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비유와 대구로 이루어진 수사에 잘 설득되곤 했다.
- P150

작가로 살아서 다행인 것 중 하나는 비싼 옷을 입을 필요가없다는 것이다. 대체로 하루종일 집에 있는데다가 엄격한 드레스코드가 요구되는 곳에는 거의 갈 일이 없다. 작가에게는 옷을 입는 감각이 아니라 옷을 입지 않는 감각이 필요하다. 독자도, 동료 작가도, 옷을 멋지게 차려입은 작가를 원하지 않는다. 작가는 정신적 세계에 속한 사람들이므로 패션이라는 부박한 세계와 거리를 두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P158

책값은 패스트패션의 가장 저렴한 옷값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싸다. 지난 십 년간 우리나라의 물가는 36퍼센트가 올랐는데 책값은 불과 18.5퍼센트밖에 오르지 않았다. 실제 가치로 본다면 책값은 십 년 사이에 더 떨어진 것이다. 종잇값도 오르고 인건비도 오르는 판에 책은 왜 더 싸지는 것일까. 스위스 명품 시계 회사 사장의 인터뷰에 힌트가 있다. 당신네 회사 시계는 왜 그렇게 비싸냐고 묻는 기자에게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필요가 없으니까요."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이렇게 부연했다."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은 값이 떨어집니다. 많은 회사들이 뛰어들어 서로 경쟁하며 값싸게 생산할 방법을 결국 찾아내거든요. 저희가 만드는 시계는 사람들에게 필수품이 아님
니다. 그러니 값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 P160

사람들이 책값을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다. 과당경쟁과 적은 이윤율로 출판계가 공멸하고 사람들은 책이 없는 상황에 익숙해지고(음반이 사실상 사라진 세상에 우리는 이미 적응하고 있다), 그리하여 책이 더이상 필수품이 아니게 된다면 말이다. 그때는 선택받은 부유한 소수만이 책을 사고 읽을 것이다. 소설은 ‘리미티드 에디션‘ 같은 라벨이붙어서 한정된 독자에게만 비싼 값으로 팔릴 것이다. 필요한사람이 없으니 비싸다는 항의도 하지 않을 것이다.  - P162

나는 지루하고 쾌적한 천국보다는 흥미로운 지옥을 택할 것이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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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나쁜 책에도 한 가지쯤 장점이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세르반테스인데, "어떠한 좋은 책에도 반드시 결점이 있다."고 하는 편이 알맞을 것이다 - P126

확실히 독자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친다는 의미로, 독자보다도 훌륭한 책을 비평하려면 우선 그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전제 (前提) 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독자는 저자와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 된다. 대등자(對等者)로서의 특권을 행사하는 것은 그러고 난 다음부터이다. 여기서 충분히 비평의 수완을 발휘하지 않는 독자는 저자를 부당하게 취급한 것이 된다. 저자는 독자를 자기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려고 노력한 것이므로, 당연히 독자에게도 대화의 상대로서 대등하게 응답하여 말해주기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 P126

비평이란 언제든지 반대하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지 말기를 바란다. 찬성하는 것이나 반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독자의 비평 행위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좋은 비평이라고 할 수 없다.
- P129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을 논한 비평 같은 것은 결국  성급한 비평의 견본이다. 이 시론(詩論)의 주요한 원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다른 저작이나 심리학 · 논리학 · 형이상학 (而上學) 의 여러 논문에서 논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평가는 그것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플라톤이나 칸트나 애덤 스미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할수 있다. 그들은 모두 그 지식이나 사상을 한 권의 책에다 모조리 논할 수가 없었던 사상가들이다.
- P131

남과 의견을 달리하더라도 남을 인정할 수는 있을 것이다. - P132

이성을 잃지 않는다는 반론의 철칙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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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란 논증이 전개되어감에 따라 자연히 요약되어가는 것이다. - P119

자기의 능력 이상의, 따라서,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그러한 책과 맞붙었다면 독자는 상당히 고도의 독서기술에 도달한 것이 된다.  - P122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일종의 대화이다. - P123

좋은 책은 적극적 독서를 할 만하다. 그러나, 내용을 이해한 것만으로는 적극적 독서로서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비평의 의무를 다함으로써, 즉 판단을 내림으로써 비로소 적극적 독서는 완료된다.‘ - P125

