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는 당신의 거울이다. 당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일들이 이 거울에 비친다. 당신은 반발심과 부족한 균형감각, 그리고 자기혐오와 마주하게되지만, 고유한 시야와 배짱, 꺾이지 않는 용기도 직면하게 된다. 이제까지 무엇을 성취해왔건 우리는 날마다 산 밑자락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다들 이렇게 살지 않을까? 까다로운 수술을앞둔 외과의사도 산 밑자락에 있다. 최후변론에 나서야하는 변호사도, 자기가 등장할 차례를 기다리는 배우도, 학기 첫날 출근하는 선생님도 산 밑자락에 있다. 가끔우리는 스스로를 책임자라고, 혹은 상황을 파악했다고생각할지도 모른다. 삶은 대개 바로 거기 있지만, 지나친 자기확신에 사로잡힌 우리를 때려눕히는 것이 삶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이런 교훈을 오랫동안 배우고 겪어왔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견딜 수 있다. 우리는더 낫게 실패한다. 우리는 자세를 바로잡고, 자기 자신을추스르고, 다시 시작한다. - P15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대니 샤피로
엄마 아빠와 닮지 않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 말을 들을때는 어딘가 좀 우쭐해지는데 내가 특별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다르다는 것,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건 이후로도 매력적이었다. 그런점이 나의 수많은 선택에 적지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같다. 고독도 어쩜 마찬가지. 전에 나는 고독하지 않다고 쓴 적이 있다. 그런데 나중에 알았다. 고독하지 않은게 아니라 내가 고독을 즐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독하다며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면 의아하다. 와...저 좋은 걸, 저 시간을 왜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괴로워하는걸까.
요즘 영어 공부할겸, 드라마도 즐길겸 미드 '굿닥터'를 조금씩 보고 있는데, 나름 인기있다는 걸 알았지만 처음엔 보고 싶지 않았다. 뭔가 진부할 것 같아서. 나도 진부한데 진부한 드라마까지 볼 여유는 없으니까. 그러다 드라마 잘 안보는 남편이가 보길래 옆에서 봤는데. 볼만했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건 이런 대목들이다.
Why were you rude to me when we first met, then nicer to me the second time
we met, and now you want to be my friend?
Which time was it that you were pretending?
처음에는 내게 무례하게 굴더니 그 다음엔 친절해지고 지금은 내 친구가 되길 원하는군요?
어떤게 당신이고 어떤게 가면이죠?
You‘re very arrogant.
Do you think that helps be a good surgeon?
Does it hurt you as a person?
Is it worth it?
선생님은 매우 오만하십니다
그게 좋은 외과의가 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인간으로서 상처받지는 않으십니까?
그럴 가치가 있습니까?

사진이 좀 무섭게 나왔는데 주인공 숀이 이 병원에 레지던트가 되고 첫 수술실 입성 장면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로 치면 의대 교수 정도급 되는 이 의사는 숀을 처음부터 반대했다. 왜냐하면 그가 자폐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무슨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제목처럼 수술 방에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너는 여기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모멸감을 느꼈을 숀. 이에 당돌하게도 되받아친다. "당신은 매우 오만하다!" (사실 이 전에 "당신은 훌륭한 외과의이고 앞으로 내가 배울점이 많을 것이다"라고 칭찬을 먼저 해서
밑밥을 깔아주었더랬다. 이거 '하버드 100년 전통 말하기 수업' 읽지 않아도 알만한 대화법이긴 하지만서도)

그래도 그렇지 간호사의 당황한 저 눈빛연기를 보라! 이게 선배에게 수술방에서 과연 가능한 얘기? 특히 보수적인 우리나라에서 이런 식으로 외과의에게 '고작'레지던트가 이런 말을 한다면 아마 그녀 또는 그는 다시는 수술방 출입이 불가할 터. 재밌는건 미드 '굿닥터'를 보고 궁금해서 원조격인 우리나라의 '굿닥터'를 찾아봤는데 (그런데 왜 창피하게 제목을 '굿닥터'라고 했을까? '좋은 의사'라고 했다면 어디 덧나나....수입한 미국에서도 웃었을 것. 쟤네는 모국어가 없냐. 왜 영어로 제목을? 하고...) 미드의 같은 배역과 달리 선배 외과의가 병원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등 고압적태도를 아무렇지 않게 선사한다. 미드에서 같은 배역의 외과의도 무섭고 고지식한 면이 있긴하지만. 참 보기에 그렇더란 말이지. 요즘도 그런 의사가 있을까? 있으면 어쩌지?)

