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품절



흰 눈송이들이 끝없는 장막처럼 지상을 향해 펼쳐지며 펄럭거렸다. 이 눈의 장막이 세상의 형상을 지우고 사물마다 얼음 거품을 덮어씌웠다. 겨울에 감싸여 가라앉은 이 도시의 광활한 적막 속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쏟아지는 눈송이들이 허공에서 나부대는 소리, 어떤 것이라고 표현할 말이 없는 그 희미한 바스락거림이 전부였다. p.18


모파상은 에밀졸라와 함께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이 책에 담긴<비곗덩어리>는 <보바리 부인>으로 잘 알려진 스승 플로베르에게 '걸작'이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세 개의 단편중 <비곗덩어리>를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 줄거리는 보불전쟁의 프랑스가 처한 상황으로 시작한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승합마차를 타고 피난길에 오른다. 먼 여정을 시작하고 얼마안가 모두 몹시 배가 고파진다. 허기를 잊으려 가져온 술을 마시고 복선처럼 이야기를 나누는 승객들.


"그래도 좋네요, 몸을 데워 주고 허기도 잊을 수 있으니." 술기운이 돌자 기분이 나아진 루아조가 농담이랍시고 노랫말 속의 작은 배에서처럼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 노랫말은 승객 가운데 제일 살찐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내용이었다. 돌려서 한 말이긴 하지만, '비곗덩어리'를 암시하는 그 농담은 교양 있는 양반네들을 질색하게 했다. p.29 


'비곗덩어리'는 아름답고 통통한 승객인 엘리자베트를 의미했다 유일하게 음식을 싸온 사람은 매춘부인 엘리자베트 뿐이었다. 그녀의 신분 때문에 깔보고 눈총을 보내던 사람들은 엘리자베트가 준비해온 푸짐한 음식을 나누어먹자 태도가 돌변, 상냥해진다. 그리고 한 목소리로 침략자인 프로이센군을 비판한다. 곧이어 도착한 첫번째 숙소에서 적군인 프로이센 장교가 엘리자베트와 하룻밤을 함께 하고 싶어하고 그녀가 거절하자 승합차가 떠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아무 남자하고나 자는 게 저 여자의 직업인데, 누구는 받고 다른 누구는 마다하는 건 대체 무슨 이유랍니까?"p.64


적군을 함께 비난하고 음식을 나누어 준 엘리자베트를 칭찬하던 사람들은 이제는 그녀를 비난한다. 하루하루 날이 지날수록 볼모로 잡힌것에 볼멘소리를 하며 엘리자베트의 희생을 요구한다. 나중에는 일행 중 수녀까지 적군의 장교에게 숭고하게 자신을 희생시키는 애국자가 될 것을 엘리자베트에게 요구한다.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가 인용되고, 이어서 아무 맥락 없는 루크레티아와 섹스투스가 거론되더니, 클레오파트라까지 적의 장군들 모두와 잠자리를 해서 그들을 노예처럼 복종하게 했다는 설명이 붙어 끌려 나왔다.p.65


군중심리와 집단적 이기주의를 떠올렸다. 약한 소수에게 다수는 때로 그 힘을 이용해 매우 냉정하고 냉혹한 모습을 보이기도한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 약자의 희생은 불가피한것처럼 몰아가기도 한다. 약자를 배려하고 소수의견을 존중할 때 진정 인간성이 빛을 발하는 것 아닐까? 개인 사이가 그렇듯이 모두가 평화롭고 만족스러울때 서로를 존중하는 것은 비교적 어렵지 않을 것같다. 하지만 어렵고 고통스러운 상황에, 다수의 희생과 소수의 희생이 저울의 양쪽에 올라 있을 때, 판단은 결코 쉽지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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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2-28 21:0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 인간의 이기심과 희생양을 보았습니다. 분개하기도 했구요. 어쩌면 아무것도 안하는 태도는 무정함과 무자비함의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청아 2022-02-28 21:06   좋아요 5 | URL
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조난당했던 배에서 어린아이의 인육을 먹던일이 떠오르더군요. 그런 문제들을 사회적 차원에서 토론하고 고민해봐야 시민들의 의식이 더 성숙해질것 같아요.^^*

새파랑 2022-02-28 21: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다시 열린책들 시리즈 시작하시는군요 ^^ 그 스승의 그 제쟈 같아요 ㅋ 묘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심리를 너무 잘 그린 작품인거 같아요~! 마지막 장면이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ㅜㅜ

청아 2022-02-28 21:10   좋아요 4 | URL
이 문제를 소설로 표현했다는게 대단하고 또 놀랍다는 생각을 했어요! <보봐르 부인>아직 안읽었는데 궁금해요ㅋㅋ 마지막 장면의 임팩트!!^^*

새파랑 2022-02-28 21:11   좋아요 4 | URL
보바리부인 초초강추 입니다~!!

mini74 2022-02-28 21:2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마차 안과 달라지지 않은 거 같아요. ㅠㅠ 목적이 달성되자마자 모른척 하고 무시하는 이들을 보면서 저도 분노했던 기억이 납니다. 자신들은 합밥적 사랑이라면서 세 부인이 여주인공 무시할때 얼마나 그 위선이 꼴보기 싫던지요 ㅠㅠ

