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리를 양보하는 편이지만 (서서 가야 살이 빠진다니까) 이런 이야기 너무 좋아함♡




"어머, 파니, 너 코에 여드름 났구나."
"이거 여드름 아냐. 문에 부딪혀서 그래." 나는 안토니아가 미웠다.

그러나 전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역으로 달려갈 때 안토니아는내 손을 잡았다. 내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급히 전차에 올라맨 뒷자리에 앉았을 때 우리 뒤에 탄 할머니가 성난 눈길로 노려보며 자리 하나를 비워달라고 했지만 그때도 안토니아는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저희 임신중이에요." 안토니아가 할머니에게 말하고 내 손을 꽉 쥐었다. 할머니와 주변 사람들은 잉어처럼 멀뚱히 우리를바라보았다. 그 순간 나는 안토니아가 다른 누구보다 더 감탄스럽고 마음에 들었다.  - P14

나는 파란 외투와 춤추고있다고 상상했다. 그것은 내가 그 남자를 부르는 유일한 이름이었다. 아무도 그를 몰랐다. 아무도 그의 이름을 몰랐다. 매일 아침 내가 등교할 때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남자였다. 늘 견장까지 달린 진한 청색의 낡은 군용 외투 차림이라 나는 그를 파란 외투‘라고 불렀다. 언젠가 내가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게 오토바이가 섰을 때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후로는 아침마다 그가또다시 내 앞에서 브레이크를 밟을 수밖에 없도록 일부러 타이밍을 맞추려고 애썼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번번이 너무빠르거나 너무 늦게 횡단보도에 이르렀다. 나는 늘 그가 지나가는 모습만 보았다. 내게는 눈곱만큼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나는 가슴이 쿵쾅거렸다. 안토니아에게 그 남자 얘길 한 적이 있다. 나야 그애한테 늘 모든 얘기를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으니까.
(워^어^ 불길한 기운)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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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1-05 11:2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서서가면 책을 읽기 힘듭니다~!!

청아 2021-11-05 11:52   좋아요 5 | URL
그렇죠!!ㅋㅋㅋㅋㅋ

scott 2021-11-05 11: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파니 핑크!
도리스 되리 감독에 Nobody loves me로 제작된 영화!

원작이 번역 되었군요 ^^

청아 2021-11-05 12:05   좋아요 4 | URL
저도 최근에야 알게 되서 책을 구매했는데 영화도 너무 궁금해요~♡.♡

유부만두 2021-11-05 13:5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옛날에요, 제가 대학생 시절에요,
학교에 파란색 옷만 입고, 목엔 파란색 (정말 새파아란 색) 손수건 까지 묶고 다니던 남학생이 있었어요. 무슨 풍수지리 때문에 고향에서는 흰색 옷만 입고 서울선 파란색 옷을 입는다고 했는데 ... (아, 그 청년은 이제 (할)아저씨가 되었겠군요) 파란 외투, 라는 말에서 그 사람이 생각나버렸..... (오늘도 제 정신은 널을 뜁니다)

청아 2021-11-05 14:10   좋아요 3 | URL
아앗ㅋㅋㅋㅋㅋㅋ 풍수지리는 집에만 해당되는 줄 알았는데!! 그분은 자기 스타일까지 적용했나봐요ㅋㅋ어디서나 눈에 딱 띄겠어요!

책읽는나무 2021-11-05 14:13   좋아요 5 | URL
어쩌다 만두님 댓글까지 읽었는데...갑자기 든 생각인데요!
파란 옷 입으시는 그분은 서울 아래 지역에선 빨간색 옷을 입으실 것 같은 느낌입니다.울릉도 독도 또는 서해쪽 갈적엔 검은색!!!
그리하면????.......ㅋㅋㅋ

책읽는나무 2021-11-05 14:0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재밌네요...저도 이런 이야기 좋아해요.
몽글몽글 해지네요ㅋㅋㅋ
몽글몽글 하얀 가루 묻은 던킨 도넛 먹으면서 읽음 더 재밌겠어요.
영화도 있나 봐요??^^

청아 2021-11-05 14:14   좋아요 5 | URL
초반부터 재미나서 기대가됩니다ㅋㅋㅋ안그래도 지금 간식꺼리를 사다날랐는데 이 구절의 여파였나~싶네요ㅋㅋㅋㅋ 1994년 독일영화가 있어용~♡

책읽는나무 2021-11-05 14:54   좋아요 5 | URL
책 한 권씩 독파 할 때마다 우리 1키로씩 계속 찌겠습니다ㅋㅋㅋ
어제도 커피랑 쿠키랑 먹으면서 한 권 완독 했거든요ㅋㅋ
커피 안마시면 책을 읽을 수 없고,커피엔 또 빵이랑 쿠키가 빠질 수 없고...개미지옥 입니다ㅜㅜ
저도 나중에 이 책 읽어 볼게요^^
간식거리와 함께요ㅋㅋㅋ

청아 2021-11-05 15:08   좋아요 4 | URL
그러게 말입니다ㅋㅋ저도 책 때문에 커피 많이 마셔요ㅋㅋㅋㅋ주말엔 코코아~♡
여기 북플에 간식 사진 올라옴 또 챙겨먹구요 안그래도 살쪄서 요즘 거의 매일 걷기도 하고 있어요. 책도 쌓아놓고 간식도 쌓아놓고ㅋㅋ아웅😆

페넬로페 2021-11-05 16:0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내 손을 계속 놓지 않을 남자와는 전차에서 서서 가도 힘들지 않을듯 해요~~ㅎ~~ㅎ~~

청아 2021-11-05 16:33   좋아요 3 | URL
그럼요~♡♡ 한 발 들고 가는 것도 힘들지 않겠죠!!ㅋㅋㅋㅋ 페넬로페님은 로멘티스트~♡

mini74 2021-11-05 16: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고딩때 옆 남고에 이대팔! 이라고 불리는 넘 있었어요 ㅎㅎ 가르마를 항상 반듯하게 그 짧은 머리에도 2:8로 하고 다녀서 ㅎㅎ 몹쓸 가르마에도 잘생겼던 그 넘 생각나네요 ㅎㅎ

청아 2021-11-05 16:35   좋아요 3 | URL
아앗~♡♡ㅋㅋㅋㅋㅋㅋ별명이 압권이네요! 2대 8가르마를 하고도 잘생겼다니 오오ㅋㅋ👍👍

서니데이 2021-11-05 21: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앉아서 가고 싶어요. 다이어트는 다른 걸로 하면 안될까요.
미미님,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청아 2021-11-05 21:29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ㅋㅋ북플 들어오면 함께 책도 읽고 댓글 보면 웃을 일도 늘어나서 더 즐거워요! 서니데이님은 느낌적으로 다이어트 걱정은 없으실것 같아요~♡ 좋은 밤 되세요~🧚‍♀️

서니데이 2021-11-05 23:53   좋아요 1 | URL
아닙니다.
저는 계속 다이어트 합니다. 시도만.^^

붕붕툐툐 2021-11-05 22: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재치 만점이네요~ 저런 사람 싫은데-재깍 자리 비워주는 사람이 더 좋은 거 같아요-나와 함께이길 바라서라면 너무 사랑스러울 듯!!!!-사랑을 모르는 툐툐로부터

청아 2021-11-05 22:50   좋아요 3 | URL
ㅋㅋㅋ저런 이기적인 친구도 나름 재미있을것 같아요~♡ but 저는 툐툐님에게 항상 자리를 양보하겠습니다
ㅡ미미로부터~( •̀ ᴗ •́ )و!!!
 


