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광光

이게 진짜지 말입니다 물광이 빛나니, 불광이 깨끗하니하는 얘기는 이제 고향 앞으로 갓,이지 말입니다 이건 물불을 안 가리는 광이라서 말입니다 제가 지난 휴가 때 용산역을 지나는데 말입니다 거짓말 아니고 말입니다 바닥에 엎어 자던 노숙자 아저씨가 제 군화 빛에 눈이 부셔 깼지 말입니다.

우선 구두 약통에 불을 질러버리고 말입니다 불로 지져둔군화에 약을 삼삼하게 바르지 말입니다 바르고 바르고 약이 마르면 또 바르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흠집을대하는 우리의 기본적인 자세지 말입니다 깊게 파인 흠집을 약으로 메우는 것은 신병들이나 하는 짓 아닙니까 그렇게 하고 작업이라도 하면 그 약만 떨어져나오지 말입니다

중략

김병장님 그런데 참 신기하지 말입니다 참말로 더는 못 해먹겠다 싶을 때, 이렇게 질기고 징하게 새카만 것에서 광이 낯짝을 살 비치니 말입니다 - P33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1-04-30 13: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박준 시집 보니 반갑네요ㅎㅎ 저에겐 몇안되는 읽어본 시인 ㅋ 시인다운 멋진 표현~! 저도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운다고 달라지는건 없겠지만‘ 산문집도 추천합니다^^

청아 2021-04-30 13:56   좋아요 5 | URL
덕분에 두 권 빌려서 틈틈히 읽고 있어요.😆
오~산문집 제목부터 끌리는데요?!!

페넬로페 2021-04-30 14:06   좋아요 5 | URL
저도 찜합니다^^

청아 2021-04-30 14:10   좋아요 5 | URL
네~♡ 함께 읽어용!ㅋㅋㅋ

scott 2021-04-30 16:1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이분 어린이용 그림책도 썼는데 (박준시인의 아버지가 키우는 개 ‘단비‘가 주인공)
진심, 언어 천재인것 같아요 ㅎㅎ
몇줄만 여기 옮겨 볼께요.
[안녕?
안녕, 안녕은 처음 하는 말이야.
안녕, 안녕은 처음 아는 말이야.
안녕은 마음으로 주고 마음으로 받는 말이야.
그래서 마르지 않아.

안녕은 같이 앉아 있는 거야.
안녕은 노래야.
안녕은 가리어지지 않는 빛이야.
안녕은 부스러기야.
안녕은 혼자를 뛰어넘는 말이야.
안녕은 등 뒤에서 안아주는 말이야.
안녕은 눈을 뜨는 일이야.
안녕은 어제를 묻고 오늘 환해지는 일이지.
안녕은 밥을 나누어 먹는 거야.
그러다 조금 바닥에 흘리고는 씨익 웃는 거야.

안녕은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일이고,
셈하지 않고 들어주는 일이지.
그게 무엇이든.

안녕은 차곡차곡 모으는 마음이야.
마음을 딛고, 우리는.
안녕, 안녕.]

청아 2021-04-30 16:05   좋아요 4 | URL
와 좋은데요?!! 역시 문학적 감수성은 장르를 뛰어넘네요 ~♡ 이걸 알고계신 스콧님도👍👍

행복한책읽기 2021-04-30 17:45   좋아요 4 | URL
오호. scott님 이 그림책 구입하셨군요. 망설이고누르지 않았는데. <셈하지 않고 들어주는 일이지> 진짜 좋습니다^^

페넬로페 2021-04-30 18:16   좋아요 4 | URL
지난 2월~~
박준시인과 그의 아버지의 인터뷰가 신운에 실렸었는데 그 기사의 제목이
‘트럭 몰던 아버지의 감수성, 아들 박준의 시로 피었다‘ 였어요~~
아버지와 산을 같이 오르고, 덕수궁, 경복궁에도 가고~~
아버지에게 감수성을 많이 물려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청아 2021-04-30 18:24   좋아요 4 | URL
아~!! 이 시집에도 아버지가 종종 등장해요😊

행복한책읽기 2021-04-30 17: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시상에. 읽고 리뷰도 썼는데 어찌 첨 읽는 느낌이라니 ㅋ 저는 박준 시인이 직장생활하며 시를 쓰는게 인상적이었어요. 자식. 선배 시인보다 낫네.라고 생각했다는^^;;;

청아 2021-04-30 17:47   좋아요 3 | URL
역시 소설처럼 시를 다시 읽는것도 새로운 느낌인가요?! 아니 직장다니면서 시도 썼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

붕붕툐툐 2021-04-30 22: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 시 왤케 웃겨요?ㅎㅎㅎㅎㅎㅎ

청아 2021-04-30 22:55   좋아요 2 | URL
그쵸ㅋㅋㅋㅋㅋ😆😆
 

다른 사람을 법으로 지배하거나 그들 위에 군림할 수 있는 특권 계급을 창조하는 체계는 어떤 것이든 그 자체로 진정한 자유와 개인의 자율성을 파괴한다. - P97

사람들은 목욕하는 것, 과일과 채소를 더 많이 먹는 것, 집을 환기시키는것, 매일 운동하는 것, 햇볕을 쬐는 것, 밤공기, 습한 공기, 찬 공기, 건조한공기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 버리는 것, 고기를 덜 먹는 것, 음식 준비에 더좋은 방법을 선택하는 것 등을 배웠다.

