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이야기 3 - 에우리피데스에서 알렉산드로스까지
앙드레 보나르 지음, 김희균 옮김, 강대진 감수 / 책과함께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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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리스인 이야기> 3부작 중 마지막 편이다. 시기적으로는 기원전 4세기 초 비극작품 작가인 에우리피데스에서 그리스의 도시국가가 사라져버린 기원전 3세기의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의 인도 원정까지를 다룬 것이다. 이 시기는 장구하게 이어졌던 그리스 문명의 황혼기였다. 저자는 그리스 3대 비극의 마지막 주자 에우리피데스, 헤로도토스와 함께 그리스 역사의 쌍벽을 이루는 투퀴디데스, 소크라테스를 이어 그리스 철학을 집대성한 플라톤, 세상 모든 것을 집대성한 아리스토텔레스, 알렉산드로스의 정복 활동과 그가 만든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그리스 문명의 양상들, 에라토스테네스와 아르키메데스 등 근대 학문에 영향을 끼친 과학자들, 끝으로 인간의 구원을 설파한 에피쿠로스에 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 시기가 "아마도 과학만이 발전을 계속한 유일한 인간 활동으로 기억될 것이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리스 문명의 쇠락이 단순한 쇠락이 아님을 주장한다. 아니 문명의 역사 자체가 탄생과 소멸, 그리고 소멸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탄생이 이어짐을 말한다. "문명이나 신앙은 죽지 않기 위해서 새로운 사고방식을 탐구하고, 새로운 시와 지혜의 세계를 창조하며, 늙어갈수록 희망과 확신을 가져야 할 새로운 이유를 스스로 부여한다. 그러므로 문명의 쇠퇴기는 동시에 새로운 발견의 시기이기도 하다. 문명은 변화를 거듭할 뿐 죽지 않는다. 문명의 삶이란 말하자면 항구적인 태어남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저자의 해석으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한 그리스 도시국가의 멸망은 '현대식 '국가'라 할 수 있는 왕조를 탄생시키면서 다시 태어났고, 그리스 문학의 비극과 희극으로 신과 인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사회와 사상의 격변을 통해 플라톤에 의해 기독교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에우리피데스는 작품 <메데이아>는 자연과 신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아가던 인간이, 원칙과 제도, 그리고 자유 사이에서 갈등하던 인간이 스스로의 정념에 사로잡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는 그 '악마적 힘'을 통해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한지, 즉 우리도 알지 못하는 우리 마음의 복잡다단함이다. 또한 우리 안에 깃들어 있는 이 힘은, 우리 자신이 그 힘에 대항할 수 없고, 그 힘은 우리를 파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극적"임을 말한다. 저자는 또 에우리피데스의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서 세계의 무질서, 무정부주의적인 감정, 의지의 불안정성에서 비롯되는 비극성을 읽어낸다. 그리고 <박카이>에서는 "전지전능함을 통해 발현되는 신의 위대함을 포착"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에우리피데스의 작품 전체는 인간에 대한 순수한 사랑으로 불타오르게 한다. "신들은 아무리 진노했다고 해도 우리 인간들처럼 행동해서는 안된다."라고...
 
저자는 플라톤이 "역사를 배제하려 했다"고 평가한다. 플라톤은 아주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세속의 도시, 시민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타락한 민주주의 대신에 모든 영혼이 사후의 내세에서 만나게 되는 곳, 즉 천상의 도시, 천상의 왕국인 신성한 세계를 내세웠다. 그는 신과 밀접했던 그리스의 문화와 종교 대신에 신과 인간이 완벽하게 분리되는 내세와 유일신의 토대를 닦은 셈이었다. 플라톤이 그러한 종교의 기초를 닦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가 투퀴디데스는 기원전 5세기 후반 3분기부터 어떻게 해서 그리스의 내전이, 필립포스나 알렉산드로스 대왕보다 훨씬 더 확실하게 도시국가들을 파괴해 나갔는지를 뛰어난 혜안으로 기술한다.
 
저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천재적이었다'고 평가한다.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아버지인 필립포스 왕이 다져놓은 초석을 기반으로 그리스의 정치적 공동체에 결정적인 치명타를 가했다. 그의 치명타는 도시국가를 파괴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 말하자면 현대적 국가의 형태를 창조했다. 그의 놀라운 대모험 이후 동방 세계에서는 군주들이 지배하는 거대한 왕국들이 왕조를 거듭하며 명맥을 이어나갔다. 이집트의 프롤레마이오스 왕조나 서아시아의 셀레우코스 왕조 등이 대표적이다. 아마 로마의 초대 황제인 율리우스 카이사르 역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알렉산드로스의 정복은 곧 그리스식 지혜와 힌두식 지혜의 만남이었다.
 
* 인상 깊은 문장 :

- "에우리피데스는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로서의 경력을 쌓아가는 동안 이처럼 갈림길에서 망설이는 그의 모습을 우리는 자주 보아왔다. 신이란 곧 전지전능함이며, 전지전능함이 신을 정당화하는 요건이라면, 디오뉘소스는 분명 정당화될 수 있다. 그가 어떤 행동을 하건 말이다. 소포클레스도 말했듯이, “신들이 무슨 짓을 하건 그건 악이 아니기” 때문이다. ... 신은 우리에게 죽음을 부여할 뿐 아니라, 우리를 우리와 더불어 이 세계를 춤추게 하고 노래하게 하는 본질적인 힘이다. 신은 사는 기쁨, 쾌락이며 동시에 고통이다. 신은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눈부신 신비다. 그러니 에우리피데스는 질서정연하고 이성적이고 명쾌한 정의로 이루어진 세계를 버리고 광기의 신과 총체적인 흐름 속에 자신을 맡기는 동물적인 기쁨만이 중요시되는 박코스 행렬에 합류하는 길을 택할 것이다."(p.86~87)
 
