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꿀꿀할 땐 웃기는 장르가 최고. 물리학, 수학 이야기가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병맛을 기본 장착하고 옵션으로 물리학,수학계 인물 정보를 망라하는 만화책을 읽었다. 뭐 당연히 이런 부류는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그러니 당연하겠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은 킬킬대며 뒹굴거고. 싫어하는 분들은 꽤 시간 아까워하고 종이 아까워할 그런 수준이다. 어찌됐든 나만 좋으면 장땡!! (내 기준에는 별 5개 안아깝다) 욕을 먹으면 내가 쓰고 그린거 아님, 웃기다면 그러게 내가 추천하지 않았느냐고 등짝 스매싱을 날리면 그만.


발톱 자국만 보아도 사자임을 알겠다니. 뉴턴의 자국이 어떤 것인지 너무 궁금하다. 직접 봐도 그게 임팔라 자국인지 사자 자국인지 나는 모를것도 같다만은.

폰 노이만의 임종 썰이다. 라틴어로 암송했겠지? 축구는 세리머니로 천재의 임종은 암송으로?
무기력하고 똘끼 충만한 며칠을 보냈다. 장마 때문에 무기력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장마가 소강한 시점에도 무기력했으니 장마탓만은 아니었으리라. 마음에 다이너마이트가 가득해 누가 불씨만 건내주면 언제라도 터뜨릴 수 있는 그런 시기를 건너는 중이었던, 그랬던 것이다. 하루는 이런 상태를 벗어나보고자 음악을 들으며 공원을 돌고 집에 돌아오던 중에 좁은 골목길에서였다. 좁으니까 우측으로 붙어 걷고 있었는데 저 만치 50미터 앞에서 마주오는 남자가 보인다. 개를 산책시키고 있다. 그런데 그는 좌측으로 붙어 나를 향해 오고 있으니... 순간 거슬렸다. 비켜주기 싫었다. 드디어 거리가 좁혀지고 '니가 비키느냐 내가 비키느냐' 결전의 타이밍에 이르렀다. 가까워져 마주선 찰나에 그가 백기를 들고 조금 뚱한 표정으로 한쪽으로 비켜서는데 똘끼 충만해 기세등등 그를 노려보던 내 앞에 이 남자. 잔나비 최정훈과 흡사하다. 순간 내 기분은? 1번 갑자기 두근두근 심쿵, 2번 그러거나 말거나 이겼으니 장땡! 그냥 많이 닮은 사람이었을까? 최정훈은 이 동네에 안 살것 같은데, 야밤에 우리 동네로(굳이?) 와서 개를 산책시키고 있던 걸까? 나름 길거리에서 연예인 잘 찾아내던 나였는데 확신이 없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비슷한 시간대에 다시 운동을 나가봐야겠다.
어쩌다보니 비슷한 시기 이 책을 같이 읽었다. 앞 책과는 물리학이라는 장르적 유사성, 서사적인 면에서는 좀 많이 차별성을 띈 이 작품을 펼치자 마자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과학사와 역사를 다 이런 식으로 기술한다면 공부는 더이상 괴로운 노동이 아닐수도 있겠다고 생각함. 물론 팩트를 반영한 논픽션이라는 것만 빼고! 그래도 이정도면 충분히 매력있다. 단, 몇 번의 느닷없는 시인과 물리학자의 발기 이야기는 분명 거슬렸다. 폰 노이만의 임종썰 처럼 뭔가 근거가 있어서 표현하다보니 거기까지 갔을까? 하긴 물리학자라고해서 성과 무관한건 아닐테니까. 그래도 이런 책을 읽을땐 그런 사정까진 굳이 알고 싶지 않은 그런 저런 마음. 나만 그런가? 그 부분만 제외하면 가독성 좋고 재독하고 싶은 글이었다.
발신인 이름은 커다란 핏자국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장갑을 끼고서 나이프로 봉투를 개봉했다.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진정한 천재의 마지막 불꽃을 담은 편지였다. 편지를 쓴 사람은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이자 독일군 중위 카를 슈바르츠실트였다. "아시다시피 전쟁이 제게 호의를 베푼 덕에 집중포화 속에서도 이 모든 소동을 벗어나 당신의 개념의 땅을 이렇게 거닐 수 있었습니다"라는 마지막 구절에 이르기까지 아인슈타인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읽어내려갔다. 독일에서 가장 존경받는 과학자 중 한 명이 러시아 전선에서 포대를 지휘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다가올 재앙에 대한 친구의 알쏭달쏭한 경고 때문도 아니라, 편지지 뒷면에 쓰여 있던 것 때문이었다. 돋보기를 대고서야 간신히 분간할 수 있는 잔글씨는 일반상대성 방정식에 대한 최초의 정확한 해였다.- P46
하이젠베르크는 보어와 함께 걸으면서 아원자 세계가 거시 세계와 극단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직감했다. 보어는 하르츠 산지의 산덩이를 가늠하다가 그에게 말했다. "고작 흙 입자 하나에 원자 수십억 개가 들어 있다면 대체 어떤 방법을 써야 그토록 작은 것에 대해 유의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나?" 시인과 마찬가지로 물리학자 또한 세상의 사실들을 단순히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은유와 정신적 연결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P.125
어떤 문장들이 와닿아서 이 책을 골랐다. 막상 읽고보니 특별히 새롭다거나 감동적인건 없었는데 그래도 가볍게 한 번쯤 읽어볼만하다. 작가가 등장하는 영화가 생각보다 꽤 많다는 걸 알았다. 책을 읽으며 하나하나 기록해두었는데 제목이 나올때마다 옮겨적다가 도중에 토나올뻔했다. 영화에 등장한 사람들이 모두 책을 쓴 작가는 아닌것 같고 시나리오 작가도 포함되어 있다. 나름 영화좀 본다고 자부하고 다니는데 이 리스트에는 내가 본 게 별로 없어 놀랐다.
