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가레가 직접 언급하는 페미니스트는 시몬 드 보부아르 정도인 데 비해, 남성 철학자들에 대한 비판적 독해는 그 폭이 매우 넓고 다양하다. 니체와 하이데거에 대해서는 별도의 단행본으로 다루고 있다.('바다의 연인;프리드리히 니체에 대하여Amante marine:De Fridrich Nietzsh',마르틴 하이데거에서의 공기의 망각(L‘oubli de ㅣ'air: chez Martin Heidegger)]. 또한 여러 저서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모리스 메를로퐁티, 에마뉘엘 레비나스 등을 직접 비판하며, 특히 '반사경'은 여성적 관점에서 철학사를 다시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12


여성적 관점에서 철학사를 다시 썼다니 '반사경'이 어떤 내용일지 더 궁금해진다. 대학과 학회에서 축출당했음에도 오히려 페미니스트로는 드물게 '이리가레 학회'가 만들어졌다.(The Irigaray Circle) 자신의 연구학회가 생겼다는 것이 개인에게 어떤 의미일까? 게다가 그녀는 현존해 있는 철학자다.


  
어제 저녁에 공원을 걸으며 간만에 실용서를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기본적으로는 뻔한 내용이지만 알던 것이라도 환기하는 차원에서 듣기에 좋았다. 마침 요즘 생각하던 문제들을 콕콕 찝어주어 시원하기도 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내가 원하는걸 막연하게 상상하지 말고 성취했을 때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그 단계까지 이르는 과정을 성취시점부터 거꾸로 짚어보라는 거였다. 해당 목표를 이루려면 얼마 정도의 기간이 소요될지도 추측해보고 과정에서 단계별로 해야 할 일들, 장애가 될 문제들도 생각해보는거다. 이번 생에는 힘들것같던 목표를 막상 내가 이루었다고 생각해보고 거꾸로 뭘 해야 할지 대충 짐작만 해봤는데도 최근에 나를 사로잡던 이런저런 문제들이 무척 하찮게 여겨졌다.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이다. -마르셸 프루스트
 




가끔 뭔가로 골머리를 앓다가 정신을 차리면서 생각한다.'이게 이렇게 중요해? 나한테 정말 중요한 문제야?' 처음엔 그런 고민들로 부터 벗어나려고 조금 극단적으로 당장 다음주에 내가 죽는다면 과연 그때도 이걸로 고민하고 있을건지 내 안의 나에게 물어보곤 했다. 그러다가 죽음이란 걸 그런식으로 적용하고 싶지 않아서 '당장 다음주에 우주의 어느별로 이사하고 다신 지구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래도 이걸로 씨름할 건가?'로 바꿔 물었다. 세상에는 멋진 일들이 너무 많은데 -게다가 읽을 책은 또 얼마나 많은가-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가 않다. 게다가 나이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니 발목을 잡는 문제 앞에서 그런 조바심이 든다면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화가난 크리스탈



처음에는 애정하는 매즈 미캘슨의 영화 '더 헌트'를 보려고 검색했다가 이 영화를 알게 됐다. 너튜브에 검색해보니 영화 평으로 봤을 때 완전 내 스타일이다 싶었고 바로 결제해 보니 역시나! 전반적으로 좀 많이 잔인하긴 했지만 그래도 볼만했다. 다 보고 나서 영화 분석을 좀 더 찾아보니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을 암시하는 장치들이 여럿 있었다. '왜 난 몰랐지?' 심지어 돼지도 나온다. 이제 어디가서 조지 오웰 좋아한다는 말을 좀 삼가해야겠다 다짐하며 마저 봤는데 아무래도 그런 장치들을 발견 못한 건 여주인공이 너무 카리스마 있어서 거기에 정신이 팔린 탓인 듯 하다. 베티 길핀~♡ 이 영화의 줄거리는 어떤 엘리트 집단이ㅡ 아마도 정부 고위층에서 일을 하던 이들 ㅡ해마다 사람들을 납치해 어딘가에서 그들끼리 인간사냥을 한다고 채팅에서 농담을 한 데서 시작된다. 해당 채팅은 외부로 유출되어 그들은 모두 불명예로 퇴사하게 되는데 분노한 이들은 재력을 활용해 자신을 온라인등에서 비난한 사람들12명을 잡아다가 '그 농담'을 실행한다. 






재미있는 부분은 이 엘리트들이 모두 이른바 진보주의자들이란 점인데, 환경을 생각하고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등 이타심을 가진 이들이 정작 행동은 그렇지 않다는 것. 그런면에서 스릴러이자 일종의 블랙코미디였다. 게다가 주인공 크리스탈은 동명이인으로 이들이 착각해 잘못 데려온 것이었고 하필이면 그들을 다 죽일만큼 쎈케였다. 아프가니스탄에 참전했던 것 외에는 그녀에 대해 많은 설명이 나오진 않는데 베일에 가려져 있어서 나혼자 후속작을 기대해 보기로 했다. 아무튼 썩 괜찮은 킬링타임용이고 트럼프 재임시절 문제가 되었던 영화였다고 한다. 자기를 비판하는 영화라고 느낀 트럼프는 상영을 금지시키려고 했었다는 후문이 있다. 여주인 베티 길핀 보면서 조디 코머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만 그런 생각한게 아니었다. 아무튼 쎈 언니들이 좋다. 열심히 살자!


조디코머와 베티 길핀 https://m.blog.naver.com/ys78nv/222508314019






자매라고 해도 믿을 정도!












댓글(21)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1-12-03 17:3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내용의 영화들이 많은데, 미미님 소개해주시는 영화는 실행하는 자들이 참신하네요 ㅎㅎ 미미님 글 읽으니 이리가레작가를 영접해야 하나 싶네요 ㅎㅎㅎ 저 또 팔렁팔랑.
근데 이 분 이름 보면 자꾸 ㅎㅎ
엄마가 저한테 심부름시킬때면 ~ 꼭! 이리가래. 이 길이 지름길이대이 ~ 하던 말씀이 따올라서 ㅎㅎ 이 작가분 이름은 절대 잊지 못할 거 같아요. 어쩌면 어렵지만 여성철학 등과 관련된 길을 가르쳐 주는 작가?! 란 생각도 들어서 또 팔렁팔랑. *^^* 합니다.