개혁을 시행했던 사람들은 잊혔고, 이러한 개혁을 의료직이 엄청나게 반 -대했다는 기록도 없어져 버렸다. 

심지어 질병 및 사망의 감소, 유아 사망률 감소, 공중위생 개시, 수명 증가를 가져온 것은 바로 의료직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 P101

정규 의사는 열정적으로 조제하고, 관찰하고, (그 세기가 지날수록) 환자에게 칼을 댔다. 이것은 인정받을 만하고 아주 시장성 있는 수고를 보여 주는 전시 효과를 낳았지만 환자에게 치명적인 해를 입힐 위험을 무릅썼다.  - P103

해리엇 헌트 Harriet Hunt는 하버드 의과대학 입학 허가를 받았지만, 다른 학생들이 그녀가 입학하면 폭동을 일으키겠다며 협박했기 때문에 그 결정은 번복됐다. (하버드는 그 전 해에 세 명의 흑인 남학생의 입학을 허가했는데, 대부분의 백인 남학생들에 의하면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헌트는의료 교육을 받기 위해 "비정규 학교로 갔다.  - P107

몇 명만 언급하자면 블랙웰, 헌트, 마리 자크르제우스카 Marie Zakrzewska, 루시 시월 Lucy Sewall, 사라 아담슨Sarah Adamson, 앤 프레스트 Ann Preston, 헬렌 모튼Helen Morton, 메리 퍼트넘 자코비Mary Putnam Jacobi 같은 여성들의 노력으로 1900년이 되자 미국에는 대략5000명의 훈련받은 여자 의사와 1500명의 여자 의대생이 있었고, 7개의여자 의과대학이 생겼다.
- P107

여자 의사의 진료라는 위협에 직면해 남자 의사들은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주장으로 대응했다. 남성적인 의료를 시술하기에는 너무나고상한 숙녀가 어떻게 한밤중의 응급 사태에 왕진할 수 있겠는가? 내키지 않을 때 (예를 들어 생리 중에) 어떻게 수술할 수 있겠는가? 성이 혼재된 의료진료를 감당하기에 여성들이 너무 정숙하다면, 해부학 강의실의 상스러운 노출, 인간 재생산에 대한 충격적인 사실 등이 난무하는 의료 교육 현장에서 여성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 P107

여성의 뇌는 지성을 쌓기에는 너무 작으나 사랑을 하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크다."라고 적힌 1848년관 산과 교재도 있었다.  - P111

(19세기 후반 급속한 과학발전 시기)

남북전쟁 후 급속한 산업화와 맹렬하게 성장한 독덤체제는 미국 사회에 새로운 양극화를 양산시켰다. 악덕자본가가 자본을 독점하고 카르텔을 형성해 수백명의 중소기업가를 쓰러트렸던 것이다. 이민은 하층 계급을 팽창시켰다. 옛 상류층 아들들은 종종 대학 학위와 좋은 혈통 만으로 험한 세상을 스스로 헤치고 나아가야 함을 깨달았다. 그들은 교육 수준과 출신 배경으로 우월함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안전하지는 않았다. 위로는 영세 사업가에게 짜낸 부를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재벌을 보았고. 아래로는 길들여지지 않은 위협적인 프롤레타리아를 보았다

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두 종류의 적이 사회와 정치의 지평 위로 어둠의정령처럼 떠올랐다. 바로 무지한 프롤레타리아와 아직 정신 못 차린 재벌이다. - P116

다윈주의를 대중화한 사람들은 "진화"를 "진보"와 동일시하는 데 성공했다. 

중략

1880년대에 이르면 교육, 참정권,이민,외교 관계등 어떤 주제에서도 다윈주의의 은유로 각색되지 않은 기사나 대중책자를 발견하기란 어려웠다. - P122

(생물학의 종교화)

메치니코프Metchnikoff는 콜레라균의 효과를 시험하기 위해 큰 컵 한 잔 분량의 콜레라 비브리오를마셨다. 그 후 "미생물 사냥꾼들은 황열, 말라리아, 결핵 매개체에 기꺼이 스스로를 노출시켰다.

이타심과 강박적인 욕구로 물질적 보상을 경멸한 탓에 과학자는 구세주의.
품성을 떠맡았다. 현미경 위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 탓에 굽어 버린 과학자의 어깨는 군중의 죄와 질병을 짊어지고 있었다. 

뉴욕 슬론 케터링암연구,
소New York‘s Sloan-Kettering Institute for cancer research의 비석에는 "이 벽 안에 있는몇 사람의 끊임없는 노동이 많은 사람을 살리리라."라고 쓰여 있다. 

미국 최초의 억만장자 록펠러Rockefeller와 카네기 Carnegie가 자선을 통해 자신들의 죄를속죄하기 위해 간 곳 또한 생물과학의 제단이었다. 

부자들은 수없이 저지른 죄의 대가가 생물 실험실의 금욕적 분위기에서 마치 생명으로 바뀌기라도하는 것처럼 생물과학으로 몰려갔다.
- P123

대중의 마음속에 과학의 특권이 너무나 대단했기에다른 분야에서 이루어진 혁신도 과학의 성과로 간주됐다. 과학자가 아닌 기구 제작자가 증기 엔진을 고안했고, 두 명의 자전거 기계공이 처음으로 비행기를 설계했으며, 백신과 항독소가 아니라 생활수준의 향상이 궁극적으로 영아 사망률을 감소시켰는데도 말이다.  - P124

"영웅적" 사현과 관장은 19세기 후반 다소 감소했다. 하지만 정규 치료 요법은 여전히 일정한 종류의 상품을 생산해야 하는 필요성 때문에 시행됐다.