청아 2022-02-28 21:36   좋아요 5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모양만 다르지 오늘 날에도 분명 이런 일들이 반복되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있죠.ㅠㅠ 소설의 보편적 가치,힘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네요^^*

페넬로페 2022-02-28 22:2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군중심리와 집단 이기심을 정말 잘 표현한 소설같아요~~
앙앙~~
이럴때 인간들이 너무 미워요~~
그리고 우리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요^^

청아 2022-02-28 22:48   좋아요 4 | URL
재개발지역이라던지, 파업에 대한 시선, 임대아파트나 공공주택거주자차별,장애학생차별등 곳곳에 있죠. 그리고 인지하기 힘든 소소한 일들까지..늘 배우고 깨어있어야 볼 수 있는듯 해요. 결코 쉽지않은!^^*

scott 2022-02-28 23: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초딩 때 모파상 단편 읽고 충격을 ㅜ.ㅜ
몇일 동안 잠 못이뤘어요

프랑스 자연주의 사실 주의 작품 모두
플로베르에게 영향!
프루스트 옹도 ^^

청아 2022-02-28 23:48   좋아요 3 | URL
프루스트!! 프랑스 작가들 다 너무 좋아요 스콧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다 만나고싶어요ㅎㅎ

스콧님은 정말👍
과거로 회귀하고싶네요ㅠ

독서괭 2022-03-01 00:01   좋아요 3 | URL
초딩 때 모파상을 읽은 스콧님 와우👍

독서괭 2022-03-01 00: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작품 넘 재밌었어요~^^ 마담 보바리도 벨아미도 재밌었지만 이 짧은 단편에 담긴 날카로움이 유독 인상적이더라구요.
저도 이 시리즈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청아 2022-03-01 00:04   좋아요 1 | URL
짧은데도 강렬해서 더 깜짝 놀랐어요ㅎㅎ 보바리 빨리 읽고 싶어서 두근두근입니다~♡ 독재자들이 왜 사람들이 소설읽는걸 두려워했는지 알겠어요^^*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시력을 잃은 루벤. 그는 자신을 돕기위해 일하는 가정부들에게 난폭하게 굴어 모두 그만두고 새로 고용된 '마리'를 만납니다. 역시 마음을 열지 않는 루벤은 그녀에게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려 하는데 '마리'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되려 머리를 뜯긴 루벤은 그녀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합니다. 그녀의 냄새, 그녀가 책을 읽어줄 때의 목소리,...






'마리'는 백색증이 있고 얼굴과 온 몸에 흉터가 있습니다. 그녀의 엄마는 마리가 어릴때부터 왜그렇게 못생겼냐고 구박하고 학대한듯 보입니다. 그런 트라우마 때문인지 스스로 '거울'조차 바라보지 못하는 그녀는 늘 자신의 모습에 자신이 없습니다. 망토로 얼굴을 감추고 다닙니다. 다만 그녀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독서' 그녀는 루벤의 대저택에 고용되자 마음껏 서재의 책들을 읽을 수 있는지부터 묻습니다. 








루벤은 '마리'를 좋아하게 되면서 점점 차분해집니다. 그리고 마리가 읽어주는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에 귀를 기울입니다. 시력을 잃은 '카이'의 이야기에 빠져듭니다. 그리고 마리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손으로 '마리'의 얼굴을 느껴본 루벤은 자신이 상상한 것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둘은 서로를 사랑하게 됩니다. 









이를 못마땅하게 지켜보던 루벤의 유일한 가족인 엄마는 '마리'에게 경고를 하고, 루벤은 곧 시력을 회복할지 모를 수술을 앞두게 됩니다. '마리'는 '루벤'이 시력을 되찾게 되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꺼라고 생각하고 떠납니다. 수술 후 시력을 회복한 '루벤'은 애타게 '마리'를 찾지만 엄마도 돌아가시고 '마리'를 찾을 수 없어 방황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안데르센의 동화를 대출하기 위해 인근의 도서관을 찾은 루벤은 지나가던 사서에게 책을 찾아달라 부탁하는데 그녀는 다름아닌 '마리'였습니다. 당황한 마리는 책을 찾아주고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 하지만 스치는 그녀의 향기를 맡은 루벤은 그녀가 사랑하는 '마리'임을 눈치챕니다. 그리고 제발 돌아와 달라 말하지만 마리는 나는 아름답지 않다고, 현실에 동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목소리를 확인하기 위해 책을 읽어봐달라 부탁하는 루벤






아름다운 여성은 영원히 특정한 인간의 사랑이라는 보상과 책임에서 배제된다. 누구도 자신을 "그 자체로" 사랑할 거라고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 개인에 고유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특정한 개인과 상관없는 "아름다움"자체를 사랑의 필수 조건으로 만드는 신화에서는 아름다움이 사라지면 사랑이 어디로 가지 않을까 하는 지옥 같은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p.277