- "플라톤이 구상한 국가는 기원전 4세기에 이미 사람들에게 완벽하게 균형 잡힌 국가, 그 어떤 힘도 예정되어 있는 확고한 질서를 흔들 수 없는 국가라고 하는 거짓 이미지를 선사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바로 이 점이 플라톤이 우리에게 제안하는 국가의 가장 이상한 면이다. 절대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니. 그가 제안하는 국가에서는 진보가 철저하게 배제된다. 이 국가는 영원히 완벽한 존재로 제시된다. ... 요컨대 플라톤은 역사를 배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 역사는 배제하려 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은 역사를 만들고 역사는 인간을 만든다. ... 플라톤이 [국가]를 쓰면서 민주주의의 사망신고서를 작성하고 있다고 믿었던 그 세기로부터 여러 세기가 지난 후, 민주주의를 향한 행보는 안정된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코뮌과 더불어 보란 듯이 재개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1789년 ... 1848년에도 ... 계속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를 뒤흔든 열흘 ...”로 이어진다. 인류의 역사는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p.168~169)
 
- "젊은 왕은 또한 칼뤼아나(그리스식으로는 칼라노스라고 하며, 브라만을 뜻한다)라는 이름을 가진 고행자에게 커다란 애착을 보였다. 죽을 날이 가까워오는 것을 느낀 그의 요청에 따라 알렉산드로스는 장작더미를 쌓게 했다. 이윽고 장작더미에 올라간 칼뤼아나는 놀란 군대가 지켜보는 가운데 한마디 탄식도 업이 불꽃 속에서 타죽었다. 친구의 자발적인 죽음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던 알렉산드로스는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상당한 세월이 흐른 후 기독교의 제사장에서 견유 철학자로 변신한 수수께끼 같은 인물인 페레그리노스가 올륌피아에서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죽음을 택한다. 이렇듯 알렉산드로스가 인도를 지날 무렵에는 그리스식 지혜와 힌두식 지혜가 마주치고 있었다."(p.298)

- "칼리마코스는 영리한 사람이었다. 그는 동시대인에게 이제는 고전이 된 과거의 위대한 시인들의 모방을 장려하지 않았다. ... 그는 구닥다리 시 장르는 죽은 지 오래되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호메로스가 부활하는 일도, 비극 작품들이 다시 소생하는 일도 없을 것이었다. 그는 서사시가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헛되이 매달리고 있는 연작시의 상투성을 맹렬하게 비난했다. 그는 자신의 격언시에서 “나는 연작시를 증오한다. 누구나 지나가는 상투적인 그 길.... 나는 공동 우물의 물은 마시지 않을 것이다. 대중적인 것들은 나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토해냈다."(p.441)

- "크고 작은 혁명들이 우리가 사는 우주를 전복시킨다... 혁명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으며, 때로는 이 흐름을 가속화한다. 새로운 계급, 새로운 민족, 계급 없는 민족들이 이 세계를 관통한다. 에피쿠로스가 남긴 유산은 그들의 것이다. 그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몽테뉴는 에피쿠로스에게서 잊고 있던 조상을 발견했으며, 그래서 그와 한 가족이 되었고, 그의 생각을 이어받았다... 헬베티우스는 ‘행복’에 대해서 장문의 시를 썼고, [쾌락 예찬]이라는 글도 남겼다. 아나톨 프랑스, 앙드레 지드 등도 그에게 동조한다... 카를 마르크스는 에피쿠로스를 인간 해방자들 중의 한 명으로 예우한다.
인류는 죽음의 공포를 극복했는가? 인류는 신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했는가? 아직은 그렇지 못하다. 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에피쿠로스가 다시 부상한다. 언제나의 모습 그대로, 하늘의 은하수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늘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p.594~595)
 
[ 2012년 9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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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2 - 소포클레스에서 소크라테스까지
앙드레 보나르 지음, 김희균 옮김, 강대진 감수 / 책과함께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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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2>에서는 기원전 5세기경의 문인 소포클레스로부터 기원전 399년 감옥에서 독배를 마시고 죽은 소크라테스 시대까지를 다뤘다. 자연에 대한 공포와 신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난 그리스인들은 인간 만의 고유한 문화, 문명을 창조하기 시작한다.
 
아테나이는 기원전 490년 마라톤 전투에서 페르시아에게 승리를 거두었으며, 10년 뒤에는 '테르모필라이 전투'가 발발하여 그리스 연합군은 '살라미스 해전'에서 또 승리를 거두었다. 이를 바탕으로 아테나이가 주도하여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을 묶은 '델로스 동맹'이 탄생한다. 댈로스 동맹은 100년을 이어가지 못했고, 시켈리아 원정에서 참패한 아테나이는 기원전 404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배하여 주도권을 상실한다.
이러한 역사로 이루어진 그리스의 기원전 5세기 약 100년은 과학의 시대, 철학의 시대, 문학의 시대였다.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그리스 문명의 전성기'라고 부른다. 그 시기에 아테나이 도시국가의 페리클레스는 그리스에 맞는 고유한(하지만 한계가 분명했던)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하였고, 소포클레스와 아이스퀼로스, 아라스토파네스와 에우리피데스는 문학의 꽃을 피워냈다. 여러 철학자들 사이에서 소크라테스가 태어나 열변을 토해내던 시대이기도 했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와 그리스 비극의 풍경, 그리스의 조각 예술, 탈레스와 데모크리토스를 통해 본 그리스 과학의 태동, 다시 소포클레스와 <오이디푸스>,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지만 매우 중요한 그리스 시인인 핀다로스, 지리학자이자 여행가로서의 헤로도토스, 의학의 아버지 힙포크라테스와 그리스 의학, 아리스토파네스의 그리스 희극이 번성했다.
 