밸러드는 한 마디로 혼자서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은 그런 존재다. 인간이라고 해야 할지 짐승이라고 해야 할지부터 헷갈릴 정도로 원초적으로 행동하고 살아가고 있다. 분명 그는 늘 라이플을 들고 다니고 먹고 마시고 마주치는 존재들과 말을 섞지만 일단 말을 많이 하지도 않을 뿐더러 고통도 그리 심하게 느끼는 것 같지 않다. 어릴 때 그의 엄마는 일찍이 도망가고 아빠는 목을 매달아 죽었는데 벨러드는 그 끔찍한 결과물을 어린 나이에 눈에 담아야 했다. 그 대목에서 이미 이 소설이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예상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건 그야말로 프로파일의 도입부가 아닌가! 하지만 밸러드는 독자를 비웃듯 예상도 경계도 훌쩍 뛰어넘는다. 


들에서 빛 하나가 타닥타닥하며 떠오르더니 파란 꼬리가 달린 로켓이 큰개자리를 향해 미끄러지듯 날아갔다. 로켓은 하늘을 향해 젖혀진 그들의 얼굴 위 높은 곳에서 터졌고, 불이 붙은 글리세린 비말들이 밤을 가로질러 확 퍼지다가 느슨하게 풀리는 뜨거운 빛 띠들이 되어 하늘을 따라 자취를 남기면서 내려오다 곧 타버리고 무無로 돌아갔다.  - P82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더 로드'를 영화로 봤었는데 그 두 작품 모두 코맥 매카시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뭔가 묘하게 독특하고 기분 나빠지는 분위기. 그럼에도 끝까지 집중했던 작품들이었는데 '신의 아이'도 마찬가지다. 241페이지에 불과하지만 쉽게 읽히지 않고 쉽게 받아들여 지지도 않는다. 이 끔찍한 캐릭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테네시주 서비어빌이란 곳의 부랑자? 밸러드는 징역을 살고 나온 뒤 27의 나이에 지내던 곳에서도 쫒겨났다. 마치 세상에 버려진 밸러드처럼 낡아 뼈대만 남은 오두막에서 겨우 몸을 뉘었지만 그마저도 불이 나버려 재만 남고 사라진다. 이제 산으로 올라가 축축한 동굴을 거처로 삼은 그는 경계밖으로 쫒겨난 짐승과 같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어느 날 저녁 불 옆의 요에 누워 있던 밸러드는 작은 굴의 어둠으로부터 박쥐들이 나와 하데스에서솟아오르는 영혼들처럼 재와 연기 속에서 날개를 거칠게 퍼덕이며 머리 위의 구멍을 통해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박쥐들이 사라진 곳에는 차가운 별무리가 연기 구멍을 가로질러 제멋대로 뻗어 있었고 그는 그것을 살피며 저것들은, 또 자신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생각했다.- P173


그에 관해 떠도는 소문들이 이 사람 입에서 저사람 입으로 한 번씩 페이지를 장식한다. 누군가의 입에 끔찍한 이야기로 오르내리는 인간. 그가 바로 밸러드다. 이 대목에서는 언뜻 조셉 콘래드가 떠오른다. 어두운 밤, 목소리를 낯춰 전달하게 되는 정상과 빛과는 거리가 있는 내용의 속삭임.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야생화를 그리는 화가처럼. 그런 시인처럼. 덤덤하고 무심하게 코맥 매카시는 밸러드를 표현하고 있다. 때때로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떠올리게 되는 시적인 묘사로 차가운 잿빛에 마력을 더한다. 드물게 헛웃음을 유발하는 순간들은 덤이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끔씩 "오 맙소사"를 연발했다. 얼어붙은 밤 하늘에 대고 욕지기를 퍼붓는 이 남자는 영화 '할로윈'의 마이클 마이어스와도 닮았다. 매카시는 짧막한 사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단 몇 줄. 머리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그런 범죄를 범인의 곁에서 경험해 볼 수 있도록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그는 구덩이에서 걸어나와 밝아진 날을 보면서 너무 지쳐 흐느낄 뻔했다. 죽어 전설이 된 그 광야에서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고 숲은 서리꽃 화환을 두르고 있었으며 잡초가 하얀 수정 환상들로부터 동굴 바닥의 돌 레이스처럼 삐죽삐죽 솟아 있었다. 그는 욕을 멈추지 않았다. 그에게 말을 거는 목소리는 악마가 아니라 가끔 제정신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오래전에 벗어던진 자아였다.  - P192

  성서의 '광야'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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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1-04 18:22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바르뎀이 저는 너무 혐오스럽고 오싹했는데 , 벨라드도 비슷한 유형의 인물인가봐요. 미미님이 머리에서 지워버리고 싶다는 그 범죄가 궁금해집니다 ~

청아 2021-11-04 18:29   좋아요 8 | URL
아아 이건 ‘19금‘이나 ‘청불‘로도 부족하고 ‘혐오주의‘딱지를 붙여야할 그런 대목들이 있어요.;;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썼다고 하네요.(⑅σ̑ᴗσ̑)ೖ♡

페넬로페 2021-11-04 18:3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밸러드가 어떤 존재일지 상상이 가네요.
경계밖으로 내몰리는 사람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같기도 합니다. 실제 사건이 어떤건지도 궁금합니다. 아마 끔찍할 듯 해요^^

청아 2021-11-04 18:52   좋아요 6 | URL
여기 일부러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쓰지 않았어요. 끔찍하기도 하고 그 단어들로 이 작품이 규정되어버릴 우려가 있을듯 해서요. 소설에서 이런 범죄도 다룰 수 있다고 생각은하는데 달갑지 않은건 분명합니다(✿ >︡ . <︠ )♡

coolcat329 2021-11-04 19:2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길지 않은 소설이 쉽게 읽히지도 않고 공감도 안된다니 괴로운 독서였겠어요.ㅠ
그래도 얼마나 끔찍한 인물일지 궁금하네요.

청아 2021-11-04 19:44   좋아요 5 | URL
그럼에도 시적인 묘사가 무척 매력적이고 강렬해서(몇몇곳은 읽고 또 읽음)별 5개를 줘야할지 잠시 망설였어요. 서술 방식 자체가 좀 독특해요 추천하기는 범죄요소땜 망설여지는데 이인간이 그래서 어찌될까 끝까지 보게 됩니다. 실험적인 작품에 도전하고 싶으시면..
( ´・֊・` )フッ♡

Falstaff 2021-11-04 19:48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아 몰라요, 몰라.
전 하여튼 매카시, 이제 손절입니다.

청아 2021-11-04 20:00   좋아요 6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저는 <핏빛 자오선>이랑 <카운슬러>두 권은 읽어보려고요.(๑>ᴗ<๑)♡

새파랑 2021-11-04 19:5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인간인지 짐승인지 고민이 되는 책이군요. 최신 트렌드 인가봐요 ^^ 간만에 듣는 러브 허츠~!!