'마리'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루벤'은 '마리'가 스스로의 모습을 '루벤'에게 보이기 싫어 떠난 것을 깨닫고 자신의 눈을 찌릅니다. ㅠ.ㅠ 개인적으로 시력에 대해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영화에서 눈을 공격하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등등)장면은 차마 보질 못하는 편인데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시각적인 충격보다는 루벤의 마음이 안타까워서 오열했네요. '마리'의 외모가 아름다워서 사랑한게 아니라 '마리'이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생각한건데 '마리'는 트라우마 때문에 그걸 믿지 못하고 스스로의 모습을 보여주는걸 고통스러워하니 결국 그가 이런 선택을 한 것이겠죠. 한동안 이 영화의 제목을 몰라 (영화소개 프로에서 줄거리만 보고나서 잊어버림)찾아보질 못하다가 우연히 알게되어 이제서야 영화를 봤어요. '눈의 여왕'을 오마주?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2007년에 만들어진 네덜란드 작품인데 작년에서야 국내개봉을 했다네요. 감각적인 영상도, 내용도 인상적이었고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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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2-26 17:3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눈을 찌르다뇨 😭
이 영화 찜👆
배우들 연기력도 뛰어날것 같습니다^^

청아 2022-02-26 17:37   좋아요 6 | URL
넋놓고 봤어요 스콧님!😭 웨이브에도 있고 와챠에도 있습니다. 바보같이 울게됩니다. ^^*

새파랑 2022-02-26 17:5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마리의 외모컴플렉스만 없었더라면 해피엔딩일 수도 있었을텐데 아쉽네요 ㅜㅜ 겉모습에 끌리는 것보다는 사람 자체에 끌리는게 더 진실해 보여요. 아 눈 ㅜㅜ

청아 2022-02-26 18:05   좋아요 5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ㅠ결말을 알고 봤는데도 너무 슬프고 충격이었어요. 루벤이 전혀 고민하지 않은듯한ㅠㅜ

mini74 2022-02-26 18:3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평생을 외모로 구박받아 사랑을 믿지 못하는 마리도 , 스스로 눈을 띠른 루벤도 안타깝네요. 미미님 사진 속 배경이 예쁩니다 ~

청아 2022-02-26 18:43   좋아요 6 | URL
분위기가 동화같은 느낌의 영화였어요 미니님! 그래도 마지막에 루벤이 웃고 있어서 어쩌면 루벤에겐 해피엔딩일수도 있습니다ㅎㅎ

다락방 2022-02-26 19:22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 읽으니 미미 님이 쓰신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에 대한 후기도 겹치네요. 본연의 나 자체, 상대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그저 나인 자체로 사랑받고 싶었다고 했던 미미 님의 마음과 그러나 자신의 모습이 자신 없어 ‘이런 나를 나인 자체로 사랑해줄 리 없어‘ 하는 마음. 이 모든 것이 아름다움의 신화로부터 나온 것이겠죠. 이런 나를 사랑할리 없다고 생각한 마리도 슬프고 너 자체로 좋다고 말했지만 자기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결국 다시 자신의 눈을 멀게 한 루벤도 너무 아프네요. 이 영화를 보고 싶은데 또 너무 아플 것 같아서 보고 싶지 않기도 해요.

청아 2022-02-26 19:45   좋아요 7 | URL
저 영화 다시보다가 다락방님 댓글 읽었어요! 네~마침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를 읽은 터라 마리의 고통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던것 같아요. 이 영화를 못찾다가 이 시점에 결국 찾아낸것도 운명처럼 느껴지더라구요.ㅠㅠ
누군가를 만나고 연애할때는 늘 제 본모습도 사랑받을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어요.
영화에서 두 사람이 책으로 연결된 점이 특히 좋았고 서재도 자주나오고,...그래서 나누고 싶기도 했어요.
주제 때문에 어쩌면 나오미 울프를 읽은 분들에게 특별히 더 울림이 큰 영화일 수 있어요. 제가 다 옮기지 못한 부분도 있는데 다락방님은 분명 많은 것들을 더 읽어내시리라 믿어요^^♡

가필드 2022-02-26 20: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영화평 잘 읽었습니다 얼마전 영화 시라노보며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수 있고 받을 수 있는 연인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이 영화로 맥락적으로 연결점이 있네요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책의 내용도 같이 연결되어 있구요) 꼭 한번 보고 싶네요

청아 2022-02-26 20:23   좋아요 4 | URL
이 영화 강추합니다. 제 인생영화가 추가되었어요ㅎㅎ 나오미 울프도 책에서 언급했지만 다행히 많은 영화와 소설에서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 진실한 사랑에 관해 많이들 고민하는듯 보여요. 그런 것들의 추구가 계속되고 모순된 문제들에 질문을 늘려가다보면 아름다움의 이데올로기를 깰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페넬로페 2022-02-26 20:3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영화 넘 보고 싶어요~~
마리가 자신의 모습을 루벤에게 그대로 보여줬어도 됐을텐데요.
저는 이번달에 이 책이 계속 리뷰로 올라와 생각해봤는데,
남자들은 생각보다 여성의 외모에 대해 그렇게 큰 비중을 두지 않는데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몸에 대한 구속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잠시 해봤어요^^

