 범주화합니다. 그러면서 인류는 잡초를 없애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합니다. 불 태우기도 하고, 뿌리를 뽑기도 하고, 독한 화학약품을 뿌리기도 하지요. 하지만 잡초는 그 노력의 틈바구니를 사정 없이 비집고 들어와 그렇게 번성해 나갑니다. 수 천년의 역사 속에서 잡초를 없애려는 인간의 노력은 무수히 실패하였으며 알게 모르게 잡초와 함께 해왔음을 저자는 이야기하면서 앞으로도 이러한 노력은 실패할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식물들은 비록 잡초이지만 인간과의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공진화’한 식물들입니다. 인간이 농경선택을 통해 식물의 변화를 촉발하였고, 이는 단순히 생물학적 현상 뿐 아니라 사회 문화적, 개인 심리적 현상과도 연계되어 있음을 이 책은 보여줍니다. 

모든 생명이 이름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이름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붙였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저자는 잡초는 인간의 분류일 뿐이라 단언합니다. 또한 인간은 이러한 잡초 없이 지금의 인간이 될 수 없다고도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잡초와 인류가 함께한 역사를 이 책에서 멋지게 풀어내어 그 근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잡초라 이름 짓고, 잡초를 제거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을 통해 잡초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즉, 이 책은 잡초의 역사에서 인간의 역할에 집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움받는식물들, #존카디너, #강유리, #윌북, #이북카페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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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들의 방 - 우리 내면을 완성하는 기억과 뇌과학의 세계
베로니카 오킨 지음, 김병화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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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들의 방 (베로니카 오킨 著, 김병화 譯, 알에이치코리아, 원제 : The Rag and Bone Shop: How We Make Memories and Memories Make Us )”을 읽었습니다. 


저자는 베로니카 오킨 (Veronica O'Keane)입니다.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연구하는 신경학자이자 정신건강의학자로 30년에 가까운 연구와 임상 경험을 쌓아온 학자라고 합니다. 최근 저자의 연구와 관련한 대중서적을 출간했는데 이번에 읽은 “오래된 기억들의 방”은 그 중 하나입니다. 




저자가 기억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이디스라는 환자로부터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환자의 사연이 저자가 가진 기억에 대한 이해를 무너뜨리고 다시 만들어냈다고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한 병원에서 출산 전후에 정신과 질환을 앓는 환자를 치료하고 있었는데 그 때 만난 환자 중 한 명이 바로 이디스였습니다. 건강한 아이를 출산한 후 이디스는 감정적으로 멍해졌고, 우울해지고 산만했지만 무엇 때문인지 말하지 않았던 환자였습니다. 묻는 말에도 반응하지 않고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 얼굴. 정신병의 전형적인 특징인 ‘갇힌 (locked-in)’ 태도였다고 합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은 듣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지만 그들이 느끼는 이 환각은 그들에게는 실제로 일어나는 진짜 감각 경험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감각 세계 속에 고립되고 갇히게 되는데, 이디스는 이런 비정상적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악마’라는 존재로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이디스는 카그라스 증후군을 앓고 있었습니다. 즉 자신의 아이가 누군가 (이디스는 이 존재를 악마로 이해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바꿔치기 했다는 믿음을 갖는 산후 정신병의 일종이라고 합니다. 더구나 이디스는 자신의 배우자 역시 사기꾼에 의해 대체되었으며 자신을 해치려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후 이디스의 정신병은 치료되었고, 이디스 자신이 정신병을 앓았음을 분명히 알았지만 그 때의 기억만은 진짜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이 이디스라는 환자를 치료하면서 그녀의 기억이 독자적인 유기적 실체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억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그 감정은 다시 살아낸 경험으로 현재로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억은 정적인 개념이 아니라 정보를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유지하며, 인출하는 과정 전체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기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단순한 정보의 기록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대부분의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누구인지 바로 인식합니다. 그리고 어디로 출근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바로 알게 되지요. 의식하지 못해도 우리는 ‘나’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기억하지 못한다면 ‘나’의 정체성을 인식하지 못할 것입니다. 기억은 정신을 지탱하는 기둥이자, ‘나’라는 정체성과 고유성을 인식하게 하는 기초입니다. 

 

이 책은 우리가 어떻게 기억을 만들어내고, 기억은 우리의 정체성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책의 첫머리엔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영역본 제목이 ‘지나간 것들의 기억(Remembrance of Things Past)’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In Search of Lost Time)’로 바뀐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신경학의 발전 과정에 대한 암시를 줍니다. 앞선 제목이 뇌 안의 고정된 저장고에서 기억을 수동적으로 소환해오는 것을 의미한다면, 바뀐 제목은 흘러가는 과거에 대한 능동적인 탐구를 의미한다고 말이지요. “오래된 기억들의 방”을 읽다 보면 왜 서두에서 그 이야기를 꺼냈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래된기억들의방, #베로니카오킨, #김병화, #알에이치코리아, #책과콩나무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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