1840년대 에네르와 클로로포름의 도입 덕택에 외과 수술이 의사의 활동에 추가됐고, 수많은 장기에 외과 수술이 행해졌다(4장 참조), 약물, 아편, 키니네는 1860년대 의사들의 작고 검은 가방에서 수은을 점차 몰아내고 있었다.  - P127

(미국의 산파 쫒아내기)

역사가 벤 바커벤필드Ben Barker-Benfield의 말마따나 "산파가 제거된다면 뉴욕 시 외곽의 뉴욕주에서는 출산의 25퍼센트가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1915년 적대.
감을 가진 한 산과 의사도 인정했다."

또 산과 의사는 출산 과정에 새로운 위험을 초래했다. 어떤 의사가 썼듯이의사는 산파와 달리 "구멍을 쳐다보면서 장시간 동안 환자 곁에 앉아 있으려 하지 않았다. 의사는 자신이 예정했던 것보다 분만이 지연될 경우에는 외 -과용 칼이나 겸자를 가지고 개입했고, 종종 산모나 아기에게 상해를 입혔다.

의과대학부속병원은 학생들이 정상 분만보다 좀 더 힘든 분만을 연습해 봐야 했기에 외과적 개입 쪽으로 더 기울었다. 출산이 전적으로 의료화되어 위험하게 약을 남용하고 과잉 진료를 하는 시대가 오고 있었다.

 20세기 초에이르면 산과의 일을 의사가 넘겨받은 것이 대중건강의 역사에서 다소 문제성있는 일이었음을 의료 전문직의 몇몇 구성원들조차 이미 분명하게 알게 된다. 존스홉킨스대학 교수의 1912년 연구는 대부분의 미국 의사들이 당시 그들이 대체하고 있던 산과들보다 덜 유능하다는 것을 보여 줬다. 

의사들은대체로 산파보다 경험이 적었고 덜 기민했으며, 결정적인 순간에 분만 현장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 P151

그러나 1900년에서 1930년 사이에 산파는 지상에서 거의 모두 사라졌다..
많은 주에서 불법화되었고 그렇지 않은 다른 주에서는 지역 의료 권위자들에게 시달렸다. 이러한 경향에 저항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아무도 없었다. 
1830년대 대중건강운동에 함께했던 여성들은 출산 시 남성 조력의 부적절함과 위험을 고발했었다. 그러나 출산에서 여성 조력이 사실상 범죄로 바뀌고 있던 이때에는 어떠한 항의도 없었다. - P152

"최대한 가정중심적인 삶을 살라. 항상 아이들과 함께 있어라." (단지 아기에게 옷을 입히고 있을 뿐인데도 그 행동으로 내가 몸을 떨며 울게 되는 것을 상기해 보라. 이 관계가 나한테 미치는 영향은 말할 것도 없이 아기를 위해서도 결코 건강한 동반관계가 아니다.) "매 식사 후 한 시간 동안누워 있어라. 하루에 단 두 시간만 지적인 생활을 해라. 그리고 살아 있는동안 절대로 펜, 붓, 연필을 잡지 마라."

(1880년 당시 저명했던 신경 전문가 의사가 훗날 작가가 된 샬롯 퍼킨스 길먼에게 준 처방) - P156

슈라이더

여성의 기생주의 현상 뒤에는 항상 또 하나의 더 큰 사회적 현상이 놓여+있다. 이를테면 노예나 종속된 인종, 계급처럼 다른 인간들로 구성된큰 집단의 복속 문제가 있다. 그러한 계급이 과도하게 노동한 결과로 항상지배 계급이나 지배 인종의 손에 노력 없이 얻은 부가 축적되었다. 

지배인종 또는 지배 계급의 여성이 과거에 했던 활동을 잃어버리고 오로지 성적 기능을 수동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존재하게 된 것은 바로 이들이 강요된 노동 혹은 형편없는 급여를 받는 노동의 결과인 이러한 부에 의존해서살아가고 있다는 변함없는 사실 때문이다.  - P162

병을여성적 아름다움의 원천으로 보는 병적 심미안이 발달했고, 최신 유행의 감각에서 봤을 때 아름다움은 사실상 병의 원천이었다. 19세기 낭만파 그림은쿠션에 육감적으로 축 늘어진 채 눈은 남편이나 의사에게 고정돼 있거나 이 미 저세상을 응시하고 있는 아름답고 허약한 여성들을 반복해서 그렸다. 

여성 독자를 겨냥한 문학은 병과 죽음에 대한 닝만적인 비애감에 잠겨 있었고,
대중 여성 잡지에는 "내 친구의 무덤"과 "죽음의 노래와 같은 이야기가 등장했다. 사교계 여성은 상당량의 식초를 마시거나 더욱 효과적이게 비소를 마셔 아픈 표정을 짓는 노력을 했다. 

가장 사랑스러운 여주인공은 「작은 아씨들Little Women」의 베스처럼 이 세상에 살기에는 너무 착하고 너무 순수해 젊어서 일찍 죽는 여자들이었다.
- P165

꽉 쪼이는 코르셋을 입는 스타일은19세기 후반에 걸쳐 예절처럼 요구됐는데, 여성의 몸에 심한 손상을 입히는효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과거 중국의 전족 관습과 비슷하다. 유행의 첨단을걷는 여성의 코르셋은 내부 장기에 평균 21파운드에 달하는 무게의 압력을가했고, 극단적인 경우에 그 무게가 88파운드에 이르는 것으로 측정되었다. 

