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삼성이 신입사원 선발할 때 탈스펙, 역사관 중시 라는 기사를 읽었는데,,,,그 기사 읽으면서 탈스펙까진 좋은데 역사관 중시라는 문구를 보니 씁쓸한 기분이 들면서 그들이 원하는 역사관이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말이 궁금하다 뿐이지 어느 정도는 그들이 어디 편에 서 있는지 안다. 삼성은 좌파 성향의 진보적인 역사관을 가진 사람은 뽑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삼성이란 기업적 형태로 보아. 그들이 선호하는 역사관은  친일우파관의 역사관을 가진, 좋게 말하면 보수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을 선호할 것이란 건 그 누가 봐도 뻔하다. 기업 팻말만 안 걸었다뿐이지 그들 역사관은 오른쪽 좀 더 오른쪽으로.

 

보수성은 기업의 입장에보면 분명 유리한 점이 있다. 상하명령복종에 절대적이고 안전하니깐. 기업을 운영하면서 안정적인 것 만큼 기업 위념에 중요한 것은 없을테니깐. 한 기업이 자신들의 안정과 이익을 위해 보수적이고 우파적인 사람들을 뽑는다라고 하는데 그걸 뭐라고 할 수는 없다. 여하튼 뭐 지들 맘이니깐.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의 역사를 바라보니, 참 우스운 게 보수는 세계를 뒤흔든적도 움직이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보수는 자기들만의 세계가 너무나 안정적이고 견고해서 그 틀에서 한발짝도 나오지 않으려고 애쓰며 자기들만의 권력과 세를 쌓고, 자신의 틀이 깨질까 그 틀을 더 강하게 만들었을 뿐.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인류의 삶이 변할정도의 역사적 진보를 이뤄내지 못했다. 지금까지 역사의 혁명을 만든 것은, 배운자, 가진자들 중에서 자신이 영위하고 있던 틀을 조금씩 조금씩 넓히면서 세상은 변화시켰다. 갈릴레오가 그랬고 마르크스가 그랬고 아인슈타인이그랬다. 자신의 독창적인 사고와 이론을 만들어냄으로써 기존의 세상과 싸웠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비록 그들의 세상이 보수화 되었다하더라도. 진보가 보수화되고 다시 보수화된 세계틀이 싫어 싸우면서 한층 더 진보화된 사회를 이룩하더란 말이다. 그 진보의 변화가 갈리레오처럼 긴 시간을 요구 할 때도 있었고 수 많은 사람들의 힘을 업어 단시간만에 이룩한 것도 있지만, 세계의 역사가 정체되어 있지 않고 한걸음씩 내딛게 만든 건 진보의 힘이 아닐까 싶다.

 

오른쪽에서 한걸음 더 오른쪽의 사고관과 역사관을 가진 인재를 뽑으려고 애쓰는 삼성.

 

한 세기에 한명 나올까 말까한 천재이자 당당히 사회주의자임을 외쳤던 아인슈타인은 과연 삼성에 취직할 수 있을까?

 

아마 오른쪽에 서 있는 삼성은 왼편에 서 있는 아인슈타인의 면접 서류와 역사관을 보고 빨갱이라 몰아부치며 천재인 그보다 휠씬 더 오른쪽에 서 있는 약간 덜 똑똑한 사람을 채용할 것이다. 앤디 루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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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늦은 저녁 애아빠 밥차려주고 스마트폰으로 기사 검색하다가, 변똥이 지난 12월에 여의도에서 밥 처묵고 밥값 삼백만원 떼먹으려고 서비스가 안 좋다니 종북식당이니 뭐니 별것도 아닌 것으로 트집 잡아 트위터로 쌈박질하는 기사 읽는데, 변똥과 함께 김지룡이란 사람도 언급되서 깜짝 놀랐다. 김지룡... 90년대 방송가를 누볐던,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그 김지룡인가 싶어 검색했더니, 맞다.  서울대83학번으로 잘 나가던 회사 때려치고 일본에 가 일본문화 공부하고 들어와 90년대 한때 삼방송가를 누볐던 그 문화평론가 그 김지룡! 동명이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90년대만 해도 이 사람의 일탈적 행보가 특히한 경우라서 주목받았는데(80,90년초반만해도 외국물 먹으러 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더군다나 일류대학, 일류기업 때려치고 그 나이에 공부한답시고 외국유학가는 경우는 정말 드문 케이스다 보니, 김지룡같이 편안한 자리 박차고 나온 사회적 일탈이 다른 사람들에게는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개인의 자유로움 혹은 자신만만한 반항같은 이미지로 비춰진 경우라 할 수 있겠다),  어느 순간 방송에서 안 보이더만 수컷닷컴이란 애국보수 싸이트의 대표로 커밍아웃했단다.

