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저술가들 중에서 재미면에서 내가 가장 손꼽는 작가가 사이먼 싱이나 닐 슈빈이었는데 어후, <사라진 스푼>의 작가 샘킨도 만만치 않다. 과학적 지식의 나열이었다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소재들을 이 작가는 역사적 연대와 사건을 적절히 배열해서 하품할 틈을 주지 않는 글솜씨를 가지고 있다
가만보면 어떤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을 설명할 때 역사적 지식과 결합하면 글이 더 흥미로워진다. 내 경우는, 같은 시기에 읽다 포기한, 레베카 골드스타인이 괴델에 대해 설명한 <불완전성>은 괴델의 역사성은 어디로 가고 작가적 사유가 결합돼 몇 페이지만 읽고 나면 침 질질 흘려가며 잠을 자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의 독서적 성향은 확실히 작가적 사유의 첨언보다 역사와 결합해 설명한 지식의 나열을 더 선호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이먼 싱은 <페르만의 마지막 정리>조차 괴델의 일화을 재밌게 소개하던데, 레베가 골드스타인은 <과학은 문화다>에서 핑거와 인터뷰한 글을 읽고 말빨이 세서 읽어볼 만 하겠다 싶어 구매했더니 아무래도 끝까지 읽는 것은 무리다 싶다. 같은 것을 다루더라도 작가마다 보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내가 섭취한 지식을 토해낼 땐 축구공처럼 여러 다양한 육각형을 담아 하나의 원으로 만들어 던지는 게 독자의 이해를 돕는 쉬운 방식이 아닐까. 그런면에서 샘킨의 여러 분야를 섭렵한 지식을 한솥에 보글보글 끓여 내는 솜씨는 탁월하다. 이 작가의 전문적인 과학적 지식도 부럽지만 이 전문지식들을 어떻게 결합해야 재밌게 읽을지를 아는 글솜씨가 더 부럽다.
마케팅빨~ 이 소설이 한국소설을 이끌 단 하나의 추리소설이라면 우리 나라 문학계 정말 심각한 거 아닌가. 솔직히 아이디어나 전개되는 스토리는 나무랄데는 없다. 그런데 아 놔~ 엘리스와 신가야의 대화, 이게 진정 열심히 글 쓴 작가의 문체라 할 수 있을려나.
지인과도 잠깐 문자도 나눴지만 주인공 남녀의 로맨스 대화가 오글거려 도저히 후하게 이 작품을 평하지 못하겠다. 국제화 시대에 독자인 우리도 미드보고 외국 소설 읽어. 그래서 미국스타일이 어떤지 한국땅에 살아도 대충 뻔히 감이 잡히는데, 배경은 이국인데 둘의 대화는 한국식이야. 연애도 한국식이고. 문화가 다른 배경의 남녀가 어떻게 뼛속까지 강남스타일로 대화를 하냐고. 작가는 무슨 배짱으로 엘리스가 가야를 부를 때도 가야씨~ 이러면서 글을 써. 배짱도 완전 똥배짱이지. 작가의 대화체 문체..이건만 어떻하면 진짜 좋을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기준엔 좋은 작품이 되었을 뻔한 구렁이 작품.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낸 출판사 좋아해서 여기서 내는 작품들 대부분 구입해서 읽고 이 작품도 재빨리 구입해 읽었는데, 결말만 빼면 괜찮은 작품.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은 이 작가가 미스터리에 겁내지 않고 잘 다룬다는 생각이 들었고 읽는 과정이 코지(cozy)한 느낌을 풍기는 작품이었는데,,, 결말에 범인이 누군지 알고부터는 맥이 빠진 작품이다. 은근 잔인하다. 사지가 절단되고 피가 난무하는 시각적 잔인이 아니고 작가가 은근 독자에게 심리적 잔인함을 선사한다. 독자인 내가 굳이 그들(범인과 ....)의 미래를 상상할 필요는 없는데, 쓰잘데 없이 그들에게 닥힌 현실과 미래가 크로스되면서 날다가 꺽이는 날개가 연상되었다.
읽는 동안 읽는 맛이 달달해 기분 좋았다가 결말에 가서 사약먹은 것처럼 킬당한 책.
이책은 나는 왜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내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읽었던 책이다.
나는 왜 피가 낭자한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할까? 내 안에 살인에 대한 호기심 혹은 쾌락같은 유전인자가 들어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희대의 무자비한 연쇄살인자나 용인 고등학생 살인범과 무엇이 다를까? 하고 나 자신에게 여러번 물음을 던지면서 읽은 책이었는데, 결론은 나는 누군가 살해 당했다는 잔인한 죽음의 쾌락보다는 누가 살인을 하고 범인은 누군가? 혹은범인은 왜 그 혹은 그녀를 죽였는가?를 추리하고 트레일하는 과정을, 사건해결을 푸는 과정을 선호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신체적 매력이 없는 베르호벤이지만 그 사건의 트레일 과정을, 비록 작품마다 완벽한 결론은 아니지만 좋아하게 된 것도 그 과정을 충실하게 밟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지인하고도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내가 편집자였다면 좀 더 페이지를 뺏다면 사건의 긴박감이나 긴장감이 더 할 수도 있었던 작품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러나 언제나 항상 말했듯이 내 경우에는 이 작가가 선택하는 단어나 문장이 세련되서 문장을 읽는 즐거움이 지루함을 눌렀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미야베 미유키의 <진상>을 지난 번 와우북페스티벌의 북스피어 부스에서 사 들고와 읽고 있는 참인데 참으로 진도가 잘 안 나간다. 게다가 똑같은 두께의 하권을 보고 있자니....두려움만.... 미미여사의 에도 시대 소설을 다 읽은 마당에 기록이나 세워 보자고 열심히 책을 펼치고 있지만, 역시 이날 <그림자 밟기>도 사와 금방 읽어 치웠는데, <진상>은 읽다가 스마트폰으로 턴하니 하루에 열페이지 읽으면 많이 읽은 듯하다. 오늘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제7일> 읽기 시작했는데,,,,,, 첨장부터 죽어서도 계급사회라니..읽을 맛이 안난다.