청아 2022-02-26 20:46   좋아요 6 | URL
네! 저도 남성 개개인은 말씀대로 또 다를수도 있다고봐요. 그런데 미디어와 자본주의가 상업적인 면에서 이익을 얻기위해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너무 획일화하는걸 책을 보며 느꼈어요. 포르노 영향도 적지않고요.생각했던것보다 뿌리도 깊고 많은 것들에 그런 의식이 담겨있기도 하고요. 이건 아닐거라 생각한것들도 아름다움의 신화,이데올로기에 물들어 있더라구요. 페넬로페님 이 영화 한번 보세요~♡ 어제 절반은 소리를 끄고 봤다가 오늘 다시 소리까지 들었는데 OST도 좋아요! *^^*

책읽는나무 2022-02-26 21:5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왓챠에도 있다구요?
한 번 봐야 할 영화로군요?
미미선생님이 권하시는 영화라면 봐야죠.
책이랑 겹쳐 봐질 듯한 영화겠어요~^^

청아 2022-02-26 21:56   좋아요 5 | URL
네! ㅋㅋㅋ나오미 울프의 책을 읽고 난 뒤라 영화에 나오는 ‘아름다움‘의 의미가 더 크게 와닿았어요. 저는 왓챠에서 봤어요 나무님*^^* 영화가 좋아서 찾아보니까 입소문이나서 뒤늦게 수입된거래요.(끄덕끄덕) 블로그에도 많은 감상이 있네요. 강추합니다~♡

키라키라 2022-02-26 22: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우~ 책 제목과 영화내용이 너무 잘 어울립니다!!
아름다움에 눈이 멀기도 하지만 아름다움을 찾기위해 눈을 멀게도 하네요.
진짜 아름다움은 눈으로 보는게 아닌것 같아요.

청아 2022-02-26 23:31   좋아요 4 | URL
그쵸~♡ 키라키라님이 말씀해주신것처럼 이 영화를 분석한 영상도 있어요^^*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열망과 그걸 넘어선 간절한 사랑이 조화롭게 영화로 만들어졌네요. 최근 본 영화중에서 제일 강렬했어요!!

희선 2022-02-27 01: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루벤이 자기 눈을 찌르지 않고 마리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준다고 믿었다면 더 좋은 끝이었을 텐데 싶습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건 그 사람이어서일 텐데... 이런 영화 이야기 보고는 이렇게 생각해도 제 이야기가 되면 다를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청아 2022-02-27 11:19   좋아요 2 | URL
대부분 그런 해피엔딩을 바라실텐데 저는 반전을 꽤 좋아하기도하고 감독의 의도가 느껴져서 이것도 나쁘진 않은것 같아요. 독창적이랄까요?^^* 막상 영화를 보시면 희선님도 저와같이 느끼실수도 있어요. 루벤이 행복한듯 웃고 있거든요. 마리가 이젠 돌아올거란걸 아니까요. 그리고 마리의 모습을 봤기에 떠올릴 수 있으니까요😭
저도 실제라면 또 다를것 같습니다만ㅎㅎ

바람돌이 2022-02-27 02: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이야기만 읽어도 슬퍼서 훌쩍훌쩍인데요. 아 저 영화 보고나면 한동안 우울할듯요. 우리가 함께 읽은 나오미 울프의 저 책과 진짜 연결되네요. 사랑의 본질에 대해서 성찰하게 하는 영화이기도 하고요.

청아 2022-02-27 11:24   좋아요 2 | URL
네 바람돌이님!! 루벤을 통해서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보게되었고 마침 읽었던 나오미 울프의 책이 많이 생각났어요! 제가 출판사 대표라면 같이 묶어서 팔고싶은 느낌?🤭 분위기가 슬픈동화적이긴한데 게다가 마지막에 엄청 울긴했지만 보고난뒤 기분은 참 좋았어요~♡(유혹중^^*)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유령을 갖고 있다. 나는 처음으로 칼라지의 유령을 보고 있었다. 그건 그가 고함을 질러 그 유령을 쫓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P270


처음 100미터 달리기를 했을때 한동안 나는 거기 사로잡혔다. 출발선에서 하늘을 향해 발사되는 강렬한 총소리만큼 이미 내 심장은 내 뼈를 뚫고 나올것처럼 미친듯이 두근거렸다. '저기 저 곳까지 미친듯이 달려야해! '그게 뭘 의미하는지 그게 과연 내게 무슨 소용인지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가끔은 아니, 그보다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그저 발광하는 거라고. 내가 이 세계에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고 증명하기 위해. 매일 매 순간,미친듯이 발광하는 거라고. 모두 그러기를 멈추고 그걸 증명하기를 멈춘다면 과연 무슨일이 생길까 하는 생각.



나는 그를 부러워했다. 그에게서 배우고 싶었다. 그는 진정한 남자였다. 나는………. 나는 어땠는지 모르겠다. 그는 목소리였고, 내 과거와의 잃어버린 연결고리였으며, 내가 다른길을 택했다면 나의 롤모델이 되었을 사람이었다. 그는 야성적이었지만 나는 길들여지고 억눌려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 나를 강력한 용액에 담가서 내가 학교에서 배운 모든 습관과 미국에 양보한 모든 것을 내 피부에서 벗겨낸다면 내가 아니라 그가 발견될 것이다. 내가 처음 카페 알제에서 용기를 내 그의 테이블로 걸어가 침묵을 깼을 때 그가 내게 불쑥 다가온것처럼, 별안간 푸른 지중해가 펼쳐질 것이다.- P74


이 책을 덮고 한동안 나는 멍해졌다. 뭐라고 해야 하나 이 책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지? 그저 경험하는 것과 경험을 정리하는 것은 꽤나 거리가 있다. 쓰다보면 좀 더 분명해지는 것들이 있기도 하지만 쓰면서 더 멀어지는 경험이 있다. 여행을 온전히 경험하는 것과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사진을 찍느라 오히려 그 순간을 놓치는 것처럼.

