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들 그러리라 생각되는데 어릴때 학교에서 배우자마자 머릿속에 새겨져 버린 <서시>, 그리고 늘 마음을 울려 버리곤 하는 <별 헤는 밤>다시 읽어도 읽어도 좋네요.읽다보면 어느순간 부터 강하늘 목소리로 재생되는 것도 참 신기했습니다.영화 <동주>아직 못봤는데 말이죠.
나는 무얼 바라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 P45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은 아무래도 와닿지 않았다. 마침 <수용소 군도>를 읽던 중이었고 마침 등장한 1956년이라는 그녀의 시대적 배경, 재즈와 마약, 도박,스피드, 사르트르에 대한 그녀의 경의에 한숨과 씁쓸함만 더했다. 제목을 <풍요와 한계를 넘나들며>로 지었으면 어땠을까. 스피드를 즐기다 3일간 무의식의 경계까지 넘나든 실제 경험만 해도 그렇다. 그래도 어찌어찌 인내를 발휘해 절반이상은 읽어냈다. 그리고 양심껏 다 읽은 책에 넣지 않았다. 와중에 찰스 부코스키의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와 페기 구겐하임의 자서전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는 순간. 그녀의 천재성이 무엇인지 그제야 이해했다. ‘여기에는 감동이 있고 저기에는 유머가 넘쳤던 것‘ (<고통과 환희의 순간>의 편집자의 머릿말)은 오히려 그녀의 삶보다는 작품이었다. 대화속에서, 의식속에서 흘러나오는 이런저런 의미와 표현들이 가슴과 머리로 와 닿았다. 그런 결과물들은 아마도 경계를 넘나들만큼 열정을 쏟아본 사람이기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엘리트 코스를 밟고 무난한 인생을 살아 성공한 사람보다 이런저런 범죄에 휘말리고 파란만장한 삶을 산 뒤 자신의 자리를 찾은 사람이 더 매력있지 않냐란 말. 사강의 글도 그녀의 타오르는 열정을 마음껏 쏟고 마신 뒤라 더 매력적인 맛이 나는 것 같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론에 근거하는 것이었다. 즉, 어떤경우에도 직업적 범죄자들과 자본주의적 분자들(이를테면기사, 대학생, 농업 기술자, 수녀 등)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후자는 한결같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적대시하지만 전자는 <단지> 정치적으로 불안정할 뿐이다. (직업적 살인자는 <단지 정치적으로 불안정할 뿐이라는 것이다!) 룸펜은 재산을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계급적 적대 분자들 편에 끼어들수가 없고 프롤레타리아트 편에 기꺼이 가담하게 된다. (과연그럴까!) 그렇기 때문에 수용소 관리 본부의 공문서에서는 이들을 <사회적 친근 분자>라 지칭하고 있다. - P129
도둑들은 에스토니아인들의 금니를 부젓가락으로 쑤셔 뽑아내기도 했다.그자들은 (끄라스노야르스끄 수용소에서 1941년에) 리투아니아인들이 받는 소포를 자기들에게 넘겨주지 않는다고 그들을 변소에 던져 넣어 오물 속에 빠져 죽게 했다. 도둑들은 죽음을 선고받은 사람들의 물건까지 약탈했다. 도둑들은 새로운 사건을 일으켜 재판을 받음으로써 겨울을 따뜻한 지방에서 보냈으며, 혹은 조건이 아주 나쁜 수용소를 빠져 나가기위해 같은 감방의 죄수를 아무나 장난삼아 죽이기도 했다. 무서운 추위 속에서 누구의 옷을 벗긴다거나 배급된 빵을 빼앗는다거나 하는 일 따위는 거론할 가치조차 없는 하찮은 일들이다. - P135
음울한 하늘 아래 불로뉴 숲의 얼어붙은 호수가 두 사람 앞에 펼쳐져 있었다. 조정 경기 선수 한 사람만이 그곳에 여름을되돌려 놓기 위해 고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 P79
그는잘못 알고 행복해하기보다는 제대로 알고 불행해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 P80
하루는 여기서 또 하루는 저기서 - P107
"나는 <슬픔이여 안녕>의 문학적 가치와 그것을 둘러싼 소란 사이의 차이를 알 만큼은 좋은 책을많이 읽었다" ㅡ사강이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자리를 거절하며 - P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