청아 2021-12-03 17:45   좋아요 5 | URL
아앗! 이리가레 어쩜 미니님의 운명아닐까 짐작해봅니다ㅎㅎ만약 읽어보신다면 이 책으로 시작해보심 어떨까해요. 개괄적으로 잘 설명되어 있어요. 기본적인 여성학공부도 ‘이래저래‘ 되구요😉

그레이스 2021-12-03 19:13   좋아요 3 | URL
ㅎㅎ

오거서 2021-12-03 19:30   좋아요 2 | URL
저도 ㅎㅎ

책읽는나무 2021-12-04 08:40   좋아요 3 | URL
작가이름 한 번씩 헷갈렸었는데 이리가레이...ㅋㅋㅋ
뭔가 잘 안외워질땐 미니님을 찾아가야겠어요^^

새파랑 2021-12-03 17:4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늘 바빠서 이제 들어왔는데 미미님 글이 딱! 오디오북 산책 괜찮은거 같아요 ^^ 쎈언니들에 미미님도 포함될듯 합니다~!!
베티 길핀은 그냥 아우라가 장난이 아니네요 😆

청아 2021-12-03 17:47   좋아요 3 | URL
그쵸?이 언니(멋지면 다 내언니ㅋ)카리스마 넘쳐요! 종이책이 쵝오지만 가끔은 오디오북도 괜찮더라구요😆

얄라알라 2021-12-03 17:4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매즈의 팬이시란말이죠?^^저 아틱....극장에 사람 저포함 4명인데도 메즈님 보러갔잖아요^^

청아 2021-12-03 17:50   좋아요 4 | URL
아틱 극장서 보셨군요ㅋㅋㅋ👍야하긴 한데 ‘폴라‘도 괜찮아요 007때부터 반함요😁

오거서 2021-12-03 19:31   좋아요 2 | URL
폴라…요? 받아적어야지 ㅋㅋㅋ

청아 2021-12-03 19:46   좋아요 1 | URL
은퇴앞둔 킬러이야기예요🤭👍

얄라알라 2021-12-03 17: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헌트 도 봐야겠습니다!^^

청아 2021-12-03 17:52   좋아요 4 | URL
메즈의 헌트는 볼수있는 곳이 없더라구요. 거의 내렸나봐요ㅠ

페넬로페 2021-12-03 18:2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쎈 언니들에 대해 여성주의로, 철학으로, 영화로 점점 범위를 넓혀 가시는 미미님, 멋져요~~
쎈언니의 다른 말은 남들이 포기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언니들 같아요^^

청아 2021-12-03 18:31   좋아요 4 | URL
페넬로페님 댓글에 제 기분이 핫핑크가 되었습니다~♡♡ ㅎㅎ쎈언니는 그래서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나봐요😊

서니데이 2021-12-03 19: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진 속의 두 사람은 정말 닮았네요. 자매간 닮은 사람도 있지만, 형제간에도 그렇게 비슷하지는 않을 때가 많은데요.
잘읽었습니다. 미미님, 즐거운 주말과 기분좋은 금요일 되세요.^^

청아 2021-12-03 19:44   좋아요 3 | URL
닮은데다 두 사람 모두 연기도 잘해서 신기해요!
이런 여성 쎈캐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주인공 발목잡는 이미지말구요😆 행복한 불금되세요!!

coolcat329 2021-12-04 07: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걸으면서 오디오북 괜찮네요~
정말 나이 먹을수록 시간이 너무너무 빨리 가서 조바심도 나고 슬프고 우울하고 뭐 그렇습니다.ㅠ
우울할 시간도 아까운 나이 실행이 답!
미미님 즐겁고 알찬 주말되세요~

청아 2021-12-04 09:45   좋아요 2 | URL
저도요ㅠㅜ 들으면서 마음을 좀 다잡을 수 있었어요. 쿨캣님도 유쾌하고 평온한 주말되세요🙋‍♀️

책읽는나무 2021-12-04 08: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가 영화를 참 안본다는 걸 알라디너님들 글을 통해 많이 깨달아요ㅋㅋㅋ
대신 책 안읽힐 땐 드라마나 예능은 한 번씩 보곤 하는데...미미님의 쎈 캐릭터 언니들 영화를 좋아한다는 말씀 듣고 보니 저도 드라마나 예능 중에서도 여성들이 주인공이거나 MC를 맡아 주도하는 그런 예능을 좋아하고 있었네요..이렇게라도 하나로 연결되고픈 저입니다ㅋㅋㅋ

안그래도 저도 오디오북을 신청해 볼까?그런 생각 했었는데 괜찮나요?
산책하거나 설거지 하거나 집안일 할때 누군가 책을 읽어 주면 들으면서 하면 괜찮겠다..싶더라구요?
헌데 예전에 팟빵으로 ‘책읽아웃‘이랑, ‘책 이게 뭐라고‘한참 다운받아 듣다가...거기서도 김숙 송은이의 비밀보장으로 어느새 넘어가 그거 하루종일 들으면서 낄낄거렸었던 때가 떠오르네요.ㅋㅋㅋ
책 이야기를 듣고 싶어 듣다가 내 스타일 아닌 책 얘기 한참 듣다 보면 그것도 시간이 어느새???? 시간 배분이 잘 안되던데...미미님은 어떠신지??^^

