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 젖은 땅> 내일까진 다 읽으려 하는데 쉽지 않네요. 1942년 독일과 소련의 대치 상황을 읽고 있다가 머리도 식힐겸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관한 영상을 찾게 되어 올립니다.

'모사드'쫌 많이 멋진듯.








<오랜만에 독서 자극사진^^>



스콧님이 알려주신 책도 왔는데 저는 아직 읽을 수가 없습니다.ㅠ0ㅠ

절판되어 중고로 샀는데 거의 뭐 새책이 왔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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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4-27 21:15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우와 미미님 이책 구하셨군요!
예전에 이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 만나는 다큐 본적 있는데
힘러 딸이 정말 정말 죄를 인정 안함(아버지 힘러의 극악 범죄를)
비서 사이에서 난 아들 딸이 있는데 아들은 불치병으로 고통받았고 딸은 의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
피에 젖은 땅 읽다보면 자꾸 옆길로 빠지게 되죠 ㅎㅎ(관련 영상 다큐 찾아보면서/모사드 남미 정글까지 뒤져서 도망간 나치 당원들 싹 잡아들임!!)
우와 미미님 정말 밑줄, 인덱스,,,
정독!!!!
독서를 하는 올바른 자세에
감탄,감탄,😍


청아 2021-04-27 21:21   좋아요 5 | URL
저만 그런게 아니었네요!!ㅋㅋㅋㅋ스콧님 덕분에 찾아볼 다큐까지 늘어나 행복합니다~ㅋㅋ♡♡
시간이 없어 훑을까도 생각했는데 이런저런 사연에 다시 정독모드예요.😭
모사드 다큐 많이 찜해놨는데 복수는 복수를 부른다지만 심적으로 응원할 수 밖에 없네요.😔

새파랑 2021-04-27 21:4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완전 멋진 독서자극 사진~!! 포스트잇이랑 밑줄이 예술이네요.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청아 2021-04-27 21:45   좋아요 4 | URL
와~더할 나위 없는 칭찬입니다ㅋㅋ😆👍막판 스퍼트 올리고 있습니다!

붕붕툐툐 2021-04-27 22:1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저 안심하고 갑니다~
˝맞아, 난 저렇게 책을 안 읽으니까 미미님같은 리뷰를 못 쓰는 거야.˝ 이런 안심~ㅋㅋㅋㅋ
진짜 넘 멋지심다~ ‘타고난 천재는 없다 노력하는 것이다.‘의 표본을 보여주시는 듯!
‘나치의 아이들‘ 도 내용 궁금해용~ 막판 스퍼트 내일까지 완독 성공하시길!!🙏

청아 2021-04-27 22:49   좋아요 3 | URL
아ㅋㅋㅋㅋ툐툐님도 참!😳😆😍 든든한 응원받았으니 꼭 완독할께요!!🙆‍♀️

페넬로페 2021-04-27 23: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자아자~~
내일까지 꼭 읽고
리뷰대회 참가**✌✌

페넬로페 2021-04-27 23:54   좋아요 4 | URL
모사드가 이런 면에서는 멋진데
또 다른 면에서는 악날한것도 같아요^^

scott 2021-04-27 23:56   좋아요 4 | URL
미미님 리뷰 대회 참가 잊지 말귀 ㅎㅎㅎ
4월 30일 까지
아자아자
王모래 시계 사알짝 놓고 감

○⌒゙○
( ・(ェ)・ )
─∪─∪─⏳──

청아 2021-04-28 00:01   좋아요 4 | URL
아자아자!ㅋㅋㅋㅋ페넬로페님 응원감사해용~😆♡
그쵸! 폭력으로 해결할 순 없는건데 안타까우면서도 복잡한 감정이 드는 조직이네요.

청아 2021-04-28 00:03   좋아요 4 | URL
앗!ㅋㅋㅋㅋ모래시계 깜찍해서 절대 놓칠 수가 없겠어요!♡(⑉• ﻌ •⑉)♡

NamGiKim 2021-04-28 00: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우 꼼꼼히 표기해가며 읽은게 책에 표시가 되는군요.

청아 2021-04-28 00:15   좋아요 3 | URL
열심히 정독 중인데 읽는 속도가 넘 느려서 창피합니다.😅

NamGiKim 2021-04-28 00:25   좋아요 3 | URL
사실 제가 작년3월부터 외할버지랑 살게 됐는데(부모님이 중국에 계심), 도저히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불경소리 시끄러운 티비 소리 때문에. 거기다 도서관은 상시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니. 그래서 예전보다 책을 더 안읽게 된 느낌.

NamGiKim 2021-04-28 00:26   좋아요 3 | URL
최근에 보청기해서 예전보다는 나아졌는데, 여전히 쉽지 않군요.

청아 2021-04-28 00:31   좋아요 3 | URL
아 그러셨군요. 남기님 여러 책 읽고 리뷰 남겨주시길 기대하고 있어요.😊 상황이 나아지셨음 좋겠네요!

NamGiKim 2021-04-28 00:32   좋아요 3 | URL
항상 제 글에 관심가져 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coolcat329 2021-04-28 08:0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와~~정말 열독모드 대단하세요! 플래그잇? 저는 저거 어쩌다 사용하는데 , 기억하고 싶은 페이지에 붙이시는 건가요?
정말 독서욕구 자극합니다.