다른 말 :때린 사람도 아프잖아?

마지막 펀치!
미국에서 올 가을쯤 시즌7을 선보일 예정인 '굿닥터'는 우리나라로부터 판권을 사간 경우다. 일본도 역시 판권을 사간 뒤 드라마로 제작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당시 나는 보지 못했지만 처음 한국에서 방영이 되어 큰 흥행을했던 것. 전체적인 맥락은 같지만 수입해 가면서 일부 내용이 각 국가별 상황,감성에 맞게 바뀌었다고 알고 있다. 여기서 당연한 의문. 왜 자폐증은 늘 천재만 주인공이 되는건가.' 자폐 스팩트럼'이라는 용어가 말해주듯 자폐에는 종류가 많다. 이 말은 최근 인기리에 방영중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 변호사가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굿닥터'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공통점은 주인공에게 서번트 증후군이 있다는 사실이다. "서번트 증후군은 사회성이 떨어지고 의사 소통 능력이 낮으며 반복적인 행동 등을 보이는 여러 뇌 기능 장애를 가지고 있으나 기억, 암산, 퍼즐이나 음악적인 부분 등 특정한 부분에서 우수한 능력을 가지는 증후군이다."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 중에 이 증후군을 가진 경우가 10프로 정도라고한다. "자폐성 서번트를 주인공으로 한 1988년 영화 ‘레인맨’의 모델이기도 한 킴 픽은 책 9,000권을 통째로 외우고 있는데, 한 페이지를 읽는데 8~10초 정도 걸린다고 한다. 한 마디로 살아있는 스캐너인 셈이다."(출처:KISTI의 과학향기 칼럼)
친구의 사촌에게 자폐가 있는데 중학교 때 그 집에 놀러갔다가 한 대 얻어 맞은 적이 있다. 굉장히 아팠다. 누군가에게 맞고나서 정확한 이유를 들을 수 없었던 최초의 기억이다. 그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살면서 장애를 떠올릴때 가장 이상하다고 생각한 점은 학교에서 그들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들을 만나는 건 '특별한 일'이 되어 어떻게 친구가 되고 소통할 수 있는지. 상처주지 않고 친구가 될 방법을 배울 길이 없다. 얼마전 한 정치인이 장애인 시위를 향해 보여준 것처럼 무지의 자리에는 쉽게 혐오와 오해가 싹튼다. 장애의 종류는 비장애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다양하고, 겉모습만으로 장애여부를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그들은 비장애인들과 분리되어 살아가고 있는거다. 그러면서 자폐를 가진 드라마 주인공은 천재의사 혹은 법조문을 모두 외우는 천재변호사인 것은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아직은 우리 사회가 천재가 아닌 90프로의 자폐인들을 만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건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어쨌든 인간미 넘치는 소재와 교훈적 갈등요소를 잘 버무려 좋은 드라마를 만들어준데에 점수를 주고 싶다. 두 드라마 모두 나와 다른 타인을 바라보는 관점에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끔 판을 깔아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특별해지고 싶어하고 자신만의 독특함 그 자체로 사랑받고 싶어한다. 그러나 정상성이라는 기준을 세워 기준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때로 함부로 대하기도한다. 물론 막장과 폭력,자극만을 소비하게 만드는 많은 드라마들과 이 드라마들은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주인공 우영우 변호사는 벌써부터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고 국내 많은 시청자들에게도 감동을 주어 사랑받고 있는 것이겠지. 그래도 앞으로는 천재가 아닌 장애인들도 아나운서가 되고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주, 조연으로 함께 어울려 지내는 드라마를 보고 싶다. 그게 훨씬 더 자연스럽고 현실에 부합하지 않을까.

유튜버 '굴러라 구르님'
https://content.v.kakao.com/v/kjL7eWku4E
길을 잃어야 탈출구를 만들 수 있다.-데이비드 살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