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많은 여자들이 결혼생활에 매몰되어, 스탕달의 말처럼 ‘인류의 손실을 불러왔던가. 사람들은 결혼이 남자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한다. 그것은 사실일 때가많다. 그러나 결혼은 거의 언제나 여자를 허무하게 만든다. - P626
성실한 여류작가는 누구나 ‘30세 여자의 마음에 깃드는 이 우울한 감정을지적한다. 이는 캐서린 맨스필드, 도로시 파커, 버지니아 울프의 여주인공들어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색이다. 결혼 초기에는 그토록 쾌활하게 결혼과 5성을 노래했던 세실 소바즈도, 나중에는 섬세한 서러움을 풀어낸다. - P627
결혼은 여자를 반복과 매너리즘에 떨어뜨려버린다. 여자 일생의 첫 20년은 놀랄만큼 풍요롭다. 여자는 월경·성감(性感) 결혼·모성이라는 경험을 통과한다. 세계와 자기의 운명을 발견한다. 그러나 20세에 가정주부가 되어, 일생 동안 한 남사에게 매이고 아이들을 품에 안으면, 이것으로써 그녀의 삶은 영원히 끝난 것이다. 진정한 행위, 진정한 일은 남자의특권이다. 여자에게는 그날그날의 살림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종종몸을 녹초로 만들지언정, 결코 마음을 충족시켜 주지는 못한다. - P628
즉 결혼은 자주적인 두 사람의 결합이 되어야 하며, 은둔이나 예속이나 도피나 일시적 구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아내나 어머니가 되기 앞서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한 노라 50는 그러한 사실을 이해한 것이다. 부부를 마치문이 닫힌 감옥과도 같이 폐쇄적인 공동체 단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대신에 개인이 저마다 하나의 주체로서 사회에 통합되고, 그 속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커 가야 한다. 그럼으로써 역시 사회에 연결된 다른 개인과 더불어 손익을 떠나서 순수한 유대 관계를 형성해 갈 수 있다. 이는 두 자유인의 서로에대한 올바른 인식 위에 이루어진다. - P629
어디선가 읽은 바에 따르면, 이른바 ‘포식자‘라고 불리는, 성령처럼 나른하게 하늘을 맴돌던 매가 개똥지빠귀 떼를 공격하면 이들은 매우 적극적으로 방어한다고 한다. 이 새 떼는 도저히 믿기 힘든,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싸울 줄도 알고, 상대에게 복수를 하기도 한다. 그들의 방법은 이렇다.공격을 당하면재빨리 공중으로 솟구쳐 올라 포식자를 향해 일제히 똥을 싼다.수십 마리 새의 흰 배설물이 매의 화려한 날갯죽지로 떨어지면서더럽혀진 깃털이 서로 엉겨 붙고, 부식산(腐植)으로 범벅이 된다. 결국 매는 정신을 차리고 새 떼를 향한 추격을 멈춘다. 그러고는 구역질을 하며 풀밭에 내려앉는다. 깃털이 어찌나 심하게 더럽혀졌는지 최악의 역겨움을 체험하게 된다. 매는 온종일 깃털을 닦고, 그다음 날도 깃털을 닦으며 시간을 보낸다. 잠도 자지 않는다.날개가 그토록 더러워진 상태로는 도저히 잠을 잘수 없기 때문이다. 사방에서 지독한 악취가 풍기고, 게속해서 구역질이 난다. 생쥐 같기도 하고 개구리 같기도 하고 썩은 고기 같기도 한 냄새. 단단히 굳어 버린 배설물은 부리로도 제거되지 않는다. 매는 추위에떤다. 몸에 들러붙은 깃털을 통해 빗물이 피부로 스며든다. 이제다른 매들도 그를 피한다. 마치 악성 질병에 감염되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매는 존엄성을 상실하고, 이 모든 상황을 견딜 수 없게 된다. 그러다 마침내 죽음에 이른다. - P144
내가 어릴 때 사람들은 까치 한 마리는 불운을, 두 마리는 행운을 의미한다고 말하곤했다. 하지만 그때는 까치의 수가 적었다. 지난가을, 잠복기가 끝나고 가을이 왔을 때 나는 수백 마리의 까치가 그들의 저녁 보금자리로 날아가는 것을 목격했다. 그렇다면 행운도 수백 배로 커졌을까. - P145
나는 눈 녹은 웅덩이에서 까치들이 목욕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새들은 곁눈질로 나를 살폈지만 별로 두려워하지 않고, 대담하게 날개로 물을 튀기며 웅덩이에 머리를 담근 채 목욕을 즐겼다. 펄럭이는 날갯짓을 보니 이런 식의 목욕이 얼마나 상쾌한지가생생하게 느껴졌다. - P145