청아 2021-11-04 20:03   좋아요 6 | URL
자꾸 어둠의 자식들에 손이 가네요ㅎㅎㅎ이것참! 가사나 멜로디가 이 인물에게 딱인듯해요(∩_∩)♡

붕붕툐툐 2021-11-04 21:2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 미미님, 제2의 성 이후에 완전 소설 달리시네용? 그것도 좀 어두운 소설?ㅎㅎ 미미님이 페이지가 안 넘어가신다니 읽기는 좀 힘들거 같은데 너무 궁금하긴 하네용~

청아 2021-11-04 21:47   좋아요 3 | URL
(뜨끔)그러게요ㅋ자꾸 극단적인 인물들에 손이가서 저도 지금 제가 왜이러나 고민?하는 중입니다ㅋㅋㅋㅋ다음은 꼭 평범한 작품으로!ʕ; •`ᴥ•´ʔ♡공쟝쟝님 말씀대로 <제2의성>글이 작아서 다른 책이 상대적으로 쉽게 읽히는것 같아요

책읽는나무 2021-11-04 21: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더 로드 예전에 읽다가 포기했었는데 그 작가의 작품이었군요?
음....미미님의 리뷰를 읽어 보니 더 급 땡기네요?ㅋㅋㅋ
저번엔 잠자냥님 서재에서 읽어 보고 한 번 읽어봐야지~싶었는데....두 분은 독서취향이 비슷하신가 봅니다~^^
이래서 제겐 읽어야 할 책들이 또 늘어나게 되구요ㅋㅋㅋ

청아 2021-11-04 21:55   좋아요 4 | URL
나무님~♡ 이 책은 아주 끔찍한 범죄가 담겨 있어서 자신있게 추천드리진 못하겠어요ㅋㅋㅋㅋ힌트 드리자면 성범죄입니다ㅠ잠자냥님 리뷰보고 따라 읽었는데 약간 그부분에서 저는 힘들었어요. 그럼에도 도전하고 싶으시다면 👍개인적으로는 시적인 묘사들 때문에 나중에 다시 한번 꼭 재독해야지싶은 작품이긴합니다ㅋㅋㅋʚ(ȉˬȉ⁎)ɞ˒˒♡

서니데이 2021-11-04 21: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하드보일드가 아니라 하드고어할 분위기네요.
미미님, 잘읽었습니다. 좋은밤되세요.^^

청아 2021-11-04 22:06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어떤 분은 미국 남부고딕 스타일이라고도 하던데 영화장르로는 말씀하신 하드보일드도 적절할것같고요 하드고어의 기미도 아주 조금은 있습니다.(솔직히 장르구분 잘 안되는 미미)서니데이님 덕분에 빵터짐요ㅋㅋ(๑˃̵ᴗ˂̵)♡ 굿밤되세요!

그레이스 2021-11-04 22: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정영목 번역은 꼭 챙겨보는데 고딕소설이라고 해서 주저하고 있어요^^
누보로망, 고딕소설은 안 맞는듯요;;

청아 2021-11-04 22:29   좋아요 2 | URL
네 저도 번역자가 정영목님이길래 반가웠어요! 고딕소설이라 고민되신다면 패스하시는 것도 나쁘지않을 듯합니다. 추천드리기가 참 힘든작품이예요.;; 개인적으로는 읽어볼만 했지만 분명 호불호가 갈릴것같아요.(⭒•͈ 𓎺 •͈ )♡

그레이스 2021-11-04 22:34   좋아요 2 | URL
미미님 가이드 감사합니다 ~♡

기억의집 2021-11-04 23: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맥카시의 신작인가요?? 저도 맥카시 작품 몇 권 읽었는데.. 이야기는 기억 안 나지만그 때 느낌이 와일드하면서도 드라이하다는 느낌은 남아 있어요. 꾸준히 작가의 작품을 찾아 읽지는 않지만 관심은 언제나 가요!!!

청아 2021-11-04 23:49   좋아요 1 | URL
1970년대 썼던 작품인데 이번에 국내에 번역,출간되었어요. 특히 좋았던 포인트가 몇 군데 있었는데 평이한 내용이라 글에 담지 못해서 아쉬워요. 네! 이 작품에도 와일드 하면서도 드라이한 느낌이 있는데 유독 그런 부분이 저도 기억에 남았어요. 끔찍한 범죄 장면이 있지만 읽어보셨고 관심있으시다면 도전해보세요(◍•ᴗ•◍)♡

기억의집 2021-11-04 23: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맥카시는 언제나 총이 빠지지 않네요. 미미님 글 읽으면서 문득 자신의 뗄 수 없는 또 다른 팔인가 하는 생각이…

청아 2021-11-04 23:45   좋아요 1 | URL
그런가요?! 다른 작품도 얼른 읽어보고 싶어요. 남부고딕소설이라 그런가봐요. 서부의 셰익스피어라고도 불린대요ㅎㅎ

잠자냥 2021-11-04 23: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으으 저는 아무래도 이 작가는 제 취향이 아닌 듯합니다. 사놓은 책은 마저 읽겠지만 그 후로는…… 암튼 그 장면(?) 사건(?) 굳이 그래야 하나 싶은….

청아 2021-11-05 00:10   좋아요 1 | URL
아웅..저도 그 장면들이 힘들더라고요. 소설에서 이 범죄를 처음 읽은ㅠ 역시 영화보다 소설이 멘탈타격이 크구나 느꼈어요. 활자의 위력! 찾아보니 이런 사건에 관해 매카시가 접하고 나서 쓴 소설이더라구요. 그 사건의 핵심 요소였나봐요.거시기가;; 아웅참...
( ु⁎ᴗ_ᴗ⁎)ु♡

바람돌이 2021-11-05 00: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코맥 매카시 책 딱 한권 모두가 예쁜 말들 봤는데 말씀하시는 책들과 완전 다른 분위기에요. 저는 너무 좋아서 코맥 매카시 급관심가고 있는 작가인데 말입니다. ㅎㅎ 저는 국경 3부작 일단 읽어보고 다른 책들은 판단해봐야겠어요. ^^

청아 2021-11-05 09:13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작품이 첫 책인데 매운맛을 선택했나봐요ㅎㅎ바람돌이님의 국경 3부작 리뷰 기대할께요( ^o^)♡

독서괭 2021-11-05 01: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매카시 한권도 안 읽어본 사람인데… 혐오주의 수준이라 하시니 으윽 이 책은 손이 안 갈 것 같네요. 미미님 제2의성을 뛰어넘으시니 독서력이 더 업!!ㅎㅎ

청아 2021-11-05 09:22   좋아요 1 | URL
범죄에 관한 장면만요ㅎㅎ 나머지는 저는 볼만했고 시적인 요소가 특히 좋았고 웃긴 내용들도 좀 여기저기 있어요.ㅎㅎㅎ 제2의성~쵝오♡♡♡ ♡◕‿◕✿♡
 

밤에는 죽은사람처럼 입을 벌린 채 거기 드러누워, 얼음처럼 차갑고 검은 산물이 흐르는 개울 꿈을 꾸었다.
- P25

숲을 가로질러 저 너머에 지붕, 그리고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그는 도로 양편에 뒤집힌 차 두 대가 만신창이가 된 보초처럼 누워있는 빈터에 이르자 폐물과 쓰레기의 거대한 제방을 지나 쓰레기장 가장자리의 판잣집으로 향했다. 각양각색의 고양이가 허약한 해를 받으며 그가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밸러드는 라이플로얼룩덜룩한 커다란 수고양이를 겨누고 입으로 빵 소리를 냈다.
고양이는 무심하게 그를 보았다. 그가 별로 똑똑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밸러드는 고양이에게 침을 뱉었고 고양이는즉시 묵직한 앞발로 머리에서 침을 닦아내고 그 자리를 씻기 시작했다. 밸러드는 쓰레기와 자동차 부품들 사이로 난 좁은 길을따라 올라갔다.
- P36

밸러드가 트레일러를 지나가는데 바로 이 딸이 빨래를 널고있었다. 그녀 옆 오십 갤런들이 드럼통에 남자 하나가 앉아 있었는데 그가 고개를 돌려 눈을 가늘게 뜨고 밸러드를 보며 말을 걸었다. 딸은 그를 향해 입을 오므리고 윙크를 하더니 고개를 젖히고 미친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밸러드는 싱긋 웃으며 라이플 총열로 자기 다리 옆쪽을 툭툭 쳤다.
어떻게 지내, *젤리빈 , 그녀가 말했다.