 

까놓고 말하지만 지네들은 신문이나 방송에선 애국이니 보수니 하며 떠들어 되지만, 말이 보수지 수구꼴통들 집단 아닌가. 한 인터뷰에서 그는 1980년대만해도 여성들이 많이 억압받은 게 사실이지만, 2000년대 와서는 오히려 남자들이 차별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정책이 여성위주로 흘러가다는 느낌을 받았다. 현사회에 불만이 많은 남자들끼리 모여서 노는 사이트로서 수컷닷컴을 기획했다고 하는데,,,,본인도 <승부가 강한 딸>을 출간할 정도면 딸이 있다는 건데,  딸 가진 사람이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차별당하고 억압당하는 2000년 이전 시대로 회귀하고 싶어하는 노골적인 탐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을 보고 당황스럽다. 나이 반백년을 먹은 사람이 거꾸로 세상을, 시간을 바꾸려고 하다니.

 

게다가 반백년동안 보고 듣고 읽는 컨텐츠의 양이 보통사람들의 몇배였을 문화평론가란 사람이 2000년대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늘고 지위가 획득되자 아니꼬와서 동물들의 영역다툼인 양 자기 남성들의 권리를 위해 만든 영역이 수컷닷컴이라니.... 수 십년전 로버트 하인라인은 프라이데이를 캐릭터하고 80년대 초 제임스 카메론은 두 명의 여전사들(에일리이언과 터미네이터)을 만들어 냄으로써 여성의 과시적 지위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한 것을 목격한 알만한 사람이 저렇게 발악하니 뭐가 뭔지 감이 안 잡힌다.

 

분명한 것은 우리 나라든 외국이든 현재의 여성의 지위는 남성의 지위 라인과 같지 않다. 과거는 뭐 말할 것도 없지만, 70년대 페미니스트들이 싸워 여성의 지위를 개선시키며 현재 진행중이지만, 여전히 2000년대를 살고 있는 현재도 차별적이란 말이다. 최근에 내가 읽고 있는 로렌스 크라우스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재밌는 일화를 하나 소개 하고 있는데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를 채우고 있는 물질은 밝혀진 바에 의하면 25% 가량 수소와 헬륨으로 채워졌지만 아직도 우주의 70%는 어떤 물질이 채워졌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우주론 학자들은 그 70% 물질을 밝히려고 노력한편 그 물질을 암흑 물질dark material이라고 부르는데 그 암흑물질을 밝혀지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중에 베라루빈이라는 여성과학자가 있다.

 

루빈은 조지타운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는데, 대부분의 수업이 야간강좌였고 운전도 할 줄 몰랐기 때문에, 그녀의 남편이 매일밤마다 자동차에서 그녀를 기다렸다고 한다. 원래 그녀는 프린스턴 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했으나 이 학교는 1975년까지 천문학과에 여학생을 받아주지 않았다. p66

 