이 책에서는 문학작품, 특히 비극에 대한 저자의 소개와 분석이 뛰어나다. 이 시기의 그리스 문학작품은 당시 그리스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삶을 사랑하고 그 속에서 신과 자연과 인간에 대해 고민했는지 말해주고 있다. 대표적인 비극 작품인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3천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도 현대인들의 가슴에 무언가를 던져 준다. 아니 저자인 앙드레 보나르가 <안티고네>라는 작품 속에서 현대인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껴야 하는지 알려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소포클레스의 천재성과 예술성을 밝혀낸다. 나는 작품의 작가인 소포클레스보다 작품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저자에게 더 큰 공감을 얻게 되었다.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의 후계자인 두 형제가 서로를 죽인 다음 이야기로 진행된다. 두 형제의 외삼촌인 크레온이 왕위를 이어받아 원칙적인 정치를 펼친다. 애국자인 에테오클레스의 장례식은 성대하게 치르게 하되, 반역자로 지목된 폴뤼네이케스의 장례를 불허하고 짐승의 밥이 되도록 방치한다. 하지만 두 형제의 동생인 안티고네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안티고네는 밤중에 몰래 폴뤼네이케스의 장례를 치르고 체포된다. 크레온은 안티고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안티고네를 사랑했던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은 안티고네의 사면을 요청한다. 결국 안티고네는 목을 내 자살하고 하이몬은 크레온에게 반항하다가 칼에 찔려 죽고 크레온의 아내는 아들의 죽음에 절망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크레온은 고통을 외치며 자신의 죄를 고한다.
<안티고네>는 안티고네와 크레온, 두 사람의 대결로 압축된다. 저자는 "두 사람이 다르면서 동시에 닮은, 동일한 성격을 지닌 정반대의 영혼, 타협할 줄 모르는 결연한 의지,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투지에 불타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가차 없음으로 무장한 의지를 지녔다"고 평가한다. 한 사람은 자기 아들에게, 또 한사람은 자기 동생에게 '전부를 주지 않을 거면 아무것도 주지 말 것'을 강요한다. 자신이 택한 절대적인 선택을 남에게도 요구한다. 다시 말해 저자는 두 사람이 "똑 같은 광신주의"에 사로잡혀 있다고 분석한다. 다른 모든 소중한 것들은 얼마든지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 그리고 비극이 끝나갈 무렵, 두 사람에게는 고독이라는 위협이 찾아온다. 다만 저자는 안티고네의 고독과 크레온의 고독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안티고네에게는 사랑으로 고양된 영혼이 느껴지는 반면, 크레온에게는 사랑이 닫힌 이기심만을 느낀다.
그렇지만 저자는 그러한 크레온마저도, 우리와 너무도 닮았기 때문에 미워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그는 물론 가볍지 않은 죄를 저지른 죄인다. 하지만 그렇고 그런 추상적인 원칙에 의거해서 그를 손가락질하기엔 그가 저지른 실수가 우리가 늘 저지르는 실수와 너무나 닮은 꼴"이라 말한다. "크레온은 우리가 늘 경험하는 비극적인 일상의 일부다.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아니 자신의 위치에서 옳았으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소포클레스는 그 과실, 즉 분열되어 있는 우리의 인간성과 그 인간성과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세계에 대한 뼈저린 인식을 안겨준다." 따라서 저자는 "우리는 안티고네이면서 동시에 크레온"이며, 두 사람이 겪는 갈등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그리스의 비극 작품에 대한 가치를 애기한다. 비극 작품은 '가치의 제안', 아니 '가치 있는 삶의 방식의 제안'이며, 모색으로서 우리 안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아준다는 것이다. 안티고네와 크레온, "이 두 인물은 서로 대립하면서 의지하며 결국 포개지는 인간 삶의 양면 같은 존재들이다."
크레온은 우리에게 '국가'와 '운명', '질서'를 의미한다. 그 질서의 극한은 우리도 잘 아는 '파시즘'이다. 안티고네는 '양심'이자 '자유'다. 법이나 질서는 양심에 우선할 수 없다. 저자는 "안티고네가 자유라면, 크레온은 운명이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우리에게 고대의 자연철학자로 알려진 탈레스는 단순한 자연현상들로부터 물에 대한 개념, 즉 물이 모든 원소의 근본이라는 개념을 정립했다. 저자가 탈레스에게서 중요하게 평가하는 것은 "그가 자연이나 인간이 발명해낸 기술들을 유심히 관찰했으며, 이 과정에서 어떠한 초자연적인 설명도 배제했다"는 점이다.
데모크리토스는 서구 자연과학사에서 '원자론'을 처음 제기했다. 그는 신성을 개입시키지 않고 가장 객관적인 방식으로 이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 역시 "이오니아 지방의 오래된 유물론을 계승한 것으로, 고대 그리스에서 진정으로 무신론적인 최초의 학설"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힙포크라테스를 '철저한 사실주의자'로 평가한다. 힙포크라테스는 자신이 정립해가고 있는 학문의 한계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인간의 치유는 자연의 도움과 인간 신체기관의 도움이 어우러져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고대 그리스 노예제, 여성차별 사회에서 '노예와 여자를 차별하지 않는 의학'을 펼쳤다. 그야 말로 그리스에서 가장 순수하고 완벽한 인본주의를 보여주었다. 고대 그리스의 '힙포크라테스 선서'를 읽어보면, 근현대의 의사와 의학자들이 얼마나 변질되었고 기득권에 매달리는지 알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던 당시의 그리스와 아테나이는 도시 간의 전쟁, 파당으로 인한 전쟁, 민주주의 붕괴 등으로 그리스 문명이 쇠퇴하기 시작한 때였다. 아테나이의 경제는 자립하지 못하고 동맹국들의 조공과 노예들의 노동만이 존재했다. 100년 만에 시민의 수는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노예의 수는 20만 명에서 40만 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아테나이에는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프로디코스 등 소피스트들이 많았다. 그들은 수업료를 받았고, 소크라테스는 "지혜의 거래는 아름다움의 거래와 마찬가지로 매춘이라 불러야 마땅하다"면서 돈을 매개로 지식을 하고파는 일을 대단한 수치로 여겼다.
아테나이 법정에 제출된 소크라테스에 대한 기소장에는 두 가지 죄목, 즉 '신을 믿지 않는 죄'와 '젊은이들을 타락시킨 죄'가 적혀 있었다. 그는 신성이라는 확고한 실체에 대해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만을 유일하게 말고 있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했기 때문이다. 재판관들은 죄의 유무에 대한 판결에서 유죄 281표, 무죄 220표로 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죄인에게 어떤 형벌을 내려야 할지를 두 번째 재판에서 결정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죄에 대한 선처를 바라는 대신 "나에게 보상을 달라. 아니면 차라리 죽음을 달라"고 외쳤다. 두 번째 재판은 거의 만장일치로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는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한 판관들에게 말했다. "명심하십시오! 사람들을 죽인다고 해서 진실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진실은 한층 더 강력하게 공격해 올 것입니다. 진실을 위해 종사하는 자들의 소리는 선한 사람이 됨으로써만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고발한 자들보다 훨씬 더 자신의 죽음을 원했다고 추측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 다만 그는 그냥 사는 것보다 재대로 사는 것을 원했기 때문에 시민법정의 판결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자신의 죽음을 통해 아테나이 시민들이게, 후손들에게, 그리고 21세기의 우리에게까지도 원칙을 말하고자 했을 뿐이다. 부당하게 살아남지 말라고...
 
