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저렇게 진짜로 중병에 걸린 사람만 동정한단다. 저 펄스라는 사람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제일 많이 동정받아야 할 사람이야."
윌헬름은 아버지가 사지 멀쩡한 자신에게 경고하고 있다.
는 것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자꾸만 먹어 댔다. - P74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다른 충고들이 흘러나왔다. 만약 지금 자신의문제들과 대면하지 않는다면, 그는 문제의식을 잃어버릴위험마저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것이 더 나쁘다는 사실을 윌헬름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 P75

"너는 네 문제들을 너무 크게 만드는 경향이 있어." 애들러 박사가 말했다. "문제를 만드는 것을 필생의 사업으로 해서는 안 돼, 사소한 문제 대신 진짜 중요한 문제에신경을 쓰려무나. 예를 들어 죽을병이나 사고 같은 것에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노인의 태도는 이렇게 항변하고있는 것이다. 윌키야, 네 문제를 나한테 풀어 놓지 마라.
나를 살려 주는 셈치고.
- P79

윌헬름도 자신이 자제심을 발휘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는 징징거리는 자신의 약점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런 약점을 내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또한 아버지의 성격도 잘알고 있는 터라 그는 부드럽게 말을 시작했다. "아버지의말씀 중에 죽음과 관계된 이야기도 있었는데, 사실 무덤이편에 있는 사람들은 나이에 관계없이 모두가 죽음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떨어져 있는 셈이에요. 정확히 말해서 제어려움은 새로 생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 P79

그녀는 대학을 다시 다녀서 학위를 하나 더 따고 싶다더군요. 그렇게 되면 제 부담이 더 늘겠지만, 그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좋은 직업을 얻게 될 테고, 결국에는현명한 일이 되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여자는 예전과 똑같이 저한테서 돈을 가져가고 있습니다. 다음에 그녀는 박사가 되고 싶다고 할지도 모르죠. 게다가 그녀는 자기 집안은 여자가 오래 사는 편이라 저는 죽을 때까지 그녀에게 돈을 주고 또 줘야 할 거라는 말까지 하더군요."
- P83

"하지만 제가 말씀 드리고자 한 것은 그 여자를 만나던날부터 전 그녀의 노예로 살아왔다는 사실이에요. 노예해방선언은 흑인들에게만 해당하는 거였어요. 저 같은 남편들은 목에 쇠고랑을 차고 사는 진짜 노예랍니다. "... - P84

그는 생각의 저편에서 흘러나오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결국 인생살이란, 즉 인생의 진짜 임무란, 윌헬름처럼 특이한 짐을 짊어지고 수치심과 무력감에사로잡혀 눈물 맛을 보는 것이다. 이 유일하고도 최고로중요한 일을 행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인생을 사는 것이다.
아마도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야말로 그가 사는 목적이며,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그라는 존재의 본질을 보여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는 지구에서 실수를 저지르고,
그로 인해 고통받도록 예정되어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비록 그가 자신을 돈이나 찬양하는 펄스 씨나 아버지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라도, 그들은 활기차게 살도록 예정되어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활기차게 사는 것이소리 지르고 고함치고 애걸복걸하는 것보다 낫고, 여기저기 쑤셔 대다 큰 실수를 저질러 인생의 가시밭길에 넘어지는 것보다도 낫다. 

그렇게 애쓰다가 마침내 물밑으로 가라앉아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운수 사나운 일일까, 팔자가편해지는 일일까?
- P97

윌헬름이 입고 있던 꾸깃꾸깃해진 투명한 재질의 레인코트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커다란 체구 때문에 언제나조그맣게 보이던 그의 셔츠 단추는 한쪽이 깨져 있어서 조각난 진주빛 반달 같았고, 튀어나온 배에 난 굵고 누런 털이 그 사이로 삐져나왔다.  - P103

그는윌헬름을 보자마자, 윌헬름이 스무 번씩이나 하지 않겠다고 거절했던 일을 오랜 고민 끝에 다시 하겠노라 결심하고마는 사람임을 틀림없이 알아챘던 것이다. 은발에, 냉정하고 사무적이며 경륜이 있고 무관심하면서도 관찰력이 날카롭고, 면도를 안 했어도 세련된 그는, 심각한 걱정으로 떨고 있는 윌헬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창백하고 콧날이 길게 선 지점장의 길쭉한 얼굴 전체가 사물을 감지하는하나의 지각 단위로서 움직였다. 그래서 자연히 그의 눈이감당해야 할 몫이 줄었던 것이다.  - P103

"저도 아버지와의 갈등이 끝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분과 합의점에 도달해 본 적이 없어요. 아버지는 제가 느끼는 감정들을 못마땅해하세요, 제 감정들이 탐욕스럽다고 생각하시죠. 저는 그분을 화나게 만들고, 그분은 저를 미치게 만든답니다. 그렇지만 아마도 나이 드신분들은 모두 비슷할 거예요."
- P106

"왜냐하면 이 아버지는 자기 아내가 가족이 다 알고 지내는 남자와 이십오 년 동안이나 관계를 가져 왔다는 사실을 알아냈거든."
"이런, 세상에!" 윌헬름이 말했다. 그는 마음속으로 순전히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엉터리 거짓말!

- P108

내 말을 믿게. 나는 가격이 오르내리는 배후에 작용하는 죄의식과 공격성의 순환 작용을 연구해 왔거든. 그러니내가 거기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나.
자네 옷깃이나 똑바로 하게."

- P110

사람들을 ‘바로 지금 으로 데려와야 해.
현실 세계로, 현재 이 순간으로 말이야. 과거는 우리에게아무 소용이 없어. 미래는 불안으로 가득 차 있지. 오직현재만이 실재하는 거야, 바로 지금, 오늘을 잡아야 해."
- P114

"나는 문학, 과학, 심리학에 관련된 최고의 저서들을 읽지." 탬킨 박사가 말했다. 윌헬름은 그의 방에서 텔레비전안테나조차도 수북이 쌓인 책 더미 위에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고집스키*,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이트, W.
H. 셸던, 그리고 모든 위대한 시인들이 쓴 책들 말이야.
자네는 문외한처럼 말하는군. 자네는 이런 데다 정신을 집중해 본 적이 없잖아."
- P123

자네에게 고통과 결혼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 그런 사람들이 좀 있거든. 그들은고통과 결혼해서 꼭 부부처럼 함께 먹고 자고 하지. 그러다가 즐거움을 알게 되면 자기가 간통을 저지르고 있다고생각할 정도가 된다니까."
- P167

"손해가 심한가?" 롤런드 씨가 말했다.
윌헬름은 제법 냉정하게 말했다. "그리 대단치는 않은것 같습니다." 그는 계산한 종이쪽지를 담배꽁초와 약이들어 있는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비록 잠깐 동안은 울음이 터져 나올까 봐 걱정스럽긴 했지만, 그가 한 거짓말이 그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다. 그는 독하게 마음먹었다.
- P176