*무기력하고 꼴 보기 싫은 남자를 가리킨다 - P39

잘 지내나 다퍼즐, 밸러드가 말했다.
잘 지내나 레스터.
그는 입에 구슬을 잔뜩 문 사람처럼 말하며 염소뼈 아래턱 관절을 힘겹게 움직였다. 원래 턱은 총에 맞아 떨어져나갔다.
밸러드는 마당에서 손님 맞은편으로 가 뒤꿈치에 엉덩이를 대고 쭈그리고 앉았다. 변비에 걸린 *가고일‘들 같았다.

*유럽 기독교 사원의 벽에 붙어 있던 괴물을 본뜬 석상. 날개 달린 용이나 인간과 새를 합성한 모습 등 여러 형상이 있다 - P59

서비어 카운티 보안관이 법원 문으로 나와 포르티코 에 서서밑의 회색 잔디를 살폈다. 그곳에는 벤치들이 놓여 있고 집회를연 서비어 카운티 주머니칼 협회 사람들이 깎고 중얼대고 침을뱉고 있었다. 그는 담배를 말고 나서 담배 봉투를 맞춤 셔츠의가슴주머니에 도로 넣고 담배에 불을 붙인 다음 층계를 내려와주인이나 되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는 이 작은 고지대 군청소재지의 아침 상황을 살폈다.
- P61

내가 문제가 생긴 건 모두 위스키나 여자나 그 둘 다 때문이었어. 밸러드가 말했다. 그는 남자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자주들었다.
내가 문제가 생긴 건 모두 붙잡혔기 때문이었어, 흑인이 말했다.
일주일 뒤 어느 날 보안관이 복도를 따라 걸어오더니 깜둥이를 데려갔다. 집으로 날아가네, 깜둥이가 노래를 불렀다.
날아가고말고, 보안관이 말했다. 네 창조주에게로 날아가지.
니미씨발놈처럼 날아, 깜둥이가 노래했다.
걱정하지 마, 밸러드가 말했다.
깜둥이는 그러겠다 그러지 않겠다 말이 없었다.
- P69

어쨌거나 나는 나와서 거기 링에 올라갔어. 정말이지 바보가된 느낌이더군, 내 친구들이 다 거기서 계속 소리를 지르고 있으니 말이야. 나는 나와 함께 있던 귀여운 아가씨를 내려다보고 크게 윙크를 한 번 해주었는데 그때쯤 그 늙은 유인원을 데리고 나오더라고, 유인원한테는 재갈을 씌웠어. 그 자식이 다정한 눈으로 나를 건너다보더라고, 자, 사람들이 우리 이름을 부르고 난리였는데 그놈의 유인원 이름이 뭐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네. 어쨌든 어떤 아이가 커다란 저녁식사 종을 흔들었고 나는 걸어나가 그놈의 유인원 주위를 뱅글뱅글 돌았어. 거기 그놈한테 풋워크를 좀 보여준 거야. 놈은 아무 짓도 하지 않을 것 같아서 내가팔을 뻗어 한 방을 세게 먹였지. 놈은 그냥 다정하게 나를 보기만 하더라고. 뭐, 나야 그냥 자세를 취하고 다시 쳤을 뿐이고, 머리 옆쪽에 정통으로 먹였지. 그러니까 놈의 머리가 뒤로 확 젖혀지면서 눈이 다정하게 야릇해지더라고, 그래서 내가 말했지.
자, 자, 이놈 아주 착하구나. 오십 달러는 이미 번 거나 다름없었지. 나는 몸을 흔들며 돌다가 다시 치러 갔는데 바로 그때 놈이내 머리 위로 뛰어올라 내 입에 발을 쑤셔넣고 내 턱을 찢으려고하는 거야.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지. 사람들이 그걸나한테서 절대 떼어내지도 못할 것 같았고.
- P76

들에서 빛 하나가 타닥타닥하며 떠오르더니 파란 꼬리가 달린 로켓이 큰개자리를 향해 미끄러지듯 날아갔다. 로켓은 하늘을 향해 젖혀진 그들의 얼굴 위 높은 곳에서 터졌고, 불이 붙은글리세린 비말들이 밤을 가로질러 확 퍼지다가 느슨하게 풀리는 뜨거운 빛 띠들이 되어 하늘을 따라 자취를 남기면서 내려오다 곧 타버리고 무無로 돌아갔다.  - P82

사냥개들이 산마루의 비탈에서 눈을 가로지르며 가늘고 어두운 선을 한 줄 남겼다. 한참 아래 그들이 추격하는 멧돼지는 뻣뻣한 다리로 성큼성큼 묘하게 달리며 사선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겨울 풍경을 배경으로 등이 우뚝했고 아주 검었다. 그 옅은푸른색 광활한 공허에서 사냥개들의 목소리가 악마 요들 가수의외침처럼 메아리쳤다.
멧돼지는 강을 건너고 싶지 않았다. 정작 건넜을 때는 너무 늦었다. 멧돼지는 만질만질하게 변한 모습으로 김을 뿜으며 강가버드나무에서 나와 평원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뒤에서 개들이히스테리에 사로잡혀 곤두박질치듯 산비탈을 내려왔고, 그들 주위에서 눈이 폭발했다.  - P82

밸러드는 기울고 회전하고 눈을 파고들어 진흙을 휘젓는 이발레를 지켜보았고, 매혹적인 피가 넘실거리며 그 자리에 전투를 기록하고 파열된 허파에서 터져나와 흩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시커먼 심장의 피, 바람개비처럼 돌아가고 피루엣을 하다가마침내 총소리들이 울려퍼지면서 다 끝났다. 어린 사냥개 한 마리는 멧돼지의 귀를 물고 당겼고 다른 한 마리는 밝은색 밧줄 같은 내장을 눈 위에 포개놓은 채 죽어 쓰러졌고 또 한 마리는 낑낑거리며 자기 몸을 질질 끌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 P87

그거하고 어울릴 것들도 몇 가지 필요해.
필요한 게 전부 뭔데요? 여자가 말했다.
속바지가 몇 벌 필요해, 밸러드가 불쑥 내뱉었다.
여자는 주먹에 대고 기침을 하더니 몸을 돌려 통로를 거슬러올라갔고 밸러드는 불이 붙은 얼굴로 뒤따랐다.
- P123

이제얼어붙어라, 이 개자식아, 그는 창문 너머 밤에게 말했다.
- P128

아침이 되기 한참 전에 밸러드를 눈비에서 지켜주었던 집은발치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판자 더미를 거느린 시커먼 굴뚝만남았다. 밸러드는 질척한 땅을 가로질러 노에 올라서서 올빼미처럼 그 위에 앉았다. 그 온기를 찾아서. 그는 혼잣말하는 버릇이 든 지 오래였으나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 P131

정말이지 무시무시하게 추운 겨울이었다. 그는 겨울이 끝나기전에 자신이 가파른 산등성이의 이끼 낀 이판암에서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비스듬하게 자란 스산한 가문비나무들 중 하나처럼보이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겨울의 파란 어스름을 뚫고 커다란숲에 엎드린 거대한 나무들의 잔해와 바위 사이를 올라가다가그는 그런 격변에 놀랐다. 숲의 무질서, 나무는 쓰러지고 새길이필요했다. 책임이 주어졌다면 밸러드는 숲과 사람의 영혼에 더질서 잡힌 것들을 만들었을 것이다.
- P167