청아 2021-12-04 09:57   좋아요 2 | URL
저도 김숙 좋아해요!ㅎㅎ 따로 오디오북 가입하진 않았고 할인 많이 할때 대여로 하나 들은거예요.😅 셰익스피어 시리즈는 성우분들 연기가 좋아서 구매해 들었는데 잘한것 같아요. 오디오북 집안일 할땐 집중이 잘 안되고 조용한데서 산책할때가 더 낫더라구요 저도 나무님처럼 늘 시간과의 싸움중입니다^^;연말이면 뭐든 흐지부지 되고..🤦‍♀️
 

사회문화에서 배제된다. 반사경은 평면거울을 통해 보장된 남성의 상상적 동일성의 세계가 유일한 하나의 세계가아니며, 그 동일성이 사실은 타자화된 여성의 거울 역할을통해서만 지탱될 수 있음을 폭로한다.
- P6

반사경은 산부인과에서 여성의 질 내부를 들여다보기위해 질 안쪽에 삽입하는 거울의 이름이기도 하다.  - P7

반사경은 오목거울이다. 『반사경의 구조 역시 이와 같이 설계되어 있다(모이, 1994:153~4). 대상의 이미지를 상하 반전시켜 보여 주는 오목거울처럼, 이 책은 프로이트에서 시작하여 플라톤까지 철학의 아버지들을 역순으로 소환한다. 이는 철학의 남성 중심적 전통을 단순히 물려받은유산이나 역사적 한계로 그 의미를 축소시키지 않고, 남성들이 공유하고 있는 무의식적 욕망의 발현으로 읽을 수 있게 한다.
- P7

여기서 반사경』의 부제인 "여성으로서의 타자에 대하여"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이리가레의 독특한 점 중 하나는 타자의 위치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를 비롯해 많은 페미니스트들은여성이 주체가 아니라 타자이기만 할 뿐인 상황을 비판하고 이 위치를 거부했다. 이와 달리 이리가레는 여성으로서의‘ 타자가 될 것을 제안한다. 여성은 남성의 부정(négatif)이라는 의미에서만 타자였지, 여성 자신으로서 타자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리가레가 제안하는 타자는 주체에 종속된 타자도 아니고 남성을 위한 타자도 아니다. 그것은 여성으로서의 타자다. 이는 곧 여성 주체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 P8

이리가레가 직접 언급하는 페미니스트는 시몬 드 보부아르 정도인 데 비해, 남성 철학자들에 대한 비판적 독해는그 폭이 매우 넓고 다양하다. 니체와 하이데거에 대해서는별도의 단행본으로 다루고 있다바다의 연인: 프리드리히니체에 대하여(Amante marine: De Friedrich Nietzsch)』,
『마르틴 하이데거에서의 공기의 망각(L‘oubli de lair: chez.
Martin Heidegger)]. 또한 여러 저서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모리스 메를로퐁티, 에마뉘엘 레비나스 등을 직접 비판하며, 특히 『반사경』은 여성적 관점에서철학사를 다시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P12

니체에 관한 책의 제목에서도 나타나듯이, 이리가레가텍스트에서 남성 철학자에 대해 맺는 관계는 자못 독특하다. 이에 대해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이리가레와남성 철학자 사이에 일종의 에로스가 있으며, 이리가레가철학자들에 대해 "어떤 사도마조히즘적인 에로틱한 관계를 갖는다고 지적하면서 그 점 때문에 겁에 질리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Cheah & Grosz, 1998:19~20).
- P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887년 대지가 출간되었을 때,존속살해,형제살해,근친상간,성폭력,청소년과 어린 자녀 학대 등 약자를 대상으로 한 온갖 잔혹한 폭력이 난무하는 재앙의 세상과, 감히 글로 표현해선 안 될 금기였던 죽음과 살인,출산의 장면 등은 당대 독자들에게 크나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p.655 해설


이 설명대로다.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설명을 해보자면 북쪽으로는 샤르트르를 두고 있는 이곳은 '쭉 뻗은 지평선이 수묵화의 먹선처럼, 땅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드넓은 하늘과 함께 끝없이 펼쳐진 곳이다.'(p.24) 이 거대한 곡창지대인 보스평야는 그 먹거리의 크기만큼 수많은 목숨들이 탐하고 욕망하는 땅이다. 플친 유부만두님이 이 책을 읽고 '전원일기 다크'버전이라고 설명해 주었는데 정말 탁월한 비유라고 생각하며 읽는동안 무릎을 쳤다. 전원일기만큼 '대지'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얽히고 설켜 마치 그들도 자연의 일부인양 서로 정답게 마시고 먹다가도 이기심과 미움으로 다투느라 그야말로 쉴틈이 없다. 


그의 땅 사랑은 목숨을 내놓게 만드는 여인을 향한 사랑과 같았고, 그녀를 위해서라면 살인도 마다않을 그런 사랑이었다. 아내도 자식도 그 누구도 아닌, 인간이 결코 아닌 그것은 바로 땅이었다! 그런데 이제 늙어서, 그의 아버지가 힘에 부쳐 마지못해 그에게 넘겨주었듯이, 이 연인을 자식들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P32


그 중에서도 중심 인물들은 이 두 집안을 주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땅을 너무나 사랑했지만 나이가 들어 농사를 접고 어쩔 수 없이 자식들에게 재산을 넘기려 하는 아버지 푸앙과 아내 로즈, 한량처럼 놀음이나 하면서 알콜중독으로 살아가는 첫째 아들 제쥐크리스트(예수그리스도라는 별칭), 결혼한 둘째이자 딸인 파니,욕심많고 성질이 더러워 주민들도 잘 건들지 않는 막내아들 뷔토. 이렇게 위태로운 삼남매가 있다. 그리고 삼남매의 사촌 누이이자 뷔토와 결혼하는 리즈와 그녀의 동생 프랑수아즈가 재산과 그로인한 질투,원망으로 끝없이 갈등을 빚다가 막장으로 치닫는다. 