눈물이 앞을 가려 보이지 않는 윌헬름의 눈에는 꽃과 불빛이 황홀하게 뒤섞였다. 파도 소리 같은 무거운 음악이 귓가에 들려왔다. 눈물이 가져다주는 위대하고 행복한 망각으로 인해 군중들 한가운데에 자신의 몸을 숨기고 있던 그에게 음악 소리가 밀려왔다. 그는 그 음악을 듣고, 흐느낌과울음에서 헤쳐 나와 그의 가슴이 궁극적으로 요구하는 극치를 향하여, 슬픔보다도 더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어 갔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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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02-07 10: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유대인 가운데서도
솔 벨로 >>>>>> 필립 로스 ㅋㅋㅋㅋㅋ

청아 2022-02-07 10:42   좋아요 3 | URL
헉ㅋㅋㅋㅋㅋ저도 그렇게 될것 같아요! 뼛속까지 재밌어서 지금 계속 놀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활을 언제까지 계속할수 없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깨달은 터였고, 심지어 오늘은 두렵기까지 했다. 그는 이러한 일상이 이제 곧 깨어지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직 그 형체가 뚜렷이드러나진 않았지만, 윌헬름은 오래전부터 예감했던 커다란불행이 바로 코앞에 다가왔음을 느꼈다. 오늘 저녁이 되기전에 그 정체를 알게 될 것이다.
- P11

고민거리가 잔뜩 쌓여 있는데도, 윌헬름은 거의 웃음을터뜨릴 뻔했다. 아, 저 허풍선이 위선자 노인네 같으니.
아버지는 아들이 더 이상 영업 이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사도 아니고, 판매 실적도 없고, 수입이 끊기게 된 것도 벌써 몇 주 전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세상 사람들 눈에 잘 보이고 싶어 하는가. 노인네들이둘러대는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윌헬름은 생각했다.
진짜 세일즈맨은 바로 아버지라고, 그는 나를 팔고 있다. 그야말로 영업 사원이 되었어야 했는데.
- P26

윌헬름은 성공한 사람들의 냉소주의를 보면 특히 가슴이 서늘해지곤 했다. 냉소주의는 모든 사람의 일용할 양식이 되어 버린 것 같다. 빈정거림도마찬가지다. 어쩌면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 심지어는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윌헬름은 그런 것들이 정말로 무서웠다. 하루 일과가 끝난 후 유달리 피곤이 느껴질때면, 그는 냉소주의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 P31

턱의 군살도 지금보다 적었고, 눈도 훨씬 크고 맑았다. 다리는 그때도 못생겼었지만, 그래도 그는 눈에 띄는 미남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막 일생일대의 실수를 범하려 하고 있었다. 가끔 그때 일을 생각할 때면, 그는 지금도 무기가 될 만한 것이면 아무거나 집어 들어 자신에게 한 방을 날리고 싶었다.
(ㅋㅋㅋ나도 이런것들이 있다ㅠ) - P33

하지만 그가 성공하지 못한 건 분명했다. 지금 윌헬름의 눈앞에꼴쳐진 풍경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너무나 초라한 사무실, 신경쇠약에 걸린 환자처럼 자기 자랑을 떠벌리는 모습, 지나칠 정도로 자세하게 자신을 소개하는 행동 등이그를 처량해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는 하나같이 출세하고잘나가는 인물만 있는 집안의 유일한 실패작이었다. 윌헬름은 그에게 강한 동정심을 느꼈다.
- P37

그럼에도 불구하고 윌헬름은 삼 개월 동안 캘리포니아로떠나는 것을 지체했다. 그는 가족의 축복을 받으면서 배우생활을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코 그런 축복을 받지못했다. 그는 부모님과 누이와 다투었다. 그러다가 캘리포니아로 가려는 일이 위험한 시도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되었을 때, 그리고 그곳으로 떠나서는 안 될 이유가 백여개나 있음을 뻔히 알게 되었을 때, 또 불안감으로 병이 날지경이 되었을 때, 그때가 되어서야 그는 집을 떠났다. 
(맙소사) - P41

이일은 윌헬름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전형적인 사건이었다. 그는 행동을 취하기 전까지 많이 생각하고 망설이고또 다시 한 번 숙고하지만, 결국 어떤 식으로든 행동해야할 시기가 닥치면 하지 않기로 수없이 마음먹었던 바로 그길을 선택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생애에서 열 번이나이런 결정을 내렸다. 그는 할리우드행이 큰 잘못이라는 결론을 내리고도 그곳으로 갔다. 그는 자기 부인과 결혼하지않기로 결심하고도 도망까지 가서 결혼했다.  - P41

돌이켜 생각해 볼 때 그가 좋은 추억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과연 있던가? 거의,
정말 거의 없다. 남을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 제일 먼저자신을 용서한 다음에, 일반적으로 다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라. 그의 잘못으로 인해 그 자신이 아버지보다 훨씬 더고통받지 않았던가?
- P46

그들은 얼굴을 마주 보고 서서, 각자의 방식으로 무언중에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있었다. 뭔가 끝장이 나기 시작했다니까요. 끝장은 무슨 끝장, 그건 아니지.
- P50

그는 자신의 아버지와 대화할 때면 자기 통제력을 쉽게 잃었다. 애들러 박사와 대화를 나누고 나면 그는대개 불만족스러웠다. 그런 느낌은 가족 문제로 토의할 때 가장 심했다. 겉으로는 아버지로 하여금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을 기억해 내도록 도와주는 체했지만, 실제로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버지는어머니가 돌아가시자마자 해방되셨죠. 어머니를 잊고 싶었던 거예요. 캐서린도 저도 떼 내고 싶으셨겠죠. 아무도 못속이십니다." 윌헬름은 그의 속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일절 모른 체했다. 결국 그는 계속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끙끙거렸지만, 반대로 아버지는 전혀 동요되지 않는듯했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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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2-06 22: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보지는 않았는데, 작가 이름은 들어본 것 같아서 찾아보니, 노벨상 수상작가네요.
70년대 정도 될 것 같았는데, 50년대 발표한 작품인 걸 알고 조금 놀랐어요.
최근에 번역된 책이라서 그런지 오래된 느낌은 적네요.
미미님, 주말 잘 보내셨나요.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밤 되세요.^^

청아 2022-02-06 22:26   좋아요 3 | URL
노벨상 수상작가였군요! 워낙 많은 작품을 남겨서 하나하나 읽어볼 기대에 부풀어 있어요. 서니데이님도 좋은 밤 되세요^^♡
 