루빈이 남편의 지지를 등에 업고 대학원을 다닌 시기는 아마 60년대 일것이다(미치오 카쿠에 의하면 루빈의 남편은 코넬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고 그녀는 남편을 따라 코넬 대학으로 진학했다). 단지 작가는 프린스턴 대학이 75년까지 여학생을 받지 않았을 정도로 폐쇄적이고 남성중심적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미국조차 여성의 지위가 불평등했는가는 작년에 예일대 최초로 수학과 교수로 임명된 http://search.daum.net/search?w=tot&DA=YZRR&t__nil_searchbox=btn&sug=&sq=&o=&q=%EC%98%A4%ED%9D%AC 오희 교수의 예만 들어도 우리가 살고 있는 2000년대도 여성의 위치는 남성이 차지하는 파이의 반도 차지 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내가 보기엔 2000년대 이후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많은 기회와 지위를 부여하기 위해 정부에서 정책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남/녀 평등사회로 가기위해선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도 우리는 남성위주의 사회고, 우리 사회적 관습이 바뀌지 않는 한 남성위주의 사회로 굴러갈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제사. 제사의 주체가 아들이다 보니 남아선호사상은 뿌리 깊게 남아 있고 재산 상속이나 성장과정에서 딸과 아들 차별되어 성장한다. 이게 무슨 쌍팔년도 같은 소리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결혼해보면 여전히 우리사회가 얼마나 남성위주의 사회인지 실감할 것이다.

 

그나마 좌파 정권 10년동안  여성정책에 있어서 지금까지 온갖 이득과 혜택을 다 받아온 남성들 발뒤꿈치정도의 취업기회와 사회적 지위의 혜택을 주고 있다고 저 지랄을 떠니, 남성들의 탐욕에 욕 나온다. 남/여가 평등했던 사회에서 여성을 위한 차별정책을 펼친거라면 일베나 수컴닷컴의 여성비하 발언들이나 명칭(김치년,된장년같은)들이 약간 수긍이 가지만, 본인들이 지금까지 100% 다 가졌던 파이를 여자들에게 한두 조각 나눠준다고 자기네들이 여성들에게 아주 큰 파이를 뺏긴 것처럼 착각들을 하니..그들의 탐욕이 가증스럽다.

 

예전에도 썼지만, 여성이 최초로 미국에서 참정권을 가지게 된 것이 1926년 백년도 안 됐고 본격적으로 참정권을 획득한 시기가 이차대전 이후 유럽대륙 프랑스에서 1946년(혹은 47년) 이후부터이다.  70년대 미국와 유럽의 권력화된 남성 위주의 정책과 피 터지게 싸운 페미니스트들 덕에 우리나라 좌파 정권이 콩고물로 내 준 작은 파이조각이다. 격렬하고 끈질기게 싸워 얻어 낸 서구의 페미니스트덕에 아주 짧은 시간에 우리 나라 여성이 이 땅위에서 여성으로서 사회적 자리 매김 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한국 남성들은 우리 나라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는데 그 어떤 참여도나 기여도는 없었다는 말이다. 기여도 하지 않았는데 그 작은 파이마저 뺏을려고 정부의 정책이 여성위주의 정책이라든지 여성들만의 권리니 대접을 받는다느니, 여성부를 깍아내리고 여성 비하까지 하는 짓거리는 우리 나라 남자들이 얼마나 아들로서 아들로 대접받고 떠 받들고 살아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남녀 평등한 사회에서, 차별없는 사회에서 어느 한쪽의 성이 억압받거나 차별받는다고 발악해야 변똥이나 김지룡같은 사람들의 말이 정당화 될 수 있는 거 아닌가. 여전히 여자로서 차별당하고 억압받은 사회에서 무슨 남성이 여성으로부터 차별 당하고 억압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남/녀 차별 없는 사회는 아직도 요원한 세상이구만. 아직도 아들은 금칠해서 키우고 딸은 똥칠해서 키운 줄 아는 세상에서 남성의 부르짖음은..... 개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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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라딘직원의 어이없는 업무 처리 방식
    from ▶◀ 2015-01-07 21:53 
    지금 너무 황당한 메일을 받아서 그러는데, 이게 가능해요? 저 지금 밖에서 밥 먹다가 메일 들여다보고 황당해서 스마트폰으로 올렸어요. 알라딘 담당자분, 제 개인정보를 수사기관에 주고 멜로 통보하는 거 너무 경우없지 않나요? 덧붙여서... 지금 제가 컴 들어와 글 첨부합니다. 알라딘 담당자님, 적어도 검찰이든 사이버 수사대든 경찰이든 법적으로 개인정보 요청이 합법적인 곳에서 요청이 들어왔다면, 제 정보 넘겨주기전에 저한테 전화하셨어야하는 게 수순 아닌가
 