농부의 고난은 사실상 계속되고 있었다. 농부는 모든 것, 즉 사람들,수많은 요인들, 그 자신에서 고통받았다. 봉건제 아래서 귀족들이 먹잇감을 찾을 때마다 농부는 내몰리고, 추격당하고, 전리품으로 끌려갔다. 영주들이 서로 사사로이 전쟁을 벌일 때마다 농부는 살해당하지 않으면 파멸로 끝났다. 초가집은 불타고 밭은 쑥대밭이 되었다. 그다음에는 우리네 논밭을 유린한 도리깨 중에서도 최악인 대군대가 왔고, 돈에 매수된 용병 패거리들이 때로는 프랑스의 아군으로 때로는 프랑스의 적군으로 쳐들어왔고, 전화에 휩쓸린 자리에는 헐벗은 땅만 남았다.- P100


흙을 사랑하고 땅을 귀하게 여기는 이 순박한 농부들이 왜이렇게들 잔인한지 갸우뚱하며 찬찬히 들여다보면 대를 이어온 땅에 대한 집착과 더불어 외부적인 요인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왕과 귀족으로부터끝없이 핍박당하고 전쟁으로 짓밟히다가 부르주아에게 또 갈취당하기를 반복하면서 그들은 더욱 땅에 목숨을 걸고 내것으로 만들기 위해 짐승으로 변했다. 교육을 받을 여유도 없고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은 변화는 더디게 수용하고 그래서 정치에 쉽게 희생양이 된다. 그렇게 절망은 악의로, 분노로 분출되어 스스로와 가족은 물론 이웃들을 갉아먹는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미친 척하는 것인지, 정말로 미쳤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정도로 그의 분노는 광기로 비쳤다. 그는 선 채로 마차를 빠르게 몰며,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대꾸도 않고, 달리는 말에 주의하라고 외치지도않고 거리를 지나다녔다. 밤에도 어떤 때는 이쪽에서, 또 어떤 때는 저쪽에서 마차를 타고 달려오는 그를 만나기도 했는데, 어디를 다녀오는지 알 수 없지만 악마를 만나고 오는 것이 분명했다. - P496


아버지가 나누어준 땅과 결혼하면서 아내로부터 얻은 땅이 보태져 마을 소작농 중에서 가장 큰 땅을 차지했던 뷔토는 잠시동안 행복을 누렸고 타고난 농부답게 열정을 바쳤다. 하지만 그에게는 처제 프랑수아에 대한 멈출줄 모르는 욕망이 땅을 향한 갈증만큼 강해 스스로도 그 둘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에 이른다. 거기다 결혼전에는 동생과 가디건 하나를 같이 두르고 다닐만큼 정답던 리지도 재산이 생기고 남편도 얻자 동생과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어버린다. 결국 자매는 소송으로 재산이 나뉘고 뷔토는 이에 마치 자신의 팔다리가 잘려나간듯 분노하며 폭발하고 되돌릴 수 없는 불화와 죽음으로 향한다. 


별들과 태양의 거대한 역학 속에서 우리의 불행은 그 무게가얼마나 될까? 하느님은 우리를 개의치 않는다! 우리는 매일매일 무시무시하게 싸워야만 빵을 얻는다. 그런데 우리가 태어난 모체이며 우리가 되돌아갈 그곳, 죄를 저지를 만큼 우리가 사랑하는 땅, 우리가 악행을 저지르고 파렴치하게 굴어도 알 수 없는 목적을 위해 끊임없이 생명을 다시 만들어내는 땅, 그 땅만은 영원히 살아남는다.- P652


뷔토가 욕망하던 처제 프랑수와즈의 남편인 장 마카르는 루공 마카르총서의 그 마카르 집안 사람인데, '목로주점'의 여주인공 제르베즈의 남동생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동안 읽은 작품들과 달리 이 소설에서 중심 인물들 밖에서 겉도는 외부인으로 묘사된다. 실제로도 군생활을 마친 후 목수로 살다가 이 마을로 흘러들어온 그는 어쩌면 이 막장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일 수도 있다. 장의 위치에서 에밀졸라는 덤덤하게 최후의 승자가 누구인지 밝힌다. 그건 바로 농부들의 피,땀,눈물을 머금은 땅이다. 에밀졸라의 자연주의는 때로 잔인하리만치 냉정하다. 하지만 어찌하랴. 현실이 그런것을! 나는 그래서인지 아직 에밀졸라가 더 읽고 싶다. 










그동안 읽은 루공마카르 총서


  

  

 




이제 남은 루공마카르 총서


   


   



  







댓글(66) 먼댓글(0) 좋아요(5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책읽는나무 2022-01-07 19:50   좋아요 3 | URL
5시 30분에 일어나셔야 하옵니다!!!
그 시간은 제가 아들이랑 아침 밥 먹는 시간이에요.
모닝콜 해드릴게요ㅋㅋㅋ
졸라 1 위 하시려면 누구보다도 발빠르게!!!!🏃‍♀️🏃‍♀️🏃‍♀️

청아 2022-01-07 19:52   좋아요 3 | URL
5시반🤦‍♀️ㅋㅋㅋㅋ최대한 해보겠습니다 후... 마니아의 길은 험난하네요ㅋㅋ👍

서니데이 2022-01-07 21: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청아 2022-01-07 22:07   좋아요 3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해요^^♡ 즐겁고 포근한 주말 보내세요!!

thkang1001 2022-01-07 21: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청아 2022-01-07 22:08   좋아요 2 | URL
네 ^^♡감사해요!! 굿밤되시고 유쾌한 주말보내세요!!

러블리땡 2022-01-08 00: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밤 되세요 ^^

청아 2022-01-08 07:35   좋아요 1 | URL
러블리땡님 감사해요^^♡ 행복한 주말되세요!!