그래서 시간이 더 필요했다. 오로지 발화된 감정을 소화시킬 시간이, 그것들이.그  강렬한 감정이 내 몸을 무심코 관통해 지나갈 수 있도록. 



어쩌면 모든 소설은 그저 인간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작가가 찾은 방식을 함께 읽어나가다 보면 거기서 나의 방식이, 내가 만들어갈 공식이 하나씩 추가된다. 막연하던 것들을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분명해질 수도, 더 막연해질 수도 있다. 누군가를 만나고 관계를 갖고 또 틀어지고 때로 부딪히고 사랑하면서 그 공식은 더 늘어난다. 어떤 인간에게는 더 분명해지고 더 단순해 질 수도 있을거다. 


우리 각자가 마치 달처럼 수많은 측면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지인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측면을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P316



체커 택시를 모는 운전사 '칼라지'와 하버드 대학원생인 '나'의 우정에 관한 이 이야기 속에서 이런저런 공식을 마주한다.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살아가는 영혼과 한 껏 분출하는 영혼에 대해서. 한 사람은 소외된 불안을 칼라슈니코프를 여기저기 발사하듯 독설로 내뿜고 한 사람은 침잠하는 냉소와 타인에 대한 벽쌓기로 잠재운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독자들도 각자의 분투하는 유령을, 방랑자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아마도 그는 나의 대리인이었을 것이다. 내가 미국에서잃어버린 원시적인 모습의 나. 나의 그림자, 나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다락방에 숨어 사는 미친 형제, 나의 하이드 씨, 나의 아주 아주 거친 초고草稿, 가면을 벗고 속박의 쇠사슬에서도 벗어난, 완성되지 않은 나, 속박받지 않는 나, 누더기를걸친 나, 격분한 나. 책을 들고 있지 않은, 세련된 매너가 없는,영주권이 없는 나. 칼라슈니코프를 들고 있는 나.- P76











더 읽어볼 그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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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2-25 16:3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알리바이 강추😊
프루스트 잃시찾도 함께 읽귀🤗

청아 2022-02-25 16:43   좋아요 4 | URL
저 <알리바이> 있어요!🤭
프루스트도 읽어야하고 애치먼도 더 읽고싶고 큰일입니다ㅎㅎ

레삭매냐 2022-02-25 16: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보면 되게 심심한 내용
의 그런 책인데 또 오묘한 재미
가 있는 것 같습니다 -

후반으로 갈수록 왜 이렇게
아쉬운지 모르겠습니다.

청아 2022-02-25 17:06   좋아요 6 | URL
뭐랄까 단순한데
단순하지 않은 그런 느낌요.😄

읽으면서 많이 웃고 조금 울었는데 막상 쓰려니
설명하기 힘드네요.
애치먼에 홀딱 반했어요!

페넬로페 2022-02-25 17:2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캬!
˝소설은 인간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찿아가는 과정˝~~
억만배 동감입니다.
소설을 읽고 너무 감동적이어서 책을 덮고 그저 먹먹한 기분~^
미미님 글에서 딱 그 기분을 느꼈어요^^

근데 같은 경험이라도 느낌은 다 다른것 같아요
저는 100m달리기 출발선에서 언제나 막막했어요^^

내가 가진 나만의 유령은 뭐지?
계속 생각해봐야겠어요~~

페넬로페 2022-02-25 17:28   좋아요 6 | URL
도서관에서 문자왔어요
책 도착했다고~~
조만간 같은 기분 느껴볼께요^^

청아 2022-02-25 17:41   좋아요 6 | URL
읽을땐 즐겁게, 온통 만끽하며 받아들였어요.
어느순간 다 읽었는데
글로 쓰려니 어제는 안되더라구요.ㅎㅎ어찌어찌 오늘은 적어냈지만 여운은 더 오래 갈듯합니다😁

페넬로페님은 어떤 유령을 만나실지 너무 궁금해요~^^♡

새파랑 2022-02-25 18:5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 이소라 김동률 콜라보인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아요> 완전 완전 좋아합니다 ㅋ 이 책은 우정 이야기군요~! 제가 읽고 있는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은 사랑(?) 이야기 입니다 ㅎㅎ 저는 소설을 읽는 이유가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삶과 생각을 간접체험하고 싶어서인데 미미님도 비슷한거 겉아요 ^^ 저도 극찬하는 이 책 곧 읽어볼께요~!!