청아 2021-04-28 09:52   좋아요 4 | URL
헤헷ㅋㅋ저도 다른분들 이런 사진 보면 자극 받곤해서 올렸어요~♡ 다시 읽을때 표시한 부분만 보는데 너무 많이 표기한게 함정ㅋㅋㅋㅋ

행복한책읽기 2021-04-28 09: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독서 자극 사진. 와 이거 넘 멋집니다. 미미님의 독서 열정은 가히 근접 불가. 밑줄조차 아름답습니다요. 이제 고지가 얼마 안 남았죠. 신발끈 단단히 묶고 달리십시오. ^^

청아 2021-04-28 09:59   좋아요 3 | URL
책만 읽어야는데 자꾸 뭔가 찾아보고 샛길로 빠지게 되는 책인것 같아요.ㅋㅋ 그래도 유익한 시간이었음요! 오늘 좀 단단히 묶어야 할듯~♡

mini74 2021-04-28 17: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너무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ㅎㅎ 색색의 인덱스가 펄럭이네요. *^^*저는 주로 연노랑으로 줄을 그어요 ㅎㅎ 미미님 열심히 읽으시는 모습보니 멋집니다. 자극 받고 가요. 그럴려면 먼저 인덱스 한 뭉치부터 지름을 ㅎㅎㅎ

청아 2021-04-28 17:42   좋아요 3 | URL
저도 연노랑 사놨어요! 역시 미니님도 러블리한 컬러 좋아하시는군요ㅋㅋㅋㅋ😆 언제 연노랑 화사한 자극사진 투척해주세용!👍
 

민스크는 나치의 파괴적 본성을 가장 뚜렷하게 살펴볼 수 있었던곳이다. 독일 공군은 민스크가 항복을 선언한 1941년 6월 24일까지줄기차게 폭격을 퍼부었고, 심지어 독일 국방군은 그로 인한 불길이잦아들 때까지 도시 입성을 미뤄야 할 정도였다. 

독일인들은 7월 말까지 교육 수준이 높은 현지인 수천 명을 사살했으며, 유대인들을 도시 북쪽 구역으로 몰아넣었다. 민스크에는 이제 게토, 강제수용소,
포로수용소, 대량학살을 위한 구역들이 생길 것이었다. 

그곳은 결국승리의 대체물로, 즉 독일인들이 유대인 학살을 시연하는 일종의 무시무시한 죽음의 극장으로 바뀐다.
- P404

영구 보존 처리를 한 레닌의 시신은 안전한 보존을 위해 크렘린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졌으나, 스탈린 자신만큼은 끝까지 그곳에 남아 지배력을과시했다. 레닌그라드는 포위당했고, 민스크와 키예프는 독일의 손에, 의떨어졌지만, 모스크바만큼은 스탈린의 완고한 지휘 아래 스스로를굳게 지켜내고 있었다. 

11월의 여섯 번째 날, 스탈린은 소련 국민에게자못 도전적인 태도로 독일이 이른바 ‘몰살 전쟁‘이라 말한 군사 작전은 실상 아무것도 아니며, 오히려 내가 그들에게 몰살을 선사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딱 한 번 독일의 유대인 학살에 대해 언급했는데, 바로 "나치 정권은 ‘집단학살을 조직하고 시행하는 데 여념 없는정권"이라 부른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당시 진행되고 있던 대량학살의 진실을 그려내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것이었다. 11월 7일(소비에트의 기념일) 투친카로 끌려 간 민스크 유대인들은 11월 9일(나치의 기념일) 총살당했다. 5000명이 넘는 사람이 11월 20일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제정 러시아를 비롯해 역사 속 그 어떤 제국도 유대인을 이 정도까지 학살한 적은 없었다. 

1941년 하반기 어느 날 하루 동안 독일인들이 쏴 죽인 유대인의 숫자는 제정 러시아 전체 역사 속 집단학살로 인한 희생자의 숫자를 모두 합한 것보다 많았다.

(아무튼 러시아가 ‘제정 러시아 시대‘에도 유대인 집단학살 했구나...) - P406

스탈린도 히틀러의 반유대주의 때문에 깊은 딜레마에 빠졌다. 히틀러는 연합국이 유대인을 위해 싸우고있다고 말했고, 따라서 (국민이 이 주장에 동조할까 우려하던) 연합국은자신들이 억압받는 국가들(하지만 특히 유대인은 아닌)을 해방시키고자 싸우고 있다는 주장을 펼쳐야 했다. 

히틀러의 선전에 대한 스탈린의 답은 이후 그것이 사라질 때까지의 소련 역사를 빚어냈는데, 그 대답은 바로 독일 학살 정책의 모든 희생자는 "소련 국민 이지만 이 소련 국가 구성원의 최대 다수는 바로 러시아인이라는 것이었다. 

그의선전 부장 중 한 명인 알렉산드르 셰르바코프는 1942년 1월 "러시아인민, 모두 평등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인민 대중 가운데 첫째, 이들야말로 독일 침략자들과의 투쟁에서 오는 짐의 대부분을 짊어지고 있다"는 선언을 통해 이를 명백히 밝혔다. 

셰르바코프가저 말을 내뱉기까지 독일인들은 이미 몰로토프-리벤트로프 라인의동쪽에서 벨라루스 유대인 약 19만 명을 비롯해 100만 명에 이르는유대인을 학살하고 있었다.
- P408

1941년 11월 7일에 있었던 광기 어린 죽음의 행진은 그저 유대인들을 몸서리치게 했던 그리고 앞으로 닥쳐올 자신들의 운명에 대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만들었던 일련의 피 튀기는 사건 중 하나일 뿐이었다. 

전쟁 이전에 이름을 날렸거나 존경받던 이들을 위해 특별한 굴욕 행위들이 준비되었다. 독일인들은 한 저명한 과학자로 하여금 게토 한가운데에 위치한 주빌리 광장을 기어다니라명령했고, 그것도 모자라 그의 등 위에 축구공을 올려두었다. 그러고는 곧 그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또한 그들은 유대인들을 자신들의 집을 청소시키거나 옷가지를 빨게 할 노예로 삼았다. (오스트리아계) 독일인 의사 이름프리트 에베를은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은 이 "낙원"에서 따로 돈이 필요 없는 상황이라고 적었다. 

그는 힘러가 민스크를 방문했을 때 영상으로 기록할 유대인 처형을 담당했다. 에베를은훗날 그 당시 자신의 모습과 그가 자행한 대량학살이 담긴 영상을 본것으로 여겨진다.
- P412

유대인 여성들은 특별한 방식으로 고통받았다.
 "인종적 더럽힘"을단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독일인은 재빨리 강간을 살인의 전주곡으로 만들었다. 적어도 일부 독일인은 유대인 여성들을 두고 일종의
"미인 대회를 개최하고는, 곧 그 여인들을 묘지로 끌고 들어갔으며,
강제로 옷을 벗긴 뒤, 몸을 그리고 목숨을 빼앗았다. 