(여기다 잘 차려입은 여성은 겨울에는 평균 37파운드의 외출복을 입었고, 그중 19파운드는 억지로 조인 허리에 매달려 있었다는 사실을 더해 보라.20) 꽉조이는 레이스가 미치는 단기적 영향은 호흡 곤란, 변비, 허약함, 극심한 소화불량 징후였다. 

장기적 영향으로는 휘거나 부러진 갈비뼈, 간 이탈, 자궁 탈출증이 있었다. (어떤 경우는 코르셋의 압력 때문에 자궁이 점차적으로 압박을받아 질 밖으로 나오곤 했다.) - P165

의사 에드워드 클라크Edward H. Clarke의 책 『여학생들의 공정한 기회 및 교육에서의 성Sex in Education or a Fair Chance for the Girls 은 19세기의 위대한 자궁 선언서였다.

이 책은 클라크가 교수로 있던 하버드에서 남녀공학을 허용하라는 압력이 설정이던 때에 등장해 수년 동안 17쇄까지 들어갔다. 

클라크는 여성의 타고난 허약성, 뇌-자궁 경쟁과 같은 여성 본성에 대한 의학 이론을 재검토했다. 그러고는 놀랍고도 견고한 논리로 고등 교육이 여성의 자궁을 쇠퇴하게 만든다는 결론을 내렸다!

클라크의 주장으로 무장한 의사들은 여성 교육의 위험에 대해 끈질기게 주장했다. - P190

빈의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그 병을 부인과학의장으로부터 완전히 떼어 내는 치료법에 대한 연구를 막 시작하고 있었다.
프로이트의 치료는 그 여성이 속이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난처한 질문의 는 이을 없애 버렸다. 어느 쪽이든 그것은 정신질환이라는 것이었다. 

토마스 자츠Thomas Szasz가 지적했듯이 정신분석학은 "꾀병도 병이다. 사실상 히스테리보다 ‘더 심각한 병이다."라고 주장한다. 91 프로이트는 정신적 쇼크가 큰 "치료"
를 몰아내고, 오직 대화에 근거한 의사-환자 관계를 정당화했다. 그의 치료는 여자 환자에게 그녀의 분노와 반항심을 고백하게 한 뒤 결국 여성으로서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이라고 촉구했다. 

히스테리에 대한 프로이트의 통찰력은 즉시 새로운 전문 의학 분야를 등장시켰다. 페미니스트 역사가 캐럴 스미스 로젠버그의 말에 따르면 "정신분석학"은 "히스테리 여성의 자식이다." 20세기에는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가 여성의 삶에 주도적인 전문가로서 의사들을 대체할 터였다.
- P205

산들바람 뿐 아니라 허름한 가내 공장에서 만들어진 의복, 담배 등도 가난한 사람들의 집에서 중간 계급 사람들의 집으로 세균을 옮길 수 있었으며 이는 대단히 두려운 것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하인이나 시간제 도우미가 가족에게 질병을 가져다주는 일종의 제5부대가 될 수도 있다는가능성이었다. 

3개의 치명적인 증상을 포함해 총 52개의 장티푸스 발병 흔적을 고용주들의 가정에 남긴 아일랜드계 미국인 요리사 장티푸스 메리 TyphoidMary의 사례는 불안한 사람들에게 전해진 엄중한 경고였다.
- P229

아동에 관해 이토록 갑작스럽게 매료되었던 때는 미국 역사에서 아동 학대 말 그대로이자 신체적인 의미에서 가 팽창하는 산업 경제에서 하나의제도적 양상으로 정착되고 있던 시기였다. 

세기의 전환기 즈음 어림잡아 225만 명에 이르는 미국의 15살 미만 아동들은 석탄 광산, 유리 공장, 섬유 공장,
통조림 공장, 담배 제조회사, 부잣집의 전일제 노동자였다. 

간단히 말하자면아동은 값싸고 온순한 노동이 사용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일하는노동자였다.  - P265

여성은 어머니가 되고자 하는 행동을 통해 잠재의식적 충동을 연출하듯이,
말하자면 보이지 않는 잉크로 아기의 정신에 썼다. 머지않아 그 잉크는 그것을 해독하고 판단할 전문가의 눈에는 보이게 될 것이었다.
- P318

소비 경제에서 가정주부의 진정한 권력은 아이보리 vory와 럭스Lux 사이에서, 벤딕스Bendix와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 사이에서, 치리오스Cheerios와 슈가팝스Sugar Pops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권력으로 구성돼 있었다. 

물론 광고업자들, 소매상인들, 마케팅 담당 남성들 모두 심지어 이런 사소한 결정조차도 여성의 것이 될 수 없게끔 그녀를 무감각하게 만드는 데 공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가, 만화가, 정치가, 전문가 등에 의해 증진된 사회적 통념은 미국이 성적 평등을 달성했을 뿐만 아니라 도를 지나쳐 모계 사회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 P331

여성 지배와 남성 반란의 가장 기념비적인 소설 두 개가 1960년대에나왔다. 『포트노이의 불평Portnoy‘s Complaint」(1969)과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1962)가 그것이다.
- P337

미국인들이 전 국가적으로 사적인 삶을 찬양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동안, 세계의 정치적 지형은 대규모로 재편되고 있었다. 1945년 이후 몇 년 만에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중국 모두 공산주의에 의해 "함락 됐다.