 
2014-02-10 17: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11 0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지개모모 2014-02-18 19:02   좋아요 0 | URL
이럴 수가... 이제 <데스노트에 이름을 쓰면 살인죄일까?>는 제 위시리스트에서 내려갑니다;

기억의집 2014-02-21 08:07   좋아요 0 | URL
휴 그러게요. 저도 저런 사람인 줄 몰랐어요. 수구인줄 누가 알았겠어요. 딸도 있던데 저러고 싶을까 싶어요....

라로 2015-01-08 02:11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님 끝까지 싸우세요!!! 저도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겠어요!!!

icaru 2015-01-08 08:47   좋아요 0 | URL
아니 이 무슨 어이없는 경우가요,, 기억님 황당하시겠다~ 저도요!!! 조그만 힘일지라도, 기억님 지지합니다!!

paviana 2015-01-08 13:50   좋아요 0 | URL
이달의 당선작으로 뽑히실만큼 잘 쓰신 글인데....
명예훼손 무혐의 처리받으시면 무고죄로 고소하세요.

참 힘내세요 힘...
 

 아, 이 책 카드로 긁고 싶어 미치겠다.

그런데 선뜻 긁을 수 없는 만만치 않는 책값.

그리고  무이자 할부 되는 카드 하나 없는 지갑 사정.

요 일년간은 책을 안 사고 집에 쌓아둔 책을 읽었고,

신간은 외면한 채 그런대로 기존의 책을 읽어 치우는데 만족하며 살았는데, 며칠 전에 도서관에 갔다가 신간 코너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도서관 측에서 이 책 일곱권을 다 들여놨는지 아니면 신청자가 신청한 책들만 구입했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첫번째 파운데이션은 없고 두권인가 세권인가가 꽂혀있어, 집에 와 인터넷 검색해보니 전권이 다 출간되었다.

 

휴~ 사고 싶기는 한데 경제적인 압박감도 그렇고 저 일곱권을 과연 다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고, 한데 책쟁이들에겐 나름 책쟁이의 의리 비슷한 게 있다. 끽해야 몇권 팔리지도 않을 저 책을, 그것도 sf 소설 볼모지인 한국출판사에서 출간할 생각을 하고 작업 해준 출판사(휙 보니 황금가지더라) 직원분들과 기획하신 분들 생각하면 고마워하며 사 줘야 할 것 같은 의리감.

 

근데 말이다. 의리감도 의리감이만 내가 저 책을 사서 다 읽으면 나는 지구 위에서 저 책 다 읽은 몇 안되는 %안에 든다.  저 책을 다 읽는 희소가치와 자부심에 한번 도전해 볼까?

 

이래나 저래나 고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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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알라딘 머그컵 받을려고 주문한 책자들 사이에 끼워온 북스피어의 찌라시 신문을 흝어보는데, 찌라시신문 맨 아랫단광고에 로버트 하인라인의 <달을 판 사나이>가 출간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수년전부터 이 단편의 명성을 알고 있었기에 읽어보고 싶었지만 구할 수 없었던 단편이고, 영어책은 판매중이지만 영어독해가 sf 소설을 읽을 수 있는 실력이 아닌지라..... 읽기를 포기하고 있었던 책이었다. 출간된 사실을 확인하고 인터넷에 들어가 몇몇 블로그를 검색해 보니 불새라는 일인 출판사에서 출간해서, 책의 교정이나 번역이 완벽한 상태는 아닌 듯 하다. 불만스런 독자의 그르렁거리는 리뷰에 눈에 확 들어온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싶다. 명성을 듣고 몇년을 기다린 단편인데.. 약간의 번역상 오류나 오탈쯤은 쿨하게 넘길 수 있다. 출간해 준 것만해도 감지덕지 하다.  