* 인상깊은 문장 :
 
-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판관들과의 대화였다. 이 대화야말로 아테나이 민중들과 나누는 결정적인 대화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진의를 알리고자 시도했으며, 자신의 임무를 설명했다. …… 다시 말해서 자신의 목숨을 몇 년 더 연장해주는 차원을 떠나 사회의 병폐 중에서도 최악의 병폐인 불의로부터 시민들의 영혼을 구제하고자 했다. 피고 소크라테스가 주도한 논쟁의 최종 목표는 아테나이의 구원이었던 것이다. “당신들이 나에게 사형을 선고한다면, 그 결정은 내가 아닌 당신들에게 부당하게 해를 입히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나는 지금 나 자신을 변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나는 지금 당신들을 변호하고 있습니다.”"(p.478~479)
 
[ 2012년 9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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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1 - 호메로스에서 페리클레스까지
앙드레 보나르 지음, 김희균 옮김, 강대진 감수 / 책과함께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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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들은 자신들의 문명의 뿌리를 고대 그리스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유럽과 북아메리카 대륙에는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된 지명이나 인명이 많다. 신화와 전설도 21세기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학문과 문화가 재해석된다.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영화 <300>과 <알렉산더>, 그리고 <트로이>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서구인들과 서구문화, 그리고 서구에서 출발한 학문들은 고대 그리스를 잘 알지 않고는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그리스 ‘신화’ 이외에 고대 그리스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은 많지 않다. 서구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고대 그리스에 대해 알려면 신들의 이야기가 아닌 그리스 신화를 창조해낸 그리스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적절하다. 저자 앙드레 보나르는 역사의 눈으로 그리스를 바라본 전문가이다.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새로운 그리스인의 모습과 생활상, 그 사상까지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리스인 이야기 3부작>은 고대 그리스의 역사를 다루면서도 논문이나 연구서가 아니기 때문에 인용이나 복합한 고증 내용은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보통 우리가 딱딱하게 여기는 지배자나 왕 중심의 '통사'도 아니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에서 실제 있었던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도 인문과 사건, 그리고 문화와 작품을 중심으로 그리스 역사를 풀어간다. 자연을 이겨내고 문명을 이루어가는 그리스인의 발자취를 찾고 설명해준다.
그래서 이 책에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와 다른 재미가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뒷세이아> 등 고대 그리스 문인들의 작품을 문명으로 나아가는 그리스 시인의 역작으로 평가하는 등 고대의 작품에 대한 저자의 안목이 탁월하게 느껴져 절로 감탄이 나올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이 책은 3부작 중 첫 번째로 '그리스 문명의 탄생'에서부터 그리스 중에서 가장 처음 민주주의 체제를 만들었던 아테나이의 페리클레스 시대까지 다룬다. 그리스 문명 탄생의 역사적 배경, 그리스 문명 초창기의 사건들, 그리스 민족의 전쟁사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녹아 있는 인본주의, <오뒷세이아>를 통해 본 그리스 민족의 바다 정복기, 그리스 최고의 서정시인 아르킬로코스와 자유주의 시민의 탄생, 미지의 뮤즈 삽포와 사랑의 아름다움, 아테네의 발전과 민주주의의 기원 그리고 상업의 발달과 솔론의 사회개혁, 노예와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통해 본 그리스 민주주의의 한계, 인간 중심의 철학인 그리스의 종교, 그리스 비극의 정점인 <오레스테이아> 3부작, 아테네 민주주의의 완성자 페리클레스 등을 다룬다.
1부는 신과 인간에 대하여, 비극과 희망에 대하여, 운명과 정의에 대하여 그리스인들이 문명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재미있게 말해준다.

