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진은 큰 키에 비해 싱거운 사람이 아니었다. 맵고 차지고 단단한 사람이었다. 하대치는 염상진 같은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고있다는 사실이 더할 수 없는 기쁨이고 자랑이었다. 하대치가 오늘에 이른 것은 모두 염상진이 끼친 영향에 의한 것이었다. 두 사람이관계를 맺어온 것도 10년 세월이 넘어 있었다. 사범학교까지 나온염상진은 하대치의 여백 많은 머릿속에다가 많은 모종을 이식시켰다. 기질적으로 피의 농도가 짙고, 환경적으로 불만요인이 많고, 태생적으로 자학성이 강한 하대치는 그런 나무가 자랄 수 있는 최적의 기름진 토양이었는지 모른다. 하대치는 양질의 화선지였고, 염상진은 솜씨 탁월한 화공이었다. 화공은 유려한 선을 긋고 현란한채색을 했고, 화선지는 그 물감을 흠뻑흠뻑 빨아들였다. - P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