게토 안의 경우,
독일 군인들은 유대인 소녀들에게 한밤중에 발가벗긴 채 춤을 추도록 했고, 이튿날 아침 그곳에는 소녀들의 싸늘한 시신만 남아 있었다.
- P412

소비에트의 지배는, 특히 1937년에서 1938년까지의 대숙청은 그곳 사람들이 어떤 정치 변동에도 즉각적이거나 자발적인 반응을 드러내지 않도록 만들었다. 1930년대에 민스크에서조금이라도 눈에 띄는 행동을 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든 쿠라파트로끌려가 내무인민위원회 손에 사살당했다. 

심지어 모스크바 공산주의자들 입장에서는, 비록 민스크의 소련 시민들 각자 독일에 저항할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소련이 훗날 그곳을 회복했을 때 벌어질 박해를 피하기 어려웠다. 

스탈린주의가 아래로부터 어떤 유의 자발적 반응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던 카지니에츠와 현지 공산주의자들은 하나같이 조직체 결성을 망설이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각각 고립된 채, 스탈린에 대한 두려움으로 히틀러를 견더내고 있었다.

(스탈린이 어떤 면에서 히틀러보다 악랄한 이유) - P414

유럽의 유대인을 모조리 죽여버리겠다는 히틀러의 분명한 결정은 유대인과 빨치산 사이의 관련성을 과장하여 일종의 추상적인 관념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렸다. 곧 유대인들은 독일의 적을 지원하는자들로서, 우선적으로 몰살해야 할 대상이었다

힘러와 히틀러는 유대인의 위협을 빨치산의 위협과 결부지었던 것이다. 유대인과 빨치산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설명이 지닌 논리는 모호하고 문제투성이였지만, 빨치산 전투의 심장부인 벨라루스에 있던 유대인들에게는 아주 명백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군사 점령 지역이던 중앙 집단군 후방 지역에서는 1942년 1월부터 유대인 학살이 다시 시작되었다
한 기동대원은 자신들이 몰던 트럭에 다윗의 별 기호를 그려두고는,
확성기를 통해 자신들은 유대인을 색출해 처형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라고 밝히고 다녔다. 

아인자츠그루펜 B의 지휘관들은 자신들 구역에 있던 유대인들을 히틀러의 생일인 1942년 4월 20일까지 한 명도빠짐없이 없애라는 임무를 받았고, 완수해냈다. - P422

1942년 3월 1일, 독일인들은 유대인 평의회에 이튿날까지 유대인5000여 명을 동원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게토 지하활동 세력들은 반대로 그들에게 유대인의 목숨을 가지고 독일과 흥정하지 말 것을 종용했는데, 어찌됐든 그 일은 유대인 평의회 입장에서도 그리 내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몇몇 유대인 경찰은 독일인들이 그 숫자를 채우는일을 돕기보다는 동료 유대인들에게 이를 피해 숨어 있으라고 알려주는 길을 택했다. 이튿날인 3월 2일까지 숫자를 채우지 못하자, 독일인들은 유대인 고아원을 습격해 그곳에 있던 아이들을 총칼로 잔인하게 살해했다.  - P423

당시 이 피바람을 피한 어린이 중 한 명이었던 펠릭스 립스키의이야기로는, 스탈린의 대숙청 시기에 살해당한 그의 아버지는 폴란드스파이로 몰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어딘가로 끌려간 뒤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고 한다. 

이제 그 소년은 자신이 알던 사람들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배수로에 던져지는 모습을 봐야 했다. 그는 살가죽,
속옷, 눈으로 뒤덮인 창백한 광경을 기억했다. - P423

 1941년 11월 이후 스탈린은 단 한 번도 유대인들을 히틀러의 회생양으로 꼽지 않았다. 몇몇 빨치산 지휘관은 유대인들을 보호하고자 했다. 하지만 소련은 미국과 영국이 그랬던 것처럼, 유대인 구조를위한 직접적인 군사 행동을 진지하게 고려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소련 체제가 가진 논리는 항상 일선 부대의 독자적인 계획이나작전 등을 부정했고, 또 인간의 목숨을 아주 가벼이 여기고 있었다.
어찌됐든 게토의 유대인들은 강제노역을 통해 독일의 전쟁에 힘을 보태고 있었고, 따라서 그들이 웅덩이에서 죽음을 맞는 일은 모스크바 지도부에게 있어 별다른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반대로, 독일을 돕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방해하고 있는 유대인들은 독자적인 계획을수립할 위험한 능력을 지닌 자들이기에, 훗날 소련의 지배에도 저항할 수 있는 이들로 비쳤다. 스탈린주의의 논리에 의하면, 그런 점에서유대인들은 게토에 남아 독일에 봉사를 하고 있는 아니면 그곳을 빠져나와 독자적인 행동을 할 능력을 보여주는 어떤 식으로든 미심쩍은 이들이었다. 

(스탈린의 이러한 불신은 ‘수용소군도‘에도 자주 언급된다.) - P429

1943년 9월, 민스크 최후의 유대인 몇몇은 독일이 점령한 폴란드에 있던 소비부르란 이름의 시설로끌려간다. 

그곳에서 이들은 심지어 벨라루스에서조차 몰랐던 죽음의 시설을마주하게 된다. 짐작했을지 모르겠지만, 그곳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모든 종류의 공포가 이미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P452

대량 살상의 의학은 아주 간단했다. 일산화탄소co는 산소에 비해 혈액 속 헤모글로빈과 훨씬 더 잘 결합하고, 이에 따라 신체 조직에 산소를 공급하는 적혈구의 정상 작동을 막는다. 