저자는 서문에서 고대 그리스의 본 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선입견 속에 깊이 새겨진 '신화'를 깨뜨릴 것을 요구한다. 다른 지역,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그리스, 그리고 그리스인도 처음에는 "원시적인 종족"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 중의 그리스'라 할 수 있는 "고대의 아테나이에서도 미신 같은 것이 존재했고, 원시인에게서나 볼 수 있는 '엽기적인 풍속'도 그대로였다"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기원전 5세기에 벌어진 '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 총사령관 "데미스토클레스는 승리를 위하여 디오뉘소스 신에게 아테나이 최고집정관의 친조카들을 제물로 바쳤다. 그는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 세 사람의 목을 졸라 죽였다". 오늘날 유물론의 창시자로 알려져있는 데모크리토스는 "월경 중인 여자 아이들은 수확을 앞둔 밭 주위를 하루에 세번 뛰어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월경 때 흘리는 피가 해충을 박멸하는 항생제 역할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렇게 미개한 원시 종족 수준이었던 그리스인들이 자연의 법칙을 깨달아 알고 자연에 대해 반격을 가하는 과정이 바로 '문명'임을 말한다. 발칸반도에서 여러 번 남하한 그리스인들은 원래 유목민이었다. 그러다가 헬라스라는 땅에 나려와 자리를 잡고 척박한 땅을 일구기 시작했다. 그들이 상업을 하게 된 것은 단순히 모자란 것들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올리브나무애서 나온 기름과 포도에서 짜낸 포도주를 이웃 아시아 땅에서 만든 옷감과 교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배를 타기 시작한 것은 늘어나는 인구를 먹이기 위해 밀과 보리를 흑해 북쪽에서 얻어오려면 바다르루건너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목민이었다가 농민이 되었기에 그리스인들은 바다를 알지 못했다. 바닷가에 살던 원주민에게서 새롭게 배운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어에는 '바다'라는 단어가 없었고 원주민들이 썼던 단어 '탈랏사(thalassa)'를 베껴 쓸 수 밖에 없었다.

밭에서 힘든 노동을 하고 사나운 배를 타면서 생사를 넘나드는 과정에서 그리스인들은 다른 원시인과 마찬가지로 '노동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저자는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노동요의 리듬을 개발해서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 것이 시, 즉 서사실고 설명한다. 오래된 영웅들의 삶을 풍부하고도 절제된 리듬에 담아낸 것이다. 노래를 부르다 보면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희망과 용기가 솟아났다. 그 중에서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일리아드>와 <오뒷세이아>다.
이렇게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와 서정시, 극시들은 언어로 빚어낸 그리스의 과거와 현재가 담겨 있다. 그 속에는 그리스인들의 고통과 희망이 들어 있다. 상상의 세계 속에서 마주치는 꿈과 환상이 있다.

그리스 인들은 무섭고 사나운 자연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세상의 창조주로서 '신'을 상정하게 되고, 그 신들에게 의지했다. 신들의 형상은 가장 이상적인 인물의 형상으로 삼았다. 그와 동시에 그리스인들은 자연을 극복하고 인간을 좀 더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수학을 만들고, 천문학을 개발했다. 물리학과 의학의 기본 지식을 차근차근 쌓아나갔다. 그리스 지역의 지리적 현황과 경제구조는 그리스가 자연스럽게 도시국가로 발전되도록 이끌었다. 도시는 문명의 힘으로 사회가 되고, 도시 안에 사는 사람들은 평등하게 문명을 향유할 권리를 가졌다. 그래서 불완전하게나마 그리스인들은 민주주의를 고안한 최초의 민족이 되었다.

여기까지가 <그리스인 이야기 3부작>의 첫 번째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 인상 깊은 문장 :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그들은 기질이 전혀 다른 두 종류의 인간이면서, 인류의 두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위대한 아킬레우스는 통재로 불타고 있는 한 시대에서 마지막 빛을 발한다. 약탈과 전쟁으로 얼룩진 아카이아인들의 시대는 이제 아킬레우스와 함께 사라져가고 있다. 훗날 우리 속에서 언제든 다시 부활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헥토르는 새로운 시대를 선언한다. 가족과 땅과 공동체를 지키고자 하는 시민들의 시대가 왔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단지 잘 싸우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타협할 줄도 안다. 협정을 맺을 줄도 안다.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다음 세대에서 더 넓은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발전할 것이다.
<일리아드>가 위대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위대한 시편은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라는 상반된 인간형을 통해서 인간의 고결함과 정의로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있었고, 그들이 인류의 역사를 번갈아 가며 이끌어왔으며, 지금 우리의 마음 속에서도 계속 싸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p.94)
 
"오뒷세우스는 지혜로운 인간의 상징이다. 인간의 지혜는 실질적이고 창조적이다. 세상에 대한 의미 없는 지식을 쌓아놓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마다 적절한 대안을 제시할 줄 아는 그런 지혜다. 신과 적들은 인간이 가는 길목마다 방해꾼을 심어놓고 인간을 끊임없이 불행의 나락으로 인도한다. 그런 상황에서는 지혜만이 인간을 구할 수 있다. '재주꾼' 오뒷세우스가 이기는 이유다."(p.121)
 