 1950년대에 자란 미국 아동들은이 새로운 사태를 위클리 리더 Weekly Reader> 세계 지도에서 붉은 얼룩이번져 가는 것 정도로 경험했다. "철의 장막 뒤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은 그곳에서 만들어져 설명이 불기능한 첩자"와 "반역자" 등 몇 개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너무 끔찍해서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숙청, 청산, 강제 노역장 등의 이야기가 있었다.)  - P352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1-05-01 0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97페이지에서 500페이지까지 하루만에? 역시 독서기계네요 ^^

청아 2021-05-01 07:46   좋아요 1 | URL
ㅋㅋㅋ급해서 뒤로 갈수록 점점 훑듯이 읽었어요!😆
 


몇년 전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갔을 때 폴란드에 들러 아우슈비츠를 방문했다. 넓다란 벌판에 세워진 그곳은 침울한 공기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그곳의 방문객들은 그런 분위기에 압도된 듯 조용하게 숨죽여 이곳저곳으로 이동했다. 특히 한 곳에서 눈길을 끈 것이 있었다. 박물관처럼 대형 유리관을 각각 채우고 있는 것은 도저히 셀수 없을 만큼의 안경들과 머리카락,신발,아이들의 인형 그리고 장애인들의 소유였던 것으로 보이는 각종 보조기구,의족. 의수였다.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짐 가방들도 한 편에 가득했는데 급박한 피란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물건들과 흔적들은 비참했던 당시 상황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당연한 의문이 떠올랐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이곳에 끌어오고 희생시켰을까? 왜 머리카락까지 한곳에 모아 두었을까? 물론 그 여행 전후에도 2차 대전에 관한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관심있게 찾아봤지만 부족한 나의 수준은 그렇게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읽은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는 그런 나에게 스탈린의 자국민을 향한 만행을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이번에 티머시 스나이더의 <피에 젖은 땅>으로 2차대전과 그 전후에 이르기까지 스탈린과 나치 체제의 접점에 있던 이른바 '블러드랜드'에서의 1400만에 이르는 희생과 그들이 처했던 비극적인 상황을 알게 된 것이다. 


스탈린

블러드랜드(bloodlands)는 폴란드 중부에서 러시아서부, 우크라이나,벨라루스,발트 연안국들을 일컫는다. 스탈린은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1933년 집단농장을 포함한 여러 정책실패 후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대기근을 야기시켰다. 그는 강제이주와 1937~1938년의 대숙청, 대공포시대로 블러드랜드에 수많은 피를 뿌렸다. 그 중에서도 우크라이나 대기근에는 농민들의 종곡까지 빼앗아가 끝도없는 굶주림에 부모가 자식을, 가족들이 며느리의 인육을 먹는 등의 비극까지 만들어냈다. 

스탈린의 집단화와 기근은 당시에도 크게 해외에서 주목받지 못했을뿐만 아니라 서구의 이해와 맞물려 베일에 가려진 측면이 상당하다. 

히틀러가 자신의 에덴동산을 위해 타국민을 학살했다면 스탈린은 소련의 경제발전이란 미명하에 자국민들을 죽게 한 것이다. 


히틀러  

독일과 소련간의 물밑협상 뒤 1939년 9월1일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한다. 이후 기세등등해진 히틀러의 총구는 소련으로 향했다. 하지만 독일의 예상과 달리 상황이 장기전으로 흐르며 전쟁의 양상도 바뀌었다. 패전이 짙어지며 전쟁포로 등을 대상으로 했던 가스를 활용한 나치의 학살은 유대인에 보다 집중된 것이다. 이 시기에는 표현하기 힘들정도로 악행이 이어졌는데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나치의 잔학함은 소련과 달리 자신들의 악덕을 만천하에 드러내는것과 유대인을 학살하는 과정, 시체를 처리하는 것까지 그들 중 일부에게 맡기고 일이 끝난후에는 역시 이들도 처형했다는데 있었다.   



이 후 스탈린과 연합국의 반격으로 독일이 밀려나기 시작하며 소련군들은 빠른 속도로 독일까지 진격한다. 그리고 무서운 폭력으로 동독을 유린하며 베를린에 이르기까지 독일 여성들을 강간했다.

그들은 독일 남성들을 모욕하고 경멸하는 의미로 그렇게 한 것이기도 했다. 소련 병사들에 의해 여성들은 그렇게 두 번 죽어야 했다. 그런식으로 2차 대전 종식 후에도 블러드랜드에 살고 있는 민간인들의 희생은 이어졌다.  


스탈린과 히틀러는 독재체제 속에서 자신들의 이상과 열망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민간인들과 전쟁포로들을 희생시켰다. 두 지도자의 이상을 위해 민간인들은 이름과 개성은 물론 피와 살이 제거된 채 블러드랜드란 판 위에서 마치 체스의 말처럼 활용된 것이다. 혹자는 역사와 전쟁에 대한 시각이 감정적이 되어선 안된다며 냉정한 시각을 가지라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무감각해 지지 않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고 말했다.

스탈린과 히틀러 그리고 그들의 추종자들은 자신들만의 가치를 위한 집념과 믿음으로 타인의 존엄을 끔찍하게 먼 곳에서 바라본 것이 아닐까?