희생자들은 표면상 의료적 실험및 치료라는 미명하에 시설로 오게 되는데, 실제로는 가스통에서 나오는 일산화탄소로 질식하게 될 "샤워장"으로 인도된다. 금니를 한 희생자들은 미리 등 뒤에 분필로 표식을 해두었는데, 이는 그들이 죽은뒤 금니를 회수하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이 첫 희생양이었고, 부모들에게는 이들이 치료 과정에서 어떻게 죽었는지를 적은 가짜 소견서가전달되었다. 이 안락사" 프로그램의 희생자 대다수는 비유대 독일인이었다. 

물론 장애를 가지고 있던 독일 유대인들은 아무런 검사조차없이 곧바로 살해당하기 일쑤였다. 어느 학살 시설을 돌리던 인력들은 1만 번째 화장을 축하하기 위해 해당 시신에 꽃을 두르기도 했다.
- P461

앞날이 창창해 보이던 나치 친위대 지휘관 암살 사건은 학살의 페달을 밝기에 아주 좋은 구실이 되었다. 히틀러와 힘러의 뒤를 이어.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는 유대인 말살 정책의 가장 중요한 설계자였다. 아울러 그는 여러 조직을 한 사람에게 맡겨버리는 나치의 경향이매우 전형적으로 드러난 사례였다. 

하이드리히는 이미 제국보안본부의 수장이었고, 동시에 보헤미아 모라비아 보호령 및 1939년 독일에병합된 체코 지역까지 책임지는 자리에 있었다. 1942년 5월 27일, 그는 영국 정보부의 사주를 받은 체코인과 슬로바이키아인의 암살 시도 중 부상을 입었고, 6월 4일 사망한다. 

히틀러와 힘러는 하이드리히가 경호 병력들을 대동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것에 대해 못마땅해했지만, 그는 체코인들 사이에서 자신의 인기가 높기에 별도의 경호 부대 등을 두지 않아도 될 것이라 믿었다. 독일은 점령한 폴란드나 소련같은 다른 지역에 비해 체코 땅에서는 억압적 정책을 펼치지 않았고,
하이드리히는 특히 체코 노동계급의 호감을 얻는 데 공을 들여왔다.

하이드리히 암살은 마지막 해결책의 기획자를 잃었음을, 하지만동시에 그 순교자‘를 얻었음을 뜻했다. 히틀러와 힘러는 1942년 6월3일부터 5일까지 사흘에 걸쳐 만남을 갖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자리에서 힘러는 다음과 같은 찬사를 던진다. 

"우리의 신성한 의무는 바로 그의 죽음에 대한 복수, 그가 하던 일을 끝까지 이어나가는 것, 그리고 우리 인민의 적을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여기에 한 치의 망설임이나 자비 따위가 있어서는 안되겠지요!" - P471

폴란드인들은 유대인을 태운 기차가 지나갈 때 소리를 질러댔다.
물론 폴란드인들이 꼭 유대인들의 죽음을 바랐다고 볼 수는 없지만,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동작은 그것에 증오의 감정을 내비치며 이를기억해낸 소수 유대인 생존자의 증언에서처럼, 유대인들에게 이제 곧그들은 죽음을 맞이할 것임을 알려주던 신호였다. 

어떤 폴란드인들은돈을 요구하기도 했고, 좀더 자비로워 보이던 이들은 다른 것을 달라하거나 혹은 아이들을 요구하기도 했다. 당시 바르샤바에서 비교적일찍 그곳으로 끌려온 얀키엘 비에르니크는 자신의 이송 당시에 대해다음과 같이 기억했다. "나는 그곳에서 모든 것을 지켜봤습니다만, 그곳에 가득했던 사악함과 불행,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습니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 P478

트레블린카에 온갖 소문이 나돌기 시작하자, 독일인들은 거짓 선전을 짜내느라 바쁜 상황이 되었다. 런던에 망명 중이던 폴란드 정부는 전부터 가스 학살에 관련된 보고를 비롯해 독일인들이 폴란드 시민들을 대상으로 벌인 각종 학살 소식을 동맹 영국과 미국에 전해주고 있었다. 

이들은 그해 여름 영국과 미국에 독일 시민들을 대상으로앙갚음을 해줄 것을 호소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폴란드 저항군을 이끌던 망명 정부군 소속 장교들은 트레블린카를 습격할 것을 고려했으나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독일은 가스 학살을 부인했다. 바르샤바 유대 경찰 수장이자 "재정착 위원이었던 유제프 셰린스키는 자신의 경우 트레블린카로부터 줄곧 엽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물론이 시점에도 바르샤바 게토에는 우편 업무를 취급하는 곳이 있었고,
이는 몇 주 동안이나 돌아갈 것이었다. 

이곳에서 모자를 쓴 채 일하던 이들은 밝은 오렌지색 노동 증명서를 가지고 있었던바 이송을 위해 끌려가는 일은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 손에는 트레블린카로부터 온 어떤 소식도 있을 턱이 없었다.  - P483

불과 몇 달 만에 슈탕글은 트레블린카의 모습을 바꿨고, 이에 따라 그곳이 가진 살인 역량 또한 더욱 강화되었다. 1942년 말 트레블린카에 도착한 유대인들이 내려선 곳은 그저 시체들로 둘러싸인 경사로가 아닌, 유대인 노역자들을 동원해 거짓으로 꾸며놓은 가짜 기차역이었다. 

그곳은 시계, 열차 시간표, 매표소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
"역"에서 내려 걷던 유대인들의 귀에는 바르샤바 출신 음악가 아르투르 골트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들려왔다. 절뚝거리며 걷게나 스스로 어딘가 좋지 못한 기색을 보이던 유대인들은 이 지점에서
"치료소로 가게 되는데, 붉은 완장을 찬 유대인 노역자들이 이들을부축해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건물로 데려갔다. 