 

내가 꾸준히 관심갖고 읽은 sf 작가들은 로버트 하인라인, 레이 브래드버리, 아서 클라크와 어슐러 르귄등 몇몇 작가들이다. 나에게 sf소설의 매력은 현실에 대한 체제 전복이다. 그게 사회구조든, 권력이든, 과학 기술이든, 이야기자체의 전복이든 간에, 작가 자신들이 살았던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소설적 배경이 아닌 그들이 만들어낸 혹은 꿈꾸는 사회구조에 대한 그들의 진보적인 탐구와 결합된 판타지 사회인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미래사회를 만들고 그 속에서 갈등을 이야기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지 않았던 시절에 그들은 여전사를 만들어 내고, 인종차별이 당연한 시대에 인종차별의 부당함을 말하고 새로운 사고를 가진 권력지형을 기득권의 권력으로 대체하고 고도의 테크놀로지를 향유한다. 50,60년대에 쓰여진 그들의 sf소설들을 읽으면서 새삼 느낀 것은 그들이 만들어 낸 미래사회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현실화 되었다는 것이다.

 

기존의 사회적 구조나 체계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한 권의 sf소설만으로, 혹은 한 작가의 판타지가 미래에 어느 정도 진보라는 이름으로 실현된 21세기의 현실. 우리는 과거의  sf 소설가 판타지 속을 현실화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린 시절, 나는 도서관에 가면 공상과학및 공상과학 소설이 꽂힌 서가로 곧바로 달려가곤 했다. 나는 로버트 하이라인의이 지은 공상과학소설 <로켓 추진선 갈flf레오> 에 푹 빠졌다. 10대 소년들이 사막에서 로켓을 만든 다음 달을 향해 출발하는 내용이었다......

 

기술과 모험이 혼합된 공상과학 소설은 사춘기 소년들에게 자연스런 매력을 가진다. 레이크 사이드의 초기 시절, 주말 아침이면 나는 침대에 누워 에이스 더블에 출간한 장르소설들을 탐독했다. 그리고 곧 더 세련된 작가들의 작품을 읽게 되었다. 아서 클라고와 아이작 아시모프 그리고 뛰어난 문장가이자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던 잭 밴스가 그들이었다. 나는 특히 하인라인의 수준 높은 공상과학 소설을 좋아했다. ...

 

집을 떠난 지 25년 후 나는 책한권을 찾기 위해 옛날 방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전부 사라진 게 아닌가! 엄마는 다 팔았버렸다고 말했다..... 엄마를 용서하기가 어려웠지만 오래된 사진 한장이 분위기를 살렸다. 사진을 확대해 옛날에 소장했던 책들의 책등에 쓰인 제목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책들을 추적해 거의 한권도 빠짐없이 다시 갖췄다. 공상과학소설은 제2의 우주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했고 가장 엉뚱한 아이디어의 실현가능성 및 그 방안에 골몰하게 했다.....

 

하지만 다른 개념들, 예컨대 화상회의나 통신위성은 미래의 모습에 대한 시사회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어느 경우든 그 페이퍼백 도서들은 기술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p326~326

 

 

애플의 스티븐 위즈니악같은 인물이었던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폴 앨런은 50,60년대의 sf소설이 어떻게 현재의 테크놀로지로 구현했는지 짦게 설명하고 있는데, 사실 기술뿐만 아니라 권력의 이동이나 사회적 기득권의  변화도 어느 정도는 예언했다고 할 수 있다. 