청아 2022-02-25 19:10   좋아요 3 | URL
오~콜라보였군요?! 어쩐지 느낌이ㅋㅋㅋ 새파랑님 댓글보고 찾아봤는데 김동률 버젼도 있네요ㅠㅠ👍
그 책도 너무 궁금해요. 책으로는 얼마든지 다른 세계를 마음껏 경험할 수 있어서 자유로운것 같아요.
저도 그책 곧 읽어보렵니다😄

서니데이 2022-02-25 20: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표지의 노란색을 보고 스쿨버스를 생각했는데, 택시였나보군요. 요즘엔 우리 나라에는 노란색 택시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잘읽었습니다. 미미님,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청아 2022-02-25 21:02   좋아요 3 | URL
그렇죠! 이 소설에 등장인물 중 한사람이 아주 매력넘치는 택시기사예요. 요즘 택시는 평범해져서 쉽게 구분이 안되는것 같아요. 서니데이님도 웃음가득한 주말 보내세요!😆

초란공 2022-02-25 21: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택시 사진은 혹시 로버트 드니로 인가요? ㅋㅋ

청아 2022-02-25 21:59   좋아요 3 | URL
네! 맞습니다ㅋㅋㅋ<택시 드라이버>가 마침 떠오르더라구요. 성격은 책 속 캐릭터와 다르지만 옷차림과 분위기는 비슷할것 같았어요🤭

초란공 2022-02-25 22:03   좋아요 3 | URL
저도 저런 선글래스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조금 피곤하면 눈썹이 너무 쳐진 얼굴이 되서 ㅋ 정말 꽃미남 시절의 드니로였군요!!!

청아 2022-02-25 22:09   좋아요 3 | URL
봄 가을에는 필수인것 같아요. 저도 귀찮아서 안쓰다가 햇빛에 자꾸 찡그리게 되어 챙기고 있어요ㅋㅋ 이 영화 안보셨음 강추합니다. 옛날 영화치고 화질도 잘나오는편이고요. 리즈 시절의 드니로 연기도 스토리도 일품이예요👍

초란공 2022-02-25 22:11   좋아요 3 | URL
오 감사합니다! <택시 드라이버>로 찾아야겠군요. 📽

키라키라 2022-02-25 23: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미님이 느끼시는 소설에 대한 생각..정말 그런 것 같아요!! 본질적인 질문을 캐내고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보물찾기처럼 느껴져 더 애착이 갑니다 ^^ 저도 이 책 살포시 찜요~ㅎ

청아 2022-02-25 23:18   좋아요 4 | URL
보물찾기 맞네요!ㅎㅎ
웃으면서 즐겁게 읽었는데 덮고나니 작가로부터 묵직한 질문을 건네받은 기분이예요.키라키라님도 은은한 감동을 경험하셨음 좋겠어요😉

독서괭 2022-02-26 11: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책이랑 찰떡궁합인 사진을 찾으셨네요!!
<알리바이>은 찾아보니 에세이군요. 흠. <콜미바이유어네임> 미미님 감상이 궁금해요.

청아 2022-02-26 11:21   좋아요 5 | URL
네ㅎㅎ 안그래도 다음 애치먼의 책은 그걸로 정했습니다.
괭님 읽어보셨나봐요😄
이 책과는 분위기가 다를듯한데 이미 믿음이 굳건해졌어요!

mini74 2022-02-26 15: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줄거리는 간단한데 참 깊은 책이란 느낌 받았어요. 로버트 드니로 ㅎㅎ 그러고보면 조커 영화 보면서 드니로 이 영화 생각나더라고요. 딱 맞는 사진입니다. *^^*

청아 2022-02-26 15:10   좋아요 2 | URL
칼라지가 입으로 분노의 총알을 쏟아냈다면 드니로는 포주를 향해 진짜 총을!ㅎㅎㅎ
거창한 줄거리 없이도 힘이 느껴지는 영화와 소설들도 너무 좋아요~♡
미니님 따라 서둘러 읽기를 잘했습니다. 소장각,재독각입니다 헤헤🥰
 

나는 그를 부러워했다. 그에게서 배우고 싶었다. 그는 진정한 남자였다. 나는………. 나는 어땠는지 모르겠다. 그는 목소리였고, 내 과거와의 잃어버린 연결고리였으며, 내가 다른길을 택했다면 나의 롤모델이 되었을 사람이었다. 그는 야성적이었지만 나는 길들여지고 억눌려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나를 강력한 용액에 담가서 내가 학교에서 배운 모든 습관과미국에 양보한 모든 것을 내 피부에서 벗겨낸다면 내가 아니라 그가 발견될 것이다. 내가 처음 카페 알제에서 용기를 내그의 테이블로 걸어가 침묵을 깼을 때 그가 내게 불쑥 다가온것처럼, 별안간 푸른 지중해가 펼쳐질 것이다.
- P74

다른 나라, 다른 도시, 다른 시대에 있었다면 나는 그에게 다가가지 않았을 것이고, 그가 내게 말을 걸었을 것이다.
나는 낯선 사람에게 다가서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에게서 나와 닮은 점을 보지 않았다면, 내 안에서 재갈이 물린 채로 잊히던 무언가를 그의 말 속에서 발견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그에게 다가가지 않았을 것이다. 편향적이고 무분별하게 느껴지는 그의 투덜거림이 내게 말을 걸었고, 나를 과거로 데리고갔다. 마치 카페 알제가 내 마음 한 구석에서 이름도 붙여지지 않은 채 무시당하고 있던 무언가에게로 나를 데려다준 것처럼.
- P75