이들 병든 유대인은이 건물 뒤에서 의사처럼 꾸며 입은 독일인들 앞에 누웠고, 목 뒤에총을 맞았으며, 배수로에 버려졌다. 그들 가운데 악명 높던 처형자는유대인 노역자들이 히브리어로 ‘말라흐 하 마베트‘ 즉 죽음의 천사라부르던 아우구스트 미에테라는 인물이었다.  - P484

모든 여인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음은 물론, 머리카락 한 가닥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로 가스실까지 걸어가야 했다. 그들 각각은유대인 "이발사, 앞에 앉아 삭발당했고, 종교적 관습에 충실해 가발을 쓰고 있던 여인들은 그것마저 내놓아야 했다. 죽음이 거의 턱밑까지 차오른 이 순간에도 사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어떤 여인들은 이 순간까지도 이발이 소독의 마무리 과정일 것이라 여겼고,
또 다른 이들은 이것이 곧 자신들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아차리기도 했다. 이렇게 확보된 여인들의 머리카락은 독일인 철도 노동자들이 신을 스타킹을 만들거나, 독일 잠수함 선원들이 신을 슬리퍼의안감으로 쓰일 것이었다.  - P485

거기에는 "하~님"께로 가는 문. 마땅한 자는 응당 지나가리"라고 적혀 있었다. 

물론 유대인들은 입구에 서 있던 두명의 트라브니키 출신 경비병에 의해 거칠게 안쪽으로 밀어넣어졌기에 이를 발견한 이는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한 명은 몽둥이를, 다른 한 명은 칼을 들고 있던 경비병들은 고함을 지르며 유대인들을 때리기 일쑤였다. 

그 뒤 유대인들이 방 안으로 들어가면 곧바로 문을닫으며 자물쇠를 채우고는, 물을 틀어!"(바로 마지막 거짓말이자, 굳이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전혀 없던 거짓말이었다. 

그 대상은 이미 가스실에 갇힌 불행한 유대인들이었다. 누군가는 이들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있었던)라고 외쳤다. 그러면 세 번째 트라브니키 대원이 레버를 당겼고, 탱크 엔진에서 뿜어져 나온 일산화탄소가 가스실 안으로 쏟아졌다. 

<원문 표현 G-d, 너무 신성하기에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하ㅡ님이라 표현하는 정통 유대인들의 표현.> - P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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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27 1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의 절반을 향해 가시는군요~ 언제나 완독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청아 2021-04-27 10:47   좋아요 2 | URL
항상 감사해요!응원에 힘이 납니다.ㅋㅋ😆🙆‍♀️

scott 2021-04-27 10: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٩(๑❛ʚ❛๑)۶응원 합니돵!

청아 2021-04-27 10:50   좋아요 2 | URL
스콧님도 감사해요!넘 오래 붙드는데도 계속 응원해주시니 완독을 안할수가 없네용~♡🙆‍♀️

행복한책읽기 2021-04-27 13: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헐. 400페이지를 넘었는데 이제 절반이란 말입니까. 대 다 나 시 당 ~~~~ 지도 응원 대열 합류. 미미님 아자!!!

청아 2021-04-27 13:10   좋아요 2 | URL
음 다행?히 719페이지 부터는 옮긴이의 말과 주석이예요ㅋㅋㅋㅋ응원 감사해용!🙆‍♀️
 


‘히틀러의 의지가 외부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을 때조차 변함 없었다‘(p.340)는 힘러의 충성심과 악명에 궁금해져 사진을 찾아봤다.
대부분의 연쇄 살인마나 악인들이 그렇듯이 외모로만 봐서는 일반인과 다를 게 없어보인다.
게다가 딸을 안고 있는 자상한 모습.

이 사람도 히틀러를 안만났더라면 그렇게나 악랄한 짖은 저지르지 않았겠지?
<피에 젖은 땅>에는 힘러에 대해 ˝히틀러의 유토피아에서 현실적이고도 악명 높은 부분들을 가장 능숙하게 뽑사낸 인물˝이라고 나와 있다. (p.340)

아인자츠그루펜(보안경찰 및 보안국 특수작전집단)이 일반적으로 유대인 남성만을 죽이고 있던 그 시점까지도, 힘러는 나치 친위대 소속 전투 부대인 자신의 무장친위대를 보내 여성과 아이들을 포함해 유대인 공동체 자체를 완전히 소멸시키도록 했다. p.357

만델라(Nelson Rolihlahla Mandela)는 ˝바보는 용서하지도 잊지도 않지만
현명한 사람은 용서하되 잊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 자신도 주변의 그 어떤 누구도 극단의 상황에서 누가 어떤 선택을 할지 단정지어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인류 역사에서 끔찍했던 전쟁의 참상을 공부하며 사람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그 위험성을 간접 경험으로나마 지켜볼 수는 있다.

인간다움이란 존엄이란 무엇인가.
그것들을 지키며 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할 것인가.


(사진: 네이버 블로그89kyk,paradise fa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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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25 17: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덕분에 나쁜x 한명 더 알고 갑니다. (하인리히 법칙만 알고 있다는 ㅎㅎ)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것 같아요.ㅜㅜ 잊지 않는게 중요하단 말에 공감합니다~!

청아 2021-04-25 17:17   좋아요 3 | URL
ㅋㅋ저는 하인리히 법칙을 찾아봐야겠네요!😉 인상이 나쁘지 않아 왠지 더 무서운것 같아요.ㅠ 공감해 주셔서 감솨해요!

scott 2021-04-25 17: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콧수염 !!
나치당원들 히틀러 스톼일 코수염!!
힘러 자신의 가족들 한테는 넘 잘한 남푠 아빠였다고 합니다.
[ 나치의 아이들]이라는 책에 나옴!