봄에 혹은 따뜻해진 날씨에 숲의 눈이 녹으면 겨울의 발자국들이 가느다란 발판들 위에 다시 나타나고, 눈은 예전에 묻힌 어슬렁거림, 다툼, 죽음의 현장을 겹쳐 쓴 글씨처럼 드러낸다. 다시 빛을 본 겨울 이야기들은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선 시간과같다. 밸러드는 발길질을 해가며 전에 다니던 좁은 길을 따라 숲을 통과해 내려가, 길이 언덕을 넘어 자신의 예전 집으로 방향을트는 곳에 이르렀다. 오래전에 오고간 것들, 작은 버섯들처럼 눈에서 음각 무늬로 솟아오른 여우의 발자국들과 새들이 눈 위에피 같은 선홍색 똥을 싸놓은 곳의 산딸기 자국들.
- P170

그는 오래전부터 그에게 당한 여자들의 속옷을 입고 있었으나이제는 여자들의 겉옷도 입고 나타나는 버릇이 들었다. 잘 맞지않는 옷을 입은 고딕 인형, 하얀 풍경 속에서 동떨어져 밝게 등둥 떠다니는 그 암적색 입, 저 아래 골짜기에는 녹이 슨 듯한 지붕 몇 개와 아주 흐릿한 연기. - P173

어느 날 저녁 불 옆의 요에 누워 있던 밸러드는 작은 굴의 어둠으로부터 박쥐들이 나와 하데스에서솟아오르는 영혼들처럼 재와 연기 속에서 날개를 거칠게 퍼덕이며 머리 위의 구멍을 통해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박쥐들이 사라진 곳에는 차가운 별무리가 연기 구멍을 가로질러 제멋대로 뻗어 있었고 그는 그것을 살피며 저것들은, 또 자신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생각했다.
- P173

그는 라이플을 잡은 팔을 그 위에 걸쳤다. 상자가 뒤집히더니 둥둥 떠내려갔다.
밸러드와 통나무는 계속 여울 아래 급류로 밀려내려갔고 밸러드는 소리들의 대혼란 속에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제 어떤정신 나간 영웅처럼 또는 늪지로 떠밀려온 애국적 포스터의 지저분하게 젖은 패러디처럼 한쪽 팔로 허공에 쳐들고 있는 라이플. - P190

그는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위로 올라와 물을 뱉어냈고, 두팔을 휘저으며 가라앉은 개울둑을 표시하는 줄지은 버드나무들을 향해 나아갔다. 그는 헤엄을 칠 줄 몰랐지만, 그를 어떻게 익사시키겠는가? 분노가 그를 물위로 띄우고 있는 것 같았다. 사물의 이치가 여기에서는 정지하고 있는 듯했다. 그를 보라. 그는같은 인간들, 당신 같은 인간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는 그들과 함께 기슭에 이르렀고 그들은 그에게 외치고 있었다. 불구자와 미친 자들에게 젖을 먹이고, 자신들의 역사에서 잘못된 피를 원하고 또 그런 피를 늘 가지기 마련인 종족.
하지만 그들은 이 남자의 목숨을 원한다. 그는 그들이 밤에 랜턴을 들고 저주의 외침을 내지르며 자신을 찾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밀어올려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 왜 이 물은 그를 데려가지 않을까?
- P190

그는 구덩이에서 걸어나와 밝아진 날을 보면서너무 지쳐 흐느낄 뻔했다. 죽어 전설이 된 그 광야에서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고 숲은 서리꽃 화환을 두르고 있었으며 잡초가 하얀 수정 환상들로부터 동굴 바닥의 돌 레이스처럼 삐죽삐죽 솟아 있었다. 그는 욕을 멈추지 않았다. 그에게 말을 거는 목소리는 악마가 아니라 가끔 제정신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오래전에 벗어던진 자아였다.  - P192

그건 우연이었는데 좁은 장소라 양쪽무리 모두 달아날 수가 없었거든, 아니, 그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안타까운 인간들이었어. 죄다 삼백육십 도 개자식들이었다.
고, 이건 우리 아버지가 쓰던 말인데 어디에서 보나 개자식이란뜻이야.
- P202

그의 뼈는 달걀 껍데기처럼 깨끗하게 닦여 광택이 나고, 골수가 흐르던세로 홈에서는 지네가 잠을 자고, 갈비뼈들은 거무스름한 돌 사발에 담긴 뼈 꽃처럼 늘씬하게 흰빛으로 구부러져 있고, 그는 어떤 야수 같은 산파가 그를 이 바위 감옥으로부터 쪼개서 떼어내주기를 바랄 만한 이유가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바랐다.
- P233

그는 어떤 범죄로도 기소되지 않았다. 녹스빌 주립병원으로옮겨져 사람들 두개골을 열고 숟가락으로 뇌를 퍼먹던 미친 신사의 옆 감방에 들어갔다. 밸러드는 바람을 쐬라고 밖에 내보내줄 때 그를 가끔 보았지만 미친 사람에게 할 말은 없었고 그 미친 사람은 자기 범죄의 극악무도함으로 인해 오래전부터 말을잃어버렸다. 그의 금속 문 걸쇠에 구부러진 숟가락이 꽂혀 있어서 밸러드는 그게 미친 사람이 뇌를 퍼먹던 숟가락이냐고 한 번물었지만 답은 얻지 못했다.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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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1-04 17: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미미님
맥카시옹의 묵시록의 세계로!!

청아 2021-11-04 17:52   좋아요 2 | URL
♡.♡ 묵시록 딱입니다. 아찔했어요! 😭

2021-11-05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05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킁킁거리는 짐승의 소리, 식식거리는 멧돼지 소리, 으르렁거리는 사자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그는 조용히 주위를 살폈다. 그것은 자신의 거친 숨소리였다. p.514


 <목로주점>의 주인공 제르베즈의 둘째 아들 자크 에티엔은 6살에 홀로 고모에게 맡겨지는데 그는 자라서 일등기관사가 된다. 하지만 워낙 어린 나이에 가족에게 버림받았다는 무의식적 반감이 자리했던 것인지 대대로 내려오는 유전적 기질과 맞물려 여성에게 성적 욕망을 느끼면 그와 동시에 불같은 살의를 품게 된다. 그래서 그는 오직 기관차로 달리며 무념무상에 빠지는 상태에서만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법원장이자 철도회사 이사장인 그랑모랭이 살해당한 일에 연류된 세브린이라는 유부녀와 정열적인 사랑에 빠지고 그녀로 인해 자신의 병이 치유됐다고 느낀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둘만의 화젯거리를 갖게 되었는데, 일종의 우정의 공모 관계라고 할 수 있는 그 상황에서 그들은 마침내 눈짓만으로도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방문할 때마다 그는 그녀에게 눈짓으로 그동안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기지는 않았는지물었다. 그녀도 같은 식으로 살짝 눈꺼풀을 깜빡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그런 다음 그들의 손은 남편의 등뒤에서 서로의 손을 갈구했고 그손길은 점점 더 대담해졌다. 그들은 오랫동안 손을 꼭 쥐는 것으로 감정을 전달했으며, 상대방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아주 소소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커져만 가는 관심을 따뜻한 손가락 끝으로 전하며, 서로 묻고 답했다.  - P252