아무런 비평적 고찰도 가하지 않고 나쁘다고 단정하는 것은 허울 좋은 칭찬의 말보다도 더욱 나쁘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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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은 2009년 10월에 하버드 대학의 노턴 강좌를맡았다. T. S. 엘리엇,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움베르트 에코등이 이 강좌를 거쳐간 선배들이다. 파묵은 첫 강의를 『안나카레니나』의 기차 장면으로 시작했다. - P125

 오스터는 "영화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말해 컬럼비아 대학교 영화학과장인 인터뷰어를 도발한다. 무슨 문제가 있냐니까, 영화는 무엇보다도, 2차원‘이라고 대답한다.
- P128

책을 읽을 때에는 단어들이 말하는 것에 대해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노력해야 하고 상상력을 동원해야한다. 그런 다음 상상력이 활짝 열리면 그때는 책 안의 세계가 우리들 자신의 인생인 듯 느끼고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냄새를 맡고, 물건들을 만져보고 복합적인 사고와 통찰력을 갖게되고 자신이 3차원의 세계에 들어와 있음을 알게 된다. (폴 오스터,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열린책들, 2001) - P128

파묵은 말한다. "꿈을 꿀 때는 그 꿈이 진짜라고생각합니다. 그게 꿈이니까요. 우리는 소설도 진짜라고 생각하며 읽습니다. 하지만 머릿속 한구석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도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모순되는 상황은 소설의 본질에서옵니다. 소설 예술은 서로 모순되는 것들을 동시에 믿을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바탕을 둡니다."(오르한 파묵, 『소설과 소설가』, 민음사, 2012) - P130

이미 영화를 본 기자들은 당신 마음 이해한다는 눈길로 다들 웃어주었다. 전주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엄마는 창녀다)의 감독이 단편 「비상구」의 아슬아슬한 부분들을 상징적으로 처리하고 지나가리라는 매우 비현실적인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 감독은 내가 상징적으로 처리했으면 하는 부분들만 골라서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원작자로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매우 괴로운 경험인데 그 원작이 「비상구」라니, 원작자가 영화를 보는 일이 괴로운 것은 그가 원작을 고칠 수(도 있었고, 어쩌면 아직까지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십수 년 전에 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내내 ‘조금 더 잘 쓸 수 있었는데‘라든가, 저 문장은 역시 뺐어야 했다‘고 자책하고 있었다.
- P135

"십수 년 후에 <엄마는 창녀다> <아버지는 개다>를 연출한 분이 「비상구」도 연출하게 될 줄을 알았더라면 아마 이렇게 적나라하게 쓰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영화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내게 말했다.
"이상우 감독 영화 중에서 이번 작품이 제일 그 수위가약한 편이에요. 그리고 이게 제일 나아요."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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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LER를 가르치는 강사가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아들이 떼를 쓰기 시작했다. 아이 어머니가 물었다. "왜 이렇게 화가 났어?" 그러자 학교에서 RULER를 배운 아이의 형이 말했다. "엄마, 제러미는 화난 게 아니라 실망한 것 같아요. 밖에 나가서 놀고 싶었는데 비가 오는 바람에 못 나갔잖아요." 부모의 입이 떡 벌어졌다. 두 사람모두 RULER에 정통한 사람들이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기술이 실제로 활용되는 장면을 보니 기분 좋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P170

흔히 저지르는 또 다른 실수는 감당하기 벅찬 감정으로 발전할 때까지 한참을 방치하는 것이다. 짜증, 긴장, 걱정을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내버려 두면 극심한 분노나 공황 상태로 발전한다. 무덤덤하거나 진이 빠진 느낌을 무시했다가는 절망이나 우울로 전이된 감정을 힘겹게 다뤄야만 한다.  - P170

평온함이나 쾌활함 - P170

아이들에게 짜증 나고 거슬린다는 감정이 뭔지, 이런 감정을 둘러박고 어떤 생각이 일어나는지 알려 주는 것 자체가 극단적인 감정 폭발과 폭력 사건을 막는 전략이다. - P171

삶을 표현하는 단어는 황홀한, 불안한, 격분한, 자족하는, 미심쩍은, 희망에 찬, 묵인하는 등 아주 많다. 유의어 사전이나 일반 사전만 있어도 단어는 충분히 찾을 수 있다. - P175

늘 사용하던 예닐곱개 단어에만 안주하면 자신을 제한하게 된다.  - P176

감정에 대해 침묵하면 고통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 P178

수치심, 시기심, 불안감 같은 감정은 좀체 표현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긍정적인 감정조차 다른 사람에게 잘 표현하지 못한다.
- P180