청아 2021-04-25 17:53   좋아요 3 | URL
ㅋㅋㅋ아 그러네요. 정말 히틀러 따라 길렀을 수도 있겠어요!! <나치의 아이들>도 읽으셨군요.저도 얼른 찜😊♡

그레이스 2021-04-25 20:30   좋아요 3 | URL
<히틀러의 아이들> 아닌가 했는데,
나치의 아이들이란 책도 있군요 ㅋ

청아 2021-04-25 20:36   좋아요 2 | URL
비슷한 책들이 꽤 있네요! 품절이라 중고바로 주문*^^*

bookholic 2021-04-25 20: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로랑 비네의 <HHHh>라는 소설이 생각나네요.. 제목이 독특해서 읽었는데, HHHh는 “Himmlers Hirn heißt Heydrich”의 줄임말로 ˝힘러의 머리는 하이드리히다˝라는 뜻이라고 하더군요.. 힘러 말고 또 한명의 나쁜 x 하이드리히가 나오고, 그들을 없애려는 레지스탕스들의 이야기가 그려졌던 것으로 기억되는 소설~~^^

청아 2021-04-25 20:33   좋아요 3 | URL
오오! 재밌을것 같아요~😆로랑 비네의 또 다른 책 <언어의 7번째 기능>까지 두 권 찜해 두었어요!👍

붕붕툐툐 2021-04-25 22: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고문 기술자들도 쉬는 시간엔 가족 대화를 나눈다는 얘길 들었는데, 하.. 저는 저부터 타인을 나, 혹은 내 가족과 같이 생각하는 연습을 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구별은 잔인함을 가져오는 가장 강력한 사고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나저나 오늘도 미미님의 책바구니는 묵직해지셨네요!^^

청아 2021-04-25 22:53   좋아요 4 | URL
책바구니 포화로 당분간 북플을 끊어야하나 싶을 정도지만 툐툐님이 요기 계시니 고건 불가능 하네용ㅋㅋㅋㅋ🙆‍♀️ 알리고싶지만 차마 여기 올리지 못한 슬픈 내용도 많이 있었어요. 죽이는 것보다 잠못자게 하는거랑 굶주리게 하는게 더 끔찍한거 같아요.😭

바람돌이 2021-04-25 23: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많은 나치의 학살자들이 집에서는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 좋은 이웃이었다죠. 그래서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이라는 것에 천착하기도 하고요. 저렇게 온화한 모습으로 딸을 안고 있는 모습에 그들의 끔직함이 더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청아 2021-04-25 23:34   좋아요 3 | URL
네! 안그래도 오늘 이 글 올리고 한나 아렌트를 읽어봐야겠다 생각했어요~♡ 악의 평범성이란게 그런 의미였군요!! 🤔🥲

그레이스 2021-04-26 00:41   좋아요 3 | URL
악의 평범성과 무사유에 대한 한나 아렌트의 글에 분노했던 유대인들의 심정에 더 공감하게 됩니다.

청아 2021-04-26 08:40   좋아요 3 | URL
그레이스님도 읽으셨네요! 아 또 조급해지고 궁금합니다!ㅋㅋ😳

고양이라디오 2021-04-26 18: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하인리히 힘러가 특별히 악인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하인리히의 위치에 있고 하인리히와 같은 업무를 맡았다면 같은 행동을 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게 시스템, 전쟁의 무서운 점이라 생각합니다. 군대에서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명령에 불복할 수 있는 군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청아 2021-04-26 19:58   좋아요 3 | URL
음 물론 저도 대부분의 그 위치에 있던 나치장교들이나 군인들,독일시민들이 명령에 의해, 군중심리와 프로파간다에 휩쓸려 어쩔 수 없던 부분이 상당히 있었다고는 생각해요. 저 상황에서 난 안그럴꺼야 하고 장담하기도 단정짖기도 힘들구요.하지만 힘러의 경우 많은 자료와 증거,증인들에 의하면 굉장히 적극적이고 선동적으로 학살을 주도했던 인물이고나름의 창의력도 발휘했어요. 그런 역할에 수반하는 이익을 얻었구요. (유대인)부녀자까지 학살해야한다고 주장했던것도 힘러가 처음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양차대전사를 공부해야하는 이유는 그만큼 전쟁이란 주사위가 던져졌을때 무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자체를 경계하고 그들보다 최소한 조금이라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거란 가능성에 희망을 걸어야하기 때문 아닐까요?

고양이라디오 2021-04-27 12:26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말씀들으니 하인리히가 일반적이고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군요. 저는 어제 댓글을 쓰고 ‘아, 하인리히에 대해 잘 모르는 데 괜히 댓글 달았구나‘ 하고 후회됐어요ㅠㅋ

친절한 댓글 감사합니다bbb

네 미미님 말씀대로 과거를, 역사를 공부해야하는 이유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지요!

청아 2021-04-27 12:37   좋아요 1 | URL
언제든 자유롭게 의견을 주세요. 저는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게 너무 기쁨니다! 저도 얼핏 이름만 주워들은 정도 였는데 이 책에서 좀더 자세한 내막을 알게 되었어요.^^; 희망적이었던 것은 일부 나치장교들(영화,다큐에서 알게됨)이 연합해 저항했고 스탈린체제 안에서도 악행에 반발한 인물들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이예요. 특히 이 책은 수많은 자료,증언들을 모아 당시 상황을 면밀히 소개하고 있음요.🥲

서니데이 2021-04-26 20: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인리히 히믈러 라고 읽는 줄 알았는데 힘러라고 읽어야되는군요. 흑백사진처럼 보이는데 분홍원피스가 조금 더 눈에 들어옵니다.
잘 읽었습니다.
미미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청아 2021-04-26 20:58   좋아요 2 | URL
완벽한 독일식 발음표기는 아닐듯하죠?ㅋㅋ출처 페이지에서 보니 원래는 흑백사진인데 누군가 컬러삽입을 한 것 같아요. 서니데이님도 굿나잇되세용!😉
 

<레닌 그라드>

통상 전쟁이 벌어지면, 전쟁포로들에게는 상대방도 우리 군 포로들에게 똑같은 것을 제공하리라는가정하에 식량, 숙소, 치료가 제공된다.

