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집은 입에 고인 침을 삼키며 얼굴이 일그러졌다. 군밤 냄새와 오징어 굽는 냄새는 도시의 겨울을 겨울답게 하는 낭만이었다. 그러나 점심을 굶은 자신에게 그런 문화적 효용가치는 없었다. 오로지 경제적 효용가치로 배고픔을 자극하며 자신의 신세를 비참하게 만들고 있었다. 기ㅇ - P340
배상집은 그런 자신을 바라보며 속이 쓰고도 뚫었다. 아무리 독일에서부터 스승들에게 편지를 했다 해도 귀국하자마자 대학에자리잡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었다. 그렇다고 6개월을 허송세월하고, 또 1년을 꼬박 시간강사로 떠돌며 점심까지 굶는 신세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세 군데 시간강사의 수입은 오가는차비로 길에 뿌리면 그만이었다. 그건 수입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임 자리를 얻으려면 거치지 않을 수 없는 과정이었고, 발판이었다. 그러나 그 팍팍한 기간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것이 문제였다. - P341
집에서는 자신이 점심을 굶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공부를 하느라고 집에 돈을 보내지 못해 가난했던 집안은 여전히가난에 찌들어 있었다. 미장공인 아버지는 네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느라고 남의 집들만 수없이 지었지 정작 당신은 산동네의 무허가집 신세를 면치 못했고, 이젠 노동력도 떨어져 버젓한 공사장에는 나가지 못하고 보수나 수리 같은 잡일을 하는 형편이었다. - P341
배상집은 무거운 발길을 터벅터벅 옮기기 시작했다. 대학은 꼭실력만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독일에서 실력 제일주의를 믿으며 공부에 혼신을 다했던 것은 대학의 실태를 몰랐던순진함이었다. 실력은 필요조건일 뿐이었다. 거기에 학연·지연·혈연 · 배경 · 금력 같은 것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충분조건을 이루어내고 있었다. - P342
"야 차장, 그만 태워! 사람 터져 죽는다!" "운전수, 뭘 해! 빨리 출발해. 여기 애 깔려 죽는다!" 안쪽에서 이런 고함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배상집은 새로 올라탄 사람들에게 밀리는 입장이 되어 가방 든팔을 빼내려고 낑낑대고 있었다. - P343
그때 버스가 한쪽으로 기우뚱하며 사람들이 그쪽으로 쏠리는순간 버스는 반대쪽으로 기우뚱했고, 그러자 사람들은 버스의 출렁임을 따라 반대쪽으로 휘둘리며 ‘어머머!‘, ‘어, 어 어!‘ 소리를 질러댔고, 버스가 술이라도 취한 듯 다시 기우뚱하자 사람들은 또 짐짝처럼 그쪽으로 휩쓸렸다. "야 이새끼야, 운전 똑바로 해! "야 운전수, 죽고 싶냐!" - P344
"박사가 되고서도 또 할 공부가 있냐? 공부라는 것도 그거 사람못할 짓이다." 그의 아버지는 코로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쯧쯧 혀를 찼다. "그나저나 세상 참 야속허우, 이리 공부열성으로 하는 장한 박사님을 안 모셔가다니." 그의 어머니가 한숨을 쉬었다. - P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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