"혹시라도 그리스가 민주주의를 발명했다고 한다면, 그 발명품이란 어린아이의 입안에 난 이와 같다. 반드시 죽고 다시 태어나야 할 민주주의였다. 곧이어 그리스는 죽고 새로운 민주주의가 다시 태어날 것이다."(p.235)
 
"신을 끊임없이 의인화해서 그리스 종교가 노리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인간이 도달해야 할 목표를 설정해서 보여주는 일이다. 인간이 다다라야 할 최후 지점이 올림포스의 산이다. 그 간격을 그리스 사람들은 끊임없이 좁혀가고 있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이르면, 다시 말해 고전주의 시대에 이르면, 신은 인간의 세계로 내려와 도시와 공동체의 우두머리가 될 것이다."(p.260)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등 아이스퀼로스의 비극이 보여주는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의 투영이다. 그래서 진보적이다. 아픈 부분을 자극하고 혁명을 독려한다. 얼핏 보기에는 화해를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현실에서 화해하기 위해서는 투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불의에 맞서 싸우라고 부추긴다. 그래야 공동체에 화해가 있고 발전이 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비극은 진보를 넘어 혁명적 자세에 가깝다."(p.279)

[ 2012년 9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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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학교를 생각한다 - 페이스북 친구들과 나눈 우리 교육이야기
이수호 지음 / 한길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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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전 위원장,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 위원장, 민주노동당 전 비상대책위원장,... 저자 이수호의 직함은 많았다. 그렇지만 그를 만나보면 그가 영낙없이 평범한 선생이라고 느낀다. 그는 자신을 그냥 '교사'로 불려주길 원한다. 아니 자신이 '교사'가 천직이었음을 말하고, 지금도 교단에 돌아가기를 원한다.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이 인터넷 서점에 정식으로 등록되기 전에 조촐한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내가 가입되어 있는 얼숲(페이스북) 그룹 중에 '철학을 생각하는 사람들(철행사)'라는 모임이 있다. 그 모임에서 매 달 정기적으로 토론회를 개최하는데, 마침 저자의 출판기념회가 열린다고 하여 참석하게 된 것이다. 기념회에서는 김경아씨 사회로 현직 교사인 김태식 선생과 대담도 진행되었고, 뒷풀이도 재미있게 참여했다.
 
저자 이수호는 군대를 제대한 후 1974년 스물 일곱에 울진군 제동중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교직에 첫 발을 내딛었다. 그 뒤 1977년 서울 수유리의 신일중고등학교로 옮겨, 1989년(5월 28일) 전교조 결성에 앞장섰다가 해직될 때까지 12년 간 학생들을 가르치고, 다시 전교조 합법화와 함께 10년 만에 실업계 학교인 선린인터넷고등학교에 복직하여 2008년까지 근무했다. 2008년 진보정치의 요청을 받고 민주노동당 혁신재당창위원장으로 활동하기 위해 사표를 쓰기까지 33년을 교사로 살았던 것이다. 중견 교사로 접어들던 1980년대에는 민주화운동의 봇물이 교육운동에도 큰 변화를 일으켰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그는 1983년 YMCA 교사회 활동을 시작으로, 86년 5월 교육민주화선언, 88년 전국교사협의회, 89년 전교조 결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교육 민주화 운동의 전면에서 활동하면서 수 차례 정부당국으로부터 구속과 해직을 당했다.
 
저자는 비슷한 연배의 정치인이나 시민단체 활동가와는 달리 매일매일 얼숲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한다. 위에서 몇 명이 결정하고 그것을 아래로 내려 보내 따르도록 하는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방통행 없이, 쌍방향으로 주고받으며 함께 만들어가는 형식. 즉 그는 이제 바야흐로 SNS의 시대임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물론 얼숲에서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교육문제다.
 
저자는 "교육 문제로 오늘도 우리 사회는 아프다"라고 책을 시작한다. 청소년들의 학교폭력과 자살, 성적 줄 세우기의 경쟁교육, 무너지는 공교육, 치솟는 사교육비와 등록금, 수시로 바뀌는 입시전형 등, 초등학교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탁상공론과 임시방편으로 일관하는 정부의 교육 정책은 끊임 없이 부작용을 낳고, 어떤 정부의 어떤 정책으로도 치유가 쉽지 않아 보인다. '공교육 무용론', '교육 불가능의 시대'라는 진단도 나온다. 교육현장에 몸담고 있는 어떤 교사는 “지금 학교가 존재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없다. 국가는 거둔 세금을 써야 하고, 교사는 월급을 받아야 하며, 학생은 졸업장을 받아야 하고, 부모는 아이를 맡길 때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평생 교사'인 저자의 가슴을 마구 내리친다. 어디선가 꼬여 있는 매듭을 풀어야 하는데,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의 전설인 '고르디우스의 매듭'과도 같다. 어쩌면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처럼 매듭을 풀려고 애쓸게 아니라 칼로 잘라버리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와 학교, 그리고 우리 교사들의 잘못이, 너희들의 등을 떠밀어 아파트에서 떨어지게 하고, 책임까지 물어 이 뜨거운 날 너희들을 광화문 돌바닥 위에 세웠구나"(p.25 광화문 광장에서 '입시경쟁 교육 OUT'이라는 일인 시위를 하는 여학생을 보고 나서...)
 