까치는 목욕을 자주 하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듯했다. 더구나그들은 총명하면서도 오만하다. 모두가 알듯이, 그들은 다른 새들로부터 재료를 훔쳐서 자신의 둥지를 짓고, 그곳으로 반짝이는 물건들을 실어 나른다. 이따금 실수로 불이 완전히 꺼지지 않은 담배꽁초를 둥지로 가져간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게 그들은 방화범이 되어 스스로 지은 둥지를 불태운다. ‘까치‘라고 알려진 이새는 라틴어로 피카피카라는 사랑스러운 이름을 갖고 있다. - P145
동물 살해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죠. 처벌이 없으니 아무도사건에 대해 알지 못해요. 그 누구도 사건에 대해 알지 못하니까그것은 아예 없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도살당한 짐승의 붉은 고깃덩이가 걸려 있는 가게 진열장을 지나갈 때, 그게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 한 번이라도 궁금하게 여긴 적 있나요??식당에서 꼬치구이나 커틀릿을 주문했을 때, 우리 앞에 놓인 건무엇일까요? 아무도 충격을 받거나 끔찍하게 여기지 않습니다.무자비한 범죄가 지극히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행위로 여겨지고있으니까요. 지금은 모두가 아무렇지도 않게 범죄를 저지릅니다.아우슈비츠 수용소가 표준이 된다면 세상은 아마 바로 그런 모습일 거예요. 아무도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걸 느끼지 못하는 그런세상 말입니다." - P155
하지만 내 이야기에 싫증을 느낀 청소부마저 자신의 업무에몰두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푸들을 향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도대체 무슨 세상이 이 모양이죠? 누군가의 몸으로 신발을짓고, 미트볼과 소시지, 침실 깔개를 만듭니다. 또한 누군가의 뼈를 고아서 국물을 우려내죠……. 누군가의 뱃가죽으로 완성한 신발과 소파, 숄더백, 누군가의 털로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고, 누군가의 몸을 먹고, 그것을 토막 내어 기름에 튀기고 있습니다....이런 잔혹한 행위가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는 게 말이 되나요? - P157
나쁜 꿈을 처리하는 오래된 방법은 화장실 변기에 대고 그 꿈을 큰 소리로 말한 다음, 변기의 물을 내리는 것이다. - P161
고통받는 사람은 신의 뒷모습을 본다ㅡ마틴 루터 - P164
하인리히 힘러가 고용한 천문학자 빌헬름 볼프가 1944년 7월 20일에 히틀러에게 큰 위험이 닥칠 것을 예언했는데, 우리가 알듯이 그날은 바로 볼프스산체*에서 히틀러에 대한암살 시도가 있었던 날이다. 그리고 나중에 그 암울한 천문학자는1945년 5월 7일 이전에 히틀러가 비밀스러운 최후를 맞으리라고담담하게 예언했다. - P172
"이것도 좀 봐." 나는 그에게 행성의 배열을 보여 주었다."1953년에는 토성이 전갈자리에 있었어. 그 당시 스탈린의 사망과 함께 동유럽에서는 정치적 해빙기가 찾아왔지. 1952년부터1956년까지는 세계사에서 강력한 전제 정치가 성행했고, 한국 전쟁이 일어났는가 하면 수소 폭탄도 발명됐어. 1953년은 폴란드가경제적으로 가장 힘든 해였지. 이것 봐, 바로 그때 전갈자리에서토성이 나타났어. 놀랍지 않아?" - P173
우리는 고원을 가로질러 초원과 멋진 황야를 지나 마을을 향해 달렸다. 사방이 조금씩, 소심하게 녹색으로 변하는 중이었다. - P177