P.703 희생자들은 사람이었다. 그들과 진정으로 동일시되고 싶다면, 그들의 죽음만 볼 게 아니라 그들의 삶을 봐야 한다. 정의상으로 희생자란 죽은 사람이며, 다른 이들이 그들의 죽음을 어떻게 이용하든 저항할 수가 없다. 희생자들의 죽음을 내세우며 어떤 정책을 미화하거나 스스로와 희생자를 동일시하는 일은 쉽다. 범죄자들이 저지른 행동을 이해하는 일은 별로 매력이 없다. 그러나 도덕적으로는 더 중요하다. 어쨌든 도덕적 위험은 누군가가 희생자가 될 때보다 범죄자나 방관자가 될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P.704 악은 선에 의존한다는 간디의 말이 있다. 모여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헌신적이며 그 일이 옳다고 믿어야 한다는 뜻이다. 헌신과 믿음이 있다고 당시의 독일인들을 선량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도 인간임을 알려줄 근거는 된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그들은 윤리적인 사고를 했다. 비록 무시무시한 착오를 저질렀지만 말이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4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04-29 19: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부터 누름 첫번째 댓글 자리 는 찜 해놓음(◞♥ꈍ∇ꈍ)◞♥

청아 2021-04-29 18:41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스콧님은 감동메이커예요🙆‍♀️♡

scott 2021-04-29 20:06   좋아요 4 | URL
올해 영화 미스터 존스를 보고 난후 미미님이 블러드랜드 책을 읽기 시작해서 따라 읽기 시작함 (나는야 따라쟁이 ㅎㅎ) 그동안 이와 관련된 영화 책은 많이 봤지만 한시대에 이토록 많은이들이 희생 당했던 20세기를 잊지 말아야 할것 같습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헌신적이며 그 일이 옳다고 믿고 있으니까!!‘
어제 소개 해주신 ‘카틴 숲‘ 영화 본후 감독 인터뷰까지 봤네요. ㅠ.ㅠ

미미님이 츠바이크 스톼일로 분석하신 페이퍼도 인상 깊었습니다.

٩(^ᴗ^)۶

청아 2021-04-29 20:19   좋아요 1 | URL
언제나 제가 더 스콧님 따라쟁이죠ㅋㅋ❤❤
스콧님의 추진력에 또 감동! 리뷰 썼으니 저도 이제 맘편히 관련다큐랑 다 찾아볼래요!팔로팔로 점점 한번에 하나밖에 못하는 중임요.😆

새파랑 2021-04-29 19:1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블러드 랜드를 체스판으로 둔 히틀러와 스탈린의 잔인한 대결 비유는 정말 좋네요. 깜짝 놀랄만한 비유~!! 체스이야기가 연결되는거 같은~~ 역시 아는만큼 표현할 수 있는거 같아요. 무감각 해지면 안된다는 말도 인상적이네요^^

청아 2021-04-29 19:21   좋아요 4 | URL
ㅋㅋ감사해요!!😊 <수용소군도>의 솔제니친이 그 책에서 스탈린을 비판하며 비슷하게 비유했었어요! 게다가 제 안에 츠바이크가 항상 있어서 이렇게라도 연결하고 싶었어요.

페넬로페 2021-04-29 20:0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읽는 만큼 보인다~~
이 말의 결과가 이 글에 담겨 있네요^^
전쟁이나 침략의 형태는 왜이리 같은지요~~폭력과 유린과 죽음들^^
다른 나라에 의한 침략도 아닌 자국민들에 자행된 폭력들^^
이것이 인간의 한계인것 같아 씁쓸해지는 저녁입니다~~

청아 2021-04-29 20:10   좋아요 4 | URL
감사해요!! 맞아요! 그런 그의 폭정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재는 스탈린에 대한 러시아 국민들 정서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아버지로 불리우고 전설로 기억되는 측면이 씁쓸했어요😔

붕붕툐툐 2021-04-29 20: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너무 슬픈 역사네요. 블러드랜드라는 지역이 있을 정도로 욕심에 눈 먼 인간들 때문에 평범한 시민들이 희생당하고..ㅠㅠ
미미님의 인간에 대한 애정을 다시금 볼 수 있는 따뜻한 페이퍼~🙆

청아 2021-04-29 20:14   좋아요 3 | URL
그렇죠? ㅠ 여기 기록된 내용도 끔찍한데 실상은 어땠을지..그렇다고 가해자들을 인간이 아니라고 해버리면 답이 없다는 스나이더의 후반 결론이 반전이었고 여러모로 의미심장했어요. 감사해요! 🙆‍♀️

바람돌이 2021-04-30 00: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다 읽으셨군요. 완독 축하 축하!!!
아우슈비츠 사진들이 비감하네요. 저는 이 책의 저자가 역설적으로 아우슈비츠는 생존자가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알려질 수 있었다고, 다른 절멸수용소들은 생존자가 아예 없어 얘기를 전할 사람도 없어 묻혀졌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하는데, 자꾸 세계 어디선가에는 반복되는 것이 뭔가 싶어요.