아마도 그는 나의 대리인이었을 것이다. 내가 미국에서잃어버린 원시적인 모습의 나. 나의 그림자, 나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다락방에 숨어 사는 미친 형제, 나의 하이드 씨,
나의 아주 아주 거친 초고草稿, 가면을 벗고 속박의 쇠사슬에서도 벗어난, 완성되지 않은 나, 속박받지 않는 나, 누더기를걸친 나, 격분한 나. 책을 들고 있지 않은, 세련된 매너가 없는,영주권이 없는 나. 칼라슈니코프를 들고 있는 나.
- P76

그가 날마다 늘어놓는 미국 비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그가 통렬히 비판하는 대상이 실은 미국이 아니었고, 그의 목소리가 막강한 서구 세계를 막아내려고 애쓰는 중동의 목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 내가 들은 것은 나이 든 인간의 거칠고 쌕쌕거리며 겁먹은 목소리, 인류애처럼 보이고 그것을 표방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아닌, 새로운 흐름을 거부하고 비판하는 목소리였다. 그것은 문명이나 가치관, 문화의 충돌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현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느 장기를, 어느 쪽 심실을, 소중한 오감 중 어느 감각을 잘라버려야 하는가 하는문제였다.
- P77

*그게 바로 그가 브뤼뇽 , 즉 천도복숭아를 싫어한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천도복숭아처럼 달콤해지고있었다. 친절함과 진심은 없이 달달한 말만 하고, 조작되고,
꿰매지고,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지만, 단 한 번도 진짜로 태어나지 못한 천도복숭아. 머리는 자두 모양, 엉덩이는 복숭아 모양, 고환은 초콜릿 과자 모양. 과일 왕국에 사는 실제 친적은 단 하나도 없는 천도복숭아. 그들의 모든 것이 접붙여진거였다.
- P77

 그는 굉장히 고마워했고, 살면서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해 조금이라도 도와주는 사람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지 안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말 말라고, 별일 아니라고 답했다. 그는 내 말이 틀렸다면서, 자신이 얼마나 좋은 친구인지 모르는 것이 좋은 친구의 특징이라고 주장했다.  - P83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그렇게 잘 읽은 이유는 우리가 모든 것과 모든 이를 경멸한다는 또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멸하는 마음은 서로 다르게 표현됐지만 자기혐오라는 똑같은 원천에서 흘러나온 게 틀림없었다. 내 자기혐오의 원천에서는 증오와 반감이, 그의 원천에선 분노가 터져 나왔다. 처음부터 자기 혐오자인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실수가 쌓이고 길을 잘못 드는 횟수가 많아지면 자신을 용서하려는 노력을 멈춘다. 어디를 보아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수치심과 패배감을 발견할 뿐이다.
- P85

활화산처럼 분노를 표출하고 인류 전체에 대해 과장된비난이나 쏟아냈을 뿐 그는 조금도 성장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자신이 성장했다고 생각하거나 성장한 척했다. 우리가 그에게 가할 수 있는 최악의 폭력은 그에게서 열일곱 살 소년을발견하는 것이었다. 그의 삶이 멈춰버린 시기가 바로 그때였다. 그 이후로는 실수와 헛소리로 점철된 삶을 살아왔을 뿐이었다.
- P87

우리 둘 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내겐 버티고 설 땅이 있었고 그는 언제나 방랑자였다. 내게는 영주권이, 그에게는 운전면허증이 있었다.
그는 날마다 벼랑 끝에 서 있었지만 나는 벼랑 밑을 내려다봐야 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게는 그 심연을 가릴 담장이나 생울타리가 항상 있었던 반면 그에게는 그런 것이 주어지지 않았다. 한편 또 다른 차이도 있었다. 그는 그 벼랑에서 물러서서 살아나올 방법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벼랑과 나 사이에 그를 세워놓았다. 그는 내 가림막, 내 스승, 내 목소리였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필사적으로 추구했던 삶이 그의 삶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P96

나는 그때까지 라 드라그 여자 꼬시기를 삶의 한 방식으로 삼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칼라지는 다른 누구보다도 여자를원했고, 그렇다고 그가 다른 남자보다 잘생긴 건 아니었다.
그러나 여자가 없으면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기 입으로그렇게 말했지만, 그 말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 같지는않았다. 그러나 여자들은 이해했다. 그는 항상 여자를 원했다. 여자를 보자마자 눈에 광채가 났다. 흥분하고, 눈을 빛내고, 감사할 줄 알며, 다정해졌다. 그는 여자를 만지고 더듬고키스하고 깨물고 싶어했다. 여자들은 그런 그의 마음을 즉시알아차렸다. 여자들의 피부와 무릎과 발을 보는 그의 눈빛이저걸 만지지 않으면 난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거야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는 여자들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술을 가늘게 떨면서 미소를 짓곤 했다. 그는 늘 열정부터 느꼈고, 사랑은 훨씬 나중 일이었지만, 관심은 항상 가졌다.  - P119

문득 내가 칼라지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칼라지는 아랍인 사이에서는 베르베르인이었고, 프랑스인 사이에서는 아랍인이었으며,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여겼다. 마찬가지로 나는 아랍인 사이에서는 유대인이었고, 낯선 이들 사이에서는 이집트인이었으며, 지금은 와스프사이에서 철저한 외계인, 라크로스팀이나 폴로팀*에 지원하는 멍청한 잡역부였다.
나는 대서양 이편에 있는 모든 것을 증오했다.
그러고 보니 대서양 저편에 있는 것도 증오했다.
나는 미국과 유럽과 북아프리카를 증오했고, 지금 이 순간은 프랑스를 증오했다.  - P133