바라본다는 것은 한순간 그 대상을 향한, 그 대상에대한 호기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불행에 빠지는 행위이다. 누군가를 바라본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그 시선에 합당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P69



마음에 꽂히는 문장들이 너무 많았다. 프랑스의 식민지당시 베트남의 사덱과 메콩강을 오가는 이 작품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짧지만 강렬한 137페이지로 공쿠르상을 수상했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현실에서 15세 소녀와 성인남자의 사랑을 이들의 사랑을 읽듯 바라보긴 쉽지 않을 것 같다. 작품 안에서도 여러 시선들의 따가운 눈총과 질타가 이어진다. 그럼에도 소녀가 중국인 남자에게 빠져든 것은 어머니로부터의 도피,도발의 측면이 강하게 작용한다. 처음에는 분명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내 생(生)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하지않는다. 거기에는 중심이 없다. 길도 없고, 경계선도 없다. 광활한 장소가 있으면 사람들은 누군가가 그곳에 있으려니 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 P14



개인적으로 제인 마치의 영화를 좋아했기에 영화로 먼저 '연인'을 경험했었다. 이제 책으로 읽어내니 영화 '연인'에서 제인마치의 캐스팅은 '신의 한 수'나 다름 없었다는 걸 알았다. 그녀의 미숙하지만 강렬한 욕망과 그 안에 깃든 고요한 슬픔을 제인마치가 무척이나 잘 살려냈다. 



하늘에서는 순수하고 투명한 폭포처럼, 침묵과 부동의 물기둥처럼 빛이 쏟아져 내렸다. 대기는 푸르고, 손에 잡힐 듯했다. 푸른빛, 하늘은 그 반짝이는 빛으로 끊임없이 맥박 치고 있었다. 밤이 모든 것을 비추고 있었고, 눈이 닿는 곳까지 강의 양쪽으로 펼쳐진 들판을 온통 비추고 있었다. 밤은 하루하루 새로웠다. 매 순간마다 새로운 밤이라고 할수 있을 정도였다. 밤의 소리는 들개들의 소리였다. 그들은 신비를 향해 짖어 대고 있었다. 그들은 밤이 만들어 낸공간과 시간이 완전히 소멸될 때까지.-P98


문장을 읽어가다보면 나의 소녀시절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간다. 그 시절에는 각자가 자신만의 세계가 부실하게나마 형성되기 시작한다. 나를 둘러싼 인생들로부터의 이해와 불이해가 공존하고 세상은 너무 두려운 동시에 내 안에서 엇비슷한 가능성이 꿈틀댐을 느낄때도 있다. 프랑스인 백인 소녀가 이국의 땅에서 다른 인종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매일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그 나이의 불안에 겹쳐 적지않은 혼란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가난한 엄마는 홀로 남매들을 키우느라, 혹은 그로인해 드러난 잠재된 기질로 인해 어딘가 '미쳐' 있다. 그런 엄마로 부터 가장 큰 기대를 받는 큰 오빠는 망나니로 돈을 벌지 못할 뿐 아니라 재산을 조금씩 탕진한다. 작은 오빠는 큰 오빠의 기에 눌려 살아간다. 그런 상황에 소녀는 엄마가 사준 중절모와 구두를 신고 외출한다. 그리고 운명처럼 그 남자를 만난다.


그때 나는 보았을 것이다. 남성용 모자 밑에서, 볼품없이 야윈 얼굴이, 어린 마음에 결점처럼 여겨지던 그 모습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야윈 얼굴이 자연의 숙명적이고 잔인한 현상을 받아들이는자세를 떨치고 그와는 전혀 반대로 된 것을, 다시 말해, 기질(氣質)이 선택한 어느 달라진 모습이 된 것을, 불현듯,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불현듯, 나는 마치 다른 여자를보듯이 나 자신을 보았다. 그 여자는 밖에서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내맡기고, 모든 시선에 자신을 드러내고, 도시와 도시를, 길과 길을 싸돌아다니며 자신을 굴리는, 욕망에 자신을 맡기는 여자 같았다. 나는 그 모자를 샀고, 그후로 줄곧 쓰고 다녔다. 나는 그 모자, 나를 온통 사로잡은 그것을 내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 P20



뒤라스의 문체는 참 독특하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껏 읽어왔던 어떤 작가와도 비교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서술방식은 기억을 따라 저쪽으로 갔다가 다시 이쪽에와서 마무리 짓는 식이다. 하지만 읽다보면 적응이 되어 그녀의 방식대로 잘 따라가며 빠져든다. 이 자전적 이야기를 읽으며 느꼈다. 조금 잔인할 수 있겠지만 재능있는 작가에게 슬픈 경험과 고독은 은총일 수 있겠다고. 다만 그 과정에 작가는 으스러지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글로 써 내야 완성된다. 이렇게 아름답게 활자화된 기억이.



그는 잠깐 뜸을 들인후 이렇게 말했다. 그의 사랑은 예전과 똑같다고, 그는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으며, 결코 이 사랑을 멈출 수 없을 거라고, 죽는 순간까지 그녀만을 사랑할 거라고.- P137



















다른 작품들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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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2-06 14: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정말 문장이 매력적이네요~♡
뒤라스 한 권도 안 읽어봤는데 연인으로 시작해봐야 겠습니다.ㅎ

청아 2022-02-06 15:02   좋아요 4 | URL
어느 순간부터 손에서 거의 놓질 못했어요~♡ 슬픔가운데에 명문장을 이곳저곳 쏟아냅니다. 그녀 말따라 ‘투명한 폭포‘처럼요ㅎㅎ

독서괭 2022-02-06 15: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연인> 사놓기만 했는데.. 올해는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어떤 작가와도 비교하기 어려운 문체라 평하시니 더 궁금하네요!

청아 2022-02-06 15:44   좋아요 3 | URL
마침 제가 읽은 작가중에 비교대상이 없었을 수도 있어요.^^; 초반에 조금 의아했는데 읽다보니 매력있었습니다~♡ 괭님은 어떠실지 궁금해요!

페넬로페 2022-02-06 15: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로만 접했는데 뒤라스의 문장으로도 읽고 싶었어요^^
본문에 있는지 모른겠는데 영화의 끝장면은 중국인 남자가 프랑스에 올 기회가 있어 나이든 나에게 전화하는 거였는데 그것 보고 눈물이 나더라고요~~
뒤라스의 문장은 매력있어요^^

청아 2022-02-06 16:09   좋아요 3 | URL
네!ㅎㅎ책에도 오랜 시간 뒤 그 사람이 전화해요. 저도 눈물났어요! 영화도 다시 보려고요~♡ 곱씹어 읽고싶은 매력적인 문장이죠^^*

새파랑 2022-02-06 16: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영화도 보셨군요~! 전 안봤는데 책을 읽고 나서 한번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전 뒤라스의 책을 네권 읽었는데 <연인>이 가장 좋더라구요 ㅋ <히로시마>랑 <여름비>는 좀 많이 어려웠습니다 😅 미미님의 소녀시절이 궁금하네요~!!