작가가 등장한 영화들:
파울로 코엘료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호밀밭의 반항아/ 사랑의 역사
가짜 암살자의 진짜 회고록/완벽한 거짓말ㅡ미셸 우엘벡/ 베티블루 37.2/ 더 레이디 인 더 밴ㅡ앨런 베넷
하나 빼고 완벽한 뉴욕 아파트/ 파더 앤 도터/ 작은 아씨들/ 타임 투 러브/ 매직 오브 벨 아일/ 알렉스와 엠마
허리케인 카터/ 책도둑/ 녹터널 애니멀스/ 5 to 7/ 줄리&줄리아/ 달콤한 악마의 유혹/ 헤밍웨이&결혼
마틴 에덴/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 릴라 릴라/ 더 챔프/ 미스 리틀 선샤인/ 새벽의 약속/ 괴테
더 스토리 세상에 숨겨진 사랑/ 더 와이프/ 해피 엔딩/ 에브리띵 윌 비 파인/ 스턱 인 러브/ 비포선셋
갈매기/ 시드니 홀의 실종/ 매니페스토/ 죽은 시인의 사회/ 매직 오브 벨 아일/ 스모크
신과 나눈 이야기/ 실화:숨겨진 비밀/ 빗나간 동작/ 영 어덜트/ 원더 보이즈/ 실비아/ 완벽한 거짓말
패터슨/ 알렉스,엠마/ 타임투러브/ 날 용서해줄래요/ 블랙 버터플라이/ 리미트리스/ 지니어스
트럼보/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바이올렛:그녀의 뜨거운 삶/ 혹스:욕망의 법칙/ 더 스토리:세상에 숨겨진 사랑
사이드웨이/ 환상의 그대/ 내 책상 위의 천사/ 달콤한 악마의 유혹/ 당신은 나의 베스트셀러
미스 포터/ 원더 보이즈/ 논 픽션/ 시드니 홀의 실종/ 매직 오브 벨 아일/ 사이드웨이/ 타인의 삶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거절. 그 형식적인 답변들에 대하여'란 제목의 글이었다. 당연하겠지만 작가의 꿈을 꾸고 출판사에 투고하는 글에 거절 메시지를 보내주는 곳도 있고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는 곳은 더 많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다가 얼마전 읽은 잠자냥님의 페이퍼도 생각났는데 https://blog.aladin.co.kr/socker/13704073
프루스트를 비롯해 유명한 작가들 또한 거절을 수없이 당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작가 지망생들이 번번이 투고를 거절당하는 건 작가의 길로 들어서는 과정의 일부일지도 모르겠다.
보내주신 원고는 잘 받았습니다. 귀하의 부단한 노고가 느껴지는 원고였습니다.
희곡을 검토해 본 결과 전반적으로 내용이 부실하며 캐릭터에 공감이 가지 않고,
운율이 제대로 맞지 않으며, 기본 형식을 갖추지 못해 출판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_영화 '괴테'- P172
(괴테가 이런 거절을 당했었다니...)
‘당신 작품같이 형편없는 건 처음입니다. (..) 당신의 형편없는 작품에 유감을 표하며 돌려드립니다.
이런 원고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당신의 머릿속으로‘
_영화 '베티블루 37.2'- P174
(이렇게 거절하는 경우가 과연 실제로 있을까? 조금 잔인한데 웃기다.)
아직도 나는 냉탕과 온탕을 오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 전에 대중목욕탕에서 온탕에 들어갔다가 놀란일이 있었다. 대각선 방향쯤에 딱 봐도 많이 먹어야 고딩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니 저 아이는 핸드폰을 왜 탕까지 가지고 들어왔지? 카메라 찍는건 아니겠지??? 찍어서 용돈 벌려고?? 도대체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 그 아이에게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라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러고 보면 소유는 사람을 나약하게 만드는 것 같다고 늘 생각해왔었는데 한벌의 옷은 자존감을 위한 최소한의 무기인것도 같다. 무소유를 실천한 간디도 그래서 입고 다녔던 거겠지. 그나저나 오늘은 뭐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