저자 이수호는 이런 교육 현실을 일선 교사들이 누구보다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소명의식과 책임감을 통감하기에 그들은 오늘도 흔들리는 교육의 자리를 힘겹게 지키고 있다. 교사들마저도 의미도 감동도 얻지 못하는 교육현장. 정말 우리 사회의 교육에는 희망이 없는 것일까? 
하지만 저자는 "그래도 교육이 희망"이라고 말한다. 그는 오랫 동안 참교육을 위해 헌신해왔다. 전교조 위원장과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내고, 우리 사회 갈등의 현장에는 어김없이 참여해 발언해온 시민운동가이자 시인이기도 한 그다. 그의 희망은 오랜 경험에서 오는 믿음 때문일수도 있고, 교사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 때문일수도 있다. 그는 "꼬일 때로 꼬인 교육 문제를 바로잡는 첫째가 교사"이며, "교사의 교육적 헌신은 문제해결의 처음이요 근본"이라고 강조한다. "힘들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길이 없기 때문에 교사가 더 책임 있게 나서야 하고 그것이 순서"라고 말한다.

이 책은 이처럼 교사로서 이수호의 삶과 생각, 신념과 철학을 알게 해준다. 책 속에는 과거 교사 시절 제자들과의 사연과 일화들이 수필체의 정갈한 문장 속에 진실하게 회상되고 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스승과 제자, 아니 교육 전체의 근본 가치가 사랑과 신뢰, 존중이라는 그 분명한 진리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일화 곳곳에는 사소한 실천 하나에도 학생들을 배려하는 그만의 선생다움이 묻어난다. 그는 수업시간에 교실에 들어갈 때 항상 노크를 하고, 인사 태도가 불량하다고 몇 번이고 되풀이시켜 인사를 마치 벌의 수단으로 삼지 않았으며, 생일이면 적절한 책을 골라 선물하고, 가정방문 가서 어려운 형편을 보고는 앉은뱅이 책상을 선뜻 선물하기도 했다. 잘못한 제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그 부모 앞에서 매를 들고, 때로는 야학활동을 하다가 학생들의 부추김에 공장을 차린 어리숙한 어른이기도 했다.
그런 마음결을 제자들은 잘 알았다. 그래서 곤경에 처한 스승을 위해 기꺼이 나서기도 했다. 1985년 '교육민주화 선언'으로 해직의 위기나 경찰에 쫓길 때는 고3 학생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연좌시위를 하여 저자의 해직을 막아섰다. 어떤 제자는 법정에서 저자의 징계 철회를 바라며 용감하게 증언도 했다. 세월이 흘러 사회 속에서 그런 제자들과의 만남은 또 다른 관계로 확장되었다. 때로는 판사가 된 제자가 자신이 관련된 사건을 맡으면서, 교정계 공무원이 된 제자가 있는 구치소에 수감되면서, 배움터에서 서로 같은 학생이 되어서... 그렇게 제자들과 만남은 이어졌다.
그는 "이 어려운 시대를 같이 살면서 새로운 만남과 관계로 연결되고, 이제는 오히려 나의 교사가 되어 나를 가르치는 그런 얼굴들이 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제자들은 사회 곳곳에서 사회인으로서 의젓하게 활동하고 있다. 저자 역시 교직을 떠나 시위현장에 서거나 사회운동과 정치를 할 때도 "그 모두가 이 시대 교사의 사명과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학교도 학교지만, 그 이후 각자가 어떤 삶을 사느냐가 더 중요함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꿈, "평교사로 지내며 아이들 박수와 노래 속에서 정년 퇴임식을 맞으려 했던, 소박하지만 가장 컸던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가장 행복하고 보람된 교사다.

교육은 우리 사회의 종속 변수이기에 다른 사회현상과 직결되어 있다. 사교육시장, 학벌사회,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 등이다. 저자는 이런 것들과 함께 변화하려는 노력 없이는, 교육만 가지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것들을 핑계 삼으며 교육(학교)에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교육부터 활로를 찾으려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 그 노력에는 가장 앞에 교사들이 있어야 하고, 그 옆에 학부모와 뜻있는 시민들이 함께해야 한다. 같이 토론하고 애기하면서 교육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가 더욱 절실하게 교육을 붙잡으려는 이유이고, 그러는 한 그는 언제나 교사다.
 
 
[ 2012년 9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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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사람의 길 - 下 - 맹자 한글역주 특별보급판
도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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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을 막론하고 고전 원문은 어렵다. 서양의 고전이 라틴어나 고대 그리스어이기 때문에 어렵다면, 동양의 고전은 한문로 쓰여졌기 때문에 어렵다. 실제 나도 그렇고 내 주변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맹자(孟子)>를 비롯하여 우리 세대에게 잘 알려진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읽어보고 싶어했다. 그런데 시중의 소설책처럼 <맹자>를 읽어보려고 손을 대지는 않는다. 왜 그런가? 읽어도 잘 이해가 되질 않기 때문이다. 한문은 본래 단음절로써 의미의 단위가 이루어졌고 그 사이의 전치사나 접속사, 그리고 자세한 배경설명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한문을 아무리 잘 번역해도 그 본래의 뜻이 다 드러나지 않는다.