청아 2022-02-06 16:31   좋아요 3 | URL
새파랑님 영화 잘 안보셔도 이 영화는 한번 보시면 반하실지도 몰라요ㅎㅎ
네 권이나 읽으셨군요! 저도 두 권정도 가지고 있는데 어렵다니 감안하고 읽어야겠어요! 저 생긴건 청순but말괄량이였어요 히히 😎

햇살과함께 2022-02-06 17: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는 고등학교 때 반 친구가 부모님이 이 영화 비디오 빌려 보셨는데 주말에 집에 안계시다고 해서 토요일 방과 후에 그 친구네 집에 7-8명이 우르르 몰려가서 본 기억이~ 친구네 거실에서 암막커튼 치고 숨죽여 본 영화네요. 금지된 것을 몰래하는 짜릿함과 함께 저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영화입니다 ㅎㅎ 나중에 읽은 책도 넘 좋았구요~

청아 2022-02-06 18:00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그러실만해요!! 저도 그런기대를 하고 봤는데 생각보다는 야하지 않아 아쉬?웠어요😆 그래도 분위기가 강렬하긴하죠! 책 읽어보니 영화도 더 좋아집니다!!

햇살과함께 2022-02-06 18:50   좋아요 2 | URL
ㅋㅋㅋ 지금 보면 이게 왜 청불?

프레이야 2022-02-06 18: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섯 권이 겹치네요. 연인의 제인 마치는 정말 매혹적이지요. 가엾기도 하구요. 모데라토 칸타빌레와 히로시마 내사랑도 영화 좋습니다.^^

청아 2022-02-06 19:09   좋아요 2 | URL
제인 마치 완벽한 캐스팅같아요!! 여자인 제가 보기에도 넘 매혹적이예요~♡ 최근 사진을 찾아봤는데 여전히 곱더라구요. 오~! 영화 다 찾아봐야겠어요😄

레삭매냐 2022-02-06 2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보겠다고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결국 못 읽고 반납
한 기억이...

영화 스틸컷은 정말 고혹적
이네요. 영화로도 한 번 보
고 싶네요.

청아 2022-02-06 20:23   좋아요 1 | URL
그럼 레삭매냐님도 영화에 먼저 도전해 보세요. 책 읽으며 떠올릴 이미지가 있어 도움이 꽤 되었어요^^*

저도 차일피일 미루다 이번에 읽었거든요. 서술형식이 좀 독특한데 이해되는순간 흥미롭게 읽힙니다. 해설에 담긴 내용들까지도 좋았어요!

가필드 2022-02-06 2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봤던 영화였는데 책은 아직 안 읽어봤아요 미미님의 글과 주옥같은 문장들을 공유해주시니 읽어싶어여

청아 2022-02-06 21:52   좋아요 2 | URL
저도 영화를 본 상태로 읽었는데 문장들이 참 좋더라구요. 조금 난해한 느낌은 있어요. 나에 대해 이야기하다 엄마에 대해 서술하는 식이라 헷갈리기도 해요. 어머니와 가족들의 무게로 소녀가 힘겨워했는데 혼란스럽던 감정이 글에 고스란히 담겨있어요^^*

책읽는나무 2022-02-06 21: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연인이 뒤라스의 작품이었군요?
전 영화만 봤었어요. 고등때 연인 영화가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닌가? 암튼 비디오로 나왔을 때 친구들 집에 불러모아 놓고 짠~하고 틀어서 보다가 그 베드씬 부분에서 다들 침을 꼴깍 삼켰던 기억이 떠오르네요ㅋㅋㅋ
그래서 전 그 영화가 살짝 에로물로 기억했다가 작년에 넷플에서 다시 봤는데 많이 슬픈 영화였단 걸 알았어요^^
책으로 다시 한 번 읽어봐야 겠네요!!
제인 마치의 눈빛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네요^^

청아 2022-02-06 21:58   좋아요 3 | URL
나무님도 그렇게 보셨군요!ㅋㅋㅋ도대체 야한영화볼때 침은 왜나오는걸까요ㅋㅋㅋㅋㅋ 저도 영화만 봤을때 제인 마치에 반했었는데요 책을 읽고보니 다시 영화를 보면 이미지 넘어 깊은 감정선이 더 와닿을듯해 기대가돼요
책도 굉장히 얇아요 나무님 초반 난해한 글의 느낌에 적응하심 쑥~읽힙니다.^^*

햇살과함께 2022-02-07 09:52   좋아요 3 | URL
나무님도 저처럼 고딩 때 친구들이랑 보셨군요~ 그 당시 이 영화 소문이 엄청났죠~ ㅎㅎ

책읽는나무 2022-02-07 10:14   좋아요 3 | URL
전 제목만 보고 로맨스 영화인 줄 알고..^^
제인 마치가 꼭 빨강머리 앤처럼 보여서 모자 쓰고, 양갈래 머리에~^^
기대하고 친구들을 불러 모았었는데....쩝~
서로 민망해서 다 못보고 껐죠!!
대학 들어가 어떡하다가 나 친구들이랑 연인 영화 봤다니까 남자애들이 에로 영화 봤다고 엄청 놀리더라구요. 그래서 전 그 영화가 그런 줄 알았었네요ㅋㅋㅋ
남자들 세계에선 그런 영화로 인식되어 있나 봐요?

Yeagene 2022-02-06 22: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책이랑 영화 다 보긴 했는데 책은 정말 기억이 거의 나질 않네요^^;;; 미미님 좋다고 하시니 다시 읽어볼까 봐요♡

청아 2022-02-06 23:26   좋아요 2 | URL
예진님~♡ 재독은 너무너무 멋진 일입니다^^* 저도 나중에 꼭 다시 읽고싶어서 소장용으로 분류해두었어요.