페넬로페 2022-01-08 00: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는 소설을 예술적이고,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해 주시는 미미님!!
저도 올해는 루공마르크 총서로 고고할 예정이예요**

청아 2022-01-08 07:41   좋아요 4 | URL
반가운 소식입니다♡.♡
페넬로페님도 졸라세계의 감동과 환희를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이 작품도 좋고 제르미날과 인간짐승도 훌륭해요!!
감사해요ㅎㅎ행복한 주말되세요^^♡

thkang1001 2022-01-08 0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감사합니다!

2022-01-08 0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08 0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08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08 0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bookholic 2022-01-08 1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미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저도 루공마카르 총서를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청아 2022-01-08 18:42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북홀릭님^^* 이 작품은 다른점보다 재산을 물려준 후 푸앙의 비극이 인상적이었고요.앞쪽 절반은 약간 지루하실수도 있어요(푸앙은 노년의 비극이라서 따로 간략히 페이퍼 쓰고싶을정도) 총서 중에서 개인적으로<제르미날>과 <인간짐승>을 강력추천합니다.ㅎㅎ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사십대의 키가 크고 건장하고 단단한 몸매에 곱슬머리, V자형으로덥수룩한 수염을 길게 기른, 파멸에 빠진 그리스도, 술독에 빠진 그리스도, 겁탈자, 노상강도 같은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클루아에서 아침부터 마신 터라 이미 얼근히 취했고, 진흙투성이 바지에 얼룩진 더러운작업복을 입고 챙 달린 모자는 뒤로 돌려 쓰고 있었다. 눅눅한 검은색싸구려 시가를 피우는 그에게서는 지독한 냄새가 났다. 하지만 촉촉하고 아름다운 두 눈 깊은 곳에서는 빈정거려도 그리 악랄해 보이지 않는 솔직하고 사람 좋은 건달의 모습이 보였다.
- P28

그는 계속되는 언쟁에 말이 끊기는 와중에도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설명했다. 그러나 북받치는 마음에 목이 메어 한없는 슬픔, 설명할 수없는 울분은 말하지 못했다.  - P32

그의 땅 사랑은 목숨을 내놓게 만드는 여인을향한 사랑과 같았고, 그녀를 위해서라면 살인도 마다않을 그런 사랑이었다. 아내도 자식도 그 누구도 아닌, 인간이 결코 아닌 그것은 바로땅이었다! 그런데 이제 늙어서, 그의 아버지가 힘에 부쳐 마지못해 그에게 넘겨주었듯이, 이 연인을 자식들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 P32

아버지는 매번 삭감될 때마다숫자들을 고집하며 완강히 버텼지만, 번번이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겉으로는 냉정하게 고집을 부리고 있지만, 자신의 분신으로 자신의 살을먹고 자신의 피를 빨아먹으며 지금껏 살아온 이 욕심 많은 아들이 화를 내자, 그는 속에서부터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는 자신도 그렇게 제아버지를 먹어치웠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는 양손을 부들부들 떨기시작하더니 마침내 폭발했다.
- P40

장은 계속 읽었다. 이제 왕, 주교, 영주라는 삼중의 재판권에 대해, 의무적으로 경작해야 하는 밭에서 땀흘리는 가련한 사람들을 사방에서난폭하게 잡아당기는 재판권에 대해 읽을 참이었다. 관습법이 있고, 성문법이 있고, 그 위에 절대왕정, 가장 강한 자의 논리가 있었다. 보장받을 데도 호소할 데도 없이, 칼의 전능함만이 있었다. 그다음 시대에도공정성이 요구될 때면 불리한 증거들은 매수되었고, 정의는 돈에 팔렸다. 군대에서 신병을 뽑을 때 목숨에 붙는 세금은 더 악질적이었다.  - P98

마지막으로 사냥권, 비둘기장과 토끼장에 대한 권리가 나왔다. 이권리는 지금은 사라졌지만 농부들의 가슴에 증오의 불씨를 남겨놓았다. 사냥은 대대로 농부들의 화병거리였는데, 영주가 어디서나 사냥할수 있도록 허락한 봉건제의 옛 특권으로, 감히 영주의 구역에서 사냥을한 자유농민은 사형에 처할 수 있었다. 자유로운 짐승, 자유로운 새가단 한 사람의 즐거움을 위해 드넓은 하늘 우리에 갇힌 셈이었다. 사냥감이 큰 피해를 주어도 관할구역에 속하는 밭이라면 자작농은 참새 한마리도 잡을 수 없었다.
- P99

농부의 고난은 사실상 계속되고 있었다. 농부는 모든 것, 즉 사람들,
수많은 요인들, 그 자신에게서 고통받았다. 봉건제 아래서 귀족들이 먹잇감을 찾을 때마다 농부는 내몰리고, 추격당하고, 전리품으로 끌려갔다. 영주들이 서로 사사로이 전쟁을 벌일 때마다 농부는 살해당하지 않으면 파멸로 끝났다. 초가집은 불타고 밭은 쑥대밭이 되었다. 그다음에는 우리네 논밭을 유린한 도리깨 중에서도 최악인 대군대가 왔고, 돈에 매수된 용병 패거리들이 때로는 프랑스의 아군으로 때로는 프랑스의 적군으로 쳐들어왔고, 전화에 휩쓸린 자리에는 헐벗은 땅만 남았다.
- P100

허기의 고통, 모든 물가의 갑작스러운 폭등, 말로 다 할 수 없는 비참함 속에서 사람들은 짐승처럼도랑에 난 풀들을 뜯어먹곤 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거나 빈곤이 조금가시고 나면 필연적으로 전염병이 돌아 칼과 굶주림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죽였다. 죽음의 신, 페스트는 무지와 불결로 인해 끝없이 되살아나는 혼란이었다. 지난날에는 죽음의 신이 슬프고 창백한 농촌 사람들에게 낫을 휘두르면서 지배했다.
- P101