맹자는 공자(孔子) 에게 사숙을 받았다고 스스로 말한다. 공자와 맹자가 활동하던 시기의 차이가 약 150년이다. 맹자는 공자의 사상의 핵심을 승계하면서도 독자적인 사상과 학문을 개척했다고 볼 수 있다.
공자 사상은 한마디로 하면 인(仁)이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세부 덕목으로서 지(知, 지혜)와 인(仁, 어짊)과 용(勇, 용기)에서의 ‘인’은 협의의 ‘인’이며, 공자가 내세운 모든 덕목을 총칭하는 개념이 광의의 ‘인’이다. 공자는 법이나 제도보다 사람을 중시했다. 사람을 통해 그가 꿈꾸는 도덕의 이상 사회를 이루려고 했다. 그래서 ‘어짊’을 실천하는 지도자로 군자(君子)를 내세웠다. 원래 군주의 자제라는 고귀한 신분을 뜻하는 ‘군자’는 공자에 의해 이상적 인격의 소유자로 개념화되었다. 군자는 도(道)를 추구하고, 도에 입각하고, 도가 통하는 세상을 만드는 존재다. 이 위대한 정치가는 예(禮)로 자신을 절제하고, 악(樂, 음악)으로 조화를 추구한다. 문(文, 문예)을 열심히 공부[學]해 훌륭한 군자로 거듭나고, 정치(政治)를 통해 민생(民生)을 안정시키고 도덕의 이상을 실현해야 한다. 덕(德)과 의(義)가 사회의 중심 가치가 되는 자신의 이상 사회를 끝내 성공시키지는 못했지만, 공자는 지난한 삶의 역정 속에서도 도덕 사회의 구현이라는 처음의 꿈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는데, 그 꿈이 정리되어 있는 책이 바로 <논어(論語)>다.

맹자의 사상은 '왕도정치(王道政治)'와 '민본주의(民本主義)'라 할 수 있다. 맹자는 왕도정치의 핵심적 내용을 인정(仁政)으로 파악하고, 그 인정이 가능한 근거를 성선설(性善說)에서 찾았다. 즉 군주가 어진 마음으로 은혜를 널리 펴나가는 정치를 할 때 바람직한 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고,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선성()을 가지고 있으며 누구나 인()을 실현하고 도()를 깨달아 왕도정치를 펼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맹자는 인간이 누구나 평등하게 태어났음을 인류 역사상 최초로 주창한 셈이다. 그리고 왕도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정전제(井田制)의 시행, 1/10의 가벼운 세금, 노동력 수탈의 완화, 고의성이 없거나 무지에서 비롯된 죄를 가볍게 처벌하는 등의 양민정책을 시행하는 것, 효제충신(孝悌忠信)의 도덕규범을 가르치는 교화(敎化)를 들었다. 왕도정치는 힘과 무력으로 통치하려는 '패도정치(道政治)'와 상반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민본주의는 '여민동락(與民同樂)'으로 표현된다.
이 책을 번역하고 주해를 단 도올 김용옥 교수는 인류역사에서 순결한 도덕주의, 진정한 인문주의는 모두 맹자에 근원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서양의 도덕은 결국 신화적 뿌리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21세기에 도덕의 회복을 외친다면 누구든지 <맹자>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맹자>는 일방적인 말씀의 모음집이 아니라 치열한 쌍방적 대화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대화의 기록 속에는 맹자와 그 학단의 투쟁의 역사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맹자의 희망과 좌절, 기쁨과 눈물, 회한과 절규가 절절이 배어있다."

맹자의 '성선설'에서  유학(儒學)의 '사단(四端)'이 도출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단이란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 羞惡之心), 사양지심( 辭讓之心), 시비지심( 是非之心)을 말한다. 측은지심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애처롭게 여기는 마음으로 인()을, 수오지심은 나쁜것을 멀리 하려는 마음으로 의()를, 사양지심은 남을 배려하여 양보하는 마음으로 예()를, 시비지심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마음으로 지(智)를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가 중고등학교 시절 국사 시간이나 도덕 시간에 배운 '인의예지신(信)'은 애초의 공맹사상이 아니다. '삼강오륜(三綱五倫)'은 12세기에 지배자들의 통치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 남송의 주희(朱熹)가 집대성한 유교(성리학 性理學)에서 처음 나타난다.

김용옥 교수는 책 속에서 자신의 동양학 연구 성과를 풍부하게 반영하여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고대 중국사에 대한 선입관을 흔들고 있다. 예를 들어 '요순(堯舜)시대'에 대한 여러 고전들을 비교하면서 '왕도정치가 구현되었던 요순시대'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맹자가 활동하던 전국시대의 주류적인 요순시대의 해석은 일반의 '설화'와는 달리 평범하고 잔인한 무력전쟁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난 다만 맹자가 강력하게 사상과 학문을 세우고 교육하면서 후대에게 당시의 통념을 버리고 요순시대가 왕도정치, 도덕정치의 모범이었음을 받아들이게끔 했다고 주장한다. 요순을 통해 그가 생각하는 가치를 구현시킨 것이다. 이런 맹자의 요순의 가치 구현에 대해 그는 역사적 사실(史實)은 결국 '역사에 대한 해석'을 동반하지 않을 수 없음을 입증하고 있다.

<맹자, 사람의 길 上>이 맹자의 정치철학과 정책, 왕도정치 등을 주로 다루었다면, <맹자, 사람의 길 下>는 맹자의 철학세계와 세계관, 그리고 당대의 다른 학자들과의 논쟁을 깊이 다루고 있다.

저자 도올 김용옥은 현재 한신대학교 석좌교수로서 기독교장로회의 목사들을 배출하는 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 '맹자'를 강의하고 있다. 그리고 <맹자>를 출간함으로써 도올 김용옥은 이미 출간된 <논어>, <대학>, <중용>의 한글역주와 함께 사서(四書)를 완역하였다. '도올사서'는 12세기 주희의 <사서집주> 이래 가장 독창적인 한국인의 “우리사서”라 할 수 있다. 
 
[ 2012년 9월 0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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