잘못 알려드렸어요! 노벨상은 다른 작가예요😅

mini74 2022-02-07 15: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양가휘의 부잣집 도련님 모습이 느글했고 제인 마치의 그 가난한 ? 패션이 넘 멋져보였던 ㅎㅎ 저도 영화로 먼저 보고 책으로 읽은 ㅠㅠ 근데 기억이 가물가물해요.저희때 연인 포스터 엄청 많이 팔았던 기억도 납니다. 작가님 참 힘든 삶을 산 거 같아요 그게 작품의 원동력이 되었지만요 ㅠㅠ

청아 2022-02-07 15:26   좋아요 2 | URL
양가휘 느끼하죠ㅋㅋㅋㅋ그래도 소설을 읽어보니 배역에 잘 어울리는 것 같더라고요ㅋ <연인> 포스터 많이들 샀던걸로 기억해요! 저희 학교앞에도 영화 포스터 코팅해서 잔뜩 팔았거든요. 해설에서 개인사 읽고 슬펐어요ㅠㅠ 그럼에도 다작을하고 이렇게 토하듯 글로 쏟아내다니 대단합니다~♡♡
 

내 생(生)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하지않는다. 거기에는 중심이 없다. 길도 없고, 경계선도 없다. 광활한 장소가 있으면 사람들은 누군가가 그곳에 있으려니 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 P14

글을 쓴다는 것이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길 때가 자주 있다. 때때로 이런 생각이 든다. 마구 뒤섞인 일들을 모두 내가 강한 자의식을 가지고 한 것도, 그렇다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내버려 둔 것도 아닌이런 시기에 글을 쓴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또한뒤섞인 일들이 모두 매번 그 본질을 규명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일에 흡수되어 버리는 이런 시기에 글을 쓴다는 것은자기 과시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러나 대부분의경우 나에겐 뚜렷한 주장이 없다. 모든 곳이 개방되어 있고, 더 이상 가로막는 벽도 없으며, 작품은 어디에 숨어야할지, 또는 어디로 끌려나가 읽혀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나는 그것의 본질적인 무례함이 더 이상 존중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 뿐이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해 나는 더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 P15

지금 나는 알고 있다. 아주 어린 나이에, 열여덟 살이던가 열다섯 살 때부터, 내 얼굴은 이미 중년이 되면 알코올때문에 형편없이 이지러질 전조를 보이고 있었다. 알코올에는 신(神)이 갖고 있지 않은 기능이 있었다. 자살을 하게하는, 혹은 살인을 하게 하는 기능이 있었다. 나는 알코올을 입에 대기 전부터 알코올의 그런 속성을 짐작했다. 알코올 자체는 그 사실을 확인해 준 것뿐이다.  - P15

누가 그것에 대해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날 강을 건넌 일, 그 사건이내 생애에서 가질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었더라면 그 영상을 찍어 둘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사건이 일어나는 중에도나는 그 존재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오직 신(神)만이알았으리라. 그렇기 때문에 그 영상은, 물론 달리 어쩔 도리도 없었겠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생략되었고 잊혔다. 흐려진 것이 아니라 숫제 제거되어 버린 것이다. 바로 그 부재(不在)를 통해 그 영상은 고유한 힘을 지니게 되었다. 그 어떤 절대를 표현할 수 있는 힘, 요컨대 절대의창조자와도 같은 힘을 지니게 된 것이다.
- P17

나는 버스에서 내려 뱃전으로 갔다. 그리고 강을 바라보았다. 이따금 어머니는 나에게 메콩 강과 그 지류만큼 아름답고, 유유하고, 야성적인 강은 아마 내 평생 다시 못볼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대양(大洋)을 향해서 흘러 내려가는 강과 지류들, 대양의 심연 속으로 그 끝이 빨려 들어가는 늪지대들, 멀리서 보기엔 유유한 것 같지만 메콩 강은 급류여서 마치 수평선 끝에서 지구가 기울어진 듯이 쏟아져 내려간다.
- P18

그때 나는 보았을 것이다. 남성용 모자 밑에서, 볼품없이 야윈 얼굴이, 어린 마음에 결점처럼 여겨지던 그 모습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야윈 얼굴이 자연의 숙명적이고 잔인한 현상을 받아들이는자세를 떨치고 그와는 전혀 반대로 된 것을, 다시 말해,
기질(氣質)이 선택한 어느 달라진 모습이 된 것을, 불현듯,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불현듯, 나는 마치 다른 여자를보듯이 나 자신을 보았다. 그 여자는 밖에서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내맡기고, 모든 시선에 자신을 드러내고, 도시와 도시를, 길과 길을 싸돌아다니며 자신을 굴리는, 욕망에 자신을 맡기는 여자 같았다. 나는 그 모자를 샀고, 그후로 줄곧 쓰고 다녔다. 나는 그 모자, 나를 온통 사로잡은 그것을 내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 P20

나는 그에게 오만한 미소가, 다소 비웃는 듯한 미소가 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젊은 방랑자의 지친 이미지를 자신에게 부여하고싶었던 모양이다. 그 애는 남에게 헐벗고 야윈 젊은이의모습으로 보이고 싶어 한다. 그 모습은, 물론 사진을 찍어놓지는 않았지만, 그때 나룻배 위에 있던 소녀의 모습과아주 흡사하다.
- P21

삶에 대한 암담한 절망, 어머니는 날마다 그 절망에 시달리며 지냈다. 절망은 때로는 오래 지속되기도 하고, 때로는 하룻밤 지나면 사라지기도 했다. 나는 그 절망에 완전히 절망해 버린 어머니를 지켜볼 수 있는 행운을 지녔다. 그 절망은 너무나 순수해 인생의 행복조차도, 이따금 그 행복이아무리 강렬한 것이었을지라도 그 절망을 완전히 해소할수 없었다.  - P22

나는 이미 깨닫고 있었다. 나는 특별한 것을 알고 있었다. 여인을 아름다워 보이게 하는 것은, 화장술도, 값비싼향유도, 희귀한 보석도, 고가의 장신구도 아니라는 것을알고 있었다. 나는 문제가 다른 것에 있음을 알았지만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는 몰랐다. 다만 그것이 여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만 알았을 뿐이었다.  - P26

욕망을 외부에서 끌어 오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욕망은그것을 충동질한 여자의 몸 안에 있다. 그게 아니라면 욕망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첫눈에 벌써 욕망이 솟아나든지 아니면 결코 욕망이란 존재하지 않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성욕과 직결된 즉각적인 지성이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나는 ‘경험을 하기 이전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 P28

모든 것이 거기에 있고 아직 아무 일도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이 내 눈 안에 들어온다. 모든 것이내 눈 안에 들어온다. 나는 글을 쓰고 싶다.  - P29

펠트 모자를 쓴 소녀가 강물의 레몬 빛을 온몸으로 받은채, 난간에 팔꿈치를 괴고 나룻배의 갑판 위에 홀로 서 있다. 남성용 모자가 그 장면을 온통 장밋빛으로 물들이고있다. 그것이 유일한 색깔이다. 안개가 뿌옇게 서린 강 위의 태양, 그 태양의 열기 속에 강기슭은 지워져 보이지 않는다. 강은 수평선과 맞닿아 버린 것처럼 보인다. 강은 유유히 흐른다. 어떤 소리도 내지 않는다. - P29

 모든 것이 태평양을향해 간다. 어떤 것도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모든 것이 강속에 깃든 심오하고 현기증 나는 물살에 실려 갈 뿐이다.
모든 것은 강이 지닌 힘의 표면에 매달려 있을 뿐이다.
- P30