바스티유를 탈환한다음 농부들이 성들을 불태우는 동안, 8월 4일 밤은 인간의 자유와 시민평등권을 인정하면서 수백 년에 걸쳐 쟁취해낸 것을 합법화했다. "농부들은 하룻밤 만에, 귀족 칭호만으로 그들의 땀을 마시고 그들이 밤새워 지킨 열매를 삼켜왔던 영주들과 동등해졌다. 농노의 신분, 귀족의모든 특권, 성당과 영주의 재판권은 폐지되었고, 예전 권리에 대한 값치르기, 공평한 세금, 모든 시민에게 민과 군의 모든 일자리 내주기, 그렇게 계속 열거되었다. 그들의 삶을 괴롭혀왔던 해악이 하나씩 사라지는 듯했다. 농부들이 새로이 맞이한 황금시대에 대한 환희의 노래였다.
어떤 페이지에서는 농부들이야말로 세상의 왕이요 양육자라고 치켜세웠다. 농부만이 중요했으며 성스러운 쟁기 앞에 모두가 무릎을 꿇어야했다. 그뒤 93년의 공포정치는 신랄하게 비난받았고, 책자는 혁명의 아들인 나폴레옹이 "방종이라는 선례에 빠지지 않고 농촌을 행복하게 만들었다"며 과도한 찬사를 늘어놓았다.
- P103

그는 분할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다른 일들로도 혼란스러웠다. 그의 둔한 머릿속에서는 다른 것들이, 즉분노, 자존심, 약속을 들어버리고 싶은 몽니, 속을 것 같은 두려움에 원하면서도 원치 않는 수컷의 극단적인 욕망이 혼란스레 뒤엉켜 싸웠다.
갑자기 그는 결정을 내렸다.
"난 자러 갈래요, 아듀!"
- P109

힘든 작업이 아직 시작되지 않아 하루 식사는 네 번뿐이었다. 아침 일곱시에는 우유에적신 빵, 정오에는 토스트, 네시에는 빵과 치즈, 여덟시에는 수프와 돼지비계였다. 모두 널따란 부엌에서 양쪽에 긴 의자가 놓여 있는 긴 식탁에 앉아 먹었다. 발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커다란 아궁이 한쪽을차지한 주물 화덕뿐이었다. 안쪽으로 가마의 시커먼 입이 보였다.  - P130

아무 땅에나 파종을 하고 우연히 싹이 나오면 괜찮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대고 욕설을 퍼부었다. 마침내 배움을 통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경작을 할 날이, 소출이 배로 늘어날 날이 언젠가 오겠지만, 그때까지 무식하고 고집 세고한 푼도 투자하지 않는 농부는 땅을 죽이고 말 것이다. 예전에 프랑스의 곡창지대였던 보스 지역, 이제 밀밖에 없는 메마른 보스평야는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온갖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건만 어리석은 이들에게 지쳐서 서서히 진이 빠져 죽어갔다.
- P187

생쥐스트의 농장주 집안인 코카르네 맏딸 결혼식에서처럼결혼식 케이크, 크림 두 가지, 당과류와 프티푸르네 접시를 내놓을예정이었다. 집에서는 고기 수프, 순대, 튀긴 닭 네 마리, 백포도주로 조리한 토끼 네 마리, 구운 소고기와 송아지를 준비할 생각이었다. 이는십오 인분 정도의 음식인데, 정확한 손님 수는 아직 알 수 없었다.  - P234

"글쎄요! 각자 자신이 모시는 신을 위해 복음을 전하겠지요!…… 내가 당신들에게 빵을 비싸게 팔지 않는다면, 바로 프랑스의 농촌이 파산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빵을 비싸게 판다면, 야반도주하게 되는것은 공장들일 테고요. 당신들의 임금이 올라가면, 생산된 물건값이 올라가겠지요. 내 도구들, 내 옷, 내가 필요로 하는 수많은 물건들이 말입니다… 아! 그렇게 돈을 쓰면, 우리가 파산하겠군요!"
- P464

그 말의 파급효과는 대단해서 델롬, 푸앙, 클루, 베퀴 모두 입이 떡벌어지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르쾨는 신문을 떨어뜨렸다. 우르드캥은 나가다가 다시 들어왔다. 뷔토는 프랑수아즈를 잊어버리고 탁자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앉았다. - P469

(집달리)아무런 대답이 없어 그는 더 세게 두드려야 했고, 감히 이름을 부른 다음 소유권 포기를 위한 최고장때문에 왔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곳간 창문이 열리더니, 똑같은 한마디가 큰 소리로 터져나왔다.
"염병하네!"
그리고 가득찬 요강을 쏟아부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은 비피는최고장을 도로 가져가야 했다. 로뉴 사람들은 한번 더 배꼽을 잡았다.
- P495

마을 사람들은 그가 미친 척하는 것인지, 정말로 미쳤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정도로 그의 분노는 광기로 비쳤다. 그는 선 채로 마차를 빠르게 몰며,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대꾸도 않고, 달리는 말에 주의하라고 외치지도않고 거리를 지나다녔다. 밤에도 어떤 때는 이쪽에서, 또 어떤 때는 저쪽에서 마차를 타고 달려오는 그를 만나기도 했는데, 어디를 다녀오는지 알 수 없지만 악마를 만나고 오는 것이 분명했다.  - P496

푸앙은 수프에서 불안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는 홀로 수십 리 떨어져 있는 사람처럼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듯했다. 마치 자기는 먹으러온 거라고, 거기엔 그의 위장만 있지 심장은 없다고 말하려는 듯했다.
- P535

그때까지만 해도 푸앙은 걸을 수 있었다. 여전히 땅에 관심이 있어걷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 옛 연인들을 잊지 못하고 집요한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그는 늘 예전의 자기 밭들을 보러 올라갔다. 그는 길을 따라, 상처 입은 노인네의 발걸음으로 천천히 배회했다. 아무 밭이나 그 주변에 멈춰 서서 지팡이에 기댄 채 몇 시간씩 가만히 서 있다.
가 다른 밭으로 몸을 이끌고 가서는 다시 그곳에서 꼼짝하지 않고, 늘어 말라버린 나무처럼 자신을 잊은 채 서 있곤 했다. 그의 공허한 두 눈에는 밀도 귀리도 호밀도 분명히 구분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뿌옇게보였다. 그것은 과거로부터 올라오는 혼란스러운 기억들이었다.  - P541