 자크와 세브린이 불륜관계를 이어가며 매주 금요일 오붓한 시간을 함께 하기 위해 파리행 열차를 타고 이동할 때마다 자크를 오랜 시간 짝사랑했던 사촌 누이 플로르는 질투로 점점 눈이 먼다. 그녀는 건널목 차단기 앞에서 일했는데 짝사랑하던 자크가 지나갈 때마다 놓치지 않고 그의 모습에 눈길을 주었던 그곳에 서서 이제 두 연인의 행복한 일탈 여행을 매주 지켜봐야만 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녀가 찾고 있는 사람이 바깥을 내다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지 못해 고개를 아무리살짝 들려고 조심한들 아무 소용이 없었다. 연적은 늘 발각되었으며 두 여자의 시선은 마치 장검이 부딪치듯 그렇게 마주쳤다. 기차가 휩쓸고 지나가버리면 기차가 싣고 가는 그 행복에 억장이 무너져서 하릴없이 눈으로 뒤쫓기만 하는 한 여자가 땅바닥에 우두커니 남겨졌다.- P399


 자크의 연인이 된 세브린을 비롯해 그녀의 남편, 철도회사와 관련된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논리와 맥락으로 잘 짜인 놀라운 드라마가 완성된다. 졸라는 <인간짐승>이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정교한 서사 구조를 갖추었다고 자부했다. 세기말 20 세기를 향해 가는 인간군상의 짐승적인 범죄 본능과 욕망을 기계문명의 상징인 기관차를 통해 보여 주는 것이다. 여태까지 에밀졸라의 작품 중<목로주점>과 <제르미날> <인간짐승>을 읽었는데 이 작품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다. 기관차가 달리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마치 현장을 생생하게 눈앞에서 보듯 속도감과 입체감을 느낄 수 있었다. 러시아에 톨스토이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에밀졸라가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때 기관차의 폭주와 함께 몰아치는 주제의식이 숨막히게 다가와 울컥하고 뭉클했다. 


졸라는 "분노하며 살 것, 한 줄이라도 쓰지 않으면 하루라도 살지 말것"을 좌우명으로 삼는다. 고결한 증오,곧 분노로 표현된 일종의 힘의 의지, 그것이 바로 1871년부터 1893까지 거의 매년 한 권꼴로 발표된 루공마카르 총서의 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은 졸라를 읽을 때 항상 새겨야 할 사항이다. ㅡp.577 옮긴이 이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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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1-11-01 22:5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1등~~~^^ 와우. 졸라행 기관차에 오르게 싶게 하는 리뷰에요. 저 정신 없는 사이 플친들 쭉쭉 달리시는 모습, 걍 부럽게만 바라본다는. ㅋ 졸라의 좌우명을 읽다, 윽!! 나 살면 안되는 거였구나. 심장을 찔렸습니다^^;;;

청아 2021-11-01 23:05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ㅋ저도 살면 안되는 1인입니다🤦‍♀️ 행복한책읽기님은 대신 깊이있는 쓰기를 하시잖아요! 1등 고맙습니다♡(❀╹◡╹)♡

scott 2021-11-01 23: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졸라행 주행 필수코스는 영화 ^^

청아 2021-11-01 23:08   좋아요 4 | URL
맞습니다ㅋㅋㅋㅋ안그래도 바로 찾아보니 이 작품 흑백영화가 있어서 책읽고 보려고 맛만봤어요!!♡(๑>∀<๑)♡

그레이스 2021-11-01 23:4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 기관차 저도 타고 싶네요
근데 짐이 너무 많아요~^^

청아 2021-11-02 00:08   좋아요 5 | URL
걱정마세요ㅎㅎ그레이스님을 위해 1등석 예약해 놓을께요~♡(๑˃̵ᴗ˂̵)♡

새파랑 2021-11-02 00:1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이 가장 좋았다. ‘ 이게 키포인트네요 ^^ 이 책 가방에 넣어놨는데 내일부터 읽겠습니다 ㅋ
11월 시작도 미미님의 독서는 폭주기관차 같아요 😄

청아 2021-11-02 00:17   좋아요 4 | URL
ㅋㅋㅋ새파랑님 분명 반하실거예요👍에밀 졸라식 거침없는 질주에 어질어질했습니다.♡(๑>ᴗ<๑)♡

페넬로페 2021-11-02 00:4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언젠가는 저도 졸라행 기차에 탑승하고야 말겠습니다. 제목 그대로 인간짐승이란 말이 무척이나 섬뜩해요^^
하루에 한 줄이라도 쓰자**

청아 2021-11-02 09:09   좋아요 2 | URL
페넬로페님♡인간짐승이 누구인지 찾아보는 재미는 덤입니다. 제 예상과 살짝? 달라서 더 좋았어요!!ㅋㅋㅋㅋ

독서괭 2021-11-02 01:0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매년 한권꼴로 발표하다니 굉장하군요..! 매년 알라딘 달력이나 노트에 혹해 사놓고 한달 쓰고 내버려두기를 반복하는 나란 인간은..!!😭

청아 2021-11-02 09:11   좋아요 2 | URL
앗ㅋㅋㅋㅋ괭님♡ 제 얘기 하셔서 깜놀했어요. 저도 해마다 반복입니다. 졸라의 좌우명 자극이 되지요!👍

붕붕툐툐 2021-11-02 07: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건 정말 폭주 기관차네용~ 자동으로 표 끊게 만드는 리뷰네요~ 아 졸라 만나야 하는데~!!ㅎㅎ 저는 왜 분노도 안하고 쓰지도 않고 사는 걸까요?ㅎㅎ
미미님 파이팅, 파이팅!!

청아 2021-11-02 09:14   좋아요 2 | URL
툐툐님♡ 이미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거 북친들은 다 알겁니다. 졸라도 툐툐님도 타인에게 본보기가 되는 행동파(♡.♡)👍

다락방 2021-11-02 07: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이거 너무 재미있겠어요. 지금 읽는 책 당장 집어던지고 인간짐슴 읽고 싶네요. 인간짐승 제 책장에 꽂혀 있는데 말입니다. 읽으면 어쩐지 할 말도 아주 많을 것 같고요!! >.<

Falstaff 2021-11-02 09:01   좋아요 3 | URL
맞아요, 맞아요. 다락방 님은 분명 몇 번 빡칠 겁니다. ㅋㅋㅋㅋ

청아 2021-11-02 09:18   좋아요 3 | URL
네!! 여성주의 관점에서도 보이는 것들이 많은데 특히 이번에 읽은 <제2의 성>에서 본 내용들이 거의 그대로 담긴듯한 대목에서는 소름이 끼쳤어요!(보부아르👍)ㅎㅎ 다락방님♡ 어서 던지고 <인간짐승> 읽으시길 강력히x10 추천드립니다!!

잠자냥 2021-11-02 10:25   좋아요 4 | URL
다락방 님 인간짐슴은 뭐예요? 근데 뭔가 더 인간짐슴이 짐승스럽네요. ㅋㅋㅋ

청아 2021-11-02 10:35   좋아요 3 | URL
아앜ㅋㅋㅋㅋㅋ잠자냥님♡!! 짐슴좋아요~♡ 고치지마세요 다락방님ㅋㅋㅋ

다락방 2021-11-02 11:19   좋아요 4 | URL
아니 대체 나란 인간은 오타의 신이란 말입니까... orz

붕붕툐툐 2021-11-02 17:51   좋아요 2 | URL
다락방님은 오타까지도 문학적이네용~ 인간짐슴~ 짐승 머슴? 찾아내신 잠자냥님도 대단~ㅋㅋㅋ 미미님처럼 저도 짐슴이 좋아요!ㅎㅎ

Falstaff 2021-11-02 09: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시공사에서 찍은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 빠졌어요. 아이고, 그거 되게 재미나요!
지만지의 <쟁탈전>, 을유의 <꿈>도 루공-마카르 총서예요.
지금 모처에서 루공-마카르 총서 전 작품의 번역을 시도하고 있답니다!
어느 출판사인지는 저도 모르지만 메이저 출판사는 아니랍니다.