 

며칠 전에 레이 브래드버리의 <일러스트레이트드맨>의 역지사지를 읽다가 우연히 이 작품 출간 연도를 살펴본 적이 있다. 1951년. 하인라인의 <달을 판 사나이>도 51년 출간되었기에 신기한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는데, 단편 역지사지 속에 담겨진 인종차별의 부당함을 짦은 글로 표현해 낸 레이 브래드버리의 시대적 통찰력에 놀라웠다. 역사적 진보란, 한사람의 성찰과 그의 성찰에 동조하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천천히 사회적 변화를 이루어 내는 것. 그게 진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인라인은 마초시대였던 그 시대에도 여성과 남성을 거의 동일시 했으니 뭐 말할 것도 없고.

 

여하튼, 로버트 하인라인의 작품은 과학자들 이론과학자든 실험과학자들이건 간에 많은 영향을 끼친 듯하다. 종종 과학책을 읽다보면 그의 작품 속 글귀가 인용된 것을 많이 볼 수 있고, 반면에 미국 스릴러 작가들의 책을 읽다보면 하인라인과 같은 동시대 작가인 레이 브래드버리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감을 볼 수 있다. 특히나 50,60년대의 소년시대를 보낸 작가들, 그들의 존경심과 경외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의 브래드버리에 대한 열광은 자신들의 소년적 감성과 닮은 브래드버리의 시적인 감수성때문일까. 그시대를 공유하지 않은 나로선 알 수 없지만 레이 브래드버리 작품에 베이스로 깔린 허무감 위로 세워진 미래사회에 대한 불안감과 환상이 그들에게 미지의 들뜬 기분을 순진한 소년들에게 선사한 것때문이 아닐까.  반면에 하인라인의 작품은 남성적이고 너무 진보적이어서 인문적 감수성에는 레이 브래드버리보단 덜 한 것 같다. 그들 문화에 살아본 적도 체험한 적도 없어 이런 나의 추측이 틀린수 있지만, 하인라인과 브래드버리의 소설들을 읽어본 나로선  그들의 뚜렷한 작품적 경향으로 봐선 어느 정도 편이 갈린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들뿐만 아니라 sf소설가들이 새로운 지평의 시대를 여는 게 기여한 것은 분명하고 우리는 그들의 반쯤 열린 판타지속에 살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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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무척이나 맛깔나게 썼다.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인데도 불구하고 강의를 직접 듣는 것처럼 가볍고 친근한 투로 진행을 했다. 영화 <중력>을 보고 중력이란 무엇인지? 중력이 우리 혹은 사물에게 어떤 작용을 하고 중력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그리고 지금 중력 연구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어 나가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은 유용하다.

 

그런데 이 책에서 몇 개의 오류가 눈에 띈다. 예전에 읽었던 월터 르윈의 <나의 행복한 물리학 특강>을 읽지 않았더라면 작가의 실수나 혹은 편집의 실수를 모르고 지나칠 뻔 했는데 르윈의 <나의 행복한 물리학 특강>과 비슷한 진행을 해서 오류가 확연하게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실험의 결과가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1971년 아폴로 1호의 스코트 선장은 달의 표면에서 같은 실험을 행했다. 공기 저항이 없는 달표면에서 쇠망치와 새의 깃털을 동시에 떨어뜨렸더니 정말로 똑같은 속력으로 낙하하였다. p33

 

 

데이빗 스코트 선장이 탄 아폴로우주선은 1호가 아니고 15호였다. 이건 편집자의 오탈자 같은데, 아폴로 1호는 발사전 지상에서 화재가 나 그 안에 있던 우주인 3명 모두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던 비운을 겪었던 우주선이었다. 나사가 제공한 영상에서도 알다시피 무거운 물체나 가벼운 물체를 동시에 떨어뜨렸을 때 공기의 저항이 없는 상태에서는 똑같이 떨어진다. 영상 보면 알겠지만 무게가 다른 두 물체가 동시에 땅에 떨어지는 순간 진짜 신기함.