프랑스어 과목 일등, 담임이 그녀에게 말했다. 부인, 부인의 따님이 프랑스어 과목에서 일등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안 했다. 한마디도, 전혀 만족한 기색이 아니었다. 프랑스어 과목에서 일등을 한 것이.
아들들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듣기가 싫어서 어머니는 이렇게 물었다. 언제 수학에서도 그럴 때가 올까요? 담임의대답, 아직 그렇게는 못 되지만 그럴 때가 오겠지요. 어머니가 물었다. 그때가 언제일까요? 담임의 대답, 따님이 수학 일등을 원할 때겠지요. 부인 - P31

어머니도, 오빠들도, 추억을 더듬어 보기에도 너무 늦었다. 이제 나는 더이상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예전에 그들을 사랑했는지어쨌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들에게서 떠나 버렸다. 이제내 기억 속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들의살 냄새도, 그들의 눈빛도, 목소리도, 다만 이따금씩, 제녁이면 피로에 지친 부드러운 목소리가 문득 떠오를 뿐이다. 웃음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웃음소리도, 고함지르는 소리도, 다 끝났다. 더 이상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나는 어머니에 대해 이렇게 힘들이지 않고 쓸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길게, 이렇게 장황하게, 그녀는 술술 풀리는 글이 되었다.
- P38

 나는 어떻게 해서 내가 그처럼 어머니가 금했던 행동을 할 용기를 갖게 되었는지 자문해 본다.
이렇게 담담히, 이렇게 분명한 태도로, 어떻게 나는 ‘이성의 밑바닥 까지 치닫기에 이르렀을까.
- P50

그 광대한 바다가 모였다가 멀어지고 다시 가까워지는것 같다.
- P55

그는 미소를 짓는다. 그가 말한다. "서로 사랑을 하든 사랑을 하지 않든, 항상 비참해, 이제 곧 밤이 될 텐데, 밤이 오면 그런 감정은 사라질 거야."  - P56

내가 아주 꼬마였을 때 찍은 사진에서도나는 그런 슬픔을 알아볼 수 있다. 오늘의 이 슬픔도 내가항상 지니고 있던 것과 같은 것임을 느꼈기 때문에, 너무나도 나와 닮아 있기 때문에 나는 슬픔이 바로 내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나는 그에게 말한다.  - P57

거리에는 살아 있는 물결처럼 혼잡함이 모든 방향으로서서히 이동하고 있다. 중국인 무리는 쫓겨나 방황하는 개들처럼 지저분하고 거지들처럼 맹목적이다. 이제는 풍요로운 그들의 모습 속에서도 나는 당시의 이미지를 문득 다시보곤 한다. 결코 서두르는 기색이 없이 한데 섞여 걷고 있던 그들. 아무런 행복도, 슬픔도, 호기심도 없이 혼잡한무리 속에서 각자 홀로 있는 것 같은 표정들, 어딘가 가고있는 것 같지도 않고, 갈 계획도 없어 보이면서 다만 어슬렁거리기 위해 걷고 있는 것 같은 그들, 혼자인 동시에 무리에 끼어 있고, 항상 모여 있으면서 절대로 홀로 떨어져있지 않고, 그러면서도 늘 무리 속에서 고립된 존재들로있는 그들.
- P59

나는 그에게 말한다. 나 역시밖에 있는 회랑에서 생활하기를 더 좋아했을 것이라고,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는 밖에서 잔다는 것이 일종의 꿈처럼여겨졌었다고, 갑자기 고통이 느껴진다. 아주 경미한 것이다. 그것은 그가 나에게 입힌 생생하고 신선한 상처에서느껴지는, 빗나간 심장의 고동이다. 지금 나에게 말하고있는 이 사람, 오늘 오후 내게 즐거움을 안겨 주었던 이사람이 나에게 입힌 상처.  - P61

바라본다는 것은 한순간 그 대상을 향한, 그 대상에대한 호기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불행에 빠지는 행위이다. 누군가를 바라본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그 시선에 합당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 P69

나는 낮에 대해서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햇빛이 모든색깔을 퇴색시키며 짓누른다. 밤에 대해서는 잘 기억한다.
밤의 푸른빛은 하늘이 더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하늘은 세상의 본질을 덮고 있는 모든 불투명함의 제편에, 그 너머에 있었다. 나에게 하늘은 밤의 푸른빛을 가로지르는 순수한 광채와 모든 색깔을 초월한, 차갑게 녹아드는 빛을 떠오르게 한다.  - P98

하늘에서는 순수하고 투명한 폭포처럼, 침묵과 부동의 물기둥처럼 빛이 쏟아져 내렸다. 대기는 푸르고, 손에 잡힐 듯했다. 푸른빛, 하늘은 그 반짝이는 빛으로 끊임없이 맥박 치고 있었다. 밤이 모든 것을 비추고 있었고, 눈이 닿는 곳까지 강의 양쪽으로 펼쳐진 들판을 온통 비추고 있었다.
밤은 하루하루 새로웠다. 매 순간마다 새로운 밤이라고 할수 있을 정도였다. 밤의 소리는 들개들의 소리였다. 그들은 신비를 향해 짖어 대고 있었다. 그들은 밤이 만들어 낸공간과 시간이 완전히 소멸될 때까지. - P98

어머니는 그 사진들을 논리 정연하게, 합리적으로 보여 준다. 이종 사촌들에게 자기 자식들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럴 의무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다. 그녀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사촌들밖에 없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들에게 가족사진을 보여 준다. 이런 삶의 모습에서 이 여인에 대해 무엇인가 알 것 같지 않은가? 어떤 일에서도 끝까지 버텨 내는 기질 말이다. 그녀는 어떤 것도 그냥 내버려 두는 일이 없다. 사촌들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고통이나 고역에 대해서 마저도 포기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한다.
맞다. 내가 그녀에게서 깊은 매력을 발견하는 건 그녀의이런 무모한 용기에서였다.
- P114

불멸성은 유한한 것이고, 불멸성도 죽을 수 있으며, 그리고 그런 사건이 일어났고,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가르쳐 주어야 한다. 불멸성은, 결코, 불멸성으로서 눈에띄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절대적인 이원성이다. 그것은세부적인 것에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근원 속에서만 존재한다. 어떤 사람들은 불멸성의 존재를 품을 수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그렇게 하는 줄을 모르고 있다는 조건에서 이다.  - P124

여인들이 생각하는 여행이란바로 이 선상의 사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부분의 여자들에게는, 때로는 몇몇 남자들에게도, 식민지로 가는 여행은 진정한 모험을 해 볼 수 있는 유혹이었던 것이다. 어머니에게 이러한 여행은 우리의 어린 시절과 더불어 그녀가 ‘내 인생의 최고의 순간‘ 이라고 부르는 순간들이었다.
- P128