나는이미 고립되어 있었다. 고통이 내가 풍랑에 휩쓸리고 바닥에구멍이 뚫린 배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 P230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유령을 갖고 있다. 나는 처음으로칼라지의 유령을 보고 있었다. 그건 그가 고함을 질러 그 유령을 쫓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 P270

 이 어두운 침실에서 문득 아주 선명하게 떠오르는 깨달음이 있었다. 그에게서 나 자신을 보고 있다는 생각.
그는 여기서 모든 것을 망치고 모든 것을 잃는 순간에 내가얼마나 가까이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였다. 그는 나보다 딱 세 걸음 앞서가는 내 운명이었다. 나는 종합시험에 떨어지고 짐 싸서 뉴욕으로 돌려보내질 수 있었고, 지금으로부터 일 년 후에 이 파티는 물론이고,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 P272

나는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외로운 사람이 여기 있다고 생각했다. 분노와 슬픔과 두려움, 심지어 우는 모습을 들킨 것에 대한 수치심도 삶의 매 순간 그에게 휘몰아치는 지독한 고독과 절망의 폭풍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듯했다.
- P274

우리 각자가 마치 달처럼 수많은 측면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지인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측면을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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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나는 습관이 우리 지각의 독창성과 의식마저 제거하고 무로 돌리는 힘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습관을우리에게 고정된 무시무시한 신(神)으로 간주했고, 그 무의미한 얼굴이 그토록 우리 마음속 깊숙이 박혀 있어서, 만일 우리가 거기서 떨어져 나가거나 멀어지기라도 하면 여태껏 거의알아볼 수 없던 그 신은 어느 누구보다 무서운 고통을 야기하고, 그리하여 죽음만큼이나 잔인한 존재가 된다.
- P17

그러다 삶이 조금씩 사례별로, 우리 마음이나 정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합리적 추론이 아니라 다른 힘을 통해서 얻어진다는 걸 깨닫게 한다. 그때 지성은 이런 힘의 우월성을 인식하고스스로의 자리에서 물러나 그 힘의 조력자와 하인이 되기로동의한다. 바로 이것이 경험적 신앙‘이다.  - P22

 상상력은 미지의 상황을 그려 보기 위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요소들을 빌리며, 바로 그런 이유로 그 상황을 재현하지 못한다. 그러나 감수성은, 가장 신체적인 것이라 해도, 번갯불이 내는 고랑처럼 거기에는 새로운 사건의 특이하고도오래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새겨진다.  - P23

어린 시절부터 느꼈던 그 모든 불안이 새로운 고뇌의 부름을 받고 달려와서는 고뇌를 견고히 하고 고뇌와 동질적인 덩어리로 합쳐지면서 나를 숨 막히게 했다.
- P24

만일 내가 소리를 내어 생각한다면, 나는 그 이름을 끊임없이되풀이하고, 그리하여 마치 내가 새로 변한 것처럼, 인간이었을 때 사랑하던 여인의 이름을 끝없이 부르짖고 되풀이하는전설 속의 새로 변한 것처럼 그렇게 단조롭고 제한된 말만을계속 지껄였으리라. 

우리는 이름을 말하고 또 마음속에 이름을 쓰는 듯 입 밖에 내지 않기 때문에 그 이름은 머릿속에 흔적을 남기며, 그리하여 머릿속은 마치 낙서하기를 좋아하는누군가가 채워 놓은 벽처럼 마침내 수천 번이나 다시 써 놓은사랑하는 이의 이름으로 온통 뒤덮이고 만다.  - P36

 행복할 때면 우리는 생각 속에 내내 이름을 다시 쓰지만, 불행할 때는 더 많이 쓴다.  - P36

예전에 그 감동과 고뇌의 과정이 아직 그녀와 연결되었을 때, 우리는 행복이 그녀라는 인간에게 달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행복은 오로지 우리 불안의 끝에 달려 있었다. - P37

인간은 나락에떨어지기 직전 신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꼈을 때, 신에게기적을 기대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 P39

우리의 지성이 제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우리마음 깊은 곳을 구성하는 요소들, 또 그것들이 대부분의 시간동안 머무는 휘발성의 상태로부터 어떤 현상에 의해 분리되고 고정되기 전까지는 짐작도 못하는 그런 요소들을 인지할수는 없다.  - P16

경험이라고 부르는 것은 성격 중의 한 특징이 우리 자신의 눈에 드러나는 것에 불과하며, 따라서 그 특징은 자연스럽게 다시 나타나기 마련인데, 예전에 우리 자신에 의해 이미 지각된 적이 있으므로 보다 강력하게 나타난다.

그리하여 처음 우리를 인도하던 자발적인 움직임은 기억의온갖 암시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인간에게서 가장 피하기 힘든 표절은(자신들의 잘못을 끈질기게 반복하면서 악화시키는 민족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바로 자기 표절이다.
🌸🌸🌸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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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5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25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