히틀러는 이러한 관례를 뒤집어엎고자 했다. 소련군 포로들을 무자비하게 대하는 것을 통해, 독일 군인들은 자신들 역시 포로가 된다면그와 똑같은 대접을 받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낄 테고, 결국 그들은 적의 손에 붙잡히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전투에 임하리라는 것이 히틀러의 생각이었다. - P314

스탈린 또한 히틀러와 비슷한 관점을 취했는데, 붉은 군대의 군인들은 절대 산 채로 적에게 붙잡힐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소련의 군인들이 퇴각한다거나적에게 투항할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소련군은 오직 앞으로 나아가 적을 섬멸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적의 손에 죽.
는 길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는 존재들이었다. 

(솔체니친의 <수용소군도>에서도 이와 유사한 스탈린의 만행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스탈린은 적에게 포로로 잡힌뒤 풀려나 본국으로 돌아온 소련군을 심문하고 괴롭히도록 했다.
믿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 였다.
적과 싸운 군대는 승리하거나 전투에서 죽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한 듯 하다.
그의 불신은 에초 혁명의도와 상반될만큼 자국의
농민부터 지식인, 나라를 위해 싸운 붉은 군대와 자신과 함께한 당원까지 예외가 없었다.) - P314

 스탈린은 1941년 8월독일군에게 붙들린 소련군은 탈영병으로 간주될 것이며, 본국의 가족들 역시 체포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것은 심지어 자신의 아들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는데, 자신의 아들이 독일의 포로가 되자 스탈린은 곧바로 자신의 며느리를 투옥시켜버렸다. 
- P314

이같은 소련의 무자비한 공격일변주의는 더 많은 소련 군인이 독일군의 포로가 되는결과를 불러왔다. 

소련군 지휘관들은 퇴각 명령을 내리길 두려워했는데, 그럴 경우 자신들에게 인신 공격적 비난(숙청 그리고 처형)이 쏟아지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소련군은 한곳에 지나치게 오랫동안 머무는 일이 잦았고, 사방에서 포위당해 붙잡히기 일쑤였다. 

히틀러와스탈린이 택한 정책들은 결국 소련 군인들을 먼저 전쟁포로로, 다음으로 인간 이하의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악순환을 빚어내고 있었다.
- P314

독일이 점령한 소비에트 벨라루스 지역에 있었던 가장 악명 높은포로수용소들의 모습을 살펴보자. 1941년 11월 말까지 이곳 수용소들의 사망률은 하루 2퍼센트에 다다랐다. 

민스크 근처의 스탈라크352는 어느 생존자의 회상처럼 "그야말로 지옥과도 같은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는데, 포로들은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거의 움직일 수조차 없을 정도로 빽빽이 들어차서는, 선 채로 용변을 해결해야 했다. 

대략 10만950명이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한 목격자에 따르면, 벨라루스 동부에 위치한 도시 모길료프의 굴라크 185, 127 및스탈라크 341에서는 철조망 밖 곳곳에 매장되지 못한 시신으로 이뤄진 시체의 산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 P320

동쪽 땅에 설치된 수용소의 구조는 슬라브족이든 아시아인이든아니면 유대인이든 독일이 이들의 생명을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지를그대로 드러냈고, 바로 그것이 그 같은 대규모 기아를 감히 실행에 옮길 수 있게 한 원인이었다. 

전쟁 기간에 붉은 군대 포로들이 갇혀 있었던 독일 포로수용소의 사망률은 575 퍼센트였다. 바르바로사 작전직후 8개월 동안의 사망률은 그보다 훨씬 더 높았던 게 틀림없다. 반면 독일이 서방 연합군 포로들을 가둬두었던 포로수용소의 사망률은 5퍼센트에 못 미쳤다. 

1941년 가을 어느 하루 동안 사망한 소련군포로들의 숫자는 제2차 세계대전을 통틀어 목숨을 잃은 영국군과미군 전쟁포로 전체 숫자와 맞먹었다 - P325

먼저 포로들은 주변이 꽤 시끄러운 축사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들은 흰색 겉옷을 걸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마치 자신들이 진찰실에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물론 흰색 겉옷을 걸친 자들은 의사인 척하는 나치 친위대원들일 뿐이다. 이들은 포로에게 각자 키를 잴 것이라며 특정 벽을 마주 보고 서라고 지시했을 것이다. 

그들이 벽을 재빨리 살펴보는것은 포로의 목이 벽에 뚫어둔 구멍 안에 들어오는지를 가늠해보는작업이었다. 이 벽 반대편 방에는 또 다른 나치 친위대원이 권총을 들고 서 있었다. 벽의 구멍을 통해 포로의 목이 보이면 그는 즉각 방아쇠를 당겼다. 

시신은 "검사실"이라 불리는 세 번째 방으로 던져져 빠르게 닦이고, 다음 포로가 안으로 들어온다. 과거 소련의 그것보다기술적으로 진일보한 부분은 한데 묶인 35~40구의 시신이 트럭을통해 화장터로 보내졌다는 점이다.

- P329

독일로 보내진 몇몇 소련 포로가 맞이했던 운명은 이후 유대인들에게 어떤 일이 닥쳤는지를 보여준다.

1941년 9월 초, 아우슈비츠에서는 소련 포로 수백 명이 앞서 수용소내 폴란드 포로 막사를 소독하는 데 쓰이던 살충제, 곧 시안화수소가스(일명 치클론 B)를 마시고 숨을 거둔다. 

뒤에 유대인 약 100만 명이 아우슈비츠에서 이들과 마찬가지로 치클론 B에 목숨을 잃게 될것이었다. 비슷한 시각 작센하우젠에 있던 소련군 포로들 역시 이동식 가스실 실험의 희생양이 되고 있었다. - P333

이타 스트라시는 빌뉴스에서 살아남은 극소수 유대인 중 한 명이었다. 당시 19세 소녀였던 그녀는 리투아니아인 경찰의 손에 끌려 이미 시신들로 가득 찬 구덩이 앞에 서게 되었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제 끝이구나. 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고 한다. 