쳐다보기만 해도 목이 메고 저절로 눈물이 차오르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어쩐지 예전에 우리가 순수했던 시절의 기억을 훨씬더 많이 간직하고 있을 것만 같고, 마치 타락하지 않은 자연의 변종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사람들, 어쩌면 그들은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잊어버린 왕자에게 그가 고국에서 입었던 두루마기를 보여주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법을 일깨워 주는 충직한 하인을 연상시키는 전령과도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 P183
종달새 한 마리가 날개를 다치면하늘의 천사들이 노래를 멈춘다.ㅡ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순수의 전조> - P193
"만약 제가 회고록을 쓰고 싶다면 뭘 어떻게 하면 될까요?""일단 탁자에 앉아 억지로라도 글을 써야 합니다. 그러면 저절로 이야기가 나올 거예요. 그리고 자신을 검열해서는 안 됩니다.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모두 적는 게 좋아요."이상한 충고다. 나는 ‘모든 것‘을 적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좋다고 여기는 것과 긍정적인 것들만 적고 싶었다.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인가를 더 해 줄 줄 알았지만 그녀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나는 실망감을 느꼈다."실망했나요?"그녀가 내 생각을 읽은 듯 물었다."네.""말로 할 수 없을 때, 그때 글을 써야 합니다." 그녀가 말했다. - P211
나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지금, 여기밖에는 없다. 모든 앞날이 미지수이고, 도래하지 않은 모든 미래는 공기의 미세한 떨림만으로도 쉽사리 파괴될 수 있는 신기루처럼 불투명하다. - P230
<세기의 전설>이나 <명상 시집> 번역이 없으니 우리는 지극히 작은 것만을 알고 있는 상황인듯.
만일 빅토르 위고가 『세기의 전설』이나 『명상 시집』은 손도 대기 전에 「국왕 장의 기마창 시합」과 「팀파니 연주자의 약혼녀」, 「목욕하는 사라만을 쓰고 죽었다면, 우리는 지극히 작은 것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 P122
"네, 네, 알겠습니다. 사건을 조사해 보죠."서장은 무심한 어투로 무성의하게 말하면서 책상에 놓여 있는저류들을 가방에 넣기 시작했다. 그는 벌써 내게서 달아나는 중이었다.그때 나는 내가 이 남자를 증오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니, 그이상이었다. 그를 향해 겨자처럼 맵싸한 반감이 솟아났다. - P47
대기가 푸른빛으로 바뀌며 면도날처럼 날카로워졌다. 깊고 둔탁한 울부짖음이 사방을 온통 불안감으로 채웠다. 나는 죽음이 항상 문 앞에 있다고, 즉 가까운 곳에 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죽음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언제나 우리의 대문 앞에 도사리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가장 좋은 대화는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최소한 의미 전달 과정에서 오해의 소지는 없을 테니까. - P49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하게 될지 몰랐다. 사람이가끔 분노를 실감하게 되면 모든 게 단순 명료해진다. 분노는 질서를만들고, 세상을 간략히 요약해서 인식하게 만든다. 또한 분노는 다른 감정 상태로는 얻기 힘든 ‘선명한 시야‘를 우리에게 확보해 준다. - P50
나는 잠을 설쳤다. 내 몸 어딘가에는 아직도 불안과 초조의 기운이 남아 있었다. 열기가 들끓는 용광로와 붉은빛의 뜨거운 벽에둘러싸인 보일러실에 대한 똑같은 꿈들이 줄곧 나를 괴롭혔다. 꿈속에서 용광로에 갇힌 화염이 굉음을 내며 빠져나오려 했고, 엄청난 폭발과 함께 세상 밖으로 터져 나와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것 같았다. 나는 이러한 꿈들이 내 질환과 관련된 증세인,밤의 열병 탓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P51