청아 2021-04-30 00:24   좋아요 2 | URL
감사해요!! 😊 그러게 말이예요~예전에는 아우슈비츠가 가장 끔찍한 줄 알았는데 극히 일부분이라니.. 게다가 미얀마처럼 권력때문에 시민들이 희생당하는 일이 반복이고 심지어 유엔이 있지만 넋놓고 바라만 보는 것도 당시처럼 반복이니 참 무섭네요.

mini74 2021-04-30 21: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 저 지금 20쪽 정도 읽었는데 온통 밑줄입니다 ㅠㅠ 미미님 글 읽으니 뭉클. 도움도 많이 됩니다. 한 줄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읽고 싶은 책이에요 *^^*

청아 2021-04-30 21:28   좋아요 3 | URL
오오 미니님! 시작하셨군요~♡무거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난해하거나 지루한적이 없었어요. 오히려 읽는 내내 저 당시 상황 궁금해 폭풍구글링..ㅠㅜ초반 저도 테이프 마구마구 붙였어요👍 완독 응원드려요!!
 

<피에 젖은 땅>에도 몇 차례 언급되는 내용입니다. <카틴>숲에서 제2차 대전 중이던 1940년 소련군이 폴란드 장교들과 의사들, 지식인들을 학살한 사건입니다. 관련된 영화도 있네요.

몇년 뒤1943년 나치가 <카틴>숲에서 무더기의 시체(2만 2천구)를 발견했고 이후 괴벨스가 선전용으로 이를 적극 활용했지만 소련측은 나치의 소행이라고 전면부인.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나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이 사건을 인정했지만 시효가 지났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자료를 비공개로 유지하고 있어 아직까지 제대로 된 진상파악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고 2010년 레흐 카친스키 당시 폴란드 대통령이 추모식을 위해 전용기로 카틴숲 인근으로 향하던 중 추락사합니다. 탑승객 96명 전원사망해 저도 뉴스를 보고 너무 놀랐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후 당연하지만 각종 논란과 의혹을 낳았습니다.




폴란드와 악연 카틴 숲 학살 사건
출처 : 연합뉴스 | 네이버

http://naver.me/FMA9vTcX

p.537 미국과 영국 입장에서는 카틴 대학살에 대한 소련의 거짓 주장을 받아들여 독일에 비난을 퍼붓는 것이, 스탈린을 설득하기보다는 폴란드에 타협을 종용하는 것이 훨씬 더 수월한 일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폴란드인들이 거짓, 즉 소비에트가 아닌 독일이 폴란드 장교들을 학살했다고 받아들여 주길 바랐다. 아울러 폴란드가 주권이 있는 정부라면 결단코 취할 수 없는 조치, 즉 자국 영토의 절반인 동부를 소련에 넘겨주길 원했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04-28 16:55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폴란드의 거장 안제이 바이다 감독의 2007년 작품 숨겨진 명작!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죽음의 늪 ㅠ.ㅠ 기억과 진실에 대한 불굴의 사투를 벌이는 거짓에 굴복하지 않는 감독의 아버지가 카틴 숲에서 숨졌다고 합니다.ㅠ.ㅠ

청아 2021-04-28 17:00   좋아요 5 | URL
역시 스콧님👍👍 아 감독 아버지가요?ㅠㅇㅠ
일본과 우리나라를 보는것도 같고. 폴란드와 러시아의 악연은 어디까지일까요...

페넬로페 2021-04-28 17:13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와 드뎌 제가 아는것 하나 나왔어요~~
지금 읽고 있는 책,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에 카틴숲학살이 나오더라고요^^
카틴숲뿐만 아니라 그 주변 포로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은 폴란드인이 거의 2만명에 이른다는 것^^ ㅠㅠ

청아 2021-04-28 17:16   좋아요 6 | URL
아 그러셨군요! 얼른 장바구니에 주워담겠습니다~♡
아 우리가 할 수 있는건 멈추지 않는 역사 공부인것 같네요. ㅠㅠ

coolcat329 2021-04-28 17:39   좋아요 5 | URL
아 이 책 눈여겨 봤다가 그냥 패스한 책인데 이렇게 만날 책은 또 만나는군요. 저도 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청아 2021-04-28 17:43   좋아요 4 | URL
맞아요~책도 인연이 닿고 닿는 듯해요♡헤헷♡

페넬로페 2021-04-29 01:16   좋아요 3 | URL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제가 예상했던 내용의 책이 전혀 아닌데요~~
수용소의 삶에서 프루스트강의를 하기 보다 그냥 프루스트에 대한 입문서 같아요^^
 

죽음의 고독

독일이 게토 습격을 감행한 1943년 4월 19일은 유월절 전날이었고, 다가오는 25일 일요일은 부활절이었다. 폴란드 시인 체스와프 미워시는 자신의 시 「꽃밭」에서, 게토 안 유대인들이 싸우고 또 죽어가는 동안, 장벽 너머 크라신스키 광장에서는 사람들이 회전목마를 타고 있던 당시 기독교 축일의 상황을 떠올리고 있다. 

미워시의 말을 들어보자. "그때 나는 죽음의 고독함을 떠올렸다." 게토 반란 기간 내내회전목마는 돌고 또 돌았고, 그것은 고립된 유대인의 상징이 되었다.