청아 2021-11-02 09:24   좋아요 3 | URL
아니 제가 그 책을 빠트렸네요!!! (찰싹찰싹)이 책 주석에도 나오는 책을요. 다음은 그 책을 읽으면 되겠습니다ㅋㅋㅋㅋ한곳에서 전 작품을 ‘제대로 번역‘해 준다면 다시 꼭 구입할꺼예요! 폴스타프님 덕분에 인생소설,인생작가가 추가되었습니다. 감사해용~♡♡♡

다락방 2021-11-02 11:20   좋아요 4 | URL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너무 재미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정말 재미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사랑을 그대품안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청아 2021-11-02 11:28   좋아요 2 | URL
으앗ㅋㅋㅋㅋㅋㅋㅋ주문했어요!!
♡.♡👍

Falstaff 2021-11-02 12:24   좋아요 3 | URL
을유에서 나온 <작품>도 빠졌군요. 전 다른 출판사 같은 역자 책으로 읽어 기억하지 못했나봅니다. ㅋㅋ
제르베즈 아줌마의 첫째 아들 클로드 얘기예요!

청아 2021-11-02 12:28   좋아요 2 | URL
네! 고맙습니다~♡ 추가해놓을께요ㅋㅋ👍

mini74 2021-11-02 18: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기차 타려면 여기 줄 서면 되나요 ㅎㅎ삶은 계란 파나요 ㅎㅎ 미미님 글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

청아 2021-11-02 18:21   좋아요 2 | URL
아이참 그런 걱정을 왜하세요~♡ 미니님하고 수다떨면서 함께 먹으려고 사이다랑 실어놨지요ㅎㅎ
♡ଘ(˵╹-╹)━☆♡뿅!

서니데이 2021-11-03 00: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엔 그렇게 관심있게 읽어보고 싶지 않았는데, 좋다고 하시니 다시 보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미미님, 좋은 밤 되세요.^^

청아 2021-11-03 08:31   좋아요 1 | URL
네! 저에게는 꽤 강렬한 작품이었어요~♡ 다시 보인다 하시니 기쁩니다ㅎㅎ서니데이님 즐겁고 유쾌한 수요일 되세요.♡(~˘▾˘)~♡
 

그때가 내 삶에서 유일하게 소설 같았던 시절이지.  - P14

* 1869년 이전까지 프랑스 제2제정의 의회는 루이 나폴레옹(나폴레옹 3세)의 일당독재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1860년대 말부터 의회는 황제와 그 정부의 말을 잘 듣지 않게 된다. 1869년 5, 6월에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친정부파인 보나파르트파는 정통파와 온건파로 양분되었으며 반정부파는 총 292석 중 71석(구왕당파가 41석, 공화파가 30석)을얻는 데 그쳤지만 이전에 비한다면 그 자체로 선전이었으며, 특히 총 득표수에서는 보나파르트파에 크게 밀리지 않았고, 무엇보다 도시에서 대약진을 했다.
- P19

그가 그런 식으로 고통을 가하면서 그녀의 몸속에 밀어넣고 싶은 것은 바로 자신의 의지였다.  - P49

그녀는 넋이 나간 채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끔찍하리만치 비통한 이 밤에 갇혀 두 처녀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 P50

그는 극미그리량의 알코올에도 자신이 미쳐버린다는 것을 잘 알기에 단 한 잔의 술갔다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 때문에 대가를 치르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술을 마셨던 그의 아버지 대, 할아버지 대, 그 술주정뱅이 가계로부터 자신이 나쁜 피를, 서서히 진행되는 중독성을, 여자를 잡아먹는 늑대 무리에 자신을끌어넣어 깊은 숲속으로 몰고 가는 야만성을 물려받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 P86

전속력으로 달리는 기관차 바퀴의 격렬한 진동에 몸을 실었을 때, 신호등을 주시하며 선로를 살피느라 정신을 집중하면서 역전기逆轉機 핸들에 손을 올려놓았을 때 비로소 그는 무념무상이 되어 폭풍우 소리를 내며 무섭게스쳐가는 맑은 대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실 수 있었다. 그가 마음에위안을 주는 애인과 진배없이 자기 기관차를 그토록 열렬히 사랑하는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가 기관차로부터 기대하는 것은 오직 행복이었다. 그가 직업기술학교를 졸업하고 머리가 똑똑한데도 기관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던 것은 고독과 황홀 속에서 살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별다른 야심도 없어서 사 년 만에 일등기관사의 자리에 올라 일찌감치 2800프랑의 본봉에 화차 관리와 정비 수당까지 합쳐4천 프랑이 넘는 수입을 올리면서도 그 이상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 P88

 어떤여자를 우연히 마주쳤을 때 그 즉시 그 여자를 덮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 싸움을 벌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압도적인 침묵과 끝 모를 고독감이 그를 조금이나마 위로해주면서 사람 하나 마주치는 일 없이 계속 걸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이 황량한 고장처럼 적막하고 인적 없는 삶을 동경하도록 이끌었다.  - P91

루앙의 검찰청 검사가 전직 법관이 희생자로 발견된 이 석연치 않은 참극에 지레 겁을 먹고 머리를 굴려 장관에게 사건을 이첩했고, 장관은 그것을 다시 자신의 사무처장에게 넘기고 자기는 손을 털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하나의 인연이 있었다. 카미라모트는바로 그랑모랭 법원장의 동창이었다. 그랑모보다 몇 살 아래인 그는그랑모랭과 막역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여서 그랑모랭에 대해서라면그의 비행에 이르기까지 속속들이 꿰뚫고 있었다.  - P142

 예심판사는 자신으로서는 무모하게 덤비지 않는 것이 상책이며, 사전 승인없이는 어떠한 것도 감행하지 말아야 처신에 이롭겠다는 것을 간파했다. 더 나아가 그는 사무처장 역시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본부 차원에서 수사관들을 가동시켰다는 확신을 안고 루앙으로 돌아왔다. 세상이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것은, 필요한 경우 그 진실을 보다 효과적으로은폐하기 위해서였다.
- P142

그는 자기가 왜 법무부가 아니라 사무처장의 개인 거주지로 불려왔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요컨대, 사무처장이 잔뜩 굳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드니제가 결론을 지었다. "우리가 꽤 골치 아픈 사건을 다루게 될 거란 말입니다."
카미라모트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는 다른 경우의 재판, 곧 루보 부부의 재판 결과를 따져보고 있었다. 만일 남편이 중죄재판소에 선다면그자가 다 불고 말 것이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했다. 자기 부인 역시처넛적부터 꾐에 빠졌고 이후에는 간통을 일삼았다는 점, 그리고 자기는 질투에 눈이 멀어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는 점 등을 까발릴것이다. 이 사건이 더이상 한 하녀와 한 전과자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고, 그 예쁜 여자와 결혼한 철도원이 부르주아계급과철도 분야의 일각을 완전히 와해시켜버릴 것이라는 점은 일단 논외로치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법원장과 같은 인물을 기화로무엇을 더 능멸하게 될지 어찌 알겠는가? 어쩌면 사람들은 예측하지못한 혐오감에 빠져 동요할지도 모른다. 안 된다. 결단코 안 된다. - P207