개는 총알처럼 집 밖으로 달려 나가 소변을 보면서 허공으로우스꽝스럽게 뒷다리를 들어 올렸는데, 마치 자신이 암컷인지 수컷인지 확인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 나서는 슬픈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단언컨대 그 순간 개는 내 눈동자를 깊이 응시하고있었다. 그러고는 곧장 왕발의 집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그렇게 개는 서둘러 자신의 감옥으로 돌아갔다.그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었다. 나는 개를 소리쳐 불렀다. 너무도 쉽게 왕발의 마당으로 들어서는 모습에 짜증이 났고, 속박의 메커니즘에 익숙해진 무기력한 태도에 화가 치밀었다. - P52
이따금 우리가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머무는, 거대하고 넓은무덤 속에 사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차갑고 불쾌한 잿빛 어스름에 물든 세상을 보았다. 어쩌면 감옥은 바깥이 아니라우리 각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게 아닐까. 어느 틈엔가 우리는 감옥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 P52
필멸의 운명으로 태어난 모든 존재는대지에 의해 삼켜지리라ㅡ윌리엄 블레이크 - P55
알고 지내던 누군가의 죽음은 우리에게서 자신감을 앗아 간다. - P57
그날 오후 디지오가 우리 집에 도착했을 때, 그는 감기에 걸려있었다. 요즘 우리는 블레이크가 남긴 미완성 육필 원고 중 하나인 「멘탈 트레블러를 번역하는 중이었다. 첫머리에 등장하는 단어 mental의 번역을 놓고 곧바로 논쟁이 벌어졌다. 문자 그대로‘정신적인‘으로 번역하는 게 나을지, 아니면 ‘영적인‘으로 번역하는 게 나을지. 디지오가 코를 훌쩍이며 닝독했다.I travel‘d through a Land of Men,A land of Men & Women too,And heard & saw such dreadful thingsAs cold Earth wanderers never knew. - P134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여전히 건재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행성 자체를 파괴할 태세인 전 지구적자본주의라는 야만적 체제에 대한 대안을 이론화하고 건설할 수 있는 거대한 잠재력이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 P33
정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가하는 한결같은 불의야말로 옳고 그름에 관한 모든 통념을 뒤죽박죽으로 만든다. 모든 가정은 절대 전제정의 중심부이며, 복종을 명령하기만 하면 되는 남자에게는물론 지식과 설득이 필요없다. ㅡ윌리엄 톰슨,1826년 - P36
샤를 푸리에: 프랑스의 유토피아 사회주의자어떤 사회에서든 여성 해방(자유)의 정도는 일반적인 해방을 가능하는 자연스러운 척도다. 이러한 척도는 현 사회에도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후략ㅡ1841~1845 - P41
사람과 사람의 직접적, 자연적, 필연적 관계는 남성과 여성의 관계이다. 양성의 이러한 자연적 관계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곧 인간과 인간의 관계이며, 이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곧 인간과 자연의관계 인간의 고유한 자연적 기능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계에서 인간적 본질이 어느 정도로 인간에게 자연이 되었는지또는 자연이 어느 정도로 인간의 인간적 본질이 되었는지는 감각적으로, 직관 가능한 사실로 환원되어 나타난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관계에서 인간의 발전 단계 전체를 판단할 수 있다. ㅡ카를 마르크스 - P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