모두 행복하다는 거짓말을 하며 살아간다 - P181

이중적이라고 사람들을 탓해선 안 된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한다. 인간의 본성인 것이다. - P182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다.
- P184

말을 배우고 습득함에 따라 감정 욕구는 더욱 복잡해지고, 그 감정을 전달하는 법도 따라서 발전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감정을 표현하는 힘을 얻게 되면 에둘러 표현하거나 속이고 부인하는 등 감정을 숨기려는 능력과 욕망도 커진다. 이렇게 균형이 이루어진다.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이 정교해질수록 자신에 대한 통제력도 커지는 것이다. 수치심 때문에? 자기 보호를 위해? 아니면 주변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우리가 감정을 담아 두기를 바란다고 생각해서?
- P187

일방적인 감정 분출도,
억압적인 감정 노동도 모두 해롭다 - P189

습관적인 고함, 험담, 언어적 신체적 공격 등 건강하지 못한 감정 표현방식은 삶에 항상 큰 혼란을 초래한다.
- P190

성별은 감정 표현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전반적으로 감정을 잘 표현하는데 특히 긍정적인 감정표현을 많이 하며 남성에 비해 슬픔과 불안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속으로 삼키는 경향이 있다.  - P193

남성은 여성에 비해 공격성이나 분노를 높은 수준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흥분에 따른 생리적 징후인 혈압과 코르티솔 분출 수치는 남성이 훨씬 높았다. 이는 남성도 여성만큼 풍부한 감정을 느끼지만 더 많이 억누른다는 것을 시사한다.
- P194

2018년 US 오픈 결승전에서 세레나 윌리엄스(Serena Williams)는 분을 못 이겨 자신의 테니스 라켓을 부쉈다는 이유로 심판이 점수를 깎아 버리자 ‘도둑‘ 이라며 항의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과도한 항의라는 이유로 게임 페널티를 받았다. 남자 선수들은 고함을 치고 소리를 지르고 심판 이름을 불러도 게임 페널티를 받은 적이 없었다. 이 사건은 남성과 여성의 분노가 어떻게 다르게 인식되는지 보여 주는 가장 최근 사례이다.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 성별 격차에 대해 요즘 들어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남성이 단호하면 강하고 적극적이라고 보지만 여성이 단호하면 잘난 척하고 고집스럽다고 평가한다.
남성이 목소리를 높이면 모두 주목하지만 여성이 목소리를 높이면 날카롭고 히스테릭하다는 말을 듣는다.
- P195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지만 널리 퍼져 있는 성(性) 고정 관념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인식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
- P196

문화적 차이는 세계적인 규모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뉴욕과 불과 110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도 그곳만의 규칙이 있다. 월 가에서는 고위 인사들이 활짝 웃으며 힘껏 악수하는 것으로 결속을 다지고, 고상한 아이비리그에서는 다들 감정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냉정을 유지한다.
- P199

감정을 표현하면 몸도 더 건강해진다.
- P200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 제임스 페니베이커 (James Pennebaker) 교수에 따르면 비밀을 품고 있던 사람에게 실제로 병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감정이나 생각을 언어로 옮기면 대부분 건강이 회복되었다.
- P201

페니베이커 교수는 한 연구에서 학생 쉰 명을 두 그룹으로 나눴다.
한 그룹에게는 감정적으로 중요한 주제에 대해, 다른 그룹에게는 지난 나흘간 있었던 피상적인 문제에 대해 에세이를 쓰게 했다. 몇 달후 테스트를 해 보니 첫 번째 그룹은 면역 체계 기능이 향상되었고 교내 학생 건강 센터에도 거의 방문하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들은 예민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느라 정신적 고통을 느꼈다고 했지만 세 달 뒤에 다른 그룹에 비해 더 많이 행복해졌다. 페니베이커는 트라우마를 억압하면 몸이 쇠약해지지만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거나 글로쓰면 안도감을 얻을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 P202

모든 감정적 반응은 유일무이한 경험이다. 오늘 불쾌한 감정을 유발한 뭔가가 내일은 내 감정에 접근조차 못 할 수도 있다.  - P207

오늘 스타벅스에서 영원처럼 긴 시간 동안 줄을 서며 기다릴 때는 당장 계산대로 뛰어들어 바리스타의 손에서 커피를 잡아채 쏟아 버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찼다. 다음 날 바로 그 스타벅스에서 똑같이 줄을서는데 이번에는 감정 상태가 고요해 기다리는 동안 행복한 눈으로 공간과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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