그녀는 그에게 이제 말할 테면 해보라고 다그친 것이다. 그녀가 그의 것이 되었듯이 그는 그녀의 것이 되었다. 고백이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었다.
"앞으로 날 힘들게 하지 마요, 당신은 나를 믿지요?"
"그래요. 당신을 믿어요." 그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P218

"알다시피 나는 당신 친구이고 당신은 나를 두려워할 아무런 이유가없어요." 그가 그녀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나는 당신의 일을 알고싶지 않아요. 당신이 바라는 대로 될 거예요…… 내 말 알겠어요? 나는 전적으로 당신 거예요. 당신 마음대로 해도 돼요."
- P219

그때부터 두 사람은 둘만의 화젯거리를 갖게 되었는데, 일종의 우정의 공모 관계라고 할 수 있는 그 상황에서 그들은 마침내 눈짓만으로도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방문할 때마다 그는 그녀에게 눈짓으로 그동안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기지는 않았는지물었다. 그녀도 같은 식으로 살짝 눈꺼풀을 깜빡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그런 다음 그들의 손은 남편의 등뒤에서 서로의 손을 갈구했고 그손길은 점점 더 대담해졌다. 그들은 오랫동안 손을 꼭 쥐는 것으로 감정을 전달했으며, 상대방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아주 소소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커져만 가는 관심을 따뜻한 손가락 끝으로 전하며,
서로 묻고 답했다.  - P252

그녀가 자크에게 반한 것은, 그녀가그의 손을 살그머니 쥐었을 때 그의 손이 그녀의 몸을 함부로 더듬지않는 것을 보고 실감했던 그의 그 부드러움, 그 온순함 때문이었다. 난생처음으로 그녀는 사랑을 느꼈다. 그래서 절대로 몸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가 이전의 두 남자에게 몸을 준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이 남자에게 순순히 몸을 준다면 그것은 자신의 사랑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무의식적인 욕망은 지극히 달콤한이 기분을 영원히 연장하는 것, 더럽혀지기 전의 새파란 젊음으로 되돌아가는 것, 좋은 남자친구를 사귀어 열다섯 살 때 그러듯 문 뒤에서입술을 고스란히 내주고 깊은 포옹을 하는 것이었다.  - P257

그렇게될 운명이었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비는 창고 지붕 위로 더욱 거세게퍼부었고, 역으로 들어가는 파리발 마지막 열차가 기적을 울리면서 평음을 내고 지축을 뒤흔들며 지나갔다.
- P266

"오, 내 사랑, 날 가져, 날 지켜줘, 난 당신이 원하는 대로만 할게.
"무슨 소리! 아니야, 내 사랑, 당신이 주인이야, 난 당신을 사랑하고당신에게 복종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거야."
- P268

그들의 마음은 어린아이의 상태, 서로 어루만지기만 해도 황홀해지는 첫사랑의 그 두근거리는 순결함을 간직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그들 사이에서는 서로의 헌신에 더 덕을보았다고 공을 돌리는 이른바 순종順從 싸움이라는 것이 계속되었다.
그는 그녀를 통해 저주스러운 자신의 유전 질환이 고쳐졌다고 생각했고, 그 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 P272

그녀는 오로지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그런사랑의 피조물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그를 부여안고 다정하게 어루만졌다. 그러면 상대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은 미친 듯한 욕정이 다시그들을 휘몰아쳤고, 때때로 그들은 그렇게 서로의 품에 안겨 한참 동안 혼절해 있기도 했다.
- P273

기관차와 객차는 이미 반쯤 눈에 뒤덮여곧 흔적도 없이 사라질 태세였다. 그 위로 이 새하얀 허허벌판의 전율하는 적막이 내리눌렀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눈은 그렇게 하얀 수의를 짜서 세상을 뒤덮었다.
- P304

그녀는항상 다른 사람을 찾는 눈치였는데, 자신의 연적이 이제는 금요일마다.
기차를 타고 지나간다는 것을 빤히 알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찾고 있는 사람이 바깥을 내다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지 못해 고개를 아무리살짝 들려고 조심한들 아무 소용이 없었다. 연적은 늘 발각되었으며두 여자의 시선은 마치 장검이 부딪치듯 그렇게 마주쳤다. 기차가 휩쓸고 지나가버리면 기차가 싣고 가는 그 행복에 억장이 무너져서 하릴없이 눈으로 뒤쫓기만 하는 한 여자가 땅바닥에 우두커니 남겨졌다.
- P399

일각이 여삼추 같았다. 텅 빈 머릿속을 그런 생각만이 넘실대며 흘러가니 시간의 척도가 폐기되어버린 것이다.  - P417

이렇듯 회사 사람들 전체가 이구동성으로 범인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두 피살자를 동정하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그 가련한 젊은 여인은 과오를 너그러이 용서받았고, 그 노인은 자기를 둘러싸고 횡행하던 불미스러운 소문들을 말끔하게 씻어내고 다시 명망을 되찾았다.
- P548

마침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그 재판이 도래했지만, 전쟁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퍼지고 프랑스 전역이 뒤숭숭한 분위기에 짓눌리면서 논쟁의 반향은 급격하게 사그라졌다. 그래도 루앙은 재판이 열린 사흘내내 열기에 휩싸였고, 법정 문은 사람들로 미어터졌으며, 예약된 자리는 도시의 귀부인들이 독차지했다. 법원으로 개조된 이래 옛 노르망디공국 제후의 궁전에 그토록 많은 인파가 몰린 적은 일찍이 한 번도없었다. 때는 바야흐로 6월 하순, 햇빛 찬란한 무더운 오후였는데, 열장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환하게 밝히며 통과한 강렬한 햇살이 벽면의떡갈나무 널빤지와, 벌집 문양의 붉은 벽지를 배경으로 도드라져 보이는 흰 대리석 십자고상, 그리고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 아주 은은하게 금빛을 발하는, 갖가지 문양이 조각된 금박을 입힌 나무 격자무늬가 인상적인 루이 12세 시대의 그 유명한 천장 위로 넘실거렸다. - P551

기차는 이제 볼벡에서 모트빌로 이어지는 평평한 고원지대를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기차는 급수를 위해 몇 군데 정해진 지점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한달음에 파리까지 가기로 되어 있었다.
무지막지하게 큰 덩어리가, 인간 짐승들로 꽉 들어차서 발 디딜 틈조차 없는 열여덟 량의 차량이 끊임없이 으르렁거리며 어두운 벌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살육의 현장으로 실려가는 그 인간 군상들은 목이터져라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는데, 그 악쓰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기차 바퀴 소리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 P566

기관차가 도중에 산산조각내버린 희생자들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있단 말인가! 기관차는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로 인해 뿌려진 피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미래를 향해 전진하고 있지 않은가? 운전자도 없이, 어둠 속 한가운데로, 마치 살육의 현장 한복판에 풀어놓은 눈멀고 귀먹은 한 마리 짐승처럼, 기관차는 이미 피곤에 절고 술에 취해 혼곤한 상태에서 악을 쓰며 노래를 부르는 병사들을 싣고, 그 총알받이들을 싣고, 달리고 또 달렸다.
- P571

졸라는 "분노하며 살 것, 한 줄이라도 쓰지 않으면 하루라도 살지 말 것"을 좌우명으로 삼는다. 고결한 증오, 곧 분노로 표현된일종의 힘의 의지, 그것이 바로 1871년부터 1893년까지 거의 매년 한권꼴로 발표된 루공마카르 총서의 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은 졸라를 읽을 때 항상 새겨야 할 사항이다.
- P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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