항구 쪽 하늘은 어두워졌다. 예인선이 배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더니 배를 강의 중간 지점까지 끌어냈다. 그러고는 밧줄을 풀고 항구 쪽으로 되돌아갔다. 그러자 배가또 한 번 작별 인사를 했고, 또다시 끔찍한 신음 소리를토해 냈다. 그 소리는 너무나 신비스러우면서도 구슬퍼서사람들을 울렸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서로헤어지는 사람들, 구경 왔던 사람들, 또 거기에 특별한 이유 없이 왔던 사람들, 생각나는 이가 없는 사람들까지도슬프게 만들었다.  - P130

그녀는 불현듯 예전에 자신이 콜랑의 남자에 대해 가졌던 감정이 스스로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이런 종류의 사랑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음을 알았다.
이제 그는 모래 속에 스며든 물처럼 이야기 속으로 사라져버렸고, 이제야, 쇼팽의 음악이 큰 소리로 퍼지는 지금 이순간이 되어서야 겨우 다시 기억해 냈기 때문이다.

- P134

그는 잠깐 뜸을 들인후 이렇게 말했다. 그의 사랑은 예전과 똑같다고, 그는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으며, 결코 이 사랑을 멈출 수 없을 거라고, 죽는 순간까지 그녀만을 사랑할 거라고.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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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는 이런 질문을 던져요. 분명히남녀는 주체와 타자의 관계인데 여자는 왜 한 번도 저항을 안 하지?‘ 신기하다는 거예요. 다른 모든 곳에서는 주체와 타자의 관계면 자기를 주체로 세우고 외부를 타자로 세우고, 이쪽이 주체면저쪽을 타자로 세우는 쟁투관계라는 게 성립이 되는데 여성은 그렇지 않았던 거예요. 한 번도 투쟁적이었던 적이 없다는 거죠. 그래서 이런 예시들이 나와요. 프롤레타리아도, 흑인도 각각 ‘우리‘
라고 스스로를 모은다는 거죠. 그러면서 프롤레타리아는 부르주아를, 흑인들은 백인들을 타자로 만든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자들은 ‘우리‘라고 하지 않는다는 거죠.
- P128

"여자들은 타자와 대결해서 싸울 수 있도록 자신들을 하나로 뭉치게 할 현실적인 수단이 없었계다". 흑인들이 그들 외부의 백인들을 타자로 이야기할 때, 주로하는 일이 뭐예요? 흑인들의 고유한 역사나 흑인들의 프라이드를 이야기하면서 주체가 되거든요. ‘우리는 우리만의 고유한 게있다‘는 거죠. 노동자는 ‘역사의 주인, 노동자‘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자본가라는 건 없어져야 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여자들은자신들을 하나로 뭉치게 할 현실적인 수단이 없기 때문에 주체가된 적이 없었다는 거예요. 보부아르는 여성들이 여성들만의 고유한 과거, 역사, 종교와 같은 정체성을 공유하거나, 노동자 계급처럼 노동으로부터 비롯된 연대감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같이 살지도 않는다는 거죠.
- P129

 "여자들은 주거·노동·경제적인 이해관계에 매이고 아버지나 남편 같은 남자들의사회적 신분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여자들보다 남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그들 사이에서 분산되어 살고 있다."
- P130

"부르주아 여성은 부르주아 남성과 연대성이 있으며, 프롤레타리아 여성과는 관계가 없다. 백인 여성은 흑인 여성이아닌 백인 남성과 연대한다."
ㅡ시몬드 보부아르 - P131

페미니즘 사상가들의 책, 페미니즘 저작들은 추상적으로
‘인류가………‘ 이렇게 시작하는 책은 없어요. 대체로 사사로운 경험, 내가 느꼈던 불쾌함에서 시작해요. 왜 그럴까요. 그 작은 것,
일상적인 것이라고 하는 그거라도 잡아야지 구체적인 수단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제2의 성》 2부도 마찬가지에요. 읽으면왜 이렇게 자세히 묘사하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자세하게 묘사를 하는 건 그래야만 여자가 주체가 될 수있기 때문인 겁니다. 이러한 묘사를 읽는 여성들은 여성들이 당연하다고 여겨온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게 돼요. 

그리고 그경험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많은 여성들이 함께 겪고 있고, 겪어왔던 일이라는 걸 확인하면서 다른 세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 P135

보부아르는 여자들이 계속 주체가 되려고, 타자의 입장을벗어던지려고 했지만 너무 오랫동안 세뇌됐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거예요. 여성이 왜 주체가 될 수 없었는지,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짓눌려왔는지 역사, 신화, 운명 같은 것들을 하나같이 분석해주겠다는 거죠. 이렇게 분석을 하고 여자들이 이걸 많이 읽으면 어떻게 될까요? ‘아, 여성이 원래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구나.
오랫동안 압제가 가능했던 습속의 체제와 교육이 여성을 만들어왔구나. 더 이상 제2의 성이라는 위치에 만족할 수 없다‘ 이렇게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죠.  - P137

남자들끼리의 우정만 다루는, 여자가 안나오는 드라마는 있어요. 그런 데서는 여자가 등장을 하더라도서비스를 해주거나, 주인공을 챙겨주는 엄마 같은 역할, 즉 중요하지 않은 역할로 나오고요. 로맨스 없는 남자극은 있어도, 로맨스 없는 여자극은 드물어요.
- P140

우리가 채택하는 관점은 실존주의 도덕이다. 모든 주체는기투企投를 통하여 자기초월로서 구체적으로 확립된다. 주체는 다른 자유를 향한 부단한 자기초월에 의해서만 자기의 자유를 완성한다. 무한히 열려 있는 미래를 향하여 발전을 도모하는 것 외에는 눈앞의 실존을 정당화하는 길은없다. 초월이 내재로 떨어질 때마다 실존은 ‘즉자존재卽自存在가 되고, 자유는 사실성이 된다. 만약 그것에 주체가 동의했다면, 이런 전락은 하나의 도덕적인 허물이다. 만약이 전락이 주체에 의해 강제된다면 좌절과 압박의 형태를취한다. 그래서 그것은 두 가지 경우 모두 절대악이다. 자기실존의 정당화를 바라는 모든 개인은 이 실존을 자기초월의 무한한 욕구로 경험한다.