 

학교에서 `질량과 무게는 다르다`고 배웠을 것이다. 질량은 움직이기 어려운 정도를 나타내고 무게는 중력의 크기를 나타낸다고 배웠다......... 이에 대한 정밀한 실험이 행해져서 질량과 무게가 10조분의 1의 정밀도로 일치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질량`과 `무게`는 현실적으로는 같으며 구별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 p36

 

음 ....... 이 대목은 혹 월터 르윈의 이 책을 가지고 있다면 무게와 질량의 미묘한 차이를 설명한 66~75p를 읽어봤으면 한다. 작가 오구리 히로시의 딱 떨어지는 단언처럼 무게와 질량을 구별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르윈 교수의 말을 잠시 빌려 요약하면 무게는 중력의 가하는 힘에 따라 변할 수있다. 예를 들어 질량 55kg인 사람이 집에서 몸무게를 잴 때 55kg이라고 저울이 눈금을 가리켰다고 치자, 그럼 이 사람의 질량과 무게는 55kg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가속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몸무게를 재면 뉴턴의 제 3법칙에 의해 66kg이 된다는 것이다(르윈 교수의 69~75페이지의 글을 요약하면 이렇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뉴턴 방정식, 중력의 가하는 힘과 질량을 길게 설명한 것을 두 줄로 줄인 것이다).

 

어떤 물체의 질량은 우주의 어디에서나 똑같다. 우리 몸의 질량은 달에서나 소행성의 표면에서나 우주 공간 어디에서나 똑.같.다. 변하는 것은 무게다. 무게는 중력이 작용한 결과이다. 다시 말해 무게는 힘인데 여기서 말하는 힘의 원천은 중력이므로 지구에서의 경우 무게는 질량에 중력가속도를 곱한 것, 곧 F=mg이다. <나의 행복한 물리학 특강 p66>

 

르윈 교수는 우리의 몸무게를 말할 때 일상적으로 질량 단위보다 무게 단위가 익숙한 것뿐이라 말하고 있다. 너의 몸무게가 얼마야?라고 말하지 질량이 얼마야?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가 오구라 히로시의 글이 사실 너무 간략해서(그는 총 분량 270p안에서 뉴턴이론 맥스월이론 아인슈타인 이론 그리고 초끈이론까지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내가 오해하는부분이 있을 수가 있겠지만, 혹 이 두 책을 읽고 있는 분들은 참고 했으면 한다.

 

갈릴레오가 죽은 해에 태어난 뉴턴이 갈릴레오가 시작한 역학을 완성해 낸 것 처럼, 맥스월이 죽은 해애 태어난 아인슈타이는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의 의를 끝까지 밝혀냈다. 61p

 

이 대목은 진짜 어이가 없었는데, 과학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필수적인 구글 검색을 제껴두고 누군가 착각한 실수를 되풀이 하다니... 왜 이런 실수를 했는지 모르겠다. 이건 구글 검색만 잠깐 해도 사실을 알 수 있었을텐데. 뉴턴은 1643년 1월4에 태어났고 갈릴레오는 1642년 1월 8일에 죽었다. 갈릴레오가 죽은 해에 뉴턴이 태어난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갈릴레오가 죽은 해에 뉴턴이 태어났다는 것으로 아는 블로거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 단지 나는 르윈 교수가 쓴 책에 갈릴레오가 죽은 다음해에 태어난 뉴턴이란 대목을 기억해서 저 대목에 오류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긴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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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모모 2014-01-02 00:53   좋아요 0 | URL
저도 갈릴레이가 죽은 해에 뉴턴이 태어났다고 알고 있었습니다만 아니었군요...! =.=
정보 전달하는 글에서 오탈자는 참 찜찜하네요. 기억의집님처럼 오류를 간파해내지 못하면 잘못된 내용을 외우고 다니게 될지도 모르는데 걱정됩니다^^;

기억의집 2014-01-03 22:33   좋아요 0 | URL
네~ 갈릴레오가 죽은 다음해에 뉴턴이 태어났는데..작가가 착각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제 추측에는 일본 유명작가가 실수로 갈릴레오가 죽은 해에 뉴턴이 태어났다고 착각한 글이 정설로 일본이나 우리나라에 뿌리 내린게 아닐까 싶더라구요.