게토 장벽 너머 폴란드인들이 삶 그리고 웃음을 누리던 그 순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도시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많은 폴란드인은 게토안 유대인들의 상황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물론 또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았고, 누군가는 이들을 돕고자 했으며, 몇몇은 이를 실행하다.
가 목숨을 잃기도 했다.
- P524

바르샤바 게토 반란이 일어나기 딱 1년 전, 폴란드 국내군은 영국과 미국에 폴란드 유대인을 상대로 저지른 가스 학살에 대해 이미 전달한 상태였다. 분명 폴란드 국내군은 그들에게 헤움도 학살 시설에대한 정보를 넘겨주었고, 폴란드 당국은 그것이 영국 언론에 전달되는 것까지 확인했다. 하지만 서방 동맹국들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않았다.  - P524

폴란드 정부는 동맹들에게 (유대인을 포함한) 폴란드 국민을 대상으로 한 대량학살에 맞서 독일 민간인을 공격 대상에넣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또다시, 영국과 미국은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폴란드 대통령과 바티칸 폴란드 대사는 교황을찾아가 유대인 대량학살에 대해 공개 석상에서 이야기해줄 것을 역28설했지만 이 역시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 P525

서방 연합군 중 오직 폴란드 당국만이 유대인 학살을 멈추기 위한직접 행동에 나섰을 뿐이다. 1943년 봄까지 제고타는 숨어 있던 유대인 약 4000명을 돕고 있었고, 폴란드 국내군은 유대인을 갈취하는자들은 총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5월 4일, 바르샤바 게토 유대인들이 싸우고 있던 그때, 망명 정부 수반 브와디스와프 시코르스키는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모든 동포에게 요청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죽어가고 있는 저들에게 피란처와 도움의 손길을 뻗어주십시오. 동시에, 지난 시간 너무나 오랫동안 침묵을 지켜온 전 세계에 밝힙니다.
나는 저들의 범죄를 강력히 규탄합니다."  - P525

마이다네크 같은 곳으로의 강제추방 소식은 폴란드인들을 남녀할 것 없이 폴란드 국내군으로 이끌었다. 그들은 언제든 강제노역 대상자로 붙잡혀 강제수용소로 보내질 수 있었고, 지하로 내려가는 것이 바르샤바 지상에서 사는 것보다 더 안전하게 보였다. 

또한 지하조직에서는 공포를 이겨내게 해줄 동지애를 느낄 수 있었고, 복수를 통해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독일은 과거 1939년 침공 당시 수만 명, 1940년 AB 악치온 당시 수천 명에게 그랬듯이, 고등 교육 이상을 받은 폴란드인들을 모조리 죽여버림으로써 자신들의 노동력 끌어모으기 과정에서 레지스탕스 조직이 생겨나는 사태를 막으려 했다.
- P529

독일군의 패배가 눈앞에 있다는 것은 분명 반길 만한 소식이었지만, 마찬가지로이내 소련군이 바르샤바를 접수할 것이라는 예상은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폴란드 국내군이 독일군과 공개적으로 싸워 승리한다면, 그들은 붉은 군대가 자신들의 집을 차지하는 상황을 맞이할 것이었다. 

반대로 그들이 독일군과 싸워 패배한다면, 곧 들이닥칠 소비에트에게 자신들은 손쉬운 상대이자 무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꼴밖에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소비에트와(혹은 서방 동맹국들과) 협상할 자리조차 얻지 못할 것이었다.
- P536

스탈린은 카틴 발견(폴란드의 발견) 이후 폴란드 정부와 외교 관계를 끊어버렸고, 이는 소련을 신뢰할 수 없는 또 하나의이유가 되었다. 스탈린이 스스로가 벌인 대학살을 폴란드 정부와 외교 관계를 끊는 빌미로 쓰는 사람이라면, 이런 자가 어떤 협상이든 선의를 가지고 임할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카틴:소련군이 폴란드 장교들 학살한 곳. 자기네가 학살 한 후, 발각되자 되려 외교 끊음) - P537

그 개인의 집요한 끈기가 전쟁의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던 윈스턴 처칠의 경우를 보자. 그는 영국의 동맹인 폴란드에게도움은커녕 소련과 타협할 것을 주문하고 있었다. 

이미 1944년 여름처칠은 폴란드 수상 스타니스와프 미코와이치크에게 모스크바를 찾아가 그동안의 소련-폴란드 간 단교를 회복시킬 합의를 청해보라고,
조언했다. 미코와이치크가 모스크바에 도착한 1944년 7월 말 영국대사는 그에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라는 말을 건넸다. 

즉 폴란드 영토의 절반인 동쪽 땅을 포기하고, (학살의 책임은 소비에트가 아닌 독일에 있다는) 소련 버전의 카틴 대학살을 받아들이라는 것이었다. 미코와이치크가 알고 있던 것처럼, 루스벨트 역시 카틴에 대한 소비에트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쪽을 선호했다. 

바르샤바 봉기가 시작된 그 순간 미코와이치크는 모스크바에 있었다. 이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놓인 미코와이치크는 스탈린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지만, 스탈린은 이마저 거절했다. 

이에 이번에는 처칠이 스탈린에게폴란드인들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보냈다. 스탈린은 8월 16일, 자신은그런 "멍청하고 위험한 행동"을 도와줄 의사가 눈곱만큼도 없다는 말로 이를 가볍게 무시해버렸다.
- P551

어느 폴란드 국내군 병사는 자신의 시에 "우리는 그대를 붉은 역병을 기다린다 우리를 이 흑사병에서 구해주기를"이라고 적었다. 
- P555

소련이 입성하기 하루 전에도, 독일은 바르샤바에 남은마지막 도서관을 불사르고 있었다.
- P55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1-04-28 16: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끝이 보입니다~!!

청아 2021-04-28 16:58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네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