정오의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도 그는 몸을 움직이는 순간부터 얼어붙고 벌벌 떨었다. 의지와 권위가 죽은 다음에는 마지막으로 노쇠가 오고, 버려진 채 고통스러워하는 늙은 짐승이 되고, 그게 바로 인간으로 살았던 것에 대한 비참한 결과였다. 그런데 그는 아무 불평도 하지 않았다. 할일 다 한 후 쓸모없이 귀리만 축내는 말이 도살당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아무 쓸모 없는 노인네는 돈만 축내니까. 그 자신도 아버지의 종말을 원했었다. 이번에는그의 자식들이 그의 종말을 원한다 해도, 그는 놀라지도 슬프지도 않을것이다. 본래 그런 법이다.
- P543

별들과 태양의 거대한 역학 속에서 우리의 불행은 그 무게가얼마나 될까? 하느님은 우리를 개의치 않는다! 우리는 매일매일 무시무시하게 싸워야만 빵을 얻는다. 그런데 우리가 태어난 모체이며 우리가 되돌아갈 그곳, 죄를 저지를 만큼 우리가 사랑하는 땅, 우리가 악행을 저지르고 파렴치하게 굴어도 알 수 없는 목적을 위해 끊임없이 생명을 다시 만들어내는 땅, 그 땅만은 영원히 살아남는다.
- P652


댓글(5)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1-12-02 0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곧 리뷰가 올라오겠군요~!! 페이지가 엄청나네요 😅

청아 2021-12-02 00:14   좋아요 1 | URL
늦게 들어와서 리뷰는 못썼어요 새파랑님과 함께 읽으려고 했는데 다른 책 읽고 계셔서 타이밍 놓침요😅 굿밤되세요!

새파랑 2021-12-02 00:18   좋아요 1 | URL
밑줄 읽어보니 제르미날의 농촌버전(?) 느낌이 들어요 ^^
ㅋ 기대가 됩니다. 푹 주무세요~!!

페크pek0501 2021-12-02 1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펄벅의 대지, 인 줄 알았어요. 에밀 졸라군요. 어쩐지 6백 쪽이 넘어서 이상했어요.
뿌듯한 독서로 느껴지실 듯합니다. 두꺼운 책이니...
완독하셨다면 리뷰만 쓰시면 되는 건가요?

청아 2021-12-02 13:55   좋아요 0 | URL
네ㅋㅋㅋ펄벅의 대지도 읽어야되는데 말입니다. 어제 못써서 지금 쓰고 있어요😊
 

이번달에 읽은 이리가레의 ‘하나이지 않은 성‘은 여러모로 어려운 책이었다. 특히 거울,고체,액체...같은 은유가 등장해 당황스러웠는데 함께 읽은 다른 분들도 아마 비슷한 구간에서 힘들었을것 같다. 이 책 ‘뤼스 이리가레‘는 현대 사상가들에 대한 ‘안내서‘로 나온만큼 해당 인물의 저서, 그 중 핵심키워드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쓰여져있다. 이리가레가 말한 거울에 관해서 설명이 나와있어 함께 읽은 분들과도 공유하고 혹시 관심있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해당 내용을 올려본다.

이리가레의 ‘반사경‘이 번역되어 나왔으면 좋겠다.

거울의 은유와 여성

외출하기 전에 거울을 들여다보며 얼굴에 뭐가 묻지는 않았는지, 옷매무새는 괜찮은지 살펴볼 때 우리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물 대하듯이 객관적 시선으로 관찰한다. 나 자신의 객관화라는 점에서, 거울은 서구 담론에서 중요한 은유로 사용되어 왔다. 지성적 사고를 이르는반성(réflexion)이나 사변(spéculation)이라는 말에는 이미비추어 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특히 근대에 들어 서양철학에서 거울은 주체가 자기 자신을 두 개로 나누어 객관화된 ‘나‘를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고 반성하는 상황을 묘사한다.
- P2

자크 라캉(Jacques Lacan)의 정신분석이론에서 거울은이보다 훨씬 더 핵심적 의미를 띤다. 라캉이 인간의 주체형성 과정을 설명하는 틀에서, 거울 단계는 아이가 마침내 자기 동일성을 획득하고 오이디푸스콤플렉스를 극복하여 상징계로 진입하는 드라마의 한가운데에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을 하나의 전체로서 인식하지 못하는 유아의
‘조각난 몸의 환상은 거울 단계에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극복된다. 거울에 비친 이미지를 통해 아이는 자기 신체의통일성을 이해하게 되고, 그전까지는 완전한 합일의 상태라고 믿었던 어머니와 자신을 구별하게 된다. 아이가 거울단계의 막바지에 찾아오는 오이디푸스콤플렉스를 무사히극복한다면, 이제 아이는 법과 질서와 언어의 세계인 상징계로 들어가 말하는 주체, 욕망의 주체가 된다. - P3

여기서 거울의 역할은 자아의 신체 이미지를 제공해 주는 데 있다. 주체의 통일된 신체 이미지는 상상계를 구성하는 바탕이 되며, 상상계는 주체가 상징계 안에서 통일성,
조화, 자기동일성을 확신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남자아이의 이야기, 남성 주체의 오디세이다. 어째서인가?
이때 신체의 통일된 형태를 반사해 주는 거울이 평면거울이기 때문이다. 평면거울이 반영하는 이미지는 남성 신체의 이미지다. 왜냐하면 "편평한 거울은 하나의 구멍‘을제외하고 여성들의 성 기관 대부분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Irigaray, 1974:109, note 122). 여성과 남성의 나신을 표현한 조각상이나 회화를 떠올려 보라. 남성의 것과 달리 여성의 성기는 머리카락이나 나뭇잎 따위로 가려져 있거나, 드러나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은 재현에 실패한다.
여성의 성 기관은 하나가 아니며 바깥쪽에도 있고 몸 안쪽에도 있기 때문이다. 평면거울이 비출 수 있는 것은 바깥에위치한 성기뿐이며, 그나마도 거울 앞에 선 채로는 드러나보이지 않는다 - P4


