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모습과는 달리 그리스도교 운동의 초기에 신자들은 복음서를 온전한 경전으로 간주하지는 않았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복음서를 중요한 역사 기록으로보기는 했지만 구약과 같은 경전으로 보지는 않았습니다. 복음서를 거룩한 경전으로 여겼다면 마르키온은 루가의 복음서를 자유롭게 개정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고 루가 역시 마르코의 
복음서를 자유롭게 개정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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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y US.

All Mexicans know that before the 1846-48 war with the UnitedStates the land that is now Texas, California, New Mexico, and Arizona was part of Mexico.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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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를 넷으로 확정한 것에 대한 반발도 있었습니다.
마르키온Marcion(?~기원후 160)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는루가의 복음서만이 참된 복음서라고 주장했고 (자신이 생각하는 참된 그리스도교에 걸맞기 위해서는 불온한 부분들을 도려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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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더콜은 복음을, "죽음과 부활"을 통해 
"메시아 예수께서 죄를 속하시고 새로운 
창조세계를 가져오시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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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예나 지금이나 트라우마는 행동의 강력한 기저임이 틀림없다.

광해군은 기본적으로 그렇게 매정한 인물은 못되었다. 왜란 중에 수없이 겪었던 간난신고, 즉위하기까지 겪었던 부왕 선조와의 갈등, 유영경 등의 견제, 끝까지 발목을 잡았던 명 조정 등, 이러저러한 시련 속에서그는 더욱 예민해지고 소심해져갔다. 소심하면 우유부단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무엇인가 결단을 내리기가 어려워진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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