모모님 코는 어떠신지요? 저의 아들은 한동안 숨 못 쉬어 온갖 짜증을 저한테 다 쏟아냈는데...흑흑.

2014-01-03 2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4-01-03 23:22   좋아요 0 | URL
제가 너무 간략하게 적었지요. 제가 전체적인 글을 인용문으로 적기엔 글이 길 것 같아 짤랐거든요~ 간단하게 요약하면,

작가 히로시는 무게가 다른 두 물체를 동시 낙하했을 경우 중력은 같은 힘을 발휘해서 똑같이 떨어진다고 설명합니다. 위의 데이비드 스콧 선장이 실험했듯이 공기 저항이 없는 달에서 망치와 깃털이 똑같이 떨어진 것처럼요. 작가는 수박과 사과를 예로 들었는데, (여기에서는 책내용 인용입니다) 지구가 당기는 중력은 수박쪽이 더 강하다. 즉 움직이기 어려운 물체가 끌어당기는 힘이 더 강하다. 질량이 큰 물체에는 움직이기 어려운 성질과 중력이 강하게 끌어당기는 성질, 양면이 있다. 그래서 사과와 수박이 동시에 떨어지는 것은 이 두가지 성질이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로 상쇄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중력은 질량이 큰 물체에 강하게 작용함에도 불구하고 중력이 물체의 운동에 미치는 속도는 질량과 관계가 없어지는것이다.
학교에서 질량과 무게는 다르다고 배웠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왜 그 둘이 딱 상쇄되어 동시에 떨어지는 것일까. 이에 대한 정밀한 실험이 행해져서 질량과 무게가 10조분의 의 정밀도로 일치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질량과 무게는 현실적으로 같으며 구별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썼습니다.

이 대목, 질량과 무게가 같다는 말에 혹 최신 이론인가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몇달전에 르윈교수의 나의 행복한 물리학 특강중에서 뉴턴의 운동하는 물체를 여러번 읽어 무게와 질량의 차이를 이해했거든요. 르윈교수는 무게는 중력이 끌어당기는 힘이다 라고요. 질량은 사실 물체 본연의 측정값이고 무게는 중력이 가한 측정값이다라고요.

르윈은,

어떤 질량에 대해 지구가 미치는 중력은 지구의 어디에서든 대략 일정하다. 따라서 비록 질량과 무게를 혼동하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에 구애받지 않고 그의 몸무게는 70kg이다. 또는 그녀의 몸무게는 110Ib 다 등으로 말 할수 있다. 나는 힘이나 무게의 단위로 이 책에서 kg이나 lb대신 정식의 물리 단위를 쓸 것인지 많이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일상적인 용법에 따르기로 했다. 정식 단위는 혼란스러울 뿐 아니라 심지어 물리학자들도 자신의 몸무게를 말할 때 나는 686N(뉴턴)이다"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단위를 통일 시켰습니다. 라고요.

무게는 지구의 중력이 일정하지 않을 때의 측정값으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구의 중력 환경이 일정할텐데 중력이 일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 할 수 있겠죠. 두 작가 모두 우리가 중력을 없앨 수 있다고 예를 들어 설명하는데 그건 너무 길어 여기서 생략할께요. 특수한 상황일 경우 중력의 크기가 달라지므로 물체의 측량 또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가 히로시의 말대로 질량와 무게는 같다라는데 동의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저도 물리를 전공하지 않았고 과학에 흥미가 있어 꾸준히 읽는 사람인지라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사람입니다.^^ 문제 제기 해 주시면 저 또한 한번 더 들여다보고 생각할 수 있어 좋죠~

물론 저도 전공자가 아니라서 잘 못 이해한 것일 수도 있고요. 잘 못 이해한 것이면 님 덕분에 오류를 고쳐 나갈 수 있어 좋습니다~ 님 덕분에 다시 질량과 무게에 대해 공부 좀 해 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