댓글(22) 먼댓글(0) 좋아요(5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11-30 23: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ↀωↀ<)
응원 ฅ🐾

청아 2021-11-30 23:37   좋아요 3 | URL
스콧님 이모티콘 냐옹이 소리가 들립니당(ᴗ̤ .̮ ᴗ̤ )₎₎ᵗᑋᵃᐢᵏ ᵞᵒᵘෆ

그레이스 2021-11-30 23: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런 의미에서 쿠르베의 그림 <세상의 기원>은 라깡의 관심을 끌만했죠
실제로 라깡이 그림을 샀다고 해요

청아 2021-11-30 23:44   좋아요 4 | URL
엄훠 😳 검색하니 바로 나오네요!!! 적나라하군요! 라깡이라고 써주시니 너무 귀엽습니다~♡ 라깡 책 빨리 주문해야겠어요!

새파랑 2021-11-30 23: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밑줄만 읽어도 전 어려워요 😅 이런책을 읽으시는 미미님 대단~!!

청아 2021-11-30 23:58   좋아요 4 | URL
‘하나이지 않은 성‘ 때문에 상대적으로 쉽게 느껴집니다ㅋㅋㅋ😆

mini74 2021-12-01 00: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무슨 드라마였는지 영화였는지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려다 다친 에피가 생각나요. 그러고보면 한 번도 제대로 대면해본 적이 앖는 것 같아요. 거울이 이렇게 해석이 되는군요. 전 그저 여성상징기호가 거울, 허영 나르시즘 뭐 이런식? 이었는데 객관화된 나를 본다는 것 등 다양한 것들이 담겨있둔요. 넘 잘 읽었어요 미미님 안녕히 주무세요 *^^*

청아 2021-12-01 00:22   좋아요 3 | URL
뒷부분에 남성들의 나르시즘의 의미도 있는데 너무 복잡해서 안넣었어요
거울에 관해서는 속설도 괴담도 많은게 이런 이유들 때문인가봐요ㅎㅎ미니님도 굿밤되세요~🙆‍♀️

책읽는나무 2021-12-01 00: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거울이 큰 의미를 지니고 있던데...평면형 거울은 남성의 시선과 성기 남성의 관점을 비춰주고,입체형 거울 또는 반사되는 거울은 반대로 여성의 시선,몸,관점을 비춰주는 것...제대로 해석한 게 맞는 건지? 책을 읽었어도 제대로 기억나는 게 없네요?ㅋㅋㅋ
이해하기 쉽게 나왔다고 하셔도 읽어 보니 이것 또한 쉽지 않네요..ㅜㅜ
문해력이 참.....ㅋㅋㅋ

청아 2021-12-01 08:18   좋아요 3 | URL
어려운 책이었지만 거울의 그런저런 기능을 이번기회에 알게되어 큰 수확이었지않나 싶어요ㅋㅋㅋㅋ나무님 12월도 즐거운 독서생활 함께해요^^♡

수이 2021-12-01 07: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반사경은 지금 번역중이래요 12월에 안 나오면 내년에 나올듯요, 미미님의 부지런하고 꼼꼼한 독해력에 감탄하고 갑니다~^^

청아 2021-12-01 08:25   좋아요 1 | URL
오~타이밍이 좋네요! 미스터리를 캐네는 느낌이예요ㅋㅋㅋ비타님 감사해요^^♡

거리의화가 2021-12-01 09: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러 군데 어려웠지만 거울이 단연 제일 어려웠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어려워서 포기할뻔..ㅋㅋ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청아 2021-12-01 10:12   좋아요 1 | URL
여성을 표현한 액체도 좀 더 알고싶었는데 이 책에는 없는듯 해요ㅋㅋㅋ거리의 화가님 감사합니다^^♡

프레이야 2021-12-01 10: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울 이미지는 여러가지로 변주되어 활용되지요. 예는 많겠지만 영화 블랙스완에서도 오페라의유령에서도 저는 거울 이미지에 매료되더군요. 전자는 여자, 후자는 남자의 거울인데 압도적인 이미지였어요 제겐.
미미 님의 정리 최고입니다*^^*

청아 2021-12-01 10:38   좋아요 2 | URL
아 블랙스완 좋아서 두 번 봤어요. 오페라의 유령에도 거울이 등장했군요! 이제 거울 나오면 더 눈여겨 볼 듯 해요.ㅎㅎ 고맙습니다 프레이야님^^♡

오거서 2021-12-01 1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울을 보는 의미를 사유하고 해석해본 적이 없는데 미미님이 공유해주시니 거울, 이미지, 객관화, 욕망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독서에 많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

청아 2021-12-01 12:55   좋아요 2 | URL
이 부분 읽고 좋아서 함께 나누고 싶었는데 오거서님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기쁩니다^^♡

- 2021-12-02 1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동영상인가 뭐시기 만든다고... 완전 하얗게 잊고 있었다.. 이리가레 페이퍼.... 써야하는데 (한숨...)

청아 2021-12-02 13:20   좋아요 0 | URL
쟝쟝님의 페이퍼 저도 기둘리고 있음요👍^^♡

페크pek0501 2021-12-02 13: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시리즈도 좋군요. ^^

청아 2021-12-02 13:56   좋아요 1 | URL
지난번에 주디스 버틀러편 읽어봤는데 알기 쉽게 쓰여져 입문용으로 딱이예요.전부 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