총알은 그녀를 비껴갔지만 공포심에 구덩이로 떨어진 이타의 몸은 뒤이어 총에 맞은 사람들의 시신으로 뒤덮였다. 누군가가 시체 더미 위로 걸어와 아래쪽을 향해 총구를 당겼다. 한 명도빠짐없이 죽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총알 하나가 이타의 손에박혔지만, 그녀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주변이 조용해질 때까지한참을 그렇게 있던 그녀는 조심스레 그곳을 빠져나왔다. 이타의 말을 마저 들어보자. "그때 나는 신발조차 신고 있지 않았답니다. 시체들을 밟고서는 걷고 또 걸었지요. 시체더미는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 P347

아녀자 살해는 힘러가 확실하게 부숴버리고자 했던 일종의 심리적벽이었다. 심지어 아인자츠그루펜이 일반적으로 유대인 남성만을 죽이고 있던 그 시점까지도, 힘러는 나치 친위대 소속 전투 부대인 자신의 무장친위대를 보내 여성과 아이들을 포함해 유대인 공동체 자체를 완전히 소멸시키도록 했다. 

1941년 7월 17일 히틀러는 힘러에게점령 지역을 안정적이고 평화롭게 만들 것"을 지시한다. 이틀 뒤 힘러는 무장친위대 소속 기병대를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사이에 위치한폴레시아 늪지대로 파견했는데, 이들은 힘러로부터 유대인 남성들을사살하고 여성들은 끌고 가 늪에 밀어넣으라는 직접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그는 자신의 지시를 빨치산과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했다.  - P357

인간의 마음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부정하고자 애쓸 때라면 인간의 정신우 보통 모방,복종,그리고 결국 소멸로 쏠리게 된다. -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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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25 1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 절반 읽으신거죠? ㅎㅎ 이 책 리뷰 대회의 결과가 기대됩니다^^

청아 2021-04-25 12:15   좋아요 1 | URL
빨리 읽어야 리뷰를 쓸텐데 저 너무느려요ㅋㅋㅋㅋㅋ
😳😭 소설 읽고픈데 참는중ㅋㅋ

행복한책읽기 2021-04-25 13: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엄두가 안 나는데 대단하심요. 미미님 격하게 응원합니다. 영차영차!!!^^

청아 2021-04-25 13:20   좋아요 1 | URL
아~♡ 책읽기님 고맙습니당ㅋㅋ 응원받아 오늘은 진도를 좀 나가볼께요! 점심먹으면서 읽는중예요! 으쌰으쌰ㅋㅋㅋ😆
 

독일의 기획자들이 파악했듯이, 집단농장이란 수백만의 사람을굶겨 죽이는 것이었고, 따라서 다시금 써먹어야 할 방식이었다. 그랬다. 그들은 이번에는 수백만이 아닌 수천만 명을 굶겨 죽일 작정이었다. 과거 소련의 집단화는 초기에는 비효율성으로 인한 의도치 않은결과에 따라, 그리고 비현실적인 식량 생산 목표 때문에, 그다음에는1932년 말과 1933년 초의 의도된 악의적 착취의 결과로 우크라이나에 기아를 몰고 왔다. 이와 달리 히틀러의 집단화는 사전에 짜놓은아사 계획으로, 그 대상은 바로 달갑지 않은 소련 주민들이었다.  - P290

일본은 1940년 여름부터 줄곧 소련과 중립 조약을 체결할 길을 찾고 있었고, 1941년 4월 드디어 한 가지 결실을 얻어내기에 이르렀다.
일본이 유럽 지역에 파견한 첩보원들 중 소련 전문가이자 그해 봄 발트해 연안, 동프로이센에 위치한 쾨니히스베르크에 파견된 스기하라지우네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해 들어갈 날짜를 점치고 있었다. 

그는폴란드인 조력자들과 함께 앞서 독일이 폴란드로부터 빼앗은 땅을포함한 독일의 동부 지역을 둘러봤다. 독일군의 움직임을 관찰한 스기하라는 1941년 6월 중순 그에 관한 결과물을 내놓는다. 

그가 도쿄로 보낸 보고서는 당시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에 퍼져 있던 정보원들이 보낸 수천 가지 지역 동향 보고 중 하나로서, 독일이 늦은 봄이나이른 여름쯤 몰로토프-리벤트로프 협정을 깨고 소련을 칠 것이라는내용을 담고 있었다.‘

스탈린 자신도 독일이 그러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보고를 이미100차례 이상 받았지만 이를 무시해버렸다. 그의 한결같은 전략은 독일이 서쪽으로의 전쟁을 계속하도록 부추기는 것이었다.  - P295

스탈린은 분명 언젠가 독일과도 전쟁을 치를 것이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1941년은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독일의 공격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경고는 아주 명백한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진 양국, 곧 독일과 소련을 분열시키기 위한 영국의 선전일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 P296

스탈린은 다른 무엇보다, 그 어떤 첩보 보고서에서도 겨울 장비에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었던 데서, 독일이 겨울용 장비도 갖추지않은 채 공격하리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 P296

<독소전쟁>

히틀러의 심복 괴링이 1941년 9월에 벌인 일들은 과거 1932년12월 스탈린의 심복 카가노비치가 벌였던 일들과 놀랍도록 닮은 구석이 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이후 몇 개월 동안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을 것이 확실한 식량 정책 지침을 내려보냈다. 또한 자신들의 정책이야기할 기아를 인도적 비극이 아닌, 적들이 시도한 전술 혹은 흔들기로 여겼다. 

카가노비치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괴링은 자신의 부하들에게 굶주림은 곧 냉혹함이 필요한 곳에 연민을 불러일으키려는적의 무기라고 지시했다.  - P305

앞서 1932년과 1933년 스탈린과 카가노비치는 자신들과 우크라이나 인민들 사이에 우크라이나 정당을 위치시키고는 이들 우크라이나 공산주의자에게 그곳 곡물 공출 책임을 맡게 했으며, 만약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이들에게 비난이 떨어지도록 했다. 

히틀러와 괴링 역시 1941년과 1942년 자신들과 굶주린 소련 인민들 사이에 독일 국방군을 놓아두었다.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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