ㅡ보부아르

🍭🍭🍭🍭🍭 - P141

실존철학의 근본적 명제 중 하나인 기투는 그래서 발생해요. 한 번 초월을 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한 번만이 아니라 다시 이 상황에 벗어나기 위해 또 초월하고, 또 초월하고, 또초월한다는 거죠. 기투, 그러니까 자기를 던지고, 초월해서 던지고, 결단하고, 선택하는 그 과정에서 부단하게 자기의 자유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한데, 그런 자기의 실존도덕 앞에서, "야, 지금이렇게 사는 게 행복이야"라고 하는 건 나를 기투하지 못하게 하는 거죠. 이건 "부자유가 행복이야"라고 하는 거랑 다를 게 없지않느냐는 거고, 보부아르는 철학자로서 이런 식의 행동은 도무지용납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 P142

"무한히 열려 있는 미래를 향하여 발전을 도모하는것 외에는 눈앞의 실존을 정당화하는 길은 없다"ㅡ보부아르 - P142

 "초월이 내재로 떨어질 때마다 실존은 즉자존재自存在가 되고, 자유는 사실성이 된다"라고 쓰죠. 초월vercome한다는 건 자기 조건 자체를 넘어서려고 한다는 거잖아요. 넘어서다가 넘어서려던 그 조건에 떨어질 때마다 실존은 ‘즉자존재 (존재하는 그 자체)‘가 된다고 하죠. 이건 헤겔의 용어인데, ‘즉자존재ansich‘와 ‘대자존재für sich‘가 있어요. 즉자존재는 자기가 놓여 있는 사물성 그 자체로서만 존재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 안에 새로운 규정이 없어요. 반면 대자존재는 이런 거예요. 예를 들어서 어떤 수업 한번 다녀오면 뿌듯한 게 있죠. 내가 좀 채워진 것 같잖아요. 여러분을 수업에 내던진 거잖아요. 일종의 기투를 한 셈이죠.
그래서 뭔가를 얻어냈잖아요. 수업을 겪어낸 거잖아요. 내용이생겼죠. 내가 제2의 성을 다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들어는 봤다는 거죠. 

그런 식의 상태가 대자존재예요. 대자존재는그래서 자기 자신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기로 동일하게머무는 상태와는 다른 타자성을 겪어내야 하고, 그 타자성을 겪으면서 다시 자기로 돌아와야 해요. 만약 돌아오지 않는다면, 자기 자신은 사라지겠지요. 그런 점에서 대자재는 타자성을 겪어서 자기 자신을 좀더 알게 되는 상태로 이해할 수도 있어요.
🍭🍭🍭🍭 - P143

그에 비해, 즉자존재는 내용이 없는 상태예요. 아무것도배운 것 없이 그냥 멍하게 있는 거잖아요. 내용이 없는 상태를 ‘ansich‘라고 해요. 극복하고 초월하려고 한다는 건 자기의 어떤 내용, 속성들을 채워가는 건데, 즉자존재는 그게 안 되는 거예요. 대자존재는 채워요. 그리고 이 대자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언제나타자라는 존재가 필요해요. 주체는 타자와의 쟁투 속에서 자기를다시 확인을 해요. 이 구도는 사르트르나 시몬 드 보부아르가 버리지 않는 구도예요. 주체가 되기 위해 타자가 필요하고 타자와의 쟁투를 통해서 초월하고, 그다음에 자기의 내용을 채워내면서대자존재가 되는 것. 이런 걸 변증법이라고 표현하죠.  - P144

"초월이 내재로 떨어질 때마다 실존은 ‘즉자존재 [존재하는그 자체]‘가 되고, 자유는 사실성이 된다. 만약 그것에 주체가 동의했다면, 이런 전락은 하나의 도덕적인 허물이다. 만약 이 전락이주체에 의해 강제된다면 좌절과 압박의 형태를 취한다

ㅡ보부아르,괄호 안은 김은주 - P144

이 ‘자유‘라는 개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우리는자유를 어디서부터의 해방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건 ‘프리덤freedom‘의 자유죠. 그런데 보부아르가 봤을 때 ‘어떤 쇠사슬로부터해방됐어‘가 자유가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새로운 것을 쟁취하는 게 자유 lberty 예요. 누군가로부터 해방이 된다는 건 속박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거잖아요.. 노예의 위치에 있었던 거죠. 노예의 위치에서가 아니라 자기 자유의 내용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나가는게 자유의 기본이죠. 보부아르는 리버티 liberty라는 자유의 입장에서 있는 거예요.
- P145

보부아르는 여성들이 타자이기 때문에, 이미 정해진 실존밖으로 나가는 초월이 불가능하다고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자들은 묻죠. 페미니즘은 바로 ‘나 여기서 뭐하는 거지?‘라는 질문에서 각성하기 시작하죠. 다시 말해 내 실존, 내가 뭐하고 있는지정당화justify 한다는 거거든요. 보부아르는 ‘내가 여기 왜 살지?‘ ‘여기 왜 있지?‘ ‘이 의미가 뭐지?‘라고 묻는 존재는 언제나 여기 나의 상태를 넘어서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고 이해합니다.
- P147

보부아르는 타자로서 여성의 위치를 이야기함으로써, 사실상 여성이 인간이 아니었고 결코 자유로운 적도 없었다고 설명을 해요. 실존철학은 여성을 타자의 지위가 아니라 자유로운 인간으로 실존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하게 하는 중요한 방법론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부아르는 여성 역시 인간임을 역설한다고 할수 있겠죠.  - P156

제1물결, 제2물결 페미니즘은 영미 페미니즘 운동을 근거로 많이 삼기 때문이에요.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참정권 운동이라든지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는 운동이 크게 벌어지는데, 1930년대부터 이 운동이 시들어요.
그리고 여성운동이라고 묶일 수 있는 공통의 기반이 사라지면서1950년대까지 일종의 여성운동의 퇴조기가 와요.
- P164

서부에서 골드러시도 끝나고 도시화가 시작되면서 세상이 변해요. 그 사이에 참정권 운동도 일어나는데,
이 운동은 1865년 남북전쟁 후에 흑인 남성에게까지 참정권을 확대한 수정헌법 14조에 여성 참정권도 포함할 것을 여성들이 요구하면서 전개됩니다.  - P164

20세기 이후에 소위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하는 사상들은 ‘정말로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게 있나?‘를 물어요. 우리의 선택은 문화적 조건, 권력의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산물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나는 나의 선택을 했다‘라고 하지만 그 ‘나‘라는 말도 사실 교육을 통해서 배웠고, ‘선택‘이라는 말도 교육을 통해서배웠어요. 16세기 조선조하에서 노비가 "나는 자유가 있다! 똑같이 배우게 해달라!" 이렇게 할 수 없잖아요. 그 당시에 ‘노비의 선택‘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잖아요. 어떤 노비가 나는 자유로운선택을 했으니까 양반가를 벗어나겠다고 하면 추노당하는 거죠.
노비는 재산이니까요.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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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2-06 1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부아르는 여성의 당연했던 위치가 당연하지 않은 것임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 사람.^^
그의 글은 일종의 혁명인 거죠.^^

청아 2022-02-06 11:23   좋아요 1 | URL
네! 문장에 그녀의 명징한 철학이 살아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